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담] LG와 가전2022.02.01 AM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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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와 가전

 

 

 

인간은 본능과 사상으로 자아가 형성된다. 본능은 선천적이고 변하지 않기에 불변가치고 사상은 후천적이고 변하기에 만변가치다. 본능은 유전자에 보관된 동물의 행동양식이나 능력을 뜻한다. 식욕이나 성욕 같은 욕구나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과 그와 관련된 능력을 가리킨다. 사상은 인간 주위의 체계화된 관념을 교육 또는 경험으로 학습한 것을 뜻한다. 예의와 범절 같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관념을 가리킨다. 본능이 힘이라면 사상은 방향이다. 본능적으로 욕구나 감정을 느끼면 사상이 그걸 충족하기 위한 방법을 안내한다. 식욕을 느낄 때 절도에 관한 관념을 교육받지 못한다면, 절도를 해서라도 욕구를 충족한다. 기쁨을 원할 때 폭력에 관한 관념을 교육받지 못한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감정을 충족한다. 본능에 따른 욕구와 감정은 솟아나오는 힘이고 사상이 그 방향을 결정하여 올바른 길로 안내하고 있다. 이렇기에 보통 사상이 사회에 속한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원리를 결정한다. 사상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하고 있다.

 

사상은 자아형성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자아형성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관념이 수동적으로 학습되면 이전이고 능동적으로 학습되면 이후다. 보통 예의범절에 속하는 전통적인 도덕관념이 이전사상이고 학교나 사회서 배우는 사상이 이후사상이다. 통상 이르면 초등학생 고학년에서 중학생 정도에 자아가 형성된다. 자아가 형성되고 성에 눈을 뜨면서 사춘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정보의 과잉공급으로 자아형성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그에 대응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이후 다양한 지식과 고찰을 통해 자아를 완성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한국에서 보통 유교와 기독교와 불교가 이전사상이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 PC주의 등등이 이후사상이다. 이후사상이 이전사상에 영향을 끼치고는 있으나 본질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전사상은 사람이 인지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수동적 학습됨이란 강제 세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뇌란 다른 생각으로 개조하거나 특정 사상을 주입하는 것을 뜻한다. 수동적으로 학습되는 것은 의지와 무관하게 세뇌된다는 것과 같다. 강제 세뇌된 인간이 세뇌된 것을 인지하기 어렵듯이 관념을 수동적 학습된 인간이 이전사상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로 자아형성 이전에 종교를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종교 강제 세뇌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 이전사상이 굉장히 중요하므로 반드시 기억하길 바란다. 확실히 말하겠다. 그 누구든 이걸 이해하면 최소한 사상 수준이 보통을 넘게 된다. 현재 해결하지 못한 많은 사회문제가 이전사상이 원인일 정도다. 