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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는 어떻게 글쓰기가 되는가? - 그녀생각2017.02.21 AM 05:45
독서는 어떻게 글쓰기가 되는가?
"독서가들에게는 백만 권의 자서전이 있음에 틀림없어."
- 스탠 퍼스키 -
메모와 흔적
아우구스티누스 : 이런 책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프란체스코 : 책은 읽을 때는 매우 유익하지만, 손을 떠나자마자 그 책에 대해 느꼈던 모든 감정도 눈 녹듯 사라지고 마는 걸요.
아우구스티누스 : 만약 자네가 적절한 여백에 약간의 메모를 간결하게 적어 놓으면, 아마 독서의 열매를 쉽게 즐길 수 있을 걸세.
프란체스코 : 어떤 종류의 메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우구스티누스 : 자네에게 유익할 것 같은 어떤 문장이든 접하게 되면 분명히 표시해 두게. 그렇게 하면 그 표시는 자네의 기억력에서 석회의 역할을 맡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멀리 달아나고 말걸세.
프란체스코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좋은 책을 읽어도 내용뿐만 아니라 읽었을 당시의 감정까지 잊게 되는 고충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지만, 먼저 그 전에 내가 프란체 스코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 주고 싶다.
기억연구의 대가인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에 따르면, 학습을 하고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되며 한 시간 뒤에는 50%, 하루 뒤에는 70%, 한 달 뒤에는 80%를 망각하게 된다. 즉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학습을 하더라도 하루가 지나면 열에 일곱은 사라진다. 인간은 원래 망각의 동물이다.
스크립스연구소(Scripps Research Institute)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기억을 하려는 것은 물론이고 망각을 하는 데에도 '능동적'으로 행한다. 세상사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안 좋은 기억들이 뇌리에 생생하게 매일 펼쳐진다면 우리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다. 즉 생존을 위해서 망각은 필수적인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심지어 "읽은 것을 모두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은 먹은 것을 모두 몸에 지니고 다니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귀한 시간을 내서 좋은 책을 읽었는데 남는 게 없다는 것은 충분히 슬픈 일이다. 이러한 망각에서 맞서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알려 주는 비법이 바로 필독이다.
필독에 대한 논란
필독은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별표를 그리고, 메모를 하며, 궁극적으로 글쓰기까지 이어지는 독서법을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필독을 제대로 하면 최소한 망각의 강에 휩쓸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 조언하고 있다. 그런데 필독은 독자에게 그 정도의 혜택만 주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그에 대해 알아보자.
그런데 필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메모와 글쓰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이 별로 없지만, 책에 뭔가 남기는 것에 대해서는 이름 있는 독서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많이 나뉜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는 전공서적 이외의 책에는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에 다시 읽게 될 때, 먼저 적어 놓은 글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데 방해가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도 책에 줄을 긋고 여기저기 쓰는 것을 싫어하여 쓸 것이 있을 때에는 메모지에 써서 살짝 끼워 놓는다. 그 이유는 그의 서재는 학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열린 도서관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위해서는 늘 책을 새것처럼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김중혁의 『좀비들』에는 "밑줄 치고 싶었던 문장과 단어들이 참 많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것인양 사용할 것 같아서 참았다"라는 내용도 있다.
라틴어 격언에 "취향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책에 뭔가 남기는 독서법은 다른 독서법에 비해 개인차가 매우 심하며, 어느 것이 더 낫다는 알려진 연구도 없다(최소한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다). 즉 취향 문제이니 독자들도 자신의 선호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마쓰오카 세이고의 『다독술이 답이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가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요로 다케시(도쿄 대학 명예교수)는 2B 연필로 표시를 하는데, 전차 안에서나 여행 도중에 2B 연필이 없으면 그 책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웃음) 즉 2B 연필이 손에 쥐어져 있지 않으면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B 연필이 '요로 독서술'의 커서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답입니다."
