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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불로와 불사2023.12.31 AM 01:07
불로와 불사
1. 자유
[자유: 1.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1) 자아 본질
[자아: 2.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 · 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 · 반응 · 체험 · 사고 · 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Q. 자아를 이해하는 것으로 본질적인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보통 자유 개념은 추상적이다. 대부분 개인의 주관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로 인식한다. 개인마다 억압이라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유도 다르게 된다. 안락의 자유, 지배의 자유, 방종의 자유, 죽음의 자유, 야망의 자유 등 다양하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자 사이에서도 자유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상당하다.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유 개념이 성립되려면 ‘자기’와 ‘마음대로’와 ‘할 수 있는 상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자기는 자아를 지칭하고 마음대로는 바람을 지칭하고 할 수 있는 상태는 환경을 지칭한다. 자아가 안락을 바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상태다. 이런 것처럼 자아가 바라는 상태가 가능한 것을 자유라 부른다. 이것을 통해 자유의 원리는 자아를 기초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아 내부 원리에 의해 바람이 생기고, 그 바람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자유다. 이런 이유로 자아가 무엇인지 알아야 정확한 자유를 알 수 있다.
[C. 생물 메커니즘]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에서 뇌가 전달하는 정보를 판단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갈림길에 섰을 때 자아는 판단만 한다. 발상과 동작은 생물 메커니즘에서 다른 영역이 한다. 자아가 판단만 해도 알아서 발상하고 동작한다. 자아가 판단만 해도 생물 메커니즘에서 모순은 없다. 생물 메커니즘 구분을 위해 판단만 하는 자아와 그 외를 하는 자아 외로 분리하겠다. 인간은 보통 이걸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좀 더 설명하겠다.
수면 충동의 생물 메커니즘.
발상 - 신경 세포 정보를 종합해 수면 충동.
판단 - 잠을 자야겠다.
발상 - 시간, 장소, 방법.
판단 - 이따 침대에서 이불 덮고 자야겠다.
발상 - 정확한 시간.
판단 - 22:00 정도면 될 거 같다.
발상 - 22:00 이전에 할 일.
판단 - 그전에 게임 좀 해야겠다.
동작 - 몸이 움직여 게임을 하러 간다.
생물 메커니즘에서 자아의 판단 없이도 자아 외의 발상과 동작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걸 무의식적 생각과 행동이라 한다. 통상 판단은 무의식적 생각을 시작으로 한다. 판단 재료가 떠올려져야 판단을 할 수 있다. 자아의 추상적인 판단이 자아 외를 통해 언어 개념이 되어 발상이 나타난다. 발상과 판단을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이 흐르게 된다. 이 과정은 단어 하나, 손가락 하나마다 굉장히 빠르게 반복될 수 있다. 모든 판단은 기억되면서 한번에 다양한 판단과 발상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언어 개념이 그렇다. 언어 개념은 다양한 의미를 하나의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의 판단으로 다양한 의미를 판단할 수 있다.
자아는 판단만 하기 때문에 실제 발상과 동작을 원하는대로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를 떠올릴 수가 없고 육체를 원하는 동작으로 정확하게 움직일 수가 없다. 발상이든 동작이든 반복 학습을 통해 원하는 것과 유사한 것을 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암기를 하는 학습을 해야 특정 상황에서 자아의 판단으로 원하는 정보를 자아 외가 발상하고, 반복적으로 공을 던져보는 훈련을 해야 특정 상황에서 자아의 판단으로 원하는 곳으로 자아 외가 동작한다.
모든 조건에서 자아가 판단만 해야 모순이 없다. 발상이나 동작까지 자아가 했다면 실수가 나오기 어렵다. 데이터 검색해서 발상하는 것도 아니고 좌표값 계산해서 동작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욕구나 감정도 마찬가지다. 자아는 판단만 한다. 자아의 판단을 의지라 부르고 자유로운 판단을 자유 의지라 부른다. 즉 본질적인 자유는 자아가 자유롭게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유의 조건은 세 가지다. 판단을 하는 존재,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판단에 제한이 없는 사회. 존재와 능력과 환경이 갖춰져야 자유롭다 할 수 있다.
존재 유지 - 생존의 자유
능력 획득 - 학문의 자유
자유 사회 - 사상의 자유
이 외의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등은 조건에 따라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유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사는 동안 능력을 얻어 생각을 통해 사회에서 다양한 자유를 판단하여 규정하고 자유롭게 살면 된다. 통상 체제를 기초로 다양한 자유가 규정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민주주의 체제에 의해 자유주의의 자유가 모든 개인의 평등한 자유로 규정된다.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로서 대등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는 평등한 자유기 때문에 불합리하게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할 수가 없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면 표현에 대한 다른 사회 구성원과 의견을 교류하며 체제를 기초로 표현의 한계를 판단한다. 보통 표현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면 자체 규칙으로 판단하고 대응이 불가능하면 국가 법으로 판단한다.
2) 사회 법칙
[법칙: 3.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 · 필연적인 불변의 관계.]
Q. 사회 법칙을 이해하여 자아의 판단이 보장되는 사회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자연 법칙이 기본 상호 작용(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을 기초로 하듯이 사회 법칙 또한 특정한 기본적인 상호 작용을 기초로 한다. 사회는 인간을 요소로 하는 존재로 인간의 힘인 무력, 지력, 매력, 권력, 재력 등으로 동작한다. 이러한 인간의 힘은 가치에 의해 작용이 결정된다. 가치는 판단 대상을 의미한다. 인간의 가치 판단은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 성질상 크게 수용과 거부로 구분할 수 있다. 받아들이거나 물리치거나. 그 외는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다.
수용과 거부는 강약으로 분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강한 수용과 거부는 욕망과 공포다. 갈구하며 쫓아가거나 겁에 질려 도망친다. 사회의 기본적인 상호 작용은 수용과 거부이며 강한 순서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보통 욕망과 공포가 기본이다. 욕망과 공포에 의해 다양한 인간의 힘이 작용하게 되는 것으로 사회가 구성된다.
[질서: 1.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C. 가치의 상대성] 인간은 육체가 달라 인식, 판단, 가치가 다르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다. 보통 강한 쾌락이나 죽음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쾌락을 거부하거나 죽음을 수용하는 일이 있는 것을 보면 절대적이지는 않다. 모든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모든 힘의 작용도 다르다는 것이 된다. 힘의 작용이 다르면서 혼란이 발생하는 것으로 질서가 성립될 수 없었다.
보통 짐승 사회에서는 무력으로 지배하여 사회 구성원을 복종하게 하는 것으로 질서를 강제했다. 인간 사회도 비슷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게 지능이 높아 도구와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며 육체가 약하다. 약자가 순순히 복종하지 않고 도구를 들고 언어로 속여서 강자를 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독을 먹이거나 잠든 틈을 타서 살해하는 것은 10세도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는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만들지 못하여 질서가 성립될 수 없었다.
[C. 원시 질서] 질서는 힘의 작용이 일정하여 혼란이 없어야 성립했다. 최소한 장소 A -> B 가는 것은 가능해야 했다. 그것을 공포로부터 도피하는 장소를 지정하는 것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번개가 칠 때 공포에 질려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수 있다. 질서가 없다. 그때 번개를 피할 수 있는 동굴을 알려준다면 그 동굴로 빠르게 달려갈 것이다. 질서가 있다. 공포 -> 도피를 통해 힘의 작용이 일정하여 혼란이 사라졌다. 매우 원시적인 논리다. 공포에 질려 판단하지 않고 도피할 장소가 있으면 힘의 작용이 일정하게 된다. 조건은 판단하지 않음과 행동 지정이다. 가치 판단 없이 힘의 작용이 일정해진다. 응용 논리로 분노 -> 살해도 가능하다. 분노에 미쳐 달려들어 살해한다. 이렇게 인간의 행동을 강제한다. 힘이 일정하게 작용하면서 규칙이 지켜진다. 그것으로 인간 사회의 원시 질서가 성립되었다.
[C. 가치의 절대성] 간단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규칙을 지키면 살고 어기면 죽는다. 규칙 중 하나가 지배와 복종이다. 복종하지 않으면 죽는다. 복종하면 산다. 공포 -> 도피 논리가 성립한다. 이 논리를 기초로한 질서는 기본적으로 그런 식이다. 규칙을 어기면 죽는다. 규칙을 지키면 산다. 규칙은 처벌 수위는 다를 수 있지만 공포 -> 도피 논리를 벗어나는 일은 드물었다. 단순한 지배와 복종이 아닌, 특정한 가치를 기초로 지배와 복종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느끼게끔 만들면서 부당하단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반역과 같은 질서 파괴를 방지했다. 힘의 작용이 강제되면서 그 규칙은 절대적인 가치가 되었다. 금욕, 희생, 사랑, 증오, 행복, 생명, 죽음 등에 대한 가치 판단이 이뤄지지 않고 지정된 가치로만 판단되게 만들었다. 각각의 가치가 수용해야 할 것과 거부해야 할 것이 지정되었다. 판단이 작용하지 않으면서 힘의 작용도 일정하게 되었다. 가치 판단이 되지 않으니까 절대적 가치가 되고 절대적 가치니까 힘의 작용이 일정하여 질서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공포 -> 도피 논리를 지키는 것에 도덕이란 이름이 붙었다. 공포엔 악이란 이름이 붙었고 도피엔 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선과 악은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특정 도덕의 주장과 그 도덕을 신앙하는 이들이 모인 것에 종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덕을 학문화한 것에 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두가 해야할 도피를 주장하는 것에 정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절대적 가치를 기초로 사물과 행위를 판단하는 것에 양심이란 이름이 붙었다. 거부해야할 절대적 가치를 거부하지 않는 것에 죄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행위에 느끼는 감정에 죄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공포 -> 도피 논리에서 도피를 본인으로 지정한 것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각자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절대적 가치에 의해 힘의 작용이 일정하게 되면서 사회 질서가 성립되게 되었다.