이후사상은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원인파악이 가능하여 해결할 수 있지만 이전사상은 인지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해결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한국에서 이전사상은 대부분 유교다. 일부를 제외하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유교에 영향을 받았다. 가르침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수신제가, 삼강오륜, 정조관념, 남녀유별 등이 있다. 수직사회는 오륜의 장유유서와 변질된 삼강 등이 영향을 끼치고 교육열은 수직사회와 수신제가 등이 영향을 끼치고 성별갈등은 수직사회와 정조관념과 남녀유별 등이 영향을 끼친다. 각각의 설명은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겠다. 수직사회 중 연령차별만 잠시 정리하자. 종종 오성과 한음을 말하며 조선은 나이 차이가 나도 우정을 나누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나이를 말하며 그런 관계를 특별하게 미담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그런 일이 흔치 않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일제와 독재를 거치며 조선보다 한국에서 연령차별이 더 심해졌다 할 수는 있는데 변질되는 것 또한 사상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 말하겠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의 사상으로 나타나는 현상 또한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주요 사회현상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꼰대와 갑질 또는 독재와 재벌 같은 수직사회의 가치관과 구조가 바로 유교의 가르침으로 만들어졌다. 노동자와 아동과 여성 등이 괴로움을 겪은 것은 자본주의가 원인이 아니었다. 조선의 탐관오리를 자본주의 탓으로 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학력과 학벌을 중시하고 학생을 줄세우기 하게 만드는 과도한 교육열도 유교의 가르침으로 만들어졌다. 수직사회가 수신제가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수평사회였다면 수신제가가 있더라도 과도한 교육열까지 발생하지는 않는다. 학생의 불행은 교육열 자체보다 수직사회가 만든 것이다. 조선의 과거시험과 한국의 수능이나 고시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달라졌다 할 수 있는가? 성차별과 과도한 성적 수치심과 성 문화 탄압과 이성관계 단절도 유교의 가르침으로 만들어졌다. 수직사회가 성차별을 만들고 정조관념이 과도한 성적 수치심과 성 문화 탄압을 만들고 남녀유별이나 남녀칠세부동석이 이성관계 단절을 만들었다. 여성을 열등하게 여기고 힘든 일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아 의지가 약화되어 사회참여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성차별이 나타나고, 여성을 도구로 여기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지 않고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여 스스로 정조를 지키게 만들고 그 수치심을 근거로 성 문화 탄압을 하고 있고, 연하를 도구로 여기고 남녀의 관계조차 연상의 입맛대로 하기 위해 이성관계를 단절시켰다. 그럼에도 조선이 출산율이 유지되었던 까닭은 가부장제의 가장의 강요로 결혼과 출산을 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이 성 문화가 생각보다 자유로웠던 까닭은 여성이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갖고 있더라도 여성의 발언권이 낮았기 때문에 그 수치심을 근거로 성 문화를 탄압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선의 가부장제 세계관의 여성상(의지가 약하고 성적 수치심이 강하며 이성관계가 단절된)이 한국에서 여성주의자가 주장하는 여성상과 무엇이 다르다 할 수 있는가?

