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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여름에 어울리게 괴담이나 써볼까요...2014.08.13 PM 07:11
WhiteDay 님 처럼 으스스한 배경도 깔고 브금도 넣고 싶지만
마이피를 그렇게 꾸밀 자신이 없으니
그냥 글만 적어보겠음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무덤가 위에 세워졌습니다
네. 뻔한 클리셰죠
국딩or초딩 때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 입니다
근데 이 학교가 특이한 것은
학교에서 담장만 넘어가면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과
어르신들께 이야기를 해봐도 묘지가 아닌 곳에서도 유골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아무도 저런 뻔하고 전형적인 클리셰를 반박하지 않다는 점에 있죠
한마디로 누가 봐도 무덤가 위에 세워진게 뻔한 학교 였으니
오히려 전설이고 괴담이고 탄생하기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아침에 학교 들어가면서 보이는게 무덤이요
교실서 눈 돌리면 들어오는게 무덤이니
우리 학교 무덤가에 세워졌어요! 하는게 오히려 바보 같은 학교랄까요;;
지금도 인터넷 맵 서비스들로 보면 학교 옆 공동묘지들이 즐비한 걸 볼 수 있는 학교니까요
때는 제가 고3 수능 보기 전 하복 입던 계절
매일 아침 7시에 학교 가서 밤 11시 45분까지 야자라는 명목으로 붙잡아 놓던 학교였기 때문에
제 야자는 판타지 + 멍때리기 + 글쓰기로 점철 되어있었고
그 날은 특히나 가드가 약한 선생님이 감독이셨기 때문에
도서실에 신청해 놨던 판타지들을 1교시에 몰아서 보고
2교시에는 노래 들으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호수를 보며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감이란게 참 무섭죠
학년이 올라갈 수 록 높은 층을 쓰는 것이 전통이었기 때문에
3학년 때 저희 반은 4층에 있었습니다
사방이 산과 무덤, 호수로 둘러쌓인 학교
전등이라고는 학교 정문을 빼면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도 없는 외진 곳
그런데 야자 2교시 멍 때리고 있던 고3 놈이
갑자기 매일 보던 무덤가에서 위화감을 느낀 겁니다
4층 건물
백수십 미터 운동장을 지나
담장 넘어 칠흙같은 어둠 속에 뭍혀있는 무덤가에서
뭐라고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위화감
누군가 나를 쳐다 보고 있다는 자각 +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
기분 나쁜 듯 한, 서늘하게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런 감각
근데 사람이란게 위화감을 느끼면 자동으로 돌아보게 되잖아요
누가 쳐다 본다는 느낌이 들면 반사적으로 돌아보 듯 이
저도 위화감을 캐치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무덤가를 봤습니다
무덤가에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누군가가
여자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겠으나
표정을 알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고
그럼에도 저를 빤히 쳐다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이상한 상황
거기다 입고 있는 하얀 옷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어두운 밤과 구분이 안될 정도로 검은 얼굴
그런 여자가 무덤 위에 꼿꼿히 서서 운동장을 지나 4층 건물 위에 있는 저를
아주 똑바로 쳐다보고 있더군요
운동장을 가로질러, 4층 건물 위에 있는 저를
3학년 전체가 야자를 하고 있는 상황에 하필이면 제가 그 여자를 보고 있는 우리 교실을
아주 정확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진 않았지만 - 눈이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 저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은
아주 강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할 지경이었죠
흡...! 소리도 못낼 정도로 몸이 굳어서 식은 땀만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너 뭐하냐?'
1년 내내 짝하던 친구 놈이 제 몸을 툭 치면서 말을 시켰습니다
아마 옆에서 멍 때리던 ㅄ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캐치한 거겠죠
하지만 그 한마디에 굳었던 몸이 풀어졌습니다
무슨 녹슨 로봇이 고개를 돌리는 양
뻣뻣하게 친구놈 쪽을 돌아본 다음 제가 본 것을 상세하게 설명했죠
왠 흰 옷 입은 여자가
무덤 위에 서서 여기를 쳐다 보고 있다고
'뭐가 있다고 그래 ㄱ-;; 아무 것도 없구만'
잔뜩 굳어있는 제 어깨 너머로 무덤가를 둘러보던 친구놈이 말할 때 까지
전 옆으로 돌아서 무덤가 볼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얇은 하복이 축축해질 정도로 식은 땀을 흘렸으니
친구놈도 얘가 뭘 보긴 봤구나 싶은지 놀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제 눈에 보이던게 바로 몇 초 후 친구 눈엔 안보인다니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고 믿어줄리가 없었죠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흔하디 흔한 클리셰와
뻔하디 뻔한 전개로 이뤄진 괴담
어디 90년대 나온 괴담집에도 안실릴 법한 부실한 내용
근데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뒷 이야기는 바로 그 날
저를 구원해 주었던 짝인 친구놈의 이야기
위에서도 언급했 듯이 11시 45분에야 야자를 끝내주는 학교였기 때문에
멀리 사는 친구 놈들은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요원했고
덕분에 학교는 버스회사와 계약해서 야자가 끝날 시간이면
항상 몇 대의 버스가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덤가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식은 땀을 줄줄 흘린 그 날
저희 반은 가장 늦게 나가는 것이 당첨되어서 가장 마지막 버스를 타야할 운명이었고
항상 정원 간당간당할 정도의 버스 밖에 보내주지 않은 덕분에