원시 사회는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을 통해 지배를 위한 공포 -> 도피 논리를 만들어 힘의 작용이 일정해지면서 사회 질서가 성립될 수 있었다. 이후 모든 도덕과 윤리는 공포 -> 도피 논리를 기초로 한다. 유교는 수기치인을 통해 권력을 윤리로 만들었다. 공포는 피지배, 도피는 지배로 설정되었다. 기독교는 유일신 교리를 통해 신앙을 윤리로 만들었다. 공포는 지옥, 도피는 천국으로 설정되었다. 윤리가 절대적 가치가 되지 않으면 강제로 절대적으로 만들었다. 유교는 권력 반역 처단, 기독교는 종교 이단 심문이다. 원시 사회의 질서였던 도덕과 그것을 학문화한 윤리는 지극히 원시적인 질서가 된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공포 -> 도피라는 원시 질서를 사용하여 지배와 복종이 기본적이었다. 왕의 지배에 필요한 절대적 가치는 금욕과 이타였다. 피지배자가 욕망을 절제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수용해야 지배를 위한 힘의 작용이 일정하여 지배 질서가 깨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보편적인 윤리는 통상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된다.
유교는 수기치인을 통해 권력을 윤리로 만든 사상이다. 모든 사회에서 권력을 얻고자 하는 행동이 나타나나, 유교권은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모든 사회 관계가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 안에 속한다. 신분 (왕과 양반과 평민과 천민), 연령 (연상과 연하), 성별 (남성과 여성), 지위 (정 1품에서 종 9품), 역할 (선비와 농부와 공장과 상인) 등 전부. 삼강오륜 등의 가르침이 이런 것을 체계화하였다.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는 국가와 죽음을 넘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그 외 국가를 약소국이라 깔보는 것이 중화사상. 그것을 따라한 것이 조선의 소중화사상. 죽은 자에게도 권력이 있어 권력에 따른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그것을 체계화한 것이 족보. 그것을 바탕으로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신으로 모신다.
공포는 피지배, 도피는 지배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인간이 권력을 절대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미친듯한 교육열.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유교 서적은 대부분 가정에 비치되고 권력을 얻을 수 없는 학문은 거들떠도 안본다. 모든 국가 역량이 권력에 필요한 학문에만 집중된다. 유교의 권력 집착은 욕망이 아닌 공포에 의한 것이기에 판단하지 않고 달려든다. 뚜렷한 목적이 없이 우선 권력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절대적 가치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직접 무력을 사용하여 절대적으로 만들었다.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무시하면 그에 따른 폭력을 행사했다. 인의예지나 정은 권력에 따른 위계질서 내에서 지배자가 피지배자에 대한 아량이나 피지배자가 지배자에 대한 복종을 의미했다. 그런 질서를 통해 다툼을 줄인 것이다. 정이 있는 사회를 흔히 법 없는 사회라 하는데, 그것은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회의 모든 결정권은 권력을 가진 인간에게 주어졌다. 권력은 국가와 죽은 자에게도 있었기에 왕조차도 마음대로 못했다. 강대국과 죽은 자의 가르침을 거역하지 못하면서 국가가 타국과 과거에 종속되었다. 권력자에게 결정권이 있었기에 권력자 판단에 따라 위계질서가 무시되는 일도 있었으나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국가의 권력은 왕에게 있었다면 가정의 권력은 가장에게 있었다. 가부장제다. 가장은 가족 구성원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특기나 취미는 물론 진로나 성까지 전부 가지고 있었다. 가장이 결정권을 가지고 가족 구성원을 자유롭게 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가능했다.
권력을 얻기 위한 학습에 매우 강한 억압이 가해졌다. 학문을 하는 것을 강제한다. 그 외의 강한 억압이 바로 성이다. 성을 방치할 경우 가장의 의사와 무관한 이성과 결혼할 수 있는 것으로 권력 획득 수단으로 쓸 수 없음은 물론이고, 친족간의 성관계로 족보가 어그러져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망가질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에 남녀칠세부동석으로 미리 이성을 갈라놓고 여성에게 정조관념을 주입해 결혼 전의 성관계를 방지했다. 가장에게 가족 구성원의 결혼과 출산의 결정권이 있었기에 그렇게 성을 터부시 하더라도 결혼과 출산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정권은 가장에게 있었으니 가장의 판단에 의해 가족 구성원의 자유 연애나 성관계도 가능하였으나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공포 -> 도피 논리를 사용한 원시 질서 사회였다.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한다. 인류는 이외의 방식으로 질서를 구축한 경험이 없었다. 모두가 그런 식으로 질서를 구축했기 때문에 공포 -> 도피 논리에서 나타난 절대적 가치가 대립하는 경우가 있었다. 절대적 가치에 의한 일정한 힘의 작용이 충돌한 것이다. 전쟁과 평화, 유일신교와 다신교, 우파와 좌파 등. 그러다 자유 혁명이 일어났다. 소수의 지배자가 가졌던 주권을 모든 개인이 가지게 되었다.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가 되었다. 자유, 민주, 시장 등을 기초로한 개인주의 체제가 시작되었다.
자유 사회가 되었지만 원시 질서가 사라지지 않으면서 공포 -> 도피 논리를 통한 착취가 계속되었다. 영주가 농노를 착취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공산당원이 노동자를 착취했다. 둘 다 원시 질서였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유리했던 것은 공포 -> 도피 논리가 생산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공산주의 체제는 평등하지 않으면 맞아 죽는다. 무엇이 생산성이 높을지는 명확하다.
[C. 문명 질서] 개인주의 체제는 자유, 민주, 시장 등을 기초로하여 논리적인 설계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개인의 의사에 따라 물건의 가치가 결정될 수 있는가? 이러한 논리를 연구하면서 차근차근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게 되었다. 과학 문명을 통해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스스로 질서를 지키려 하는 것을 가리켜 문명 질서라 하겠다. 원시 질서는 공포 -> 도피로 힘의 작용을 타인이 강제했다면, 문명 질서는 판단 -> 계약으로 힘의 작용을 본인이 강제했다. 핵심은 맹신과 의심. 판단하지 않음과 판단함이다. 간단히 말해 본인이 판단한 것을 지키는 것으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만들어 질서를 성립시킨다.
[C. 존재의 절대성] 원시 질서는 가치의 절대성을 기초로 한다면 문명 질서는 존재의 절대성을 기초로 한다고 주장하겠다. 가치의 절대성은 판단하지 않고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긴다면, 존재의 절대성은 속하고자하는 판단이 있고 나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긴다. 그 판단의 사회적 행위가 바로 계약이다. 그러면서 존재에 속하는 동안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힘의 작용이 일정하게 되면서 질서가 유지되면서도 가치의 상대성은 성립되게 될 수 있다. 가치를 상대적으로 여김에 따라 설득을 하기 위해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보편적인 학문 진리로 여겨지는 과학적 증명을 기초로한 논리를 펼치게 된다.
선거와 시장이 판단 -> 계약 논리를 통한 문명 질서를 기초로 한 제도다. 자아로 판단하여 수요와 공급에 의한 정부 권력 결정과 시장 가격 결정을 한 것을 따르겠다 계약을 한다. 그 과정에서 원시 질서에 의한 힘의 작용이 나타날 수는 있으나 기본은 문명 질서를 기초로 한다. 이것을 토대로 자본에 초점을 맞춘 자본주의와 시장에 초점을 맞춘 시장주의를 분리하겠다. 자본주의는 공포 -> 도피를 이용한 생산 체제라면 시장주의는 판단 -> 계약을 이용한 거래 체제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노동자로 생산하는 체제라면 시장주의는 모든 개인이 상인이 되어 거래하는 체제다.
존재의 절대성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존재 질서, 존재에 속하자고 한다면 존재 유지는 절대적이다. 존재 탐구, 존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더라도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존재 신용, 존재에 속한 신용은 판단하지 않고 신용한다. 존재는 모두 판단 -> 계약을 거쳐 이뤄진다.
그러나 원시 질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판단 -> 계약을 무시하고 공포 -> 도피로 체제 원리를 파괴한다. 부당하게 자유를 억압하고 주권을 침해하고 시장을 훼손한다. 비리, 담합, 유착 등과 같이 체제를 부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원시 질서에 의한 힘의 작용이다. 원시 질서는 정의롭게 사회와 체제를 부쉈다. 특정 가치가 절대적이게 되면 그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모든 것은 정당화가 된다. 가족을 위한 정의로운 횡령과 탈세. 자녀를 위한 정의로운 자녀 살해. 종교를 위한 정의로운 사회 테러. 조직을 위한 정의로운 비리 감싸기. 집단을 위한 정의로운 가격 담합. 더구나 세계화가 되면서 다양한 절대적 가치가 공유되면서 변명거리가 매우 많이 늘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니. 웃기는 소리다.
원시 질서는 사회 자체를 망가트렸다. 자유롭게 되면서 대부분의 결정권은 개인에게 주어졌으나, 성과 학습의 결정권은 보호를 핑계로 권력자가 쥐게 되었다. 미성년 시기에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에 집중하고 성을 터부시한다.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성적 경쟁에 공포로부터 도피하듯 광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 외의 욕망은 전부 제거되게 된다. 이성 관계를 멀리하는 것을 넘어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여성 사이에서 이성의 동성애가 유행한다.
성년이 되고 나서는 결정권을 보장한다면서 직업과 결혼을 개인에게 맡겼다. 그러나 미성년 때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의 문제 풀이 외엔 잘 모르고, 성을 터부시하는 것으로 부정적 인식이 자리잡아 적극적으로 이성 관계를 가지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가치 생산과 자유 결혼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미성년에게 학습과 성에 대한 결정권이 없어 미숙하게 성장하면서 부정적으로 배우면서 그에 대한 가치도 낮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경제 활동율과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행복도는 다소 오르게 된다. 직업과 가족의 미래 설계를 포기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줄어들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다소 행복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에는 미래가 없었다.
이외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 시장에 의해 돈이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역할도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돈의 가치가 굉장히 높아져 가족보다 돈을 우선하기도 하게 되었다. 이성을 정적으로 규정하고 권력 투쟁에 나선 여성주의가 유행하면서 여성의 권력이 높아짐에 따라 선호하는 아이의 성별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달라졌다. 이성애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가치관에 따른 사랑보다 성적 발정이나 경제적 조건을 우선하는 일이 일반적이게 된다. 결혼이 강제되었을 때에 이성애는 집단의 이익실현 수단이었다면 결혼이 자유롭게 되었을 때에 이성애는 개인의 이익 실현 수단이 되었다.
원시 질서에 의해 사회에 이로운 일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아 판단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기에 체제에 적합하지 않다. 사회에 이로운 일도 문명 질서를 통해 자아 판단으로 결정하여 행해야 한다.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사회에 이로운 일을 하면 된다.