 

이전사상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묻겠다. 연하의 반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영어권은 그런 게 없어 그걸 불편해하지 않지 않나. 그렇다면 그런 불편함은 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왜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가? 원시 부족을 보면 그렇지 않지 않나. 그렇다면 그 수치심은 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주관적 감각과 객관적 현상을 비교해보면 본인의 감각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수는 이런 불편한 감각을 본능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감각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 감각에 맞춰 사회를 바꾸려 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이전사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 중 하나다. 사이비종교에 세뇌되어 동그라미가 불편해진 사람이 생기면 세상의 동그라미를 전부 각지게 만들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낡은 성 관념에 세뇌되어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근거로 성을 죄악시하고 성 문화를 탄압하고 성에 관련된 것은 사소한 것이라 막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면 국가가 죽어가게 된다.

 

(2021.12.08) 1인가구 664만 가구

(2021.12.14) 혼인율 88년생 37%, 83년생 67%

(2016.06.29) 부부 섹스리스 36.1% 세계 2

(2021.12.09) 출산율 0.6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결혼하는 사람이 줄고 결혼한 사람마저 3쌍 중 1쌍은 성관계를 잘 안하며 출산율은 0.6명까지 떨어졌다. 이게 정상이라 보이는가? 83년생과 88년생의 차이는 강요와 자유의 차이다. 사회가 점차 자유롭게 되어가면서 본인 의지로 결혼한 사람이 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이걸 그냥 결혼시기가 늦어졌다고만 해석해왔기 때문에 아무런 대책 없이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이것이 경제나 본능이 원인으로 보이는가? 경제가 원인이면 선진국 중 왜 한국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나? 미성년 때부터 성을 죄악시하며 자위조차 금하니까 그게 학습되어서 연애하여 동거하는 사람이 줄고 결혼하는 사람이 줄고 결혼하고 나서도 성관계 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장유유서로 인해 미성년은 연상에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잘못된 성 관념을 주입 당해버렸다. 가부장제 세계관의 남성이 여성을 도구로 여기며 주입한 정조관념과 여성이 스스로 정조를 지키게 하기 위해 주입한 과도한 성적 수치심과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근거로 한 성 죄악시를 장유유서를 명목으로 미성년에게 올바른 도리라며 주입하자 이성관계가 망가지고 국가가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짐승으로 이해해보자. 만약 짐승이 교미를 할 때마다 막고 못하게 하고 그걸 나쁜 것이라 인식하게 한다고 해보자. 그게 학습되어서 파블로프의 개처럼 성욕을 느낄 때마다 그 교육이 떠올라 교미를 부정적으로 여긴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교미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도 동물이다. 어려서부터 성을 죄악시하는 풍조에서 자라나면 결혼한 부부조차 성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성관계를 하지 않게 된단 말이다. 울렁거린다. 성욕은 본능이니까 죄악시해도 알아서 잘 할 거라 착각할 수 있다. 하나 본능은 힘이고 사상은 방향이다. 사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안내하면 본능조차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본능이 전부면 모두가 절도와 폭행을 하지 않겠나? 사상에 의해 절도와 폭행이 죄악시되면서 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상에 의해 성이 죄악시되자 성관계를 하지 않음으로써 성에 관련된 인간관계 자체가 붕괴해버린 것이다. 물론 절도와 폭행과 성관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비율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절도와 폭력의 비율이 줄어들면서 범죄율이 감소한 것처럼 성관계가 줄어들면서 출산율이 감소한 것일 뿐이다. 낙태가 많은 까닭은 애정으로 성관계를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수단이나 쾌락을 위해서만 성관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수단과 쾌락은 상품으로 소비하고 연인과는 애정을 갖고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야 그 애정이 아이에게 이어진다. 이제는 성 자체를 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강요를 죄악시해야 한다. 그것은 자유주의적으로 접근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성 자체는 결코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이럼에도 다수 국민과 정부는 집값을 운운하고 있다. 정말 돌아버리겠다. 이전사상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없고 인간의 학습효과를 알면서도 미성년 때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어떤 학습효과를 나타내는지를 모르고 있다. 조금만 야해도 선정적이라며 미성년에게 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잘못된 성 관념을 심어주는 것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결혼은 15세가 일반적이고 11~13세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평균수명이 낮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유전적으로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 말은 미성년이 선정적인 걸 보더라도 실제로는 괜찮다는 것이다. 낡은 도덕관념이 잘못된 형태로 전해져 성에 눈을 뜨는 사춘기시기조차 성에 접하는 걸 막고 있는 것뿐이다. 성은 불결하지도 불건전하지도 않다. 마치 이런 것 같다. 과거 위생으로 돼지를 꺼려했던 것을 현재까지도 그 때문에 돼지를 불결하다며 죄악시하는 것과 같이 과거 남성이 여성을 도구로 여겼던 것 때문에 나타난 정조관념과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가졌던 것을 현재까지도 그 때문에 성이 불결하다며 죄악시하는 것과 같다. 아아, 국가가 죽어가고 있는데 이걸 이해하는 사람이 적다. 죽음의 원인을 알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적은 게 너무나도 괴롭다. 할 수 있는 거라도 할 것이다. 이제 성을 죄악시하는 이들을 국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악당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게 있어 그러지 않는 것이 불의다. 명백하게 원인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사상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여성은 가부장제가 세뇌한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하고, 미성년은 성을 친숙하게 여겨 자연스럽게 이성과 성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하고, 성년은 이른 동거와 결혼을 통해 다인가구를 늘릴 수 있어야 한다.