버스는 매일같이 발디딜틈 하나 없을 정도로 학생들을 꽉꽉 채워야 했었죠
그런 이상한 일도 있고 해서 한시도 더 학교에 있고 싶지 않아진 저는
짝인 친구놈을 끌고 진짜 빛의 속도로 버스를 향해 달렸습니다
가급적이면 앞버스를 타고 싶어서 숨이 턱에 차오를 때 까지 달렸으나
정말 압사 당하지 않는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채워넣은 버스를 보고
마지막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죠
그래도 마지막 버스는 조금 빨리 탄 덕분에 자리에 앉지는 못해도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는 가장 뒷 쪽까지는 갈 수 있었죠
(문 근처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ㄱ-;; 그렇게 낑겨 탔는데 내리는건 차례대로가 아니니 진짜 지옥;;)
그렇게 저와 제 친구는 버스 가장 뒤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시간도 좀 지났고
이제 이 지옥 같은 학교에서도 벗어난다는 해방감 덕분인지
전 그래도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뭘 본건지는 몰라도 그냥 동네주민을 착각했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렇게 제가 탄 마지막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전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길에 들어서려고 버스가 움직인 순간까지
저와 제 친구는 낑길때로 낑기는 버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죠
그렇게 돌아선 버스가 길로 들어선 그때
저랑 잘 떠들던 제 친구가 갑자기 어버어버 거리더니 손가락으로 버스 뒷 창문을 가르켰습니다
진짜 파랗게 질린다는게 무슨 표정인지 그때 알 수 있더군요
그렇게 버스 뒤쪽을 손가락질 하던 친구놈이
인파 한가운데로 쓰러져서 바닥에 퍼져버렸습니다
진짜 깜짝 놀랬죠
잘 떠들던 놈이 갑자기 어버어버 거리면서 손가락 질 몇 번 하더니 쓰러져 버렸으니;;
고딩들만 잔뜩 탄 버스라 하도 시끄러웠던 탓에 큰 소동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주변 애들은 다 쳐다보고 넘어진 친구 일으켜 세워주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재정신 못차리던 친구가 한 3 정거장 쯤 더 지나서야
간신히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더군요
안그래도 꺼림찍한 일이 있었던 저는 도대체 왜 그러냐는 질문부터 먼저했죠
질문 받은 친구놈이 잠깐 제 얼굴을 쳐다보더니
버스 뒤 한번보고, 주변 한번 둘러보고
그리고 다시 저를 쳐다보더니 말하더군요
'야... 니가 말한 여자... 버스 뒤에서 쫓아오고 있더라'
이게 제 별볼 일 없는 이야기의 끝입니다
살면서 해본 기묘한 체험 2가지 중 먼저 경험한 일이었죠
이 이야기는 부모님한테도 한 적 없고
친구들한테도 그닥 이야기 한 적 없는 일이네요
사실 믿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당장 비슷한 이야기를 누가 한다고 해도 저도 믿지 못할테니까요
그래도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 씨꺼먼 얼굴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시꺼먼 얼굴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서늘함
그것만큼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댓글 : 9 개
- 스타드림
- 2014/08/13 PM 07:30
조금 읽어보고 식사 마치고 이따가 다 읽어보려는데
저도 살면서 기이하고 신기하고 신비한 경험&체험을 했는데
세계*세상은 보는 게 그리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겪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
저도 살면서 기이하고 신기하고 신비한 경험&체험을 했는데
세계*세상은 보는 게 그리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겪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
- Ecarus
- 2014/08/13 PM 07:41
위에 적은 일과
한가지 일을 더 당하고 나서도
저는 반신반의 하고 있습니다
없다고 단정 지을 수 는 없겠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 가 없으니까요 ㅋㅋ
한가지 일을 더 당하고 나서도
저는 반신반의 하고 있습니다
없다고 단정 지을 수 는 없겠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 가 없으니까요 ㅋㅋ
- 엘사아렌델
- 2014/08/13 PM 07:32
뭐 기가 약해서 가위에 눌리는건지
식스센스가 강해서 가위에 눌리는건지는... 죽어야 알긴하겠지요.
식스센스가 강해서 가위에 눌리는건지는... 죽어야 알긴하겠지요.
- Ecarus
- 2014/08/13 PM 07:42
가위에 눌린다는게
도대체 무슨 느낌인지 겪어보지 않은 저로써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ㅋ
엄청 피곤할 때 몸이 무게가 없는 것 마냥 붕 뜨는 느낌은 한번 겪어봤지만
도대체 무슨 느낌인지 겪어보지 않은 저로써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ㅋ
엄청 피곤할 때 몸이 무게가 없는 것 마냥 붕 뜨는 느낌은 한번 겪어봤지만
- 중장기병
- 2014/08/13 PM 07:39
어휴 토요미스테리 극장에 나올법한 일을 경험하셨군요 ㅎㄷㄷ
- Ecarus
- 2014/08/13 PM 07:43
당시에는 정말 무서웠지요
아직도 그 학교는 변하지 않고 무덤가가 둘러쌓고 있는 그대로 입니다
전등이나 몇개 더 설치 되었을려나 모르겠네요 ㅋㅋ
아직도 그 학교는 변하지 않고 무덤가가 둘러쌓고 있는 그대로 입니다
전등이나 몇개 더 설치 되었을려나 모르겠네요 ㅋㅋ
- 스타드림
- 2014/08/13 PM 08:56
식사 마치고 방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는데 재미있고 흥미로웠습니다~!
- 입산안나
- 2014/08/14 PM 10:18
헐 전 겁이 많아서 실제로 보면...ㄷㄷ
- Ecarus
- 2014/08/15 PM 12:49
전 아직도 반신반의 하고 있습니다 ㅋㅋ
군대에서도 한번 저런 경험이 있었는데
그래도 쉽사리 믿기지는 않더군요
군대에서도 한번 저런 경험이 있었는데
그래도 쉽사리 믿기지는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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