왕정과 민주정은 체제가 아예 달라졌음에도 공포 -> 도피라는 원시 질서를 고집하면서 사회가 파탄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원시 질서가 절대적 가치로 우주의 법칙과도 같았기에 의심하지 못하면서 본질적인 사회 문제 원인을 알지 못했다. 힘의 작용을 이해했다면 사회 현상을 보는데 원시 질서인 윤리를 생략한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회 현상은 가치에 의한 힘의 작용을 고려해야 하고, 그 중 절대적 가치인 윤리에 의한 힘의 작용이 보통 매우 크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윤리는 절대적 가치로 판단하지 않는다. 자유는 자아가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윤리에 의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자아에 자유가 사라진다. 윤리에 의해 자아는 자유를 잃는다. 자아가 자유를 잃고 집단의 부속품이 된다. 윤리에 의한 전체주의가 나타난다. 자아의 자유를 막는 것이 바로 원시 질서이자 절대적 가치인 윤리다. 본질적인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포 -> 도피로 맹신하는 원시 질서에서 판단 -> 계약로 의심하는 문명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3) 자유 이념
[이념: 1.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
Q. 본질적인 자유 이념 실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본질적인 자유는 살아남아 능력을 키워 판단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런데 현재 온전하게 가능한 것은 학문의 자유 말고는 없다. 학문의 자유는 자아 판단과 사회 환경이 갖춰져야 하는데, 자아 판단은 초기 호기심을 살리면 되고 사회 환경은 공교육을 살리면 된다. 생존의 자유는 죽음에 의해 불가하고 사상의 자유는 원시 질서에 의해 불가하다. 그렇기에 현재 인류는 본질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할 수 없다. 이것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불로와 불사가 되어야 한다. 생존의 자유는 당연히 가능해진다. 사상의 자유는 강한 공포인 늙음과 죽음 개념이 사라지면서 공포 -> 도피 논리가 성립되지 못하면서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는 것으로 가능하게 될 수 있다.
[C. 양심 메커니즘] 현재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신앙, 습관, 이해 등으로 솔직히 너무 어렵다. 예를 들어 양심 메커니즘이 있다. 절대적 가치를 기초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데, 그 가치에 무엇이냐에 따라 굉장히 이상한 결과가 나온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격분하여 때려 죽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여성이 히잡을 쓰게 하는 근거인 쿠란의 교리는 절대적 가치. 그것을 기초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악을 행한 여성을 정의롭게 때려 죽였다. 이것은 이슬람권 외의 지역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교권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 유교권에서는 연하가 연상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보면 격분하여 때려 죽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연하가 연상에게 존댓말을 하게 하는 근거인 유교의 교리는 절대적 가치. 그것을 기초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악을 행한 연하를 때려 죽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포탈에 반말 살해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수두룩하게 나온다. 반말에 모멸감을 느끼고 살해했다고 한다. 이것은 히잡 원인 살해와 동일하게 양심 메커니즘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악을 처벌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행한 강박적인 살해다. 유교권에서는 이런 사건을 보면 반말에 모멸감을 느낀 것은 이해하지만 과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이슬람권에서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을 보고 모멸감을 느낀 것은 이해하지만 과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유교권에서 이슬람의 히잡을 이유로 살해하고 히잡을 강요하는 것이 미개해 보인다면 다른 곳에서 유교권의 반말을 이유로 살해하고 존댓말을 강요하는 것도 미개해 보일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박혀있는 원시 질서를 제거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생물 메커니즘에 의해 원시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발상이 계속되어 매일매일 정의로운 일을 행하며 사회와 체제를 파탄내고 있다. 더구나 늙음과 죽음으로 인생에 시간 한계가 있어 당장 하는 일 하나하나에 늙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작용할 수 있다. 지금 아니면 못한다고 생각하며 다급하게 공포를 느끼며 행동한다. 그러면서 원시 질서는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렇기에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불로와 불사 같이 원시 질서의 근본을 파괴하는 일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고령화도 불로와 불사가 필요한 이유가 된다. 의학의 발전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보통 60세에 죽었던 인간이 100세를 넘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늙음과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세상에 대한 가치가 달라진다. 기존 가치를 절대적으로 지키려 하거나 모든 가치를 버리고 느긋하게 살거나 세상을 불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면서 각국 정치는 극단주의화가 진행되게 된다. 그것에 의한 혼란으로 본질적인 자유가 멀어지게 된다. 과거 사망 시기인 60세부터 그런 상태가 된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40년은 그런 상태에 머무른다는 것이 된다. 과거와 다른 세상이 되었다. 통상 새로운 물이 흘러 세상이 바뀐다는 인식이 있다. 앞으로는 그게 어렵게 되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수의 영향이 크다. 세상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이제 오래된 물을 정수할 필요가 있다 보았다.
[불로불사: 1. 늙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함.]
[C. 유전은 기록의 재현] 늙음과 죽음이 없는 것을 불로와 불사라 한다. 통상 두 개념은 하나로 묶여 늙지 않으면 죽지도 않는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늙음과 죽음은 세포 유전의 성질상 따로 봐야 한다. 원본 유전자의 돌연변이의 자연 선택이 진화라 여기기 때문에 통상 유전을 설계로 인식한다. 그러나 원본 설계가 자연적으로 나타나려면 그 과정이 기록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유전의 본질은 기록의 재현이다. 단지 지금은 어떤 이유로 더 이상 제대로 기록이 되지 않을 뿐이다. 유전은 기본적으로 세포의 움직임을 기록한 것을 재현한다. 자동적으로 분열하는 세포를 억제하여 기록만큼만 재현한다. 그것을 기초로 늙음과 죽음 개념을 보자.
노화는 유전 기록 재현이 끝난 이후 시작한다. 유전 기록을 다 재현한 후에는 이제 추가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현상 유지만 하다가 다양한 이유로 정상적인 세포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위가 수축되는 것으로 주름도 늘고 기능도 저하된다. 인간 수명이 늘어도 성장기 노화는 일정하다고 하는데, 공통된 기록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노화가 인간마다 시기가 다르다며 처음부터 나타난다는 의견이 있는데, 성장이 빠를 수록 기록의 재현이 끝나는 시기도 빨라지므로 노화가 빠른 것은 당연하다.
DNA 분석 결과 인간의 자연 수명은 38세 정도라고 한다. 아마 평균 생식 연령이 아닐까 싶다. 언제 기록이 멈췄는지 모르겠는데, 유전이 기록의 재현이라면 생식 연령까지 기록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폐경과 수명이 차이가 나는 것이 특별하다고 하는데, 기록의 재현이라면 특별할 것까지는 없다. 그냥 그렇게 기록되었고 그렇게 재현할 뿐이다. 기록만큼 재현하고 재현에 필요한만큼 물질을 쓰고 나머지는 버린다.
죽음은 세포 분열 횟수에 의해 결정된다. 사고, 질병 등에 의해 사망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연사란 물리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할 때를 의미한다. 기록의 재현을 계속하여 지속적인 젊음이 유지되더라도, 세포 분열 횟수가 끝나면 사망한다.
늙음의 경우 기록의 재현을 계속 하게 만들면 세포 분열 횟수까지 젊음이 유지될 수 있을 거라 본다. 죽음의 경우 계속 세포 분열이 가능하면 된다고 본다. 관련 개념은 엑소좀이나 텔로미어 등이 있다.
생물의 불사는 자연사를 막는다는 개념으로 완전한 불사는 아니다. 완전한 불사는 자아를 추출하여 데이터로 보관이 가능할 때 가능할 것이다. 물론 데이터 손상 및 분실 등의 이유로 실제로 완전한 불사는 불가능할 것이지만 완전에 가까워질수는 있을 것이다.
불로와 불사가 실현되면 사회 문제 및 윤리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회 문제는 불로와 불사가 가능할 정도의 과학 기술과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면 웬만하면 대응이 가능하다. 윤리 문제는 애초에 윤리가 비과학적인 원시 질서기 때문에 없어져야 하므로 과학적인 문명 질서로 진보하는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생을 걸고 생각해온 개념이 자유다. 중학생 때 자유 의지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깊게 절망하고 생을 자포자기한 후 자유에 대해 계속 생각해왔다. 반드시 자유 이념을 실현하겠다.
2. 통찰
[통찰: 1.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2.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여 장면의 의미를 재조직화함으로써 갑작스럽게 문제를 해결함.]
1) 지식 본질
[지식: 1.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Q. 통찰이 불로와 불사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식의 본질은 우주의 법칙이 아닌 인간의 인식과 이해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육체로는 우주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절대적 가치는 성립될 수 없다. 학문에 속하는 지식은 학문에 속하는 동안만 진리다. 그럼에도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과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고 암기한다거나, 모든 것을 계산하여 알 수 있다고 여긴다거나 하는 것으로 지식 안에서 계산할 수 있는 것은 발전할 수 있었지만, 지식에 없어 계산할 수 없는 것은 정체되었다.
수학은 어디까지나 세다라는 개념으로 수라는 블록을 쌓아 우주를 모방한 학문이다. 그것은 굉장히 위대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실험을 하며 관찰한 것을 수라는 블록을 쌓아 모방하여 재현한다. 그것을 공유하여 누구나 재현이 가능하면 증명이 된다. 그런 모방이 다양한 수식. 그것으로 만든 것이 현대 문명의 이기. 그러나 셀 수 있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셀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 몰라서 셀 수 없거나 힘의 작용이 안정되지 않아 셀 수 없을 때에는 계산으로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건물을 짓고 우주선으로 달에 갈 수 있어도 사회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디지털은 0과 1을 조합해 만든 가상 세계. 처음부터 수학으로 만든 세계기 때문에 끊임 없이 발전한다. 반면 에너지는 우주의 법칙을 알아야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발전이 디지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상태라고 알고 있다. 전기 에너지는 아직도 터빈을 돌려서 생산 중에 있다.