 

삼권은 이제 가부장제 세계관의 아동상이나 여성상에서 벗어나 그것에 맞춘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그만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 자유의지로 성관계를 맺었으면 연령 따지지 좀 말고,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근거로 한 디지털성범죄는 운운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도대체 왜! 성적 자기결정권을 국가가 가져가려 하는가? 도대체 왜! 디지털은 물리적인 힘과 관계가 없어 오로지 의지와 지성으로 결정되는데 여성의 과도한 성적 수치심을 근거로 규율을 만들고 강요하려 하는가? 죽어가고 있단 말이다! 낡은 도덕관념으로 국가가 죽어가고 있단 말이다! 인간의 행동원리가 무엇인지 자아성찰은 해본 적이 있는가? 앞으로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잘못된 성 관념으로 나타나는 저출산은 막을 수 없단 말이다! 이미 수십 년 수백 조를 쏟아 부은 상태다. 그럼에도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가? 학습능력이 아예 없나? 내가 이토록 화를 내는 게 부당하다 생각하는가? 이것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는가? 국가에 있어 국가의 죽음 말고 더 심각한 문제가 도대체 어디 있냔 말이다! 세금 쏟아 부은 지방은 돈만 받고 이사 가거나 지급이 끝나자 바로 출산율이 낮아졌다. 애정 없이 결혼한 부부는 보상금만 타고 아이를 버리고 있다. 돈이 많이 조건보고 중매결혼한 많은 부부들이 부부간 애정이 결핍되어 설거지를 한다거나 트로피 취급을 받는다고 대중에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미치겠구나. 길을 안내하는 건 사상가의 역할이다. 그 길을 이해하는 건 사람의 역할이다. 나는 한국인이 이걸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전사상을 이해하고 잘못된 성 관념이 국가를 죽음으로 몰고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정권은 대체로 못해도 자유와 생존을 지키면 무난한 것이고 대체로 잘해도 자유와 생존을 지키지 못하면 무능한 것이다. 이번 정권이 잘한 것도 있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검열과 출산율은 이번 정권의 변명할 수 없는 최악의 실패다.

 

 

한국은 유교가 보수다. 한국은 자유와 자본이 진보다. 한국은 사회와 공산이 퇴보다. 사회와 공산은 유교와 같이 규율을 중시하므로 실상 퇴보가 된다. 이전사상을 이해했다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당대의 이전사상인 기독교의 도덕성에서 나타났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새로운 사상을 주장한들 이전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 본인의 주관적인 도덕성을 근거로 사상을 만들었다면 그 뿌리는 종교가 된다. 북한이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상기하자. 공산주의를 만든 인간의 이전사상이 종교이기 때문에 그 구조 자체를 왕정이 이용하기가 너무 쉽다. 공산주의를 변질시켜 이용할 수 있는 까닭은 규율 강요라는 측면에서 과거 종교와 같기 때문이다. 이상도 마찬가지다. 빈민구제하며 인류구원을 주장하는 기독교나 노동자구제하며 낙원을 주장하는 공산주의나 차이가 없다. 이전사상을 기준으로 한다면 종교와 사회주의와 PC주의가 보수고 자유와 자본과 개인이 진보다. 인류는 아직까지도 규율을 강요하던 종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녀사냥과 홍위병이 같은 원리로 작동했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강대강으로 치닫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첫째로 진보적인 자유와 보수적인 규율의 이념다툼이며 둘째로 서양의 현재 패권과 동양의 과거 패권과의 최초 인류 패권다툼이다. 자유주의자로서 자유가 승리하길 바란다.

 

한국에서 정당의 이념 구분의 의미가 퇴색되는 까닭이 대부분 정당의 이전사상이 유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군부독재 비판하면서 공산독재를 옹호하거나, 공산독재를 비판하면서 군부독재를 옹호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주장해도 그 바탕에는 유교가 있고, 민주주의를 주장해도 그 바탕에는 유교가 있다. 각각 인사들이 이후사상을 가지더라도 인간의 행동원리에 이전사상이 강하게 영향을 끼치기에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민족에 대한 관념이 자아형성 이전에 수동적으로 교육되면 자유를 외치던 민주를 외치던 민족주의가 올바르다 여기며 북한과의 관계에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내로남불. 흔히 말해 모순되는 일을 하는 이들을 가리켜 비꼬는 단어다. 이것도 이전사상과 이후사상이 충돌하여 모순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가족을 아끼라는 이전사상과 공정해야 한다는 이후사상이 충돌하면 앞에서는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뒤에서는 가족을 위해 불공정도 해버리게 된다.

