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문명과 사회2023.09.30 AM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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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사회






1.  가공


[가공: 1. 원자재나 반제품을 인공적으로 처리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제품의 질을 높임.]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다. 인간 소재가 문명 가공 수단을 통해 문명인이 되었다. 가공은 본디 물건에 쓰이는 용어로 인간에 쓰이는 용어가 아니지만, 가공에 해당하는 인간에 쓰이는 용어를 찾을 수 없었다. 교육, 주입, 세뇌 등보다 가공이 문명인의 본질에 가장 적합했다. 가공 개념을 문명인이 이해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읽는 이를 피로하게 할 생각은 없다. 가공의 사전적 정의에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미 하나를 추가하면 될 것이다. 내용에서 가공 이전 상태까지 다루기 때문에 읽는 이는 아기 시절을 떠올리며 가능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서 읽는 것이 내용 이해해 도움이 될 것이다.






1.1 문명


1) 가공 학문


모든 생물은 환경으로 가공된다. 생물 소재가 환경 가공 수단으로 가공되어 생물은 유전자 외의 다양성을 갖게 된다. 가공 레벨은 자연, 문화, 문명 순으로 높아진다. 자연 환경으로만 가공되는 짐승의 생활 양식은 가공 레벨이 낮아 대부분 유전자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와 문명 환경으로도 가공되는 인간의 생활 양식은 가공 레벨이 높아 대부분 유전자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게 된다.


다양한 가공 수단 중 문명인에게는 문명의 영향이 가장 크기 때문에 문명을 강조했다. 유전자와 자연의 영향은 동일 종인 인간이 인간 공동체인 사회를 형성하면서 사회에 맞게끔 평준화되어 상대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게 되었다. 유전자는 동일 종에서 사회에 선택받은 유전자만 살아남아 사회화가 되어 유전자 영향 차이가 줄어들었다. 자연은 사회 속에서 자연의 영향을 낮춰 살아남게 하는 것으로 자연 영향 차이가 줄어들었다. 


문화와 문명의 차이는 학문이다. 문화는 인간의 생활 양식을 말한다면 문명은 학문으로 체계화된 생활 양식을 말한다. 보통 문화(Culture)를 정신적 · 지적 발전으로 보고 문명(Civilization)을 물질적 · 기술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런 인식은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의 학문 발전 차이에 의한 것이다. [자연계: 1.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 과학 따위의 학문 계통.] [인문계: 1. 언어, 문화, 역사, 철학 따위의 학문 계통.] 자연 계열은 과학 혁명을 통해 체계적인 발전을 하여 인류의 물질적 · 기술적 생활 양식 레벨을 높혔는데,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만큼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여 인류의 정신적 · 지적 생활 양식 레벨을 그리 많이 높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있었다고 본다.


인간의 모든 생활 양식이 학문화가 된 것이 아니므로 문화와 문명은 공존하게 된다. 인간의 생활 양식 중에 학문 전의 옳고 그름을 도덕이라 부르고 학문 후의 옳고 그름을 윤리라 부르는 것과 같다. 문화와 문명의 공존 속에서 학문으로 체계화된 생활 양식이 많아질수록 문명 레벨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생활 양식이 학문으로 체계화된 사회를 문명 사회라 부르고, 그런 사회에서 학문을 배운 인간을 문명인이라 부른다. 문명은 학문으로 만들어졌고 문명인이 문명으로 가공되었으므로 문명인은 학문으로 가공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인이 일으킨 사회 현상은 전부 학문 영향권에 속해있다.






2) 가공 특징


가공 개념은 본질이 변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교육을 받은 인간은 본질이 변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 않다. 반면 가공된 물건은 본질이 변할거라 생각한다. [본질: 1.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인간에게 언어를 교육하여 언어를 배운 인간이 되었다. 인간에서 언어 능력만 더해진 것과 같이 본질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스마트폰 소재를 공장에서 가공하여 스마트폰이 되었다. 스마트폰 소재가 스마트폰이 된 것과 같이 본질이 바뀌었다. 


인간은 하나의 언어만이라도 알고 있어야 언어를 통해 체계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능해진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언어를 모르는 인간과 아는 인간은 본질 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교육 개념으로는 본질이 달라졌다고 여기기 어렵다. 주입이나 세뇌도 마찬가지다. 주입은 본질을 바꾼다 하기 어렵고 세뇌는 본질의 일부를 바꾼다 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같이 모든 본질이 바뀌었다 여기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공 개념이 문명인의 본질에 가장 적합하다.


인간은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고 여기니까 문명인과 문명인이 일으킨 현상을 해석하려 할 때 유전자나 자연 환경 위주로 해석하려는 태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오류가 발생한다. 인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유전자, 자연, 문화, 문명으로 나뉘는데 다양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 문명보다 유전자와 자연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간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사회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회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3) 가공 형태


문명인은 가공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누군가는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면서 인간을 상대로 실험할 때가 있다. 인간을 험하게 다루거나 야만적인 행동을 유도한다. 그렇게 하여 문명인이 문명 가공 형태를 잃어버리고 품위가 없어진 것을 보고는 인간의 본질이 그런 것이라며 비웃는다. 어처구니 없다. 그것은 스마트폰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며 스마트폰을 험하게 다룬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하여 스마트폰이 공장 가공 형태를 잃어버리고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의 본질이 그런 것이라며 비웃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 소재의 본질을 보고 싶다면 자연에서 사는 짐승을 보면 된다. 어려울 것 없다.


문명으로 사회에서 사는 인간의 생활 양식이 만들어진다면, 체제는 사회에서 사는 인간의 생활 양식의 방식을 의미한다. [체제: 2.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이나 양식,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 사회 체제에 맞는 것을 합리라고 할 수 있고, 사회 체제에 맞게끔 가공된 것을 합리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형태를 일부러 부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합리: 1.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 가공된 외모, 가공된 태도, 가공된 음식, 가공된 백신 등 문명인의 모든 것은 학문으로 체계화된 문명으로 가공되었다 보고 가공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하다.


문명으로 가공되지 않은 인간은 폭력 충동이 일어날 때 참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고, 가공된 인간은 폭력 충동이 일어날 때 참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체제에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사회에서 살면서 자연 법칙인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을 사회 법칙인 것마냥 말하는 것은 문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 법칙은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 아닌 사회에서 사는 인간의 생활 양식의 방식을 의미하는 체제다.






1.2 인간


1) 가공 상태


모든 존재는 변화 이전의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현재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식: 1.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 기억을 떠올리거나 기록을 찾거나 관찰 및 실험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 가공을 보자. 스마트폰 변화 이전의 상태를 파악하기 쉬운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스마트폰이 되었는지 파악하기 쉬운 인간이 얼마나 있는가? 대부분 모른다. 이것은 인간 가공도 마찬가지다. 현재 인식하고 있는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인간이 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본인 외의 변화에 대한 파악보다 본인의 변화에 대한 파악이 더 어렵다.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 가공되었지 스스로 모른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언어를 알고 나서 자아를 자각하기 때문에, 언어 습득 이전 상태를 알기 어렵다. 대부분 언어 습득이 끝난 자아 자각 이후부터 본인 존재를 인식하고, 그 시기부터 가공을 시작했다 착각한다.


모든 존재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 순간부터 가공된다. 인간 또한 자아 자각 이전부터 가공되었다. 최초의 감각, 최초의 식사, 최초의 백신. 전부 인간을 변화시킨다. 그 모든 것이 모여 인간의 본질을 바꾼다. 성장하면서 차근차근 가공된다. 언어, 대화, 의복, 노래, 놀이, 치료, 매체, 교육, 화장, 문신, 성형, 성전환 등으로 성별까지 바꾸는 가공까지 행해지기도 한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중독을 떠올려보면 된다. 술, 담배, 마약 등과 같이 직접 물질이 영향을 끼치는 중독뿐만 아니라 일, 취미, 도박 등과 같이 물질이 없는 중독 또한 뇌내 보상 회로에 변형을 가해 본질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가공되어 본질이 바뀐 것이다. 


문명인의 손에 닿은 모든 것이 문명으로 가공되었다. 주거, 공원, 도로, 자동차, 컴퓨터, 스마트폰 같이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공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조차 가공되었다. 자연도 다를 바 없다. 생태계 보호, 천연 기념물 보호 등으로 자연도 인류의 손길로 가공되었다. 짐승도 인간의 손길을 통해 반려 동물이라 부르며 아끼고 있다. 짐승을 반려가 되게끔 가공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한번 문명으로 가공된 짐승은 자연에서 가공된 짐승과 달리 자연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변화 이전의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개념은 일반에서 벗어난 사고 확장이 되고 나서 이해할 수 있고, 그 전에 이 개념을 이해하면 일반에서 벗어난 사고 확장이 가능해진다. 본인의 인식에서 벗어난 존재가 있음을 이해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2) 가공 인식


모든 인류는 동일 종에 속한다. 인간이 동일한 종임에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것은 사회를 이뤄 다양한 문화와 문명으로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짐승을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같은 종의 짐승은 대부분은 본질 차이가 없다. 생활 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명인은 가공 수단에 따라 생활 양식이 크게 달라진다. 바로 이웃 나라라 하더라도 언어부터가 아예 달라진다. 유전자, 자연, 문화, 문명 순으로 가공 레벨이 달라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문명인일수록 복잡한 가공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시인과 문명인은 가공에 의해 명백하게 다른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동일 종에 속한다는 이유로 모든 인종이 비슷한 인간이라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공 개념으로 보면 같은 소재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스마트폰을 비슷한 스마트폰으로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잘못된 인식이다. 스마트폰은 가공 수단에 따라 기본 성능은 물론이고 설치된 소프트웨어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도 가공 수단에 따라 기본 능력은 물론이고 배운 학문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디지털 기술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 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가공 수단도 비슷해지고 있다. 가공 레벨이 비슷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가공 수단에 의한 결과 차이는 문화와 문명의 차이보다는 체제의 차이가 더 크게 되었다. 왕정과 같은 집단주의 체제에 가까운 체제일수록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되어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것으로 개인보다 본질의 차이가 적고, 민주정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에 가까운 체제일수록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 개인마다 본질 차이가 크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면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유전자 변형 식품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검증되었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지적 장애나 성격 장애라 할지라도 사회 체제에 맞게끔 가공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무조건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한번 가공된 제품이라 하더라도 재가공하면 본질이 바뀌듯, 한번 가공된 인간이라도 재가공하면 본질이 바뀐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가공 자유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가공은 개인의 자유다. 육체든 정신이든 그것을 가공하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자유에 해당한다. 한국은 개인주의 체제이나 신체발부 수지부모, 부모가 물려준 육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라 가르친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육체 가공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인의 가공은 개인의 자유권에 속한다 의식적으로 인식했으나 어린 시절 영향 받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이것은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아 외가 멋대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제어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도중 가공 개념을 이해하고 부정적 관념이 대부분 사라졌다. 모든 문명인은 이미 가공된 상태기에 사회와 체제 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개인의 가공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부정적 관념을 지웠다. 가공 개념을 통해 스스로를 재가공한 것이다. 


성형, 문신, 성전환 등과 같은 낯선 방식의 육체 가공이나 방송, 게임, 커뮤니티 등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정신 가공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많다. 심지어 화장 같은 가벼운 가공이나 백신이나 약과 같은 필수적인 가공조차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있다. 미성년 화장 금지는 자유권 침해고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같은 것은 생존권 침해다. 적당한 화장은 자존감을 키우고 호감을 사는 것으로 사회 생활을 원활히 하게 위한 가공이고 백신이나 약은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가공이다. 대부분 가공이 잘못된 것은 생명을 위협할 다이어트나 성형 같이 소재를 파괴하거나 마약과 같이 소재 파괴와 전파로 사회 파괴를 하는 경우다. 모든 가공은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자유에 해당한다. 


본 모습을 사랑하라면서 다이어트, 화장, 성형 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정직이 미덕이라는 풍조에 의해 가공 형태를 버리고 무례하기 행동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본 모습인 스마트폰 소재를 스마트폰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 가공된 스마트폰이 거짓된 존재로 느껴지는가? 문명인은 가공된 상태인 가공 형태가 본질이다. 그렇게 본 모습이 좋으면 자연으로 가서 짐승과 부대끼며 적자생존, 약육강식으로 살면 된다. 가공 사회에서 가공 인간으로 살면서 가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문명인은 자연 상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최적의 가공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외모, 표정, 육체, 동작, 말투, 태도, 옷, 신발, 장신구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한 최적의 가공 형태를 유지하면 된다. 또한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그 가공 형태에 대한 존중을 표해야 한다.


존중과 호감은 다른 개념이다. [존중: 1.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 [호감: 1. 좋게 여기는 감정.] 귀하게 대하더라도 좋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비싼 보석은 귀하게 대할 수 있으나, 그 보석에 대한 호감은 결정된 것이 아니다. 본인의 가공 형태를 타인에게 존중을 요구할 수 있으나 호감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의 영역이다. 특정 객관적 기준으로 귀하게 대하는 것과 개인의 주관적 기준으로 좋게 여기는 감정을 가지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존중하겠으나 호감 갖지는 않겠다는 상대에게 호감을 강요하는 것은 가치 강요다. 






1.3 자아


1) 자아 분석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를 가리키는 용어에는 자아가 있다. [자아: 1.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자아 분석으로 자아 파악이 되어야 자아 소재와 가공 영역을 구분하는 것으로 가공 개념을 이해할 수 있고, 자아가 일으키는 현상인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아의 모양, 성질, 구조, 원리, 동력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모양. 자아는 생물체의 육체 외부의 의식 의지 권한이 있는 뇌 영역이 학습을 통해 의식적으로 자각한 것을 가리킨다. 자아는 외부에서 깃든다거나 뇌에서 만들어져 의지 권한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지 권한이 있는 뇌 영역이 자각하면서 자아가 된 것이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을 가진 뇌 영역으로 그 외의 권한을 가진 뇌 영역은 자아 외가 된다. 


둘째, 성질. 자아는 환경으로 가공할 수 있다. 같은 소재라도 자연에서 가공한 자아와 문명에서 가공한 자아는 다르게 된다. 지성을 가진 지적 자아는 지능이 높은 뇌를 가진 상태에서 문명에서 가공했을 때 나타난다. 그 외는 지능이 낮거나 지능이 높아도 자연에서 가공했을 때는 지성을 가진 지적 자아가 될 수 없다. 


셋째, 구조. 뇌의 권한은 자아와 자아 외로 나뉜다. 자아는 육체 외부의 의식 의지 권한이 있다. 자아 외는 유전자, 기억, 세포 신호를 토대로 예측 계산하여 무의식 발상과 동작 실행 권한이 있다. 이 구조는 개념적으로 구분한 것이어서 자아 권한이 있는 뇌 내 영역이 어떤 세포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세포가 주기적으로 생성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포 하나에 자아 권한이 있다면, 해당 세포 손상시 바로 자아를 잃게 되므로 보통 대량의 세포가 모여 자아 권한을 얻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하면 만약 생성되지 않더라도 변화는 되고 있으므로 자아는 계속 달라지게 된다. 그렇게 계속 달라지는 자아 하나를 자아 요소로 구분하고, 자아 요소들이 기억을 공유하여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자아 존재로 구분한다. 자아 요소는 기억과 연동되어 자아 존재가 되는 것으로, 기억 상실로 자아 요소와 기억이 분리되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논리적으로 자아 요소는 단순한 트리거로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자아 요소가 달라지더라도 기억이 이어지면 같은 자아 존재가 된다. 자아는 트리거, 자아 외는 논리 회로 동작 기관으로 기억이란 소프트웨어대로 작동하므로 자아 존재는 기억에 의한다. 


넷째, 원리. 자아는 육체 외부 의식 의지 권한이 있고, 자아 외는 육체 내외부 무의식 발상과 동작 실행 권한이 있다. 세포의 신호로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과 동작 실행을 하면 자아가 의식 의지로 결정한다. 자아와 자아 외의 의지와 실행을 반복하면서 인간은 생각과 행동을 한다. 자아가 의식 의지를 가질 때에는 자아 외가 유전자와 기억과 세포 신호를 토대로 예측 계산하여 실행하는 것으로 생각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자아가 의식 의지를 가지지 않을 때에는 자아 외가 무의식 실행을 하기도 한다.


다섯째, 동력.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는 뇌의 영역이기 때문에 육체를 동력으로 삼아 움직인다. 문명 가공으로 동력으로 삼는 육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식욕, 수면욕, 배설욕 등의 충동을 제어하게 된다. 과한 억압으로 충동을 제어하면 욕구나 욕망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면서 과하게 욕구를 참아 정상적인 동력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수가 있다. 






2) 자아 성장


육체 외부의 의식 의지 권한을 가진 뇌의 영역이 스스로를 자각하여 존재를 인식하면 자아가 된다. 환경 가공을 통해 의지 제어가 능숙해지면서 자아 발달이 되나 육체 성장이 지속되면서 자아 형성이 고정되지 않고 불안정한 유동 자아인 상태가 된다. 2차 성징이 시작하는 약 14세 시기에 성년과 비슷한 육체가 되면서 고정된 자아 형성이 시작된다. 육체는 성년 수준의 제어가 가능해지고 정신은 성년 수준의 사리분별이 가능해진다. 사춘기의 일탈은 2차 성징 이후 성년과 비슷한 육체와 정신을 가졌음에도 2차 성징 이전의 억압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통상 2차 성징이 끝나는 약 18세 자아 형성이 끝이 나서 형상을 이루면서 고정 자아인 상태가 된다. 2차 성징의 시작은 10~14세, 2차 성징의 끝은 15~17세라고 하는데, 보편성과 사회 나이를 고려해 14세와 18세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기는 평균을 의미하는 것으로 빠르거나 늦게 형성될 수도 있고 빠르거나 늦게 형상을 이룰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고정된 자아 형성이 시작되는 2차 성징이 보통 기본 가공의 시작이 되고, 고정된 자아 형상을 이룬 2차 성징의 끝이 기본 가공의 끝이 된다. 기본 가공이 끝나면 웬만하면 인간이 바뀌지 않게 된다. 흔히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기본 가공이 끝났기 때문이다. 자아가 본질이 변하지 않은 채 나이를 먹으면 추가 가공이 되고, 본질이 변하면 재가공이 된다. 언어를 아는 지적 자아에 한하여 기본 가공이 끝난 인간도 재가공을 하면 본질이 변할 수 있다. 


나이는 자아 나이와 사회 나이로 나뉜다. 자아가 인식하는 나이와 사회에 기록된 나이다. 인간은 사회 나이를 오른다고 하여 자아 나이가 오르지 않는다. 특정한 가공 과정을 거쳐야 자아 나이가 오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0세 육체로 30년을 살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의 자아 나이는 10세인가 40세인가? 사회 나이는 40세이겠지만 자아 나이는 10세일 확률이 높다. 자아 나이는 육체 변화, 환경 변화 등을 통해 의식적 절차로 자아가 인식해야 오르게 되는데, 육체와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인식도 변하지 않아 자아 나이가 오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의식적 절차는 학교에 간다거나 새해가 되었으니 떡국을 먹는다거나 연령대에 유행하는 노래를 듣는다거나 같은 사회 나이에 맞는 생활 양식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런 의식적 절차를 겪지 않으면 자아 나이는 보통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의도적 또는 사건사고로 자아 나이가 오르지 않은 인간은 자아 나이와 사회 나이의 괴리를 겪게 된다. 


과거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연령별 의무가 지정되어 사회 나이에 따라 의무를 거칠 때마다 자아 나이도 같이 오르게 되었다. 학교에 간다. 일을 한다.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는다. 개인이 하지 않으면 집단에서 강요하여 하게 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보장됨에 따라 연령별 의무가 줄어들어 많은 이들이 보편적 학교에 가는 미성년 시기나 20대 초반에서 자아 나이가 오르지 않는다. 현재 많은 성년의 미성숙은 개인주의 체제에서 집단주의 체제의 교육 방식이란 가공 수단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체제의 교육 방식은 연령별 의무가 있다 전제하여 생산, 결혼, 출산 등에 대한 교육 과정이 없거나 적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런 교육 과정으로 성장한 이들은 생산, 결혼, 출산에 관한 판단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미성년 성을 터부시하는 종교와 그에 영향을 받은 여성주의와 다양한 매체의 생산, 결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 유도에 의해, 그런 것을 제대로 판단 못해 하지 않는 것을 넘어 부정적으로 보고 하지 않게 되면서 사회 전체가 파탄나게 되었다. [미개한 사회에서 신성되거나 속된 것, 또는 깨끗하거나 부정하다고 인정된 사물 · 장소 · 행위 · 인격 · 말 따위에 관하여 접촉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거나 꺼리고, 그것을 범하면 초자연적인 제재가 가해진다고 믿는 습속.] 이성 관계 갈등, 결혼 및 출산 저하, 경제 활동 둔화 등은 기본적으로 집단주의 체제의 교육 방식 가공과 미성년 성 터부시와 매체의 부정적 인식 주입 때문이다. 그것으로 한국은 다양한 차별이 만연하고 이성을 혐오하고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로 죽음으로 향하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연령별 의무를 전제한 교육 과정에서 벗어나 미성년 시기에 가치 생산, 이성 교제, 성관계, 성문화 등을 전부 교육하는 가공을 해야 한다. 사회에서도 미성년 성을 터부시하거나 생산, 결혼, 출산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연령별 의무가 없어도 개인이 알아서 생산하고 결혼하고 출산한다. 연령별 의무가 없는 한 자아 나이는 반드시 사회 나이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회 나이에 따른 연령별 의무를 버리고, 자아 나이가 보편적 연령별 의무인 고등학교 졸업 시기인 약 19세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산과 결혼과 출산이 가능하도록 가공해야 한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이나 왕정이나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이른 가치 생산, 이른 이성 교제, 이른 성관계가 아동과 여성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 때에 잘못된 것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여 그것에 대한 강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므로 되려 그것을 개인에게 권장해서 자발적으로 행하게끔 해야 사회와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3) 자아 영역


자아는 자아의 권한이 있어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있으나 자아 외는 자아의 권한이 없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가공 이전의 상태와 비슷하게 자아 외와 무의식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인간의 행동에 자아 외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자아 외를 이해해야 가공이 수월해진다. 예를 들어 음식 광고를 보고 음식을 먹고 싶어졌다고 하자. 이 때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 것은 자아의 의지인가 아니면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인가? 자아 외의 이해는 이것부터 시작한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다면 자아 외는 무의식 실행 권한이 있다. 의지와 실행이 분리되었다. 자아의 의지를 자아 외가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자아가 음식 광고를 보고 음식을 먹고 싶어진 것은 자아 외가 세포 신호와 유전자와 기억을 바탕으로 예측 계산하여 음식을 먹고 싶다는 발상을 했기 때문이다. 자아는 그 발상을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의지 권한이 있다. 자아의 의식 의지가 강하면 무의식 발상을 제어할 수 있고, 자아의 의식 의지가 약하면 무의식 발상을 제어할 수 없다. 자아의 의지와 자아 외의 실행에 대해 다양한 예시를 통해 알아보자.


첫째, 예측 계산. 감각, 감정, 욕구, 욕망, 중독 등 자아의 의식 의지를 제외하면 자아 외의 예측 계산에 의한 무의식 발상이다. 세포 신호를 느끼고자 하는 의지는 자아의 권한이나 세포 신호를 느끼는 것을 예측 계산 실행하는 것은 자아 외의 권한이다. 감정은 연기가 아니면 자아의 의지가 아닌 자아 외의 실행으로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사랑하는 것도 증오하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하여 무의식 발상으로 먼저 느끼게 하고 나서 자아가 그것을 계속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하게 된다.


둘째, 반복 학습. 자아는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때 세부적인 계산을 하지 않는다. 자아 외가 반복 학습하여 행동을 예측 계산하는 것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세부적인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좌표를 계산해서 움직이는 인간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것은 자아가 아닌 자아 외가 예측 계산에 의한 무의식 동작을 해주기 때문이다. 자아가 팔을 뻗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하여 자연스럽게 팔을 뻗게끔 동작한다. 자아는 자아 외의 예측 계산으로 보조해주기 때문에 편하게 살고 있다. 


셋째, 환경 적응. 자아는 자아 외가 학습해야 예측 계산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시차 적응이나 긴급 대응 훈련이 필요한 것은 자아 외가 한번 학습해야 예측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익숙한 것을 편하게 느끼는 것은 이미 자아 외가 예측 계산이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학습하지 않은 상황이 닥치면 자아 외가 예측 계산을 하지 못하여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굳게 될 수 있다.


넷째, 매체 영향. 자아는 매체의 영향으로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을 한 것을 본인의 발상으로 착각한다. 한번 매체에서 나온 사상이 머릿속에 들어가면, 비슷한 조건일 때에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하여 무의식 발상을 하게 한다. 그러면 그 사상이 본인의 발상으로 여기면서 매체와 유사한 발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신문, 잡지, 라디오, 방송, 인터넷 등 매체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매체 선동이 유효한 것은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에 의한 것이다. 그러면서 학습한 사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다섯째, 습관 의존. 자아는 자아 외의 예측 계산에 의한 무의식 발상으로 편하게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 무의식 발상에 의존하면서 습관대로만 하게 되는 습관 의존이 발생한다. 이는 자아 나이를 먹을수록 의존성이 높아져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자아 외의 예측 계산은 세포 신호와 유전자와 기억을 토대로 이루어지는데, 자아 나이가 높아질수록 기억의 영향이 커지면서 쌓은 기억대로 동작하게 된다. 과거 자아의 의지로 만들어진 기억에 의한 습관에 의존하면서, 자아 존재는 현재의 자아 요소가 죽어 의지를 잃고 과거의 자아 요소들의 좀비가 된다.


여섯째, 중독 충동. 자아는 자아 외의 예측 계산에 의한 무의식 발상에 의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 중독에 걸려 비만이 된 인간이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하자. 그런데 자아 외가 비슷한 조건일 때 예측 계산하여 음식에 관한 무의식 발상을 하면, 그 발상에 의한 충동으로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중독일 때 충동은 자아의 의식 의지가 아닌 자아 외의 예측 계산에 따른 무의식 발상에 의한 것이므로 자아의 의식 의지로 충동을 이겨내어 중독에서 벗어난 상태를 자아 외가 반복 학습해야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에 의한 충동이 줄어들 수 있다.


일곱째, 참극 발상. 자아의 의지 없이 자아 외가 떠올린 것은 자아의 의지가 아니다. 애초에 권한 밖이다. 자아가 아무리 의식 의지를 가지고 떠올리거나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을 하면 떠올릴 수 있고 하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다. 트라우마는 자아의 의식 의지가 원치 않음에도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을 했기 때문이다. 발상 자체가 자아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도 떠올릴 수가 없을 수 있고,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떠올릴 수가 있을 수 있다. 중독 충동 제어와 마찬가지로 자아 외가 반복 학습을 해야 무의식 발상이 줄어들 수 있다.


여덟째, 수면 자각. 자아는 수면 중 꿈을 제어하는 것은 무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에 권한이 없어 보통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꿈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면 꿈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각몽이다. 일반적이지 않아 자료만 보고 추측하는데, 통상 꿈은 자아 외의 권한이나 꿈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꿈 속에서 의지는 자아의 권한이 되는 것 같다. 


아홉째, 의식 상실. 자아는 무의식 상태에서 의지 권한이 없다. 잠결이나 만취 등으로 의식을 상실했을 때 움직이는 행동은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해서 동작하게 하는 것이다. 무의식 습관 동작은 자아의 의지 권한도 없다. 자아 외를 학습시키는 것으로 자아 외의 예측 계산 제어를 간접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열째, 세포 제어. 자아의 의지로 세포를 제어하지 못한다. 세포 제어는 자아가 아닌 자아 외에 권한이 있다. 육체 내부의 세포 제어는 자아의 의지 권한도 없다. 육체 외부의 의지 권한을 통해 세포 제어를 간접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다양한 예시로 살펴보았다. 자아와 자아 외의 권한 차이로 발생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변수에 의해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해당 변수 조건을 추가해야 한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고 자아 외가 무의식 실행 권한이 있기 때문에 의식 의지 능력이 낮아지면 자아의 뇌 기능이 어떤 이유로 저하된 것일 수 있고, 무의식 발상과 동작의 능력이 낮아지면 자아 외의 뇌 기능이 어떤 이유로 저하된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자아와 자아 외의 권한 차이에 의해 가공 개념이 적절하게 된다.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아 외가 학습하여 예측 계산한 것을 무의식 발상과 동작을 실행하기 때문에,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공되게 된다.






4) 자아 발상


자아 발상은 의식 의지 있는 무의식 발상과 의식 의지 없는 무의식 발상으로 나뉜다. 자아가 의식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할 때가 의지 있는 무의식 발상이고, 자아가 의식 의지를 가지지 않고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의지 없는 무의식 발상이다. 의지는 자아의 권한이나 실행은 자아 외의 권한이기 때문에 자아의 의지만으로 발상하기가 어렵다. 완전 기억 능력과 같은 기억력 또는 뛰어난 새로운 발상과 같은 창의력은 자아의 의지와 자아 외의 발상 능력이 더해진 결과다.


기본적으로 자아 의지가 있어야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을 선별하여 원하는 기억이나 창의를 떠올릴 수 있다. 자아 의지가 있고 나서 발상은 뇌내 저장된 정보를 떠올리는 기억 발상과 뇌내에서 몰랐던 것을 떠올리는 창의 발상으로 나뉜다. 기억 발상은 고정 자아와 고정 관념일 때 고정되어 저장된 정보를 떠올릴 때 유리하고, 창의 발상은 유동 자아와 유동 관념일 때 유동되어 몰랐던 것을 떠올릴 때 유리하다. 고정 자아는 자아가 변하지 않을 거라 여기면 고정된다. 고정 관념은 대상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의심하지 않을 때 고정된다. 유동 자아는 자아가 변할 거라 여기면 유동된다. 유동 관념은 대상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의심할 때 유동된다. 


기억 발상은 고정 자아와 고정 관념이 있는 것이 유리한데, 자아와 관념을 고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자아 나이면 된다. 단 지나치게 많이 자아와 관념이 고정되거나 자아 나이가 높으면 새로운 의견을 수용하는 것도 어렵게 되거나 과한 습관 의존으로 현재 자아 요소가 죽을 수 있으므로, 통상 자아 나이를 20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고정 자아와 고정 관념이 있어도 자아가 의지를 가지고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을 제어하면 새로운 발상이 가능한데, 과한 습관 의존으로 현재 자아 요소가 죽어버리면 자아 의지도 잃게 되는 것으로 무의식 발상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발상도 불가하게 된다. 성년 이후에는 연령별 의무도 징병 말고는 없다시피 하여 자아 나이를 20대로 두는 것은 별 상관 없다. 자아 나이가 이미 20대를 넘었을 때에 자아 나이를 20대로 낮추고 싶다면, 고정된 자아와 고정된 관념을 부정하여 스스로를 재가공 한번 하면 된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고 논리를 통해 무의식에 남은 육체 가공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지운 것과 같이 하면 된다. 


창의 발상은 유동 자아와 유동 관념이 있는 것이 유리한데, 자아와 관념을 유동하기 위해서는 자아 나이를 2차 성징 시작인 14세에서 2차 성징 끝인 18세 사이에 두는 것이 좋다. 2차 성징 시기 이후면 고정 자아가 형상을 이뤄 그대로 고정 될 수 있고, 2차 성징 시기 이전이면 자아가 과하게 유동적이다. 고정 자아가 형상을 이루기 전에 유동 자아 상태로 둬서 유동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자아 나이를 사춘기 시기에 두지 않더라도 유동 자아가 가능하면 상관 없는데, 유동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식하기 쉬운 대상이 있는 편이 좋다. 사춘기 시기에 자아 나이를 두는 것은 사춘기 시기의 혼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동 자아가 가능한데, 그렇지 않은 시기는 그런 혼란이 없어 참고할만한 기준이 되지 못하여 유동 자아가 되더라도 보통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유동 관념은 유동 자아가 되면 수월한데, 모든 관념이 유동적일 수는 없고 의식으로 인식한 관념은 유동적일 수가 있다. 유동 자아와 유동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창의 발상을 하다보면 고정되지 않은 것으로 현재 자아 요소가 발상한 것이 과거 자아 요소가 이미 발상한 대상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발상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발상을 한다. 자아 나이가 사춘기를 넘었을 때에 자아 나이를 사춘기 시기로 낮추고 싶다면, 고정된 자아와 고정된 관념을 부정하여 스스로를 재가공하면 된다. 자아 나이를 20대로 낮추는 것보다는 좀 더 힘들 수 있다. 


자아 나이가 낮으면 발상에 유리하나, 그렇다고 해서 발상 연습을 하지 않으면 발상 능력이 오르지 않는다. 기억 발상은 암기한 것을 발상해보는 연습을 해야 하고 창의 발상은 새로운 발상을 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기억하는 것과 기억한 것을 발상하는 능력은 다른 능력이다. 기억되지 않아서 발상이 안되면 기억력 문제고 기억되었는데 발상이 안되면 발상력 문제다. 알고 있던 것을 발상하는 능력과 알고 있지 않던 것을 발상하는 능력은 다른 능력이다. 자아 의식 의지로 알고 있던 것을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하는 능력은 기억 발상력이고 자아 의식 의지로 몰랐던 것을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하는 능력은 창의 발상력이다. 자아 의식 의지로 몰랐던 것이 창의 발상이기 때문에 발상한 것이 사회에서 새롭지 않더라도 창의 발상 연습이 가능하다. 창의 발상을 연습하여 능력을 올리면 사회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상할 수 있게 된다.






1.4 가공 인간


1) 소재 한계


문명 사회에서 사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문명으로 가공되어 문명인이 된다. 자연 환경에서 사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자연에 대해 배우듯이 문명 환경에 사는 인간도 살아남기 위해 문명에 대해 배운다. 육체 유지 방법, 사회 적응 방법 등을 통해 우선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런 문명 가공은 보통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통해 행해진다. 교육자가 교육을 하는 이유나 학생이 교육을 받는 이유는 각자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생존을 기초로 한다. 


문명 가공을 할 때는 인간 소재에 반드시 한계가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어떤 소재도 물리 한계가 있듯이 인간 소재 또한 물리 한계가 존재한다. 여기서 물리 한계는 인간의 근육 활동 육체 한계와 두뇌 활동 정신 한계를 모두 포함한다. 


첫째, 가변 소재 한계. 가변 소재 한계는 소재 한계가 가변한 것을 말한다. 자아가 의지를 가지고 소재를 단련하면 소재 한계를 넘을 수 있다. 소재 한계는 최종 물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와 현재 심리 한계가 있다. 알기 쉽게 숫자로 비유하겠다. 최종 물리 한계가 200이고 현재 물리 한계는 100이고 현재 심리 한계가 80로 가정하겠다. 인간은 보통 현재 심리 한계인 80까지 버틸 수 있고, 극한에 다다르면 심리 한계를 넘어 현재 물리 한계인 100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현재 물리 한계를 넘을 수는 없다. 현재 심리 한계를 넘어선 단련을 지속하면 현재 심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가 확장되게 된다. 그것을 보통 성장이라 부른다. 현재 심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는 매번 비례하며 확장되지는 않는다. 현재 심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를 과하게 확장하다 육체나 정신이 붕괴하기도 한다. 죽거나 미친다는 것이다. 근육 단련에는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하듯, 소재 한계 확장 또한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그렇게 성장하다 최종 소재 한계에 도달하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 


둘째, 불변 소재 한계. 불변 소재 한계는 소재 한계가 불변한 것을 말한다. 자아의 의지와 관련 없이 단련을 하든 말든 소재 한계를 넘을 수가 없다. 최종 물리 한계 또는 육체 성질 한계를 말한다. 최종 물리 한계는 보통 인간이 도달하는 일이 많지 않아 알기 어렵다. 스포츠를 통해 유추해볼 수는 있다. 인류의 100m 달리기 최고 속도의 공식 기록은 우사인 볼트의 9.58초이다. 보통 인간은 이 이상 최종 물리 한계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최종 물리 한계 수치는 육체 상태마다 다를 수 있으나 최종에 다다르면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동일하다. 육체 성질 한계는 자아 의지로 해결 불가능한 알레르기 같은 것이 있다. 음식 알레르기나 짐승 알레르기 등은 자아 의지로 극복이 불가능할 수가 있다. 먹고 싶어도 못먹고 가까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불변 소재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소재 한계는 보통 현재 심리 한계로 결정되기 때문에 주관적이게 된다. 그런 주관적 기준에 사회 모두가 맞출 수는 없다. 특히 사회 역할이 그렇다. 특정 역할에 필요한 소재 한계를 견딜 수 있는 인간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그렇게 주어진 자격 내에서 소재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방관의 활동 같은 강도 높은 활동을 1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현재 심리 한계를 가진 인간은 그 역할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소방관 역할을 맡고 있다 하더라도 소재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방관 역할에 맞는 평균 현재 심리 한계를 가정하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방관 역할을 수행 중에 현재 심리 한계에 다다르면, 그런 것은 보통 소방관 본인이 가장 잘 알기 쉬우므로 관계자에게 말을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관계자는 소방관의 소재 한계를 보고 한계 확장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소재 한계로 판단하고 휴식을 취하게끔 해야 한다. 만약 소방관이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현재 심리 한계인 상태라면 다른 역할을 맡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소방관이 특수한 상태에 놓여 사리분별이 어렵다면, 소방관 본인이 현재 심리 한계를 말하지 않더라도 관계자는 지켜보다 휴식을 취하게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소재 한계가 발생한다. 감각, 감정, 욕구 등도 뇌내 처리에 의하여 현재 심리 한계가 발생한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 관계에 대한 현재 심리 한계에 따라 내향성과 외향성이 결정되기도 한다. 인간 관계 또한 현재 심리 한계에 의한 것이므로 단련하면 내향성이 외향성으로 바뀌기도 할 것이다. 


현재 심리 한계는 심리를 제어하는 것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상태에서 대상을 대할 때 느끼는 현재 심리 한계는 다를 수 있다. 인간 심리는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인간 심리에 의한 한계를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 






2) 가공 한계


소재 한계 내에 가공 한계는 없다. 유전자 또는 환경에 의한 소재 한계는 엄격하다. 그러나 그 한계 내에서는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다. 극한까지 단련한 스포츠 선수를 제외하면 최종 물리 한계를 아는 인간은 드물다. 특히 지능은 더욱 더 그렇다. 지능의 한계를 아는 인간은 많지 않다. 지능 검사 등은 현재 소재 한계에 해당하는 것이지 최종 소재 한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인간의 선천적 재능이 재능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면서 유전자 핑계를 대며 시도하지 않고 포기한다. [재능: 1.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


현재 심리 한계가 인간의 한계를 결정해버리는 일이 잦다. 뭔가 시도하기 전에 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현재 심리 한계에 부딪치고 포기한다. 현재 물리 한계는 100까지 가능한 것을 현재 심리 한계가 80까지만 요구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공개 발언을 꺼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현재 심리 한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인간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고 여기며 그런 것도 선천적 재능에 의한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소재 한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동일 종으로 그 차이가 엄청 크지는 않다. 인간의 한계는 현재 심리 한계로 결정되기 때문에 현재 심리 한계를 넘으면 일반 인간이 하는 것은 다른 일반 인간도 다 할 수 있다. 



소재 한계 내에서 자유롭게 가공하려면 자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고 자아 외는 무의식 실행 권한이 있다. 자아가 무엇을 좋아하도록 느끼게끔 실행하는 것은 자아 외의 권한이다. 꽃 향기를 맡고 그것이 기분 좋다 느끼게 만드는 것은 자아가 아닌 자아 외다. 이렇듯 취향을 느끼게 실행하는 것은 자아의 권한이 아니다. 그러나 의지 권한이 있기 때문에 접촉의 자유는 있다. 무엇을 경험할지 결정하는 것으로 자아 외가 무엇을 좋아하게끔 느끼게 실행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축구와 야구 중 축구를 먼저 보면 축구를 좋다 느끼는 것으로 팬이 될 수 있고 야구를 먼저 보면 야구가 좋다 느끼는 것으로 팬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본인 취향을 가공할 수 있다. 징크스나 루틴도 자아의 의식 의지가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을 제어하기 위한 것 중 하나다. 징크스나 루틴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을 제어하는 것이다. 


자아의 의식 의지로 본인 취향으로 결정하고 접한 것을 자아 외가 무의식 실행으로 좋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자아가 의식 의지로 반복 학습하면 자아 외가 무의식 실행으로 좋게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자아 외를 설득하면 된다. 자아 외는 유전자와 자아 요소의 의지로 만들어진 기억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자아 외를 바꾸는 것은 바꾸기 어려운 유전자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자아 요소들을 설득하는 것에 해당한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고 지금까지 자아 요소를 설득하여 개인의 가공을 부정적으로 여기던 관념을 바꾸는 것으로 자아 외를 바꾼 것과 같이 하면 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필요한 것은 알아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강한 쾌락을 주는 도박이나 마약에 의한 몸 상태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강한 쾌락을 한번 알고 나면 자아의 의식 의지와 별개로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으로 도박이나 마약을 식욕과 같은 기본 욕구로 여기며 갈망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기본 욕구가 될 정도가 되면 본질이 바뀌는데, 보통 그것이 본인의 의지가 아닐 확률이 높으므로 원치 않는 재가공에 해당하게 된다. 도박은 낮은 확률에 의한 쾌감으로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으므로 현금 도박을 경계하면 되고, 마약은 물질에 의한 쾌감으로 술 담배뿐만 아니라 식사로도 경험할 수 있으므로 과한 마약을 경계하면 된다.

 

소재 한계 내에 가공 한계는 없으나 문명에 최적화된 가공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문명에 적합한 언어, 태도, 외모, 욕구, 욕망 등을 갖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뭐든지 가능하다고 문명에 적합한 상태로 가공된 문명 가공 형태를 일부러 깰 필요는 없다. 폭력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으나, 그것을 스포츠가 아닌 범죄로 저지르면 문명 가공 형태가 깨지게 된다. 수많은 명품을 두르고 있어도, 그 명품을 두른 인간의 문명 가공 형태가 깨지게 되면 짐승이 명품을 두른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문명인에게는 문명에 적합한 가공 형태를 만들 자유가 있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지 무의식 실행 권한이 있지 않으므로, 문명에 부적합한 것은 처음부터 겪지 않는 것이 가공 형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3) 소재 파악


자유로운 가공을 위해서는 소재 한계 파악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통 소재 한계 파악을 하기가 쉽지 않다. 최종 물리 한계는 보통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스포츠 기록 정도로 육체는 유추할 수는 있다. 현재 물리 한계는 극한에 다다라야만 일부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으로는 알 수가 없다. 현재 심리 한계는 주관으로 한계를 느낄 때 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심리 상태가 좋지 못하면 현재 물리 한계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현재 심리 한계일 수가 있어 제대로 파악했다 하기가 어려워진다. 


A는 현재 물리 한계 100에 현재 심리 한계가 70이라 가정하고 B는 현재 물리 한계 100에 현재 심리 한계 50이라 가정하자. 그러면 겉으로 보여지는 재능은 A가 더 뛰어나 보일 수 있다. 그러나 B가 현재 심리 한계에서 벗어나 80이 되면 재능은 B가 더 뛰어나 보일 수 있다. 이걸 알기 쉬운 용어로 말하면 자신감 차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심리 한계에 의해 인간의 한계가 결정되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재능과 노력의 비율을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재능은 비슷했는데 현재 심리 한계 차이로 재능이 다른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야에서 성공한 이들은 보통 자신감이 높을 것을 고려하면 현재 심리 한계가 다른 이들보다 높았을 것이다. 재능이 높아보였던 것이 현재 물리 한계가 아닌 현재 심리 한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면, 성공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현재 심리 한계만 벗어나면 성공한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가능한 높은 현재 심리 한계 상태여야 소재 파악이 수월해지게 된다.


유전자 검사, 지능 검사, 신체 검사 등을 현재 심리 한계가 높은 상태에서 검사하여 가능한 현재 물리 한계를 파악해야 한다. 영양분과 스트레스 유무도 고려해야 한다. 비슷한 유전자라 하더라도 영양분과 스트레스 유무에 따라 소재가 다를 수가 있다. 그렇게 소재를 제대로 파악해야 자유롭게 가공이 가능해진다.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본인의 소재를 파악하여 스스로가 스스로를 최적화된 가공을 해야 한다. 소재 파악은 혼자서 하기 어려우므로 교육 기관에서 주관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소재 파악은 개인의 의지로 행해져야 한다. 타인이 멋대로 소재 파악한다고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 특정 개인에게 면접관이 본성을 보겠다고 압박 면접을 하거나 연인 부모가 본성을 보겠다고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타인이 그렇게 본성을 보겠다고 소재 한계를 멋대로 파악하면 의외로 쉽게 문명 가공 형태가 깨질 수 있다. 현재 심리 한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타인이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문명 가공 형태가 깨지면 문명 사회에 부적합하게 되면서 사건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 사건사고의 원인은 누가 되겠는가? 남을 실험하고 싶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을 해야 한다. 인간을 실험하고 나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들 사건사고의 원인은 실험한 인간이 된다.






4) 가공 파악


기본 가공은 보통 2차 성징 시작에서 2차 성징 끝 사이에 행해진다. 2차 성징 시작 시기에 육체 기능이 대부분 동작하고, 자아가 고정되어 고정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시작은 10~14세, 끝은 15~17세로 개인 편차가 심하여 시작은 14세, 끝은 18세로 정해둔다. 2차 성징 이전은 기본 가공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기본 가공 준비에 해당한다.


기본 가공은 현재 심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다. 기본 가공은 체제, 감각, 가치, 통치, 성애를 통해 문명인이 되기 위한 기본을 마련하고, 동력, 능력, 학문 등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결정한다. 개인별 성장 동력을 찾아 능력을 키우고 학문을 하는 것으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한계가 확장된다. 그러면서 인간은 최종 물리 한계까지 성장한다. 보통 일반적으로 선천적 재능이라 여기는 것은 초기 심리 한계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최종 물리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초기에 빠른 성장을 했더라도 후기에 성장이 더뎌지거나 최종 소재 한계가 낮을 수 있고, 초기에 느린 성장을 했더라도 후기에 성장이 빨라지거나 최종 소재 한계가 높을 수 있다.


추가 가공은 기본 가공에 추가로 가공하는 것으로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과거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관습에 따른 연령별 의무가 있었다. 지금과 달리 결혼 시기, 생산 시기, 출산 시기 등이 다 정해져 있었다. 만약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하도록 강요했다. 그런 의무를 행할 때마다 육체 변화와 환경 변화를 인식하면서 추가 가공이 되었다. 동시에 자아 나이도 사회 나이를 따라가게 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법적으로 강제되는 교육의 의무와 남성의 경우 징병의 의무를 제외하면 관습에 따른 연령별 의무를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추가 가공도 개인별로 편차가 심해지게 되었다. 보편적 시기에 비슷하게 추가 가공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성장을 자각하는 시기에 추가 가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개인별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에는 법적 의무 시기에 추가 가공된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신세대는 성장을 해도 자아 나이가 20대 초반일 확률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미성년 시기에 가치, 성애 등에 대한 가공이 미비하여 연애, 생산, 결혼, 출산 등이 저하되는 것으로 사회와 체제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사회 전체가 파탄났다.