소수의 법칙이 유명한데, 소수 자체도 세는 것을 좀 다르게 세는 개념이라 우주의 법칙에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소수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법칙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암호학 같이 애초에 인간이 만든 개념에는 의미가 있지만, 우주의 법칙을 아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통찰로 사물의 본질을 보고, 새로운 학문 진리를 알고, 새로운 발상을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개념이 나와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아는 지식 내에서 무작정 실험과 계산을 하다보니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은 발전이 더딘 상태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나오는데 그게 무슨 의미를 하는지 모를 수 있다. 수를 가지고 어떤 것을 알려는 것은 블록을 해체하여 재조립하면서 무언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언가 나올 수는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를 수 있다. 무언가를 보고 논리적으로 발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발상이 나와 무언가가 논리적으로 알게 되면 그때 그것을 계산하여 재현하면 된다. 즉 통찰 -> 발상 -> 실험 -> 재현 -> 증명.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리로 언어 개념을 발상하는 것. 세는 것으로 수 개념을 발상하는 것. 세상을 보고 원자 개념을 발상하는 것. 떨어지는 물체를 보고 중력 개념을 발상하는 것. 빛을 보고 광전 효과 개념을 발상하는 것. 수 개념으로는 0의 개념, 사칙 연산 등의 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개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고 지식을 암기하고 계산을 반복하면서 무언가가 나오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발상은 재능이나 우연에 맡기고 있다. 그래서 발상 단계에서 멈추는 바람에 실험, 재현, 증명 단계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계산할 수 없는 것은 정체 중에 있다. 발상은 충분히 반복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을 키워 과학 발전을 해야 한다.
2) 발상 능력
[발상: 1. 어떤 생각을 해냄.]
Q. 발상 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발상은 아는 것을 발상하는 것과 모르던 것을 발상하는 것으로 나뉜다. 통상 전자를 기억을 떠올린다고 하고 후자를 추론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발상을 기초로 알기 쉬운 구분으로 나누겠다. 전자를 기억 발상이라 하고 후자를 창의 발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창의 발상의 경우 통찰을 통해서 모르던 것을 발상할 수 있다. 사물의 본질과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갑작스럽게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자아 판단으로 결정된다. 발상을 자아가 판단해서 알고 있었다면 기억 발상이고 모르고 있었다면 창의 발상이다. 뇌에 정보가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계속 모르는 것을 발상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정말 새로운 발상이 나오고, 그 새로운 발상이 사회에서도 새로울 수 있다.
내가 발상을 할 때 필요했던 것에 대해 설명하겠다.
첫째, 관념.
고정 관념이 적은 것. (자아 나이 적음) 나는 아마 자아 나이가 13세에서 14세에 멈췄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자유 억압에 의한 절망을 겪다가 결정적으로 육체를 제어하지 못하고 의사 표현을 못해서 절망하고 자포자기 하고 살면서 자아 나이가 멈춘 것 같다. 살다보니 어느 순간 나의 취향이 또래와 괴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기에 자아 나이가 멈추면서 상대적으로 고정 관념이 적어 발상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둘째, 목적.
목적이 있는 것. (자유 이념 실현) 망가진 시기에 겪은 자유 결핍으로 자유에 대해 일생 생각해왔다. 그래서 환경이 달라져도 목적을 가지고 계속 사상을 할 수 있었다. 사상을 하는 환경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정식 교과 과정으로 발상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환경 문제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에 있어 나의 특수한 사정을 더하지는 않겠다.
셋째, 본질.
본질을 알려 하는 것. (통찰) 사상을 할 때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보려 매우 노력했다. 동물 조각상을 동물로 가정하고 발상하면 그 결과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본질을 알려고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넷째, 발상.
새로운 발상을 한 것. (지식 과의존 탈피) 사상을 할 때 처음부터 다시 다 생각해보고자 했다. 직감적으로 의문을 풀기 위해 어려운 철학 저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잡아먹힐 것 같았다. 잡아 먹혀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냥 그래서 계속 모르는 것을 발상을 했다.
다섯째, 논리.
논리적인 발상을 한 것. (체계) 학문 내에 진리로 여겨지는 과학적 증명이 된 사실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발상을 하려 했다. 논리적인 모순이 있으면 모순을 없애 새로운 발상을 한다. 그렇게 해서 논리를 구축한다. 그래야 체계를 갖춰 새로운 발상을 한 것에 추가적인 발상이 가능했다. 그러다가 충분히 나름 체계가 갖춰지면 그에 관련된 지식을 조사하여 일반적인 지식과 다른 점을 찾아 다시 새로운 발상을 했다.
여섯째, 정보.
사회 저항이 적고 정보 수집이 쉬운 것. (디지털) 디지털은 익명이어서 위계질서가 없으니까 자유로운 정보 수집이 수월하다. 유교권에서는 그게 많이 도움이 된다. 다양한 정보를 어느때든 수집할 수 있는 것은 과거와 달리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다.
일곱째, 보편.
공통 인식을 활용한 것. (사전) 사전이 있어 공통 인식을 통해 나의 발상과 비교하여 통찰하기 다소 편하다.
여덟째, 자아.
판단과 실행이 분리되어 있음을 이해한 것. (생물 메커니즘) 자아의 판단과 자아 외의 실행이 분리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발상이 나의 의지가 아닌 것을 알고 나서 발상 자체에 휘둘리기보다 그것이 왜 그런 발상이 나온 것이지 판단하면서 새로운 발상에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아홉째, 탐구.
인식과 존재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 것. (존재의 절대성) 하늘 색을 보는 것과 하늘 색의 원리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전자는 인식 탐구, 후자는 존재 탐구라 규정했다. 하늘 색의 종류를 통계내더라도 하늘 색의 원리를 안다고 할 수 없다. 현재 과학은 통계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부 원리를 모르면 그것은 하늘 색을 통계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열째, 법칙.
우주의 법칙과 인간의 언어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 것. (가치의 상대성) 곧잘 현상을 파악하는데 인간 위주로 알려 할 때가 있다. 인간의 언어 개념은 우주를 표현한 방식 중 하나지 우주 자체가 아니다. 특히 생물의 움직임에 인문 언어 개념을 부여해 의미가 있을 거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우주의 법칙을 아는데 상당히 방해된다. 자연 계열에서는 지양해야 한다.
[행복: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모두가 행복하고자 하지만 행복이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지 아는 이들은 드물다. 그냥 만족하고 기쁠 수 있으면 행복이라 여긴다. 그러나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것을 모아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 있으면 그게 행복의 원리다. 행복은 바라는 것을 이룰 때 느끼는 만족과 기쁨이다. 바라는 순간 결핍이 생기고, 생긴 결핍이 충족되면 행복을 느낀다.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행복하다. 배부를 때 밥을 먹으면 행복하지 않다. 이 둘의 차이는 결핍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배가 고프면 행복하고 배가 부르면 행복하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인이 되면 행복하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연인이 되면 행복하지 않다. 이 둘의 차이는 바람에 의한 결핍이다. 같은 연인 관계여도 바라는 대상이면 행복하고 바라지 않는 대상이면 행복하지 않다. 그 외 모든 조건에서 동일하다. 결핍이 발생한 것이 충족되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행복하다 여긴다. 그러니까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의 행복 차이가 크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결핍의 충족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원리만 작동하면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다. 단지 부유하면 이 원리를 작동하게 하는데 수월해서 돈이 행복을 부른다는 인식이 있을 뿐이다. 행복의 원리는 결핍의 충족이기 때문에 아무리 부유해도 불행할 수 있고 최소한의 의식주만 보장되면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돈은 재력으로 힘이므로 돈이 많은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 힘은 보통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행복의 원리가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첫째, 자아.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 자체가 아닌 생물 메커니즘에서 판단에 속한다. 인간의 의지보다 뇌파가 먼저 나온다는 리벳 실험을 보고 발상했다. 그 실험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발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아가 판단만 해야 모든 조건에서 모순이 없었다.
둘째, 우주.
시간과 차원은 우주의 법칙이 아닌 인간 뇌내 개념이다. 시간은 인간이 인식을 보는 순서다. 그렇게 가정해도 모든 조건에서 모순이 없었다. 시간이 상대적인 것은 그냥 인식 순서니까 인식할 수 있는 공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느껴진 것뿐이다. 상대성 원리는 시간 개념을 절대적이라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으로 시간 개념이 무엇인지 따로 생각한 게 아니다.
차원은 인간이 사물을 보는 관점이다. 그 외의 차원은 시간을 가정하고나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사물 외의 세계가 존재할 거란 가정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시간이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면 4차원은 없다. 4차원이 없으면 다른 차원도 없다.
셋째, 사회.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절대적 가치인 윤리는 비과학이다. 윤리는 공포 -> 도피 논리를 활용한 원시 질서인 도덕을 학문화한 것이다. 윤리가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그토록 윤리를 강조함에도 윤리에 의한 사회 문제가 나타날 것이란 생각 자체를 못한다. 옳은 일을 했는데 왜 잘못되냐는 식이다. 그렇기에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순수하게 힘의 작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넷째, 수학.
수학은 세는 개념을 통해 우주를 모방한 학문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알 수 있고 계산할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 수학은 통찰, 발상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실험, 재현, 증명에 도움이 된다.
다섯째, 역학.
양자 현상은 열 이동이 없을 때 발생한다. 이중슬릿에서 입자가 너무 작아 열 영향이 없으면 파동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카메라를 넣어 촬영하면 열 영향이 생겨 입자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양자 현상 중 하나로 여겨지는 초전도체는 꽁꽁 얼려 열 영향에서 벗어나면 저항이 없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확하지는 않는데, 이중슬릿 실험에서 카메라에 의한 조건 변화는 열 말고 없었다. 조건은 열인 것 같은데, 그 외는 잘 모르겠다. 열에 의한 힘의 작용이 나타나지 않아 파동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을지도 모르겠다.
3) 실현 조건
[조건: 1.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갖추어져야 할 상태나 요소.]
Q. 실현 조건에 대해 알아보자.
불로와 불사의 실현 시기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길잡이가 빨리 가더라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통찰이나 발상이 되도 실험이나 재현을 통해 증명되지 않으면 진척되지 않는다.
목표 시기는 2025년 실험. 2030년 실현. 2040년 보편화. 일단 그보다 빨리 하려고 한다. 하다보면 되겠지.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가능한 빨리 해서 인류 진보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죽지 않기를 바란다.
첫째, 이해 관계.
정부나 학문보다는 기업에서 주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와 학문은 다양한 이해 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시장 원리는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결정으로 다른 이해에서 다소 자유로워 기업이 주도하기가 좋다. 앞에서 기업이 이해 관계로 나타나는 여론을 대응하여 정체를 막고 뒤에서 정부와 학문이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만약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발전할 수 있다면 정부나 학문 또는 그 외라도 좋다.
둘째, AI 발전.
AI가 자아를 얻지 않더라도 반복 실험이 수월하여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AI가 자아를 얻으면 특이점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불로와 불사 실현에 도움이 된다.