 

 

의지가 약하고 성적 수치심이 강하고 이성관계가 단절된 가부장제 세계관의 여성상은 여성을 도구로 여긴 남성이 만든 악의적이고 잘못된 여성상이다. 그럼에도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런 잘못된 여성상을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상을 기준으로 신세대를 세뇌하고 사회에 배려만 강요하고 있다. 법 앞의 차별을 만든 성인지감수성은 의지가 약하고 성적 수치심이 강한 가부장제 세계관의 여성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말하며, 거기에 맞춰 양형을 결정해야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차별을 만든 여성특혜는 여성은 의지가 약하므로 장애인보다 더 많은 가산점과 할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열을 만든 성 문화 탄압은 여성은 성적 수치심이 강하므로 수치심을 느낄만한 것은 전부 죄악시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사상을 이해했다면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 이제는 알 것이다. 여성을 차별하던 도덕관념을 근거로 여성인권을 주장하며 다시 한번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 여성차별의 결과로 남성도 차별 받고 있을 뿐이다.

 

여성을 도구로 여기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자와 남편과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이 여성 성 상품화와 여성 성 대상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여성주의가 가지려고 하고 있다. 여성을 도구화하는 것은 노동자를 도구화 하는 것이 노동자의 자유의지를 무시할 때 나타나는 것처럼 여성의 자유의지를 무시할 때 나타난다. 여성주의는 여성을 더 이상 도구취급 하지 말길 바란다. 여성 성 상품화가 문제가 없다면 다른 형태의 성 상품화도 문제가 없다. 남녀 모두 성의 아름다움을 즐길 권리가 있다. 그걸 낡은 도덕관념으로 막으려 하지 말길 바란다. 고리타분한 도덕관념을 강요한 것으로 지금 한국을 죽어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열등하게 여기고 힘든 일을 할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사회진출을 하지 못하게 한 것과 같이 여성을 열등하게 여기고 병역이나 오지파견 등의 힘든 일을 여성혐오라 외치며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인간은 인간을 열등하게 여기지 않고 힘든 일을 할 수 있어야 성장한다. 과거 메리가 여성의 실수를 가리켜 교육의 문제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나도 그것에 동의한다. 지금 교육은 여성을 지나치게 열등하게 보고 힘든 일 자체를 주지 않고 있다. 그게 올바른 도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여성차별이다. 여성주의는 여성을 더 이상 차별하지 말길 바란다. 고리타분한 도덕관념을 강요한 것으로 지금 한국 여성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무능하게 여기고 여학교나 여성할당을 도입했던 것과 같이 여학교를 유지하고 여성할당을 더 요구하고 있다. 여성은 무능하지 않다. 여학교나 여성할당은 여성을 무능하게 여긴 가부장제의 산물일 뿐이다. 여성주의는 더 이상 여성을 무능한 인간으로 여기지 말길 바란다. 고리타분한 도덕관념을 강요한 것으로 지금 한국은 여성이 무능하단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유능한 여성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여성주의자는 실질적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한국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남성도 실질적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흔히 이런 사람을 스윗 남성이라 하는데 틀렸다. 그냥 보수적인 가부장제 세계관의 남성이다. 여성주의가 PC주의와 마찬가지로 주관적 손익으로 인권을 결정하는 사상이기 때문에 이전사상인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주관을 여성의 인권으로 착각하여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한국 여성주의자가 이전사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그 주관의 여성상은 어디까지나 유교의 가르침에 따른 가부장제 세계관의 여성상에 불과하다.