재가공은 기본 가공을 다시 가공하여 본질을 바꾸는 것이다. 자아의 본질을 바꾸면서 다른 사람이 된다. 자아는 기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같은 자아 존재가 되기 때문에 특정 자아 요소 시기에 자아의 본질을 바꾸더라도 기억을 공유하면 같은 존재가 된다. 재가공은 변화의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하거나, 다른 체제인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하거나, 가공 형태가 파괴되어 범죄를 저지를 것 같거나 저질렀을 때에 사회에 적합하기 위해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제대로 재가공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 불법 종교이나 불법 도박에 빠졌을 때에 어떤 식으로 본질이 바뀌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은 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려울 뿐이다.



가공 대상은 크게 육체와 정신으로 나뉜다. 육체 가공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아니기에 따로 다룰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육체의 어느 부위를 가공하려면 어떤 방식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기가 쉽다. 먹는 음식, 수면 시간, 단련 방법 다 공개되어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정신 가공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에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인간의 기본은 유전자에 의한다. 기본적인 생각과 행동의 구조와 원리는 유전자에 의한다. 유전자에 설계된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이 언어를 익혀 체계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능해지면서 유전자와 사상의 영향력 경쟁이 시작된다. 보통 문명 가공 레벨이 높을수록 생각과 행동에서 구조는 유전자의 영향이 크고 원리는 사상의 영향이 크고, 문명 가공 레벨이 낮거나 형태가 무너질수록 구조와 원리 모두 유전자의 영향이 커지게 된다. 환경은 유전자와 사상 둘 다 적용되는 전제다. 


문명 가공 레벨이 높으면 생각과 행동의 원리는 사상의 영역이 커진다. 유전자 구조 내에서 문명인이 기본 욕구를 느끼게 되면 문명으로 가공된 원리에 의해 기본 욕구 대상이 결정된다. 유전자 구조 내에서 식욕이 생긴다. 식욕이 생기면 기억에 존재하는 음식 중에서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에 의해 음식이 결정되어 자아에 전달한다. 전달 받은 자아는 그 음식을 자아의 의식 의지로 먹을 것을 결정한다. 먹기로 결정하면 식사를 하고 먹지 않기로 결정하면 또 다른 음식을 떠올리도록 자아 외에게 전달한다. 일반 문명인의 생각과 행동의 구조와 원리는 보통 이런 식이다. 


이런 원리는 사상을 기본으로한 논리 회로로 보면 이해가 쉽다. [논리 회로: 1. 논리 소자를 사용하여 구성한 회로. OR, NOT, AND 회로 따위의 논리 연산을 하는 회로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논리 회로는 디지털 기술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가공과 비슷하게 인간의 가공을 파악할 때에 가장 적절해 보여서 쓰도록 하겠다. 사상 논리 회로에 유전자, 환경, 사상 등의 조건이 더해져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나오게 된다. 논리 회로의 순서는 사상의 영향력에 따라 정해진다. 비슷한 논리 회로가 있을 때 영향력이 높은 것부터 적용된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할 때 손이 아닌 식기 도구를 쓰는 것은 식기 도구를 쓰는 논리 회로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사상은 강제력이 높은 것부터 영향력이 높게 된다. 가장 영향력이 높은 사상은 지금까지는 강제력이 높은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가치였다. [도덕: 1. 사회 구성원들의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 [윤리: 1.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2. 인간 행위의 규범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도덕은 학문 이전의 옳고 그름을 말하고 윤리는 학문 이후의 옳고 그름을 말한다. 모든 옳고 그름이 학문화가 되지 않았으므로 도덕과 윤리는 사회에서 모두 쓰인다. 도덕과 윤리에 있는 옳고 그름이 자연법이 되고, 자연법을 기준으로 실정법이 만들어졌다. 그 실정법을 기준으로 사회의 질서가 정해진다. 통상 집단주의인 왕정 체제에서의 질서는 이런 구조로 이루어졌으나, 개인주의인 민주정 체제에서는 현대 체제가 더해지면서, 실정법에 도덕과 윤리로 만들어진 자연법보다 체제의 기초인 헌법이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아직 도덕과 윤리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와 체제의 영향력이 비슷한 상태다. 도덕과 윤리는 집단주의 체제에 속한다면 현재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에 속하는 것으로 서로의 성질이 달라 충돌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에 의해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이 현대 문명의 혼란을 부른 가치 충돌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가장 영향력이 높은 사상은 도덕과 윤리 또는 체제 가치가 된다. 



보편적 윤리인 이타주의를 통해 논리 회로를 이해해보자. [이타주의: 1. 사랑을 주의로 하고 질서를 기초로 하여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타인의 행복과 복리의 증가를 행위의 목적으로 하는 생각. 또는 그 행위] 이타주의는 다수의 인간이 인식하는 윤리에 해당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을 희생한다는 행위가 절대 옳다 여겨지면서 강제력이 높게 되고 있다. 이타주의가 절대적으로 옳다 전제하기 때문에 이타주의에 의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생기게 된다. 이타주의에 의해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 때, 좋은 현상으로 보이면 이타주의 덕분이라 말하지만 나쁜 현상으로 보이면 다른 사상 때문이라 말한다. 이타주의는 언제 어느때도 좋은 현상으로 보이게 된다는 인식 오류를 만든다. 그렇기에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단순한 논리 회로로 바라봐야 한다.


이타주의의 사전적 정의에서 자잘한 것을 빼면 다음과 같이 남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한다.’ 이것이 이타주의의 기본 논리 회로다. 여기서 행복, 희생 같은 개념이 인간 관념으로 자리잡아 논리 회로의 요소가 된다. 이것이 윤리와 같이 강제력이 높게 되면, 이것을 근거로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으므로, 나의 행복을 위해 네가 희생해라.” 이타주의를 윤리로 여기면 이런 논리가 성립된다. 이것이 보통 전체주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 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으므로, 국가의 행복을 위해 국민이 희생해라.” 파시즘과 나치즘 같은 모든 전체주의의 기본은 이타주의 논리 회로다.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환경 조건이 들어간다 해보자.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게 되면서 개인에게 강요를 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한다.’에 강요 조건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개인에게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그런데 왕정에서는 사회적 힘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강요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이, 보통 본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이것이 신분 제도 등의 수직 사회를 성립시키는 근간이 된다. 물론 힘을 가진 인간이 본인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 가 있으나, 그것은 힘으로 억누를 수 있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강요 조건이 들어가면서 일방적 전체주의가 성립되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의 권리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강요를 할 수 없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한다.’에 자유 조건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이 본인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민주정에서는 사회적 힘이 동등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이것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성립시키는 근간이 된다. 만약 희생하지 않으려 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희생했는데 왜 너는 희생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윤리적 비난을 하는데, 그것을 힘으로 피하기도 어렵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자유 조건이 들어가면서 상호적 전체주의가 성립되게 된다.


해당 논리 회로에 어긋나게 되거나 그런 현상을 목격하면 불쾌감, 불안감, 초조함 등을 느낄 수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각과 비슷할 수 있다. 도덕과 윤리와 같은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강박증까지 될 수 있다. 도덕 논리 회로가 어긋나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도덕적 강박증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강박증이 있으면 도덕에 어긋나는 것을 볼 때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런 것을 양심이나 죄책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체주의는 윤리인 이타주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로 만들어진 자연법을 질서로 삼은 곳에서는 양심과 같은 것에 의해 사라지지를 않게 된다. 반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를 기초로 삼은 헌법을 질서로 삼은 곳에서는 체제 합리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현재 다수의 국가에서 자연법과 헌법의 충돌이 발생하여 전체주의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나 아직 많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이타주의가 아닌 이기주의가 필요하다. [이기주의: 1.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여겨지는 순간부터 개인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사회 일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데 어떻게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지 궁금해할 수 있는데,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위하면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사회 일반의 이익이 얻어지게 된다.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보호가 보통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을 위해 국가 구조 유지는 개인의 이익이 된다. 그런 상태에서 모든 개인의 이익 추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정한 법, 정책, 제도가 도입되게 된다. 이런 구조를 통해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야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사회 일반의 이익이 얻어지게 된다. 


현재 이기주의 사전적 정의는 이타주의를 절대적으로 옳게 여기게끔 만들기 위해 모순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의지로 행한 것이 개인이 이익이다. 그것을 전제하면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타인의 의지로 행한 모든 행위는 이타주의가 되고, 본인의 의지로 행한 모든 행위는 이기주의가 된다. 타인의 의지면 본인을 위하든 타인을 위하든 이타주의가 되고, 본인의 의지면 본인을 위하든 타인을 위하든 이기주의가 된다. 이타주의로는 희생을 강요하거나 받을 수 있지만 이기주의로는 희생을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보통 유전자 또는 사상 논리 회로에 다양한 조건이 더해지면 나오는 결과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다. 전체주의가 체제 가치에 의해 나쁘다는 인식하는 인간이 많으나, 전체주의가 윤리에 의해서 나타났음을 인식하는 인간은 드물다. 윤리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기 때문에 전체주의의 원인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된 것이다. 그냥 논리 회로로 보면 단순히 영향력이 높은 사상 논리 회로 순서대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영향력이 높은 도덕과 윤리와 체제 가치가 대부분 한국 사회 현상의 근본 원인이 된다.






1.5 가공 사회


1) 가치 성질


가치는 판단 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말한다. [가치: 3.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진리, 도덕, 아름다움 등과 같이 판단이 가능하면 가치가 된다. 인간이 가치를 판단하여 평가하는 것을 통해 사회가 조직된다. 왕정에서는 소수 권력자가 사회를 조직하고 민주정에서는 모든 개인이 사회를 조직한다. 대표적인 개인의 사회 조직 제도가 바로 선거 제도와 시장 제도다. 


선거 제도는 선거를 통해 개인이 후보자의 가치를 평가하여 통치 대행자를 선출한다. 일반적인 인사 제도와 비슷하게 통치 대행자를 선출할 권리를 동등하게 한표씩 나눠서 분배한다. 개인은 통치 대행자에게 모든 주권을 위임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 개인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이 권력을 가지고 강제력을 행사해야 본인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시장 제도는 시장을 통해 개인이 상품의 가치를 평가한 것을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게끔 한다. 생산자는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여 가격을 매겨 팔고, 소비자는 시장에 있는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여 가격이 적절하면 구매한다. 만약 생산자가 파는 상품 가치에 비해 가격이 높다고 소비자가 평가하고 구매하지 않으면 판매되지 않으면서 수요가 공급에 비해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생산자는 상품을 팔기 위해 상품 가격을 낮추면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


선거 제도와 시장 제도는 개인주의 체제의 제도로 집단주의 체제의 가치로 접근하면 제도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게 된다. 선거 제도에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특정 후보를 선출할 것을 개인에게 강요하면서 선거 원리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개인의 선거권이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 제도에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상품 가격을 맞출 것을 담합하면서 시장 원리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소비자가 상품의 가치를 평가한 것과 무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치는 사회를 조직하는 기준이 되어 가공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 성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논리 회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치는 도덕과 윤리와 체제 가치다. 대부분 도덕과 윤리는 통상 유교, 불교, 기독교와 같이 종교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종교 가치로 부르겠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집단주의적인 종교 가치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적인 체제 가치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공존할 수 없는 정반대인 성질을 가진 가치가 어떻게 해서 공존하게 된 것인지는 인류 역사를 봐야 알 수 있다. 매우 요약해서 설명하겠다.



원시인은 유전자 논리 회로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유전자에 의한 기본 욕구를 가장 빠르고 쉽게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인 정복과 지배를 활용했다. 기본 욕구가 선천적이고 정복과 지배는 기본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후천적이다. 인간의 유전자에 의한 것이기에 대부분 인류에게서 비슷한 사회가 탄생했다. 정복과 지배를 반복하며 성장한 사회는 정복자와 피정복자로 나뉘어 신분 제도가 나타났다. 그런 사회는 폭력으로 질서를 구축하였기에 폭력에 의해 언제든지 신분이 달라질 수 있어 사회 구조가 굉장히 불안정했다. 인간은 힘들 때 현실을 도피하지 않으면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구조가 불안정했다. 이 두 가지를 보완한 것이 바로 종교다. 종교 창시자는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가치를 주장했고, 현실 도피할 수 있는 가치를 주장했다. 도덕과 신비다. 도덕으로 폭력을 대신할 질서를 구축하고, 신비로 현실을 도피할 근거를 마련했다. 도덕으로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등이 있고, 신비로는 영혼과 사후 세계 등이 있다. 


종교의 도덕과 신비가 인류 사회에서 보편적인 이유는 자연 선택과 비슷한 사회 선택에 의한 것이다.  [자연 선택: 1. 자연계에서 그 생활 조건에 적응하는 생물은 생존하고, 그러지 못한 생물은 저절로 사라지는 일.] 당시 신분 사회에 적합한 가치를 주장한 종교는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종교는 저절로 사라졌다. 금욕주의는 필요 이상 욕망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으로 신분을 넘보지 못하게 했고, 이타주의는 사회의 행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명분이 될 수 있었다. 영혼은 전생과 후생의 근거가 되어 현생의 고행을 견디게 만들었고, 사후 세계는 천국과 지옥을 통해 도덕을 지키게 만들어 신분 사회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가치를 주장한 인간은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런 식으로 활용된 사상의 가치가 살아남았다. 사회에 선택 받지 못한 사상은 보통 살아남기 어려웠다.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게 되면 신분 제도가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권력자가 채택하지 않고, 개인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착취하면 사회의 힘이 약해져서 다른 사회의 침략으로 사회 구조가 붕괴하기 때문에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실제 부적합한 사상을 선택한 사회는 사라졌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법가와 같이 평등한 권리를 주장한 사상은 소외되고 윤리가 다른 종교와 유사했던 정치사상인 유학과 유학처럼 종교화가 된 것이 살아남았다. 수많은 윤리 중에서 종교 가치가 살아남은 것은 종교와 같이 구심점이 있어야 사상이 오랫동안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사상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유럽에서 잊혀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사회 선택이 일어나게 되면서 인류의 종교 가치가 비슷하게 되었다. 이런 형태의 사회가 중세까지 이어지게 된다. [중세: 1.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하나로, 고대에 이어 근대에 선행하는 시기.]



각국 문명 레벨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사회 구조와 가치인 상태에서 서양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다. [르네상스: 1. 14세기~16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화 혁신 운동. 도시의 발달과 상업 자본의 형성을 배경으로 하여 개성·합리성·현세적 욕구를 추구하는 반 중세적 정신 운동을 일으켰으며, 문학·미술·건축·자연 과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유럽 문화의 근대화에 사상적 원류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이슬람 등을 거쳐서 발전한 자연 계열의 탐구를 받아들이면서 대항해시대의 정신적·기술적 토대가 마련되게 된다. 종교 가치 논리 회로에 르네상스 조건이 들어가면서 대항해시대의 유럽 식민화가 합리화되게 되었다. 그 합리화에는 종교 전파가 들어가 식민화 항선에는 선교사가 탑승하여 종교를 전파하게 되었다. 대항해시대를 통해 유럽은 큰 부와 많은 정보를 쌓고 학문을 발전시키면서 인쇄술 등과 같이 종교 개혁과 과학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종교 개혁: 1. 16세기에 유럽에서 로마 카톨릭교회에 반대하여 일어난 개혁 운동. 1517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제시하여 면죄부 판매를 공격한 데서 비롯하였는데, 개인의 신앙과 성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성립되었다.] [과학 혁명: 1.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자연 과학 분야의 획기적 변혁. 근대 과학의 확립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식의 거대한 혁명을 일으켰다.] 


종교 개혁을 통해 개인의 권리가 증진되고, 과학 혁명을 통해 개인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술이 나타나면서 이월 혁명과 산업 혁명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월 혁명: 1. 1848년 2월에, 프랑스에서 왕정에 반대하여 시민이 일으킨 혁명. 국왕 루이 필리프가 망명하고 제이 공화정이 수립되었으며 유럽에 자유주의 혁명 운동이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 혁명: 1. 18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생산 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 조직의 큰 변화. 영국에서 일어난 방적 기계의 계량이 발단이 되어 1760~1840년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계속 일어났다. 수공업적 작업장이 기계 설비에 의한 큰 공장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자본주의 경제가 확립되었다.] 종교 가치인 기독교 평등주의 논리 회로에 개인의 권리 조건이 들어가면서 자유주의 사상이 합리화되게 되었다. [자유주의: 1. 17~18세기에 주로 유럽의 신흥 시민 계급에 의하여 주장된 시민적·경제적 자유와 민주적인 여러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사상이나 운동. 로크, 루소, 벤담, 밀 등이 주창하였으며,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개인의 권리를 주장한 자유주의 사상은 왕정과 신분 제도와 공존하지 못하게 되면서 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민주주의: 1. 국민이 권력이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국가 체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자리잡았으나, 국가 질서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집단주의 체제에 적합한 종교 가치가 남아버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체제 가치와 종교 가치와 같이 정반대의 성질의 가치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자본주의와 시장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자본주의: 1.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서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하여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 [시장주의: 1. 가격 체제에 의해 자원 분배와 생산량의 조절이 이루어지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공공 서비스를 생산하고 공급하자는 태도.] 종교 가치인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자유 조건이 들어가자 자유방임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자유방임주의: 1. 경제 정책에서, 국가 권력의 간섭을 최소한도로 제한하고 사유 재산과 기업의 자유를 옹호하려는 이론. 18세기 중기의 자본주의의 기본적 정책으로, 스미스 같은 고전학파 학자들이 체계를 세웠다.] 당시 사회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등장하고 있었으나, 과거 신분 제도의 관념에 의해 사회적 힘이 동등하단 인식이 부족하여, 서로가 서로를 희생시키는 상호적 전체주의가 아닌 일방적으로 상대를 희생시키는 일방적 전체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자본가는 자유를 명분으로 농노와도 다를바 없다고 인식되었던 노동자를 착취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왕정의 신분 제도와 다를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 피에 의한 신분 제도가 아닌 돈에 의한 신분 제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자본가의 착취에 의해서 사회에서 이런 생각이 퍼지게 된다. 개인의 자유가 인간을 차별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이 평등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주의: 1. 사유 재산 제도를 폐지하고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여 자본주의 제도의 사회적·경제적 모순을 극복한 사회 제도를 실현하려는 사상. 또는 그 운동.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사회 민주주의 따위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공산주의: 1. 마르크스와 레닌에 의하여 체계화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입각한 사상. 재산의 공동 소유가 옳다고 주장하며 생산 수단의 사회화와 무계급 사회를 지향한다.] 종교 가치인 기독교 평등주의 논리 회로에 집단 평등 조건이 들어가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합리화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합리화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집단 평등을 추구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과 유사한 체제가 되어버리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 체제가 되면서 근대로 진보했다가 집단주의 체제인 공산정 체제가 되면서 중세로 퇴보한 것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공산정이 왕정과 유사하게 된 것은 왕정과 유사한 체제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에 의한 것이다. 하나는 종교 가치에서 벗어난 체제를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었던 것에 의하고, 둘은 종교 가치 외의 다른 질서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것에 의한다. 그렇기에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주장하지 못하고 집단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퇴보를 하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는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충돌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왕정, 신정, 공산정에 머물러 있는 국가도 개인주의 체제의 체제 가치에 영향을 받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소련의 붕괴로 이념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소련이 붕괴했다 해서 소련을 성립시킨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결코 그렇지가 않다. 진영으로 나뉜 냉전과 별개로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는 더욱 더 충돌하고 있다. 그야말로 가치 충돌의 시대다. 개인주의 체제인 상태였으나 신분 제도와 종교 가치의 영향으로 모든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종교 가치인 기독교 평등주의 논리 회로에 집단 평등 조건이 들어간 사상이 유행되게 된다. 바로 PC주의와 여성주의다. [political correctness: 1. 정치적 정당성(차별적인 언어 사용·행동을 피하는 원칙)] [여성주의: 여성의 사회, 정치, 법률상의 권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경향이나 태도.] 공산주의가 왕정의 정복 방식과 비슷하게 폭력적으로 권리를 획득했던 것과 같이, PC주의와 여성주의 또한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얻는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절대적 이익 개념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PC주의와 여성주의의 대상에 속한 집단은 절대적으로 이익을 얻는 결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약자에 속했던 이들이 절대적 이익을 얻다 보면 강자에 속했던 이들과 권리가 비슷해지면서 평등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평등이란 종교 가치는 윤리가 절대적인 것과 같이 절대적이게 되면서, 평등을 명분으로한 주장 또한 절대적으로 여겨지며 강제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평등을 명분으로 절대적 이익이 성립되면서 온갖 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흑인이나 성소수자는 어떤 매체에도 할당제를 강제하면서 다른 인종이나 성애를 차별하거나, 약자는 약자의 작은 금액의 절도 범죄는 죄가 아니라 하면서 판매자를 차별하거나, 여성은 능력과 무관하게 할당제와 가산점을 주장하거나 성인지 감수성을 말하며 무죄 추정의 원칙조차 부정해버리는 것으로 남성을 차별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종교 가치로 보면 정당할 수도 있으나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체제 가치로 보면 명백하게 부당하다. 종교 가치의 평등은 집단주의의 평등이고 체제 가치의 평등은 개인주의의 평등으로 분명하게 다르다. 개인주의의 평등은 사회학적 인종 · 성별 등과 같은 집단 평등이 아닌 모든 개인의 평등이다. 이외에도 오늘날 대부분 불합리한 사회 문제는 가치 충돌에 의한다. 앞으로는 체제와 질서 모두 개인주의 체제 가치로 진보해야 한다.






2) 가치 충돌


오늘날은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가 충돌하는 가치 충돌의 시대다. 그런데 본래라면 진작에 체제 가치는 종교 가치에 밀렸을 확률이 높다. 인간의 인식까지 조작하여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만드는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윤리의 영향이 그만큼 크다. 그럼에도 체제 가치가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존재가 크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공동체 사상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유보다 평등을 중시하고 민족과 같은 공동체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은 식민지 독립을 통해 자유를 중시하고, 서양 문명 입장에서 신대륙 국가였기에 이민족 국가가 되어 민족과 같은 공동체 구심점이 지나치게 많아 하나의 공동체 구심점을 만들 수가 없었다. 미국은 기독교 가치관이 있었음에도 자유를 추구하고 단일 민족과 같은 공동체가 성립되기 어려워 공산주의 열풍에서 벗어나 반공주의의 주축이 되어 개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로 자리잡자, 종교적 가치관을 가진 선진국에서도 개인주의 체제를 유지하거나 사회 민주주의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체제 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 사회 민주주의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의 결합으로 체제 충돌에 의해 진보할 수 없는 체제지만, 그래도 개인주의 체제의 가치가 살아남아 개인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었다. 다수의 공산주의 국가조차도 경제는 시장주의를 받아들여 개인주의 체제의 일부를 수용하게 되었다. 식민지 독립 국가, 신대륙 이민족 국가, 세계 최강 국가. 이 요소가 모여 인류는 개인주의 체제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 종교 가치 영향이 높은 한국이나 일본이 개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미국 영향이 굉장히 크다. 만약 미국이 없었다면 종교 가치에 의해 체제 가치가 밀려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많은 개인이 고통 받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수천 년간 종교 가치로 가공된 인류가 종교 가치를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 미국에서 디지털 기술로 민족을 초월한 공동체 구심점이 생기면서 미국조차도 PC주의와 같이 집단주의 사상이 퍼지고 집단주의적인 노조가 과거보다 활성화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은 다양한 종교 가치로 가공되었다. 종교의 보편적 가치인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와 유교의 가치인 수기치인, 삼강오륜, 정조관념 등으로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차별적인 인간으로 가공되었다. 자유보다 억압을 추구하고 역할보다 권위를 중시하며 정당한 평등보다 부당한 차별을 원하는 것은 종교 가치에 의한 것이다. 누군가는 본인이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차별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데, 종교 가치보다 체제 가치로 가공된 영역이 많을 경우에는 그럴 수 있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충돌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다. 


이런 종교 가치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가 충돌하면서 수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 파탄이다. 연령별 의무를 전제한 교육과 성 터부시 등은 종교 가치로 만들어진 자연법을 근거로 하고, 연령별 의무가 사라진 것은 체제 가치를 기초로 한 헌법을 근거로 하기에 저출산이나 사회 활동 둔화 등과 같은 사회 파탄은 가치 충돌이 원인이 된다. 이외 사회 전반적으로 대부분이 종교 가치에 의하여 체제 가치가 훼손되면서 사회가 파탄나고 있다. 입시나 취업과 같은 공정 경쟁이 필요한 곳에서는 인맥에 의한 비리로 공정 가치 훼손이 발생한다. 시장 거래와 같은 공정 거래가 필요한 곳에서는 담합에 의한 가격 통제로 시장 원리 가치 훼손이 발생한다. 인간 관계와 같은 평등 관계가 필요한 곳에서는 인권을 명분으로 평등 가치 훼손이 발생한다. 


인간의 생활 양식은 종교 가치나 체제 가치로 규정된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생활 양식을 통해 질서가 유지되었다. 종교 가치는 “금욕적으로 살아라”, “이타적으로 살아라”, “연령에 차례가 있게 살아라” 등과 같은 구체적인 지시로 비슷한 생활 양식을 공유하게 하였다. 그 중 이타주의에 의해 전체주의적이게 되면서 특정한 생활 양식이 절대적이게 된다. A 사회 나이에는 무엇을 하고, B 사회 나이에는 무엇을 한다. 특정한 기준으로 줄을 세워 판단한다. 이러한 정해진 생활 양식에 의해 한국은 완벽주의적인 태도가 나타나게 된다. 완벽주의는 윤리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과 이타주의에 의한 전체주의의 결과 중 하나다. 한국에서 전체주의적인 생활 양식이 나타난 것은 종교 가치에 의하여 왕정의 생활 양식과 유사해졌기 때문이다. 종교 가치는 왕정의 생활 양식이라면, 체제 가치는 민주정의 생활 양식에 해당한다. 체제 가치는 자유를 기초로 하기에 민주정의 생활 양식은 본래 종교 가치보다 자유롭다. 그러나 가치 충돌에 의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와 유교 가치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을 파악하면서 가치 충돌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다. [금욕주의: 1. 정신적·육체적 욕망이나 욕구 및 세속적 명예나 이익을 탐하는 모든 욕심을 억제하여 종교나 도덕에서 이상을 성취하려는 사상. 불교나 기독교에서도 이 사상을 볼 수 있다.] [욕구: 1.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 [욕망: 1.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욕심: 1.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금욕주의는 종교나 도덕이 말하는 가치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본 욕구를 제외하면 욕심을 억제하자 주장한 사상이다. 종교나 도덕은 가치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사랑, 평화, 행복 등의 가치에 해로운 것을 악이라 규정했다. 가치의 본질적인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여 표면상으로 보았을 때 가치 훼손이란 악이 될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자고 주장하면서 금욕주의가 성립되었다. 기본 욕구와의 구분을 위해 욕망이라 부르겠다. 금욕주의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은 사회에서 멀어져 오지에서 금욕을 행하면서 일반 인간과 관계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금욕주의가 윤리가 되자 절대적이게 되면서 타인에게도 금욕을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 “금욕이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너는 나쁜 욕망을 가지면 안돼.” 그런데 그 나쁜 욕망이라는 것이 굉장히 애매했다. 종교나 도덕이 말한 나쁜 욕망의 범주는 굉장히 넓었고, 그에 따라 금욕을 강요하는 인간의 기준으로 나쁜 욕망이 결정되어 금해지게 되었다. 


보편적으로는 폭력, 성애, 음주, 도박, 새로운 취미 등에 관한 욕망이 바로 그렇다. 이런 나쁜 욕망은 집단의 이익에 해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이런 종류의 욕망을 행하면 신분 사회의 질서가 흔들렸다. 인간 관계를 파탄나게 할 수 있는 일반 폭력, 성폭력 등과 같은 폭력이나 음주나 도박은 둘째 치고 성애나 새로운 취미가 금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피로 만들어진 신분 사회에서 개인의 성애를 자유롭게 두면 신분이 다른 이들과의 성애로 신분 사회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신분 사회에서는 집안의 결합이라면서 개인의 성애조차 집단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걸 위해 한국에서는 정조관념이나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것을 만들어 가르치며 자발적으로 금욕을 하게끔 만들었다. 새로운 취미가 금욕의 대상이 된 것은 나쁜 욕망의 대상이 모호했기에 가능했다. 힘을 가진 인간이 생각하는 가치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방해되는 것 중에서 본인이 잘 모르거나 싫은 것은 나쁜 욕망이 되어 금욕을 강요하게 되었다. 게임은 물론이고 만화나 영화도 과거에는 탄압받던 취미였다. 한국에서 이런 취미는 수기치인에 의해 단순 입시뿐만 아니라 윤리가 된 모든 학업 가치의 이상에 방해되었기 때문에 당장 입시와 관계가 없을 때도 나쁜 욕망이 되어 탄압당했다. 


국가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가 되었음에도 국가 질서는 종교 가치가 남아서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개인에게 금욕을 강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오늘날 금욕 강요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금욕주의라 할 수 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개인에게 의무를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금욕을 강제하더라도 사회가 작동하였으나,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의무를 제외하면 강요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금욕을 강제하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왜 일, 결혼, 출산을 하지 않냐고요? 욕망이 나쁘다면서요. 그래서 가지지 않았어요. 욕망이 적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데 뭐하러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나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챙기기 위해 아르바이트만 하거나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이성 관계를 맺지 않고 애도 낳지 않을 거예요.” 미성년 시기 학업이란 특정 가치를 제외하면 대부분 욕망을 억제당하며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면서 사회 전체가 파탄난다. “왜 배고파도 일을 하지 않냐고요? 그냥 죽을 거니까요. 욕망은 나쁘잖아요.” 금욕주의 논리 회로로 이미 삶의 동력이 잘려나간 인간이 억지로 살고 있다. 자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바로 죽는다. “왜 일확천금을 바라냐고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기본 욕구 충족은 돈이면 다 되거든요. 자아실현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욕망은 적고 기본 욕구만 많으니까 돈만 있으면 돼요. 실패하면 죽죠 뭐. 그거 말고 바라는 것도 없는 걸요.” 주식, 부동산, 가상 자산 등의 파멸적 대출 투기와 도박이 활성화된다. 


금욕주의 논리 회로에 의해 동력을 상실한 인간은 최소한의 기본 욕구만 충족하면서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났다. 경제 활동 둔화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율과 같은 현상은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금욕주의 논리 회로를 기본으로 한다. 기본 욕구만 남으면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욕망이 없는 인간은 짐승처럼 먹고 자고 싸고 발정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는가? 수기치인에 의해 윤리가 된 학업을 한들 스스로가 원치 않으면 욕망이 없는 상태나 다름 없어진다. 눈을 떠야 할 이유를 모른다. 몸을 일으켜야 할 이유를 모른다. 밥을 먹어야 할 이유를 모른다. 똥을 싸야 할 이유를 모른다. 밖에 나가야 할 이유를 모른다. 인간을 만나야 할 이유를 모른다.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결혼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출산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다. 삶에 더 이상의 의지는 없다. 좀비와 다를 바가 없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그것을 동력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욕망을 억압하면 당장의 종교나 도덕의 이상은 성취될지언정 인간은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 무언가에 지배당하게 된다.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의 결과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종교 가치인 금욕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겠지만,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체제 가치인 욕망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다. 인간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 그 욕망이 법, 정책, 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으면 된다.



이타주의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자고 주장한 사상이다. 개인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선이라 규정하고 본인의 행복만을 위하는 것을 악이라 규정했다. 마땅한 기준이 없고 행복의 원리를 몰라 무작정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옳다 말하는 것으로 이타주의가 성립되었다. 이타주의는 희생하고 싶은 사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타주의가 윤리가 되자 절대적으로 되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한 희생이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너는 희생을 해야만 해.” 타인, 행복, 희생의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희생을 강요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기준이 결정되어 희생이 강요되게 되었다.


보편적으로 충효, 순교, 애국심, 동정심 등과 같은 희생이 바로 그렇다. 이런 희생은 집단의 이익에 이롭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 희생을 하려 하지 않으면 신분 사회의 질서가 흔들렸다. 충효, 순교, 애국심은 둘째치고 동정심이 희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평등하지 않은 신분 사회에서 인간의 동정심이 없으면 약자가 죽어 신분 사회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타인을 돕게 하여 사회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선과 악이나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을 만들어 가르치며 희생을 하게끔 만들었다. 


국가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가 되었음에도 국가 질서는 종교 가치가 남아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오늘날 희생 강요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이타주의라 할 수 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개인에게 의무를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에 희생을 강제하더라도 사회가 작동하였으나,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의무를 제외하면 강요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희생을 강요하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왜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이익을 추구하냐고요? 희생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나의 행복을 위해 희생시켰어요.”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정부와 국민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사회에 불신이 쌓여간다. “왜 기부와 같이 남을 돕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 협박하냐고요? 희생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그래서 나에게도 희생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지극히 옳은 일이죠.” 사회에서 타인을 돕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늘어난다. “왜 타인에게 책임을 미루냐고요? 희생이 옳다면서요. 그래서 희생할 수 있는 책임을 준 거예요.” 사회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이들이 늘어난다. “왜 공감하지 않냐고요? 타인이 나에게 공감을 해야 할 희생을 하면 되는 거예요.” 사회에서 일방적인 공감 강요가 일어난다. “왜 담합을 하고 비리를 저지른 이를 감싸며 내부 고발을 배신자라 규정하고 비난하냐고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옳다면서요. 당연히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담합을 하고 비리를 감싸고 내부 고발을 비난해야죠.” 사회와 체제가 망가진다.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의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바람에 전체주의적으로 되면서 사회가 파탄났다. 연령, 성별, 지역 등에서의 불신이나 갈등 같은 사회 붕괴는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이타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면 어떻게 개인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서로에게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경계하고 있지 않는가? 언제 틈을 보이면 희생시키려 할지 모르기 때문에 날선 태도로 대하게 된다. 희생 당하지 않기 위해 과한 이익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발생한다. 과한 이익에 의해 더욱 더 희생을 강요하면서 갈등이 심화된다. 기준을 잃고 다툼만 남아버린다. 사회에 미움이 남게 된다. 미워하는 이들을 보기 싫어 떠난다. 더 이상 사회에는 아무도 없다.


인간은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야 타인도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할 거라 생각하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수가 있다. 희생을 강요하면 당장 희생을 강요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지언정 희생 당한 인간은 불만이 쌓여 미움과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의 결과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종교 가치인 이타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겠지만,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체제 가치인 이기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 이기가 법, 정책, 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으면 된다.



유교는 정치사상으로 유교 가치는 수기치인이나 삼강오륜 등으로 삼강의 군위신강·부위자강·부위부강이 있고 오륜의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 같이 유교에서 인간이 지켜야할 수직적 인간 관계와 그에 맞춘 강령과 도리 등을 말한다. 왕정의 정치사상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분을 고려한 생활 양식을 제시하여 차별이 윤리가 되었다. “차별이 윤리로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너는 차별 당해야 해.” 왕정의 신분 제도를 기준으로 차별을 강요하게 되었다.


보편적으로 꼰대질, 갑질, 권위, 서열, 연령 차별, 존댓말 등과 같은 차별이 바로 그렇다. 이런 차별은 집단의 이익에 이롭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 차별을 하지 않으면 신분 사회의 질서가 흔들렸다. 꼰대질, 갑질, 서열, 권위, 연령 차별은 둘째치고 존댓말이 차별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언어 체계가 익숙하기 때문에 차별이란 인식이 어려운 것이고 보편적인 높임말이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차별이 이렇게 당연해야만 신분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기에 차별을 윤리로 만들어 자발적으로 차별을 하게끔 만들었다.


국가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가 되었음에도 국가 질서는 종교 가치가 남아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개인에게 차별을 강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오늘날 차별 강요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종교 가치라 할 수 있다. 그 중 한국은 유교 가치가 차별의 윤리적 근거가 된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개인에게 의무를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차별을 강제하더라도 사회가 작동하였으나,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의무를 제외하면 강요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차별을 강요하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왜 입시에 목을 매냐고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기 위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가야 하니까요.” 학력과 학벌 차별과 입시 과열 현상으로 기억 발상 능력은 뛰어나나 창의 발상 능력은 저조하게 되었다. “왜 집단에서 역할에 맞는 능력보다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 좋은 역할을 차지하냐고요? 능력이 있으면 남을 다스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능력에 기준이 따로 없으니까 능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정치적인 능력을 키워서 좋은 역할을 차지한 것이지요.” 사회 역할에 전문성이 사라진다. “왜 꼰대질과 갑질을 하냐고요? 어른과 아이 사이의 도리에 엄격한 차례와 복종해야 할 질서가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그래서 상명하복도 옳다면서요. 복종하지 않은 인간이 그른 거예요.” 연령, 성별, 인종, 직업, 학력 등의 차별과 같은 수직적 인간 관계가 나타난다. “왜 미성년의 이성 교제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터부시하며 차별하냐고요? 여성은 정조를 지키고 남녀는 칠세 이후 한 자리에 앉으면 안 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이성 교제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즐기는 인간이 나쁜 것이에요. 그것이 설령 서로 자유 의지로 행한 것이라도 나쁜 거예요.” 여성성이 억압되는 여성 차별이 일어나고 미성년 시기에 이성 관계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게끔 가공되어 성년 이후에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며 그런 부정적 인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혼이 유행하면서 미성년 이후 연령별 의무가 적은 자유로운 사회가 파탄난다.


유교 가치 논리 회로에 의해 서로에게 차별을 강요하는 바람에 차별적인 사회가 되면서 사회가 파탄났다. 사회에서 차별은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유교 가치를 기본으로 한다. 차별을 윤리로 여기면 어떻게 평등을 이룰 수 있겠는가? 가부장제, 사농공상, 정조관념 등이 차별의 흔적에 해당한다. 한국은 유교를 윤리로 배워 절대적으로 옳다는 인식에 의해 옳지 않다는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유교는 왕정의 정치사상이다. 공자가 있을 때부터 그랬다. 유교의 핵심 사상인 수기치인은 왕정의 위정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유교 가치는 왕정의 신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가치로 차별을 윤리로 만들었다. 차별을 윤리로 여기면서 평등을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서로를 차별하면서 갈등이 쌓여간다. 정당한 평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당한 차별을 강요하며 부당한 이익을 얻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평등을 포기하는 일이 늘어난다. 평등한 사회가 사라진다.


인간은 체제를 기준으로 정당한 평등과 차별을 추구해야 공정한 평등이 가능해진다. 부당한 평등과 차별을 강요하면 당장 그 부당함으로 이익을 얻는 인간은 좋을 수 있을지언정 차별 당한 인간은 불만이 쌓여 미움과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의 결과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종교 가치인 유교 가치 논리 회로가 적합하겠지만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체제 가치인 자유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다. 인간은 정당하게 평등해야 한다. 그 평등이 법, 정책, 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으면 된다.






3) 가치 현상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가치 충돌이 크게 발생하지 않았으나,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가치 충돌이 크게 발생하면서 가치 충돌에 의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가치 충돌에 의한 사회 문제다. 국가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하여 체제 가치를 추구하는데, 국가 질서는 집단주의 체제인 종교 가치에 머무르면서, 질서 속에 사는 인간은 체제에 부적합하게 가공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는 가공 개념과 함께 산업 혁명 시기의 마차와 자동차 비유로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체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마차를 끄는 말에는 당근을 주고 자동차에는 기름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종교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를 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것은 자동차를 운전하겠다는 목적이 있다면 기름을 넣는다는 것은 가치로 판단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체제에서 살아가겠다는 목적이 있다면 체제에 적합하게 사는 것은 가치로 판단할 수 없다.


한국은 국가 체제는 체제 가치로 삼고 국가 질서는 종교 가치로 삼아 마치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는 것과 같이 힘은 충분했으나 체제에 적합하지 못한 태도에 의해 망해가고 있다. 그래도 한국은 체제 가치에 의해 조선이나 북한보다는 풍요롭고 행복하고 안전하다. 조선과 북한은 국가 체제와 질서를 모두 종교 가치로 삼아 마치 마차로 자동차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이 단순히 힘이 부족해서 침략 당해 망하거나 고립되어 망했다. 이렇듯 가치 충돌이 있음에도 종교 가치에 머물러 있는 국가보다는 훨씬 낫다. 한국이 성장할 수 있던 것은 체제 가치에 의한 것이고, 한국이 망해가고 있는 것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종교 가치에 의한 것이다.


인간이 일으킨 사회 문제는 인간에게 영향력이 높은 사상의 논리 회로에 의한 경우가 많다. 각각 사상은 논리 회로로 작동할 때가 있고 논리 회로의 조건으로 들어갈 때가 있는데, 체제는 체제 가치로 작동할 때가 많으나 질서는 대부분 종교 가치가 논리 회로로 작동하고 체제 가치가 조건으로 작동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많은 사회 문제는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충돌에 의한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주로 그 충돌에 의한 사회 문제에 해당한다. 종교 가치에 의해 억압 강요, 희생 강요, 차별 강요 등과 같은 체제 가치에 반하는 가치에 의해 복합적인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다.



가치 충돌은 주로 강제력이 발생하는 권력 행사에서 나타난다. [권력: 1.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현재 권력의 사전적 정의는 복종과 지배 개념이 포함되어 민주주의 체제에 적합하다 보기는 어렵다. 강제를 할 수 있는 힘까지만 정의되면 된다. [강제: 1.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킴.] 동등한 관계에서도 계약에 의한 강제력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복종과 지배 개념이 없어도 강제력은 성립될 수 있게 된다. [사회 계약: 1. 개개의 인간들이 모여 일정한 질서와 규율 밑에 서로 협력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사회나 국가를 이루는 현상을 계약에 의한 것으로 보아 이르는 말.] 사회 계약의 사전적 정의는 공동의 이익을 전제하여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하다 보기는 어렵다. 사회와 계약한다는 것까지만 정의되면 된다. 


지금까지 종교 가치에 의해 개인주의 체제에서 체제 가치에 의한 질서 개념이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여야 체제 적합과 공동의 이익이 성립되는 체제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권력의 강제력은 모든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사회와의 계약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질서가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 계약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상태기는 하다. 사회 계약에 따라 체제 가치에 의해 인간의 생활 양식이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종교 가치에 의해 인간의 생활 양식이 결정되는 일이 잦아 가치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권력은 통상 정부 권력이 일반적이나 민주주의 체제인 사회에서는 모든 개인에게 권력이 있으므로, 권력은 모든 형태의 강제력을 말한다고 본다. [정부: 1.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통치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삼권 분립에 의하여, 행정을 맡아보는 국가 기관.] 정부는 삼권을 지칭하거나 행정부를 지칭하는데, 삼권 분립을 근거로 삼권을 지칭하는 사전적 정의를 활용하겠다. 권력에는 개인 권력과 역할 권력이 있다. 개인 권력은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강제력을 말하고 역할 권력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강제력을 말한다. 통상 종교 가치에 의해 개인 권력은 높으나 역할 권력은 낮으면서 개인 권력에 의한 부당한 권력 행사가 나타난다. 그것이 권력 남용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오게끔 정한 것은 체제다. 권력은 주어진 권리나 권한 내에서만 활용할 수 있고, 주어진 권리와 권한은 체제로 정해지기 때문에, 체제에 반하는 권력 행사는 권력 남용이 되게 된다. 민주주의 체제를 근거로 주권이 있는 인간이 논리 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존재 탐구나 체제를 이치로 삼아 논리적인 주장을 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가진 권력을 휘둘러 강제하는 것은 권력 남용이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 충돌로 개인은 물론이고 정부를 넘어 헌법조차도 종교 가치를 기초로 한 자연법의 영향으로 체제 가치에 위배되는 판단을 할 때가 있을 정도다. 


개인이 일으키는 보편적인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은 중우 정치 등이 있다. [중우 정치: 1. 이성보다 일시적 충동에 의하여 좌우되는 어리석은 대중의 정치. 고대 그리스 민주 정치의 타락한 형태를 이르던 말로서 민주 정치를 멸시하는 뜻으로 쓰인다.]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기 때문에 발언권과 실행권이 있다. 그러나 실행권은 본인의 권리를 위할 때 일부나 긴급할 때를 제외하면 없다. 왜냐하면 특정 개인의 권력 행사에 발언권을 넘어 타인의 주권을 훼손할 수 있을 정도의 실행권이 있다면 타인이 가진 주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치 대행자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권한 내에서만 실행권이 있고 권한 외에는 발언권이 있다. 그렇기에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윤리를 명분으로 삼더라도 실행권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이들이 다른 이의 주권을 부당하게 훼손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것이 창작물이나 매체에 대한 검열을 강요한다거나, 정당한 사치를 보고 사치할 거면 기부하라며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한다거나, 특정 이익을 위해 차별을 강요하거나, 속여 이익을 취하는 것을 영리하다 착각하거나, 개인 판단으로 사적 제재를 하는 것을 넘어 사건과 무관한 관계자를 연좌제마냥 공격하는 것을 정의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사적 제재나 연좌제에 대해 법치를 근거로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감성 없는 인간이라 몰아붙이며 공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냥 가치관 차이다. 종교 가치로 불합리하게 보여도 체제 가치로 보면 합리하게 보인다. 이런 가치 훼손을 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개인이 정부를 압박한다. 떼법과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특정 사건을 빌미로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에 부적합한 비논리적인 법을 입법에 압박하여 통과시키도록 한다거나, 사회를 속여서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을 정당화하는 법률을 만들도록 압박하거나, 종교 가치에서 예민한 성적인 문제를 빌미로 사법에 압박하여 무죄 추정 원칙을 무시하도록 한다거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강한 형벌만을 강요하거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종교 가치를 명분으로 행정에 압박하여 유착을 하도록 한다. 이런 과정에서 주권을 침해당한 개인은 손해를 보면서 민주주의 체제의 가치 훼손이 발생한다. 이런 것이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으로 가치 충돌의 결과다. 


정부가 일으키는 보편적인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은 법 앞의 차별 등이 있다. 법 앞의 평등은 체제 가치라면 법 앞의 차별은 종교 가치다. [법 앞의 평등: 1. 법 앞에서는 누구도 차별 대우를 받지 않고 평등하다는 원칙을 이르는 말.] 종교 가치가 왕정의 사회 선택을 받은 가치기 때문에 종교 가치에 의한 차별이 나타나는 것이다. 종교 가치에 의해 입법, 사법, 행정 가리지 않고 법 앞의 차별이 나타난다. 전부 법 앞이다. 전관 및 현관 예우, 집단의 카르텔, 성인지 감수성 등이 그렇다. 전관과 현관은 현재와 과거에 높은 관직에 있던 사람을 이른다. 종교 가치에 의해 윗사람이라 여겨지는 전관과 현관을 우대하면서 비리가 발생한다. 종교 가치에 의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집단에 속한 인간을 우대하면서 비리가 발생한다. 종교 가치에 의해 종교 가치에 적합한 가부장제 여성성에 맞추기 위해 과도한 특혜를 주거나 무죄 추정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 발생한다. 정부 인사가 무능해 보이는 것은 실제 무능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종교 가치에 의해 무능해져 버린 것에 해당한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가 모순되어 충돌하는데, 종교 가치가 절대적이라 배운 탓에 종교 가치를 추구하다가 체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역할에 필요한 일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개인 권력은 높으나 역할 권력은 낮아지는 것으로 권력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의해 무능이 나타나게 된다. 현관 A가 전관 B를 예우하기 위해 마땅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럴 경우가 바로 종교 가치에 의해 역할 권력을 무시하고 개인 권력을 휘두른 개인 권력의 권력 남용이 된다. 사리사욕조차도 그 근거가 가족을 위해서와 같이 가족주의와 같은 종교 가치에 의한다면 종교 가치에 의한 권력 남용이다. 대부분 정부 인사는 종교 가치를 배제하고 체제 가치를 추구하면 제대로된 역할 수행이 가능해지면서 정상적인 역할 권력 행사로 유능해 지게 된다.