셋째, 에너지 효율.
전쟁, 분쟁, 마약 등과 같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과학 발전에 투자해야 한다. 현재 인류는 기후 변화 등의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여 위기 상태다.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환경 보호를 말하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있지 않고 과학 발전에 인류의 에너지를 최대한 넣어 발전을 촉진하는 것에 있다. 그런 것이 불로와 불사 실현에 도움이 된다.
3. 사회
[사회: 3.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은 소재와 가공처럼 영역이 다르다. 그렇기에 자연 계열을 탐구할 때 인문 언어 개념을 경계해야 하고, 인문 계열을 탐구할 때 자연 계열 법칙을 맹신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 현상을 통해 불로와 불사의 필요를 알아보자.
1) 체제 변화
[체제: 1.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이나 양식,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 [권력: 1.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원시 질서에 의해 권력이 지배와 복종 개념으로 되어 있다. 모든 개인이 권력을 가진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지배와 복종을 빼고 강제력 행사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면 될 것이다.
Q. 체제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힘의 작용 정리. (인간 -> 가치 -> 힘)
인간은 육체가 달라 상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해할 지능도 있어 힘의 작용이 각자 달라 그대로 두면 질서가 성립 불가하다. 그런 상태에서 공포 -> 도피 논리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하여 질서를 성립시킨 것이 원시 질서다. 원시 질서는 공포 -> 도피 논리로 강자가 약자를 무섭게 하여 따르게 하기 때문에 통상 힘의 작용이 위에서 아래로 일어난다. 그것이 왕정, 신분제, 가부장제 등이다.
힘의 작용이 위에서 아래로 일어나는만큼 권력은 위에서 아래 순서대로 힘의 차이가 났다. 결정권을 권력자가 가지고 지배하는 것으로 질서를 성립시켰다. 특히 유교는 권력을 윤리로 만든 사상으로 모든 인간 관계가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 속에 있었다. 종교에서는 조상, 국제에서는 강국, 국가에서는 왕, 가정에서는 가장 등 다양한 권력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지배했다. 사상, 학습, 성, 관계, 직업, 특기, 취미, 결혼, 출산 등 전부 윗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때론 아랫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 보일 수 있는데, 그것은 윗사람이 결정권을 가지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없다.
조선이 한국이 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주어지면서 모든 개인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원시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권의 행사는 주권자의 국가 결정권과 자기 결정권의 행사가 아닌 선거를 통해 왕을 뽑는 행사가 되었다.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가 된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특정 인간에게 권력을 몰아주어 통치자가 되게 되었다.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 권한은 원시 질서를 근거로 한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인간도 결국 삼권 분립의 강화 또는 진영의 권력 강화를 주장할 뿐이지 실질적인 질서 변화를 말하지는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바뀌어봤자 귀족적 의회제로 바뀔 뿐이다. 이런 것은 절대적 가치로 의심조차 못하는 영역이다.
원시 질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성년에게 선거권이 있어 선거철만큼은 민주주의가 성립되었다. 그것에 의해 조선에 비하면 개인에게 상당히 많은 권리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양심 메커니즘에 의해 반말을 들으면 종종 살해가 발생할 정도로 아직도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살아있다. 현재 한국 사회 내 수많은 차별은 대부분 원시 질서에 의한다. 연령, 성별, 인종, 직업, 학력, 지역, 빈곤 등 차별이 만연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원시 질서인 윤리에 의한다. 당연하다. 권력에 의한 차별이 윤리였던 조선의 윤리인 유교를 논리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의한 차별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그것에 의해 규제, 검열, 억압은 자유 국가 중에서 매우 강한 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나마 자유로워진 것은 디지털의 영향이 매우 크다. 디지털 내에서는 익명일 경우 원시 질서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권과 디지털의 영향으로 성년의 권리에 큰 변화가 발생한다. 성년은 많은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사상, 학습, 성, 관계, 직업, 특기, 취미 등 원시 질서의 관성으로 법적으로 억압되는 것이 남아있으나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미성년은 아니었다. 미성년 보호를 명분으로 대부분 결정권이 보호자에게 들어가게 되었다. 사상을 검열하고 학습을 주도하고 성을 억압하고 관계를 간섭하고 직업을 결정하고 특기와 취미에 개입한다. 대놓고 스마트폰 감시를 할 정도로 미성년에게 결정권은 없었다. 그렇게 결정권을 빼앗은 것이 보호가 명분이기 때문에 되려 인권이라 포장했다. 피지배되는 것이 인권이 된 것이다. 이는 선거권이 없는 것이 크다. 성년은 선거권과 디지털로 결정권을 상당수 확보했는데 미성년은 선거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리 분별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년은 사리 분별을 못하더라도 선거권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미성년에게 선거권이 없는 것은 원시 질서가 원인이고, 결정권이 없는 것은 선거권이 원인이다.
사상 - 미성년의 가치관을 위해 강제로 개입.
식사 - 미성년의 건강을 위해 강제로 개입.
학습 - 미성년의 장래를 위해 강제로 개입.
성 - 미성년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
정치 참여 - 미성년의 미숙을 이유로 강제로 개입.
관계 - 미성년의 친구를 골라 사귀게 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
폭력, 도박, 마약 - 미성년의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
기타 사생활 - 미성년을 보호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
미성년의 결정권은 보호자에게 있었다. 보호자가 피보호자에게 결정권을 허용하는 선은 보통 사회 분위기를 따라갔다.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분위기면 허용했다. 성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면 허용하지 않았다. 기독교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분위기면 허용하고, 기독교 성 엄숙주의에 의해 성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면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나 유교의 지배에 의해 미성년에게 성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게 되게 된다. 보호자마다 태도가 달랐기에 피보호자인 미성년도 결정권이 달랐다. 보통 보호자가 허용하지 않는 결정권은 학습, 성, 정치 참여, 범죄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회는 파탄났다. 미성년 때 결정권을 행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성년이 되어 결정권을 행사하려고 하니 할 줄 몰라서 안하게 되는 것이다. 학습은 권력 획득을 위한 문제 풀이 말곤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성은 터부시 되어 성에 관련된 것이 전부 규제 검열 억압이 되는 것으로 성년이 되고서도 이성 관계를 부정적으로 볼 정도가 되어 현재 20대 초반 연애율은 26% 정도다. 정치 참여를 해본적이 없어 투표도 제대로 안한다. 범죄의 경우는 관련한 것을 무조건 막기만 해서 아예 대응 방식을 몰라 이용당하는 일이 수두룩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파탄난 것이다.
힘의 작용으로 보면 이렇다. 미성년은 원시 질서를 크게 강제하면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성년이 되고 나서도 원시 질서를 크게 강제하면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만들었다. 권력자가 결혼, 출산, 직업 등을 결정하여 강제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돌아갔다. 현재는 성년이 되고 나서 원시 질서를 크게 강제하지 않으면서 성년 스스로가 다양한 것 결정하게 되면서 힘의 작용이 사방팔방 일어나게 되었다. 성년은 결혼, 출산, 경제 활동 등을 할줄 몰라서 하지 않거나 가치관에 따라 하지 않게 되었다.
가치관은 돈이 권력이 되면서 돈을 버는 행위에 공포 -> 도피 논리가 적용되면서 광적으로 집착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포자기하고 무기력하게 살게 되었다. 욕망은 대부분 제거되고 공포에 의해 돈에 집착하거나 공포에 의해 무기력하게 수동적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에 의해 힘의 작용이 일정할 수는 있어도 그게 사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랑을 매매하는 상대를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사회가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결정권을 줄 거면 미성년 때부터 다 결정권을 행사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야 했고, 결정권을 주지 않을 거면 성년 때에 일과 짝 등을 전부 정해줬어야 했다. 본인 인식으로 사물을 볼 게 아니라 힘의 작용을 이해하길 바란다. 가치와 질서를 이해하면 경제 등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시 질서에서 폭력이나 살해 같은 것에 거부감을 느끼도록 공포를 주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공포를 느끼는 인간은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잡아먹힌다. 이는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 가정에서는 가정 폭력, 사회에서는 범죄. 원시 질서는 공포로 따르게 하는 것으로 약자로 만들어서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에게 잡아먹일 수밖에 없다. 폭군에 지배되는 인간이 윤리에 의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처럼 난폭한 학생에게 지배되는 인간이 윤리에 의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윤리를 강조하며 폭력을 비판하는 것은 직접 팔 다리 부러뜨리고,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괴롭힘 당한 것을 보고 화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윤리가 절대적 가치다보니 학교 폭력이 나타나면 보다 더 학생에게 윤리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보다 공포가 강하게 심어진 인간은 일상적인 인간 관계에서 타인이 상처입을 것을 과하게 두려워하면서 관계를 아예 포기한다. 본인이 상처 입을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타인이 상처 입을 것이 두려운 것이다. 공포, 타인을 해치지 말아라. 도피, 타인과 만나지 않는다. 한국인이 과도하게 겸손한 것은 공포로 겸손으로 도피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폭력의 피해자가 되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공포에 의해 만들어진 약자들이 늘어나면서 공포를 무시하는 인간은 더 난폭하게 된다. 그러면서 미성년 강력 범죄는 늘어난다. 윤리를 강조할수록 약자가 늘어나면서 사회 활동이 감소하는 것으로 범죄율은 감소하나 그런 약자를 잡아먹는 인간이 보다 과격해지면서 강력 범죄는 늘어난다. 윤리에 의해 심어진 공포로 약자가 된 인간은 폭력뿐만 아니라 공포 -> 도피 원리를 활용한 불법 종교, 사기, 공갈 등에도 취약해진다. 애초에 윤리가 공포로 약자로 만들어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은 자연스럽다.
난폭한 미성년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성년은 결정권이 없어 일방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대응 자체를 못한다. 그걸 아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 미성년은 대놓고 법을 악용한다. 촉법이니까 형사 처벌 받지 않지? 고3이니까 처벌 수위 낮지? 공포를 느끼지 않는 미성년을 보고 보다 더 윤리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성 터부시는 더욱 더 강해진다. 공포를 느끼는 미성년은 더욱 억압된다. 재미있는 상황이 되었다. 윤리 영향이 크면 범죄율은 줄어드는데 연애율도 줄어든다. 윤리 영향이 적으면 범죄율은 늘어나는데 연애율도 늘어난다. 무슨 성을 범죄마냥 취급한 결과 범죄와 연동되게 되었다.