이 문구 옆에는 악필로 "나랑일치!!"라는 메모가 되어 있다. 내 메모다. 나는 조국, 최재천, 김중혁에 공감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 요로 다케시의 편에 서 있다. 특히 요로 다케시는 내가 느낌표를 두 개씩이나 표시해 둘 정도로 나와 닮았다.
나는 빨간 모나미 볼펜으로 책에 밑줄도 긋고 별도 그리고 메모도 하는데, 그 펜이 없으면 독서를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나랑 일치!!" 메모 옆에는 "화장실에 휴지를 안 가지고 간 느낌"이라는 글도 적어 놓았다. 바로 그런 느낌이다.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밑줄을 긋지 못하거나, 뭔가 떠오르는데 메모를 남기지 않으면, 귀중한 보물을 놓쳐 버리는 것 같다. 물론 불가피할 때는 책을 접거나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적어 놓는다. 하지만 내 손으로 빨간 펜을 들고 책 속에 뭔가 표시를 하는 것과 비교하면 뭔가 느낌이 살지 않는다.
내가 책을 지저분하게 읽는 이유
1. 발췌독을 위해서
내가 책을 지저분하게 읽는 첫 번째 이유는 발췌독을 하기 위해서이다. 발췌독이란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얻고자 하는 정보나 내용을 찾아 그에 관한 것들만 따로 읽는 것을 말한다. 글을 많이 읽으면 발췌독 능력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 겠다.
실제로 발췌독을 먼저 한 후 그 책을 다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제대로 된 발췌독이 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책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표시해 놓으면, 후에 그 책을 발췌독을 하게 될 때 엄청난 효율을 얻을 수 있다.
가장 극명한 예가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이다. 나는 독서법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책을 재독했지만, 또 많은 책을 발췌독을 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1,400쪽이 넘는 책인데, 이 책을 몽땅 다시 읽었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밑줄 긋고 메모한 내용만을 발췌독으로 읽었고, 곧 집필을 위해 참고해야 할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목적이 있어 빠른 시간 안에 발췌독을 해야 한다면, 필독만큼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2. 그 책을 읽었던 당시의 '내 자신'을 더 구체적으로 만나기 위해
나는 재독은 '자아의 시간여행'이라고 했지만, 사막을 여행하는 것과 아마존을 여행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필독을 해 놓으면 다양한 자기 모습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밑줄 그어 놓은 곳을 보며 '아, 내가 그때 이 부분을 괜찮게 봤나 보네'라고 생각하고, 별표가 되어 있는 부분을 보며 '임펙트가 있었나 보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랑 일치!!" 라는 메모의 느낌표 두 개를 보면서 '흥분했구먼. 좋았나 보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탠 퍼스키가 "독서가들에게는 백만 권의 자서전이 있음에 틀림없어"라고 했을 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 책에 연계되어 있는 것만으로 자서전이라고 했던 것이 아니다. 책에 내 흔적을 남기는 순간, 그 책은 내 이야기가 들어 있는 나만의 책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읽기의 불가능'은 한층 더 심화된다. 필독을 할 때에는 책을 읽는 독서가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도 변하기 때문이다. 독자만이 책에게 항상 낯선 타인인 것이 아니고, 책도 독자에게 항상 낯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며 나는 많은 책을 재독했는데, 책마다 내가 남긴 흔적들이 있었기에 더욱 재미었다. 재독 편에서 언급한 '함디 박사' 이야기의 옆에는 '고결(나의 딸 이름)'이라는 내 메모가 있었다. 그 메모로 나는 당시의 내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재독'이라는 메모를 덧붙였다. 언젠가 독서법 책을 쓰게 된다면, '재독' 편에 활용할 콘텐츠로 적격이라는 이야기이다. 필독을 통해 함디 박사는 이 책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한 것이다.