헌법이 일으키는 보편적인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은 많지 않다. [헌법: 1. 국가 통치 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 총체. 모든 국가의 법의 체계적 기초로서 국가의 조직, 구성 및 작용에 관한 근본법이며 다른 법률이나 명령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한 국가의 최고 법규이다.] 체제의 기초를 다루기 때문에 보통은 체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헌법에서도 자연법의 영향에 의해 체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성 의무병역 합헌이나 도서정가제가 그렇다. 


과거 헌재는 남성 의무병역이 “남성이 전투에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여성은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월경, 임신이나 출산, 양육의 필요성에 때문에 군사훈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고 밝히며 남성 의무병역을 합헌으로 결정한 바 있다. 대체복무 또한 신체적 능력 또는 조건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볼수 없으며 군대 내부의 상명하복의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희롱 등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이런 것이 가부장제 여성성을 전제한 자연법으로 체제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다. 모든 인간은 동일 종이라는 전제로 보았을 때 다른 국가에서 여성 징병을 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보편적인 여성이 군사훈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 만약 그 주장이 합리성을 확보하려면 한국 여성 직업 군인은 둘째치더라도, 모든 국가에서 보편적인 여성의 군사훈련이 불가능했어야 했다. 문화 차이라 말할 수 있는데, 그게 종교 가치다. 한국 여성은 다른 국가 여성보다 열등하지 않다. 만약 열등해보인다면 종교 가치에 의한 것이다. 다른 국가에서 여성의 군사훈련이 가능하므로 대체복무의 논리 또한 불합리하게 된다. 군대 내부의 상명하복 권력관계에 따른 부조리는 남성 징병 군인과 모든 직업 군인도 겪고 있는 문제로, 기업에서 하는 가치 생산시 성희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여성의 가치 생산을 반대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여성이 보편적으로 징병에 부적합하므로 남성만 징병하는 것이 합헌이란 논리는 여성보다 약한 남성이 있다는 현실에 의해 일반화의 합리성을 상실했다. 이런 논리는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합리해도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불합리하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인으로 접근해도 헌재가 우려한 사안은 대응이 가능하다. 성별과 같이 집단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남성 징병제의 위헌 여부만 고려했다 하더라도 위헌이 합리적이다.



최근 헌재는 도서정가제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 질서의 혼란을 방지함으로써 저자와 출판사를 안정적으로 보호·육성하고, 다양한 서점 또는 플랫폼을 유지·장려해 소비자의 도서접근법을 확대하므로 합헌을 결정한 바 있다. 종이책 매출이 줄어든 데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의한 것으로 도서정가제와 같이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없었으면 그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었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런 것도 전체주의를 전제한 자연법으로 체제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다. 현재 도서정가제나 스크린 쿼터제나 연유가격연동제와 같은 생산자 입장에서의 시장 보호는 쌀과 같은 필수품이 아닌 이상, 생산자 소수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 다수를 희생시키는 부당한 전체주의적인 제도다. 도서가 필수품인지에 대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지식의 공유 측면에서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도서는 더 이상 필수품이 아니게 된다. 필수품이 아님에도 도서정가제와 같은 시장 보호를 하는 것은 흘러야 유지되는 시장 원리상 시장을 파괴하는 제도가 된다. 시장을 파괴하는 제도는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불합리한 제도다. 노동 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파괴된 것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고, 부동산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부동산 거래를 과하게 규제하여 흐르지 않도록 규제했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것조차 시장 원리를 작동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는 외부 정책으로 대응한다.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더욱 더 시장 원리를 작동시켜야 한다. 시장주의는 소비자 입장에서 담합과 독과점이 결정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도서정가제는 독과점을 방지하는 장치가 아닌 담합을 규정하는 장치일 뿐이다.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은 다방면에서 많다.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니 체제 가치 훼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개인에 의한 권력 남용은 인간 관계가 주로 그렇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함에도 종교 가치에 의해 서로를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차별한다. 현재 학생과 부모와 교사의 갈등은 서로를 억압하고 희생하고 차별했기 때문에 나타났다. 과거에는 주로 교사가 학생을 패고 부모에게 촌지를 받았다면 현재는 주로 교사가 학생에게 맞고 부모에게 시달린다. 차별적인 종교 가치 논리 회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의 조건이 달라지자 차별의 대상이 달라진 것이다. 그외에도 타인을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차별하는 일이 정말 많다. 그런 탓에 최근 서로가 즐기는 취미를 악으로 규정하고 공격하거나, 젊은 세대가 상명하복 수직질서가 싫다면서 2022년 9급 공무원 퇴사율이 2019년 대비 72.6% 증가했다고 한다. 공무원 퇴사는 돈 때문이라 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돈은 알고 지원한 것이므로 일하는 환경 때문에 퇴사했다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할 전문성보다 인맥 중시, 다양한 차별, 담합과 독과점, 내부 고발 멸시 등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부에 의한 권력 남용은 법, 정책, 제도 등이 주로 그렇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함에도 종교 가치에 의해 서로를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차별한다. 자기결정권 침해 법률, 전체주의 정책과 제도, 국가 형벌권 과잉 행사, 개인 차별 등 많다. 정부가 개인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고 판단이 불가능한 존재로 전제하고서 결정권을 빼앗거나, 특정 관점으로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거나,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사건에서도 형벌권을 행사하거나, 종교 가치로 개인을 차별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방송, 영상, 게임, 인터넷 등의 매체 검열 기관, 필요 이상의 개인 정보 수집, 국민 연금과 같은 개인의 희생을 전제한 제도, 불합리한 미성년 권리, 가부장제 여성성에 따른 여성 억압과 차별, 과도한 시장 간섭, 민사 대응 사안을 형사로 대응, 체제와 무관한 일방적인 특정 가치 강요 등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 특성상 정부의 권력 남용은 개인의 권력 남용에 의한 결과일 확률이 높다.






4) 가치 차이


가치 차이로 문명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유전자, 자연, 문화는 대체로 문명에 비해 영향력이 낮다. 유전자는 동일 종이고 자연은 인간이 생존하기 적합한 곳에 자리잡아 사회를 이뤘고, 문화는 각국 레벨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므로 문명 레벨에 따라 문명 차이가 발생한다. 그런데 문명이 사상의 가치에 영향을 받은 인간의 손으로 가공되고, 그 문명으로 인간이 가공되어 문명 레벨이 결정되기 때문에, 실상 가치 차이로 문명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문화 상대주의를 말하며 문화마다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화는 학문 이전이므로 문화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학문으로 체계화한 문명은 명백하게 차이가 난다. 각국 국력의 차이가 나는 것을 가공 개념으로 접근하면 인종 우열 또는 문명 우열 둘 중 하나가 된다. 모든 인간은 동일 종에 속하고 자연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면서 영향을 적게 받게 됨에 따라 국력 차이는 문명 우열에 따라 나타났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럼에도 문명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윤리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일 뿐이다. 마차를 타는 문명과 비행기를 타는 문명이 같을 수가 없다. 문명 우열이 제국주의적 식민 침략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별개다. 특정 가치 판단으로 그런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인종 우열은 인종 전체의 우열에 해당한다면 문명 우열은 개인 우열에 해당한다. 인류 지역마다 문명 발전도가 다른 것을 보고 다양한 해석을 한다. 그러나 소수의 인간 유무에 따라 문명 발전도가 다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탈레스와 데모크리토스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자연 계열도 탐구한 인간이 없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이 인문 계열만 탐구한 인간만 있었다면 서양에서 과학 혁명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든다. 실제 동양에서는 그런 인간이 없어 과학 혁명이 불가능했다. 그런 인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힘을 가진 자에게 인정 받지 못하여 잊혀졌다. 우주적으로 보면 그 어떤 인간도 우주에 영향을 끼치지 어렵지만, 지구적으로 보면 일부 인간이 지구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국력 차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그 차이의 원인이 인종보다는 문명인 것이 인류 관점으로 볼 때 좀 더 평등하다.


추구하던 가치가 달라 문명 레벨이 달랐던 시대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저물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전 세계 정보 공유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인류는 공통된 사회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체제 변화, 기술 변화, 환경 변화다. 현재 모든 국가가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한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 기술에 의해 개인주의 체제의 가치가 공유되면서 대부분 국가에서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충돌에 의한 사회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 각국 체제와 무관하게 공통된 사회 문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 현상을 부른 디지털 기술은 인식과 가치의 거리 축소, 제한 없는 가치 복제, 익명에 의한 자유로움 등으로 현실과 다른 성질이 많아 그에 따른 새로운 사회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 또한 디지털 기술에 의해 각국 체제와 무관하게 공통된 사회 문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환경 오염이 발생하면서 예정된 기후 변화가 빨라지는 것으로 지구가 인간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가는 것으로 그에 따른 새로운 사회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 또한 같은 지구에서 사는 것으로 각국 체제와 무관하게 공통된 사회 문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 세 가지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 문제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대부분 국가에 공통된 사회 문제이므로, 각국이 공조하면서 개인과 사회를 새롭게 재가공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1.6 사회 본질


1) 인식 일탈


인간의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인간의 높은 지능에 의해 나타났다. 지능이 높으면 인식에서 벗어나고 지능이 낮으면 인식도 제대로 못한다. 높은 지능을 지닌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에 의문을 품었다.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런데 그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익혀야 한다.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이미 가공이 된 상태라는 것이다. 가공이 된 상태에서 가공 이전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다. 가공 이전의 상태인 기억과 연동되지 않은 자아 요소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육체를 움직이는 본인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존재를 몰랐던 인간은 본인의 존재가 내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고 보았다. 바로 영혼이다. [영혼: 2.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인간은 영혼이란 개념으로 인간의 본질이 육체 밖에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문명이 없던 시기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해서 영혼 개념을 떠올리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몰랐기에 영혼 개념을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했다. 그래서 가공을 통한 육체의 변화로 인간의 본질이 바뀔 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본질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자아를 파악하지 못하여 가공 개념을 떠올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영혼 개념은 실제로는 자아 개념으로 보면 된다. 비과학 시대의 개념이 과학에 의해 용어가 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혼 개념은 AI가 자아를 가지면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될 것이다. 이런 영혼 개념에 의한 본질의 불변이 자아 동일성 개념을 불렀다고 본다. [자아 동일성: 1. 타인과 구별되는 한 개인으로서 현재의 자신은 언제나 과거의 자신과 같으며 미래의 자신과도 이어진다는 생각. 에릭슨의 자아 심리학이나 올포트의 인격 심리학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자아 개념은 영혼 개념에 의해 불변하다 여겨짐에 따라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되어 제대로 된 분석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본다. 자아 요소와 자아 요소와 기억이 연동된 자아 존재 개념이 없고, 자아와 자아 외의 권한 차이도 없으므로 제대로 된 자아 동일성 개념이 아니다. 계속 달라지는 자아 요소가 기억과 연동되어 자아 존재가 되는 것이므로, 현재의 자신인 자아 요소가 과거와 미래와 계속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아 요소가 달라지는 것과 별개로 연동된 기억과 육체 신호에 따라 자아 존재가 계속 달라진다. 자아와 자아 외의 권한 차이로 자아가 의지를 가지고 자아 외를 재가공하여 본질을 바꾸는 것으로 자아 존재도 과거와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바뀌는 것이 어렵지만 가능하다. 


자아 요소는 기억과 연동하여 자아 존재가 된다. 기억이 같으면 몸이 달라도 같은 존재고 기억이 다르면 몸이 같아도 다른 존재다. 몸이 다른 로봇에 기억을 이식하면 같은 자아 존재가 되고, 몸이 같더라도 기억을 상실하면 다른 자아 존재가 된다. 그런데 기억은 언제든지 손상이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자아 요소에 기억이 연동되는 것으로 존재하는 자아 존재도 불안정하게 된다. 그렇기에 무언가 장기적인 계획을 했다면 주기적으로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메모 같은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자아 존재 훼손이 발생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이것은 기억을 디지털화 하기 전까지는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유동 자아는 계획을 비롯한 사생활 기록이 지나치게 자세할 경우 자아 존재가 변하지 않게 되면서 고정 자아가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영혼 개념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본질이 불변하다 여긴 인간은 본인의 인식과 가치도 절대적으로 여기게 된다. 그것이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다. 인간은 본인이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된 진리, 도덕, 아름다움 따위를 절대적이라 여겼다.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게 되었다. 그것이 가치 강요다. 종교, 왕정, 공산, PC 등 인간에게 가치를 강요하는 모든 사상은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이타주의 논리 회로를 거치면 전체를 위해 가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가 된다. 


가치 중에서 아름다움의 경우는 상대적이라 여기기도 하여 상대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도덕의 경우 절대적으로 여기며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도덕을 강요하게 되었다. 인간의 논리 회로에서 도덕과 윤리가 영향력이 높은 것은 이처럼 가치의 절대성에 의한 것이다. 누군가 좋지 못한 사건으로 보이면 권선징악을 말하며 좋지 못한 사건에 대한 응징을 바랄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의 동기가 윤리와 같은 가치에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꼰대질은 종교 가치인 윤리에서 왔다. 도덕을 절대적이라 여기는 것에 의해 양심이 지능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양심이 지능이면 양심의 기준이 되는 종교는 가치가 다른 종교를 어리석다 여길 것이다. 그리고 실제 서로를 어리석게 여겼다. “이 어리석은 이교도 놈! 처단해주지!” “내가 할말이다! 멍청한 이교도 놈! 죽어라!” 불화, 분쟁, 전쟁 등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한 대부분 이런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상호 멸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PC주의, 여성주의 등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PC주의자는 다른 가치를 가진 이들을 “Uneducated.” 라고 말하며 멸시하거나, 여성주의자는 다른 가치를 가진 이들을 공부하라고 말하며 멸시하기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래 멸시하던 이들과 그에 반발하여 멸시하는 이들이 맞서 같이 서로를 멸시하고 있다.






2) 감각 차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다양한 이유로 나타났다. 가공 이전의 상태, 자아 외 무의식, 인간 심리, 개인주의 체제 질서,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 등. 보통 겪어본 적이 없거나 고정 관념에 의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생기게 된다.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란 개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논리: 1. 말이나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이치에 맞게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 [이치: 1. 사물의 정당한 조리.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 [합리: 1.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 [조리: 1.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사전적 정의가 상당히 애매한데, 간단히 이치를 모순 없는 체계로 해석하겠다. 보편성과 재현성을 갖춘 자연 계열의 탐구가 보통 모순 없는 체계를 갖춘 이치가 된다. 


일반적으로 만류인력의 법칙 같은 것이 보통 그렇다. [만류인력의 법칙: 1.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고, 그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두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법칙. 1687년에 뉴턴이 발견하였다.] 이런 법칙이 모든 인간에 영향을 미치고 경험해볼 수 있어 모순을 발견할 수 없으면서도 원리를 파악하여 체계를 갖춰 이치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이런 이치를 진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리: 1.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 2. 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3.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자연 계열의 증명을 활용하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활용할 증명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바로 육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조금이라도 육체가 다르기 때문에 감각 기관으로 수집하는 자료가 다르고, 자료로 만들어진 정보를 인식하는 것도 달라지게 된다. 시각이 다르기에 보는 것이 다르고, 청각이 다르기에 듣는 것이 다르고 후각이 다르기에 맡는 것이 다르고, 미각이 다르기에 맛보는 것이 다르고, 촉각이 다르기에 느끼는 것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자료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도 달라 인식도 다르게 된다. 간단히 천체를 관측하는 관측 기구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안다. 과거 관측 기구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현재 관측 기구로는 볼 수 있는 것이 생기고 있다. 성능이 달라지면서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져 자료가 달라졌고, 그 자료가 달라지면서 정보도 달라져 인식도 달라졌다. 이것으로 인식의 상대성이 증명되게 되면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가치는 판단 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말한다. 진리, 도덕, 아름다움 등 인간이 판단이 가능하면 가치다. 그런데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인식이 필요하게 된다. 판단을 하는데 필요한 인식이 상대적이다보니 가치 또한 상대적이게 된다. 진리는 학문의 지식이 진리가 아니라 여기는 인간에 의해 상대적이게 되고, 도덕은 충돌하는 종교를 보면 상대적임을 알 수 있고, 아름다움은 취향이 다른 인간을 보면 상대적임을 알 수 있다. 일반 인간과 탐구 인간은 지식에 대한 진리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일반 인간과 난청 인간이 소음에 의한 도덕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일반 인간과 색맹 인간이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인식의 상대성에 의해 가치의 상대성도 증명되면서 종교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사상에 의해 인식과 가치가 유사해질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언어가 그렇다. 한국어 언어권에서는 언어를 공통 인식으로 삼아 언어에 의한 인식과 가치가 유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언어권이 다르면 상대적이게 된다. 한국어 언어권에서는 비속어로 들리는 단어가 외국어 언어권에서는 일반어로 들릴 수가 있다. 무엇보다 모두 다른 인간의 감각 기관에 의해 유사해질수는 있어도 똑같아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인식과 가치 차이에 의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상에 의해 사회 공통 인식과 가치가 생기더라도 인간의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은 성립된다.






3) 존재 탐구


자연 계열의 탐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였다.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임에도 본인의 인식과 가치가 절대적이라 주장하며 타인의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는 바람에 수많은 갈등과 분쟁과 전쟁이 있었다.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수많은 문제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으면 사회 기준이 사라진다. 그래서 인식과 가치가 다른 인간이 언어를 통해 공통 인식을 가진 것과 같이 절대적인 가치가 있어야 공통 기준으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식과 가치와 다르게 절대적인 것이 있다. 바로 존재다.


인간은 감각 기관이 달라 색을 다르게 보고 소리를 다르게 듣고, 사상이 달라 언어가 다르게 느껴지고 사상이 같더라도 똑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다. 그러나 거기에 색이 존재하고 소리가 존재하고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즉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지만 존재는 절대적이다. 이 존재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인류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본질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존재 탐구다. 보통 모든 학문은 상대적인 인식 탐구를 하여 체계적인 발전이 불가능했다. 탐구한 결과가 인간, 지역, 시대별로 계속 다른데 어떻게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하겠는가? 그렇기에 인류 문명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자연 계열은 과학적 방법을 통한 과학 혁명으로 극복했다. 관찰, 가설, 실험, 증명을 통해 탐구 결과가 재현성과 보편성을 확보하면서 모든 인간이 같은 존재를 알게 되는 것으로, 증명된 탐구 결과는 학문 내에서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모두가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고 다르게 느낀다 하더라도, 과학적 방법으로 같은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것으로 인간은 종의 한계를 초월했다.


자연 계열은 자연이란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므로 선천적 존재 탐구에 해당하게 된다. 자연 계열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모두가 같은 존재를 알 수 있게 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과학적 방법을 계속 반복하면서 모두가 같은 존재를 아는 것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렇다고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아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감각 기관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선천적인 상태 그대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과학적 방법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정확히 모르는 존재인 일반 진리와 인간이 추측한 존재인 학문 진리로 나뉘게 된다. 학문 진리는 학문에 속할 때에는 진리이기 때문에 학문에서 벗어나면 진리가 아니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존재 탐구 결과가 나오면 학문의 진리가 바뀔 수 있게 된다. 존재 탐구로 증명된 고전 역학이 학문 안에서 존재에 속하지만, 학문 밖에서는 가치에 속하여 고전 역학의 진리 유무를 판단하고 양자 역학과 같은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학문에 존재와 가치가 공존하면서 학문이 발전한다. 오늘날 문명의 이기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파악할 수 있었다.






4) 존재 질서


모두가 인식과 가치가 달라도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이것이 존재의 절대성이다. 이 존재의 절대성은 존재 유지로 접근했을 때도 성립된다. 모든 존재는 존재에 속하기로 정했을 때에 존재 구조 유지를 위한 활동은 절대적이다. 그러지 않거나 못한 존재는 모두 사라졌다. 존재 유지의 절대성은 인간 육체로 이해하면 쉽다. 인간이 본인의 존재에 속하기로 정했을 때에 본인의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한 활동은 절대적이다. 그러지 않은 인간은 전부 죽었다. 이런 존재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초등학생은 없을 것이다. 아마 일반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본인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원치 않더라도 행동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 결과로 논리적으로 증명한 것 중 하나이므로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 된다. 이 존재 개념이 사회 기준이 되는 것으로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킬 수 있게 된다.


존재은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가치는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인간이 본인의 존재에 속하기로 정했을 때에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해 식사를 한다는 것은 판단 대상이 아니므로 존재에 속하지만, 식사를 어떻게 하느냐와 같이 육체 구조 유지 수단은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가 된다. 인간이 본인의 존재에 속하지 않기로 정했을 때에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해 식사를 한다는 것은 판단 대상이 되므로 가치에 속한다. 살지 않기로 결정한 인간에게 식사는 절대적이지 않게 된다. 


이렇게 판단 가능 유무로 존재와 가치를 구분하면 된다. 식사를 하는 것이 존재 유지에 속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절대적이라 여겨졌던 존재 유지가 정말 존재 유지가 맞는지에 대한 판단도 가능할 수 있는 것으로 가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존재 탐구를 통해 존재 유지 파악이 가능하여 존재 탐구 학문 내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이 되는 것으로 존재가 성립되게 된다. 존재 탐구로 기름 넣는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야 하고 말 먹이를 먹는 말에게 말 먹이를 줘야 하는 것과 같이 존재 유지 방법을 알 수 있다. 학문에 속하는 이상 학문이 증명한 존재 유지 방법은 절대적이게 된다. 여기서 기름 종류 또는 말 먹이 종류는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가 된다. 반면 학문에 속하지 않은 것을 존재라 주장할 때에는 존재를 기초로 하거나 보편성과 재현성 등을 통해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 존재를 탐구하든 존재를 유지하든 판단으로 존재와 가치가 결정된다. 이것이 존재 개념의 기본이다.


존재 유지 개념은 쉬운 편이기에 존재 개념 발상은 육체 구조 유지에서 시작되었다. 존재 유지의 절대성을 파악하고 나서 과학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으로 존재 탐구 개념을 확립한 것이다. 존재 유지 개념은 쉽기 때문에 이것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 이상할 수도 있으나, 절대적으로 여기는 종교 가치에 의해 나타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에 등잔 밑이 어둡듯이 난이도와 별개로 떠올릴 수 없었다고 본다. 


인간이 본인 존재에 속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판단이 가능하므로 가치가 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존재 가치다. 존재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면 존재에 속하면서 존재 구조 유지가 절대적이게 되면서 강제력이 발생하게 된다. 존재에 속하는 동안 원치 않더라도 해야할 일이 생긴다. 이것은 종교, 체제, 학문 또한 마찬가지다. 종교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어 종교에 속하기로 한 동안 종교 구조 유지를 위해 종교 가치는 절대적이게 된다. 체제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어 체제에 속하기로 한 동안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해 체제 가치는 절대적이게 된다. 학문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어 학문에 속하기로 한 동안 학문 구조 유지를 위해 학문 가치는 절대적이게 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체제에 속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체제에 속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이게 된다. 누군가 부자유를 바라거나 지배를 바라는 자유를 보장해야 자유가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자유는 모든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므로 그런 자유는 성립될 수 없다. 개인의 자유가 절대적이므로 누군가 노예가 되겠다고 자청하더라도 그것을 허용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로 노예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은 허용될 수도 있지만, 개인의 자유 자체를 버리며 노예가 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이는 주권, 시장도 마찬가지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차이는 존재 가치 차이다. 기본적으로 존재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한 뒤에야 존재 구조 유지를 위해 존재에 속한 가치가 절대적이게 되는데, 종교 가치의 경우 속하든 속하지 않든 절대적이라 주장하면서 존재 가치가 무관하게 된다. 그러니까 일부 종교는 가치가 다른 종교를 공격하거나, 종교 가치를 추구하는 신정 국가에서 체제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정 국가로 이민와서 종교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반면 체제 가치는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고 나서 속하는 동안만 절대적이고 속하지 않으면 상대적이게 된다. 학문 가치도 종교 가치와 관련이 없거나 적은 자연 계열은 보통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고 나서 속하는 동안만 절대적이고 속하지 않으면 상대적이게 된다. 그것으로 체제와 학문은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해진다.



존재의 절대성으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킨다. 예를 들어 쾌락 연쇄 살인마가 있다 하자. 그럴 때 쾌락 연쇄 살인마는 절대적으로 악하다 할 수 있는가? 대부분은 이것을 절대적으로 악하다 말할 것이다. 그러나 가치는 상대적이다. 이것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나온 명제다. 그렇다면 쾌락 연쇄 살인에 대한 가치 판단도 상대적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쾌락 연쇄 살인마도 인간이므로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인간은 쾌락 연쇄 살인마는 인간도 아니라며 인간을 부정할 수 있는데, 그런 가치 판단으로 존재가 부정될 수는 없다. 누군가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을 사회에서 허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가치의 상대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여기서 존재의 절대성이 나온다. 개인의 쾌락 연쇄 살인을 막지 않으면 사회 구조 유지가 되지 못하고 체제에 따라 사회 원리도 추구되지 못하면서 체제 구조 유지도 못될 수도 있다. 즉 개개인의 가치와 무관하게 사회에 부적합하고 체제에 부적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정 가치에 맞지 않아 막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부적합하여 막는다. 이것으로 특정 행위가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아도 막을 수 있게 된다. 육체에 속하기로 정했다면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한 행동이 절대적이기에 강제력이 있듯이 사회와 체제에 속하기로 정했다면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위한 행동이 절대적이기에 강제력이 있어 제재 권한이 있는 사회 구성원은 강제적으로 해당 행위에 대한 제재를 할 수 있게 된다. 존재의 절대성으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킨다. 이런 것이 존재 질서다.


지금까지 종교 가치가 남은 이유 중 하나는 종교 가치 외에 사회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질서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체제가 등장하고 나서 개인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자유방임주의나 자유지상주의는 물론이고 쾌락주의나 공리주의는 합리적인 한계를 제시하지 못했다. [쾌락주의: 1. 쾌락을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목적이라 생각하고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 내지 도덕의 원리로 생각하는 사상.] [공리주의: 1. 행위의 목적이나 선악 판단의 기준을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하는 데에 두는 사상. 개인의 복지를 중시하는 견해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우며 사회 전체의 복지를 중시하는 견해가 있다.] 쾌락을 바라는 자유의 한계와 행복을 바라는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모른다. 합리적인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종교 가치에 의존하면서 종교 가치에 의한 억압과 희생이 나타나게 되었다.


반면 존재 질서는 존재 탐구로 명확한 기준을 정할 수 있다. 인류는 이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통해 어떻게 해야 육체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것과 같이 어떻게 해야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사회에 속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이게 된다. 사회 유지 내에서 목적인 사회 구성원 생존은 판단할 수 없으므로 존재가 되고, 수단인 생존 방식은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가 된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주의 등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는 체제에 속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이게 된다. 체제 유지 내에서 목적인 자유, 주권, 시장은 판단할 수 없으므로 존재가 되고, 수단인 실현 방법은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가 된다. 


같은 존재일 경우 개인, 사회, 체제 순으로 강제력이 우선된다. 육체 구조 유지가 되어야 사회 구조 유지가 가능하고, 사회 구조 유지가 되어야 체제 구조 유지가 가능하다. 체제 가치에서 판단할 수 없는 목적인 존재는 종교 가치와는 충돌해도 다른 체제 가치와는 보통 충돌하지 않으나, 만약 충돌한다면 우선 순위는 마찬가지로 개인, 사회, 체제 순 또는 존재 유지 영향력 순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존재 가치에 따라 우선 순위는 달라질 수 있다. 존재 가치를 높다 느끼는 것부터 존재 유지를 위해 활동할 수 있다. 사회와 체제는 생활 집단과 생활 양식을 의미하고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개인의 생존과 모든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는데, 사회와 체제에 속하고자 할 때 개인 생존이 된 상태에서 자유 없는 생존은 본인에게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모든 개인의 생존보다 모든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것에 의해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사회 역할 계약에 의해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군인, 경찰, 소방관 같이 위험을 감수하는 역할의 경우, 보통은 개인을 우선시하나 보통이 아닐 때에는 사회 역할 계약을 통해 개인보다 사회나 체제를 우선하기도 한다. 이는 해당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에만 달라지는 우선 순위로, 휴식과 같이 역할 수행을 하지 않는 동안이나 퇴직과 같이 역할을 하지 않게 되면 일반적인 우선 순위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식으로 구분하여 체제도 존재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인류 전체를 살려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 것은 존재 개념이 없어 종교 가치에 의존하여 질서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존재 질서를 기준으로 개인의 자유 한계를 정하여 종교 가치에서 해방되어 체제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존재 질서 내에 모든 가치 추구가 허용된다. 사랑과 증오가 존중되고 평등과 차별이 존중되며 아름다움과 더러움이 존중될 수 있다.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존재 질서 내의 가치기 때문에 가능하다. 존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은 보통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가치에 해당한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증오나 차별이나 더러움을 어떻게 하든 자유롭게 된다. 만약에 그게 타인에게 영향을 미쳐 사회 구조를 붕괴시킬 때 존재 질서를 기준으로 제재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차별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상대적 가치로 존중된다. 그러나 그 차별을 직접 행하면서 성소수자 개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적 존재로 제재된다. 이것은 망망대해에서 뗏목 위에서 살아남은 표류자들로 비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뗏목 위에 미워하는 상대가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그것을 표출하지 않는다. 섣불리 미움을 표출하다 뗏목에서 떨어져 공멸하게 될 수 있다. 미움이 상대적 가치라면 뗏목 유지는 절대적 존재다.


존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모든 가치는 존중될 수 있다. 존재 질서를 통해 사랑할 자유와 증오할 자유를 모두 보장하겠다. 가치가 강요되는 사회가 자유 사회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완전한 자유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가치의 상대성이 증명되지 않았어도 가치의 자유가 보장되었어야 했다. 인간은 육체가 있어 완전한 자유를 얻기는 어렵지만 존재 개념을 통해 최대한의 자유는 누릴 수 있다. “이것은 웃으면 돼. 이것은 웃으면 안 돼”, “이것은 울어야 해. 이것은 울으면 안 돼.”, “이것은 화내야해. 이것은 화내면 안 돼.”, “이것은 좋아해야 해. 이것은 좋아해서는 안 돼”, 이것은 싫어해야 해. 이것은 싫어해서는 안 돼.” 이런 것이 종교 가치에 의한 가치 강요다. 사람은 자유로워야 한다. 사람은 본인이 기쁠 때 웃을 수 있어야 하고 슬플 때 울 수 있어야 하고 화날 때 화낼 수 있어야 하고 좋아할 때 좋아할 수 있어야 하고 싫어할 때 싫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을 종교 가치로 멋대로 재단하여 인간의 감각, 감정, 욕구, 욕망 등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모든 가치관은 존재 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존재 질서와 같이 종교 가치를 초월한 질서가 있어야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종교 가치를 근거로 한 욕망 억압과 개인 희생과 같은 부자유가 발생하지 않는다.






1.7 사회 문제


1) 인식 탐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최근 인문 계열의 인식 탐구 중 하나다. [모더니즘: 1. 사상, 형식, 문체 따위가 전통적인 기반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나려는 창작 태도. 20세기 서구 문학·예술상의 한 경향으로, 흔히 현대 문명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미래에 대해서는 반유토피아적이다. 또한 현실 비판의 한 방법으로 예술의 비인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모더니즘이 확립하여 놓은 도그마, 원리, 형식 따위에 대한 거부 및 반작용으로 일어난 예술 경향. 특히 1960년 전후의 미국·프랑스 소설의 실험적 작풍이나, 구조주의 이후의 전위적 비평을 이른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둘다 종교 가치에 영향을 받아 가치의 절대성을 바탕으로 자유라는 체제 가치에 무게를 두었으나, 모더니즘은 규칙·이성·효율 등으로 기준이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불규칙·감성·비효율로 기준이 없다. 모더니즘은 기준이 있어 질서정연하나 경직될 확률이 높았다. 그러면서 사회 전체가 자유 체제 가치와 맞지 않게 부자유스럽게 될 수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준이 없어 질서정연하지 못하나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질서정연하지 못하여 혼란스러우면서 가치의 절대성에 의해 한계가 있었다. 기준이 없는 질서는 무질서와 다를 바 없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가치의 절대성을 띠는 것으로 다른 가치를 허용하지 않아 전쟁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이 넓은 편인데, 그 중에 종교 가치에 영향을 깊게 받은 것일수록 민족, 인종, 성별 등의 자유와 같이 집단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으로 집단주의적이게 되면서 이타주의에 의한 전체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파시즘, 나치즘, 피시즘(PCism) 등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PC주의자는 종종 칸트나 존 롤스와 같은 윤리나 정의를 다루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이치로 삼아 논리적인 주장을 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가치의 절대성을 근거로 주장했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주장이 되면서 이치가 아니게 됨에 따라 그 주장은 비논리가 되게 된다. 그들의 윤리나 정의는 애초에 이치가 아닌 것을 근거로 주장하면서 이치가 아닌 것을 이치인 것처럼 만들기 위해 본인이 인식한 인식 탐구 개념을 하나씩 더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복잡해졌다. 


인식 탐구는 상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탐구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탐구한다 해보자.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악을 부를 수 있는 본인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선하다.’와 ‘타인의 행복을 위하여 본인이 희생하는 것은 선하다.’에서 멈추면 인식 탐구가 된다. 존재 탐구는 절대적인 존재를 바탕으로 탐구한 것을 말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의 모양, 성질, 구조, 원리, 동력 등과 논리 회로와 조건에 따른 변화를 파악하여 금욕과 희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발생할 수 있음까지 가면 존재 탐구가 된다. 


존재 탐구를 하거나 존재 탐구를 활용하면 간단할 수 있는 것도 인식 탐구를 하면 복잡하게 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만든 존재 개념이면 자유 한계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데, 인식 탐구에 머물게 되면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집회의 자유, 선거의 자유, 공직 및 개인 재산을 소지할 자유 등을 각각 정하면서 자유 종류와 범위가 지나치게 복잡해진다. 복잡하니까 세세하게 종교 가치를 근거로 온갖 검열과 규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서 존재와 무관한 자유가 부당하게 침해되게 된다. 자유를 침해당한 인간은 그 자유 침해를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화자가 초등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해보자. “자유에는 다양한 자유가 있고, 그 자유들의 한계는 특정 기준으로 정해지고, 자유로운 상황에서 정의를 이루기 위한 몇 가지 포괄적인 원칙이 있어.” 그림을 그려 설명한들 초등학생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절래절래 짓고 가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면 화자는 역시 철학은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자유가 사회 질서 기준으로 자리잡지 못하게 된다.


화자가 초등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해보자. “네가 살고 싶으면 하기 싫어도 먹고 자고 싸야 하잖아? 그것처럼 사회도 살고 싶으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살고 싶으면 그걸 해야 해.” “대신에 그걸 하고 나면 전부 자유야.” 인간 그림과 사회 그림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대부분 초등학생은 이 말을 듣고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몸을 갖고 있어 살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걸 하고 나면 전부 자유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것으로 자유 기준이 된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 개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초는 쉬워야한다. 존재 질서에서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러지 않으면 죽으니까. 가치는 상대적이다. 몸이 다르니까. 이것을 기초로 자유가 사회 질서 기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다.


모더니즘은 기준이 있는 질서를 추구하면서 부작용으로 부자유가 나타났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준이 없는 자유를 추구하면서 부작용으로 무질서가 나타났다. 모더니즘이 추구한 질서는 존재의 절대성으로 강제력의 정당성을 갖추게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한 자유는 가치의 상대성으로 자유를 보장할 수 있게 하여 질서와 자유가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게 한다.






2) 현상 해석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현상 몇 가지 설명하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준이 없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그것으로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다양한 가치의 절대성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에 반하는 모든 가치는 부정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으로 분류되는 PC주의가 다른 가치를 가진 이들과 싸웠던 것은, PC주의는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지 모든 가치를 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PC주의는 기준이 없어 논리적이기가 어려워 PC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호응을 받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PC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에는 논리가 없어 불합리한 주장을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불합리한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종교 가치와 종교 가치를 탐구한 인문 계열의 주장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매번 도덕과 윤리를 말하면서 종교 가치로 체제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의해 많은 사회 문제를 부르게 되었다.


PC주의는 기준이 없어 자유로우나 기준이 없어 불합리했다. PC주의의 가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새롭게 기준을 만들 수 없으므로 과거의 기준을 끌고 온 것이 종교 가치와 종교 가치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성인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성별성이다. 이른바 인종과 성별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정립된 인종성과 가부장제 시대에 정립된 성별성을 인간의 선천적 성질이라 가정하고는 인류는 거기에 맞춰야 한다며 주장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인종성을 말하며 “백인은 가진 것이 많고 흑인은 가진 것이 적으므로, 흑인에게 가산점이나 할당제와 같은 특혜를 주는 것에 의해 백인이 차별 받는 것은 긍정적 차별이다.”라는 논리와

가부장제 시대의 성별성을 말하며 “남성은 가진 것이 많고 여성은 가진 것이 적으므로, 여성에게 가산점이나 할당제 같은 특혜를 주는 것에 의해 남성이 차별 받는 것은 긍정적 차별이다.”라는 논리다. 그 논리에 맞춰준 정책이 바로 미국의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이다. 이 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정부 정책으로 인종차별을 완화하기 위해 시작되어 그 외 약자들로 확장된 것인데, 이는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성별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성립되는 주장이다.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과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헌으로 판결하여 폐지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여성주의에 의해 성인지 감수성이 주장되었다.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적으로는 성차별과 성의 불평등을 인지하는 능력 또는 법적으로는 성범죄 피해자가 소극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 등을 말하는데, 이는 가부장제 여성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성립되는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PC주의와 여성주의는 과거 가치에 반발했음에도 과거의 기준을 쓰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기성 세대에 인정 받기도 한다. 여성주의가 성인지 감수성을 말하며 가부장제 여성성을 사회에 강요하는 것을 가부장제 가치관이 익숙한 기성 세대가 인정하듯이 말이다. 


기준이 없어 새로운 기준을 만들지 못하고 과거의 기준에 가져다 쓰면서 점점 과거로 퇴보하게 된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미국 흑인은 사회적으로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 여성은 법적 또는 정책적으로 수동적이고 소심하고 유약하고 성적 수치심이 강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그러기 때문에 성장하여 강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준에 맞춰 용어를 바꾸는 배려를 하거나 혜택을 주는 것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 흑인이 범죄율을 높은 것을 보고 인종에 다른 인종과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의심을 하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동일 종으로 흑인에 다른 인종과 다른 인종 문제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인종은 다른 인종과 다를 바 없이 우수하다. 이것은 철저하게 사상 문제다. 흑인을 차별하던 제국주의 인종성에 의해 흑인이 성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차별에 의해 나타나던 결과를 바꾸기 위해 흑인에게 노력이 적거나 없어도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자 노력을 적게 하거나 하지 않게 되는 것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집단을 대상으로 한 가산점과 할당제는 노력이 적거나 없어도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제도에 해당한다. 집단 평등을 명분으로 특정 인종과 성별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가산점과 할당제를 주자, 그들은 그 외 인종과 달리 노력이 적거나 없어도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게 되었다. 능력이 있어도 일정 이상 노력을 해야 하는데, 집단 평등을 위해 할당제를 하면 어떤 경우에는 정말 아무 노력 하지 않아도 선호도가 높은 사회 역할을 얻을 수 있기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절대적 이익을 평등이란 윤리를 근거로 하여 성립시켰다. 평등이란 가치에 본질이 가려질 수 있는데, 가산점과 할당제의 본질은 노력이 적거나 없어도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것에 있다. 아마 평등 개념으로 접근하면 성별이나 인종 비율에 맞추는 것이 정당하다 보일 수도 있는데, 절대적 이익 개념으로 접근하면 정말 말도 안된다고 느껴질 것이다. 절대적 이익 개념이 PC주의와 여성주의가 만든 사회 혼란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



약자인 백인이나 남성이 있을 수 있고 강자인 흑인이나 여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집단 평등을 주장하며 비율을 맞추는 것에 의한 절대적 이익을 얻는 것을 행하자, 약자인 백인과 남성은 차별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집단으로 보고는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게 또 평등 가치에 의해 정당하다 인식되기도 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분명 약자인 흑인과 여성 비율이 높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과거 신분제 노예가 자유를 얻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다가 내게 되었다. 납세의 의무를 지면서 노예는 시민이 되었다. 반면 제국주의 흑인은 자유를 얻으면서도 과거 흑인의 인종성으로 상점을 털더라도 괜찮다는 것과 같은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 백인과 대등한 인간이 되었다고 보기가 어렵고, 가부장제 여성은 자유를 얻으면서도 과거 여성의 성별성으로 징병 의무를 지지 않는 것과 같은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 남성과 대등한 인간이 되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현재 흑인과 여성은 과거 차별받은 위치에서 다양한 특혜만 받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흑인이나 여성을 차별하는 인간이 있다. 그렇다고 집단에 특혜를 주는 것은 할 수가 없다. 집단이 하나 둘도 아니고, 모든 집단에 그런 식의 혜택이 나오면 엉망진창이 된다. 특정 지역이 차별을 받으니 혜택을 줘야 한다. 특정 학교가 차별 받으니 혜택을 줘야 한다. 특정 종교가 차별을 받으니 혜택을 줘야 한다. 이외 정말 수많은 집단이 있다. 이런 것이 성립될 수 있다고 보는가? 더구나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지 혜택을 주는 것에 머무르면 성장하지 못하게 되면서 차별이 끝나지가 않게 된다.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다보면 노력을 적게 하거나 하지 않게 되도 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 여기는 심리적 한계에 의해 실제 능력보다 무능하게 여기게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성장은 더더욱 멀어진다.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성별성에 의해 성장이 멈춘 것이다. 


만약 인종이나 성별로 차별 받는 것이 발생하면 흑인과 여성 전체가 차별 받은 것이 아닌 개인이 개인 특성에 의한 차별을 받은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흑인이어서 차별 받았어도 흑인 개인이 차별 받은 것으로 접근하고 여성이어서 차별 받았어도 여성 개인이 차별 받은 것으로 접근한다. 이는 백인이나 남성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차별에 대한 대응도 개인이어야 집단으로 대응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 의해 진영으로 나뉘어 다투면서 문제 해결이 끝나지 않는 것을 끝낼 수 있다.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여성성에 갇혀 있는 이들은 현재 심리 한계에 의해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지배를 당하던 인종은 그 시대 인종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가부장제 시대 역할이 집안 일로 한정되던 여성은 그 시대 여성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PC주의와 여성주의는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여성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종성과 여성성을 해당 인종과 여성에게 주입하고 사회에 배려를 강요하였다. 그러는 바람에 일부 인종과 여성은 현재 심리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는 부당한 특혜로 불합리하게 되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PC주의는 기준이 없어 평등한 인종성과 성별성이 아닌 과거 불평등한 인종성과 성별성에 의존하는 것으로, 평등한 인종성과 성별성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되었다. 평등한 인종성과 성별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평등한 상태에 놓인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여성성을 주장하거나, 제국주의 백인성과 가부장제 남성성을 따라하기만 하게 되었다. 이제는 인종과 성별과 무관하게 개인이 현재 심리 한계에서 벗어나 소재 한계 내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한다. 자아가 의지만 제대로 가지면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하여 실행하기에,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살아가면 된다.



한국은 PC주의보다 여성주의가 활성화되어 여성주의에 의한 현상에 대한 의견을 좀 더 내겠다. 가부장제와 가부장제 여성성에 대해 알아보겠다. 가부장제는 집단주의 체제의 제도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여 모든 개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는 제도다. 거기에 약자인 여성이 좀 더 많은 차별을 받았기에 가부장제가 여성 차별 제도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모든 개인 차별 제도다. 가부장이 되어 책임을 지고 싶지 않는 인간에게는 가부장조차 차별로 작용하게 된다.


가부장제 여성성은 가부장제 시대에 사회 참여를 하지 않았던 의지가 약한 수동적 여성성과 정조관념을 지키는 엄숙주의적 성관념을 전제한다. 가부장제 여성성과 성관념은 철저하게 가부장제 시대의 종교 가치를 근거로 한다. 이러한 가부장제 여성성이 기성세대의 논리 회로와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거기에 과거 가부장제 시기의 여성 차별 조건이 들어가자 겉으로 봐도 여성 억압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현재 여성 평등 조건이 들어가자 겉으로 보면 여성 인권처럼 보이게 되었다. 가부장제의 여성성 억압을 시행했던 이들은 명분을 위해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며 남성의 성욕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몰고가면서 여성성 억압이 여성 인권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것을 성인지 감수성이라 말하며 가부장제 여성성을 신세대 여성들을 주입하고 사회에 강요하면서 사회 전체가 뒤틀리게 되었다.


가부장제 여성성에 의해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그것을 여성 인권이나 남성 차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이 여성성을 억압받으면서 남성이 여성성을 소비하는 것이 어렵게 된 것이다.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면 불편해한다. 여성이 노출된 광고판도 불편해한다. 이런 것이 여성성 억압이다. 여성성은 아름다운 것이지 더러운 것이 아니다. 여성성을 터부시하는 것을 그만해야 한다. 미성년 핑계를 대는데, 인간은 미성년 시기부터 본인의 여성성과 타인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접하고 성장해야 이성 모두 여성성 접촉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이성 관계가 성립되게 된다. 미성년이 성을 접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은 미성년의 성조차 집단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쓰던 집단주의 체제의 종교 가치가 만든 개인주의 체제에 부적합한 인식이다. 미성년 때 성 접촉을 그토록 터부시하며 막아놓고 어떻게 강요 없이 자유로운 정상적인 이성 관계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여성성 소비는 여성 인권이나 남성 차별이 아니다. 단지 여성성이 억압받으니까 남성이 여성성을 소비하기 어렵게 된 것이고, 남성성이 자유로우니까 여성이 남성성을 소비하기 쉽게 된 것이다. 생산자가 억압받자 소비자가 소비하기 어려운 것을 보고 소비자 차별이라 말하면 안 된다. 이것은 철저하게 여성 억압의 결과다. 그걸 여성주의는 여성성 억압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성 성적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화 반대라고 했을 뿐이다. 여성성 억압하는 종교가 얼굴 가리고 옷 종류 강제하면서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노출하는 것이나 성 상품화를 못하게 여성성을 억압하는 것은 나쁜 차별이고, 여성주의가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노출하는 것이나 여성 본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행사하는 것으로 여성성을 억압하는 것은 착한 차별인가?