원시 질서가 원래 그렇다.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한다. 그런데 무서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 무섭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질서가 붕괴한다. 그런데 더 무섭게 하면 개인의 권리가 하나씩 침해된다. 원시 질서를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 때문에 무서워하는 인간의 권리는 더더욱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왕정이라면 어차피 왕과 일부를 제외하면 주권이 없었으니까 문제가 크지 않다. 그러나 민주정이라면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으므로 개인의 권리 하나씩 파괴되는 것으로 체제 붕괴가 되게 된다. 원시 질서는 존재만으로 개인주의 체제를 파괴한다. 이런 질서로는 결코 자유 이념이 실현될 수 없다.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 신분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원시 질서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온갖 형태의 차별은 기본적으로 원시 질서를 기초로 한다. 한국에서 돈의 가치가 높은 것은 돈이 권력을 얻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는 국가와 죽음을 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미국의 영향이다. 돈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최강국이 돈의 가치를 보장하는 시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강국의 힘의 상징인 돈의 가치는 국가 권력에 의해 부풀려진다. 지극히 유교적인 상황이다.
양심 메커니즘을 이해했다면 성을 터부시한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이제는 알 것이다. 이성 관계에서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리상 자연스럽다. 성 터부시는 남녀칠세부동석과 여성의 정조 관념으로 정조 관념에 의해 특히 여성이 더 많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다보니 여성은 이성 관계에 있어 수동적이게 된다. 요즘 용어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보호자 동의 없이 성관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에게 가스라이팅 한 것이다. 정조를 지키지 않는 것은 죄다. 그게 강하게 주입할수록 비틀린 욕망이 표출되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이성의 동성애 창작물을 즐기는 것이 공공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유명하다. 이성 관계가 죄다 보니 이성의 동성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여성뿐만 아니라 많은 인간이 이성 관계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창작물, 아이돌, 짐승 등으로 욕구를 충족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유사 연애 산업을 즐겨서 이성 관계가 멀어진 게 아니라 성을 터부시하여 이성 관계가 멀어지니까 유사 연애 산업을 즐기는 것이다.
가부장제 가치관을 가진 여성주의자들이 이성과의 성관계에 죄책감을 느끼니까 여성 성적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화에 반대하는 것이다. 같은 가부장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그런 주장에 동조한 것이다. 여성 정조 관념과 여성 권력에 의해 남성 성적 대상화나 남성 성 상품화에는 또 반대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남성이 여성 성 상품화를 즐길 수 없고 여성이 남성 성 상품화를 즐길 수 있다 하여 이것을 남성 차별로 보면 안 된다. 생산자가 생산을 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받자 소비자가 소비를 못하는 것을 보고 이걸 소비자 차별로 보면 어떻게 하나. 여성성이 억압 받으니까 남성이 소비를 못하는 것이고 남성성이 자유로우니까 여성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상적인 이성 관계가 되기 어려웠다. 과거에는 권력자가 결혼과 출산을 다 결정해버려서 판단하지 않고 가부장제에서 지배되며 그냥 살았다. 현재는 권력자가 결정하지 않았으면 스스로 그걸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미성년 때 성관계를 다 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했어야 했는데 윤리라면서 성을 터부시하면서 성에 관련한 모든 것을 다 규제하고 검열했다. 윤리를 절대적 가치로 인식하지 않으면 이 과정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저출산은 그냥 윤리에 의한 결과다. 학생일 때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여성의 정조 관념을 주입하며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막지 않고 권장하여 이른 결혼을 하게 했다면 대부분 연애 결혼하고 출산했다.
체제 적응 실패로 사회 파탄난 것뿐만 아니라, 원시 질서에 의해 체제의 가치는 망가졌다. 자유주의 체제는 자유가 억압되고 민주주의 체제는 주권이 침해되고 시장주의 체제는 시장이 훼손된다. 체제에 속하기로 판단한 이상 체제 가치를 기준으로 정책과 제도가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윤리를 기준으로 정책과 제도가 나왔다. 정의롭게 자유를 억압하고 정의롭게 주권을 침해하고 정의롭게 시장을 훼손했다. 윤리에 의해 피해를 받는 인간조차 그게 윤리 때문인지를 몰랐다. 윤리에 의해 규제되고 검열된다. 윤리에 의해 결정권을 빼앗긴다. 윤리에 의해 비리와 담합이 정당화된다. 권력이 달라지고 디지털이 있어 성년의 결정권이 많이 보장되어도 사실상 한국은 아직 윤리에 의해 유교 사회, 가부장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2) 사회 인권
[인권: 1.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 [권리 1.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
Q. 인권과 권력의 차이를 알아보자.
민주정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에서 인권이란 주권의 온전한 행사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 그것을 통해 국가에 속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 어떤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방법을 아는 것은 필수적으로,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통치 교육은 필수적이다. 자아, 가치, 질서, 체제, 체계 등에 대한 교육을 했어야 했다. 자유와 민주와 시장 등을 알게 했어야 했다. 윤리로 두렵게 하는 게 아닌 사회 계약을 하게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가 되었어야 했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주권자를 통치자로 보고 있지 않다. 원시 질서에 의해 민주주의 체제를 왕이 백성을 궁휼히 여기듯이 윗사람이 아랫사람 보살펴 권리를 보장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냥 체제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원시 질서를 가르치며 말만 잘듣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정권을 가지고 살게 하는 게 아니라 입시 교육만 하면서 대학과 직장에 잘 가기만 하려고 하고 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라면 현재 정치 권력을 가진 인간이 일제히 사표를 내도 즉각 대체가 가능할 정도로 모든 개인에게 사회와 체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고 그냥 왕을 뽑는 권리를 주는게 민주주의라 생각하니, 선거 때만 민주주의가 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귀족적 의회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민주정과 독재정을 비교하면서 현명한 독재자가 차라리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주권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주권자는 통치 교육을 받지 못하여 정상적인 주권 행사를 할 수 없으므로 정상적인 주권이 있다 하기 어렵다. 주권은 인권의 기본이므로 정상적인 인권이 있다 하기 어렵다. 원시 질서에 의해 유교 사회에서 권력만 분산되고 기술이 발전된 형태가 현재 한국이다. 그것으로 선거권이 있는 인간은 다소 자유로워진 것. 선거권이 없는 미성년은 아직도 지배되는 것. 디지털 내에서는 잠시 동안 원시 질서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 이것을 기초로 사회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인권이 없다면 도대체 인권 운동이란 무엇인가? 권력 투쟁이다. 현재 대부분 인권 운동은 인권 운동이 아닌 권력 투쟁이다. 인권과 권력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고 권력은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다. 통상 권력을 가지고 인권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지는 않는다. 인권이 목적이고 권력이 수단이어야 하는데 반대다. 인권이 수단이고 권력이 목적이다. 지극히 유교적인 상황이다. 그러니까 인권은 그대로인데 권력만 높아지고 있다.
노동 인권 운동의 본질은 자본가를 정적으로 규정한 노조 권력 투쟁. 노동자를 지배하던 생산 제도에서 노조 권력만 높아진 결과 - 귀족 노조.
여성 인권 운동의 본질은 이성을 정적으로 규정한 여성 권력 투쟁. 가족 구성원을 지배하던 가부장 제도에서 여성 권력만 높아진 결과 - 1등 시민.
미성년 인권 운동의 본질은 보호를 명분으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보호자 권력 투쟁. 미성년을 지배하던 교육 제도에서 보호자 권력만 높아진 결과 - 금쪽이.
귀족 노조와 1등 시민과 금쪽이는 내가 붙인 게 아니라 세평이다.
노동 인권 운동은 현재 생산 제도는 그대로 두고 노조 권력을 통해 이익을 얻을 권리만 주장해왔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노조 권력이 커지기만 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높은 임금과 우수한 복지가 주어지고 있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파견 등은 여전히 낮은 임금과 빈약한 복지가 주어지고 있다. 애초에 노조가 있어서는 안 된다. 노조가 없어도 모든 개인은 마땅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조는 단지 담합의 규정화로 일부 노동자만 이익을 볼 뿐이다. 노동 시장의 계약은 간단히 단기 계약과 장기 계약으로만 있으면 된다. 그 계약을 돕는 기관과 계약의 강제력이 높으면 된다.
여성 인권 운동은 현재 가부장 제도는 그대로 두고 여성 권력을 통해 이익을 얻을 권리만 주장해왔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여성 권력이 커지기만 했다. 가부장제에서 미성년이 천대되었듯이 여성도 천대되었다. 여전히 여성은 천대되고 있다.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배려와 보호를 말하며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사회 진출에 불리해졌다. 왜 힘들고 어려운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권리 침해인지 이해하려면, 교육으로 이해하면 된다. 교육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것이 개인의 권리다. 여성주의자들은 원시 질서에 의한 양심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가부장제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그런 취급하는 여성성을 성인지 감수성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라고 강요하고 다녔다.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는 가부장제에 근거한다. 가정은 여성의 역할이란 가부장제적 고정 관념의 결과다. 그런데 여성주의는 이성을 정적으로 규정한 권력 투쟁이다. 대놓고 남성 권력과 싸우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여성 인권에는 관심이 없다. 여성이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정치 참여가 높은 세대에 관심을 주고 고위직 할당 등을 한다. 그렇기에 가정에 속하는 문제는 전부 여성 권력 획득 수단이 된다. 그러면서 어느 것도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못한다. 단적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하라니까 비혼 주장하고 다니지 않았는가. 그것을 여성 인권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여성 권력 문제로 접근하면 이해를 할 수 있다.
남성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은 남성을 권력 투쟁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남성 혐오가 아닌 정적 혐오로 보면 된다. 흔히 신세대는 남성 인권이 낮고 여성 인권이 높다고 하면서 불평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남성 인권은 높고 젊은 남성 권력은 낮다.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남성 인권 자체는 높다. 그러나 여성주의에 의하여 정적으로 규정된 젊은 남성 권력은 낮은 상태다. 반대로 여성 인권은 낮고 젊은 여성 권력은 높다.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 인권 자체는 낮다. 그러나 여성주의에 의하여 주류인 젊은 여성 권력이 높은 상태다.