 

 

어떤 것을 기뻐하는 것이나 슬퍼하는 것조차 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확률이 높다. 고찰 없는 자유의지는 없다. 누군가 그걸 불편해하라 말한 것으로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다. 불편하다 말하는 사람 대다수가 그냥 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불편해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여 흔들다리 효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내 모든 욕구나 감정이나 감각을 본능에 의함인지 사상에 의함인지 구분하고 있다. 예술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거나 눈물을 흘릴 때조차 그것의 근원을 헤아리고 있다. 이게 상당히 미친 짓임이 틀림없지만 사상가가 되고자 하는 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할 길 중 하나다. 자아성찰은 확실히 해야 사상을 논할 수가 있다. 내가 만약 사상가의 교육과정을 담당한다면 이 과정을 꼭 넣을 것이다.

 

 

 

유전자 코드

 

인간은 이전사상을 본능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심하다. 만변가치인 사상조차 자아형성 이전에 수동적으로 주입되면 불변가치인 본능으로 착각하여 절대적으로 지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유전자는 본능이자 이전사상이자 이후사상이다. 본능으로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하고 이전사상으로 대를 이어가라 들었고 이후사상으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걸 안다. 성을 죄악시하는 풍습이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본능과 사상에 의해 결혼과 출산을 했을 것이다. 이걸 산업으로 연결해보자.  만약 전자제품에 유전자 코드를 삽입한다면 제품을 소유한 사람은 유전자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과 사상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아 제품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 같은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려 할 수 있다. 예컨대 모니터를 사용하다 새로운 모니터를 구매할 때, 유전자 코드가 같은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려는 행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상단계부터 세 관점으로 분류해보자.

 

최초 가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가전이란 집안의 전자제품을 말한다. 가사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자제품을 말한다. 각각의 전자제품을 생각해보자. 텔레비전, 청소기, 세탁기, 전기밥솥, 전기난로, 전기렌지, 에어컨, 드라이기 등등. 여기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든 가전제품이 인간을 위한 고유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각각의 역할이 겹치지가 않는다. 그리고 그 역할은 기술이 발달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고유한 형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각각의 차이로 사회학적으로 인종을 구분 짓는 일이 있더라도 실제로 인종은 하나다. 그것과 같다는 얘기다. 디자인이나 성능이 좀 달라져도 드라이기는 뜨겁거나 차가운 바람을 내뿜을 것이고 세탁기는 물을 헹굴 것이며 청소기는 먼지를 빨아드릴 것이다. 그것을 하나의 종으로 설정한다.

 

 

생산자

 

지금 전자제품은 제품이나 대상이나 시기마다 고유번호가 다르다. 그걸 역할로 일원화한다. 역할이 같은 제품은 가격과 관계 없이 같은 유전자 코드를 사용하도록 한다. 생물 분류 단계와 비슷한 분류체계처럼 사용한다. 이렇게 하여 생산체계에 줄기가 잡힌다. 기획에 따라 생산이 휘둘리지 않게 된다. 유행에 맞춰 디자인이나 기술추가 등이 이루어져도 역할로 구분 지은 제품의 고유한 유전자 코드는 흔들리지 않는다.

 

연상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LG ThinQ라는 브랜드가 있다고 안다. 내가 LG 스마트폰을 써서 그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거 보고 생각하는 게 있었다. 너무 직설적이다.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확하지만 너무 직설적이기에 심심하다. 가령 만약 로댕이란 브랜드로 시작 했다고 가정해보자. 로댕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동상을 만든 사람이다. 그래서 로댕의 생각하는 동상으로 유명하다. 만약 로댕이란 브랜드였다면 연상을 거쳐 고객에게 재미를 주었을 것이다. 그 재미가 브랜드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것과 같이 연상기업을 사용해 전자제품의 역할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동물을 넣어보자. 세탁기 같은 경우 라쿤이 재미있을 것이다. 라쿤이 물속에서 솜사탕을 씻다가 사라지는 걸 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걸 찍은 장면이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적이 있다. 청소기는 너구리가 좋을 것 같다. 청소 동물이기 때문이다. 굳이 연상기법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건 그냥 방법 중 하나다.