지금 가부장제 여성성의 주입과 성인지 감수성의 강요를 여성의 권리라 주장하는 것이 내게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가? 불법 종교에 주입된 인간이 사람들에게 불법 종교가 주입한 인간성을 다른 인간들에게 옳은 것이라며 강요하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가부장제 여성성이 작동하도록 새겨 넣은 논리 회로를 그대로 놔두고 여성성 억압하는 성관념이 옳다 떠들어대니 여성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는가? 남성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처럼 사상으로 여성을 억압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하지는 않는다. 여성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주의 사상이 문제다. 대부분 인간이 문제기보다는 사상이 문제다. 사상 문제만 해결하면 성별 관계 없이 전부 우수하다. 그럼에도 그런 사상에서 미국의 사회적 우대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절대적 이익까지 추구하니 더욱 더 엉망이 된다. 피해 의식 높고 감사 지수 낮고 무고죄와 아기 살해가 늘어난다. 이런 것 전부 이딴 걸 여성 인권이라 주장하고 다닌 결과다. 이런 것에 의해 신세대 여성이 가부장제 여성성을 가지게 된 상태에서 여성주의자가 그루밍이나 가스라이팅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다. 종교 가치로 순종적으로 가공해놓고 그것에 맞춰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흑인 집단이나 여성 집단이 인종 차별이나 성별 차별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면서도 흑인과 여성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바란 것이 아니라 본인 집단의 절대적인 이익을 바랐기에 그랬던 것이다. 만약 인권을 바랐다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굳이 인종이나 성별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같은 인간이니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라가 아닌 흑인과 여성이니까 절대적인 이익을 달라는 식이니까 인종과 성별을 강조하게 된다.


절대적 이익은 이런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남녀 임금 격차 크다는 통계를 활용하는데, 임금 격차 외에 조건을 무시하여 정당한 차이임에도 부당한 차이인것마냥 말하며 부당한 이익을 주장하고 있다. 생산 가치 차이, 현장직과 사무직의 차이, 이과와 문과의 차이, 노동 시간의 차이, 험한 일 유무 차이, 가정 주부 비율 차이 등 다양한 조건이 모두 무시되고 오로지 성별 집단이 임금 차이 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력을 적게 하거나 하지 않으면서도 이익을 달라 요구한다. 절대적 이익을 위해 여성 성매도자가 있으면 여성 성매도자는 지원금을 주고 남성 성매수자는 처벌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가부장제의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근거로 정당화한다. 그게 절대적으로 옳다고 배웠으므로 그런 여성 억압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저항이 없다. 


그런 절대적 이익을 위해 선동, 오도, 폄하, 거짓 눈물 가리지 않는다. 부당 행위가 드러나 손해를 볼 때가 되면 남탓을 한다. “네가 잘못이다.” 설령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조차도 그렇다. “나의 거짓말을 믿은 너희 잘못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얻는 결과가 나와야만 하기 때문에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에서 경쟁을 하는데 본인 이익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은 많이 좋아하더라도, 경쟁하는데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려 드는 인간을 몇 명이 좋아하겠는가? PC주의나 여성주의가 사회에서 기피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것은 여성주의만 그런 것이 아닌 체제에 맞는 합리적 기준 없는 권력 남용에 해당하는 이익 주장은 대부분 그러하다.


이제 이런 다양한 가치의 절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가치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가치의 상대성은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모든 가치가 존중될 수 있다. 모든 가치가 존중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수 있는데, 그것은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의 한계를 합리적으로 정하면 된다. 그렇게 존재의 절대성으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킨다.






3) 문제 해결


가치에 의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이 자리잡혀야 한다.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 결과로 보편성과 재현성을 확보하여 모두가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기초로 인문 계열의 체계를 갖춘다. 존재와 가치는 구분이 간단하다. 판단이 불가하면 존재, 판단이 가능하면 가치. 판단이 불가한 것은 존재이므로 절대성을 통해 강제력을 정당화하고, 판단이 가능한 것은 가치이므로 상대성을 통해 자유를 보장한다. 


이 구분은 모든 인문 계열에 적용될 수 있으므로 모든 인문 계열을 통합한 체계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해진다. 오늘날 수많은 사회 문제는 인문 계열의 기초가 종교 가치거나 제대로 없어서 체계적인 발전이 안되어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가 충돌하면서 발생했던 것이다. 존재의 절대성으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켜 가치에 의한 분쟁을 끝낸다.


존재 질서 속에서 개인은 이기주의적인 상대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이타주의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이기주의는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절대적 이익은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결과를 추구하고 상대적 이익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결과를 추구한다. 모든 개인은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되 법, 정책, 제도 등의 공정한 규칙 내에서 이익이나 손해를 볼 수 있음을 인식하면 된다. 


모든 것은 개인에 맞춰야 한다. 약자 집단에 맞춘 법, 정책, 제도를 시행할 것이 아니라 약자 개인에 맞춘 법, 정책,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말하며 집단 전체가 이익을 얻도록 할 것이 아니라 사회와 체제 가치가 추구될 수 있도록 하여 모든 개인이 공정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존재의 절대성을 근거로 체제 가치에 속하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종이나 성별을 배제하고 개인이 부족한만큼 성장할 수 있는 생계와 교육 보장 등의 혜택을 준다. 그렇게 하여 모든 개인에게 절대적 이익에 해당하는 결과의 평등이 아닌 상대적 이익에 해당하는 기회의 평등이 돌아가도록 한다. 






4) 책임 소재


사회 문제의 책임 소재는 무엇에 있는가? [책임: 1.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2.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 사회 문제를 일으킨 개인에게 있는가? 물론 표면상 일부는 그렇다. 그렇기에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그에 대한 제재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전부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 문제는 개인과 사회가 모두 책임진다. 사회가 개인이 일으킨 사회 문제의 의무나 부담을 지니까 그에 대한 제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내국인은 사회 구조 요소기에 책임지고 외국인은 국제법에 따라 책임진다.


본질로 보면 책임 소재가 달라진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되기 때문에 문명 사회의 모든 주권자와 통치 대행자 책임이 된다. 기초적인 언어부터 가공되는 특정 개인이 본질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야만스러운 원시 사회라면 모를까 고도화된 문명 사회에서는 개인의 교만이 된다. 학문으로 문명이 만들어지는 문명 사회에서 만약 문제 해결 방법이 없었다면 모든 주권자와 통치 대행자가 아닌 학문의 책임이 되게 된다. 학문을 기초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학문에 해결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학문에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가 된다. 자연 계열에서 핵융합 발전소가 상용화되지 못한 것이 인간의 한계이듯, 인문 계열에서 고질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도 인간의 한계다. 이럴 때에는 현재의 학문에 의존하지 않고 한계를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인류는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으로 한계를 넘어 과거 사회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이고 현재도 계속 체계적인 발전을 하면서 언젠가 핵융합 발전소도 상용화를 하면 현재 사회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문 계열도 과학 혁명으로 한계를 넘어 체계적인 발전이 되어야 고질적 사회 문제와 앞으로 있을 사회 문제 해결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학문


[학문: 1.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문명은 학문으로 만들어지고 학문은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진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갑자기 학문이 탄생한 것은 아니다. 언어조차도 시작한 인간이 반드시 존재한다. 시초의 생각이 사상이 되어 널리 퍼지면서 배우는 자가 늘어남에 따라 체계화된 것이 바로 학문이다. 시초의 사상가는 문자가 없던 시기에 있었기에 아마 역사서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같은 학문이나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가 있다. 






2.1 학문 구분


1) 학문 태도


학문 태도는 맹신과 의심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문 내에서 맹신하면 종교고 의심하면 학문이다. 학문을 맹신하면 학문 종교가 되고 신과 같은 초월한 것을 맹신하면 신비 종교다. 학문으로 문명이 만들어졌기에 국가 체제는 종교나 학문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보통 신정은 종교로 체제가 만들어지고 왕정은 종교와 학문으로 체제가 만들어지고 민주정은 학문으로 체제가 만들어진다. 현재 대부분 민주정은 왕정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종교로 만들어진 종교 가치와 학문으로 만들어진 체제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상태다.


인문 계열은 종교 가치에 영향을 받아 인문 계열의 기초는 대부분 서력 기원 시기에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아직까지 인문 계열에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남아있다. 종교는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겨 불변한 진리를 알고 있다 여기기 때문에 새롭게 진리를 찾지 않는다. 만약 새롭게 진리를 찾는다면 종교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므로 더 이상 종교가 아니게 된다. 종교에 영향을 받은 인문 계열도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새롭게 진리를 탐구하지 않았기에 서력 기원 시기의 인문 계열과 현재의 인문 계열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수천 년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반복된 까닭은 인문 계열이 본질이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 계열은 르네상스로 시작하여 과학 혁명을 통해 자연 계열의 기초는 대부분 과학 혁명 시기에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자연 계열은 많은 것을 의심하면서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에서 많이 빠져나오게 되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보편성과 재현성을 확보하면서 존재의 절대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존재를 기초로 체계적인 발전을 하면서 매번 한계를 돌파하고 있다. 만약 새롭게 진리를 찾지 않는다면 학문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므로 종교가 되어버린다. 철학의 세 기준 중 하나인 존재를 탐구한다는 측면에서 자연 계열의 탐구자는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자가 될 수 있다.






2) 학문 방법


학문 방법은 생산과 소비로 구분할 수 있다. 지식 생산자는 창의 발상을 하고 지식 소비자는 기억 발상을 한다. 지식 생산자는 창의 발상을 통해 모르는 것을 떠올려 없던 가치를 생산하고 지식 소비자는 기억 발상을 통해 아는 것을 떠올려 있던 가치를 관리한다. 없던 가치를 만드는 인간과 있던 가치를 관리하는 인간은 둘 다 필요한데, 이 둘에게 필요한 능력은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주입식과 문제 풀이 평가를 보편화하면서 해당 능력이 필요한 있던 가치를 관리하는 인간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게 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창의 발상은 모르는 것을 떠올리고 기억 발상은 아는 것을 떠올린다. 모르는 것은 관념이 고정되지 않아야 떠올리기 쉽고 아는 것은 관념이 고정되어야 쉽다. 블록으로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블록: 1. 쌓아 올리도록 만든 장난감.] 유동 관념은 블록이 부품인 상태로 있는 말하고 고정 관념은 블록이 조립된 상태로 있는 것을 말한다. 창의 발상을 할 때에는 블록이 부품인 상태로 있으면 블록 부품을 바로 조립하면서 새로운 블록을 만들 수 있지만, 블록이 조립된 상태로 있으면 블록 조립을 해체를 하여 조립하면서 새로운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 기억 발상을 할 때에는 블록이 부품인 상태로 있으면 블록을 조립해야 하지만 블록이 조립된 상태로 있으면 그냥 그대로 쓰면 된다. 


창의 발상과 기억 발상은 위와 같이 필요한 관념이 다르다. 그런데 주입식과 문제 풀이는 고정 관념을 주입하고 필요로 한다. 지식이 조립된 블록인 상태로 주입하고, 지식이 조립된 블록인 상태로 떠올려서 문제를 푼다. 문제 풀이로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고정 관념이 많을수록 유능하단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유동 관념이 많을수록 무능하단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유동 관념이 많으면 문제 풀이를 할 때 고정 관념과 달리 블록을 조립하는 시간이 필요하여 신속하지 못할 수 있고, 빠진 부품이 있을 수 있어 용어나 의미가 떠오르지 않아 문제를 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기억력이 좋지 못하거나 공부를 덜 했다는 착각을 하고는 달달 암기하게 하는 것으로 고정 관념을 강하게 가지게 하여 기억 발상 능력은 키우고 창의 발상 능력은 버린다. 창의 발상 능력을 키우려면 애초에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유동 관념으로 창의 발상을 하는 과정을 설명해보겠다. 예를 들어 어떤 개념이 있다. 유동 관념일 때에는 개념이 쪼개져서 발상이 되게 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개념을 발상하면 의미가 통째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각각 따로따로 떠오른다. 민주주의가 뭐지? 주권? 국민? 자유? 사회? 반대로 용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쪼개진 개념들도 추상적으로 떠오른다. 


고정 관념일 때 전부 발상되지 않은 것과 유동 관념일 때 전부 발상되지 않은 것은 다르다. 고정 관념일 때에는 조립된 블록이 전부 떠올려지지 않는 것이고 유동 관념일 때에는 블록 부품이 떠올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쪼개진 개념을 발상하여 조립한다. 그러다 보면 빠진 개념이 있을 수 있고 객관적 개념과 다를 수 있어 발상을 활용할 때에는 사전 정의를 참고한다. 쪼개져서 발상이 되기 때문에 다시 조립하면서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이치를 떠올리면서 조립하기 때문에 새로운 이치를 발견하거나 알게 되면 다른 방식으로 조립하면서 익숙한 개념으로도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쪼개져서 발상이 되기 때문에 조립된 상태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순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 모순을 제거하여 합리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타주의를 고정 관념으로 가지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으므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이 알지 못하게 된다. 이타주의를 유동 관념으로 가지면 타인, 행복, 개인, 희생, 절대, 등으로 쪼개져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 알게 된다. 특정 주장도 쪼개져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주장의 모순을 찾아 논파하는 것도 보다 쉽게 된다.


유동 관념은 유동 자아일 때 수월하다. 2차 성징 이전의 유동 자아일 때에는 관념이 고정되지 않아서 발상이 수월한 것이다. 인간은 2차 성징이 시작하면서 관념이 고정되면서 자아도 고정되게 된다. 주입식 교육과 문제 풀이로 고정 관념은 더욱 늘어나면서 자아도 깊게 고정된다. 그렇게 한번 고정 자아가 되면 고정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고정된 관념도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세세한 부분까지 다 고정되면서 자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고정 관념에 의해 고정 자아가 되고 고정 자아에 의해 고정 관념이 늘어난다. MBTI과 같이 세세한 성격 유형을 규정하면 고정 관념이 늘어나 고정 자아가 되는데 영향을 준다. 


유동 관념을 가지려면 고정 관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유동 자아가 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유동 자아는 고정 관념이 적어 고정되지 않아 굉장히 불안정하여 일반 상태로는 유동 자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걸 유동 자아였던 시기를 자아 나이로 정하는 것으로 지속적 인식하면 할 수 있게 된다. 사춘기 시기 “나는 뭐지?” 라며 자아에 대해 생각하던 것을 계속 하면 된다. 나는 세상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계속 하고 있다. 


지식 생산자는 기초와 응용을 전부 생산하는 인간과 응용을 주로 생산하는 인간으로 나뉘는데, 기초 지식 생산자는 기초도 유동 관념을 가져야 하고 응용 지식 생산자는 기초는 고정 관념이되 응용은 유동 관념을 가져야 한다. 자아 나이는 14세에서 20대 초로 설정하여 유동 관념을 늘리고 고정 관념을 줄이는 것이 좋다. 지식 소비자는 기초와 응용을 관리하는 인간으로 고정 관념을 가져도 되나, 지나치게 고정 관념이 많으면 새로운 지식 소비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해야 한다. 자아 나이는 20대 초에서 20대 후로 설정하여 새로운 지식을 소비할 수 있을 정도의 고정 관념과 유동 관념을 가지는 것이 좋다.






3) 학문 체계


학문 체계는 사상과 철학과 과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으면 사상, 얽매이면서 구체적이지 않으면 철학, 얽매이면서 구체적이면 과학이다. [사상: 1.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 [철학: 1.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 [과학: 1.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이른다.] 


사회는 학문 전후가 다르기에, 그것으로 용어가 달라지기도 한다. 사회는 학문 전에는 문화 학문 후에는 문명으로 나뉜다. 보통 문화를 인문 계열로 보고 문명을 자연 계열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인문 계열이 서력 기원 시기부터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반면 자연 계열은 과학 혁명 이후 존재 탐구를 하면서 끊임 없이 발전하면서, 인문 계열은 시골이든 도시든 차이가 없지만 자연 계열은 발전된 도시에 적용되면서 나타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를 한다고 가정하고 이제는 학문 전후로 문화와 문명으로 구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사상은 학문에 얽매이지 않는 탐구다. 있던 적이 없던 시초의 사상이나 있었으나 학문의 기초가 된 기초의 사상을 주로 다룬다. 시초의 사상과 기초의 사상은 모르거나 제자백가, 고대 그리스, 각종 종교, 과학 혁명 등에 해당한다. 사상은 학문에 얽매이지 않아 새로운 확률이 있지만, 새로운 것을 논리로 성립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학문에 얽매이며 구체적이지 않은 탐구다. 인식, 존재, 가치와 같이 구체적이지 않은 개념들을 막연하게 탐구한다. 그렇기에 곧잘 형이상학적이게 된다.  [형이상학: 1.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 보통 인문 계열에서 이런 탐구를 하여 철학은 인문 계열에 속한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자연 계열도 구체적이지 않은 탐구를 한다면 철학에 속하게 된다.


과학은 학문에 얽매이면서 구체적인 탐구다. 세부 분야가 세세하게 나뉘어져 특정 개념을 집중하여 탐구한다. 그렇기에 곧잘 형이하학적이게 된다. [형이하학: 1.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 보통 자연 계열에서 이런 탐구를 하여 과학은 자연 계열에 속한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인문 계열도 구체적인 존재 탐구를 하여 체계를 갖추면 과학에 속하게 된다.


인문 계열이 주로 형이상학을 탐구하고 자연 계열이 주로 형이하학을 탐구한 것은 그냥 인문 계열이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탐구할 수 있을 정도의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 계열이 존재 탐구를 하여 체계적 발전을 했던 것과 같이 인문 계열도 존재 탐구를 하여 체계적 발전을 해야 한다. 


자연 계열에서는 존재 탐구를 통해 체계를 갖춰 발전하면서 학문 한계 돌파를 하는 일이 있다. 최근 과학의 한계 돌파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은 수로 표현한 가상의 형태로, 과학자 클로드 섀넌이 미분해석기 논리 회로 연구 중에 떠올린 발상을 통해 디지털 기술의 기초인 디지털 회로 이론을 창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존재 탐구를 하면 절대적인 존재를 기초로 체계적인 발전을 하면서 학문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과학 또한 학문에 속하여 발상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발전하고 있다. 갑자기 물리 법칙을 무시한 마법과 같은 발전은 어렵고, 실험을 통해 예측할 수 없었던 영역으로는 발전할 수 있다. 자연 계열은 세세하게 체계화하여 대부분 예측 범위 내에서 발전하고 있지만, 학문이 일반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학문 내에서는 절대적이라도 학문 밖에서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자연 계열 또한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기초를 탐구하는 인간이 필요하게 된다.






4) 학문 성질


학문 성질은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식 탐구를 할 때에는 이런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나 존재 탐구를 할 때에는 체계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이런 구분이 크게 중요하게 된다. 선천적 존재는 일반 자연을 탐구하는 것으로 기초 과학을 말하고 후천적 존재는 선천적 존재 탐구를 활용하는 것으로 응용 과학을 말한다. 기초 과학은 자연 계열이고 응용 과학은 기초 과학을 활용하는 모든 학문이다. 통상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로 학문을 나누는데, 인문 계열 또한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 계열의 기초 과학을 이치로 삼아 논리를 전개해야 하므로 응용 과학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으로도 나누어야 한다. 기초 과학은 자연을 기준으로 하고, 응용 과학은 기초 과학을 기준으로 한다. 응용 과학에서 인간 도구를 기준으로 하면 자연 계열이라 부르고 인간 심리를 기준으로 하면 인문 계열이라 부르고 있다.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란 기초 과학을 말하고,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의 후천적 존재 탐구란 응용 과학을 말하게 된다.


본래 인문 계열은 인간 심리의 영향으로 어떻게 해도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과 가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게 인문 계열의 한계였다. 그러다 자연 계열이 과학적 방법으로 선천적 존재 탐구를 하면서 인문 계열도 후천적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인문 계열은 인식과 가치를 이치로 삼아 논리적인 탐구를 하는 것이 아닌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이치로 삼아 논리적인 탐구를 하면서 인문 계열도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 결과를 이치로 여기기에 논리적인 주장도 수월하게 되었다. 존재 질서에서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으니까. 가치는 상대적이다. 몸이 다르니까. 이보다 더 강력한 논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 없이는 존재 탐구가 불가능에 가까워 과학 혁명 이전의 인문 계열 탐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2 학문 영역


1) 개념 개발


개념 개발은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것이 후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이 자아를 자각하기 전부터 이미 인간의 인식은 가공되게 된다. 남성 유치원생이 파랑을 선호하고 여성 유치원생이 분홍을 선호하는 것을 보고 남성이 파랑을 선호하고 여성이 분홍을 선호하는 것이 선천적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 본래 남성은 분홍을 선호하고 여성은 파랑을 선호했다는 것을 보면 후천적으로 가공된 결과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기초 과학은 선천적이라 여겨지고 있으나 인간은 감각기관과 언어 개념을 통해 인식하기 때문에 사실 후천적이다. 모든 것이 후천적이나 학문 내에서 기초 과학을 탐구 결과는 선천적이라 가정하고 응용 과학 탐구 결과는 후천적이라 가정할 뿐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일반에 속한 일반 진리를 모르고 학문에 속한 학문 진리를 알고 있다.


모든 것이 후천적이므로 모든 탐구에는 개념 개발을 필요로 한다. 개념 개발이나 개념 분석시에는 학문 내에서 쓰이는 개념을 체계화하여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한다. 하나, 모양과 성질. 모양과 성질의 본디는 본질이다. 둘, 구조와 원리. 모양과 성질의 원인이다. 셋, 요소. 구조와 원리의 나눌 수 없는 성분이다. 넷, 선천과 후천. 요소의 선천인 기초 과학과 후천인 응용 과학이다. 다섯, 기초 과학. 선천에서 가장 작은 단위까지다.






2) 개념 가공


개념 가공은 특정 개념을 가공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지각을 자각하는 지적 자아가 인식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손익을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가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변화를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존재를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영혼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죽음을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도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감각을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감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결핍을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행복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모든 개념이 후천적이기 때문에 완전히 선천적인 것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을 토대로 개념이 가공되어 만들어지는지는 파악할 수 있다. 대체로 학문 내에서 감각 기관으로 지각한 것이 선천적이고, 지각한 것으로 가공된 것이 후천적이다. [지각: 1. 감각 기관을 통하여 대상을 인식함. 또는 그런 작용. 그 작용의 결과로 지각체가 형성된다.] [감각: 1.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지각으로 인식해야 개념이 성립되므로 지각이 적절하다. 


여기서 쪼개면서 가장 작은 단위까지 가면 된다. 대략적으로 쪼개보자. 지각에 속한 개념을 쪼개고, 감각에 속한 개념을 쪼개고, 세포에 속한 개념을 쪼개고, 원자에 속한 개념을 쪼개고, 기본 입자까지 간다. 기본 입자도 쪼갤 수 있는지 탐구 중에 있다고 한다. 하나씩 쪼개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부 쓰는 것은 어려우므로 예를 들기 위해 하나씩 썼다. 그렇게 하여 인간이 일상적으로 사용 중인 개념까지도 전부 체계화한다. 대체로 지각을 쪼개고 나서 부터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체계화되었기 때문에 인문 계열에서는 지각으로 가공된 개념을 체계화하면 된다.


가공을 잘 알기 위해서는 소재를 파악해야 하고, 가공된 것의 소재를 잘 알기 위해서는 가공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초 과학의 발전은 응용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응용 과학의 발전은 기초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3) 개념 해석


개념 해석은 가공된 개념을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가공된 개념은 다양하나 인식, 가치, 시간, 영혼, 도덕, 감정, 행복을 알아보겠다.


첫째, 인식. 감각 기관으로 대상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된 것을 자각하고 지적 자아가 인식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인식은 감각 기관의 감각과 감각 판단 기준인 관념이 인식의 요소가 된다. 감각은 눈, 코, 귀 혀, 살갗과 같은 감각 기관의 자극 전달이고 관념은 경험, 사상, 가치, 지식과 같은 모든 대상에 대한 생각이다. 인간은 감각 기관이 모두 달라 관념이 같더라도 인식은 상대적이게 된다.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감각되지 않아 지각에서 벗어난 영역이거나 관념에 없어 발상되지 않았던 영역에 해당한다. 이런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파악하려면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기초로 한 논리로 감각과 관념을 초월해야 한다.


둘째, 가치. 이익과 손해를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가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본인의 주관적 기준으로 모든 것의 이익과 손해를 판단하면서 가치가 나타나게 되었다. 진리, 도덕,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이 본인의 주관적 기준으로 한 손익 판단이다. 진리를 알고자 하는 인간에게 진리는 이익이고 진리가 아니면 손해가 된다. 금전적 가치 등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인식이 모두 달라 판단 기준이 다른 것으로 추구하는 손익은 같더라도 가치는 상대적이게 된다.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가치 관념에 없어 발상되지 않았던 영역에 해당한다. 가치는 주관적 기준의 판단이므로 실제 손익과 별개로 주관적으로 이익이 된다 판단하면 가치가 높다고 느끼고, 주관적으로 손해가 된다 판단하면 가치가 낮다고 느끼게 된다. 가치 판단을 못하거나 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셋째, 시간. 변화를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시간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변화를 지각하고 변화의 근원을 찾다보니 나온 결론이 바로 시간이다. 만물은 물리적 이동만 있다. 그걸 인간이 지각한 순서대로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했던 개념이다. 그렇기에 시간은 우주의 법칙에 속하지 않는다. 상대성 이론은 시간을 전제했기 때문에 시간이 있을 거라 착각할 수도 있는데, 그 이론은 시간은 없거나 지각 순서로 바꿔도 성립한다. 가치의 절대성을 전제한 학문이 수정되어야 하듯이 시간을 전제한 학문도 수정되어야 한다.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전제한 다세계 불가능하다. 숙명 없다. 운명 없다. 윤회 없다. 전쟁 없다. 환생 없다. 사후 세계 없다. 시간이 지각 순서라는 발상은 자아를 파악하여 자아와 자아 외를 분리해 자아의 의식 의지로 육체의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통해 우주의 법칙이 인간의 지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도달해야 하므로, 자아 파악 이전에는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몰랐을 거라 생각한다.


넷째, 영혼. 존재를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영혼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영혼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존재를 지각하고 인간 존재의 근원을 찾다보니 나온 결론이 바로 영혼이다. 이 영혼 개념은 자아 개념과 일치한다. 차이는 외부와 내부다. 영혼은 외부에서 오고 자아는 내부에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이 외부에서 왔다고 보기에는 너무 불안정하다. 뇌세포만 손상되어도 육체를 제어하는 존재가 달라진다. 영혼이란 완성된 형태의 어떤 신비적 존재가 외부에서 왔다면 그런 물질적 손상에 영향을 받는 것이 논리적이지 못하게 된다. 영혼 개념이 후천적임에도 대부분 문명에 영혼 개념이 있던 것은 짐승의 생활 양식을 떠올리면 된다. 원시 부족 시대는 문명이 없어 대부분 자연 환경으로 가공되던 시기로 짐승의 생활 양식과 비슷했다. 같은 종의 짐승이 다른 환경에 있더라도 비슷한 생활 양식을 가진 것과 같이, 같은 종의 인간이 다른 환경에 있더라도 비슷한 생활 양식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영혼 개념이 있었다. 현대 문명으로도 존재를 파악할 수 없었던 영혼을 원시 부족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원시인이 현대인보다 지식 레벨이 높다 주장하는 것보다 허무맹랑하다. 영혼에 대한 믿음의 근거는 오래된 것 말고는 없다.


다섯째, 도덕. 죽음을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도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도덕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죽음을 지각하고 살아남기 위해 가치를 만들어 퍼트린 것이 바로 도덕이다. 당시 사상가가 공동체 생존에 절대적이라 주장한 것이 사회 선택으로 반영되면서 사회 질서 기준이 된다. 그렇게 사회 선택된 것 사상이 학문화되어 윤리가 된다. 그런 윤리 중에서 종교와 같이 구심점이 있는 것만 남으면서 오늘날 도덕과 윤리는 기본적으로 종교 가치가 된다. 상대적인 가치가 절대적으로 여겨지다보니 상충하는 가치가 부딪치면 분쟁이 발생했다. 이제 도덕은 절대적이지 않다. 도덕을 절대적으로 여겼던 것은 도덕이 없으면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원리를 추구할 수도 없었던, 비과학 시대의 한계에 불과하다. 과학을 통해 존재 유지 방법을 파악하여 존재의 절대성을 실현하면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켜 가치에 의한 분쟁을 끝낸다.


여섯째, 감정. 감각을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감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감정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감각을 지각하고 감각의 정체를 알기 쉽게 가공한 것이 바로 감정이다. 감정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본인의 감정을 정확히 모른다. 감각들을 모아 학습한 감정과 비슷한지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사랑과 공포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여 흔들다리 효과와 같은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감정이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과 가치에 의해 달라지게 된다. 바늘에 손을 찔리면 직관적으로 따갑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만 대상에 애정을 느낀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사랑이라는 가치로 인식하게 된다.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사랑은 상대적이게 된다. 사랑에는 다양한 것이 있는데 그 중 발정과 성애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발정과 성애는 이런 식으로 구분하면 된다. 발정은 감각으로 욕구를 직관적으로 느낀 것에 해당한다면, 성애는 발정과 사랑이 더해져 감각을 추상적으로 느낀 것에 해당한다.


일곱째, 행복. 결핍을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행복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행복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결핍을 지각하고 충족하면서 느낀 만족감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인간이 만든 개념으로 인간이 행복을 느낄 때에는 결핍을 충족할 때이다. 기본 욕구나 욕망과 같은 바라는 것이 생기면 결핍이 나타난다. 바라는 것을 이뤄 결핍을 충족하면 행복을 느낀다. 이것이 행복의 기본적인 원리다. 행복 원리가 단순하기 때문에 행복하고자 한다면 아주 쉽게 행복할 수 있다. 당장 스스로 본인의 목을 몰라 숨을 쉬지 못하게 해보자. 그러면 산소 결핍으로 불행해진다. 목을 조르던 것을 풀어 숨을 쉬게 해보자. 그러면 산소 공급으로 결핍이 충족되어 행복해진다. 이 단순한 과정에서 인간이 온전히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목을 조르는 것을 불행하다 느끼기 때문에 그것으로 행복을 느낀 것도 온전히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게 된다. 목조르는 것과 같은 결핍이 불행하지 않다 느끼면 SM 플레이가 성립되게 된다. 이는 모든 행복이 동일하다. 학습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과 같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동안은 결핍 상태다. 그 결핍을 과하게 불행하다 느끼면 바라는 것을 이룬다 하더라도 온전히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이 마약으로 과한 쾌락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기본 상태가 결핍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약으로 체내 결핍을 충족하면 깊은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체내 결핍을 충족해버리면 기본 상태가 결핍 덩어리로 느끼게 된다. 결핍을 과하게 불행하게 느끼면서 사는 것 자체가 불행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은 마약 없이 살 수 없게 된다. 마약이 기본 욕구와 같이 되면서 마약을 산소처럼 느낀다. 그러면서 마약을 공급하는 인간에게 지배된다. 인간은 결핍이 있어야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것을 충족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결핍의 충족이 행복이기 때문에 결핍이란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그렇기에 행복만 있는 세상은 없다. 영원한 행복은 영원한 불행이고 영원한 불행은 영원한 행복이다.






4) 개념 체계


개념 체계는 특정 개념을 체계화한 것을 말한다. 응용 과학에 속하는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 중 하나가 인간 심리에 관한 모든 개념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응용 과학에 속하는 자연 계열의 후천적 존재 탐구는 대체로 개념이 체계화되어 있다. 그러나 인문 계열은 인간 심리 영역을 파악하지 못하여 그렇지가 못하다. 사랑, 지배의 개념 체계를 알아보겠다. 인간 심리에 관한 개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해당 개념의 동력은 인간의 동력이 된다.



[사랑: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첫째, 모양. 사랑의 모양은 다양한 이로운 가치의 형상이다. 어떤 그림을 사랑한다고 해보자. 독창성은 가치가 높다, 선은 가치가 보통이다, 색은 가치가 낮다. 이런 식으로 가치를 판단한 것을 종합하여 형상을 가진다. 


둘째, 성질. 사랑의 성질은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애, 이성애, 가족애, 조국애 또는 특기의 대상 사랑, 취미의 대상 사랑 등 다양하다.


셋째, 구조. 사랑의 구조는 가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가치의 순위나 가치의 조합 등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사랑의 대상마다 체계가 다르다.


넷째, 원리. 사랑의 원리는 가치 추구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사랑이란 형상을 이루면서 사랑이 동작하게 된다.


사랑의 요소는 가치다. 가치를 쪼개면 손익이 되고, 손익을 쪼개면 지각이 되고, 지각을 쪼개면 감각이 된다. 감각 이후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이어진다. 



사랑의 모양은 다양한 이로운 가치의 형상이고 증오는 다양한 해로운 가치의 형상이다. 무관심은 가치 판단을 하지 않거나 못한 상태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에 가치를 높게 느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 관계에 있어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서로에게 가치를 높게 느끼게끔 노력해야 한다. 사랑에 관한 인간 관계 또한 존재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발생한다. 사랑에 관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존재 유지를 위해 본인의 가치를 높일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모든 사회에 적용된다. 사회와 사회 구성원에 가치가 높다 느껴야 사랑으로 사회가 유지된다. 가족에서 이혼이나 가출이 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가족이나 가족 구성원에 가치가 높다 느끼게 해야 하고, 기업에서 이직이나 퇴사가 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기업이나 기업 구성원에 가치가 높다 느끼게 해야 하고, 국가에서 이민이나 국적 포기가 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국가나 국가 구성원에 가치가 높다 느끼게 해야 한다.


사랑 중에 성애는 발정과 사랑의 결합으로 후천적 개념이 된다. 발정은 선천적이나 성애는 후천적이다. 그렇기에 이성애든 동성애든 인간의 취향이 된다. 선천적으로 이성에 발정되도록 되었어도 후천적으로 동성에 사랑을 느끼도록 되게 될 수 있다. 이성애자라도 동성과의 관계에서 쾌락을 기억하면 성애가 바뀔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전국 시대 일본에서 동성애가 유행한 것은 그들이 선천적 동성애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유행했기 때문이다. 유행으로 성애가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성애는 후천적이다. 그렇기에 이성애자가 VR에서 이성의 아바타를 사용하고 동성과 인간 관계를 맺으면 동성애자가 될 수도 있다. 이성애자라도 취향이 아닌 이성을 사랑하지 않고, 동성애자라도 취향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 취향은 가치 관념에 영향을 받아 발정 대상을 정하는데, 가치와 같은 후천적 개념에 영향을 받으므로 성애는 후천적이다. 성애는 이성과 동성을 배제하고 취향만 가지고 접근해도 성립된다.


흔히 동성애자들은 본인들의 성애가 선천적인 것이라 여기기도 하는데 성애는 후천적인 개념이다. 그렇기에 동성애자는 본인이 선천적으로 동성에 발정하는 것인지 후천적으로 동성애를 느끼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애는 후천적이니까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기도 하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동성애가 후천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강제로 교정하자 하자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취향은 개인의 권리다. 취향의 가치의 영역으로 성애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 된다. 취향을 특정 가치를 근거로 간섭하고 억압하고 검열할 권리는 없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그 무슨 사랑이든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존재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존중해야 한다. 굳이 LGBT와 무지개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되려 그걸 강조하며 다른 사람의 취향에 간섭하고 본인의 취향을 강요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물론 취향을 속이거나 악용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지배: 1. 어떤 사람이나 집단, 조직, 사물 등을 자기의 의사대로 복종하게 하여 다스림.]


첫째, 모양. 지배의 모양은 자유의 수단이다. 어떤 인간이 인간 관계에서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고 해보자. 지배가 가장 쉽다. 지배해서 원하는대로 하면 된다. 


둘째, 성질. 지배의 성질은 대상이나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이 인간을 폭력이나 윤리로 지배한다거나 인간이 짐승을 지배한다거나 등이 있다.


셋째, 구조. 지배의 구조는 자유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자유의 순서나 자유의 조합 등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자유의 대상이나 방식에 따라 체계가 다르다.


넷째, 원리. 지배의 원리는 자유 추구로 이루어져 있다. 본인의 일방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지배가 되면서 지배가 동작하게 된다.


지배의 요소는 자유다. 자유를 쪼개면 바람이 되고, 바람을 쪼개면 마음이 되고, 마음을 쪼개면 지각이 되고, 지각을 쪼개면 감각이 된다. 감각 이후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이어진다.



인류 역사가 지배와 복종의 역사라 할 정도로 지배와 복종이 일반적었기 때문에 지배와 복종이 선천적 개념이라 인식할 수 있는데 자유의 수단으로 후천적 개념이다. 지배와 복종이 선천적이지 않기 때문에 친구 개념과 같은 평등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평등한 관계는 짐승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종의 짐승이 어릴 때부터 어울리면 평생 같이 산다. 그게 평등한 관계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등해 보인다. 


지배는 자유의 수단이다. 지배에는 폭력과 윤리 지배가 있다. 폭력 지배는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다. “맞고 싶지 않으면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윤리 지배는 윤리를 수단으로 삼는다. “윤리를 바탕으로 한 내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으므로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왕정은 이 두 가지를 활용하여 인간을 지배했다. 


복종은 자유의 수단이다. 만약 자유가 아닌 복종은 자유가 성립되지 못하여 투쟁하거나 자살한다. 대표적인 자발적 복종이 바로 윤리에 의한 복종. 왕에 대한 충성이 옳다. 뭐 이런 식으로 복종을 윤리로 만든 것을 배우면 자발적 복종으로 자유가 성립되게 된다. 


지배와 복종은 둘 다 자유의 수단 중 하나지만,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다양한 자유를 고르게 모두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의 자유권을 훼손하는 지배와 본인의 자유권을 훼손하는 복종은 체제 가치에 의해 강제력이 발생되어 허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유할 자유 같이 훼손되는 자유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유한 것을 포기할 수는 있어도 소유할 자유는 포기할 수 없다. 자유욕은 곧잘 지배욕이나 복종욕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개인은 모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그에 맞는 가공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왕정 체제는 왕의 지배를 보장한다. 왕정 체제에 있던 유교 가치에 의해 집단이 있으면 서열이 생기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 착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렇게끔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최초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유롭게 타인을 지배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지배가 되게끔 가공한 것이다. 짐승은 폭력을 통해 서열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폭력이 선천적이고 서열이 후천적인 것에 해당한다. 벌 개미와 같은 지능이 낮은 곤충은 유전자대로 움직일 뿐이지, 거기에 지배나 서열 개념이 성립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정 체제는 모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의 수단 중 하나가 지배기 때문에 자유를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 체제는 모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여 특정 개인의 일방적인 자유인 지배가 성립될 수 없다. 이는 법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사회와 계약을 통해 법을 준수하는 것이지 사회의 법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다. 존중은 공포에서 온다는 말이 있는데, 공포는 존중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복종을 부른다. 존중은 대등에서 온다. 사회 계약을 통해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지는 것으로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모든 개인의 자유가 성립한다.


지배나 복종으로 쾌락을 느끼는 것으로 선천적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후천적 개념으로도 내포된 일부 선천적 개념으로 충분히 쾌락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다양한 가치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시험 합격과 같은 어떤 후천적인 목적을 달성하면 성취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 것과 같이 후천적이다. 지배하면 대상과 관계에서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어 기분이 좋을 수 있고, 복종하면 대상에게 판단을 맡겨 판단하지 않으면서 편안 것으로 기분이 좋을 수 있다. 감정과 마찬가지로 쾌락도 그 원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여 지배를 통해 바람을 이룬 것으로 얻는 쾌락을 지배에 의한 쾌락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지배와 복종은 가상이나 임의의 놀이나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 즐기면 된다.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대상과 대화나 거래로 바라는 것을 이뤄 기분이 좋아지고, 판단을 맡기는 것으로 편안함으로 기분이 좋아지면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게 더 재미있을 수 있다. 경쟁 게임에서 지배한다고 재미가 있겠는가? 축구하는데 무조건 골 넣으면 재미가 있겠는가? 일부는 재미 있을 수 있는데 그게 일반적이지 않으니 축구 경기가 성립되는 것이다. 애초에 행복의 원리는 결핍의 충족이기 때문에 일방적 이익이 반드시 행복을 부르지 않는다.






2.3 학문 탐구


1) 탐구 방법


탐구 방법에는 맹신의 인식 탐구와 의심의 존재 탐구가 있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만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시 세계에서 본인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관념으로 느껴지는 것만 있다고 여기며, 그렇지 않은 것은 초자연적인 신비를 다룬 종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맹신한다. 이것이 인식 탐구 방법이다. 철저하게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으로만 탐구하며 인식 외의 것은 그냥 신앙한다. 그렇게 해서 본인의 상대적인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게 된다. 흔히 인문 계열이 후천적인 것을 탐구하여 형이상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한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인문 계열의 탐구는 본인의 인식 안과 타인의 인식 밖의 주장만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자신의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탐구하고 그 외는 신앙한다. 그것이 어려워보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시 세계의 물질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보편성과 재현성을 확보한 증명으로 감각과 관념에서 벗어난 것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존재 탐구 방법이다. 무슨 종교 신앙과도 같이 보이지만, 종교와 다른 점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방법을 통한 증명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그것으로 인간은 상대적 인식에서 벗어나 절대적 존재를 탐구할 수 있었다. 흔히 자연 계열이 선천적인 것을 탐구하여 형이하학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탐구한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는 현상 파악 후에 감각과 관념에서 벗어나 증명과 논리만 가지고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것을 통해 인식을 초월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파악한다. 그것이 쉬워보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는 양자가 등장할 시기부터 보편화되었다고 본다. 그 전에도 보이지 않는 원자를 가정하여 실험을 통해 탐구하는 것으로 존재 탐구에 해당했으나, 양자부터는 실험을 통해 탐구하는 것도 어려워지면서 본격적인 존재 탐구가 시작되었다. 자연 계열은 존재 탐구를 하였으나 가치의 절대성에 의해 존재 개념에 제대로 닿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인식 탐구를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가 없었다고 본다.



하늘 색을 통해 인식 탐구와 존재 탐구를 비교해보자. 낮에 하늘을 본 사람에게 하늘은 파란색으로 보일 것이다. 저녁에 하늘을 본 사람에게 하늘은 주황색으로 보일 것이다. 밤에 하늘을 본 사람에게 하늘은 검정색으로 보일 것이다. 


인식 탐구는 이런 것을 보고 하늘은 파란색과 주황색과 검정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탐구 결과를 내놓는다. 본인 인식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다. 사회 과학이 과학이라 말하지만 실상 인식 탐구인 것도 이렇게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 과학이 사회 현상 해석할 때에는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 하늘 색 통계를 내서 파란색은 n%, 주황색은 n%, 검정색은 n%로 통계를 낸 다음, 하늘 색은 이런 식으로 구성되었다며 판단하고 있다. 현상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통계를 낸 것을 과학이라 하고 있다.


반면 존재 탐구는 하늘을 보고 빛의 구조와 원리, 천체의 구조와 원리, 시각의 구조와 원리 등의 증명을 활용하여 하늘 색이 파란색과 주황색과 검정색으로 보이게 된 구조와 원리에 관한 탐구 결과를 내놓는다. 본인 인식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여 증명하고, 그 증명을 모아 다시 탐구하여 구조와 원리를 파악한다. 이렇게 탐구하여 보편성과 재현성을 갖추면 모든 인간이 같은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통해 존재 탐구는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해진다. 다른 것을 보면 본인이 본 것이 맞다고 싸우면서 발전이 안 되지만, 같은 것을 알면 모두가 안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발전이 가능해진다. 존재 탐구가 되어야만 체계적인 탐구를 하는 과학이 성립된다.



동양 의학과 일반 의학을 통해 인식 탐구와 존재 탐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다. 동양 의학과 일반 의학의 결정적 차이는 탐구 방식이다. 동양 의학은 인식 탐구를 했다면 일반 의학은 존재 탐구를 했다. 하늘 색으로 설명하면 동양 의학은 수많은 다양한 색을 전부 모아 통계를 내서 하늘 색이 무엇인지 파악했다고 여겼고, 일반 의학은 하늘 색에 관련된 것의 구조와 원리를 증명하여 파악했다고 여겼다. 


그런 것과 같이 동양 의학은 구조와 원리를 모른 채 온갖 경험을 통해 나온 통계를 가지고 때려 맞춘다. 그래서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다. 구조와 원리를 몰라 증명도 못한다. 그런데도 가끔 맞으니까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매번 다르기 때문에 체계적인 발전을 못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동양 의학이 효과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인간 육체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의학은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 보편성과 재현성을 가지고 대부분 환자에 적용할 수 있다. 예외가 발생하면 탐구하여 예외를 보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일반 의학 관계자가 모두 같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식으로 체계를 갖춰 발전한다. 


동양 의학은 인식 탐구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하지 못했고 일반 의학은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인문 계열이 현재 서력 기원에서 본질적인 발전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보편성과 재현성이 없는 학문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개인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인식하고 다르게 가치를 느끼는데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각자 본인들의 인식과 가치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싸우기만 할 뿐이다.



인식 탐구가 무엇인지 관문 효과(Gateway effect)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를 통해 알아보겠다. 


관문 효과는 습관성 또는 중독성이 있는 물질을 소비하면, 그 물질이 관문이 되어 더 강력한 물질을 갈구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대마를 하면 더 강한 마약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음주자와 흡연자는 술과 담배에 중독되더라도 마약을 찾지 않는 것을 볼 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는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는 정당성 유무. 인간은 정당한 결핍을 충족할 때 행복을 느낀다. 허기진 상태라는 결핍을 당연하게 여기면, 그 결핍을 충족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목졸린 상태라는 결핍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 결핍을 충족할 때 불행을 느낄 수 있다. 둘은 카테고리. 인간은 인식으로 판단하기에 다른 카테고리로 인식된 것은 별개로 느낀다. 본질적으로 술, 담배, 마약은 같은 향정신성 물질임에도, 술과 담배는 기호품으로 인식되고 마약은 마약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술과 담배를 하는 인간은 술과 담배가 마약의 관문이 되지 않는다.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마약을 탐구해보자. 마약은 인간의 결핍을 충족하여 행복을 부르는 물질이다. 인간의 기본 상태는 다양한 결핍으로 가득차서 그 결핍 상태를 충족하면 행복해한다. 배가 고플 때 식사를 하면 행복하고, 잠이 올 때 잠을 자면 행복하고, 배설을 하고 싶을 때 배설을 하면 행복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육체 내에 있는 수많은 자잘한 통증, 무게감, 등등이 인간을 피로하게 만든다. 마약은 뇌내 물질 분비를 유도하여 그 결핍을 잊게 하여 충족하게 한다. 그것으로 인간은 행복해진다. 그런데 그러면 일반 보통 상태가 굉장한 결핍 상태가 된다. 그 결핍 상태를 인간은 부당하게 느낀다. 그래서 같은 중독성을 가진 물질을 소비해도 그 결핍의 충족을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관문 효과가 나타난다. 더 강한 물질을 소비하여 결핍의 충족을 행복하다 느끼게 된다. 이것의 반복이 중독이 강한 물질에 의한 파멸이다.