대상 전체가 인간으로서 권리가 보장되느냐와 특정 대상이 권력이 높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노예 계층에서 특정 누군가 힘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른다고 그 노예 계층의 인권이 높은 게 아니다. 신분제 두고 노예에게 이익 준다고 인권 보장된 게 아니란 말이다. 인권과 권력의 차이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인권이 낮으니까 여성 징병도 되지 않는 것이다. 가부장제 가치관으로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이다. 모든 혜택이나 복지 지원 등 전부 기본적으로 가부장제를 기초로 한다. 스윗한게 아니라 가부장적인 것이다. 거기에 여성 권력이 더해지면서 과도한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체제에 합리적어야 한다. 할당제를 할 게 아니라 우수한 교육을 해야 하고, 여성 징병 하지 않을 게 아니라 여성 1%가 징병이 되더라도 일단 제도적으로는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성별 갈등은 적대 당의 정치 공작에 의한 정당 갈등으로 이해하면 된다. 대놓고 여성주의가 남성 권력과 투쟁하겠다고 외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것이 인권 운동이라 주장한 것에 휘말려 현상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사회가 대응을 못한 것이다. 권력 투쟁 중인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권력을 주니 권력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이것이 정쟁임을 이해하지 못하여 젊은 남성은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당했다. 수많은 여성 혜택은 정쟁 승리의 결과물이다. 그러면서 이성 관계는 더욱 파탄났다.
미성년 인권 운동은 현재 교육 제도는 그대로 두고 보호자 권력만 높아졌다. 애초에 미성년은 성년보다 인권이 없다. 인권은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인데 그것이 보호를 명분으로 지배하면서 결정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촉법 등의 문제로 미성년이 강한 권리가 있어 보일 수 있는데, 미성년에게 인권이나 권력이 있는게 아니라 미성년 문제를 다루는 보호자에게 권력이 있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결정권. 누군가 이익을 본다고 인권이나 권력이 있다 여기면 안된다. 결정권을 기초로 봐야 한다.
미성년이 처벌을 받지 않거나 적게 받아 제멋대로 한다고 해서 권력이 높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정권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데 어떻게 권력이 높을 수가 있겠는가. 보호하겠다며 지배하는 지배자 권력이 높지. 권력이 낮으니까 순장되듯 동반 자살을 위해 살해되고 부부싸움에서 장난감처럼 집밖으로 내던지게 되고 재미로 짖밟히고 되는 것이다. 현재 미성년 위치가 키우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결정권이 보호자에게 있으니까 보호자 권력에 의해 미성년이 보호가 될 수도 있고 장난감이 될 수도 있다. 보호자가 미성년을 짐승과 대등하게 키우는 일이 있어 인간 아이와 짐승 아이로 구분하고, 짐승을 더 아끼는 사례도 있을 정도다. 보호자가 짐승을 인간 취급하면 인간이 되고, 미성년을 짐승 취급하면 미성년은 짐승이 된다. 이러다보니 보호자 없는 미성년은 제대로 살기 어려우나, 때로는 차라리 보호자가 없는게 살기 쉽다.
진짜 개인을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로 봤으면 정치 참여 교육을 위해 적어도 2차 성징이 시작하는 10세부터 선거권을 주고 체제 교육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자유도 모르고 민주도 모르고 시장도 모른다. 생산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정치도 모른다. 성을 알려 해도, 일을 하려고 해도 무조건 막는다. 보호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결정권이 없어 일방적으로 지배될 뿐이다. 그러다보니 그저 원시 질서로 말을 잘 듣게 하고 입시 교육만 한다. 물론 보호자마다 다른 걸 가르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렇기에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중이다.
검열 기관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우습다는데, 권력을 기초로 보면 자연스럽다. 권력이 높으면 검열이 적고 권력이 낮으면 검열이 많다. 그냥 권력이 윤리라는 것을 알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검열 기관은 성을 터부시하며 정의롭게 규제하고 검열하면서 성 관련 가치를 망가트리는 것으로 정의롭게 국가를 자살시키고 있다.
인권 운동이 권력 투쟁이 되면서 인권이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면서 권력을 얻기 위한 과대 포장이 발생했다. 분식 회계하듯이 가치를 부풀려서 보다 높은 이익을 얻는다. 그것을 통해 권력을 늘린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난이도가 높아진다. 허들이 높아진다. 참여율이 감소한다. 노동 참여율이 감소한다. 결혼 및 출산 참여율이 감소한다. 보호자를 상대하는 교육 기관 및 의료 기관 참여율이 감소한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제에서 여성 권력을 얻기 위해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던 일을 과하게 어렵다는 식으로 포장하고 있다. 가사 노동의 가치를 월 500만원 또는 전체 500조원에 상당한다는 듯이 말이다. 남성이 가사 노동을 하면 논다고 비하하면서 여성이 가사 노동을 하는 건 또 엄청 가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것으로 과한 이익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통해 여성 권력을 늘려나간다. 그러면서 가사, 육아, 교육 전부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허들이 높아져 참여율이 감소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와 비용을 낮춰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 관련된 것은 여성 권력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와 비용을 되려 높였다. 가사는 월 500만원 이상의 가치고, 결혼은 무조건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고, 출산은 무조건 2주 400만원인 산후조리원에 가야 하고, 육아는 잠깐 자거나 자리를 비우는 것도 허락받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고, 교육은 무조건 높은 교육비를 써야 하는 일처럼 만들었다. 엄청나게 어렵고 힘들며 사회에 공헌하기에 그걸 하는 본인이 위대하고 고상하여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엄청 권위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미성년 보호자를 상대하는 교육 기관과 의료 기관이 기겁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러면 당연히 참여율이 감소한다.
그럼에도 여성 권력을 위해 이것을 막기는커녕 이런 것을 위해 복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복지를 지원해도 여성 권력을 위해 난이도와 비용은 거기에 맞춰 더 오를 수밖에 없다. 한없이 오르는 난이도와 비용에 의해 국가 세금은 한계에 도달하고 참여자는 더더욱 줄어든다. 과도한 난이도와 비용에 매달리면 사회가 버티질 못한다. 난이도와 비용을 낮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여성주의는 권력을 성별로 차지할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차지해야 한다.
의료와 출산은 권력에 의해 상대적으로 가치를 부풀려져 둘 다 난이도와 비용이 높은 상태다. 보통 의사는 이익이 높아 선호되고 그 중에서 난이도와 비용 대비 이익이 높은 과에 몰리고 낮은 과는 기피된다. 보통 임산부는 성 터부시에 의해 아기, 육아 등의 가치가 낮아져 이익이 높지 않아 기피된다.
얼마나 성, 이성, 성애, 그것을 통한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떠들고 다녔으면 여고에서 출산하겠다는 이가 적고, 출산하더라도 여성 아이를 원한다는 의견이 많다. 여성 권력에 의해 이것을 방치 하기는커녕 적극 지원했으니 저출산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한국 저출산은 간단하다. 성 터부시 + 미성년 결정권 없음 + 성년 결정권 있음에 의한 것. 거기에 이성을 정적으로 규정하고 여성이 하는 일을 권력 투쟁 수단으로 삼으면서 난이도와 비용을 올리는 것으로 저출산이 확정된 것이다. 자유로워지면서 출산율이 2가 넘다가 1이 되었고 여성 권력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1이 넘다가 0.7이 되었다.
자꾸 돈, 경제, 부동산, 수도권 집중 이런 것을 말하는데, 이런 것은 힘의 작용에서 결과에 위치한다. 가치가 힘의 작용을 결정하는데 왜 힘의 작용에 의한 현상을 말하는건가. 결혼과 출산에 가치를 못느끼면 200만원 벌던 인간이 300만원을 벌면 취미 비용 생기는 거고, 300만원 벌던 인간이 400만원 벌면 집살 돈 생기게 된다. 한 500만원 이상 벌면 다른 거 다 하고 결혼해볼까 생각이 들게 된다. 이게 지금 결혼 가치가 높아서 그런 것 같은가? 부유하고 여유가 있는 인간이 결혼을 하는 것을 보고 가치가 높은 거라 착각하는데, 가치가 낮으니까 부유하고 여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짐승용 유모차 판매량이 인간용 유모차 판매량의 두 배가 되었다고 한다. 짐승 키울 돈은 있고 아기 키울 돈은 없다. 이것은 짐승 애정은 있어도 아기 애정은 없다는 것이다. 이게 다 성 터부시하고 이성 관계 박살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도대체 명품 소비율 1위 국가에서 무슨 경제 타령을 하는 것인가. 아이돌 보러 갈 돈과 시간은 있고 연애할 돈과 시간은 없다. 여행 다닐 돈과 시간은 있고 결혼할 돈과 시간은 없다. 집 살 돈은 있어도 애 낳을 돈은 없다. 이게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가치관 때문이 아닌가!
낚시를 예로 들어보겠다. 낚시 하기 싫은데 자꾸 하자고 꼬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건이 붙는다. 대신 비용은 네가 다 내. 낚은 거 팔아서 내가 사고 싶은 거 사자. 나 잘테니까 운전해. 하기 싫은 걸 하라니까 난이도와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이유는 애초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남녀칠세부동석과 여성 정조 관념으로 가치관이 부정적으로 되어 공포를 느끼고 하기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눈이 높아진 것의 본질은 SNS가 아닌 성 터부시에 의한 성에 대한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다. 하기 싫은 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고 싶었으면 헌팅하는 남성과 같이 마음 편하게 애정을 느끼는대로 적극적으로 성관계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게 되어 있다.
하고 싶지는 않은데 다른 사람들 보고 환상만 갖는다. 하고 싶지 않으니까 더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하고, 그 조건이 충족되는 인간이 나타나기만을 바란다. 이런데 얼마나 임금 올리고 육아 참여 늘려야 해결되겠는가? 최저임금을 월 500만원 주고 남성 육아 참여를 하루 8시간 강제해야 하는가? 그러면 사회 파탄난단 말이다. 가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가치 개념을 이해해야 이걸 이해할 수 있는 거고, 눈 앞의 이익을 위해 관광지나 시장 가치 폭락시키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같은 저출산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랬으면 인간은 진작에 멸종했다. 그냥 나둬도 알아서 번식하는데 그게 일어나지 않는 것은 어떤 인위적인 현상에 의한 것이다. 그게 바로 윤리다. 저출산 일어나도록 열심히 성 터부시하며 야한거 검열하고 미성년 성관계 못하게 장소 막아대고 성교육 반대하고 뭐 다 해놓고 모른채하는가? 만화에 약간의 노출만 나와도 검은 칠해버리고, 스팀에 올라온 성년이 즐기는 게임조차 차단하지 않았는가? 왜? 그렇게 해서 원하는대로 보호자 눈 밖에서 미성년이 멋대로 연애하고 성관계하고 결혼하는 거 막았잖는가? 그렇게 해서 성년이 되고서도 보호자가 짝을 지정하며 강제하지 않으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게 되지 않았잖는가? 원하는대로 되었는데 왜 불만을 가지는가?
