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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한국정치, 사상의 노화2019.09.16 AM 01:38
한국정치, 사상의 노화
세상의 불합리는 어쩌면 노화에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노화가 진행되면 불합리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서의 노화는 실제 나이의 많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의 노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실제 나이가 많을수록 사상도 같이 노화되기
때문에 그런 편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상은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하단 어리더라도 늙어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어린이가 옛날부터 이어진 특정 사상을 스스로의
생각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의 사상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이상이 되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종교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보통, 종교 위인의 언행을 그대로 수용하고 믿는 것이 선이고 의심하는 것이 악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종교를
믿는 어린이는 사상이 늙어버리는 겁니다.
물론 어린이가 사상이 어릴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교육만이 어린이가 수집하는 정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 경험하면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스스로의 생각을
갖춰나가게 되면서 새로운 사상이 탄생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주입식교육이나 세뇌를 받게 되면 그 어린이는 새로운 사상을 가질 수 없게 되어 늙어버린 상태로 살아가게 됩니다. 반면, 어떤 어른이 옛날부터 이어진 특정 사상을 토대로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른의 사상은 많아 봐야 백 년 안팎일
겁니다. 일반적인 인간의 수명이 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상의 노화는 실제 나이의 많고 적음보다는
개인의 고유성을 얼마만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남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사상의 나이를 그대로 이어받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러하므로, 어떤 좋은 말이라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판별하고 수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사상이 늙어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늙으면 자연스럽게 부패하거나 변질됩니다.
알기 쉬운 예가 바로 기득권의 노화일 겁니다. 기득권은 보통 선대가 쌓아 올린 지식과 부를 물려받는데, 그 지식과 부를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선조인 조선은 치욕을 겪었을까요? 단순히 생각하면 우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릅니다. 우수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조선의 기득권의 선대가 쌓아 올린 지식과 체계의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후대는 그것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 결과, 사상의 노화가 찾아와 변화를 바라지 않는 바람에
늙고 부패하여 망했던 겁니다. 쇄국정책. 그것이 바로 사상의 노화가 부른 것이라 봅니다. 만약 우수하지 않았더라면, 늙어버리기 전에 망하고 다른 왕조가 세워졌을 겁니다. 만약 늙어버리지 않았더라면 개화하여 혼란의 시기를
극복해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조선의 가장 큰 실수는 사상의 노화를 견제하지 않은 것에 있다고 봅니다.
보통 오랜 왕조가 없다고들 합니다. 조선이 특이한 예였지요. 그건 당연합니다. 수백 년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대로 늙어갔는데
어찌 부패하지 않을 수가 있고, 어찌 망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인류는 연령기득권의 권위가 만든 과거 미화와 전통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속고 있었던 겁니다. 인간은 과거에 종속될수록 늙어가고, 과거를 부정할수록 어려집니다. 늙으면 부패하고 어리면 미숙합니다. 늙은 국가가 저지른 이기적인 갈등조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표리부동한 태도로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어린 국가가 저지른 예의 없는 미숙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화대혁명으로 문화가 어려져 예의와 예절을 잊은
사람들의 행패를 알고 있을 겁니다. 따라서 과거에 종속되지도, 과거를 부정하지도 말고 젊음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불평등의 많은 부분은 유교 때문이라고 비판하지요. 그런데 유교가 최초 탄생했을 때엔 신선하고 좋은
사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융성해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상의 노화가 찾아왔습니다. 늙고 부패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실 유교에는 충효가 없다고 합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렇다고 합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충효를 중시하는 풍조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상이라도 늙으면 부패하거나 변질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연령기득권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그러한 늙고 부패한 것을 인식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히 따질 수도 없었습니다. 전통은 올바른 것. 그것이 사상의 노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 정의입니다.