 

 

소비자

 

스마트폰은 그야말로 인간과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 있는 전자제품이다. 인간과 거의 24시간 붙어 있다. 그럼에도 이 스마트폰은 단순한 물건처럼 여겨지고 있다. 몇 차례 스마트폰을 바꿔왔지만 바꾼 다음에 쓰던 폰은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버려졌다. 수 년간 하루 종일 같이 있던 것과의 추억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과거의 폰과 현재의 폰이 연결되지도 않는다. 같은 기업의 제품을 구매해도 그냥 모델만 비슷할 뿐이지 연결점은 거의 없다. 만약 유전자 코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마치 동물을 분양 받듯이 말이다. A제품의 유전적 형질이 이어진 B제품을 구매하게 되면 A제품에 남아있는 고유한 특징이 남아있어 마치 대를 이어 A제품의 자손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노크온 기능이 마음에 들었다. 그 노크온 기능이 대를 이어가며 남아있게 되면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자손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외형도 비슷하게 할 수 있다. 어떤 고유한 색상이나 포인트 칼라를 넣어 비슷한 외모를 이어간다는 느낌으로 가면 된다.

 

사용자가 전자제품을 관리하는 것 또한 유전자로 할 수 있다. 각각의 전자제품에 암호화된 고유한 정보를 담기게 한다. 드라이기를 예로 들자면 작동시기나 고장시기나 수리시기 등등이 기록에 남는다. 그것이 드라이기의 일생이며 고유한 유전자 코드가 된다. 기업에서 입력한 기초 정보는 본능이고 사용자의 기록은 사상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 두 개가 합쳐서 전자제품의 고유성이 나타난다. 그런 고유한 전자제품을 앱을 통해 정리하여 보관할 수 있다. 전자제품은 새상품을 구매하더라도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걸 구매했을 때에는 유전자 코드의 연결로 앱 내에서도 연결성이 보이도록 한다. 또한 사용 기록도 이어져 어떤 일부의 유전형질도 이어지게 한다. 용불용설이 최초 틀렸다고 했으나 후성유전학에 의하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느 정도는 획득한 형질이 유전된다고 한다. 유전자 자체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으나 어떤 형질 정도는 이어진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전자제품 또한 고유한 역할은 달라지지 않으나 사용자 기록은 특정 형질 같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용기록과 함께 세부설정도 이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특정 역할 자체가 바뀌는 일이 발생하면 그게 바로 종의 진화와 같이 전자제품의 진화가 될 것이다. MP3와 전화기와 컴퓨터가 합쳐져 스마트폰이 된 것 같이 말이다.

 

 

공급자

 

