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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외부여론조작, 이성이 필요한 때2020.03.29 PM 11:40
외부여론조작, 이성이 필요한 때
한국인인 것 마냥 노인 혐오, 청소년 혐오 등의 발언을 쏟아내던 사람이 중국혐오발언엔 발작하는 게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솔직히 구역질 나요.
「한국은 누구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인가?」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중 한국인이 아닌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인인척 하면서 여론조작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야당 지지자들이 외부여론조작에 대한 경종을 울렸기
때문에, 여당 지지자들 중에 그 현상 자체가 없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여론조작 자체는 있을 거라 봅니다. 위의 사례처럼 중화사상에 깊게 박혀있는 사람은 중국에
대한 모욕을 견디지 못해 유독 티가 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만 여론조작을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국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한국혐오를 부추기거나, 특정 국가에 대한 감정(애정이나 혐오)를 호소할 수 있겠지요.
차라리 티가 나는 사람은 그나마 낫습니다. 경계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전문적인 집단에서 운영하는 여론조작은 일말에 티도
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론조작을 하겠지요. 그 방식은 단순히「OO가 좋다, OO가 싫다.」로 끝날 것이 아닐 겁니다. 공산주의자가 반공주의를 외칠 수도 있을 겁니다. 자본주의자가 반자본주의를 외칠 수도 있을 겁니다. 내부분열로 사회불신을 만들어 혼란을 빠뜨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어떤 방식도 상관이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내편 들어주고 있는 사람이 순수하게
같은 편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네 말이 옳아!」라고 말하면서 뒤에선 욕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앞에서는 반중이나 반미 또는 남혐이나 여혐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병신새끼들이라며 비웃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꼴사나운 일입니까? 순진한 사람들은 애초에 이런 것이 없을 거라 생각하거나, 있더라도 단순하게「OO 개새끼 해봐」로 검증하고 끝낼 뿐이지요. 이런 거 못하는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아마 일반인이겠지요. 중화사상에 빠진 사람이나 종교에 빠진 사람이나 대체로
이용당하는 일반인일 겁니다.
한국은 유독 사기범죄가 많은 나라입니다. 그건 단순히 사기꾼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남을 믿다가 순진하게 속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 나라니까, 남을 믿으니까 보다 여론조작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위의 사진도 앞의 세 장은 전부 한국인일거라 생각하고
분노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심하지 않고 있어요.
「관계로 자아를 유지하는 사람 = 집단주의」
한국은 감성적인 국가입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이건 한국문화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문화 중 하나가 바로 정문화지요. 한국인은 정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남의 일에도 감정이입을 합니다.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까 감성적인 행태가 나오고, 그러다 보니까 감성적인 국가가 됩니다. 개인주의자들은 「남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라며 신경을 끄는 반면, 집단주의자들은「남이 있어야 내가 있어.」라며 관심을 갖게 되죠. 이번 코로나 사태도 한국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지요. 남이 있어야 내가 있다고 생각하여 타인을 배려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다는 겁니다. 대신에 그만큼 배려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혐오감도 크기 마련입니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며 제멋대로 행동한 사람들에 대한 비난여론이 심한 상황이지요.
정문화는 정이 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좋은 면도
있는 반면, 집단이기주의를 부르는 나쁜 면도 있습니다. 정든 사람(혈연, 학연, 지연 등)의 결점이나 죄마저 감싸주려는 것도 정문화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외의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동의하는 말입니다. 지역이기주의, 학벌이기주의 따위의 집단이기주의는 누군가(지역민, 동창생)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까요.
