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담] 정치의 본질, 감정2019.08.25 PM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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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본질, 감정

 

 

 

이번 주제는 사실 쓰려던 것이 아닙니다. 다른 걸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홍콩에서 학생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수업거부 의지를 표명한 것을 보고 뭔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 정치에 관해 좀 더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정치서적을 몇 권 읽고 있어요. 막스 베버가 정치를 가리켜 이렇게 말하더군요. 정치는 투쟁이다. 싸워서 원하는 걸 쟁취하는 것이 정치라는 거죠. 그런데 그 투쟁을 부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쟁해야 한다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 투쟁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정치의 본질은 감정에 있다고 봅니다.

 

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주로 경제인들입니다. 경제는 주로 이성적이에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논리적이죠. 때론 비정하기까지 합니다. 보통 사람의 감정을 배제하고 자본의 논리로 사물을 바라보니까요. 경제인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도 이성적으로 접근합니다. 구체적인 경제성장을 공약으로 내세우거나, 경제지식을 통해 설득해보려고 한다거나,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에게만 지지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래서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경제이론이나 정책보다는 감정적으로 지지를 하기 때문에, 얼굴을 보고 뽑는다거나, 진영논리에 입각한 맹목적 지지가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때때론 흡사 종교와도 비슷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독재자들이 종교와 비슷해지는 경향을 띠는 까닭도 정치와 종교가 감정이란 공통분모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리켜 어떤 사람들은 우매한 대중들이라며 비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건 정치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애초에 정치는 대다수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아닙니다. 이익을 보는 것은 소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간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을 결집하게 만드는 데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관계를 넘는 어떤 결집요소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감정입니다. 애정, 증오, 공포, 분노 등의 감정으로 어떤 일정한 공통점을 통해 결집하여 투쟁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봅니다. 애초에 정치가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우매하다고 비아냥 하는 것은 정치를 할 줄 모른다는 고백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면 인간을 모른다거나.

 

 

 

가해자, 피해자, 이용자

 

자본가와 노동자의 혁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의 지식은 부족하므로 나중에 좀 더 정리하겠습니다.) 현대정치는 시작부터 감정적이었습니다. 왕가에 대한 분노. 그것이 자본가의 세상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감정입니다. 분노가 혁명의 원동력이 되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최초 정치는 세가지로 구분됩니다. 가해자(왕가)와 피해자(노동자, 자본가)와 이용자(자본가)

 

왕가에 대한 분노로 결집했던 노동자는 자본가의 횡포에 따라 괴로운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아이를 장시간 노동하게 해도 별 문제가 없던 시대. 그 시대가 바로 자본가의 세상이었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식민지배도 허용되어 제국주의를 발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건 결국 왕가의 피해자를 자본가가 이용했던 겁니다.

 

노동자에게 끔찍한 세상이 지속되자 공산주의라는 노동자를 위한 사상이 등장합니다. 자본가를 배제하며 평등한 세상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이번에도 감정은 사용됩니다. 자본가에 대한 분노. 그것이 공산주의국가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감정입니다. 분노가 혁명의 원동력이 되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자본가에 대한 분노로 결집했던 노동자는 공산주의자의 횡포에 따라 괴로운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탄압해도 별 문제가 없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공산주의자의 세상이었습니다. 평등이란 미명아래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독재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건 결국 자본가의 피해자를 공산주의자가 이용했던 겁니다.

 

 

세계를 양분하고 있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이렇게 분노라는 감정으로 시작되어 퍼져나갔던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점차 동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분노했던 피해자들이 역사 속에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이 일부 시장경제를 개방한 이상, 사상으로써의 경쟁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의 공산주의는 이미 독재의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정치가 좌파와 우파로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구시대의 정치세력이 잠들기 시작하자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것이 독재의 피해자들입니다. 독재의 피해자들이 분노를 통해 정치세력화가 되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군사독재, 중국의 공산독재 등이 그렇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아닌, 독재와 반독재의 대립이 될 것입니다. 이후엔 성별대립과 종교와 무교의 대립이 있겠습니다. 공산주의가 유물론을 채택하고 있어 오해할 수 있는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에서 나타날 대립을 뜻합니다. 뭐 애초에 공산주의는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요. 지금의 대립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아닌, 독재와 반독재의 대립이니까요.

 

 

 

피해자들

 

간단하게 현대정치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정치세력은 전부 감정을 근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로므로 앞으로도 나타날 정치세력도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감정이 나타날 수 있는 집단. 그 집단이 앞으로 탄생할 정치세력과 이념이 되겠습니다.

 

가령 지금 유럽에서는 이민자들과의 문화충돌로 인한 갈등으로 이들을 배격하는 우파가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는 이민자들의 피해자가 정치세력화가 된 것입니다. 또한 유럽에서는 환경중심 정당이 지지를 받기 시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는 환경파괴의 피해자가 정치세력화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피해자가 등장하면, 그 피해를 통한 감정분출로 형성된 정치세력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구시대의 정치와 결별할 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좌파와 우파는 명목상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뭐 이미, 중도라거나 애매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도 많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어떤 정치인이 세상을 좋게 만든다는 숭고한 사상이 있을지 몰라도,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감정에 의해 지지하는 겁니다. 일반 국민들은 지지를 통해 자신이 실질적인 이익을 보지 않더라도 감정이 그것을 옳다고 여기게 만드니까 지지를 하는 겁니다. 부의 분배 방식, 다양한 정책 등,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도대체. 노동자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노동정당과, 자본가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자본정당이란 아이러니는, 애초에 지지이유가 이성이 아닌 감성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특별합니다. 한국은 좌파와 우파가 일반적인 사전적 정의와 다르지요.