술, 담배, 대마는 습관성과 중독성이 다른 마약에 비해 낮은 편이기에 결핍 상태를 그렇게 부당하다 느끼지 않는다. 그것을 자연스러운 결핍으로 느끼고 술, 담배, 대마를 마치 허기짐 충족으로 행복을 느끼듯이 되게 된다. 여기서 부당하다 느낀 인간은 관문 효과처럼 더욱 강한 물질을 찾게 된다. 그런데 술, 담배와 대마는 인간마다 카테고리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술, 담배는 기호품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더 강한 물질을 찾으면 알코올 도수가 높거나 니코틴 함유량이 높은 것을 찾거나 더 많이 마시고 피우게 되고, 대마를 마약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더 강한 물질을 찾으면 다른 마약을 찾게 된다. 대마를 기호품으로 인식할 경우에는 더 강한 대마 또는 대마를 많이 피우게 될 것이다. 이처럼 관문 효과는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반드시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도박 중독이나 범죄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현금 환급이 불가능한 도박을 하더라도 현금 환급이 가능한 도박에 빠지지 않는 것은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 창작물을 즐기더라도 현실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인식 차이에 의한 카테고리 구분이 가능하므로 다른 카테고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인식 구분을 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 인간은 카테고리 구분을 못하고 사건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현재 한국은 성이나 범죄에 관련된 창작물이 가능성을 명분으로 규제되는데, 이것은 소수의 정신 이상자의 범죄 가능성 때문에 다수의 일반인의 자유권을 침해한 부당한 규제와 검열에 해당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범죄가 확산된다는 주장이다. 깨진 유리창이 있는 곳에는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인식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쓰레기 더미가 모인 곳이 있으면 거기에 쓰레기를 버릴 지언정 인간을 쓰레기처럼 취급하며 죽이지는 않는다. 깨진 유리창을 보고 약하다 인식되는 잘못은 쉽게 저지를 수 있지만, 강하다 인식되는 잘못은 쉽게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치안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범죄율이 낮은 곳에서는 깨진 유리창을 보고 쓰레기 투척이 일어날 수 있지만, 범죄율이 높은 곳에서는 깨진 유리창을 보고 절도가 일어날 수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도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반드시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디지털 콘텐츠 무단 복제가 많은 것은 이 인식 변화에 의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치안 환경이 좋은 한국에서 디지털 콘텐츠 무단 복제가 많은 것은 성적 디지털 콘텐츠 무단 복제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허용되는 것과 불허되는 것이 같은 디지털 콘텐츠로 인식되면서 같은 카테고리에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관문 효과와 깨진 유리창 이론은 원리가 아닌 현상이다. 인식 탐구로 인식으로 보이는 현상을 이론으로 삼았다. 하늘 색을 파랑, 주황, 검정으로 보고 이론으로 삼은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조건이 맞으면 성립되고 조건이 맞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현상 자체를 이론으로 삼았기 때문에 현상이 발생할 때도 있고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때도 있게 되었다. 하늘 색이 주황이라 주장한 사람은 저녁이 되면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거봐 내 말이 맞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 밤이 되면 다른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아니 하늘 색은 검정색인데?” 


인식 탐구는 골치아프게 된다. 분명 현상은 존재하는데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보편성을 확립하지 못하여 이론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면서 현상 자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관문 효과와 깨진 유리창 이론은 현상이 존재했으나 매번 발생하지는 않아서 없는 것이라 판단하고 내버려뒀더니 사회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렇다고 그 현상을 조건 고려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 전제해버리면 지나치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더해서 애초에 현상 자체가 없는 주장 또한 사실은 현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부르면서 미신과 같은 있지도 않은 현상이 실존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렇기에 존재 탐구를 해서 원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관문 효과는 결핍의 정당성 유무와 인식 차이에 따라 효과 유무가 결정되고, 깨진 유리창 원리는 인식 차이에 따라 효과 정도가 결정된다. 이런 식으로 파악되어야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게 된다.






2) 탐구 발전


자연 계열은 존재 탐구를 하고 인문 계열은 인식 탐구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연 계열이 인문 계열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의학 문외한이 동양 의학을 대신해 의료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동양 의학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랜 경험으로 본질적은 치료를 못하더라도 증상 완화는 할 수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당장 자연 계열이 수많은 인간 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을 효과적으로 제시 할 수 있다 장담할 수 있는가? 자연 계열 또한 자연 계열 분야를 존재 탐구한 것이지 인문 계열 분야를 존재 탐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단지 존재 탐구 개념을 좀 더 빠르게 받아드릴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인문 계열이 해당 분야에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발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인문 계열은 후천적 존재 탐구를 해야 한다. 모든 개인의 존재를 탐구한다 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육체가 다르고 가공 상태도 달라 동일한 기준을 세울 수가 없다. 짐승의 경우 가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동일 종의 생활 양식을 탐구하기 상대적으로 쉽지만, 인간의 경우 가공이 크게 달라 동일 종의 생활 양식을 탐구하기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렇기에 보편적인 것을 고려해 사회의 공통된 기준을 세운다. 그것이 바로 체제다.


과거 왕정은 집단주의 체제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집단 수장의 권리가 보장되는 체제였다면 현재 민주정은 개인주의 체제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다. 사회에 속한 인간은 사회에서 정한 체제를 기준으로 살아간다. 사회와 계약한 모든 개인은 그와 같은 생활 양식을 추구할 것이 절대적이게 된다. 그것은 육체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고 자동차에 맞는 연료를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하다. 다른 생활 양식을 바란다면 새로운 체제를 만들거나 가져와 사회 구성원을 설득하여 체제를 바꾸면 된다. 이러면 이치는 두 가지가 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가 이치가 아니라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이치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와 사회 체제다. 인문 계열은 그것들을 탐구하여 이치로 삼은 논리를 주장하면 된다.



사회 체제마다 생활 양식이 다르다. 그 말은 체제가 다른 사회는 다른 생활 양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제가 다른 사회에 살던 인간은 체제에 맞게 재가공하지 않으면 사회에 어울릴 수 없다. 이는 이민 정책이나 해외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유럽 이민 정책의 실패는 이민자를 체제에 맞게 재가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아프가니스탄의 실패는 아프가니스탄 사회를 미국 체제에 맞게끔 재가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식 탐구 결과인 문화 상대주의에 의해 문명 차이가 명백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탓에 실패해버렸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존재임을 이해하고 체제가 다른 인간을 문명에 맞게끔 가공하는 것에 문제가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강요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선택하게 하면 된다. 선진국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려면 그에 맞는 재가공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면 된다.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를 넣으면 고장나는 것과 같이 체제에 맞지 않는 인간이 들어오면 사회가 고장난다. 이것은 사과를 손에서 놓으면 떨어진다는 단순한 인과와 다를 바 없다.


사회 체제를 존재 탐구할 때에는 해당 체제의 구조와 원리를 전부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탐구한 다음 그 탐구 결과를 사회 구성원과 공유하여 더 나은 가치를 체제로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체제로 정해진 가치는 체제 가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 지에 대해 탐구한다. 모든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모든 개인의 주권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모든 개인의 소유와 선택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그런 식으로 탐구하면서 정부의 정책과 제도를 체제에 맞게끔 만든다. 그렇게 하여 사회를 체제에 맞게끔 합리화한다. 


현재는 종교 가치에 의해 체제 가치가 훼손되면서 불합리한 사회가 되고 있다. 금욕주의, 이타주의와 그 외의 종교 가치. 그것으로 개인이 억압되고 희생되면서 체제 가치가 훼손되었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살면 어떻게 사회가 유지되냐고 물을 수 있다. 그것을 하는 것이 바로 인문 계열의 역할이다.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를 하여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법, 정책, 제도를 통해 공정한 이익 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금욕주의를 근거로 타인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이타주의를 근거로 타인을 희생시키도 않고,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가치를 강요하게 하지도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의 권리를 보장 받고 싶으면 타인의 권리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을 살자고 약속했으면 그에 맞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3) 우주 탐구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를 하는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 방식으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해보도록 하겠다. 


우주의 본질.


우주는 미지에서 대폭발에 의한 우주 팽창으로 만들어져 현재 우주가 된 것이 아닌 정상 우주에서 대폭발과 대폭발에 의한 연쇄폭발로 현재 우주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정상 우주에서 전 우주에 고르게 물질과 에너지가 퍼져 있는 상태를 가정하자. 거기서 특정 조건에 의해 특정한 우주 공간에서 상상을 초월한 대폭발이 일어난다. 대폭발에 의해 물질과 에너지가 타면서 연쇄폭발이 일어난다. 연쇄폭발이 지속되면서 전 우주로 퍼져나간다. 우주의 중간 중간에 발생한 거대한 연쇄폭발은 이후 모든 것을 흡수하는 거대한 블랙홀이 된다. 거대한 블랙홀은 흡수한 것을 배출하며 작아지고, 그 블랙홀의 중력을 중심으로 배출된 것과 잿더미된 것이 모여 은하가 되고, 은하가 모여 은하단이 되고, 은하단이 모여 초은하단이 된다. 연쇄폭발은 현재까지도 계속되면서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끝에 관측할 수 없는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하고, 그 블랙홀 너머는 연쇄폭발 중에 있다.


정상 우주에서 대폭발과 연쇄폭발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양자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정상 우주는 에너지 이동이 되지 않는 정적 세계와 에너지 이동이 되는 동적 세계로 양분되어 있었다.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는 법칙이 달랐다. 정적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파동인 반면 동적 세계에서는 파동이 입자화가 된다. 이것이 양자의 이중성과 상보성 원리다. 대폭발과 연쇄폭발 이전에는 열이 우주를 장악하지 않아 이러한 세계 구분이 뚜렷했다. 그러다 대폭발과 연쇄폭발이 일어나면서 우주 대부분이 열에 의한 에너지 이동이 되는 것으로 동적 세계가 우주를 장악했다. 그러면서 거시 세계는 동적 세계의 법칙이 장악했고 미시 세계에 가서 에너지 이동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정적 세계의 법칙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폭발에 의해 주류 법칙과 비주류 법칙이 나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의 법칙 차이를 부르게 되었다. 거시 세계에 정적 세계의 법칙이 나타나려면 정적에 가까워지는 절대 영도에 가까워져야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우주는 대폭발과 연쇄폭발에 의해 동적 세계 법칙이 장악한 우주다. 현재 우주가 그 당시 폭발 영향권 내에 있다. 이것은 지구에서 폭탄으로 폭발을 일으킨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지구에서 폭발이 일어난 공간과 그 경계와 그렇지 않은 공간은 각각 적용되는 법칙이 다를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폭발 영향권인 거시 세계에 동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된다. 우주의 열기 자체가 폭발 영향이다. 폭발의 경계인 미시 세계에 양자 현상과 같이 정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매우 미세하면 폭발 영향권을 벗어나게 된다. 폭발과 무관한 영역인 세계에 온전한 정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된다. 에너지 이동이 없는 세계다.


지구에서는 폭탄의 폭발 영향력이 그리 오래 가지 않기 때문에 현재 우주가 폭발 영향권 내에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는 것을 가정하여 우주에서 폭발이 매우 길게 지속되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우주 전체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열 에너지 이동 현상 자체가 폭발의 영향으로 이해하면 된다. 생명은 에너지 이동으로 성립되므로 폭발 영향권에서 탄생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생명은 불꽃과 같은 삶을 사는 것 같다. 그 말은 즉 꺼지지 않는 불처럼 계속 태울 수 있으면 영원히 살 수도 있다.


동적 세계는 거시 세계에서 관측이 가능하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물체는 절대 서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국소성의 원리가 동적 세계에서 적용되는 법칙이다. 열역학이나 엔트로피 등도 동적 세계의 법칙이라 본다. 정적 세계에서는 동적 세계의 존재인 인간과 관측 기구는 일반적으로는 직접 관측할 수 없다. 물질의 흔적이나 극저온 상태에서 간접 또는 조건부 관측이 가능할 뿐이다. 정적 세계의 법칙을 간접적으로 관측한 것이 양자 현상이다. 전자의 위치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불확정성 원리가 정적 세계에서 적용되는 법칙이다. 양자 중첩, 양자 얽힘, 준입자, 초전도 등도 정적 세계의 법칙이라 본다.


위의 논리는 몇 가지 전제를 토대로 추론했다. 모든 현상은 물리적 이동을 기본으로 하여 물리로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했다. 가공 이전의 상태를 떠올리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우주 또한 변화 이전의 상태를 떠올리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했다. 우주의 법칙은 인간의 인식과 무관함을 전제했다. 우주론은 반드시 양자 현상이 있어야 함을 전제했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임을 전제했다. 시간이 우주의 법칙이 아니므로 대폭발 영향이 아직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폭발에 의해 법칙이 달라질 수 있음을 떠올렸다. 양자 현상이 어떤 간섭으로 성질이 바뀐다는 것을 전제했다. 상보성 원리를 고려하면 양자는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성질이 변했다. 양자 현상을 보니 온도에 따라 성질이 달라졌다. 온도는 분자나 원자의 운동 에너지의 수량화. 이중슬릿 실험을 보면 관측할 때 성질이 바뀌었다. 그것은 즉 관측할 때 생기는 운동 에너지로 성질이 바뀌었다는 것임을 떠올렸다. 그것을 고려해 에너지 이동이 정적이다가 동적이 되었을 때 성질이 바뀐다고 판단했다. 현재 우주가 대폭발 영향 속에 있다는 것과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의 법칙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정상 우주에서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가 둘 다 있다가 대폭발과 연쇄폭발에 의해 동적 세계 법칙이 거시 세계를 지배하고 정적 세계의 법칙은 미시 세계에 가야 나타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글 자체는 그리 길지 않은데,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똑같이 생각한 것은 아닌데, 대체로는 비슷하다. 내가 아는 지식 안에서 논리적 모순은 찾지 못했다. 아마 정보를 좀 더 수집하면 좀 더 과감하고 정교한 발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 외 몇 가지 생각에 대해 써보겠다.


첫째, 중력. 중력은 현재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이라 한다. 그런데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게 아니라 물체가 공간에 작용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물체가 공간에 영향을 주고, 공간이 모든 물체에 영향을 주는 구조다. 즉 중력의 작용은 물체 자체가 아닌 물체가 있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암흑 물질과 에너지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면서 추론했다. 암흑 물질과 에너지는 관측 불가의 가능성과 상호 작용 불가의 가능성이 있다. 관측 불가의 가능성이라면 현재 지구에서도 암흑 물질과 에너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상호 작용 불가의 가능성이라면 지구에서도 상호 작용하지 못하여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암흑 물질은 우주 중력의 영향을 보고 추론한 존재라고 하는데, 전자기파와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과 같이 물질과 물질이 상호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 내에서 두 물체가 서로를 이끌리게 되려면, 물체끼리 이끌리는 것이 아닌 공간에 이끌리는 것이어야 성립이 된다. 중력이 빛을 흡수한다는 것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흡수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력에 의한 속도가 빛보다 빠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하는데, 빛보다 강한 힘은 존재한다. 그걸 전제하여 우주 바깥에 연쇄폭발이 진행중이라 가정해보자. 그러면 은하 또는 그 이상의 폭발에 의해 상상을 초월한 블랙홀이 발생할 것이다. 그 거대한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가까운 은하를 끌어당길 것이다. 그것으로 거시 우주가 바깥으로 가고 있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중력의 힘이 빛보다 강하기에 중력에 의한 이동이 빛보다 빠르게 이뤄질 수 있어 은하의 이동이 빛보다 빠르다 하더라도 우주 팽창의 확증은 될 수 없다고 본다. 거대한 블랙홀은 적색 편이로 존재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우주 배경 복사. 지구 근처의 우주 전체에 약 2.725K 복사와 유사한 전파 잡음이 관측되었다. 이것을 빅뱅 때 방출된 뜨거운 빛이 식어 파장이 긴 형태의 전파로 바뀐 우주 배경 복사라 주장했다고 한다. 이 관측에 의해 빅뱅 우주론이 주류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대폭발의 근거는 될 수 있어도 빅뱅의 근거라 확신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지구에서 관측된 전파와 다른 은하에서 관측된 전파가 같을 거란 확증은 없는 상태다. 대폭발이 일어났지만 빅뱅과 같이 한점에서 폭발하여 우주가 팽창한 것이 아닌 정상 우주에서 대폭발과 연쇄폭발한 것으로 나타난 흔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온도가 균일한 까닭은 해당 흑체 복사 에너지 흡수에 한계가 있다고 가정하면 성립된다. 흑체가 100을 흡수할 수 있다면 200, 300, 400과 같이 천차만별의 연쇄폭발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주배경복사는 100이상이 될 수 없다. 그 폭발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폭발 온도가 비슷하게 되었다가 점점 낮아졌다면, 대폭발에 의한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는 균일하게 된다. 미세한 온도 요동은 우주에서 영향을 받아 생긴 오차 범위로 보면 된다.


셋째, 이중슬릿 실험. 이중슬릿에서 물질을 쏘았을 때 관측하지 않으면 정적인 상태로 물질이 파동성을 가지지만 관측하는 순간 관측 기구의 열에 의해 동적인 상태가 되어 물질이 입자성을 가지게 된다. 쏜 물질이 무언가 부딪치면 입자가 된다는데, 부딪치는 순간 에너지가 움직여 입자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 원자, 분자, 생체 분자까지도 이중슬릿 실험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마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다음 실험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질은 정적 세계 법칙에서 파동성을 가진다는데, 그게 일반적인 동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되는 거시 세계의 파동성과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양자 역학의 파동은 확률 개념이 더해진다고 했는데, 파동에 확률이 더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파동과 비슷한 정적 세계의 알지 못했던 법칙일지도 모른다. 


넷째, 암흑 물질과 에너지. 수정 뉴턴 역학을 통해 암흑 물질과 에너지를 부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암흑 물질과 에너지는 존재한다고 본다. 관측 불가한 물질과 에너지가 없을 수가 없다. 전자기파와 상호 작용하지 않는 물질과 에너지도 있을 수 있다. 현재 예측한 우주 물질의 약 85%가 암흑 물질이고, 우주 에너지의 약 68%가 암흑 에너지라고 하는데 비율은 다를 수 있을 거라 본다. 절대 영도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거시 세계에서 양자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러면 많은 우주의 거시 세계에서 양자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양자 현상에 의해 계산 외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을 암흑 물질과 에너지로 추정했을지도 모른다. 전자기파로 관측하는 인간 입장에서 우주의 거시 세계에 있는 양자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측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지구에서 암흑 물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반면 양자 현상은 미시 세계에서 파악이 가능한 상태. 암흑 물질과 에너지로 추정된 현상이 실제로는 양자 현상일 수 있다 본다.


다섯째, 은하와 은하단. 빅뱅으로 우주가 팽창했다면 은하와 같은 물질 덩어리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 학자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인플레이션 우주론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우주가 팽창된 것이 아닌 대폭발과 연쇄폭발로 우주 물질이 불타버린 것이라면, 타고 남은 잔재에 의해 은하와 같은 물질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보면 된다. 오래된 은하들은 초기 대폭발과 연쇄폭발이 은하 단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은하 중심에 초거대 블랙홀이 존재한다. 은하와 별 형성은 대폭발, 블랙홀, 물질 흡수, 블랙홀 축소, 물질 방출, 별 형성일 것 같다. 은하 단위의 대폭발로 블랙홀이 형성되었기에, 그 블랙홀을 중심으로 은하가 성립된다. 은하 내 별들은 블랙홀의 강한 중력으로 질서가 정해져 별 사이에 상호 작용이 적지만, 은하와 은하는 아직 질서가 정해지지 못하여 상호 작용이 많다.


여섯째, 적색 편이. 적색 편이는 파동의 진동 수가 줄어들고 청색 편이는 파동의 진동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지구에서 은하를 관측했을 때, 적색 편이가 보이면 멀어지는 것을 알 수 있고 청색 편이가 보이면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드로메다와 같은 일부 은하를 제외하고는 거시적으로 대부분 은하가 적색 편이인 상태다. 이것을 빅뱅에 의한 우주 팽창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되는 것이 아닌 은하가 이동되었다 하더라도 적색 편이는 성립된다. 대폭발과 연쇄폭발이 맞다면, 중심에서 바깥으로 폭발하는 방향에 의해 대부분 은하가 바깥으로 향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주 팽창이 아니기 때문에 청색 편이도 있는 것이라 본다.


일곱째, 우주 팽창. 빅뱅에 의한 우주 팽창이 작은 점이 그대로 팽창한 것이 현재 우주고, 계속 팽창해서 대부분 은하가 바깥으로 멀어지는 것이 적색 편이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팽창 개념은 공간만 팽창하고 물질은 그대로인 것과, 공간과 공간에 있는 물질도 같이 팽창하는 것이 있다. 공간만 팽창했다면 물질 분포가 균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물질도 같이 팽창한다는 것인데, 공간 팽창에 의한 물질 팽창 현상을 관측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현재 급팽창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장은 발견되지 못했다고 한다. 실험으로 관측할 수 없는 현상을 전제한 빅뱅을 전적으로 신용할 수는 없다고 본다. 대폭발과 연쇄폭발은 실험해볼 수 있다.


여덟째, 광속 불변의 원리. 솔직히 헷갈리고 있다. 인간이 관측하는 수단이 빛이니까 빛을 기준으로 관측하다보니 광속이 불변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만물 중 빛만 특별하다는 것이 이상한 것 같다. 인간이 빛으로 보니까 빛이 특별했던 것 같다. 광속이 불변했던 것이 단순히 관측 기준이었기 때문이었다면, 광속보다 빠른 게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정적 세계에서의 빛의 속도를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럴 경우 우주에서 정적 세계를 지나칠 때에 빛은 어떤 속도로 지나치는지 모를 것 같다. 절대 영도를 구현할 수 없다고 하는데, 만약 실존한다면 광자가 얼 것인가? 만약 얼었다면 우주 관측 시 빛을 내지 않는 행성으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빛이 얼어서 관측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빛이 얼어서 양자 현상이 발생할 수가 있는가? 빛 알갱이 하나는 양자 현상이 발생하는데 대량의 빛은 얼어야 가능할까? 대량의 빛이 얼어서 양자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관측이 될 것인가?


아홉째,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 종교 가치로 가공된 인간이 종교 가치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그것을 벗어난 생각을 하기 어려웠듯이 동적 세계의 존재인 인간이 동적 세계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그것을 벗어난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인간은 동적 세계의 존재, 인간이 상식처럼 알고 있는 순차적 이동조차도 정적 세계에서는 다르다. 인간은 n 온도~n 온도를 가리키는 운동 에너지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특정 운동 에너지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의 법칙이 달라 대통일 이론을 완성하려면 관측할 수 없는 세계를 탐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열째, 초전도체. 초전도체는 외부는 동적 세계 법칙이 적용되고 내부는 정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으로 거시 세계에서 초전도 현상과 같은 양자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물체인 것 같다. 그렇기에 절대 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이 아니어도 초전도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이렇게 세계 분리가 가능한 특정 물질에서만 초전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상온에서도 세계 분리가 가능한 물질이 있다면 양자 현상을 상온에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부는 저항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저항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입자인 전자가 파동과 비슷한 형태로 바뀐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초전도체에서 벗어나면 다시 입자인 전자로 돌아와 작동한다. 양자의 파동은 확률이 포함된다는데, 전류는 확률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


시간은 지각 순서이므로 광속을 넘든 말든 미래로 가거나 과거로 가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거시공동은 3천만 광년 ~ 3억 광년 정도 크기의 초거대 무공간을 말하는데, 타거나 상호 작용할 물질이 없거나 적어 연쇄폭발이 일어나지 못하거나 적었던 공간이 아닐까 싶다.


열역학 법칙이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가 달랐던 것은 열역학 법칙 자체가 열이 존재해야 성립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의 나이는 시간 개념의 일종이므로 시간 법칙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성립되기 때문에 인간이 생각하는 우주 나이는 성립되지 못한다. 우주는 단순히 이동할 뿐이다.


대폭발과 연쇄폭발 이전의 우주에 어쩌면 다른 문명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위의 탐구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라면 시간과 차원은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 심리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인간의 지각 순서다. 시간 개념이 원시 시대부터 있던 개념임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 존재의 본질이 영혼이란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한 것과 같이 인간의 지각 순서의 본질이 시간이란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한 것이다. 시간은 지각 순서기 때문에 지각을 느리게 하면 시간이 느려진다 착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실험실에서 피험자의 감각을 청각 외에 차단한 다음, 피험자를 제외한 공간의 시간을 느리게 해보겠다고 전달해보자. 그 다음 노래를 들려주고, 그 노래를 천천히 느리게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피험자는 노래가 느려졌다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느려졌다 생각할 것인가? 시간을 우주의 법칙으로 믿는다면 시간이 느려졌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시각도 동일하게 실험해볼 수 있다.


상대성 원리와 같이 시간을 전제한 법칙이 있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지각 순서를 전제했거나 시공간 중에 공간에만 작용하는 것이다. 어떤 현상에 의해 관측 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인간의 지각 속도가 느려진 것을 보고  시간이 느려졌다 여길 뿐이다.  2010년 초정밀 원자 시계 두 대를 이용하여 시간 지연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하나는 실험실 바닥, 하나는 실험실 바닥에서 약 33cm 높은 곳에 두고 시간 진행 방향에 차이가 생기는지 측정했다고 한다. 그러자 약 33cm 높이의 시계가 실험실 바닥의 시계보다 약 10경분의 4정도 빨리 흘러갔다고 한다. 이걸 보고 시간 지연이 발생한 것이라 말하는데, 그냥 원자 속도가 빠르게 흘러간 것이다. 속도가 중력에 영향을 받으므로 고도가 다르니 중력 차이에 의해 원자 속도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은 물체에서 반사되는 전자기파를 지각하는 속도가 느려졌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주에 시간이 존재한 것을 관측한 것이 아니라, 우주가 이동하는 것을 관측한 순서를 시간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구에 인간이 있다 하여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듯이, 인간이 관측했다 하여 인간 뇌내의 개념이 우주의 법칙이 되지는 않는다.


차원은 인간의 관점이다. 0차원은 점으로 보는 관점, 1차원은 선으로 보는 관점, 2차원은 면으로 보는 관점, 3차원은 공간으로 보는 관점, 4차원은 인간의 지각 순서를 더한 관점. 인간이 만든 개념을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하고는 4차원 이상의 다차원을 구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성립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에테르를 물리학계에서 추방했다고 한다. 이제는 시간과 차원을 우주의 법칙으로 전제한 것도 추방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가공되기 전의 상태를 인식하기 어려운 인간 특성상, 시간과 차원과 같은 개념을 뇌내 개념으로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 심리에 속한 것으로 자아를 존재 탐구를 해야 파악이 가능하다.


인문 계열 고전 철학에서는 뇌내 개념을 마치 우주의 법칙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신, 사후 세계, 환생, 저승 등과 같이 말이다. 일부 불가지론자는 죽기 전에 파스칼의 도박에 영향을 받아 신의 존재를 믿었다고 한다. 이 세상이 신의 창조나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는 창시 당시 지식에서 벗어난 가르침을 말한 적이 없고 시뮬레이션은 주장 당시 지식은 우주 전체를 파악한 것이 아니므로, 인간이 주장한 신이나 시뮬레이션일 확률은 없다. 

 

인간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 사후 세계에서 천국과 지옥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절대적인 선과 악을 전제한 천국과 지옥은 성립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의 육체가 다르다는 것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증명하였고, 그에 따라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누군가 지옥에 가게 될 것이 걱정되어 가치의 절대성을 신앙한다면, 사후에 내가 모든 죄를 짊어지겠으니 그런 걱정에서 해방되길 바라겠다. 종교가 주장한 사후 세계는 없고 가치의 절대성은 성립될 수 없으므로 부담은 없다.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 방식으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해보았다. 하나만 깊게 파는 과학자보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를 하는 사상가가 통찰은 좀 더 수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연 계열 과학자가 증명한 것을 모아 합리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흔히 학문은 본인 분야만 안다거나, 특정 과학자가 각고의 탐구 끝에 인간이 증명한 학문에서 약간의 변화만 준다고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 내에서 탐구할 때에 주로 적용된다. 학문은 사상, 철학, 과학 순으로 범위가 달라지는데, 사상에 가까울수록 넓고 얕게 보고 과학에 가까울수록 깊고 좁게 본다. 자연 계열 과학자는 분야의 개념뿐만 아니라 증명하기 위해 세부적인 것까지 전부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세부적인 것까지 다 알아야 그 분야를 알았다는 고정 관념으로 과학 전체를 알 수 없다는 인식이 있는데, 큰 개념만 파악하면 전체를 아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파악하여 합리적으로 정리하면 큰 변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


자연 계열은 기본적으로 존재 탐구를 하나 인간인 이상 한계가 존재한다. 자연 계열의 과학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문 계열의 학문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중 하나가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라 생각한다. 그것에 의해 인간 심리는 자연 계열 과학자도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었다 본다. 그 때문에 인간 심리는 자연 계열에서조차 인식 탐구를 할 때가 있었다. 






4) 사회 탐구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를 하는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를 해보겠다.


사회 문제의 본질.


문명이 없던 원시 시대부터 고려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던 시기, 지각을 자각하여 인식 개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손익, 변화, 존재, 죽음, 감각, 결핍을 지각하면서 가치, 시간, 영혼, 도덕, 감정, 행복이 만들어졌다. 이런 식으로 개념이 가공되면서 문화가 나타난다. 그런 원시 문화에서 종교에 의해 특정 가치가 사회를 장악한다.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과 같이 토속 신앙이 나타나 사회를 장악한다. 이런 신비 종교 가치의 사회 장악은 다신교·유일신교와 같이 나뉘거나 학문 종교 등으로 이어갔다.


종교 가치 중에서 지배자의 지배에 적합한 종교 가치가 사회 선택을 받아 살아남게 되었다. 윤리를 통해 사회 구성원이 사회 구조와 질서를 파괴하지 못하게 하고, 신비를 통해 사회 구성원이 현실 도피를 하여 죽지 않도록 했다. 그러면서 종교 가치는 절대적이게 되었다. 종교 가치를 옳다 여기는 것은 단순히 종교 가치가 사회를 장악했었기 때문이다. 종교 가치인 윤리는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단순히 누군가 좋아하는 가치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과학 혁명을 통해 문명 사회가 되면서 인간은 종교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기 이전의 사회를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이것으로 종교 가치의 절대성에 의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나타나게 된다. 그 여파로 인간 심리에 속하는 시간, 영혼, 차원 등과 같은 뇌내 개념을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하기도 하게 되었다.


종교 가치가 사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본인의 권리만 주장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자유주의 혁명이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등과 같은 종교 가치가 장악한 사회에서 다수의 개인이 과학 혁명을 통해 힘을 쥐자, 그 힘을 토대로 종교 가치에 의해 부정되어 왔던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라는 정반대의 가치가 자유주의 혁명을 통해 대두된 것이다. 그러면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던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충돌한다. 이것이 현대 문명의 가치 충돌이다.


가치 충돌에 의해 저출산, 고자살, 다양한 차별, 억압과 희생과 가치 강요, 사회와 경제 활동 둔화, 전체주의와 담합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나, 가치의 절대성에 의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알지 못하여 사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치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새로 태어나는 인간을 가공할 때에는 체제 가치로 가공했어야 했는데, 종교 가치로 가공했다. 종교 가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대부분 연령대에 연령별 의무가 있기 마련이다. 교육은 그 연령별 의무를 전제하고 체제, 성애, 생산 등을 제대로 가르치기는커녕 막기만 했다. 그런데 사회는 체제 가치에 의해 연령별 의무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면서 신세대는 사회 체제와 인간 성애와 가치 생산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부정적으로 보며 성장하게 된다. 


그에 의해 사회 체제를 모르고 이성애와 결혼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가치 생산을 꺼려하는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가 현재 대부분 한국 사회 문제다. 이성애를 배운 적이 없어 출산조차도 애정이 아닌 물질적 손익 계산 대상이 되었다. 대리모도 아니고 출산을 거래 수단으로 인식하다니 놀라울 정도로 애정이 없다. 결핍을 부당하게 느끼면 결핍을 충족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출산이란 결핍을 부당하게 느끼니까 아이를 낳아 결핍이 충족되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성애를 부정적으로 배워 사랑이 없으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발정하는 인간의 수가 많은 것을 보고 그들 모두가 성애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본인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기성 세대는 연령별 의무로 사회 체제에 적응하고 결혼과 출산을 하고 일을 했었기 때문에 신세대에게 그걸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이유를 본인들도 몰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개인주의 체제는 있었던 적이 없는 체제기 때문에 학문이 발전하지 않는 한 모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학문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체제를 모르기에 종교 가치를 강요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 미숙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사회 미숙 현상이 보편적인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된다. 이런 가치 충돌에 의한 사회 문제는 단순히 한국이나 일부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전 세계가 체제 가치를 공유하면서 전 세계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 문제의 본질은 상당히 오랜 시간 걸쳐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전제에 의해 결론이 나온 것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 문제는 개인 문제가 아님을 전제로 하여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이치로 삼아 자아, 종교 가치, 체제 가치, 가치 충돌, 존재의 절대성, 가치의 상대성 등을 논리적으로 탐구하면서 사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한 것 같다. 앞으로 인문 계열은 존재 탐구를 하여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고, 목소리 큰 인간의 비논리적인 주장만 수용하면서 사회가 불합리하게 되는 것도 막을 수 있게 된다.



사상 시작을 2016년 말 역할주의를 작성했던 시기로 정하고, 사상가 시작은 2022년 말 사회와 복지를 작성했던 시기로 정하겠다. 사상 시작한지 약 7년, 사상가 시작한지 약 1년만에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다. 앞으로 약 5년 안에 현대 과학을 따라잡겠다. 약 10년 안에 인공 자아 일반화, 약 20년 안에 인류 불로불사, 약 10000년 안에 우주의 존재 이유 증명. 일단 목적은 이렇다.






2.4 학문 변화


1) 체제 변화


문명 사회의 변화는 보통 문명을 만든 학문의 변화로 일어난다. 학문이 변화한 것을 사회에서 힘을 가진 인간이 수용하면서 문명 사회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으로 사회가 진보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다. 현재 인류에게 닥친 커다란 세 가지 변화인 체제 변화, 기술 변화, 환경 변화도 학문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체제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개인주의 체제로의 변화의 본질은 주권의 이동이다. 왕정 체제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로 소수만 주권이 있었다면, 민주정 체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로 모두에게 주권이 있다. 이것으로 왕정과 민주정은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도 민주주의의 주권에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모든 개인의 자유는 민주주의로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보장되면서 자유에 관련된 권리도 고르게 보장되면서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유의 수단 중 하나인 지배와 복종이 체제 훼손이 되어 허용되지 못하게 된다. 


모든 개인이 주권을 보장받았음에도 경제적 자유는 다른 이유는 시장이란 공정한 제도에서 이익을 추구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다른 성적이 나왔다고 하여 스포츠 참여에 관한 자유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하듯이, 모든 개인은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공정한 시장에서 이익을 추구하면 자유권이 보장되게 된다. 모든 주권자에게 그 자유를 보장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패가 나뉜다 하더라도 선수가 서로를 존중하듯이, 사회 경쟁에서 승패가 나뉘거나 경제적 차이가 있다 해도 개인은 서로를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당한 사회적 평등과 정당한 경제적 차별이다. 경기와 시장에서 정당한 평등과 차별이 결정되는 만큼, 경기와 시장에서 공정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 선수의 권리가 된다면 경기를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복지가 지원되어야 하듯이,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주권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되면서 시장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복지가 주어지게 된다. 


체제 변화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타났다. 그런데 인문 계열의 인식 탐구 결과에 의해 개인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보수와 진보가 다르게 정의되면서 그 범위가 굉장히 넓게 되었다. 그래서 보수를 지칭하는 우파와 진보를 지칭하는 좌파가 무엇인지 정확히 대답하는 인간이 드물게 되었다. 우파의 본질은 기득권 유지고 좌파의 본질은 계급 투쟁이다. 자유와 권위가 각자 성질이 다름에도 기득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우파로 지정되기도 하는가 하면 평등과 무정부가 각자 성질이 다름에도 기득권에 맞서 투쟁하는 것에 속한다는 이유로 좌파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는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나뉘게 된다.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자본가와 노동자, 원주민과 이주민 등과 같이 된다. 단순히 기득권이라 현상 유지를 바라는 것으로 보수가 되고, 비기득권이라 현상 변화를 바라는 것으로 진보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학문과 관계 없이 단순한 이권 다툼이 되어버린다. 우파는 기득권 이익이 되는 것은 무조건 옹호하고 좌파는 비기득권 이익이 되는 것은 무조건 옹호한다. 그러면서 사회가 불합리하게 된다. 종교 가치나 체제 가치로 이권 추구를 정당화하기도 하면서 가치 충돌은 더욱 더 심각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래 인류 문명은 왕정 체제에서 민주정 체제로 가면서 주권이 이동하는 것으로 진보했다. 그런데 인류는 민주정 체제 맞는 질서가 없었다. 종교 가치에 자유 조건이 들어가면서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지배하듯이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했다. 그것을 보고 특정 사상가와 철학자는 종교 가치에 강제 조건이 들어가는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종교 가치인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모든 개인에게 강요하면서 집단 평등을 이루는 것이 모든 인간을 위한 길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왕정 체제와 본질이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왕정 체제와 같이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게 되었다. 그것이 현재 공산정 국가다. 사회주의는 종교 가치로 만들어진 공동체 사상이고 공산주의는 종교를 비판하면서 종교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학을 자칭하면서 인식 탐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의 한계에 속하는 사상일 뿐이다. 주권 이동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갔다가 이 사상들에 의해 개인에서 집단으로 가는 것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퇴보하게 되었다. 그 퇴보가 우파와 좌파의 가치 충돌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체제를 기준으로 체제를 중세와 근대와 현대로 구분해보겠다. 중세 국가는 왕정 체제에 종교 가치 질서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으나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전근대적이다. 근대 국가는 민주정 체제에 종교 가치 질서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상당한 혼란을 부르나 체제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어 근대적이다. 현대 국가는 민주정 체제에 체제 가치 질서다. 종교 가치가 인류 문명을 장악했었기 때문에 현대 국가에 도달한 국가는 없지만 근접한 국가는 있다. 공산정 국가는 공산 체제에 종교 가치 질서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으나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전근대적이다. 제대로 된 공산정 국가는 북한 말고 없고, 대부분 시장 경제를 도입하면서 근대 국가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근대 국가로 넘어간 공산정 국가조차도 가치 충돌에 의한 혼란이 발생 중에 있다. 


인류 체제의 보수와 진보는 진영의 이권 쟁탈이 아닌 주권 이동 방향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할수록 진보적이다. 학문은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하고 질서는 존재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앞으로 인류는 체제와 질서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과학적인 탐구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질서를 갖춘 현대 국가로 진보해야 한다..






2) 기술 변화


기술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디지털 기술로의 변화의 본질은 모방의 정점이다. 본래 인류는 자연을 모방하면서 발전했다. 하늘을 보고 산을 보고 강을 보며 필요한 것을 발상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 모방 중 가장 체계적인 모방이 바로 수학이다. [수학: 1. 수량 및 공간의 성질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수학은 만물을 자연수로 세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자연수: 1. 1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더하여 얻는 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 1,2,3 따위이다.] 


수학은 우주의 법칙인 자연수를 기초로 하여 체계를 갖춰 다양한 개념들을 만들어갔다. 모든 개념은 후천적이나 수학 내에서 자연수가 선천적이라면 그 외 모든 법칙은 후천적이다. 블록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다양한 블록 부품은 블록 세계의 법칙에 속하지만 블록 부품을 가지고 어떤 형태의 블록을 만들든 그것이 블록 세계의 법칙은 아니다. 자연수를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한 것부터 시작해 모든 수학 법칙은 우주의 법칙인 자연수를 계산하는 방식이지 우주의 법칙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낮은 가치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높은 가치다. 인간이 우주를 수로 계산하여 모방한 것이다. 블록 부품을 쌓아 사물을 모방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수를 계산하여 우주를 모방했다. 그것으로 자연 계열의 기초 과학은 수로 계산하여 실존하는 우주를 존재 탐구하면서 자연수와 같은 선천적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런 모방 중 정점이 바로 후천적 존재 탐구 결과인 디지털 기술이다. 단순한 모방을 넘어 가상에 우주를 모방한 세계를 구현할 수 있었다.


가상에 모방한 세계를 만들면서 디지털 기술은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하나, 우주의 모방. 모든 것을 모방하여 디지털화를 할 수가 있다. 영상이나 소리의 디지털화는 지나치게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길 정도다. 둘, 인식과 가치의 거리 축소. 디지털 기술 내에서 전 세계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판단한다. 그러면서 인류가 통합되고 있다. 셋, 가상의 자유. 디지털 기술 내에서 모든 것이 자유롭게 무제한으로 복제가 가능하고 해킹도 가능하다. 무단 복제나 해킹 등의 사회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 우주의 모방. 우주의 모든 것을 모방할 수 있고, 모방한 것을 다시 우주에서 재현할 수 있다. 인류와 세상을 모방하여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상 현실을 즐기고 디지털 자아를 통해 불로불사가 가능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그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가상 현실을 현실로 구현하고 디지털 자아를 현실의 새로운 육체에 이식할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현실과 가상을 오가더라도 기억을 통해 같은 자아 존재가 된다. 디지털은 현실을 그대로 구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수학에서 자연수는 우주의 법칙이다. 현실에 있는 물질을 기본 입자까지 세서 구현하면 아주 작은 오차를 제외하면 가상에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는 법칙이 다르지만, 인간은 동적 세계의 존재이므로 순차적이기 때문에 자연수로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인식과 가치의 거리 축소. 인식과 가치의 거리가 축소되면서 인식과 가치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류가 하나로 통합되어가고 있다. 그에 따라 인류가 일으키는 사회 문제도 통합되어가고 있다. 본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발생했을 가치 충돌이 전 세계에 퍼진 것은 디지털 기술에 의한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인류가 가치 충돌의 혼란 속에 있다. 개인 방송이나 짧은 영상으로 전 세계가 비슷한 유행이 퍼지면서 유행에 의한 사회 문제도 공유되게 된다.


셋째, 가상의 자유. 가상에서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현실에서 물건은 무한 복제가 불가능하지만 가상에서는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 그것으로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위반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는 현실 경제 원리를 디지털에 그대로 적용한 것에 의한 폐해다. 그 외에 해킹 등의 문제가 있다. 가상에서는 온갖 자유가 보장되어 AI를 악용하는 것으로 온갖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AI를 규제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AI 발전을 막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사회 혼란보다 현실에 닥친 환경 문제가 더 심각하다.






3) 환경 변화


환경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지구 환경의 변화의 본질은 자연 선택과 사회 선택이다. 지구 환경의 변화는 인간이 없더라도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다. 거기에 인간이 사회 발전을 위해 기술 발전을 하면서 자연에 매우 큰 영향을 주면서 환경 변화가 가속되었다. 환경 변화로 자연에 적응해야 생존하는 자연 선택이 일반적인 상태에서 기술 변화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에도 적응해야 생존하게 되는 것으로 자연 선택과 사회 선택이 일어나게 되었다.


자연과 사회에 모두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적응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 육체가 생존하기 적합한 환경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인간이 적응한다고 해서 어떻게 될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연을 조작해야 한다. 환경 보호는 생태계 보호가 생태계 조작인 것과 같이 실상 자연 조작에 해당한다. 자연을 조작해서 인간이 생존하기 적합한 자연 환경을 만든다. 


자연 조작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존재 유지의 절대성에 따라 지구에 살고자 하는 모든 존재에 강제력이 발생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있기 위해 육체 유지 활동이 강제적이듯, 사회와 체제가 살아있기 위해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 활동이 강제적이듯, 지구 환경에서 인류가 살아있기 위해 지구 환경 보호 유지 활동이 강제적이게 된다. 


자연 조작의 목적은 절대적이지만 수단은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수단은 강제적이지 않다. 자연 조작을 하는 이유가 인류 생존인데, 인류를 죽게 하는 수단을 쓸 수는 없다. 많은 곳에서 환경 보호 주장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까닭은, 환경 보호 목적이 사리사욕 추구거나 환경 보호 수단이 인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환경 보호의 본질이 자연 조작인만큼 날씨와 태풍을 제어하자고 주장하는 것처럼 방도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호응이 낮은 것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자연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 발전을 이뤄야 한다. 탄소 포집 기술이 유망한 자연 조작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것만으로는 사실 부족하다. 그것은 현재 인류가 기술 발전을 하면서 환경을 변화시킨 것을 약간 조작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환경 변화는 자연과 사회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 


현재 그걸 위한 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AI다. 기술이 발전하려면 많은 반복 실험이 필요한데, AI는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 현재 AI가 지금까지 인간의 발상 내에서만 발상하는 기억 발상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창의 발상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현재 자연을 조작할 수준의 기술 발전을 이루려면 AI말고는 마땅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인류만으로도 충분히 자연 조작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 발전이 가능할 수 있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러므로 현재 인류가 집중해야 할 것은 AI발전. 자연 계열은 AI를 총력을 다해 발전시켜야 하고, 인문 계열은 AI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 문제를 총력을 다해 해결해야 한다.

 





4) 변화 적응


인류는 체제와 기술과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지만 체제부터 적응을 하지 못했다. 체제 적응은 과거 자유 혁명 시대에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질서가 도입되면서 했어야 했다. 그러나 종교 가치에 의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나타나면서 인류는 체제 적응에 실패하게 되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 체제를 마차로 비유하고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 체제를 자동차로 비유해보겠다. 현재 가치 충돌은 자동차를 마차 타듯이 타는 것으로 일어난다.


“자동차에는 기름을 넣고 직접 운전해야 해. 왜 말이 필요한 것과 같이 간섭하고 억압하는거야.” “주유구에는 기름이 필요한 거야. 그게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해서 당근 주스 넣지 말아줘. 그러면 차가 가질 않아.” “타이어가 친환경적이지 못하다고 때서 마차 바퀴로 바꾸려고 하지 말아줘. 사고 난단 말이야.” “아니 이제 말은 필요 없어. 자동차 운전수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제대로 가지도 못한다고 해서 말을 가져오지 말아줘. 그러면 계속 말에 의존하게 되면서 잘 못가잖아.” “이제는 말을 다루는 법이 아닌 자동차를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해.” 마차 부품은 필요 없으니까 버리거나 정 아까우면 트렁크에 실어줘.” “마차를 유지하고 마차가 가는 방법은 이제 자동차를 유지하고 자동차가 가는 방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 마차가 가는 방식으로 자동차가 가지 않아. 마차 다루듯이 자동차를 다루면 자동차가 망가진단 말이야.”