정문화라는 집단주의적 문화를 공유하는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관계로 자아를 유지합니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겁니다. 스스로 자아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 의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것이 유독 종교가 활발하고, 유독 맹신자들이 많은 까닭 중 하나겠지요. 관계로 자아를 유지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인싸(관계가 많은 사람)와 아싸(관계가 적은 사람)을 구별하고, 밥도 혼자 못 먹고,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특별히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알아만 두세요. 한국은 감성적인 국가라는 것을. (국가로 자아를 유지하는 사람 = 전체주의, 스스로 자아를 유지하는 사람 = 개인주의)
「감성의 자유를 외칠 것이면, 이성의 필요도 받아드려야 한다.」
한국은 감성적인 국가입니다. 감성정치와 감성법치는 이제 친숙할 정도지요.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국민의 의향을
따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옹호할 수도 없습니다. 대중은 무책임해도 어쩔 수 없지만, 정치와 법치는 무책임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감성정치가 여성주의고, 감성법치가 성인지감수성이죠.
대중은 자신의 감정에 책임지지 않고 주장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우선적으로 분노하고 과한 처벌이나
과한 혜택을 요구하죠. 감성적인 것. 그것 자체는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단지 스스로 감성적인 것이라 인식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론을 내린 사람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민식이 법이 감성적으로 만든 졸속법안이라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번에 초등학생 고아를 합법적으로
등쳐 먹으려는 보험사의 행태에 감성적으로 분노하고 비판한 적이 있지요. 그 사람도 결국 정이 있는 한국인이라는 겁니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성적으로 졸속법안을 비판하는 사람마저 그런 감성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민식이 법이 나쁘다는 관점으로만 보려는 편향적인 모습도 가끔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운전자의 실수가 다소(10 정도) 있었음에도 그 정도는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거나.)
보험사 사건과 민식이 법의 차이는, 감성적인 행태가 정치로 이어지느냐 이어지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만약에 보험사 사건 때문에 그와 관련된 감성정치적인
졸속법안이 통과된다면, 이 둘의 차이는 없습니다.
모든 한국인은 감성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에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할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단지 그만큼 이성도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감수성이 많은 국민들은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감성대로 정치와 법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책임지는 사람들을 몰아세우는 일은 너무나도 잔혹합니다. 국민의 역할과 정치, 그리고 법치의 역할은 엄격하게 다릅니다. 적어도 책임지는 역할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길 바랍니다. 설령 감성적인 국민들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역할을 다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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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특성이「잠복기 감염, 무증상 감염, 비말 감염, 병자와 노인 대상, 재감염, 태아 감염 등」굉장히 특이해서 인위적인 바이러스라는
의혹이 있지요. 그래서 한번 음모론도 써본 적이 있습니다. 그거 이어서 써보겠습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가 누군가 어떤 이유를 위해 인구감축을
시도하는 사건으로 가정해보겠습니다. 지금 많은 국가들이 쇄국하고 있지요. 그건 말이죠. 표적만 골라서 살포하기 적절하다는 의미도 됩니다. 특정 국가에 바이러스가 퍼지면, 다른 나라로 전파되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살포 자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쇄국해서 방역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평가 받는 국가들이 외부 유입으로 전염되고 있습니다. 한번 검색해보세요. 외부 유입으로 며칠 전부터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시점에서 몰래 살포하면 웬만하면 그 국가 내에서면 전염병이 돌 겁니다.
인류가 문명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으로 인구감축을 하는
방법은 모든 국가에서 조금씩 감축하는 것보다, 특정 국가에서 다수 감축하는 겁니다. 국가 붕괴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 국가를 기준으로 다른 국가가 본받아서 다시 재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특정 국가에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인구감축을 국가를 정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환경오염이라 생각합니다만, 이번 바이러스도 시험의 일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바이러스는 자본논리로 보면 방치하는 것이 효과적이지요. 생산적이 없는 병자와 노인이 주로 사망하니까요. 문제는 지나치게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자본논리로 불필요한 인구를 포기하는 국가는 환경논리로
그런 국가를 불필요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요. 인간성이 부족하다면서 말이죠. 어쩌면 미래로 갈 수 있는 국가가 이번에 결정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음모론입니다만, 만약 특정 국가에서 변종이나 신종이 발생하여 치사율이
계속 높아진다면, 의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의심은 필요합니다. 적어도 의심할 필요가 있는 역할은.
부자 동네는 공직자 변호도 받는군요. 놀랐어요. 정말. 돈으로 이어진 관계인지 정으로 이어진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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