지금까지 이용자 관리를 할 때 사람을 기준으로 관리를 해왔다. AS를 받을 때 사람을 기준으로 서비스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걸 바꾼다. 철저하게 전자제품을 기준으로 관리를 한다. 가령 어떤 제품의 AS를 하러 오면 그 제품을 중심으로 관리를 하게 된다. A사람의 B제품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B제품의 A사람으로 접근한다. 전자제품을 단순한 부속품이 아닌 고유한 존재로 인지시킨다. 병원에 보호자와 환자가 가면 보호자의 이름이 아닌 환자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이 AS센터에 가면 소유자의 이름이 아니라 제품의 이름과 고유 유전자 코드명을 부른다. 길면 끝 네 자리 정도 부르면 된다. 내부관리 프로그램도 사람으로 관리되는 게 아니라 제품으로 관리가 된다. 사람이름이 쭉 뜨는 게 아니라 제품이름 옆에 소유자가 뜬다. 물론 필터에 따라 다르게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자제품 중심의 관리는 이후 로봇시대를 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로봇이 일정이상의 자아를 얻게 되면 단순 전자제품이 아니게 될 것이다. 애완동물을 반려동물과 같이 대하며 깊은 애정을 품는 것과 같이 로봇에도 그런 애정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런 로봇에 유전자 코드가 존재하고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분명 보다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기업의 제품을 대대로 구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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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상가는 분명 국격을 높이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민주주의는 토주주의(땅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에 불과하죠. 지역대표가 입법과 행정을 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지기준 상위 10%가 대부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죠. 부동산 관련 공약을 하게 되는 지역대표는 결국 부동산 소유자인 10%의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민주주의인가요? 반면 분야는 대부분 속하게 되죠. 한푼 없어도 특정 분야에는 속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설령 창업이나 취업을 못해도 그런 교육과정을 거친 것만으로도 분야에 속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런 분야의 대표는 분야와 관련된 공약을 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국민의 대표가 됩니다. 각각 국민의 이상이나 정의를 중시하는 입법은 분야대표가 맡고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사법은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능력자가 맡고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은 지역대표와 행정의 능력자가 맡는 것이 보다 나은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입법을 지역대표와 나누는 것도 타협은 가능합니다. 어떻게든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는 것이 민주주의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최근 소방관 처우가 좋지 못해 소방관들이 시위에 나섰다고 하지요. 택배는 일부 아직까지도 투쟁 중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요. 정상적인 민주주의라면 이들의 대표 또한 국회에 나와 공적 논의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함이 마땅하다 봅니다.

 

출산율을 어떻게 해야 합니다. 명백하게 원인이 있고 해결할 수도 있는데 낡은 도덕관념으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기아도 아니고 외침도 아니고 낡은 도덕관념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게 참. .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야 성을 죄악시하는 풍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장유유서에 의해 연상에게 무릎 꿇고 머리 박고 나서 돈을 받는 풍습인 세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도로 머문다면 정조관념에 의해 성을 죄악시하는 풍습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을 죄악시하지 말아주세요.

 

비동의간음죄 운운하던데 정신 나갔습니까? 여성을 바보로 압니까? 여성은 의지박약입니까? 얼마나 여성을 열등하게 보면 이 발상이 나옵니까? 적극 반대하지 않았으나 내심 싫었다는 이유로 강간으로 처리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여성이 적극 반대하지 않았으면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다. 도대체 자유와 책임에 대해 이해가 조금도 없습니까? 이따위로 하면 성관계는 더 줄어들 것이고 국가는 더 빠르게 죽을 겁니다. 정신 나간 짓 좀 하지 마십시오.

 

지금 사민주의 국가인 독일이 백신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지요. 역시 규율 중시인 사회주의 국가다운 방향입니다. 필요가 도덕이 되면 의무가 되어 불필요하게 되었어도 지키려 들게 됩니다. 지나치게 백신을 강조하면 이후 백신이 불필요하게 될 시점에도 그걸 지키려 들고 알레르기 등으로 맞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게 될 것입니다. 의무는 위험한 결정이에요.

 

저출산 책임이 여성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고 출산을 출생이라 부르고 있다고 하죠. 여성 책임이 아닙니다. 이전사상 책임이죠. 단지 여성주의가 가부장제 세계관의 여성상을 세뇌하고 강요하는 바람에 더욱 더 성을 죄악시하여 여성주의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여성주의는 여성이 아닙니다. 남성주의가 남성이 아니듯 말이죠. 여성 책임이 아니니까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나중에 인공자궁에 태어나게 되면 그때는 출생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요.

 

시험만능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LG스마트폰을 썼었는데 이제 삼성이나 애플 중 하나 고르겠죠 음. 다음은 바이오입니다. 특별히 친숙한 회사가 없어서 검색을 하던 해서 적당히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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