 

그 까닭은, 한국의 정치세력은, 지배층에 의한 피해자가 아닌, 침략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피해자가 좌파를 담당하고 공산주의의 피해자가 우파를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공산독재자가 민족이란 이름으로 좌파를 이용했고, 군사독재자가 북풍이란 공포로 우파를 이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가 민족주의를, 우파가 사대주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건 이미 구색 맞추기에 불과합니다.

 

한국 또한 각 피해자들이 역사 속에 잠들 시기가 오기 때문에, 가장 최근의 피해자인 군사독재의 피해자들의 정치세력이 가장 강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10년 전, 갖은 비난 속에 정권이 바뀌었던 때와 지지율이 다른 겁니다. 공산주의의 피해자가 무엇을 해도 지지했던 것처럼, 군사독재의 피해자들은 무엇을 해도 지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피해자이니까요.

 

따라서 군사독재의 피해자들로 형성된 정치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정치세력화를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교의 정치세력화입니다. 이들 또한 종교의 피해자들로서 감정을 통해 결집할 수 있는 세력입니다. 관습과 오해에서 벗어난다면 가장 적절한 정치세력이 될 겁니다. 지금 종교와 대립하는 유명인은 아마 추후 정치인으로 데뷔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가치관

 

이렇게 피해자들의 감정을 통해 정치세력화가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피해자임에도 정치세력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바로 그러합니다. 이들이 독재에 항거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순종이 미덕인 사회기 때문입니다. 간혹 이들이 투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바로 서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가치관에 있는 겁니다. 독재자를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올바른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정치세력화가 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독재의 피해자로서 정치세력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가치관에서 벗어나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올바르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남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남성중심사회의 피해자인 여성이 여성주의를 통해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과정 속에서 역차별을 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남성이 피해를 받고 있음에도, 이들이 정치세력화가 되지 않는 까닭은, 그러한 것에 항의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해 남성의 체면, 남성의 미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것은 주로 남성중심사회 속에 살던 이들이 가지고 있으므로, 이후 성장한 남성들이 사회 주력이 되기 시작하면, 남성의 정치세력화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애정과 증오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감정적 지지는 있습니다. 가령 이런 거죠.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는 주로 청년이 반대하고 노인이 찬성했다고 하더군요. 과거 제국시대에 대한 향수로 인한 감정적인 태도가 브렉시트 찬성을 불렀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영국 정치인이 미래의 권력을 쥐고 싶다면, 브렉시트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에 대한 피해를 입은 청년들의 정치세력화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시대의 변화

 

정치인은 국민의 대표이며 대변자며 대행자지, 과거 정치이론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지배층에 의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배층에 의한 피해자들로 만들어진 정치이념을 가져다가 한국 정치에 사용한다는 것은, 국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이론을 보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관료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국가 전력이나 비전은 관료에게 맡기고, 정치인은 국민을 보길 바랍니다. 국민의 감정을 보길 바랍니다. 국민이 원하는 걸 하길 바랍니다. 국민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국민의 대행하길 바랍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앞으로는 지배층에 의한 피해자들로 발생한 좌파와 우파의 구분 또한 그 의미를 잃어갈 것입니다. 그 피해자들이 역사 속에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침략에 의한 피해자들로 발생한 정치세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시대의 변화겠지요.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변화는 필수불가결입니다. 정치인들은 그 변화에 대비해야 합니다.

 

솔직히 저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확신하고 있는 것은 있어요. 정치는 감정이라는 것. 정당의 목적은 정권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 국민의 감정적 지지를 받을 정당이 정권을 잡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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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쟁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공정경쟁이 가능하길 바랍니다. 저는 게임의 경쟁체계를 참고했으면 좋겠어요. 게임에서는 자발적으로 공정하게 경쟁에 참여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다른 부분에서도 공정하게 자발적으로 경쟁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굉장한 성장을 할거라 확신합니다.

 

일반 국민들이 분노해야 해야 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부당판결입니다. 예전부터 일부 사건에만 몰두하는 현상을 보고 객관성이 필요하다고 느낀 바가 있습니다. 감정적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부분에서 감정적이라는 것이지요.

 

외교가 이슈가 되고 있죠. 대외적인 관계도 중요하지만 대내적인 관계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을 설득할 수단과 더불어 불안감을 가진 국민들을 설득할 수단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홍콩의 민주주의가 승리하길 바랍니다. 

 

다음 글은 글쎄요, 가능하면 매일 써보도록 해보겠습니다. 변화의 시기인가요.

 

미국 정치

 

소수의 피해자(흑인 여성 이민 등)의 정치세력화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고, 그에 역차별 받은 또 다른 피해자들의 정치세력화로 백인 대통령이 탄생했죠. 감정이 지지의 근원입니다.

 

그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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