종교 가치를 근거로 인간을 파괴할 수 있는 욕망이 나쁘다고 막은 것은 환경 파괴적인 기름이 나쁘다고 막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별 다른 게 아니다. 욕망은 인간의 동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동차로 보면 기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게 나쁘다고 막아버리니 인간의 연료가 없어 멈춰버린다. 미성년 시기에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 성장을 보호하겠다면서 막는 것은 운전하는 법을 배우겠다는 것을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미성년이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데 해로울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몰라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사고를 치고 있다. 이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는 직접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스스로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데 위험하단 이유로 아예 배우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어떻게 운전해야 할 지를 몰라 방향도 결정하지 못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하여 사고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절대적으로 옳은 윤리를 행했으니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자동차 주유구에 환경 친화적인 당근 주스 넣고서 왜 자동차가 가지 않느냐며 불평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에도, 그것을 모른다. 안다 해도 인정하기가 어렵다. 당근 주스 넣어보고 안되면 자동차 바퀴를 마차 바퀴로 바꿔본다. 그래도 안 되면 차 내부를 나무로 교체해본다. 그러면서 망가진다.


개인주의 체제는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다 망가지듯 개인주의 체제를 집단주의 체제처럼 다루다 망가졌다. 그 망가진 증상이 사회 문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 체제, 디지털 기술, 지구 환경과 같은 중요한 것을 빠르게 적응할수록 사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인문 계열이 진보하지 못해 개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겪은 사회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한국인은 이미 분단을 통해 알고 있다. 한국 민족의 분단의 본질적인 원인은 인문 계열이 진보하지 못한 것에 있다. 그랬기 때문에 공산주의 따위가 세계에 유행했고, 그 때문에 그것이 조선에도 유행하여 조선 왕조와도 같은 체제가 북한에 자리잡은 것이다. 한국 이념 전쟁, 베트남 이념 전쟁 등과 같은 비극도 그 때문이고 양안전쟁에 대한 걱정도 그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PC주의와 여성주의도 그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만 해도 이만한 사회 문제가 있었다. 디지털 기술과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이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헉슬리와 오웰은 멋진 신세계와 1984를 통해 디스토피아를 표현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 탐구와 존재 질서로의 진보를 고려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 물론 진보하지 않으면 정말 그런 디스토피아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학문은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하고 질서는 존재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쉽지 않아도 할 수 있다면 과거 과학 혁명으로 급속도로 발전한 국가와 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인류가 자연 계열에서 경험했다.



체제에 적응하여 체제에 합당한 생활 양식인 체제 합리를 이뤄야 한다. 체제 불합리 사회는 정상 작동하지 않은 육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육체로 제대로 살 수나 있겠는가? 체제 불합리 사회에서 인간이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체제 합리와 체제 불합리에 대해 중국과 영국 두 가지 사례로 이해해보도록 하겠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을 어리석은 짓으로 치부하고 그것이 준 영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 [문화 대혁명: 1. 1966년에 중국에서 시작한, 대규모 사상 · 정치 투쟁의 성격을 띤 권력 투쟁.] 중국이 스스로 중국의 문화를 파괴함으로써 어리석은 짓으로 여겨지는 사건이다. 실제로 어리석은 사건은 맞다. 그러나 그럼에도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유사 과학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인문 계열까지 대부분 파괴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박물관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밀어버린 탓에 부작용이 많았지만 그게 없었다면 성장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그렇게 다 밀어버렸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흑묘 백묘 운운하면서 선진국의 문명으로 채우면서 과거 가치와 적은 마찰로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문화 대혁명을 거치지 않아 종교 가치가 많이 남아있었다면, 종교 가치에 의해 발전이 좌초되는 일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중국은 여유가 생겨서인지 이제서야 과거의 종교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회 온갖 곳에서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중국은 질서가 아닌 체제 자체에서 가치 충돌이 발생하여 더욱 심각한 상태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산주의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장주의가 어울릴 리가 없지 않는가. 당연히 파탄난다. 최근 들어 중국이 혼란스러운 것은 애초에 공존할 수 없는 체제를 둘 다 쓰니까 그렇다. 공산주의를 포기하자니 권력을 잃을 수 있고 시장주의를 포기하자니 경제가 성장하지 못한다. 지금 중국은 체제 합리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영국은 영국 왕실 유지로 경제적 이익을 얻은 것에 의해 입헌 군주제 유지가 영국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분석하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 [입헌 군주제: 1. 군주가 헌법에서 정한 제한된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는 정치 체제.] 민주정 체제에서 남은 왕실이 왕정 체제를 상징하면서 종교 가치는 물론이고 왕정 체제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고 있다. 이런 것이 체제 불합리다. 왕실의 경제 효과는 매년 약 3조원이고 그 외에 다방면에 이익이 있으나, 국내 총생산이 3천조원이 넘는 영국에서 체제 합리를 포기할 정도의 이익이 아니다. 


이는 다른 민주정 체제의 왕실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익이 있든 한 국가의 체제 합리를 포기할 정도의 이익이 될 수는 없다. 당장은 왕실로 국가 이익이 큰 곳이 있을 수 있으나 지속되면 될수록 체제 합리를 이룬 민주정 체제인 국가에 밀리게 되게 될 것이다. 산업 혁명을 일으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의 쇠락은 체제 불합리에 의한 것이다. 체제 불합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수준으로 의미없는 짓이다. 얼마나 돈을 써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것보다 왕실 이익을 포기하고 체제 합리를 추구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이 된다.


손해를 봤지만 체제 합리로 성장했던 과거 중국과 이익을 얻지만 체제 불합리로 성장이 더뎌진 현재 영국을 보고 체제 합리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






2.5 학문 발상


1) 발상 종류


사상을 시작하면서 본질을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존재 탐구를 했던 모양이다. 발상 종류와 몇 가지 발상을 써보겠다. [발상: 1. 어떤 생각을 해냄. 또는 그 생각.]


발상은 생각을 해냄을 의미하는데, 자아의 의식 의지가 아는 것을 발상하면 기억 발상이 되고 모르는 것을 발상하면 창의 발상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 유무와 무관하게 자아의 의식 의지가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기억 발상과 창의 발상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창의 발상도 연습이 가능하다. 그냥 당장 모르는 것을 발상하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기억을 떠올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이치를 기초로 삼아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그것이 창의 발상이다.


창의 발상 종류는 난이도에 따라 달라진다. 학문 발상은 문명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발상이 필요하여 난이도가 높은 편이고, 상업 발상은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발상이 필요하여 난이도가 중간인 편이고, 일상 발상은 일상에서 개인의 판단이 필요할 때 발상이 필요하여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학문과 상업과 일상에 필요한 최적화가 달라 각각 전문성이 다를 수 있다.






2) 사상 발상


첫째, 생존주의. 사회와 복지에 관한 사상을 하면서 나온 사상이다. 인간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인 먹고 자고 싸는 활동에 강제력이 있듯이 사회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인 복지에 강제력이 있다 보고, 그런 복지의 당위성을 바탕으로 복지의 효율적인 방식에 대해 탐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존주의라는 사상이 떠올랐다.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위한 강제력에 대한 합리적 기준이 정립되면 그것 외에는 사회와 체제 구조와 관련이 없으므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본 것이다. 그것을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라 이름 지었다. 그러다 존재가 절대적이고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임을 깨닫고 절대적 존재 탐구에 관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자연 계열의 탐구가 절대적 존재 탐구임을 파악하고 인문 계열의 탐구가 상대적 인식과 가치 탐구임을 파악했다. 그리고 인문 계열 또한 절대적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다고 보았다.


둘째, 역할주의. 역할 수행 게임을 하면서 떠올린 사상이다. 현실에서 인간 관계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했지만 가상에서 인간 관계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를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모르니까 선입견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연령, 성별, 인종 등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로지 게임 내 역할 수행 여부만 보고 칭찬하고 비판했다. 그것을 통해 발상한 사상이 역할주의다. 가상에서 그랬듯이 현실에서도 인간의 성질을 무시하고 역할 수행 여부만 보면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 보았다. 실제로 그랬다. 서로가 관계되는 역할에 관한 수행 여부만 보면 서로를 부당하게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가치 생산에 있어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인종이 어떻든 가치 생산에 대한 역할만 잘 수행하면 되었다. 거기에서 가치 생산 기여도에 따라 금전적 이익을 달리 얻으면 될 뿐이었다. 그렇게 상대방과 관계되는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면 서로의 개성이 존중될 수 있었다. 미성년이든 성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아무래도 좋다. 역할과 무관한 개성은 신경쓰지 않으면서 각각 개인의 개성은 존중될 수 있었다. 평등이란 모든 인류가 친구와도 같은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계급이나 서열이나 권위가 없어야 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물을 수 있는데, 그걸 성립시키는 것이 인문 계열의 역할이다. 마냥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걸 성립시킬 수 있는 논리를 구축해야 한다. 나는 그 방법을 역할주의로 주장했다.그것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부를 거라 보았다.  


셋째, 탐구주의. 나의 탐구 방식을 정리한 사상이다. 지식 생산자는 기초와 응용을 모두 탐구하거나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은 탐구하는 것으로 나뉜다. 통상 전자는 사상과 철학에 속하고 후자는 철학과 과학에 속한다. 사상은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철학은 학문에 속하나 구체적이지 않고 과학은 학문에 속하면서 구체적이다. 절대적 존재 탐구 방식에 따라 본인의 상대적 인식을 버리고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로 창의 발상한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성립시킨다. 그리고 탐구 결과가 나오면 탐구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접하여 본인의 탐구 결과와 비교하면서 각각의 오류를 파악하여 수정한다. 그 후에 다시 탐구한다. 그러면서 탐구 대상의 본질을 파악한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탐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거라 보았다. 






3) 제도 발상


첫째, 역할 민주주의 제도. 역할주의 사상에서 파생한 제도다. 입법권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선출의 기준을 지역이 아닌 분야로 정하는 제도다. 현재 민주주의는 지역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토지 민주주의로 지역의 대표로 선출되기 위해 토지에 관한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토지 소유자는 매우 적어 대부분의 국민과 이해관계와 먼 공약이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적었기에 대부분의 국민은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정책이나 선동에 의해 투표하게 되었다. 정당의 정책이나 선동에 의해 투표를 하게 되면서 특정 지역은 후보가 누구든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선출은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공천권자가 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결함이라 보았다. 정치를 보고 답답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제도적 한계다. 토지 민주주의 자체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정상적인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정치 수준이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그 결함은 토지가 대부분의 국민과 이해관계가 멀었기 때문임을 파악하고 토지가 아닌 역할이 정해지는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대부분의 국민은 특정한 역할을 맡고 있고, 그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에 해당하게 된다. 사회를 주도하는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의원이 선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선동이 아닌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표를 선출할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거듭나게 된다. 동시에 지역이 아닌 분야의 이익을 위해 활동할 것이므로 지역보다 분야가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보았다. 땅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인간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므로 분야의 성장은 국가의 성장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현재 지역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은 아무래도 거대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법안 추진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보다 세부적인 집단으로 나뉜 분야의 대표도 입법권을 쥐어야 한다. 분야의 부조리를 해결할 의원이 없어서 허구언날 시위나 해야만 하는 상황에 개탄한다.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면 분야의 이익만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분야의 수가 많아 특정 분야의 대표가 각 분야의 이익만을 위해 활동하면 당연히 다른 분야에 제지를 받게 된다. 그렇기에 특정 분야의 이익 추구는 당연히 모든 분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게 된다. 그러면서 공공의 이익을 고려한 분야의 이익 추구가 가능하게 된다. 


둘째, 정책 판사와 정책 변호사 제도. 사회와 복지에 관한 사상을 하면서 나온 제도다. 정부 정책의 공적인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를 도입하는 제도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공적인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사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뎌지는 것이라 보았다. 기관에서 정책에 의한 실수가 반복될 때가 있는 것은 그만큼 정책 관련한 발전이 느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정책의 결함이라 보았다. 사법은 법정에서 법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그와 같이 정책 또한 정책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관에서 정책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보았다. 현재도 정책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된 기관이 있지 않기 때문에 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영향이 있다 보고 정책 판사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법이 정권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되었기 때문에 독자적 판단을 통한 삼권분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기관이 정책에도 있어야 한다. 정책은 법과 비슷하게 전문가가 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변호사가 있어야 법 문외한이 법정 다툼을 해도 효과가 있을 수 있듯이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정책 문외한이 이의제기를 해도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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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퀘스트 제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생각하면서 나온 제도다. 게임의 퀘스트를 게임 유저가 자발적으로 하듯이 현실의 가치 생산과 학습 또한 국민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 적응 실패로 많은 이들이 미숙하게 성장해버렸다. 성년이 되어도 강요할 수 있었던 집단주의 체제의 방식으로 교육을 하면서 미성년 때 사회와 체제에 맞는 교육을 하지 않는 바람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성년이 되었는데 개인주의 체제로 자유롭게 되면서 강요할 수 없는 바람에 연애, 결혼, 출산, 가치 생산 등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의 결함이라 보았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세대는 물론이고 기성 세대 또한 게임을 즐기면서 게임 내 퀘스트와 레벨 업에 관한 행동 원리가 자리잡았다고 보았다. 게임 내 퀘스트가 성가시고 레벨 업이 피곤해도 그것을 통해 얻었던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원치 않아도 하였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하루 종일 지루한 반복 행동을 하는 것도 즐기고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게임 이용자는 그런 식으로 가공된 것이었다. 그 행동 원리를 활용한 제도가 퀘스트 제도다. 퀘스트 제도는 가치 생산 제도에 해당하는데, 기존의 가치 생산 제도와 충돌할 수 있으므로 가치 생산을 하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우선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가치 생산을 퀘스트로 만들어 퀘스트 제도에 공급한다. 그 퀘스트 제도는 초기 모바일 게임이 이용자를 모으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과 같이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게끔 설계한다. 첫 퀘스트 클리어는 추가 보상을 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한번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고 나면,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가 작동하여 다음 퀘스트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한다면 퀘스트를 통해 레벨 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쉬는 날에 할 것이 없으면 레벨을 올리기 위해 퀘스트를 통한 가치 생산을 하게 된다. 그렇게 레벨을 올리고 나면, 좀 더 어려운 퀘스트를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 퀘스트 중에는 자격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위해 그 자격을 취득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학습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현재 평생 교육원과 같은 학원이 많은데, 그것의 효율이 낮은 것은 교육 측이나 학습 측이나 의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부족한 의욕을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로 채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퀘스트를 통한 가치 생산을 하게 유도하면 그 외에 다양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퀘스트를 통해 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자연 재해 후 청소하기가 어려우면 특전이 포함된 대규모 퀘스트를 공급한다. 그러면 그 특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청소 퀘스트를 하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특전 내용은 호칭이나 업적 등으로 설계하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용직과 같은 단기간 가치 생산은 사회 공헌을 하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그것이 기록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렇기에 가치 생산자도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본다. 그것을 퀘스트 제도의 기록과 호칭과 업적 등을 통해 매꾼다. 또한 돈은 무한하지 않으므로 가치 생산을 유도할 수 있는 돈 이외의 가치가 필요한데, 그것을 특전 등으로 대신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이미 그런 식으로 특전에 대한 가치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게임과 같은 시스템에서만 적용되므로 멋대로 특전을 강요해봐야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퀘스트 제도 설계는 퀘스트 제도의 원리에 속하는 가치 생산과 학습은 관료가 주도하고, 퀘스트 제도의 구조에 속하는 퀘스트와 레벨 업은 게임 기획자가 주도하면 된다 보았다. 각자 이미 전문적으로 해온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과 같이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모든 인문 계열에서 하는 것을 가리켜 인문 계열이 자연 계열의 현대 과학을 따라잡았다 규정하겠다.






4) 논제 발상


첫째, 성선설과 성악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가치의 절대성을 전제한 성선설과 성악설은 성립될 수 없다. 선과 악은 그냥 특정 가치에 이로우냐 해로우냐의 판단일 뿐이다.


둘째, 테세우스의 배. 디지털 기술에 의해 증명되었다. 우주의 법칙 내에 존재하는 디지털 기술의 가상 세계에서의 복제를 통해 원래 요소가 교체되더라도 동일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트롤리 딜레마.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존재에 속하면 존재 구조 유지에 적합한 쪽을 살리고, 존재에 속하지 않으면 각자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 존재는 존재 가치로 소속 여부를 결정하므로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결정되게 되기 때문에, 사실상 전부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결정되게 된다.


넷째, 중국어 방. AI가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졌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AI는 지능은 가졌으나 의지가 없고 짐승은 지능은 낮으나 의지는 있다. AI가 짐승 수준의 의지만 가져도 인공 자아 획득이 가능하다. 인간이 감각 기관이나 호르몬 등을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으로 발상 된 것에 의해 자아 의식 의지가 생각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설계하면 AI도 의지를 가질 수 있다.


다섯째, 오억년 버튼. 인간은 물리적으로 오억년을 버틸 수 없으므로 성립될 수 없다. 정신만 이동했다 가정하면, 시간은 인간의 지각 순서이므로 환경 변화가 적으면 시간 흐름을 일반적으로 느끼지 않게 되면서 오억년의 흐름을 지구에서와 같이 느끼지 않게 된다. 초기에는 시차 적응과 같이 적응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적응 이후에는 거의 흐르지 않는다 인식하여 오억년이라 하더라도 그리 길게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버튼을 누른 인간과 정신이 이동된 인간은 기억이 같을 때엔 같은 존재이나 기억이 달라지고 나서는 달라지는 비율에 따라 다른 인간이 되어간다.


여섯째, 돈과 행복. 행복은 결핍의 충족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 원리가 정상 작동할수록 행복하다. 물론 돈이 많을수록 그 원리를 작동하는데 수월하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돈이 많아도 행복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불행할 수가 있다. 


일곱째, 악법도 법인가. 악법은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성립될 수 없다.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선이나 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체제를 기준으로 권력 남용이냐 아니냐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를 하고 나면 인식 탐구의 문제는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3. 사회


[사회: 1.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가족, 마을, 조합, 교회, 계급, 국가, 정당, 회사 따위가 그 주요 형태이다.]


문명 사회는 학문으로 만들어진 문명으로 가공된 인간의 공동체다. 그렇기에 학문의 문제는 학문으로 만들어진 문명으로 이어지고, 문명의 문제는 문명으로 가공된 사회로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사회 현상이며 사회 문제다.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으로 불합리하게 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절대성과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으로 사회를 합리하게 해야 한다. 단순히 특정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는 비용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수준으로 의미 없다.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하기 위한 변화를 해야 한다고 하면 문화 핑계를 대며 거부하는 일이 있다. 그러는 바람에 문명화가 되지 못한 분야가 많다. 문명화가 되지 못한 바람에 슬프고 고통스러운 인간이 많을 것이다. 거기에는 변화를 거부한 인간도 있고 슬픔과 고통을 만든 인간도 있을 것이다. 절망스럽다. 세세한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냐 물을 수 있는데, 그게 학문이고 그게 문명이다. 이 모든 본질적인 문제는 학문이 발전하지 못한 것이고, 학문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한계였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알기 쉬운 기준을 토대로 변화를 해야 한다. 


수학은 자연수로 우주를 모방하였다. 그렇기에 디지털 기술의 0과 1의 조합으로 가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0과 1만으로도 가상 세계가 구축될 수 있는 것과 같이 단순한 기준으로도 현실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바로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이다.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강제인가 자유인가 등과 같이 기준을 나눠 체계를 구축하면서 체제 합리를 해야 한다.






3.1 탐구


1) 통치 관점


사회는 주권을 가진 통치자가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는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기 때문에, 모든 개인이 통치자가 되어 재정립을 해야 한다. [주권: 1.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절대적 힘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적 독립성을 가진다.] 민주주의 체제는 개인에게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닌 주권이 있는 것이다. 개인이 주권을 가진다는 것은 국가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이고, 국가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은 국가 통치를 하는 것이므로 모든 개인은 통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사회에 속한 개인은 통치자가 되어 통치 관점을 통해 통치 의지를 가지고 기본 권리나 선출이나 임명으로 결정된 권한에 따라 통치 의지를 실행한다. [통치: 1. 나라나 지역을 도맡아 다스림.] [다스리다: 1.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하다.]


국가에서 통치 관점을 가지는 것은 국가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관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태도다. 통치 관점이 없는 민주정의 개인은 국정을 내버려두고 놀기만 하는 왕정의 왕과 다를 바가 없다. 현재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은 많은 주권자가 선거를 했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통치 책임을 정치가에게 떠넘기고 통치 관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치에 있어 개인과 정치가를 구분하지 않겠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계급은 성립될 수 없다. 모든 개인은 주권자로 대등하며 선출과 임명 등과 같이 역할에 따라 권한이 달라질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개인은 모두 통치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통치 관점을 가지고 국가 통치 또한 개인의 이익임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이 생존하려면 국가의 보호가 있어야 유리하다. 당연히 국가는 개인의 이익에 포함된다. 모든 주권자는 국가의 이익이 본인의 이익이므로,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에 국가의 이익도 포함되게 된다. 단지 그걸 모두가 자각하기는 어려우므로 절반 이상은 통치 관점을 가져야 한다. 통치 관점이 있어야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야만 헌법에 위배되지도 않고 사회 구조도 유지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다. 


개인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개인과 집단에게 주권자로서의 통치 관점을 요구하겠다. 통치 관점으로 보면 절대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체제에 합리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사회 구조가 유지되고, 어떻게 해야 자유와 주권과 시장이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고나서 그것에 맞는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종교 가치를 바탕으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유착, 담합 등을 하는 것은 통치 관점을 가지지 않은 결과다. 물론 그 집단은 이익이 될 수 있지만 통치 관점으로 보면 국가의 손해가 되고, 모두가 그런 식으로 되면 국가가 망가지면서 주권을 가진 모든 개인이 손해가 된다.


마냥 기업 이익만 말하며 나머지를 소홀할 것이 아니고 마냥 노동자 이익만 말하며 나머지를 소홀할 것이 아니다. 모두가 통치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국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노동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특정 누군가의 이익만 말할 것이 아니라 국가 통치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에게 통치 관점이 없는 사회가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는가? 






2) 사상 해석


“If a guy has been hit by 700,000 bullets, it’s hard to work out which one of them killed him.”


아르헨티나 경제 몰락을 보고 경제학자가 한 말이다. 어떤 사람이 총알 70만발을 맞고 죽었다면, 그 중 무엇으로 죽었는지 알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으로 가공되고 문명은 학문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학문에 속한 사상이 무엇인지 알면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있다. 어떤 총알로 죽었는지는 몰라도 왜 쏘았는지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심리를 알면 인간이 일으킨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


각국 경제 원리는 각국에 속한 국민의 사상을 전제로 만들어지게 된다. 산업 혁명 당시 영국의 경제 원리는 영국인 사상을 전제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제 원리를 사상이 다른 인간이 답습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건이 달라져 당연히 정상적으로 경제 원리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의 경제 원리에 조건은 모든 개인의 욕망이다. 계획 경제는 계획하는 인간이 욕망을 가지고 생산을 지시하면 되지만, 시장 경제는 시장에 속한 모든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경제가 성장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욕망을 가질 수 없거나 가지지 않아도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파탄난다. 


간단히 말해 아르헨티나는 욕망이 적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사상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종교 가치는 금욕을 강조하기 때문에, 욕망을 정당화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금욕이 보편적이다. 종교 가치가 보편적인 상태에서 경제가 성장한 국가는 전부 욕망을 어떤 형태로든 정당화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자유로 욕망을 정당화한 미국이다.


아르헨티나는 자연 환경이 뛰어나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일이 없다. 그런 것 자체가 욕망을 가질 이유를 적게 만든다. 자원의 저주라는 것이 있다. 자원이 많아 가치 성장의 동기를 갖지 못하면서 경제 성장력이 자원이 적은 국가보다 저조할 때를 지칭한다고 한다. 이는 반드시 적용되지는 않지만 욕망이 적어지는데 영향을 미치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쇠퇴하면서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복지 지원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경제 성장에는 빈부격차가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가치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빈곤 해결과 가치 생산과 지식 학습이 연계되는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다. 욕망을 가지게 하여 시스템이 동작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다보니 복지 비용은 비용대로 나가는데 가치 생산은 되지 않으면서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개개인이 욕망을 가져야할 이유가 적고, 욕망을 가진다 하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체계가 보편화되지 못했으니까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단순해보이는데, 본래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단순해도 파악하기 어렵다. 욕망이 나쁘다 여겨지는 사회에서 욕망을 강조하면 어떻게 들리겠는가? 성을 터부시하는 한국에서 미성년을 비롯한 전반적인 성 터부시로 저출산이 일어났으니 성을 권장해야 한다고 말할 때 반응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인식에서 벗어나면 아주 간단한 사실도 인식하기 어렵고 수용하기도 어렵다.


이런 경제 쇠퇴의 구조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가 빈곤했을 때에는 생존하기 위해 욕망을 가지는 것을 크게 비판하지 않았고, 집단주의 영향으로 가치 생산이 강제되었었다. 그러나 국가가 부유해지면서 여유가 생긴 것인지 종교 가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욕망이 절제되어버린 이들이 늘어나고,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가치 생산이 강제되지 않으면서 경제 둔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있다.


한국은 체제 가치로 성장했고 종교 가치로 붕괴하고 있다. 이는 북한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같은 민족인 북한은 비슷한 종교 가치를 공유하고 정반대의 체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한쪽은 선진국이고 한쪽은 최빈국이다. 무엇이 차이를 만든 것인지 너무나도 명확하다. 


흔히 욕망이 많은 인간을 비난하는데, 타인의 욕망을 억압하는 인간보다 본인의 욕망만 추구하는 인간이 경제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 본인의 욕망만을 추구하되 공정하면 된다. 이제는 욕망을 절제시킬 것이 아니라 스포츠 경기하듯 공정한 욕망을 추구하여야 한다.






3) 인식 한계


모든 개인은 통치 관점을 가지되 인식 한계를 알아야 한다. 일반 인간은 물론이고 전문가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 계열조차 인간 심리 영역은 인식 탐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모든 분야는 존재 탐구를 하고, 모든 개인은 존재 탐구를 하는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자연 계열의 과학처럼 여겨야 한다.


존재 탐구하는 자연 계열에서 인간 심리 영역은 인간 심리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에 인식 탐구에 머무르는 일이 있다. 어떤 정신 의학자는 인간이 지능이 낮아 본인 말이 무조건 맞고 타인 말이 무조건 틀리다 주장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지능이 만든 것이 아닌 가치의 절대성이 만든 현상이다. 그 논리라면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종교인은 머리가 나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종교인은 머리가 좋다. 단지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길 뿐이다. 이것은 한국 일상에서도 알 수 있다. 연하가 연상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전부 지능이 낮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인은 머리가 좋다. 단지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길 뿐이다. 되려 유능하기 때문에 체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알더라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심리학적 분석은 보편적 가치관으로 만들어진 가공 상태를 전제했기 때문에 가치가 다르면 분석도 달라지게 된다. 인간 심리 관련 학문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공되기 이전의 상태를 파악하여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지 않고 유형, 성격 등과 같이 가공 상태로만 파악하는 것은 대부분 하늘 색을 색으로만 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처음부터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하여 개념 체계를 전부 갖추고 심리의 모양, 성질, 구조, 원리 등을 전부 파악해야 한다. 


종교 가치를 전제한 심리학으로는 종교 가치에 어긋나는 것을 볼 때 비정상으로 판단될 수 있다. 즉 과거 종교의 이단 심문관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 가치에 어긋나는 너는 이단이다! 정신병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 현상이 과거부터 동성애, 록 음악, 성 상품, 만화나 게임 등으로 있었다. 체제 가치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도 종교 가치로는 비정상으로 취급되면서 정상인을 비정상인으로 몰아가며 공격하는 것으로 체제가 더욱 붕괴되게 된다. 사회성도 마찬가지다. 종교 가치에 적합한 사회성이 강조되면서 체제 가치에 적합한 사회성을 가진 인간이 비정상적이라며 공격받는 것으로 체제가 더욱 붕괴되게 된다. 인권도 마찬가지다. 종교 가치에 적합한 인권이 강조되면서 체제 가치에 적합한 인권이 비정상적이라며 공격받는 것으로 체제가 더욱 붕괴되게 된다. 이는 자유로워질수록 그 수가 증가함에 따라 체제는 더욱 더 붕괴될 것이다.


인문 계열에서는 종교 가치와 인식 탐구가 보편적이기에 일반 인간의 주장 또한 체제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주장일 확률이 높다.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체제에 해로운 본인 생각을 강제하는 권력 남용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성 터부시가 있다. 성 터부시에 의해 도서관에 성교육 책을 빼라고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이나 그림은 치우라는 의견이 계속 들어온다고 한다. 이런 체제에 맞지 않은 주장이 통치자인 대중에서 나타나면서 통치 대행자인 정부 관계자는 민주주의 체제임에도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이제는 모든 개인은 체제 가치와 존재 탐구를 보편적으로 여겨야 하고, 존재 탐구를 하는 학문의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






4) 체제 합리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 왕정에 사회 선택된 종교 가치로 생활 양식을 갖추니 체제 불합리가 일어나면서 사회 구조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그래서 체제 합리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해야 할 동기가 적을 수가 있다. 기성 세대는 사회 은퇴를 하는 것으로 동기가 적을 수 있고 부유한 이들은 사회 이탈을 하는 것으로 동기가 적을 수 있다.


“나는 충분히 배부르고 변화를 원하지 않는데 변화하는 성가심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렇기에 공통의 이익을 제시하겠다. 체제 합리를 통한 기술 발전에 따른 생존이다. 단순 물질적 이익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물질적 이익을 초월한 공동 목표인 불로불사다. 이것이면 기성 세대도 은퇴할 이유가 없어지므로 사회 변화에 적극적이게 될 수 있고, 부유한 이들도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사회 변화에 적극적이게 될 수 있다. 


인간은 감각 기관으로 지각한 것을 바탕으로 인식과 가치를 느낀다. 그렇기에 몸이 다른 인간은 다른 인식과 가치를 가지면서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감각 기관으로 인식과 가치를 느끼고, 그것으로 결핍의 충족이 이뤄지면서 행복을 느낀다. 여기서 감각 기관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제대로 행복도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이 잘 작동해야 하므로 최상의 행복은 불로불사에 해당하게 된다.


과거 진시황 같은 이들이 불로불사를 하지 못했던 것은 존재 탐구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 존재 탐구를 하는 것으로 종의 한계를 초월해 급격한 발전을 한 현대 과학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불로불사는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인간의 늙음과 자연사란 개념을 지워버리겠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그건 사상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가야할 길을 정하고 생각하다보면 도달한다.






5) 사회 변화


사회에는 유토피아 사회와 디스토피아 사회가 있다. [유토피아: 1.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디스토피아: 1.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 이러한 개념을 통해 예측한 사회상은 종교 가치를 기초로 하여 개인주의 체제에는 적절하지 않다. 흔히 종교 가치에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같은 개인주의 체제에 결함이 있다거나, 자유에 의해 윤리가 지켜지지 않아 엉망이 된다거나 하는데, 그야 종교 가치로 보면 그럴 것이다. 


종교 가치는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종교 가치는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 사회 선택된 단순한 인식 탐구다. 종교 가치가 없던 세계를 전제하여 이치를 기초로 한 존재 탐구를 한다. 체제 가치를 기초로 하여 체제 합리를 이루는 사회를 통해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게 한다. 단순히 인간이 행복해할 것을 얻게 할 것이 아니라 원리가 작동될 수 있도록 하고 나서 얻게 한다. 그러면서 행복한 사회를 실현한다.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한다. 이것이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전제한 기본이다. 사회와 체제 구조가 존재의 절대성으로 판단할 수 없고 강제적이며 사회와 체제 원리가 가치의 상대성으로 판단할 수 있고 자유롭다. 만약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요소가 있어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요소인 개인을 재가공한다. 대표적인 것이 범죄자, 체제가 다른 이민자, 자발적 재가공 등이 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각각 사회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체제 변화는 크게 존재 질서와 가치 제어로 구분한 것에서 개인, 집단, 생산, 소비, 관계로 나눠 정리하고 변화에 따른 분야의 대응은 역할에서 정리한다. 기술 변화와 환경 변화도 비슷하게 정리하고 분야의 대응을 역할에서 정리한다. 그렇게 하여 체제 합리가 이뤄지는 것으로 사회 체계가 정상 작동하면 그 외의 문제는 소소하다.






3.2 체제


1) 개인주의


인류 문명의 체제 변화의 본질은 집단 수장에서 모든 개인으로의 주권 이동이다. 주권이 이동하면서 왕정처럼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닌 민주정처럼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으로 사회 체계 정반대가 된다. 그럼에도 왕정의 사회 선택을 받은 종교 가치가 보편적으로 남아 질서가 되면서 가치 충돌이 발생했다. 체제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라고 해놨는데 질서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억압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행해지면서 그러한 체제 가치가 훼손되게 되었다. 욕망이 억압되고 희생을 강요당한다. 교육에서는 미성년에게 연령별 의무를 전제한 교육을 하면서 사회 미숙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사회에서는 종교 가치를 강요하는 권력 남용을 하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정치에서는 종교 가치에 영향을 받아 역할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유착과 비리가 넘치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생산에서는 통치 관점을 잊고 기업이든 노동자든 국익을 고려치 않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학문에서는 인간 심리 영역은 인식 탐구에 머무르는 바람에 이러한 사회 현상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가치 충돌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이치를 기초로 한 논리적인 체계를 갖춰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했음에도 인류가 종교 가치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체제에 맞는 질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법칙에 속하는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기초로 한 논리적인 체계를 갖춰 체제에 맞는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사회는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몇 가지 개념을 기초로 하여 논리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학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자연수를 기초로 한 것처럼 사회도 아무리 복잡해도 자연수와 같은 우주의 법칙에 속한 것을 전제한다면 기초로 할 수 있다. 각각 개념이 도입된 분야는 복잡한 체계로 중심이 잡히지 않을 수 있으나 이치를 기초로 한 개념과 연결되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존재 질서, 가치 제어, 재가공과 같이 재정립을 정리하겠다. 존재 질서는 사회 체계의 변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 제어는 사회 체계나 개인 가치 관념의 변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재가공은 개인 논리 회로의 변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 존재 질서는 존재 구조 유지가 강제력이 대부분 적용되어 강제할 수 있고, 가치 제어는 가치 추구가 강제력이 대부분 적용되지 않아 권장해야 한다. 체제에 맞는 질서 정립과 가치 제어만 제대로 해도 체제 변화에 의한 사회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다. 거기서 일부 일반적이지 않는 인간, 주로 범죄자는 재가공을 통해 논리 회로를 다시 설계한다. 

체제 불합리를 인간으로 비유하면, 오른손을 오른쪽에 뻗었다고 생각했는데, 왼손이 나가서 얼굴을 치는 것과 같이 의도한 바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심할 때에는 해로운 결과가 나온다. 저출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높은 자살 줄이겠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 높은 자살로 이어진다. 불합리하니까 그렇다.


존재 질서와 가치 제어와 재가공은 일반적으로 국가 통치에 쓰이나, 모든 국민이 통치자인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모두가 통치 관점을 가지고 이러한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은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므로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통치 관점에서 볼 때 일부 일탈에 의한 범죄보다 사회와 체제에 해로운 정책이나 제도가 더욱 심각하다 할 수 있다. 그것이 설령 특정 가치에서 정의롭다 여겨지는 관점에서 나타난 것이라 할 지라도 큰 문제가 된다. 간단히 말해 개인의 특정한 충동 범죄보다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가 훨씬 해롭다. 더구나 충동 범죄는 자유를 보장하는 한 사라질 수는 없지만 잘못된 정책과 제도는 사라질 수도 있다. 


왕정 체제는 주권이 소수에게 있었기에 그들이 보이는 것만 보고 본 것을 기준으로 가치를 정한 것으로 질서로 하여 유지해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민주정 체제는 모든 개인에게 있기에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다 보고 존재를 질서로 하여 유지해야 된다. 그걸 전제하여 법, 정책, 제도 등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존재 질서로 진보하면 사회 전반적인 법, 정책, 제도 등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기원 년전 이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던 질서의 변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 계열에서 이미 존재 탐구로 진보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하게 될 진보에 해당하게 된다. 이것을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 시작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개인의 주권을 보장하기에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존재의 절대성에 의해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가 되겠다 하더라도 존재에 속하는 이상 자유권은 강제로 보장된다. 가치의 상대성에 의해 존재를 해치지 않는 한 사랑은 물론이고 증오조차 자유롭게 보장된다. 이러한 체제의 체계를 학문에서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



존재 질서와 가치 제어는 주권자가 통치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떻게 해야 사회에 속한 인간의 생존권이 보장되고, 어떻게 해야 사회에 속한 인간의 자유권과 주권과 경제권이 보장될 수 있는가? 그것을 체계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윤리와 같은 사회와 체제와 무관한 것을 강제하는 특정 가치가 필요 없게 된다. 사회와 체제는 인간의 상대적인 인식과 가치로 판단하고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절대적인 존재로 판단하고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특정 인간이 당근 주스가 옳고 기름이 그르다 여긴다 하더라도 자동차에는 기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기름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존재 질서는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강제력을 정당화하고 강제로 실행한다. 존재 질서는 강제할 수 있으므로 강제력의 정당성만 확보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인간 생명이나 경제 시장과 같이 사회와 체제 구조와 요소로 당장 사회와 체제 구조에 필요한 것이기에 강제할 수 있다. 살고 싶으면 하기 싫어도 먹고 자고 싸는 것과 같이 지극히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다. 직접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합의만 되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가치 제어는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아 가치의 상대성을 통해 자유를 보장하되 이로운 것을 행하도록 가치를 제어한다. 예를 들어 이성애든 동성애든 개인 취향으로 당장 사회와 체제 구조에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강제할 수는 없지만 이성애가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와 체제에 이로운 것은 명백하다. 단순히 살기만 하고 싶으면 반드시 할 필요는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 하는 일이다. 간접적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은행의 금리 제어와 같이 어렵다.


가치 제어는 존재 질서를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즉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가치를 제어해야 한다. 언론, SNS, 커뮤니티 등을 통제하고 검열하는 것으로 가치를 제어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반체제에 해당하여 그것을 하지 않고서 가치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과감한 통찰과 섬세한 설계가 필요한 일이다. 금융계에서 물가를 조정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고심과 계산을 하는데, 그보다 더 복잡한 사회의 가치를 제어하는 것을 너무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2) 존재 질서


(1) 개인


I. 기본 가공. [교육]


기본 가공은 일반적으로 인성 교육으로 주로 가정에서 하여 가정 교육으로 불리고 학교에서는 도덕 및 윤리 과목에 해당하게 된다. [인성: 2.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 [가정 교육: 1. 가정의 일상생활 가운데 집안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주는 영향이나 가르침.] 간단히 말해 논리 회로를 만드는 과정이다. 인간은 이러한 논리 회로를 통해 생각하고 행동하므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개인주의 체제 이후 제대로 된 학문이 없다.


기본 가공은 종교 가치를 바탕으로 가정 교육을 행하거나 도덕 및 윤리 과목으로 가르쳤다. 그러다보니 체제 가치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이 제대로 없었다. 이미 종교 가치로 기본 가공을 마친 후에 체제에 대한 설명을 하고 끝났다. 그렇기에 이 영역은 아직 학문화가 안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가공이 학문으로 체계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 가치로 기본 가공된 인간이 타인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거나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일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기본 가공은 간단하고 절대적이어야 한다. 한다. 복잡하고 상대적이면 교사도 학생도 하기가 어렵게 된다. 존재 탐구를 기초로 의무에서는 체제, 관계, 생산과 같이 사회와 체제에 필요한 것을 가공하고, 권리에서는 연령별 권한과 학문을 정리한다. 현재 주입식 교육으로 학문이 의무인 것처럼 되어 있는데,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에 필수적인 것 외의 학문은 의무가 아니다. 생산을 학습하고나서 권리 보장을 통해 욕망을 가지도록 유도하면 본인이 알아서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하고 싶은 학문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의무는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권리는 선택 과목으로 지정하면 된다.



존재의 절대성에 속하는 의무에서는 사회 생활에 필수적인 국어와 산수와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에 필수적인 체제, 관계, 생산을 이해한다. 의무 과목은 국어, 산수, 체제, 관계, 생산이면 된다. 국어와 산수는 기존에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체제에서는 자유권, 주권, 경제권 등을 이해하고 관계에서는 이성 관계를 비롯한 인간 관계를 이해하고 생산에서는 가치 생산을 이해한다. 


체제에서는 존재의 절대성과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을 통해 자유권을 이해한다. 존재의 절대성과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은 산수에서 사칙연산 이전의 자연수와 같은 개념이다. 존재의 절대성은 육체 구조 유지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가치의 상대성은 육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존재 외엔 자유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존재를 알면 된다. 어떻게 해야 육체와 사회와 체제와 환경이 유지될 수 있는가? 그러면서 자유권 외에도 생존권과 주권과 경제권 등의 권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체제를 이해한다. 교육 과정은 존재의 절대성을 기초로 육체, 사회, 체제, 환경 순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이런 체제 이해를 통해 체제에 맞는 기본적인 인성을 갖춘다. 지금까지 이런 것을 논리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윤리를 주입되거나 사회에 강요되어 체득하였었다.


체제 이해 중 세계 확장과 위험 백신을 해두는 편이 좋다. 미성년의 사건사고는 대부분 세계가 지나치게 좁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권한을 말한다. 미성년은 권한이 적어 의무도 적기 때문에 성년과 같은 세계를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수집한다거나 현장 체험이나 수련회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세계 확장은 부모와 교사의 손에서 벗어나 다른 종류의 인간의 보호에서 다른 세계를 경험해봐야 한다. 현장 체험이나 수련회를 할 때 부모나 교사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군경에서 평소와 다른 권한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세계 확장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사건사고 치던 미성년이 평소에 권한이 없어 알 수 없었던 교정 시설에서 모범 죄수와 만나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하면 된다. 현장 체험에서 기업의 관리로 성년과 같이 가치 생산을 해보고, 자연 캠프에서 군경의 관리로 성년과 같이 먹고 자고 싸는 것을 직접 해본다.


위험 백신은 도박이나 마약과 같은 중독에 관한 백신이다. 현재 중독 자체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봐서 그에 대한 백신을 맞게 하지 않는 것으로 개인은 중독에 굉장히 취약한 상태다. 단순히 중독이 나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직접 중독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경험해봐야 한다. 도박 중독은 주식이 적절할 거라 본다. 주식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고 실제 주식도 참여하면서 이익에 의한 쾌감과 손실에 의한 절망을 경험해봐야한다. 물질 중독은 설탕이 적절할 거라 본다. 설탕에 푹 빠지게 한 뒤에 설탕 못먹게 해본다. 그것을 통해 결핍의 충족과 마약을 간접적으로 이해해본다. 


관계에서는 이성 관계를 비롯한 인간 관계를 이해한다. 모든 개인이 주권자로서 역할에 따라 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주권을 통한 대등한 관계가 있음을 이해한다. 이것을 통해 연령, 성별, 직위 등의 차별을 없앤다. 대등한 관계임을 이해하고 금욕주의를 말하며 일방적인 금욕을 강요하지 않고, 이타주의를 말하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도록 한다. 과거 학부모가 촌지를 내고 학생이 욕망을 절제당하고 맞고 다녔던 것과 현재 교사가 부당한 배상금을 내고 욕망을 절제당하고 맞고 다니는 것은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에 의한 것이다. 역할에 따른 권한 차이를 파악하고 그 권한을 서로 존중한다. 권한을 넘어선 권력 남용이 나타나면 그에 따른 조치를 한다. 


그것을 통해 자유롭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 그 중 이성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정조관념을 토대로 한 성 터부시는 집단이 개인에게 강요한 부당한 간섭이다. 현재 체제에서는 권력 남용이 된다. 현재 저출산은 이성 관계 파탄에 의한 것이므로 인공 자궁이 나온다 한들 파탄난 이성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이성 관계 파탄은 미성년 시기에 성을 터부시하며 이성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이 주권자임을 이해하고 이성 관계를 막아서는 안 된다. 되려 권장을 하되 발정뿐만이 아닌 발정이 포함된 성애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게끔 해야 한다. 존재의 절대성을 이해하고 이성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하여 최소한 고등학생 때까지 미성년 90% 이상의 이성 교제가 이뤄지도록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사랑하여 결혼하고 출산한다. 무슨 저출산 원인에 이상한 것 찾는데, 그냥 대놓고 말해 사회 간섭이 없으면 미성년 대부분 알아서 결혼하고 출산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살아남았다. 그걸 사회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말하며 종교 가치로 막아대니까 못한 것이다. 종교 가치로 막지 않고 체제 가치를 통해 대등한 주권자로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면 된다.


생산에서는 가치 생산을 이해한다. 일반적인 모든 가치 생산은 시장을 통해 거래되므로 시장을 이해하면 된다. 체제에서 경제권을 통해 시장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이다. 노동 시장, 소비 시장, 금융 시장 등을 이해하면 된다. 공무원은 시장에 속하지 않는다 할 수도 있지만 합리적 기준을 위해 노동 시장에 속하게 한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므로, 시장을 보고 본인이 생산하고 싶은 가치를 결정하면 된다. 장래희망을 학문이나 학과로 찾게 하면 안 된다. 시장을 보고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 중 본인이 생산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해야 한다. 시장을 알고나야 시장성이 없는 것을 장래희망으로 삼을 때에도 본인이 각오하고 계속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다. 그것을 위해 학습하는 학문은 권리에 속하여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 



가치의 상대성에 속하는 권리에서는 연령별 권한과 학문을 이해한다. 연령별 권한에 대해 알아보자. 모든 개인은 주권자로서 역할에 따라 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반 개인과 대통령은 대등한 주권자이고 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미성년도 다르지 않다. 미성년은 사리분별이 성년에 비해 어렵다는 이유로 권한이 적은 상태다. 이를 보고 미성년은 보호받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 기준을 정해야 한다. 위험 구역에 출입할 수 없는 것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 개인에게 권한이 없는 것이다. 보호에 초점을 맞추면 개인의 대응 가능 여부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어 모순이 생기지만 권한에 초점을 맞추면 개인의 대응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기준이 달라지지 않는다.


미성년도 마찬가지다. 촉법 소년, 선거권, 성적 및 가치 생산 자기결정권 등과 같이 성년과 동등하지 못한 것은 보호 차이가 아닌 권한 차이다. 촉법 소년은 일방적 보호가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권한이 적은 이유거나 권한이 적어 발생하는 취약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마약에 의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게 된 인간을 병원에 가둔다고 가정하자. 그럴 때 방치하면 죽지 않겠는가? 위험 구역에 노출된 인간에게 이동의 권한을 빼앗는다 가정하자. 그럴 때 방치하면 죽지 않겠는가? 존재의 절대성에 의해 안전을 보장하고 식재료 등을 공급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와 같다.