독서가에서 필사가로
고대 수메르에서는 선생님이 직접 쓴 짧은 문장이나 격언 등을 적은 진흙서판을 주었는데, 뒷면에는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서판을 받은 학생들은 글을 읽고, 비어 있는 뒷면에 선생님이 적어 준 내용을 그대로 베껴 적는다. 학생들은 그 순간 독서가에서 그 자신이 읽는 것을 옮겨 쓰는 필사자로 변한다. 책에 밑줄을 그었다면, 이제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내용들을 따로 적어 둘 필요가 있다.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저는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줄을 치고,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따로 옮겨 놓는 작업을 합니다. 이 강의의 목표는 이런 방식의 책 읽기를 통해 제가 느낀 '울림'을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참 귀찮은 방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필사를 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책에 밑줄 그은 내용을 읽는 것보다 발췌독이 극대화된다.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다면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다시 볼 수도 있어서 매우 효율적이다. 둘째, 글쓰기의 기초를 제공한다. 옮겨 적는 글들은 좋은 문장일 가능성이 크므로, 문장구조와 표현 등을 필사를 통해 체화할 수 있다. 많은 글쓰기 책에서 교과서, 칼럼 등을 필사하라고 조언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마쓰오카 세이고도 박웅현과 비슷하게 정리를 한다. 인용노트를 만들어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노트에 옮겨 적는다. 하지만 세이고는 거기에 한 술 더 떠 연대기 노트까지 적는다. 역사적 사건이 나오면 그것을 연도별로 적어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치, 미술, 음악, 과학의 역사들이 시간이라는 궤로 엮어지게 된다.
나는 성실성이 좀 부족해 박웅현이나 마쓰오카 세이고처럼은 못 한다. 다만 책을 읽을 때마다 명언들은 계속해서 모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약 1,000개의 명언을 모았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연결점이 있다. 박웅현의 노트는 강의가 되었고, 결국 『책은 도끼다』라는 책으로 이어졌다. 세이고의 연대기 노트는 NTT가 전화 개통 100주년을 기념해 의뢰한 출판물 『정보의 역사』가 되었다.
나는 책을 쓰면서 많은 명문장을 알아 놓는 것이 글쓰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절감하게 되었고, 이후 명언을 열심히 옮겨 적었다. 그러다가 내 세 번째 책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가 나왔다. 이 책의 원 제목은 『명언, 삶에 답하다』였다. 그렇다. 필사가로 변한 독서가는 작가, 글쟁이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필사가에서 작가로
솟대 예술가 이안수는 다음과 같은 멋진 말을 남겼다.
"글쓰기야말로 완전한 독서행위의 완성인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독서행위의 완성은 '책을 덮는(엄독)' 것이지만, 글쓰기가 독서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이보다 더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한 문구는 찾기 힘들다.
고대 그리스의 설교자, 연설가, 정치가, 학자들은 평소에 다양한 예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필요할 때마다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자료집'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 기원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토피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토피카(topica)'라고 한다. 영어로는 '토픽(topic)'이다. 박웅현, 마쓰오카 세이고, 나의 노트 정리와 비슷하다.
그런데 자료들이 모이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루트번스타인은 "이론은 자료들의 패턴이다"라고 했다. 필독을 통해 정리된 자료들을 살펴보다 보면, 독자의 눈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뭔가가 보이기 시작할 때 슬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의견을 내고 비평을 하며 감상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드디어 독서가가 작가로 변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책도 많이 읽고 자료도 성실히 정리하고 또 글쓰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글을 쓰는데에 두려움이 있는 분들이 꽤 있다. '독아'편을 다시 상기하자. 우리 뇌는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독서하는 뇌도, 글 쓰는 뇌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에만 그렇게 바뀐다.
글쓰기를 원래 잘하는 극소수의 타고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99.9%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야만 잘 쓰게 된다. 다시 말해 글을 잘 못쓰는 이유는 글을 써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도 부족하지만 부끄러웠던 과거를 밟아 왔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왔다는 사실을 안다. 전설적인 타자 베이브 루스도 "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1루, 2루, 3루, 베이스를 차례로 밟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글을 쓰는 것이라면 어떤 글이든 상관없지만, 처음에는 리영희 선생을 따라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리영희 선생이 오쓰카 히사오의 『사회과학의 방법: 막스 베버와 마르크스』의 말미에 기록한 내용이 다.