다른 종교들도 그렇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파했던 종교는 불신지옥이라는
공포로 마음이 약한 사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도를 닦는 종교는 세속에 물들어 물질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사상의 노화 찾아오자 부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별히 종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상은 노화되면 부패하거나 변질됩니다. 정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공산주의의 사상은 분명 자본주의의 자유가 만든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사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합니까? 독재자의 독재수단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지금의 공산주의 국가는 이미 공산주의 국가라 불릴 수도 없다고들 하지요. 자본주의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번 늙어 제국주의라는 온갖 추태를 보여주다가 수정자본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원동력이었던 정치이념은 이렇게
부패하거나 변질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좌파니 우파니 진영논리로 구분 짓고 사물을 바라보는 건, 이러한 현상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사상의 노화, 늙어버린 사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정치를 바라보며 많은 괴리감을
느껴왔습니다. 처음에는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독재자를 지지하거나
가까이하려는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정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자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정치이념과 실제 정치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좌파 민족주의와 우파 사대주의는 저에게 잠시간 몰이해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후 좌우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이해하게 되었지요. 애초에 해외에서 배워온 정치이념이 한국 사정에 맞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 정치이념도 정치인의 입장에서 정리된 것이었습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정리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오류들이 한국정치에 대한 괴리감을 만든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본 정치이념은 본래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원동력이었습니다. 왕조에 대한 분노. 자본가에 대한 분노. 그것이 간단하게 정리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되겠지요.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왕조에 대한 분노가 형성될 무렵, 외세의 침략을 받아 외세에 저항을 했어야 했습니다.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정치세력이 형성되기 전에, 자본주의의 침략에 대한 분노로 정치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항일운동이 대표적일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반적인 정치이념과 다르게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광복을 하게 되고 남북이 갈라져
버립니다. 그러다가 공산주의의 침략이 시작됩니다. 한국전쟁의 발발입니다. 이 끔찍한 전쟁은 한 독재자의 야욕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이 전쟁은 휴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침략에 기대어 부당한 이익을 취하던 기회주의자들이
사람들을 공포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산주의 침략을 빌미로 자신들에게 반발하던 자들을 탄압합니다. 독립운동가들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탄압에 민중은 공산주의 침략에 대한 트라우마로 순응하게 됩니다. 그들의 정의는 공포 앞에서 무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올바른 행동을 한다고 굳게 믿었던 지식인들은
민중의 트라우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민족을 위해서 북한과의 화합을 시도하다가 정치적 패배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민중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됩니다. 슬픈 일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자본주의 침략의 피해자들이 정치세력화가
되고, 공산주의 침략의 피해자들이 정치세력화가 된 것이
지금까지의 한국정치였습니다. 이를 공산주의의 독재자가 민족을 미끼로 자본주의 침략의 피해자들을 이용했고, 군사정부의 독재자가 북풍을 미끼로 공산주의 침략의 피해자들을 이용해왔던 겁니다. 그 상황에서 정치인이 지역을 이용한 것이 지역갈등을
유발했습니다. 지역갈등의 본질은 여기에 있던 겁니다. 이처럼 일반적인 정치이념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한국정치는 정치이념과 괴리감이 있었던 겁니다. 기득권의 피해자와 침략의 피해자. 그 차이가 바로 한국정치를 혼란케 해왔던 겁니다. 더불어 정치이념이 국민의 입장에서 정리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깨닫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한국정치의 정체를, 그리고 노화를 불러왔던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군사독재의 피해자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정체되어있었던 한국정치의 변화를 불러와
정치적 젊음을 되찾게 만든 정치세력입니다. 그것이 주관적인 입장에서 옳건 그르건, 정치에 변화를 불러와 국가가 정치적 젊음을 되찾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정치세력이 적었던 군사독재정부에 맞서 싸운 민주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당이
어째서 저번에는 패배하고 이번에는 승리하였는가? 그것은 간단합니다. 공산주의 침략의 피해자에서 군사독재 횡포의 피해자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득권으로 그간 쌓아 올린 다양한 힘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유도해도 통하지
않는 겁니다. 공산주의 침략의 피해자들이 뭘 해도 지지했던 것처럼, 군사독재 횡포의 피해자들이 뭘 해도 지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말이지요.
이러한 정의의 충돌은 주관적으로 우위를 가리기 어렵습니다. 공산주의 침략의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반공, 반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의 부패의 우선순위는
상대적으로 낮게 됩니다. 반면 군사독재 횡포의 피해자들은 반독재, 반부패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반공, 반북의 우선순위는 상대적으로 낮게 됩니다. 이처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으로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차이는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젊은가? 그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간 쌓아 올린 정치적 기득권을 파괴하고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에는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던 이견은 없을 거라 봅니다. 변화 자체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 변화가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한 시각차이겠지요. 변화에 따른 젊음은 분명합니다. 모든 사상이 노화되면 변질되거나 부패했던 것처럼, 지금의 한국정치도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고 부패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생생하고 젊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사상은 노화될 수 있으니 각각은 사상의
노화를 겪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정치 자체는 지금, 생생하게 젊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치의 본질을 깨닫고 앞으로도 젊음을 유지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사상의 젊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나중에 사상으로 한번 더 정리해보겠습니다. 사상의 흥망성쇠 노화. 등 생각할 거리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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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등하다면, 명문대생들에게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을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일반 시민들같이 행동해도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과거를 회상하며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이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차라리 이들의 특권을 없애는 것이 좀 더 합리적입니다.
좀 고민해봤는데 시간 좀 지나도 신경 쓰지 않으렵니다.
제 가치 제 위치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사상의 어린이 같네요. 처음부터 다시 다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약간 미숙하더라도 성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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