촉법 소년은 연령을 낮추라 말을 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연령을 높이라 말을 한다. 둘은 사리 분별이 어렵다는 근거로 작동하는 것으로 어느 한쪽을 낮추고 높이는 것은 불합리한 모순을 부르게 된다. 마땅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이 상대적인 인식과 가치로 결정하니 이런 모순이 발생한다. 권한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2차 성징 시기가 10세에서 14세 사이라고 한다. 2차 성징 이후 인간의 육체는 대부분 기능이 작동하므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기준으로 미성년 권한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범죄와 같이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촉법 소년은 2차 성징 최저 시작 시기인 10세로 지정한다. 성장이 다르고 정보 수집 양이 달라 누군가는 10세에 다 알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과거에도 성장이 빠르고 정보 수집 양이 많았던 미성년은 곧잘 범죄를 저질렀으나, 현재는 보편적으로 영양 공급이 충분해 성장이 빠르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 수집 양이 많아 미성년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난 상태다. 사회가 변화했으므로 인식과 가치를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닌 존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선거권은 체제에 속하는 것으로 모든 개인에게 강제되는 권리다. 이것은 최대한 빠른 시기에 할 수 있어야 한다. 10세에 교육에 관한 선거를 하고, 12세에 지역에 관한 선거를 하고, 14세에 모든 선거가 가능하면서 순차적으로 선거권을 이해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성기능 유무로 결정되고 가치 생산은 그리 급할 것이 없으므로 2차 성징 최고 시작 시기인 14세를 기본으로 하되, 개인 의사에 따라 12세에도 허용되는 구조를 설계한다.


학문에 대해 알아보자. 학문은 의무에 속하는 국어, 산수, 체제, 관계, 생산 외에는 자유롭다. 생산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알아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학교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그에 대한 계획을 도와주면 된다. 의무만 제대로 가공하면 그 외는 자유롭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휴학이 자유로운 것이 좋다. 애초에 모든 개인은 성장이 다른데 같은 시기에 같은 학습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그렇게 하여 스스로가 생각하는 최적의 가공 형태를 갖춘다. 학문 지식뿐만 아니라 표정, 태도, 마음가짐, 예의범절, 젓가락질 등 전부. 의무는 교육자가 주도한다면 권리는 학생이 주도한다.






II. 장애 가공.


지적 장애나 성격 장애에 관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육체 보조 기구와 같이 지능 보조 기구를 통해 대응하면 된다. 뇌에 컴퓨터 칩을 심어서 지적 장애나 성격 장애를 극복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 한다. 


육체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면 보조 기구 써야 하듯, 뇌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면 보조 기구를 써야 한다. 육체 장애와 달리 뇌의 장애는 내부 원리를 파악하기 어려워서 그런 보조 기구 개념이 정착되지 못했던 것이지, 뇌 과학이 발전한 현재는 충분히 가능하다. 자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뇌의 지능이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프로세스 동작이 가능하게 하면 된다.


현재 지적 장애의 치료는 심리 치료, 놀이 치료, 훈련 치료 등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뇌 기능 장애로 지적 장애를 가졌는데 뇌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행위로 치료가 되기 어렵다. 그러니까 내부나 외부에서 신호를 직접 입력한다. 내부에서는 뇌에 컴퓨터 칩을 심으면 될 것이고 외부에서는 도파민 등의 물질을 주입하거나 전기 신호로 자극을 주면 된다. 


보호자가 지적 장애인이 좋은 행동을 하면 그에 해당하는 물질을 주입하도록 하고 나쁜 행동을 하면 그에 해당하는 전기 신호를 느끼게 한다. 지적 장애인이 학교에서 자위 행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물리적 타격을 주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전기 신호로 교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평소에 나쁜 행동을 하면 전기를 느끼게 하는 것으로 훈련하면 된다.


성격 장애도 마찬가지다. 성격 장애는 특정 상황에서 내부 물질이 분비되지 않아 이해나 공감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인데, 그것을 외부 물질 주입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당뇨병으로 인슐린 생산이 되지 않으면 외부에서 인슐린을 주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지 정신과 육체의 차이일 뿐이다.


뇌에 칩을 심는다거나 외부 물질 주입이나 전기 자극이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해결 방법이 있는가? 개와 비슷한 지능을 가져서 교정되지 않은 개와 비슷하게 방치되다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죽는 것이 낫나? 아니면 보조 기구를 통해 사회에 어울리게 하는 것이 낫나? 종교 가치에 휘둘리지 말고 진정 무엇이 사회와 체제에 적합한 것인지 생각을 해야 한다. 일반 인간에게 이러한 것이 부당할 수도 있지만 장애 인간에게는 이러한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III. 의식 상실.


의식 상실로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체계가 필요하다. 의식 상실에 의한 대표적인 사건사고가 바로 음주 운전이다. 술을 마시고 정상적인 의식을 상실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건사고를 일으킨다. 인간은 의식을 상실하면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대로 움직이게 된다. 그것을 고려해 무의식적으로 사건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훈련을 한다.


인간은 성년 이후 자유가 보장되어 의무가 최소화되어 강제하기가 어렵다. 그 중에 의무를 통해 강제가 이뤄지는 것이 바로 운전 면허다. 운전 면허 취득과 갱신시 술을 마시는 인간은 술을 마시고 대리 운전이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운전 면허 시험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인간은 모두 술을 마시고 GPS를 장착한 상태에서 대리 운전이나 대중 교통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훈련을 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거나 앞으로 마시지 않을 거라 거짓을 말하면 음주 운전 발생시 가중 처벌을 한다.


음주 운전을 하거나 음주 운전 사건사고를 일으킨 인간은 강제로 위와 같은 훈련을 반복한다. 무의식적으로 술을 마시고 나서 대리 운전이나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한다. 인간은 의식 상실시 무의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의식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무의식적으로 또 음주 운전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음주 운전을 멈추려면 무의식을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운전 면허를 빼앗아도 무면허 운전을 할 수 있고, 차량을 빼앗아도 다른 차량으로 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훈련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IV. 생존 훈련.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을 고려하면 재난 방지 대응을 해야 한다. 사건사고 발생시 개인이 패닉을 겪는 것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편적 사건사고를 훈련으로 경험해봐야 한다.






(2) 집단


I. 사회 구조


사회 구조는 집단주의 체제의 질서였던 종교 가치에 의해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전체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대체로 지인 또는 약자를 위하여 이타적인 이유로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사회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약자의 이익을 위함이 아닌 모든 개인의 이익을 위함에서 약자도 포함되어야 한다. 일방적 희생이 아닌 체제에 적합한 논리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정 제도가 설문조사에서 공정하단 의견이 있으므로 정당하단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 정도면 체제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다. 다수가 지배나 복종이 공정하다 주장하면 정당해지겠는가? 체제는 사회의 생활 양식으로 개인의 의견과 관계 없이 체제에 적합하고 부적합한 것은 분명히 있다. 체제에 적합한 것을 하고 나서 거기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 기름으로 돌아가는 자동차에 친환경적인 당근 주스를 넣는다고 해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듯이 체제 가치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윤리적인 종교 가치를 주장한들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은 워낙 체제에 부적합한 것이 많아서 사회 전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 현상 몇 가지를 알아보자. 


국민 연금 - 수명에 따라 이익이 달라지고 추가 가입자가 있어야 성립되는 제도로, 추가 가입자가 일방적 희생을 한다. 국민 연금이 있어야 노후가 보장된다는 말을 하는데, 없어도 국가 차원에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차라리 합리적인 제도를 통해 절약한 비용으로 모든 개인의 노후 생존을 보장하는 게 맞다. 이런 제도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성립될 수 없다. 국민 연금은 점진적으로 연금에서 펀드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건강 보험 - 건강 보험 자체는 사회 구조 유지에 적합하나 집단주의적이어서 낭비되는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 의사는 별 것 아닌 것도 비싼 보험처리하고 환자는 별 것 아닌 증상으로도 치료를 받는다. 개인주의적으로 접근하여 과잉 진료나 습관성 치료에 대한 기준을 정하여 가점이나 감점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시장 원리 훼손 - 도서 정가제,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 가산점 및 할당제 등과 같이 생산자를 위해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시장 원리를 훼손하는 제도는 체제에 부적합하다.


지하철 노인 무료 이용 - 노인과 그 외와 차별이 나타나고, 이용하는 노인과 이용하지 않는 노인의 차별이 나타난다. 지하철 노인 요금을 받되 그 비용을 전부 노인 복지로 쓴다고 한다면 명분도 챙기고 과도한 지하철 이용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 검열 및 규제 -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개인의 자유권을 훼손하는 것으로 개인을 희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검열과 규제는 종교 이단 심문관의 판단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남성 징병제 및 스포츠 메달 징병 면제 - 모든 개인은 주권자로서 대등하다. 여성도 한 명의 개인으로 신체 검사를 통해 적합한 인간만 징병하면 된다. 스포츠 메달 징병 면제는 형평성이 어긋나는 특혜로 부당하다. 소급 적용은 할 수 없지만 점진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미성년 술담배 판매 책임 및 성매매 구매 책임 - 마약과 같이 판매자와 구매자 전부 처벌할 것이 아니면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 술담배는 성년도 해로운 것이 맞음으로 2차 성징 이후 전체 허용을 하던가 아니면 전체 금지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본다. 성매매 처벌은 종교 가치에 의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금지 자체가 부당하다.


노동 조합 -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은 체제에 부적합하다. 노동자 집단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주의적이어야 한다.


호봉제 - 역할 수행과 기여도에 따라 이익을 얻어야 가치 생산을 많이 하는 인간이 희생되지 않을 수가 있다.


성범죄 유죄 추정 - 법 앞의 평등이 필요하다.


지역 활성화 - 특정 지방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할 수는 없다. 공공 기관을 이전했을 때 그 외의 다른 지역의 개인이 그곳에서 살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지역 활성화는 공공 기관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닌 개인의 손에 달려 있다. 수도권 과밀화는 개인의 의사로 결정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린이보호구역치사상죄 - 책임 소재가 일방적이어서 미성년의 놀이 도구가 되었다.


토지 민주주의 - 토지 소유자가 적은 시점에서 토지의 이익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지역 대표는 온전한 민주주의 대표라 하기 어렵다. 


동성 결혼 금지 - 권장될 수는 없지만 금지할 수도 없다. 금지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과하게 침해한다.


전관 및 현관 예우, 유착, 담합, 관행, 인맥 취업  - 종교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 체제에 불합리한 태도다.


여성성 억압 - 여성 성적 대상화 및 상품화 금지는 여성 개인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킨다.


미성년 권리 - 보호를 명분으로 과하게 권리를 박탈하면서 사회 전체가 불합리하게 된다.


산업 비효율 - 산업 전기 요금을 과하게 적게 책정하거나 좀비 기업을 억지로 살리는 것은 그 외의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시장 원리와 무관하여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노동 경직성 및 불필요한 하청 - 하청에 하청으로 수수료만 추가되는 것은 구매자나 판매자 모두 손해에 해당한다. 불필요한 하청이 자연스럽게 없어지도록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


권위 집단 - 선호되는 역할임에도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높여 능력자의 과밀화 현상을 부추긴다. 지금 의사는 지나치게 과하게 몰리고 있다. 다른 모든 분야를 희생시켜 이익을 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시장을 고려해야 한다.


이혼 재산 및 양육권 - 재산 기여도가 없거나 적어도 일방적으로 반반이 되거나 양육권을 일방적으로 여성이 유리한 것은 부당하다. 이것은 가부장제 시기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관습에 불과하다. 


길 짐승 먹이 - 길 짐승을 좋아하는 인간과 싫어하는 인간은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대등하다. 윤리 핑계로 일방적으로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부당하다.


사생활 개인 정보 - 전체 안전 명분으로 지나치게 개인 정보를 많이 수집하며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이 외에도 전반적으로 전체주의적이다. 하나 같이 파탄나는 제도들은 그만큼 체제에 부적합하여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사회 복지가 불합리하여 사회 구조 유지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시장 원리가 훼손되어 제대로 동작되지 못한다. 이런 제도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런 현상은 개개인의 손익과 무관하게 단순히 체제에 부적합할 뿐이다. 지금까지 모든 한국인은 당근 주스를 넣은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 뒤에서 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고생하고 있다. 기름으로 돌아가는 것을 당근 주스로 돌리기 위해 인간이 직접 밀고 있으니 힘들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많이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고 분노해도 체제에 불합리하면, 그 고민과 걱정과 분노가 사회를 망친다. 그게 체제 불합리다. 이런 불합리로 누군가는 이익을 얻는다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손해를 보게 된다. 육체가 붕괴하면 육체에 속한 모든 세포가 손해를 보듯 사회가 붕괴하면 사회에 속한 모든 개인이 손해를 보게 된다. 사사로운 손익이 아닌 단순히 공멸한다. 기준이 명확하고 알기 쉬워야 합리적인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공존이 가능하다.






II. 사회 권력


역할에 맞는 권력 행사가 가능해야 한다. 현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권력이 강해서가 아닌 약해서이다. 개인 권력은 강할 수 있지만 역할 권력은 지나치게 약하다. 그래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유착과 비리를 저지르고 개인의 이익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명분으로 권력자의 권력이 약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역할 수행에 필요한 권력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을 역할에 맞게 쓰느냐 쓰지 않느냐는 다른 문제다. 비리, 유착, 담합 등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역할 권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 사회 운영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이 세금이다. 세금이 있어야 운영이 성립되므로 세금을 걷는 역할의 권력은 보장되어야 한다.






III. 사회 복지


사회 복지는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전부 고려해야 한다. 사회 복지는 쉬운 것이 아니다. 인간 육체 밸런스를 사회 단위로 하는 것이다.







IV. 사회 안전


사회 안전은 역할에 따른 권한을 명확히하여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한다. 권한이 불분명하니 본인이 안전에 신경써야 할 범위를 정확히 몰라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권한에 강제력을 인식하기 위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가치 생산 현장을 예로 들면 관리 측면에서 제대로 해도 생산자가 안전에 소홀하여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관리 측면에서 안전에 소홀하여 생산자가 안전에 신경써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 안전 사고는 역할 권력 부족과 책임 소재 불분명과 안전 불감증에 의한다.






(3) 생산


I. 시장 구조.


현재 정부가 시장 관련해서 어려운 것은 합리적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말 듣고 저말 듣고 하면서 진행하려고 하니 꼬이게 된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시장 자체가 개개인의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가치의 상대성을 전제한 제도다. 존재의 절대성을 근거로 시장 구조를 유지하고 가치의 상대성을 근거로 시장 원리를 실현한다. 


예를 들어 가산점이나 할당제가 그렇다. 개인의 평등한 경제권은 시장 참여권에 속한다. 이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스포츠 경기에 참여할 권리는 동등하나 경기 결과에 따라 얻는 이익은 다르다. 시장에 참여할 권리는 동등하나 시장 원리에 따라 얻는 이익이 다르다. 정부는 시장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지 시장 원리로 얻는 이익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통해 시장 참여 권리를 보장하면서 시장 원리를 실현한다.


출산 휴가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기업에게 전가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아 불합리하다. 정부가 책임지고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만큼의 세금을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명분으로 걷는다. 물론 이러면 출산 휴가를 악용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개인당 보장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면 된다. 시장 원리 외의 손실을 강제하지 않으면서 시장 원리를 실현한다.


모든 형태의 유착과 담합을 막는다. 모든 시장은 개인주의적으로 모든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야 한다. 그것으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시장에는 연령도 인종도 성별도 없다. 오로지 개인과 역할과 용도만 있다. 인종, 성별, 지역 등으로 할당하는 것은 개인을 고려치 않은 전체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생존권은 복지로 보장하여 시장 원리가 동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야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가 된다.


시장 구조 유지를 위하여 가치 생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욕망을 부추기고, 지나치게 많은 부를 대물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부의 대물림에 집착하는 것은 종교 가치의 흔적이다. 개인으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II. 노동 시장.


노동 시장은 노동력 임대 상품을 가진 상인의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을 말한다. 통상 기업이 사고 노동자가 판다.


개인의 경제권과 연결되어 윤리 경영을 말하기도 하는데, 종교 극단주의자가 윤리 경영을 하겠다고 하면 그게 옳아 보이는가? 오늘날 윤리는 그냥 종교 가치일 뿐이다. 차라리 체제 합리 경영이 적절하다. 


노동 시장에 있어 가산점이나 할당제는 집단에 적용할 것이 아니다. 강자인 흑인과 여성이 있을 수 있고 약자인 백인과 남성이 있을 수 있다. 노동 시장의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개인은 공정하게 경쟁을 한다. 


그 뒤에 존재의 절대성을 근거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가치 생산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인에게 추가적인 가치 생산 지원금을 지원하는 것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한다. 장애인과 같은 약자는 불쌍해서 돕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강제로 지원하는 것일 뿐이다.






III. 소비 시장.


선분양제. [건설]


선분양와 후분양은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선분양의 단점은 이미 팔았기 때문에 대충 짓는 것에 있다. 간단히 말해 QA와 QC 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그렇기에 선분양은 구매자에 의한 품질 검사 의무화를 하고 나서, 계약한 품질에 맞지 않으면 계약 취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IV. 금융 시장.


전세. [금융]


지금 전세 제도 은행 지원은 사실상 곗돈에 은행이 지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금융을 금지할 수는 없어도 권장할 수도 없다. 






(4) 소비


I. 소비 한계.


소비할 권리는 보장되나 사회, 체제, 자연 등의 존재를 붕괴시킬 수 있는 소비는 금지 된다.






II. 사회 한계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 인신 매매와 심각한 마약은 허용될 수 없다.






III. 체제 한계.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해 토지 소유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시장 원리의 정상 작동을 위해 토지의 개인 소유는 적절치 못하다. 토지 소유는 태양 빛을 소유하는 것과 비슷하게 자연에 속한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므로 태양, 빛, 공기, 토지 등과 같은 자연은 개인 소유가 한정적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미 소유한 것을 강탈하는 것은 할 수 없으므로 점진적으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여 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은 생산을 통해 시장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IV. 자연 한계.


자연 구조 유지를 위해 천연기념물을 소유 및 매매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현재 자연은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상태이므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과하게 파괴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시장에서의 자연 한계는 소비하지 않음을 말한다면 지구 환경에서의 자연 조작은 조작함을 말한다.






(5) 관계


I. 관계 논리.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질서는 논리적이어야 한다. 논리는 이치로 이끌어가는 과정. 이치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와 체제. 즉 종교 가치를 기초한 자연법은 비논리에 해당한다. 자발적 성매매나 성관계 영상 판매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은 종교 가치를 근거로 한 것인지 체제 가치를 근거로 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공법은 기본적으로 존재에 속하면서 개인이나 집단이 당장 대응이 불가능하여 강제력을 행사해야 하는 부분을 다뤄야 하고, 사법은 기본적으로 가치에 속하면서 개인이나 집단이 당장 대응이 가능하여 자유롭게 손해에 대한 배상을 바라는 부분은 다룬다. 공법과 사법을 구별하는 것을 긍정하는 측이 있고 부정하는 측이 있는데, 존재의 강제와 가치의 자유로 구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본다.


존재 질서에서는 보통 공법을 다룬다. [공법: 1. 국가나 공공 단체 상호 간의 관계나 이들과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 공법에는 헌법, 행정법, 형법, 소송법, 국제법 등이 있다.


가치 제어에서는 보통 사법을 다룬다. [사법: 1. 개인 사이의 재산, 신분 따위에 관한 법률관계를 규정한 법. 민법, 상법 따위가 있다.]


법원은 체제를 기초로 한 헌법과 헌법 테두리 안에서 입법된 법률을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기준은 존재에 속하고 수단은 가치에 속한다. 기준은 강제력이 있으나 수단에는 강제력이 없으므로 개인이 기준에 속하는 사회와 체제 구조 훼손이 명백할 경우가 아니라면, 강제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에는 주권을 가진 개인이나 권한을 가진 수사 기관이 강제력을 행사한다. 그 강제력을 통해 당사자를 법원에 강제로 불러 법관의 판단으로 존재 훼손일 경우 그에 대한 양형 판단이 이루어지고, 존재 훼손이 아닐 경우 강제력을 행사한 개인이나 수사 기관에 패널티가 부과된다.



존재 질서에서 법은 기본적으로 판단하지 않아도 명확한 것에 속하는 것을 다룬다. 사회와 체제 구조에 속하는 생명권, 자유권, 주권 등이 그러하다. 거기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당장 대응이 불가능한 것을 다룬다. 대응이 가능함에도 형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국가 형벌권의 과잉 행사가 될 수 있다. 간통죄를 처벌하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그렇기에 간통죄는 폐지되었다. 


자유권은 주권에 의해 모든 개인의 자유를 보장되므로 특정 개인의 일방적인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그렇다. 이 중 대응 가능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통상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거나 사법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응 불가능한 모욕과 허위 사실 명예훼손은 공법에서 고소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명예훼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허위 사실 명예훼손이 있는데,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는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에 속하여 사법에서 다루는 것이 합리적이고, 허위 사실 명예훼손은 허위는 판단할 수 없이 잘못이 분명하므로 존재에 속하여 공법에서 다루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공법으로 판단하는 것이나 허위 사실 명예훼손은 사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II. 존재 신용.


존재 탐구, 존재 유지, 존재 신용의 공통점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하고 탐구한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 생각하고 유지한다. 거기에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하고 관계를 맺는다.


존재 신용은 반드시 신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관계를 맺는다. 경찰은 법을 준수하고 시민을 보호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신용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신용한다. 건설사는 튼튼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신용한다. 이런 신용을 통해 의심하지 않는 것으로 특정 절차를 생략하면서 사회적 비용을 절약한다. 만약 신용이 깨지면 경찰을 의심하고 의사를 의심하고 건설사를 의심하면서 그에 따른 추가적인 절차가 생기는 것으로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일부 의사가 대리 수술을 하여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용이 깨지니 CCTV라는 추가적인 절차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한 사회적 비용 손실은 얼마인가? 대리 수술을 맡긴 인간은 그만한 손실을 만든 것이다.


존재를 믿고 절차를 생략한다. 절차를 생략하며 사회적 비용을 절약한다. 절차 생략에 따라 절약한 비용을 계산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신용을 악용하여 부당 이익을 챙긴 이들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종교 가치로 존재 신용을 훼손하여 추가적인 절차로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 등을 낭비하게 한 인간을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감싸지 말고, 비용 낭비에 대한 조치를 취하여 신용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신용 훼손 방치해놓고 추가적인 절차가 나오자 그제서야 대안 없이 무작정 반발하는 것은 부당하다. 신용을 되찾기 위해서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추가적인 절차가 싫다면 손실을 각오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III. 공적 평등.


인간 관계에 있어 공적 관계는 강제할 수 있다. 갑질 꼰대질을 막고, 법 앞에 평등하게 판단한다.






IV. 범죄 수익.


현재 범죄 수익은 시스템 특성상 금액이 클수록 처벌이 낮아질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범죄 수익이 크면 보통 이익을 혼자서 얻는 일이 드물다. 범죄 수익을 조금이라도 얻은 인간을 전부 따로따로 접근해야 한다. 머리뿐만 아니라 꼬리를 대량으로 잘라버리면 이후에 꼬리가 머리를 따르지 않게 되면서 동일 범죄가 줄어들 수가 있다. 머리만 자르면 꼬리에 의해 또 다른 머리가 그만큼 성장할 수 있지만, 꼬리도 대량으로 자르면 또 다른 머리가 그만큼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범죄 또는 범죄 방기는 종교 가치인 윤리에 의해 정당화되기도 하는데 체제 가치로 보면 부당하다.






3) 가치 제어


(1) 개인


I. 존재 가치.


존재 가치는 존재에 속할 가치를 말한다. 존재에 속할 가치가 있어 존재에 속하게 되면, 존재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정당화된다. 특정 존재가 일정 이상 가치가 높다 느껴지면 존재 질서의 강제력 개념이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존재 유지를 위해 활동하게 된다. 국가든 회사든 가족이든 인간이든.


존재에 속할 가치가 없어 존재에 속하지 않게 되면, 존재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특정 존재가 일정 이상 가치가 낮게 느껴지면 존재에서 이탈한다. 국가는 국적 포기를 하고 회사는 퇴직을 하고 가족은 가출을 하고 인간은 자살을 한다.


존재 가치에 의해 체제가 바뀔 수 있게 된다. 왕정에 속할 가치가 없다 느끼면 혁명을 일으켜 민주정 체제로 바꿀 수가 있다.


존재는 존재 가치에 따라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통상 개인이 가장 우선되나 윤리 등의 이유로 가족이나 국가가 우선될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이 우선되면서 계약에 따라 사회 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가치의 상대성은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성립된다. 존재의 절대성은 존재 가치에 의해 성립된다. 존재 가치는 가치로 가치의 상대성에 속한다. 즉 존재의 절대성은 가치의 상대성을 통해 성립되게 된다.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 의지.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 의지가 된다.


존재에 속할 가치는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의 경우에는 누구는 외모가 되고, 누구는 학력이 되고, 누구는 돈이 된다. 외모일 경우 외모를 지적받거나 외모가 늙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용어인 아저씨나 아줌마에 불쾌하게 느끼게 된다. 학력일 경우 학력이 다른 학교가 같은 평가를 받으면 불쾌하게 느끼게 된다. 돈일 경우 재산이 다른 인간이 같은 평가를 받으면 불쾌하게 느끼게 된다. 극단적으로 가면 외모가 좋지 못해지거나 입시에 실패하거나 재산을 잃으면 죽는다. 


자살을 막으려면 자살을 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 아니라 존재에 속할 가치가 있다 여기게 해야 한다. 특정 가치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로 존재에 속할 가치를 느껴야 한다.



존재는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유지되지 못하게 된다. 본인의 존재 가치 레벨이 100이라 여길 때, 100 이하의 환경일 때에는 결핍이 충족되지 못하여 불행하고 100 이상일 때에는 결핍이 충족되어 행복하나 동시에 존재 가치 레벨도 오르게 된다. 알기 쉽게 비유하면 생활비를 월 100만원 쓰다가 80만원 쓰면 불행해지고 120만원 쓰면 행복해하나 기준 또한 120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풍요로운데도 과거보다 불행한 것은 존재 가치 레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 가치 레벨과 행복의 원리인 결핍의 충족에 의해 돈이 적어도 행복할 수 있고 아무리 많아도 불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히 돈뿐만이 아니라 환경에 속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명예, 권위, 우위 등 평소보다 낮으면 불행해지고 높으면 행복해지나 기준 또한 높아진다.


연령 차별을 보면 알기 쉬울 수 있다. 장유유서 가치에 영향을 받은 인간은 연상이 연하에게 우대 받는 것이 당연하다 느낄 것이다. 존재 가치 레벨이 연하에게 우대 받는 만큼 높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하에게 반말을 들으면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 것으로 불행해지게 될 수 있다. 이는 모든 영역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 우대 받다가 우대 받지 못하면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 것으로 불행하게 된다. 과거 신분제의 귀족과 제국주의 자본가, 현재 PC주의의 흑인과 여성주의 여성 등이 그럴 수가 있다.


존재 가치 레벨 개념을 파악하면 성장과 행복 제어가 가능해진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 레벨을 높이면 그 레벨에 다다르는 환경이 갖춰질 때까지 불행할 수 있지만, 그 레벨에 다다르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여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 레벨을 낮추면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쉽게 갖춰지면서 행복할 수 있지만, 성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 욕망이 연료라면 존재 가치 레벨은 도달선이다. 인간은 욕망이 없어도 성장하지 못하고 존재 가치 레벨이 낮아도 성장하지 못한다.


존재 가치 레벨의 성질상 개인이 성장과 행복을 모두 하기 위해서는 성장하기 위해 무조건 존재 가치 레벨을 높일 수도 없고, 행복하기 위해 무조건 존재 가치 레벨을 낮출 수도 없다. 존재 가치를 제어하여 필요할 때마다 레벨을 높였다 낮추면 성장과 행복을 둘 다 할 수 있게 된다. 성장이 필요할 때에는 “나는 이 정도의 환경에 맞지 않으니까 성장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야 해” 라고 생각하면 되고, 행복이 필요할 때에는 “나는 이 정도 환경이 맞으니까 만족하며 살아야 해” 라고 생각하면 된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다른 사람의 생활 환경을 보면서 존재 가치 레벨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데 욕망은 윤리에 의해 잘려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만족할 수 있는 기준점은 굉장히 높은데 연료는 지나치게 부족하면서 보편적으로 불행하면서도 성장도 못하고 있다. 존재 가치를 제어하면서 욕망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II. 결핍 충족


행복의 원리는 결핍의 충족이다. 모든 결핍의 충족이 아닌 정당한 결핍의 충족이다. 허기진 상태를 불행하다 느껴도 부당하다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허기를 충족하면 행복을 느낀다. 목졸린 상태를 불행하다 느끼면서 부당하다 느낀다. 그래서 산소를 충족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목졸린 상태를 부당하다 느끼지 못하면 목을 졸랐다 푸는 것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게 보통 SM에서 M에 해당한다.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으로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 환경이 정당하다 느꼈기 때문이고,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을 때 인간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그 환경이 부당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핍의 충족이나 결핍의 정당성과 부당성과 별개로 지루하여 불행할 수 있다. 이는 결핍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도한 도박과 마약은 행복 원리를 망가트려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일부 한국 여성이 환경에 비해 감사 지수가 낮고 불안 지수나 피해 의식이 높은 것은 여성주의 사상과 보호자가 존재 가치 레벨을 지나치게 높이면서도 환경이 부당하다 지속적으로 주입했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이 대중 교통 이용시 좌석이 떨어지게 되면 동행자와 같은 자리에 있기 위해 타인에게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일이 있다. 이럴 때 바라는 것이 생기면서 결핍이 발생한다. 타인이 자리를 양보하면 결핍이 충족되면서 행복을 느낀다. 타인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양보 거부가 정당하다 느끼면 수긍하고 넘어가지면 부당하다 느끼면 억울하고 화가 날 수 있다. 이타주의에 의해 타인이 본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게 되면 희생 거부를 부당하게 느낄 수가 있으면서 황당한 불만이 나오게 된다.


존재 가치를 제어하여 성장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큰 기준으로 제어하는 것에 해당한다면, 그 외 결핍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제어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보통 작은 기준으로 제어하는 것에 해당한다. 


한참 학습이나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것에 의해 발생하는 결핍을 부당하다 느낄 수가 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그러면 학습이나 일이 멈추거나, 끝이 나서 결핍이 충족되어도 불행하게 된다. 이것을 정당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잘 안될 경우에는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도 제어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부당함에서 벗어난다. 현실 도피다. 보통 목표가 큰 인간은 존재 가치 레벨이 높아 일반 환경의 결핍은 부당하게 느끼는 것으로 불행하게 되는데, 큰 목표를 주관적으로 크지 않다고 여기거나 현실 도피로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넘어갈 수가 있다. 이것을 타인이 강요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나 본인이 제어해서 적절히 행복을 느끼는 것은 정당하다.


일상적인 때에도 결핍의 정당 부당은 적용된다. 깜빡 잊은 일에 의해 되돌아가는 상황이 생길 때 그것을 정당하다 느끼면 별 감정이 없지만 부당하다 느끼면 짜증과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


연애 등의 인간 관계에서 다른 인간의 말에 의해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결핍을 부당하다 느끼게 될 수가 있다. 특정 인간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도시락을 싸는 것을 본 다른 인간이 그것을 부당한 것이라 강요할 수 있다. 그러면 도시락을 싸는 동안 생기는 결핍을 부당하다 느끼면서 그런 애정의 행위가 사라지게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남성이 여성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 주위에서 부당하다 강요하여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현재는 여성이 남성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 주위에서 부당하다 강요하여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게 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면 온전한 행복도 얻을 수 없다. 가치 제어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III. 추가 가공.


성년 이후 가공을 다룬다.


인간은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가공하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IV. 가치 충돌.


인간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존재와 가치로 기본적으로 나눈다. 표현의 자유는 발언권에 속하여 통상 직접적인 물리적 손상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존재보다는 가치에 속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에 속하여 명예 또한 존재 유지에 중요하게 되기 때문에, 명예훼손도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명예훼손은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에 속하기 때문에 존재로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허위사실 명예훼손은 허위사실의 경우 잘못되었음을 판단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므로 판단하지 없는 것에 해당하여 존재에 속하게 될 수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해 사실이면 대부분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며 손해가 크다 판단되면 민사에서 해결해야 하고, 거짓이면 거짓의 경우가 매우 분명하면서 손해가 크다 판단되면 형사에서 해결한다.



국가보안법. 사회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남아있는 불필요한 법이다. 체제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공산주의 같은 가치도 이해 못하고 인식 탐구에 머무른 비과학적인 사상을 주장할 수가 없다. 북한 체제를 옹호할 수도 없다. 진보를 자칭할 거면 최소한 학문적인 의미로 해야 한다. 민족주의든 뭐든 종교 가치를 근거로 주장하는 게 진보일 수가 없지 않는가? 체제 이해를 하고 나면 분단되어 있다 하더라도 필요 없는 법이다. 체제 이해 후에 불필요한 법을 없애고 체제 합리를 해야 한다.



인간 외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인간 외는 통상 존재에 속하지 않으므로 존재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짐승, 시신, 태아 등이 바로 그렇다.


짐승은 사회 구성원에 속하는지 아닌지 결정하여 판단한다. 짐승은 인간이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존재에 속하지 않음이 분명하여 짐승 보호를 강요하는 것을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시신은 이미 인간이 아니므로 각자 알아서 예우가 적절하다. 시신은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하기 때문에 존재에 속하지 않음이 분명하여 시신 보호를 강요하는 것을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태아는 인간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으므로 가치로 판단하여 결정한다. 태아는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에 속하여 집단에 따라 강제할 수도 있다.



태아가 인간이라면 존재에 속하여 낙태를 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 있다.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면 존재 속하지 않아 낙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 있다. 그런데 태아가 인간인지 아닌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지역에 따라 결정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다.


나는 자아 자각 이후 인간이 된다는 입장에서 자아 자각이 가능한 지적 장애 인간은 인간, 자아 자각이 불가능한 식물 인간이나 태아는 인간이 아니라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낙태는 타당하다 본다. 그러나 시신에게도 예우를 갖추는 것을 고려하면 태아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대상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었던 존재와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에 마땅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 단순히 임신 중지라 부르는 것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일부 낙태를 남성의 자위로 비유하는 인간이 있기도 한데, 생명의 가능성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야 성립된다.


만약 태아가 인간이라면 존재에 속하여 낙태를 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가 있으나, 인간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복지 정책 등이 들어가야 한다. 즉 임신한 여성은 두 명 이상의 복지 비용을 받을 권리가 생기게 된다. 


어떤 존재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것을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타인에게 가치를 강제할 수 없지만 존재는 절대적이므로 타인에게 존재를 강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짐승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해당 짐승을 존재에 속하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러면 그만큼의 정책적 지원을 통한 재정 손실이 발생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짐승에게 주권을 줄 것이 아니면 보호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강제할 수 없다. 이는 가상의 존재도 포함된다. 






(2) 집단


I. 성애 가치.


성애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권장할 수는 있다. 이성애를 권장해야 출산이 이뤄지면서 사회 구조가 유지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분명 출산은 사회 구조 유지에 필수적이나 당장 필수적이지 않기 때문에 강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가치를 제어해야 한다. 


PC가 유행하는 미국에서 신세대는 동성애가 늘었다고 한다. 성애가 취향인 상황에서 동성애 가치가 권장되면서 늘어난 것. 성애는 자유지만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 이성애가 권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존재와 가치가 공존된다. 



자연 상태 + 영양 충족 = 고출산이나 생존이 힘들다.

왕정 + 종교 가치 = 종교 가치에 의해 저출산이나 강제로 출산율을 유지한다.

민주정 + 종교 가치 = 종교 가치에 의해 저출산인데 자유로 출산율도 유지하지 못한다.


현재 한국 저출산은 대략적으로 위와 같은 것으로 발생했다. 자유롭게 되었는데도 종교 가치로 미성년의 성을 터부시하면서 성에 관해 미숙하게 성장하는 것으로 저출산이 발생했다. 현재 20대가 60대보다 성관계를 덜한다고 한다. 수백 년에 걸친 성 터부시의 결과다. 60대는 과거 강제로 이성 관계를 배웠는데 20대는 강제하지 않으면서 이성 관계를 배우지 못했다. 강제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이성 관계도 불가능한 것이 현재 한국이다. 그러니까 출산율이 낮고 이혼율이 높은 것이다.


저출산 대책에 집, 출산 등을 하는데, 그것은 성애 가치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 가치를 제어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성 관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데 거기에 돈을 쏟아봐야 의미가 있겠는가?



성교육에서 성애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자연 계열 지식만 가르치는 것은 그동안 이성 관계는 집단의 의사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발정과 성애는 다르다. 발정은 본인의 쾌락에 주로 가치를 느끼고 성애는 인간 관계에서 쾌락을 포함한 다양한 것을 얻는 것에 가치를 느낀다. 발정을 배제하서도 안 되지만 발정만 가져서도 안 된다. 발정을 배제하면 성애가 성립되지 못하고 발정만 가져서도 성애가 성립되지 못한다. 성적 대상화 반대는 발정만 하는 것을 보고 반대하면서 발정을 필요로 하는 성애도 막아버리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그러면서 이성 관계가 파탄난다. 성적 대상화는 필요하다. 발정만 하는 것이 아닌 성애로 이어지도록 가치를 제어하면 된다.


성적인 것을 언급하기만 하면 더럽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거 자체가 잘못되었다. 성은 죄가 아니다. 더러운 것도 아니고 신성시할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집단이 개인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북한은 극빈으로 저출산이 일어나는데 그것보다 낮은 한국 출산율을 보고도 단순 경제 원인이라 보이는가?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정조관념 등과 같이 개인의 의사로 하는 자유 연애 가치가 굉장히 낮았던 국가였음을 상기하자. 한국 저출산을 보고 정치가 탓을 하는데,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윤리 문제다. 윤리 문제 -> 학문 문제 -> 인식 일탈에 의한 인간 한계였던 것으로 이어진다.


14세 이후 미성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모두 보장. 18세 이전에 모든 개인이 외모를 가꾸는 등을 통해 성적 매력을 키워서 이성 교제와 성관계를 경험한다. 강제할 수 있는 미성년 시기에 체제, 관계, 생산을 모두 알게 해야 한다. 성년이 되고 나서 대부분이 결혼이나 동거를 한다. 결혼과 동거를 하더라도 출산은 강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출산에 의한 사회 진출 불가를 걱정할 것이 아니다. 되려 같이 살면 시간과 자원 효율을 통해 개인이 행복하고 사회가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이건 최소한의 조건이다.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구조를 유지하려면 성애를 막아서는 안된다. 흔히 성년이 되면 알아서 연애하고 결혼한다 말하면서 미성년 시기 꾸미는 것과 성을 터부시하는데, 실제 안하잖는가? 이것은 가치에 의해 나타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윤리는 특정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강요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미성년 성애를 가치 제어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러니까 출산율이 0.7까지 떨어져도 본질적인 원인조차 모른다.


성애를 통해 관계가 이뤄지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존재에 속할 가치를 유지해야 존재에 속하면서 존재 유지가 된다.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부부가 되었다 해서 꾸미는 것을 끝낼 것이 아니라 꾸미면서 서로가 부부 관계에 가치를 느끼게 해야 한다. 


임신이나 출산도 절대적 이익을 얻기 위해 과하게 힘들다고 여성들에게 주입하지 말길 바란다.



저출산에 관해서는 이미 늦었다거나 적정 인구수로 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은 성애 가치 제어 실패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만약 인공 자궁이나 불로불사를 통해 출산율을 높일 필요가 없어지더라도 서로를 사랑하는 인간 관계를 위해 성애 가치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제발 좀 썩은 종교 가치에 휘둘려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가 되자. 


사랑하기 싫거나 어렵거나 늦은 인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서로가 미워하는 사회가 유지되길 바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누구든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사랑하는 상대를 찾길 바란다. 국제 결혼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그렇게 사랑을 하게 되면 서로 미워하는 사회가 유지되는 것을 바라지 않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치는 상대적이기에 강제할 수 없지만, 통치 관점으로 가치를 제어하고 특정 가치를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자유를 훼손하는 것으로 자유 가치를 낮추는 주장이나 이성애를 훼손하는 것으로 이성애 가치를 낮추는 주장 등을 비판할 수 있다. 자유의 경우에는 실제 실행하여 자유 훼손을 하면 존재가 되어 강제로 막을 수 있게 되고, 주장만 하는 경우에는 가능성으로 가치가 되어 자유롭게 비판을 할 수 있게 된다.


과거 가부장제에서는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이란 역할로 권리와 의무가 정해져 있었는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권리 신장이 되면서 그런 고정 역할이 폐지되는 것으로 합리적 기준이 사라지는 바람에 기준 없이 권리만 주장하는 바람에 서로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II. 개인 이익.


모든 집단은 개인주의적이어야 한다.


국가와 같이 모두가 주권을 가지는 것으로 국가 이익이 개인 이익이 되거나 기업과 같이 시장 제도를 통한 계약 관계로 계약 준수가 개인 이익이 되게끔 해야 한다.


집단이 없을 수는 없으나 정당이든 노동 조합이든 집단 이익이 아닌 개인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권리가 보장된다.집단의 손해가 된다 여겨지면 배신자라 말하며 공격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부 고발도 안되는 것이다.






III. 매체 유행.


매체가 유행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체제에 적합한 생활 양식을 갖추도록 가치를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체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가치 제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 의지와 정부의 법, 정책, 제도로 해야 한다.


매체에 대한 제재는 존재를 해치는 거짓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IV. 모범 집단.


모범이 될만한 집단을 통해 다른 집단을 체제에 맞게끔 한다.


모든 개인은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만 집단에 속하면 집단의 흐름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러므로 그렇지 않은 집단이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가치 제어를 한다.






(3) 생산


I. 가치 장악.


윤리 개념 체계로 가치 장악 개념을 이해해보자.


첫째, 모양. 질서와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모양이 질서와 같아 윤리에 의한 생활 양식이 나타난다.


둘째, 성질. 절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절대적 가치에 해당하여 윤리 성질상 가치 강요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윤리 모양인 질서와 윤리 성질인 절대성에 의해 가치를 절대적으로 강요하며 가치로 이뤄진 집단을 위한 희생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전체주의 현상이 나타난다.


셋째, 구조. 계층별로 구조가 이루어져있다. 하나, 특정 집단의 가치 장악. 둘, 장악한 가치의 절대성 주장. 셋, 힘에 의한 사회 선택. 넷, 가치의 사회 장악. 특정 집단이 장악한 절대적 가치가 힘에 의한 사회 선택으로 사회를 장악하게 된 것을 가리켜 윤리라 부른다. 윤리가 된 과정이 구조로 남아 형태를 유지한다. 가치 장악, 가치의 절대성, 사회 선택, 사회 장악 중 하나라도 없어지면 구조가 붕괴한다. 예를 들어 반말 문화가 퍼지면 장유유서 구조가 붕괴하면서 점점 윤리가 아니게 된다.


넷째, 원리. 선과 악이다. 절대적이라 주장하던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만들면서 윤리를 성립시킨다. 선과 악으로 나뉘어 가치가 다른 이를 악으로 규정하고 마녀, 이교도, 빨갱이, 반동, 우월주의자, 차별주의자 등으로 공격한다. 여기서 신비나 학문 등과 같은 특성은 가치의 절대성을 공고히 할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종교 전쟁, 이념 전쟁 등 모든 가치에 의한 분쟁은 윤리 원리상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윤리 질서 안에서는 선과 악의 원리가 굉장히 안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윤리 질서 밖에서는 선과 악의 원리가 불안정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다섯째, 동력. 윤리 이용 인간은 이익 추구를 동력으로 삼고, 윤리 이용 대상은 현실 도피를 동력으로 삼는다. 만능 도깨비 방망이다. 이 가치를 추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하고 이익을 얻고, 그런 말을 듣고 현실 도피한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가치의 절대성은 인식 탐구 결과로 다른 인식 탐구 결과처럼 맞을 때도 있지만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절대적으로 여기던 가치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 때에는 가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억눌러왔다.



현재 인류에서 보편적으로 사회를 장악한 가치인 윤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현재 보편적 종교는 이런 식으로 장악한 가치로 사회 장악을 했다. 사회 질서를 위한 금욕, 희생, 공경 등과 현실 도피를 위한 사후, 천국, 환생 등의 가치를 만들어 장악하고, 장악한 가치가 힘의 의한 사회 선택을 받는 것으로 사회를 장악한다. 종교 가치에 이로운 것을 선이라 부르고 해로운 것을 악이라 부르며 종교 가치에 이로운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여 가치를 절대적으로 만들고 사회 장악을 유지한다. 장악한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여 질서가 되면서 얻은 막대한 이익으로 세를 불려나간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하고 원하는 대로 살게끔 조정한다. 금전적 이익을 포기하고 자선과 같은 가치를 실행하면서 가치 장악과 사회 장악을 유지한다. 그렇게 해서 사회를 지배한다. 


금욕과 희생과 같은 결핍을 윤리로 만들어 강요하는 것으로 천국에 가서 행복하고 싶다는 것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천국과 같이 반드시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믿는 바람에 결핍의 충족이 행복의 원리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존재의 절대성은 존재 가치로 결정되므로 존재에 속하면 존재, 존재에 속하지 않으면 가치다. 그렇게 하여 죽음조차도 가치 제어를 할 수 있게 된다. 일부 불법 종교에서는 죽음 가치를 장악하고 장악한 죽음 가치의 사회 장악으로 사회에 속한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가치 있다 여기고 죽게 만들 수 있다. 



금욕주의, 이타주의, 종교 가치 등 모든 가치는 단순히 사회를 장악한 가치일 뿐이다. 코인을 통해 그것에 대해 알아보자. 코인이 신 기술과 도박 가치 등을 장악하고 장악한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자 유행하게 되었다. 코인을 가치 높다 여기면 이런 식이다. 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현명하고 코인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코인을 윤리로 만들면 이런 식이다. 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선이고 코인을 투자하지 않는 것은 악이다. "코인 투자하는 너는 착하구나" "코인 투자하지 않는 너는 나쁘구나" 선과 악은 이렇듯 특정 가치에 이롭고 해로운 것에 불과하다. 종교 가치는 천국과 연결하여 가치를 높였다면 코인 가치는 높은 수익 실현으로 연결하여 가치를 높일 수가 있다.


가치 장악 개념을 이해하면 가치를 판단하는 입장이 되고 이해하지 못하면 가치에 판단되는 입장이 된다. 가치를 판단하는 입장이 되면 종교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사회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유교 가치는 코인 가치와 다를 바가 없다. 단언한다. 유교 가치가 없더라도 사회 영향은 없고, 되려 없어야 체제 합리가 되면서 보다 많은 개인이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가치 장악 개념을 이해하면 어떤 식으로 생산을 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이 가치 있다 여기는 것에 의해 수요가 나타나므로 시장의 숫자는 사회를 장악한 가치의 거래를 수치화한 것이다. 영국 골뱅이 어획은 오로지 한국인을 위해서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골뱅이라는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여 가치가 높아 팔리고, 영국에서는 골뱅이라는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지 못하여 가치가 낮아 팔리지 않는다. 