"1971. 1. 15. 합동통신사 근무 중 밤 10시 15분. 고부간 불화에 대해서 나의 의사 표시를 하기 위해, 한 일주일간 회사 숙직실에서 기거하면서 이 한권을 끝내고, 내일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밤."
책과 관련된 간단한 일기다. 꼭 책 내용이 있는 글을 적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어도 된다. 그냥 자연스럽게 책과 관련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적어 보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일기를 계속 쓰다 보면, 글을 쓰는 횟수만큼이나 글의 내용이 점점 풍성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다음은 리영희 선생이 스에카와 히로시의 『법과 자유』의 권말에 적은 내용이다.
"1968. 3. 5. 조선일보 4층 구석에서. 이 책의 '권리와 탄압'이라는 장을 읽고 있는데, '공무원 노동자의 쟁의권 일부 제한안'을 군사정부가 구상 중이라는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노동자(근로자)가 자진해서 쟁의권을 포기하기 바란다"는 권력자의 말! 노동자가 자진해서 쟁의권을 포기하라, 좋지!"
책 내용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다. 단 한 문장이어도 좋다. 그 한 문장 한 문장이 쌓여서 후에 훌륭한 글로 승화될 것이다.
다음은 리영희 선생이 박정희 군부정권의 사상탄압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읽었던 J. B. 베리의 『사상의 자유의 역사』를 읽고 책 말미에 적은 내용이다.
"초자연적 신학이론과 교회의 권위에 대항해서 인간과 인간 이성을 해방하기 위한 싸움이 보여 주는 이 처절한 투쟁사는 바로 오늘날 남한 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의 권위 앞에서 우리가 싸워야 할 자유사상의 투쟁의 현실과 미래를 말해 주는 것 같다. 한때의 기독교가 차지했던 사상탄압과 반진보적 역할을 지금 이 나라의 착도된 정치 이데올로기가 대행하고 있다. 이 정치 이데올로기가 그 권위를 지키고 국민에게 강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과 수법의 포악성도 중세의 기독교 권력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러면서도 인류의 사상사와 문명사는 반이성 적 억압세력의 패배의 역사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 인식 없이는 자유사상을 위한 투사는 희망을 잃은 지 오래일 것이다. 1968.5.1.밤에.“
이렇게 짧은 서평을 남기는 것이다. 책 내용을 종합하고, 책에 대한 비평을 함께 실으면 된다. 처음 시작하기에는 조금 버겁더라도 밑줄 친 내용을 따로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단 한 문장이라도 계속 써 간다면, 어느새 간단한 서평을 쓸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평을 쓰는 단계에 돌입하면, 이제 좀 더 용기를 내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자신의 서평을 공개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공개하면 신경 쓰이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혼자 고민하는 것도 피곤하지만, 실제로 글에 대한 반론이나 비난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공개하면 다양한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 자신의 약점과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가 있다. 나 또한 공개된 글쓰기를 통해서 큰 도움을 얻었다.
글을 잘 쓰는 방법
그럼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유시민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에는 재능이 매우 중요한 장르와 덜 중요한 장르가 있다. 나는 글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 문학적인(또는 예술적인) 글과 논리적인(또는 공학적인) 글이다. 시, 소설, 희곡은 문학 글이다. 에세이, 평론, 보고서, 칼럼, 판결문, 안내문, 사용설명서, 보도자료, 논문은 논리 글이다. 인물 전기와 르포르타주는 둘 사이에 있다. (중략) 문학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러나 논리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이야기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글, 살면서 느끼는 것을 담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에게는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학 글쓰기에 도전을 해 보지 않았기에 노력해도 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외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유시민 작가가 했다.
