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2017.03.14 AM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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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태 살면서 젤 쇼킹한 일이 뭐였냐' 

 

하면, 좋은일, 나쁜일을 가리지 않고 전 이 일을 꼽습니다.

 


 

 

때는 2000년, 바야흐로 대 PC방 시대에 맞물려 세이클X이 유행하여 벙개가 

 

난무하던 시절.

 

 

겜방 야간 알바를 뛰던 저는 그날도 어김없이 홀로 외로운(사실은 발X난...) 늑대에 빙의하여

 

여자! 여자! 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한 처자와 대화가 시작되고 그 처자와 말이 잘 맞아 대화를 길게 하다가

 

본래의 목적인 벙개를 성공하게 되어

 

다음날 오전 일과가 끝난 후 일하던 PC방 근처의 번화가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시간이 되어 만났던 여자는, 외모는 평범한데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조금 묘하네 라고 생각하던 제가, 우선 어디 가서 이야기좀 할까 하고 뻔한 드립을 날리자

 

거침없이 '햄버거로 가장 유명한 패스트푸트지만 햄버거가 제일 맛이 없는 그 유명한 가게' 로 

 

제 손을 잡아 이끌었고, 저는 손이 잡힌 채 '오호? 이건...?' 하는 기대와 함께 끌려가

 

'오늘은 왠지 느낌 좋은데..??' 라는 근자감에 휩싸여 먹고 싶은거 뭐든 드세요 라는 멘트를 날렸고

 

그 처자는 롯데X아 에서 사먹는 사람을 보기 힘든 치킨 세트를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치킨을 먹으며 그 처자는 저에게 절망과 탄식을 동시에 안겨주는데....

 

처자의 이야긴 이랬습니다.

 

'어제 가출을 하려고 집을 나왔다. 돈이 없어서 밥을 못먹어서 배가 고파서 뭔가 얻어먹고 싶어서 

 

벙개를 ㅇㅋ 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자기랑 같이 요 앞 역에 가서 기차표 한장만 사줄 수 있느냐. 나중에 그 돈은 꼭 갚겠다. 부탁이다.'

 

라고 하며 울면서 치킨을 먹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어제 밤의 늑대는 제 안에서 사라지고 여동생도 없는 저는 왠지 모를 동정심이 발동하여 기차표도 사주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때 사정도 묻지 않고 귀가 권유도 안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치킨을 조금 남기고 자리를 떠 서로 아무말 없이 역으로 가서  처자가 말한 서울행 기차표를 제가 줄서서 끊고 

 

대합실의 처자에게 건네주는 순간

 

왠 중년의 부부가 달려와서 아줌마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남자는 제 멱살을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 쳤습니다.

 

 

처자의 부모였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한 채로 다시 멱살을 잡혔고 아저씨는 저에게 "너 이 개xx. 미성년자 데리고 어딜갈라그랬어! 경찰서 가자 개xx 야! "

 

라는 욕설과 함께 저를 광장으로 끌고 나왔고, 처자는 머리채를 잡혀 끌려나왔습니다.

 

약 30초 정도 얼이 빠져 질질 끌려 나오다 정신을 다잡고 멱살을 뿌리치며

 

"이런 뿅뿅. 뭔데 사람을 잡고 XX이야! " 하고 아저씨와 말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처자가 울며불며 중재를 들어왔고 광장 한복판에서 서로 씩씩대며 알게된 진실은 이랬습니다.

 

 

이 처자는 고등학생이고, 가출 경험이 있었으며, 매번 부모에게 잡혀서 끌려갔는데, 이번 가출 때 부모가 친구를 통해 들은 첩보는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했다카더라 라는 거였으며, 시외버스 터미널에 다른 가족이, 역에 부모가 와서 찾고 있었던 겁니다.

 

남자라고 하니 혹시 원조교제를 해서 다른 곳으로 가진 않을 까 해서요.

 

(2000년 즈음 부터 한국도 원조교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자리에서 해명이 되고 저는 아저씨에게 사과와 기차표 값을 받았고, 울고있는 아주머니에게도 사과를 받았습니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 바닥에 앉아있는 처자에겐 사과를 받지는 못했지요.

 

 

그리고 어디선가 온 흰색 승용차가 그 세 가족을 태워서 돌아간 후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제 눈에 들어온건

 

역 광장 ( XX광역시+주말 ) 한가운데에서 대략 50명은 넘어보이는 사람들에게 빙 둘러싸인 제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향해 들리지 않는 수많은 입놀림을 보며

 

'난 죄가 없는 사람이다' 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 일부러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제 길을 뚫어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맨뒷자리 창가에 앉아 있는데 왜인지 그때 억울함에 눈물이 왈칵 나서 

 

울진 못하고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울음을 참으며 집에 와서 인생 처음으로 혼술이란걸 해봤습니다.

 

 

 

 

쓰고나니 너무 기네요 ㄷㄷ

 

일하다  짬이 나서 갑자기 썰을 풀어봤습니다.

 

지금은 그 처자 뭐하고 사는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ㅎ

 

 

 

댓글 : 10 개
스펙터클하네요 ㄷㄷㄷ
헐;;; 충격적이군요...
ㅎㄷㄷ 정말
원조교제가 되어버릴뻔한 번개....
진짜 평생 못 잊을 일을 겪으셨군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 하네요..
절대 잊지 못할 경험 인정합니다.
ㅎㅎㅎ 아이씨 웃기잖아요. ㅎㄷㄷ;; 허허허
거의 시나리오로 써도 될만한 경험이네요 ㄷㄷ
  • Ehdna
  • 2017/03/14 PM 12:41
갑자기 온 흰색차는 무엇이고, 계속 가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런 여지가 또다른 공상을 하게 만드네요
  • DKNYi
  • 2017/03/14 PM 12:49
오 잼나는구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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