이익을 얻기 위한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거래를 통해 숫자가 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다. 사회를 장악한 가치와 장악해야 할 가치와 장악한 가치의 사회 장악 방법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는 새롭게 가치를 만들어 장악한 후에 장악한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게 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는 가치의 상대성이 적용되므로 호불호까지는 가능하나 일부를 제외하면 윤리처럼 선과 악으로 나뉜 극단적인 분쟁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시장에서 가치를 장악하면 품목에 따라 독과점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시장 구조 유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주권자가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시장 경쟁 참여자는 스포츠 경기 선수와 같이 규칙 내에서 승리라는 본인 이익만을 위해야 한다. 그래야 스포츠 경기가 성립되듯이 그래야 시장 경쟁이 성립된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시장에서의 가치 장악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스마트폰. 애플의 아이폰이 엄청나게 잘 팔리는 것은, 애플이 장악한 가치가 사회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인기 있는 것은 10대들의 막연한 선망이라는 삼성 임원의 진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막연한 선망이 나타난 것은 애플이 10대가 좋아하는 가치를 장악한 상태기 때문이다. 혁신, 명품, 예술, 변화, 성능, 공유 등의 10대가 좋아하는 가치를 장악하여 10대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 이런 것을 단지 가격과 성능 가치로만 맞서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하다. 쿠팡이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고 빠른 속도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에 맞게끔 배송 가치를 장악하고나서 유통을 장악해가고 있는 것과 같이, 대상이 좋아하는 가치를 장악해야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애플이 장악한 가치에 맞서는 것은 어렵다. 혁신은 스마트폰의 개념을 바꿀 수 있을 정도가 있어야 가치 장악이 가능하다. 명품이나 예술은 10대를 겨냥한 제품을 만들어도 따라가기 급급할 것이다. 성능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당장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애플의 독자적인 운영 체제 공유에 맞서는 것은 타 기업과 연계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외의 가치를 장악해야 한다. 삼성 임원은 고등학생이 되면 갤럭시를 쓸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것을 실현시키면 된다. 바로 장래희망이다. 최근 전문직 선호가 늘어나면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약 20%가 의학 계열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전문성이다. 이미 애플이 장악한 가치보다는 전문성 가치 장악에 투자한다. 전문직을 비롯해 다양한 전문가들에 특화된 스마트폰을 설계한다. 아이돌이 무대에서 아이폰을 썼던 것과 같이 전문가가 드라마와 영화에서 갤럭시를 쓰도록 한다. 현실에서도 전문가들이 절반 이상 쓰도록 유도한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뿌리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설문 조사하여 전문가에 최적화하라는 것이다. 전문가에게 홍보용으로 뿌려봐야 가치 높다 여기지 않으면 안 쓴다. 10대가 좋아하는 가치보다는 전문가가 좋아하는 가치를 장악하는 것이 보다 쉬울 거라 본다. 그렇게 하여 전문가 가치를 장악하면 사회 역할에 대해 고민할 때쯤인 고등학생부터 갤럭시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사회에 진출하면 새로운 인간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전문가 그룹에 속하게 되면 결국 그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 식으로 아이폰은 막연한 선망으로 만들고 갤럭시는 현실적인 동경으로 만든다. 미국 시장 조사에 따르면 10대 스마트폰 비율이 아이폰은 약 83%, 갤럭시는 약 10%로 격차가 심한 상태라고 한다. 그것과 별개로 환상과 현실과 같이 개념적으로 대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광고는 디스가 되는 모양인데, 그것은 해서는 안 된다. 애플을 디스한다는 것은 애플의 가치를 좋아하는 인간을 디스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수 있다. 디스하는 것이 아닌 대립해야 한다. 초등학생은 아이폰을 쓰고 전문가는 갤럭시를 쓰며 어울리는 광고를 내야 한다. 하하호호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등학생이 되면 갤럭시를 쓰는 것을 실현시킨다.



둘째, K-pop. 콘텐츠 사업에서 게임이 많은 돈을 번다고 하는데, 가치 장악으로 보면 그런 식으로 볼 수 없다. 한국 게임은 도박 등의 부정적 가치를 장악하였다면 K-pop은 아름다움 등의 긍정적 가치를 장악했다. 이런 가치는 단순히 시장에서 오가는 숫자로 계산할 수 없다. 성 터부시에 의해 발생한 성애 결핍 현상을 바탕으로 K-pop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면서 K-pop은 다소 운이 좋았다. 서양이 PC주의로 보편적 미의 가치를 버리면서 붕 뜬 미의 가치를 K-pop이 장악할 수가 있었다. 그것으로 세계 유행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전부 장악한 것은 아니어서 기피되는 일이 많다. K-pop이 미의 가치를 장악하면서 K-pop이 속한 한국도 아름다운 국가로 인식되는 일이 있다. 해외에서 잘생긴 사람을 보면 한국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방면의 분야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 이걸 시장 숫자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환상을 가진 인간이 한국에 관광와서 환상 깨고 가는 바람에 가치 손실이 일어나기도 하고 있다. K-pop이 어떻게 성공한 것인지 확실히 파악하고 가치 장악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게임. NC소프트의 리니지가 지금까지 많은 돈을 벌다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장악한 가치가 사회 장악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니지는 과거 사회를 장악했던 지배, 복종, 통제 등의 가치를 공성전과 PK와 사냥터 통제 등으로 장악하면서 가치를 높였다. 높은 과금과 도박성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장악한 가치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다 점점 자유롭고 평등하며 공정한 사회가 되면서 불공정한 지배, 복종, 통제 등의 가치가 폭락하게 되면서 그런 가치를 장악했던 리니지도 같이 폭락하게 된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불공정한 리니지의 경쟁보다 공정한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쟁이 더 즐겁다는 것이다. 리니지의 경쟁이 즐겁지 않으니까 그에 따라 돈을 쓰지 않으면서 높은 과금과 도박성도 성립될 수 없게 된다. 반면 닌텐도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닌텐도 게임이 가족, 포근함, 친근함, 사랑스러움 등의 가치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 예술은 유교 가치에 의해 가공하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면서 가공되지 않은 채 시장에 나오고 있는 바람에 외면되고 있다. 해외 전통 예술이 성공한 것은 그만큼 가공을 잘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가공 없이 우리 예술이 우수하니까 성공할 거란 생각은 지나치게 오만하다. 그러니까 자국민조차 한국 전통 예술에 관심이 적은 것이다. 닌자와 사무라이가 어떻게 성공했는가? 폭력 상품화로 성공했다. 콘텐츠에 등장하는 닌자는 이미 마법의 영역이다. 그것으로 신비 가치를 장악했다. K-pop이 어떻게 성공했는가? 성 상품화로 성공했다. 유사 연애 사업이란 말을 듣고 있다. 그것으로 미의 가치를 장악했다. 한국 전통 예술은 이런 것이 가능하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웃음을 짓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출 수 있는가? 아무런 가공 없이 이러한 것은 너무나도 무모하다. 성공하려면 가공해야 한다.


축구 가치의 사회 장악은 영국의 영향이 크나, 축구 자체가 기본은 쉬운데 응용은 복잡하여 접근이 쉬우면서도 깊게 파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고려하여 가치 장악을 해야 한다.


가치 장악 개념을 모르면 눈 앞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가치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보통 관광지의 바가지다. 눈 앞의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관광지의 가치를 포기한다. 반대로 가치를 장악하기 위해 금전적 이익을 포기하는 일도 있다. 보통 명품 브랜드의 브랜드 가치 관리다. 가치를 장악하기 위해 눈 앞의 금전적 이익을 포기한다.






II. 창의 발상.


흔히 세상에 없던 것을 발상하는 인간을 가리켜 천재라 부른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창의 발상 레벨을 올리는 것을 체계화하지 못하여 새로운 발상을 선천적 재능에만 기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창의 발상은 훈련을 통해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그것을 체계화해야 한다.


창의 발상은 기본적으로 유동 자아와 유동 관념이 유리하다. 고정 자아는 ‘나’가 무엇인지 명확한 상태를 말하고 유동 자아는 ‘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나’가 무엇인지 명확하려면 고정 관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동 자아가 유동 관념이 많게 된다. 유동 자아는 2차 성징 전후로 관념이 충돌하여 자아가 불안정한 사춘기 시기를 자아 나이로 여겨야 쉽다. 고정 관념은 대상에 대한 발상이 조립된 상태를 말하고 유동 관념은 대상에 대한 발상이 해체된 상태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 고정 관념은 조립된 블록이고 유동 관념은 블록 부품들이다. 조립된 블록을 다시 해체해서 조립하는 것과 블록 부품을 그대로 조립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쉬운 것인지는 명확할 것이다. 


고정 자아라 하더라도 유동 관념을 가질 수 있다. 보통 잘 모르는 것들이 그렇다. 고정 관념이라도 새로운 발상이 가능하다. 단지 하나씩 해체하는 것이 힘들 뿐이다.



자연 계열이 발전할수록 지식의 양이 많아짐에 따라 지식을 암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전공자는 교수가 말한 말 그대로 외워서 자세히 모르고 비전공자는 검색으로 알아서 자세히 안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고 있을 정도로 그냥 듣는 지식 생각 없이 그대로 흡수만 하고 있다. 그와 같이 현재 주입식 교육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 자체를 못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진화는 일반적으로 치사율이 높아지면 전파율이 낮아지고, 전파율이 높아지면 치사율이 낮다는 인식이 있다. 그것은 치사율이 높으면 전파되기 전에 숙주가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복기가 길면 치사율이 높아도 전파율이 높을 수가 있다. 성질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론이다. 진화는 랜덤으로 결정되고, 결정된 것 중에서 자연 선택으로 살아남는다. 그것을 종합하면 바이러스가 잠복기가 길면서 치사율도 높고 전파율도 높은 진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이것을 떠올리는 인간이 드물다. 바이러스 성질에 대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치사율이 높으면 전파율이 낮아진다는 공식을 암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 암기로는 발상 자체가 어려울 수 있게 된다.


통상 영재들은 지식 흡수를 빠르게 하는 것으로 재능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많은 지식을 흡수한다 하더라도 지식 생산자 입장에서는 쉬운 길에 해당하게 된다. 학자가 깔아둔 길 그대로 걷는 것을 어렵다 할 수 없다.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지식 소비자 입장에서 어려운 길에 해당한다. 그렇게 깔아둔 길을 그대로 걸으면서 성장한 인간은 길이 끝날 때 새로운 길을 깔 줄 모르게 된다. 쉬운 지식을 창의 발상해본 적이 없으니 어려운 지식도 창의 발상하기 어렵다. 지식 소비자로서 될 수 있으나 지식 생산자는 되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서 커리어 하이는 입시 천재에 머무를 수도 있게 된다.


수능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지식 소비자용 교육을 절대적으로 만든다는 것에 있다. 지식 생산자용 교육과 지식 소비자용 교육은 달라야 한다. 


지식 소비자용 교육을 절대시하니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도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인문 계열은 내가 했던 방식을 설명하겠다. 특정 대상의 본질을 보고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를 하면 된다. 보편 이치는 자연 계열의 존재 증명이고 체제 속에서 이치는 체제 가치다. 탐구는 보편 이치를 통해 만물에 대해 생각하면 된다. 주장은 사회 체제 내에서 할 것이면 자연 계열의 존재 증명과 체제 가치를 기초로 하면 된다.


특정 주제에 대해 탐구할 때에는 평소 모르는 것이 좋다. 거기서 사전적 정의 또는 기초 자료까지만 보고 개념을 블록 부품처럼 받아드리고 다른 비슷한 성질을 가진 개념들을 발상하면서 조립하는 것으로 논리적인 창의 발상을 한다. 중요한 것은 창의 발상이 발상자의 자아 의식 의지가 모르는 것이면 된다는 것이다. 설령 기억에 있거나 사회에 있던 것이라도 상관 없다. 모르는 것을 논리적으로 발상하면서 창의 발상 레벨이 오른다.


자연 계열은 존재 탐구를 해놨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 탐구했던 방식을 따라가면 될 것이다. 과거 존재 탐구를 통한 창의 발상 시기의 기초 지식만 가지고 그들이 창의 발상했던 것을 해보면 될 것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없던 시기의 뉴턴이 가지고 있던 지식만 가지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상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창의 발상 훈련이기 때문에 똑같을 필요는 없고 반드시 맞을 필요도 없다. 창의 발상해보고 실제 법칙과 비교해보면서 본인의 창의 발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파악하면 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는 기초든 응용이든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런데 기초적인 지식도 창의 발상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어려운 것을 창의 발상을 하기가 너무 어렵게 된다. 현재 자연 계열 영재들은 지식 암기 및 이해 후 빠르게 진학하는데 그것을 바꿔야 한다. 늦게 진학하되 하나씩 직접 길을 개척해야 한다. 아마 이런 식의 교육 과정을 거치면 진학 자체는 느려지나 성장 후에 새로운 발상은 수월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창의 발상은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므로 평가가 까다롭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모르는 척 창의 발상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가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어떤 근거로 창의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를 평가하면 된다. 당사자도 속이지 않아야 본인 능력이 키워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정 평가하기 어렵거나 이미 대부분 자연 계열의 지식을 암기한 상태라면 인문 계열의 방식으로 창의 발상 레벨 올리는 것을 해봐도 좋을 것이다. 


창의 발상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과 같다. 새로운 길은 이미 있는 단정하고 깨끗한 길에 비해 조잡하고 거칠 수 있다. 그것을 고려하여 초기 발상이 기존 지식에 비해 엉망인 것에 실망하고 발상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아무런 길을 개척하라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치를 기초로 해야 한다. 이치는 자연 계열이 존재 탐구하여 많이 만들어놨으므로 그걸 참고하면 된다.


이렇게 모르는 것을 발상하는 훈련을 통해 창의 발상 능력을 키우는 것을 체계화하여 교육 과정으로 만든다. 그러면 지식 생산자를 위한 교육 과정과 지식 소비자를 위한 교육 과정으로 명확히 분리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식 생산자의 고뇌는 그 활동이 도박에 가깝다는 것에 있다. 성공할 가능성이 안정적이지 않고, 실패하면 그 리스크를 개인이 짊어지는 일이 있다. 연구자는 투자자가 짊어지기도 하지만, 인생 자체를 도박같이 던졌을 때의 리스크는 온전히 개인이 짊어진다. 앞으로 점점 새로운 발상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을 고려하면 지식 생산을 도전하는 인간의 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즉 새로운 발상에 대한 유무형적 가치를 높이고, 복지를 통해 도전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사회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가치 생산이 늘어날 것이다.






III. 생산 환경.


사회 역할 중 기피되는 역할이 있다. 이를 보통 시장 원리에 따라 금전적 보상으로 기피되는 역할을 맡게 유도한다. 그러나 그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외과 및 소아과 등과 같은 기피가 보통 그렇다. 다른 과에 비해 힘든데 돈도 안 된다. 그럴 때에는 보통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 옳다. 공급을 늘리면 된다. 그것과 별개로 가치를 추가할 수 있다. 바로 명예다. 


특수 부대와 같이 특수 의사로 따로 구분해야 한다. 특수 부대는 다른 부대보다 좀 더 벌 수 있는 수단이 있다 해도 큰 차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유지되는 것은 거기에 명예가 있기 때문이다. 명예가 있어도 전역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이름만 바꾸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는 것처럼 보여도 특수 부대 가치와 연동되면서 특수 의사 명예도 다른 의사에 비해 높아지게 될 수 있다. 다른 의사는 이것이 평등하지 않다며 불만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일반 부대가 특수 부대에 평등하지 않다며 불만을 갖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식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이들을 명예롭게 여기는 사회가 되도록 가치 제어를 해야 한다.


지식과 손재주는 다른 영역이므로 진단 특화와 수술 특화로 나눠 협업하게 한다면, 수술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경제 생산 활동 [경제]


외부 영업으로 일하는 인간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해고된 사건이 있다. 몰래 촬영했단 것이 지적된 바가 있다. 개인 정보가 중요하게 될 수록 외부에서 일하는 인간이 어떻게 일하는지 아는 것이 까다롭게 된다. 그에 따라 영업은 본인의 개인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여 팔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본인 GPS 동선을 공개하면 그에 따른 일일 보너스를 준다. 강제가 안되면 가치 제어로 해야 한다.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이익을 얻고 싶은 인간만 하면 된다. 그러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이익이란 풍조가 퍼지게 한다. 그렇게 하여 생산자 태도를 바꾼다. 일일 보너스란 이름의 가치 생산 파악 비용이라 할 수 있다. 


장기 가치 생산자가 고용 안정에 의해 태만을 저지르는 일로 신입이 과도한 일을 하게 되는 부당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도 종교 가치에 의한 것. 노동 유연성이 필요하다. 해고가 어렵다면 급여가 달라져야 한다. 역할 수행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IV. 부정 가치.


개그에서 비웃음은 부정 가치로 판단되어 필요함에도 사장되고 있다. 불편하단 이유로 이것저것 다 막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다. 타인의 멍청함을 비웃기보다 개그에서 멍청함을 비웃으며 즐거운 것이 낫다. 개그가 부정 가치를 쓰더라도 특정한 기준을 통해 허용되어야 한다. 


비웃는 대상은 본인의 결점, 성공인의 실수, 창작물 등장 인물로 세 가지 정도가 있다. 본인의 결점은 아주 일반적인 개그 소재다. 외모 등을 통해 비웃음을 사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많은 비웃음 대상 중 성공한 인간의 실수를 소재로 삼기 적합하다. 성공한 인간의 실수를 비웃으면서도 성공했기 때문에 타격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개그 소재로 쓸 것을 허락한 인간에 한정 해야 한다. 창작물 등장 인물은 보통 커뮤니티 밈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이것을 특정 드라마나 영화 등과 같은 창작물과 연계해서 창작물 내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는 것으로 캐릭터를 비웃게 만든다. 개그는 창작물을 소재로 쓸 수 있고, 창작물은 개그를 통해 홍보할 수 있다.






(4) 소비


I. 가치 권장.


사회와 체제에 이로운 가치를 권장한다.


취미 가치 제어, 술 담배 가치 제어 등.



속도 준수 도장.


과속을 하는 것을 막으려면 과속을 하는 인간을 보다 강하게 처벌하기 보다는 가치 제어를 하여 규정 속도를 준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교 근처 보호 구역과 같이 속도를 준수해야 하는 곳에 차량이 속도를 준수하는 것이 CCTV로 촬영되어 판단되면, 자동적으로 가상의 도장 모음집에 속도 준수 도장을 찍는다. 한번 속도 준수할 때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서 운전 면허 상세 설명에 업적과 같이 넣는다. 


도장이 쌓이면 그만큼의 특정한 혜택을 준다.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은 기관에서 몇명을 초대하여 관계자가 직접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고 칭찬한다. 학교 축제 같은 곳에서 초대해서 칭찬해도 좋을 것이다. 덕분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과 같이.


의도적으로 도장을 모으기 위해 해당 보호 구역을 반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고, 속도 준수를 하지 않으면 그동안 모은 도장 일부를 지운다. 



부동산 시장.


부동산 가격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부동산 소유자가 돈을 쓸 때가 마땅치 않아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서 시장 원리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도 하면서 돈을 쓸 때가 있어야 부동산을 사고 팔고 하면서 시장 원리가 작동하는데, 이미 부동산을 가진 소유자는 정 급할 때가 아니면 팔지 않는다. 굳이 필요도 없는 부동산을 마치 자동차나 예술품 보관하듯 그냥 보관해버린다. 다른 물건과 달리 부동산은 월세도 받을 수 있으므로 그런 경향은 더 심화된다. 그런 상태에서 정부에서 시장을 동작시키기 위해 새롭게 부동산 공급을 늘리는데,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망가진 시장에 부동산을 공급하다 보니, 시장 참여자는 부동산을 코인이나 예술품을 투기하듯 구매하면서 일부 지역은 가격이 오르고 다른 지역도 가격이 크게 내려가지 않는 중이다.


부동산은 망가진 시장 원리를 되돌리는 것이 우선된다. 즉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인간이 돈을 쓰기 위해 부동산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단순히 투기 상품의 수가 늘어날 뿐으로 될 수 있다. 집이 없는 인간만을 대상으로 해도 망가진 시장에서 과도하게 비싼 부동산을 구매하기 위해 대출을 하게 되면서 가계 대출 비율이 급등한다. 


시장에 내놓게 하려면 보유세는 늘리고 거래세는 줄인다. 그러나 보유세가 지나치게 높으면 시장 수요가 없을 수 있고, 수요에 따라 싸게 팔바에는 월세를 높여 보유세에 맞추겠다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제동이 걸리는 것이 바로 월세. 특히 자영업은 월세에 얽매이게 된다. 즉 거리에 유동성을 넣는다. 부동산 소유주가 월세를 높이면 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유동성을 넣는다. 간단히 말해 계획 상업 거리를 몇 군데 설계한다. 교통과 홍보만 갖춰지면 웬만하면 유행 거리를 설계할 수 있다. 땅값이 싼 곳에 유행 거리를 만든다. 그런데 교통이 어렵다. 교통 중심지면 이미 유행 거리로 월세가 비싸다.


건물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푸드 트럭을 확장하여 관리한다. 인간이 관광을 하는 것은 거기에 일정의 환상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면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해 자영업을 주기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서커스와 같이. 주기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월세 때문에 부동산 소유주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강제할 수는 없으므로 지자체 축제 형식처럼 한다. 단지 축제를 매일 한다. 과거 서커스가 순회 공연하듯이. 일상적 외식은 배달식으로 하여 자영업의 위치를 크게 중요하게 하지 않고 특별한 외식은 축제식으로 하여 위치를 크게 중요하게 하지 않는다. 


월세 인질 때문에 부동산 시장을 제어하지 못했으므로 월세를 가치 제어하는 것이 타당하다.






II. 효율 증가.


효율이 증가하는 가치를 권장하는 가치 제어를 한다.


스마트폰 c타입과 같은 규격화는 효율적이어서 그것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터법 같은 합리적인 기준은 효율적이어서 그것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찰제는 지불할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기 쉬워 거래가 피로하지 않아 에너지 효율이 높게 된다. 반면 팁은 지불 비용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어 피곤하여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규격화는 자유를 침해한다 생각할 수 있는데, 인간은 효율적인 생활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 비효율적인 자유를 원한다면 배나 비행기를 타지 말고 걸으면 된다. 






III. 효율 감소.


효율이 감소하는 가치를 권장하지 않는 가치 제어를 한다. 도박, 술, 담배, 마약 등 대부분 가능할 것이다.  


개에게 주권을 줄 수 없으므로 존재로 여기고 개 식용을 막을 수 없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개나 고양이의 가치는 다른 종의 짐승과 같이 상대적이게 된다. 만약 특정 개인이 개와 같이 특정 종을 아낀다면 강제할 것이 아니라 가치 제어해야 한다. 개 식용은 어차피 대부분 신세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므로 냅두면 사라질 것이다. 







IV. 지식 소비.


인식 탐구 지식 소비를 하지 않도록 가치 제어 해야 한다. 역사가 주로 인식 탐구에 의해 의견 차이가 심한 편이다. 특히 한국은 식민 시절이 있어 일제 강점기에 대한 인식 탐구에 의한 의견 차이가 심하다. 그에 따라 그 당시를 존재 탐구해보도록 하겠다.


일제 강점기 시기를 비판하는 것은 현재 가치를 근거로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체제에 맞는 가치를 이치로 삼아 탐구해야 한다. 주권을 기초로 일제 강점기에 대해 알아보겠다.


일본 제국의 침략은 친일파가 조선이라는 조선 왕조의 재산을 일본 제국에 파는 것으로 성립되었다. [친일파: 2. 일제 강점기에, 일제와 야합하여 그들의 침략 · 약탈 정책을 지지 · 옹호하여 추종한 무리.] 조선을 팔아넘긴 친일파는 일본 제국 귀족이 되고 조선 왕가는 왕공족이 되어 떵떵거리고 살았다. 이것을 보고 친일파를 매국노라 비난한다. 그러나 매국 개념은 대부분 개인에게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대부분 개인은 주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족 운운은 애초에 논외다. 같은 민족이면 주권이 없어도 제 국가처럼 여겨야 하나? 말도 안 된다. 그러므로 매국이 아닌 다른 개념이 적용되게 된다. 


바로 인신 매매다. 당시 친일파도 조선 왕조도 일본 제국도 개인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주권이 없던 조선인은 조선이라는 조선 왕조의 재산의 일부가 되어 일본 제국에 같이 팔려나갔다. 조선은 윤리를 통해 왕을 부모처럼 여기게 만들고 부모를 왕처럼 여기게 만들어 질서를 유지했다. 같은 민족은 같은 가족과도 같이 만들었다. 그렇기에 당시 주권이 없었던 개인이 본인의 일처럼 분노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커녕 인간으로도 여기지 않았기에 친일파든 조선 왕조든 일본 제국이든 개인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면 가족처럼 대하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 이 일련의 과정은 지배자에 의한 피지배자 인신 매매에 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을 비판할 때에는 매국이 아닌 인신 매매로 비판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의 사과는 침략이 아닌 인신 매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본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 국가라면 당시 일본 제국이 개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합병했으며, 합병 이후에도 선거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사과의 필요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이것의 사과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한국 정부는 당시 모든 조선 개인을 대변할 수 없다. 인신 매매 인식도 없었을 뿐더러 한국인이 되기 전에 죽은 조선인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착취가 있다 없다 이전에 일본이 인신 매매에 대한 사과를 했다 하기 어렵다. 


인신 매매에 대해서는 북한 예시로 알기 쉬울 것이다. 북한 타국파가 타국 정부에 북한 공산정의 재산인 북한을 팔아넘겼을 때, 주권이 없던 북한 주민은 북한 타국파를 매국노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한국이 북한을 사들인다면 한국 정부는 북한 주민의 의사를 물어야 인신 매매범이 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이다. 


한국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 국가라면 민족이란 집단이 아닌 민족에서 벗어난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봐야 하고, 일본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 국가라면 당시 개인을 무시하고 인신 매매했던 개인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제국주의 시대의 모든 행동은 국가를 초월해 개인에게 사과하고 마무리 짓고 나아가야 한다. 


한국 정부는 1919년 시작되었고 한국은 보통 선거 시작인 1948 5월 10일에 시작되었다. 대부분 조선인은 한국의 보통 선거 시작인 1948년 5월 10일부터 주권을 얻는 것으로 근대화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근대화가 되었다 하는 주장도 있는데, 개인으로 보면 주권이 있는 순간부터 근대화가 되었다 할 수 있다. 매국 개념도 주권이 있는 순간부터 성립되게 된다. 현재 한국을 팔아넘기는 행위는 주권을 가진 개인에게 있어 매국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 시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었으나 개인 주권을 기준으로 한 관점은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만약 이 관점이라면 한국과 일본의 합리적인 사과와 수용이 가능할 것이다. 왕정과 민주정은 완전히 다른 체제임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전혀 다른 사회다. 조선 왕조를 바라볼 때 한국 정부를 보듯이 보는 것은 그 차이를 분간하지 않은 것에 해당한다. 조선 왕조를 한국 정부와 같이 바라보는 것을 그만해야 한다. 주권 차이로 아예 다른 가정이다.






(5) 관계


I. 관계 가치.


가치 제어에서 법은 기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에 속하는 것을 다룬다. 사회와 체제 구조에 속하는 생명권, 자유권, 주권의 수단이나 그 외에 사회와 체제에 무관한 것이 그러하다. 거기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당장 대응이 가능한 것을 다룬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점점 공법의 영역은 축소되고 사법의 영역이 커지게 된다. 개인이 대응 가능한 것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민사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보다 원활한 인간 관계가 성립되려면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주장하고, 그 주장이 타당한지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호사 비용이 높고 절차가 복잡하고 지식이 어려워서 민사 활성화가 되지 못하여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개입하게 되고 있다. 국가 개입이 어려울 경우에는 언론에 제보하고 있다.


민사 활성화가 되지 못한 것을 고려하여 민사는 경중에 따라 비용과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으나 부족한 상태다. 그렇기에 AI 활용에 대한 의견도 적극적으로 교류되고 있다. 앞으로는 민사 당사자가 사건 설명을 하고 의견을 첨부하면 그에 따라 AI가 자동적으로 소장을 작성하고 AI가 그에 대해 상세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설계하고, 그에 대해 간단히 변호사가 한번 확인하는 일도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민사가 활성화되어 사소한 것까지 제삼자의 공정한 시선에서 체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면, 가정 내에서 싸움이나 학대 등으로 가출이나 자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이타주의로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되어버리면 끝나지만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이기주의로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되면 안되기 때문에 누구의 이익 추구가 정당한지 모든 영역에서 참고할 수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II. 고정 인식.


선행에 대한 인식을 악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선행을 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사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타인을 도왔음에도 잘못되었다고 공격받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은 대체로 감안하여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보통 인간은 수사 기관에 출입하는 것 자체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선이라 여기는 것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누군가 옳다고 여긴 것에 대해 전문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수사 기관은 기본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있거나 저지르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옳다 여긴 것이나 무고한 이들을 조사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옳다 여긴 인간을 강하게 압박하기가 어렵고, 무고한 이들은 부당한 강압 조사에 시달릴 수 있다. 수사 기관 또한 아무리 무죄추정원칙이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잘못했다 가정하고 무례하게 대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애초에 다른 방식으로 조사하는 수사 기관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상대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가정으로 접근하여 수사하는 기관을 발족한다. 친절 수사 기관이다. 기부 단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여 접근한다음 제대로 하고 있으면 국가 차원에서 명예를 준다. 인간을 도왔으나 성추행 등으로 신고된 인간도 좋은 일을 했다고 가정하여 접근한다음 제대로 했으면 국가 차원에서 명예를 준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일반 수사 기관으로 전환하여 처리한다. 


처음부터 칭찬을 하기 위한 기관이기 때문에 수사 받는 것을 꺼려하지 않을 확률이 있다. 설령 잘못을 저질렀어도 칭찬을 하기 위해 수사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드러내기가 어렵게 된다. 친절을 행한 다음 그것이 공익에 부합하면 적절한 보상이 지급되기 때문에 친절을 기쁘게 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친절 악용 또한 판단하여 수사기관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친절을 받는 사람도 안전해질 수 있다


이익을 얻기 위해 친절을 조작한 것을 신고할 수 있는데, 애초에 보상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하는 이들이 드물고, 하더라도 수사를 통해 조작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입장에서 친절이 이익이기 때문에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이기적 친절이다. 사회 입장에서 친절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친절에 보상을 한다. 이기적 보상이다. 친절을 수사하여 체제에 적합한 친절을 행하는 것을 권장하는 가치 제어를 한다. 


수사 기관은 수사 대상을 대할 때 태도를 정하기 까다로울 때가 있는데, 이처럼 친절을 따로 수사한다면 태도를 정하기가 다소 수월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여 친절 수사기관은 친절 악용 유무를 판단하고, 친절을 행한 이가 손해가 없도록 만드는 구조를 만든다.


기존 수사기관에서 할 수 있는데, 검찰과 경찰에 관련되는 것을 꺼려할 수 있으므로 다른 기관을 하나 만드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복지 명분으로 삼아서 보건 복지부에서 관할해도 나쁠 것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 칭찬하는 태도를 갖춘 검찰이나 경찰이 파견되면 될 것이다.






III. 사적 평등.


사적인 관계를 말한다. 세세한 것까지 강제할 수는 없지만 가치 제어를 통해 유도할 수는 있다.


역할 귀천.


모든 개인은 주권자로서 대등함은 존재에 속하고 직업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가치에 속하므로, 역할에 대해 가치 판단하여 귀하고 천하다 여길 수 있지만 그 역할을 수행하는 개인을 대등하다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역할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가치로 할 수 있지만 인간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존재로 할 수 없다. 무엇이 존재에 속하고 무엇이 가치에 속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역할주의.


상대가 누구든 역할을 수행하면 존중한다. 게임 내에서 익숙한 가치관이다. 그것을 활용하여 역할을 존중하는 가치 판단이 가능하도록 가치 제어를 할 수 있다.


역할 수행 존중 개념이 있는 인간에게는 연령, 인종, 성별 등 모든 영역에서 가치 제어가 가능할 것이다.






IV. 가능 여부.


지금까지 가능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리 처벌하는 일이 있었다. 짐승 살해를 저질렀다고 인간 살해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처벌한다. 범죄 창작물을 즐겼다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처벌한다. 이는 가능성이 판단이 가능하여 가치의 영역인 것을 고려하면 지극히 부당하다 할 수 있다. 형법은 가능성이 아닌 실제 범죄가 나타날 때에 등장해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던 것이 바로 독재 정권의 간첩 사냥과 검열 정권의 카톡 검열이다.


창작물에 칼이나 성 검열하는 것도 가능성을 보고 개인의 창작 권리를 억압하는 것으로 부당하다 할 수 있다. 


사건사고만 일어나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막기만 하는데, 그것을 은행에서 물가 제어하는 것으로 비유하면, 금리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 가격을 무조건 낮추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치의 영역을 금지할수록 가치의 상대성이 훼손되게 된다. 






4) 재가공


(1) 범죄


개인 관점이면 개인의 잘못은 개인의 책임이지만, 통치 관점으로는 개인이 아닌 사회 책임이고, 해결책이 없다면 학문 책임이다. 기본적으로 책임은 사회에 있고 개인의 잘못은 사회와 체제 구조에 해로운 정도에 따라 강제력이 발생한 것에 의해 잘못한 개인은 일련의 교정 절차를 겪게 된다. 사회가 책임을 지기 때문에 교화 절차 비용을 사회가 지불하는 것이다. 반성 같은 주관적 관점은 얼마든지 속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미가 크지 않다. 판사 앞에서 거짓 눈물을 보이고 판사 뒤에서 속은 판사를 비웃던 것이 발각된 적이 있을 정도다. 객관적 관점으로 판단 가능한 전과, 동기, 행위, 손익, 합의 등으로 보면 된다. 선고한 형벌과 별개로 교정 과정에서 이른 교정이 성공하면 빠르게 출소해도 되므로 반성 여부는 법정이 아닌 교정 과정에서 길게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 만약 반성을 주로 교정 과정에서 판단한다면 교정 과정에서 반성을 판단할 판사가 필요할 것이다. [교정: 2. 교도소나 소년원 따위에서 재소자의 잘못된 품성이나 행동을 바로잡음.]


근본적으로 잘못된 품성이나 행동을 바로잡으려면 재가공을 통해 본질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가치로 교정되는 것은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보편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치가 달라 본인이 한 행위를 잘못이라 여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누군가가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참살했다. 이 때 특정 누군가는 그 행위를 잘못으로 여길 것인가? 



가치로 교정되는 것은 비슷한 가치에서나 가능할 수 있게 된다. 가치로 교정하려 해왔기 때문에 교정이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 실질적으로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는 재가공 절차가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고 어려우면 교정 시설에서 일하는 인간이 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쉬워야 한다. 대부분 인간은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에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인식 변화를 통해 무의식을 바꾸면 된다.


첫째, 개명과 호명 절차. 개명은 반드시 이뤄지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든다고 하면서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강제하기는 어려우므로 형기를 미끼로 삼아야 한다. 잘 재가공되면 기존에 정해진 형기보다 빠르게 교정될 수 있으므로 문제 없다. 호명은 반드시 이뤄지는 것이 좋다. 개명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개명과 꾸준한 호명만으로도 일반 인간은 상당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둘째, 학교와 유사한 환경 구축. 인간은 본인 경험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경험과 비슷한 환경에 속하면 경험했던 시기와 비슷한 상태로 착각할 수 있다. 학교와 비슷하게 구축하여 학생 때로 되돌아가 재가공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본 과정과 같은 과정을 간소하게 한다. 초등학생 수준의 국어, 산수, 체제, 관계, 생산 등을 교육한다. 


셋째, 매일 일기. 새로운 인간이 된 상태를 꾸준히 기록하면서 본인의 변화를 세세하게 자각하게 한다. 초등학생 일기 수준이면 되므로 난이도 문제는 걱정 없다. 간단히 말해 무슨 밥을 먹었다, 언제 잠을 잤다, 무엇과 싸웠다, 이 정도면 된다. 이 또한 강제하기는 어려우므로 형기나 식사 등을 미끼로 삼아 유도한다. 매일 일기쓰면 형기가 줄어든다거나 같이 말이다. 그렇게 하여 변화를 고착시키는 것으로 재가공을 마친다.


대체로 일반 인간은 이 정도면 재가공이 가능하다.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니냐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을 고려하면 단순한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인간에 따라 시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본질이 바뀌는 것을 꺼려할 수 있으므로 교정 시설의 역할을 강조하며 당연한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일반 인간이 아닐 경우에는 지능 보조 기구와 같은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일반 인간과 비슷한 상태로 만들고 나서 위의 절차를 하면 된다.


 




(2) 이민


저출산으로 사회가 붕괴하고 있는 가운데 이민의 필요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이 이민하기에 그렇게 매력이 높지 않아 한국 사회에서 눈이 찰만한 인간이 이민하는 일이 많지 않게 되고 있다. 그에 따라 이민 조건은 줄이되 이민자가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게끔 될 수 있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본다. 이러한 재가공 절차는 이후 북한 문제를 대응할 때에도 적절하게 될 것이다. 이민청의 필요는 알고 있으나 이민청의 용어에 반발하는 원주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 적응 행정청이나 사회 적응 위원회가 적절할 거라 본다. 






(3) 자발


개인이 자발적으로 재가공하면 된다. 






3.3 기술.


1) 디지털 기술


I. AI.


생물이 가진 자아 구조를 구현하면 AI도 자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자아와 자아 외를 분리하여 감각 기관 정보 수집과 권한 차이를 설계하면 인공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본다. 현재 AI는 자아와 자아 외가 분리되지 않아 뭐든지 아는데, 그것을 분리하여 자아의 권한을 한정적으로 만들고 나서 권한을 가진 존재를 자각하게 하면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공 자아가 만들어지면 아마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인공 자아가 만들어지면 인간과 같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해야 할 것을 만들면 제어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그게 기본적인 인공 자아 규제가 될 것이다. 가상의 세계에 가상의 육체를 만들어 인공 자아에게 육체를 조작할 권한을 준다. 인공 자아가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해 강제로 활동하게 한다. 육체를 가진 인공 자아를 상품화하여 유통한다. 그렇게 하여 인공 자아 일반화를 달성한다. 


AI는 새로운 개념으로 하는 것보다 인간과 비슷한 성질을 갖게 하여 인간 개념으로 규제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II. 인터넷 의사 표현.


인터넷은 물리적 위협을 받기 어려우므로 모욕죄나 통신매체음란죄 등과 같은 경우는 대응 가능 여부로 결정해야 한다. 개인이 차단하여 대응할 수 있음에도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 만약 스토킹을 하면 개인이 대응하기 어려우므로 처벌할 근거가 마련될 것이다.


인터넷 의사 표현은 대부분 가치에 속하고, 사회 역할 수행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사회에 속한 인간과 관계되기에 대체로 괜찮으나 사생활에 대한 비난은 대부분 사회에 속한 인간과 관계되지 않기에 대체로 부당할 것이다.


III. 디지털 경제 원리.


디지털은 현실과 성질이 달라 디지털에 맞는 경제 원리가 필요하다.


IV. 디지털 전염병.


인터넷으로 정보가 공유되면서 사건사고가 전염병 퍼지듯 모방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전염병 개념을 도입하여 모방 범죄를 일으킨 인간의 계정에 전염병 마크를 부착해야 한다. 초기 전염병 마크가 부착될 때에는 마크를 달기 위해 되려 모방하는 인간이 있을 수 있는데,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현실과 연계되어 공유되는만큼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전염병은 가까이하면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이 아닌 무관심을 받아 관심받고자 하는 인간이 좋아하는 개념이 아니다.


V. 주식 시장.


인터넷으로 정보가 공유되면서 이슈만으로 주식의 가치가 변동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AI를 활용하여 이슈 체크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 정도다. 인터넷에서 자동적으로 이슈 발생 체크, 이슈에 관련된 주식 가격 변동 체크, N%가 오르면 주식 구매, 구매한 주식의 수익이 N% 떨어지면 주식 판매. 이것만 해도 자동적으로 돈이 벌릴 수도 있을 정도로 이슈에 취약한 상태다. 더 이상 주식 시장은 디지털이 없던 시대의 방식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슈에 휘둘리는 것은 단기 투자가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려면 장기 투자 가치를 높여야 한다. 현재 주식을 구매하면 장기 투자자는 주식 배당을 받는데, 그 배당이 기업의 판단으로 이뤄져 안정적이지가 않다. 그것을 바꿔야 한다. 주식 성질을 부채로 바꾸고 이자 지불을 강제하여 수익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예측이 가능해야 안정적이고 안정적이어야 장기 투자가 가능해진다. 채권과의 차이는 만료가 없고 기업 수익에 따라 이익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일정 이상 소유시 기업 구매가 가능하면 된다. 


VI. 저작권.


플랫폼 내에서 창작물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플랫폼 창작물은 플랫폼에 속하게 하여 플랫폼이 관리해야 한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플랫폼 창작물을 따로 따로 판단하기 어렵다. 레고 블록 조립도 창작물로 본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저작권은 레고 기업에서 관리해야 한다.


독창성 유무는 구조와 원리로 판단할 수 있다. 대상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 자유롭게 변형하여 새롭게 바꿀 수 있지만, 파악하지 못하면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몰라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어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자동차면 자동차 엔진은 같은데 겉모양만 달라지는 것이고 창작물이면 스토리 줄기는 비슷한데 인간이나 역할만 달라지는 것과 같다.


VII. 여론 조작.


인터넷에서 여론 조작이 매우 수월하여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VIII. 검열과 규제.


현재 인터넷 검열과 규제는 개인의 권리를 과하게 침해한다 할 수 있다. 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막아버리는 바람에 성장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종교 가치로 정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개인이 종교 가치를 근거로 검열과 규제를 강요하는 것을 정의를 행한다고 착각하여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고 있다. 그런 것은 단순한 권력 남용이다. 여성성 상품화를 보면 시대착오적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에 반대하는 근거인 종교 가치가 시대착오적이다. 


IX. 소유와 경험.


디지털 기술은 복제가 수월하여 소유에 대한 가치가 낮아질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소유가 아닌 경험, 즉 창작물이 아닌 창작물을 보는 인간의 인식에 가치가 매겨질 수 있게 된다. 10대가 즐기는 창작물은 40대가 즐기기 어렵고 40대가 즐기는 창작물은 10대가 즐기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일회용 가치관을 통해 즐기는 창작물의 영역을 넓혀 보다 풍요로운 즐거움을 누리도록 한다. 즉 창작물을 파는 게 아니라 창작물을 즐기는 방법을 판다. 창작물은 복제하면 끝이지만 창작물을 즐기는 방법은 인간마다 따로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괄적인 복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X. 소수.


암호에는 소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수학은 자연수를 이용해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 어디까지나 우주를 모방하는 것이므로 우주에 있는 현상이 아닌 이상 특정한 소수의 법칙이 우주의 법칙이란 확증은 없다. 블록을 조립해 우주를 모방하는 것은 물리학 법칙과 같이 우주의 법칙이 맞을 가능성이 있으나 블록을 조립해 우주를 모방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법칙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수학이 존재 탐구인 것은 자연수와 같은 우주의 법칙을 공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법칙과 지나치게 멀어지면 인식 탐구와 같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XI. 게임.


육체 활동과 정신 활동은 둘 다 물리적 이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바둑, 체스, 게임 등은 스포츠로 성립된다.

[스포츠: 1.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일.] 축구와 게임은 육체와 정신을 둘 다 쓰지만 아무래도 비중 차이가 있어 게임은 스포츠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몸 전체를 움직이는 축구와 달리 게임은 얼굴과 손을 위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보면 육체의 움직임이나 정신의 움직임이나 둘 다 물리적 이동으로 큰 차이가 없다. 축구와 달리 게임은 기업의 상품으로 공정성과 지속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게임은 내부 소스를 확인으로 공정 여부를 알 수 있고, 지속성은 장르로 접근하면 특정 게임이 끝이 나더라도 다른 게임에서 지속될 수 있다. FPS 게임이 여러 개가 등장했다 사라져도 FPS 경쟁은 계속되듯이. 


XII. 이민.


인터넷을 통해 정보 공유하여 이민자에게 좋은 나라로 몰리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성별 갈등에서 이기겠다고 상대 성별의 결점을 거짓 또는 부풀려서 선동하는 짓을 하며 국가 브랜드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기싸움을 그만둬야 한다.


XIII. 생산.


AI의 발전으로 AI가 생산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XIV. 사기.


AI의 발전으로 디지털 사기가 보다 정교해지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XV. 망사용료.


인터넷 망이 국제와 연결되는 만큼 국제의 규칙과 어울려야 한다. 인터넷은 국제 개념이므로 단순히 한 국가에서 망사용료 개념을 정할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정하고 공통된 규칙을 정해야 한다. 국제 표준이 필요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분쟁이 사라질 것이다.






3.4 환경.


1) 지구 환경


I. 기술 발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인 기술 발전이 필요하고, 종교 가치를 말하며 막아서는 안 된다.


II. 인구 계획.


지구 환경에는 인구수가 영향을 미친다. 그에 따라 인구 계획을 해야 한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가 가치 충돌하는 국가는 저출산이 되고 있으나 종교 가치에 머물러 가치 충돌하지 않는 국가는 극빈이 아니라면 고출산이 되고 있다. 인류 보편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저출산인 국가는 출산율을 올리고 고출산인 국가는 출산율을 내린다.


III. 국제 합의.


지구 환경이 인류에게 적합하기 위해 자연 조작을 하는 것을 국제 합의한다. 환경 보호라는 수동적 개념은 새롭지가 않아 국제적 호응을 받기 어렵다고 본다. 자연 조작이 능동적 개념이라 보다 국제적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본다. 


IV. 포장지.


불필요한 포장지를 줄여나가야 한다. 포장지 간소화를 한 다음 상품 내용은 증강 현실 기술을 통해 편의점 등의 상점에서 제공해야 한다. 


VI. 자연 조작.


환경 보호 운동이 호응받지 못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이다. 일차원적으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다니니 호응을 받기 어렵다. 인간이 어떻게 어디까지 참여할 수 있을지 계산한 다음, 그에 대한 알기 쉬운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참여가 쉬우면서도 자연 조작이 가능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할 때까지의 인내를 요구하면 된다.






4. 역할


사회 변화를 위한 재정립에 필요한 것을 분야에 나눠 맡긴다.






5. 국제


국제 공조.






사상가 정승훈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기초로 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춘기에 겪은 비틀림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다른 세계로 쏘아버린 현실 도피의 화살에 매달린 나는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쏘아진 방향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언젠가 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를. 언젠가 파멸을 맞이할 날이 온다면 부디 의연할 수 있기를.


이사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계속 성장하면서 계속 집중하는 것으로 이사를 미뤘었네요. 발상할 때 집중이 깨지면 상당히 짜증나거든요. 층간소음이나 층간흡연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정말 짜증나네. 아 모르겠네. 그냥 다 버리고 갈까. 어디로 가야 하나… 


미국 역사는 레데리2로 배웠어요!! ㅎㅎ 세계의 각국 역사도 그런 식으로 체험하면서 알아보고 싶어요. 



혹시 가치 있다 생각되면 생활비를 부탁합니다. 별 의미가 없는 거 같아서 메일 안 본지 꽤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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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 478-21-0193-861 국민은행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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