아래에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1. 다독
어쩔 수 없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독서이다.
2. '어떻게'보다 '무엇'이 먼저
어떤 주제로 글을 쓸 것인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만 고민하다가는 글을 절대 잘 쓸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제시한 방법론을 완전히 숙달한다고 하더라도 '글감'을 찾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자신의 직업이나 전공 혹은 관심이 가는 분야에서 주제를 찾으면 의외로 쉽게 글감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쉬운 방법은 서평이다. 글감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읽는 책에 대해서 쓰면 된다.
3. 자료 모으기
나는 아이디어와 자료만 제대로 모이면 글쓰기의 80%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경우 300쪽 전후로 마감이 될 것 같은데,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해서 초안을 탈고할 때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자료 수집은 3개월 이상이 걸렸다. 물론 수집한 자료의 2/3는 이미 그 전에 독서한 것들이었기에 그나마 3개월에 자료 수집을 마감 할 수 있었다.
다음은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자료 모으기에 대한 서술이다. 탁월하며 전적으로 동감한다.
"글은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좋은 자료를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자료가 충분하면 그 안에 반드시 길이 있다. 자료를 찾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때로는 애초에 의도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쪽으로 글이 써지기도 한다. 자료와 생각의 상호작용이 낳는 결과다.“
4. 짧게 쓰기
퓰리처는 "무엇이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짧게'는 글이라기보다 문장을 말한다. 글쓰기 대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나도 의도적으로 짧게 쓰려고 노력한다.
5. 스토리 활용
말콤 글래드웰, 마이클 루이스, 히스 형제, 다니엘 핑크 등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미국의 논픽션 작가들의 특징은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론을 스토리에 담아내는 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E. B. 화이트는 "인류(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인간(man)에 대해 쓰라"라고 했다. 인류에 대해 쓰려면 이론과 통계가 필요하지만, 한 인간에 대해 쓰려면 스토리가 필요하다. 물론 스토리 중 가장효과가 큰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6. 지식의 저주
마셜 맥루언은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라 고말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알면 그것을 알기 전의 감을 잃게 된다. 바로 지식의 저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글을 읽는 대상에 대한 제대로 된 인지가 없다면, 글은 저주에 빠질 수 있다. 읽는 이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면 그 글의 효용은 떨어진다. 독자를 제대로 인지하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7.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때
알랭 드 보통은 "가능하면 글은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영감이 오길 기다린다면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은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글을 써야하는데 잘 안 써질 때 사용하는 최고의 비법이 하나있는데, '그냥' 쓰는 것이다.
8. 글의 전개가 막힐 때
나는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첫 번째는 글쓰기 시작 전에 글쓰기 주제와 관련된 명언을 따로 모아 두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그 명언을 한 번 쭉 읽고 쓴다. 그러다 막히면 그 명언 목록을 다시 읽는다. 그러면 막혔던 물꼬가 터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막힌 부분과 가장 밀접한 키워드로 검색을 하는 것 이다. 그리고 뉴스 제목과 리드 부분을 쭉 훑어본다. 그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뉴스가 나올 때가 많다. 그 뉴스에 나온 내용으로 글을 시작한다.
9. 퇴고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걸레다"라고 말했다. 특히 내 초고는 더하다. 그래서 초고는 걸레로 나올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글을 맘편히 쓴 다. 그리고 퇴고에 온 힘을 다한다. 프루스트는 "언어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언어를 공격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단어와 표현 하나 하나, 문장의 구조, 논리 전개, 전반적 얼개를 전쟁 치르듯 스토킹 한다. 걸레가 비단이 될 때까지.
- 아틴
- 2017/02/21 AM 11:19
- 최후의수
- 2017/02/21 PM 12:33
메모 없이 읽었을 때는 읽고 이해했다는 느낌은 그때 들지만 정작 책을 덮고 나서는 무슨 내용이었는지 혼자서 되물어보면 기억이 안 났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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