노출이 있는 간판에 발작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에 발작하지 않았는가? 성적인 예술에 발작하고 성적인 창작물에 발작하지 않았는가? 포르노와 성매매를 막으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지 않았는가? 양심 메커니즘에 의해 정의롭게 성을 다 부정하고 다니지 않았는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기만 해도 처벌하라 외치고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죄악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미성년은커녕 성년조차 성적 자유를 누리면 문제가 심각하다 떠들지 않았는가? 여성이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기 위해 꾸미는 것도 죄악이라 하지 않았는가? 아내가 남편에게 도시락 싸주는 것도 노예라 말하며 비난하지 않았는가? 여성 성년조차 그루밍이니 가스라이팅이니 말하면서 이성 관계에서 일방적 약자로 만들어 대등한 이성 관계를 막지 않았는가? 현재 저출산은 그냥 권력이 원하는대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에서 원시 질서로 연상에게 반말하는 것도 두려움에 가질 정도로 일상적인 공포 속에서 덜덜 떨며 도피하게 만든 결과가 바로 사회의 죽음이다. 유교 질서에 맞는 정의로운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부정하고 위아래 없는 사악한 평등을 긍정하려고 했으면, 체제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어야 했다. 가치와 질서 개념을 이해했으면 미성년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성을 알고 즐기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성기능이 작동하는 시기부터 가져야 한다. 2차 성징이 되면 바로. 그래야 성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이성 관계를 맺으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한다. 그러지 않고 유교의 가르침대로 정의롭게 개인의 성을 지배하려고 하니까 다 파탄났다.
[C. 민주적인 정교일치] 이란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군사 독재가 끝나자 신정 국가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인 정교일치 사회다. 국민 대다수가 정교일치를 주장하면 민주적으로 정교일치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에 의한 개인 권리 침해가 발생한다. 이는 윤리도 동일하다. 윤리 자체가 종교에 의한 것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자. 개인이 윤리를 강조할수록 민주적으로 윤리에 의한 사회가 된다. 그것은 곧 정교일치 사회라는 것이 된다. 현재 한국의 억압은 민주적으로 유교 정교일치가 일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정교일치 현상에 대해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규제하고 검열하면서 정의로운 국가 자살을 민주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 현상은 많은 선진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정교분리가 되려면 원시 질서에서 벗어나 문명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3) 질서 진보
[진보: 1.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Q. 질서의 진보와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려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공포 -> 도피인 질서 원리에서는 강제되는 공포를 기초로 힘의 작용을 제어했다면 판단 -> 계약인 문명 질서에서는 자유로운 판단을 기초로 힘의 작용을 제어해야 한다. 전혀 다른 개념이다. 기존처럼 무섭에 하기만 하면 잘될 거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하다.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 못하고 절대적 가치를 마치 선천적인 것마냥 취급할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고 질서를 바꾸는 진보를 해야 한다.
현재 많은 이들이 희생하는 일을 포기하고 돈을 많이 주는 일을 하러 가고 있다. 이는 공포 -> 도피인 원시 질서가 판단 -> 계약인 문명 질서로 변화하는 흐름보다는 돈이 권력이 되자 윤리에 의해 공포 -> 도피로 돈을 좇아가게 된 것이다. 윗사람 명령이 권력이었을 때에는 명령으로 일을 하였으나 돈이 권력이 되자 돈으로 일을 한다. 과거 명령이 아닌 일은 하지 않았듯이 돈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명령의 가치와 돈의 가치, 그리고 개인의 고유한 가치. 이 중 세 번째가 문명 질서다.
돈의 가치가 다른 국가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은 공포에 의한 것이다. 권력이 없으면 지배될 거야. 무서워 권력을 얻어야지. 돈이 없으면 지배될 거야. 무서워 돈을 벌어야지. 차이가 없다. 뭔가 한국 사회 현상을 달리 볼 게 아니다. 다 유교를 기초로 한다. 그정도로 유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반말, 존댓말도 버리지 못한 국가에서 무슨 유교 지배에서 벗어났겠는가? 물론 반말, 존댓말 버릴 수 있는 인간이 있듯이 예외는 있다.
미성년 때 결정권이 없어 온갖 가치가 엉망이 되어 돈이 최고 가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돈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계약한다. 이는 연애나 결혼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성 관계 가치가 성 터부시로 무너지면서 돈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계약한다. 순수하게 일이 좋아서, 상대가 좋아서 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권력이 윤리인 것과 돈이 권력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현상이 보인다. 한국 사회가 조선 사회와 다른 것 같지만 성년이 선거권을 가져 원시 질서에서 발언권이 어느 정도 인정 된 것이고, 미성년은 선거권이 없어 원시 질서에서 발언권이 인정되지 못한다. 어린 애가 무슨, 건방지게. 뭐 이런 식이다. 미성년의 권리는 어디까지나 권력이 있는 보호자 내에서만 보장된다. 사실상 한국 질서는 유교의 원시 질서로 조선 질서와 농도가 차이 있을 뿐 본질적으로 같다. 이제 이런 인간을 지배하는 질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공산주의와 같이 권력 투쟁을 충동질하고 평등을 명분으로 개인의 주권을 포기하게 만들어 공산당의 지배를 받게 만든 사상이나, PC주의나 여성주의 같이 인권을 권력 투쟁의 도구로 삼은 사상들은 진보가 아니다. 질서의 진보를 위해 어느때보다 인문 계열이 열심히 해야할 때다.
첫째, 자유주의 체제.
윤리의 필요가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해서 질서를 만드는 것에 있으니까 힘의 작용을 제어할 수 있으면 굳이 윤리는 필요가 없다. 공포 -> 도피에서 판단 -> 계약으로 질서를 바꾸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개인의 자유가 성립된다. 비과학적인 가치의 절대성을 배제하고 과학적인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한다. 질서는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존재에 속하고자 하는 판단과 그에 따른 계약으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하여 성립시켜야 한다.
원시 질서는 용기를 줘서 자유롭게 살게 하는 게 아니라 공포를 심어서 복종하며 살게 만드는 역겨운 질서다. 원시 질서에서는 절대적 가치에 의해 판단하지 않고 광기 속에서 몰매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것을 해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듯이 행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도 윤리 앞에서는 무시되게 된다. 성, 마약, 불륜 같은 사건이 나타나면 정의롭게 법치를 파괴한다. 원시 질서에서는 그 어떤 현대 체제도 부정되어 훼손된다. 체제의 파괴는 체제에 사는 인간의 파멸. 이제는 문명 질서로 진보하여 용기를 가지고 자유롭게 판단하여 계약을 지키는 것으로 질서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원시 질서가 익숙하다보니 인간 관계에서도 서로를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하려는 태도가 나오고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어떤 공포를 느끼고 강박적으로 하려는 태도가 나온다. 인간 관계에서 공포를 느낄 때, 단순한 공포 -> 명령이라면 반항이나 저항을 할 수도 있지만 공포 -> 도피라면 반항이나 저항이 아닌 신앙이나 추앙을 한다. 그것이 설령 지옥이란 만들어진 공포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공포에서 도피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추앙된다. 분명 공포는 생물 메커니즘 중 하나로 없어질수는 없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를 상대적 가치로 만들 수는 있다. 공포로 판단하지 못하면서 공포로부터 도피하게 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데, 그것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가치는 상대적으로 절대적 가치는 전부 비과학이다.
다양한 규제와 검열을 과학과 체제를 기초로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은 계속 발전하는 분야로, 이곳에 무분별한 규제와 검열을 하다보면 세계 흐름에 뒤쳐질 수 있다. 힘의 작용을 이해하고 판단 -> 계약에 따른 질서가 성립될 수 있도록 한다. 주로 규제와 검열되는 가치에 속하는 성은 미성년이라 하더라도 야한 것 좀 보거나 성관계 좀 한다고 사회나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미성년일 때 적극적으로 보고 그걸 긍정적으로 여겨야 자연스럽게 이성과의 성관계 속에서 연애, 결혼, 출산이 가능하다. 지금과 같이 성을 터부시하고 여성성이 여성 권력의 도구가 되면 지나치게 허들이 높아져 참여자가 너무 적어진다.
지역 소멸은 저출산과 지역 이동에 의한 현상이다. 그리고 저출산과 지역 이동은 둘 다 윤리에 의한 현상이다. 원시 질서 때문에 이성 관계가 붕괴하여 명령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도 이뤄지지 않고, 원시 질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 눈 앞의 지배가 싫어 벗어나기 위해 원시 질서 농도가 짙은 폐쇄 사회에서 벗어나 원시 질서 농도가 옅은 개방 사회인 수도권으로 몰리게 된다. 본래 권력이 윤리인 사회에서는 권력을 얻는데 좋은 장소로 몰리긴 하나, 한국이 되어 개인주의 체제 도입 후 성년에게 결정권이 보장되면서 그 현상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경제적인 현상은 그 가치에 의한 결과다.
윤리에 의해 일어난 현상이므로 원시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애초에 지역 소멸은 막을 수가 없다. 대기업이 상주한 지역에는 사람이 몰리기는 하는데, 그것은 애초에 지역을 기피한 이유가 지역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있는 곳은 사람이 몰려 보통 개방 사회이고, 고용되는 인원의 연령대가 비슷하여 폐쇄 사회에 비하면 원시 질서에 의한 지배 체계가 그나마 덜하다. 그러므로 지역 소멸을 막겠다고 자원을 쓰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이 없다.
저출산이나 지역 이동이 이익을 위해서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익은 가치관으로 결정된다. 윤리는 판단하지 않고 행하는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그것이 가치에 속한다는 인식이 없을 수 있는데, 가치에 속한다. 이익은 가치와 힘의 작용 사이에 가치 판단의 결과로 가치가 먼저 작용한다. 저출산과 지역 이동은 그것이 이익이란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다. 성을 터부시하여 성에 양심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죄책감을 느끼고, 성 결정권이 없어 학습하지 못하고, 여성 권력으로 난이도와 비용을 올리면서 그것이 손해란 결론이 나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다. 만약 하더라도 조건을 보게 된다. 이런 사회 문제는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해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민주주의 체제.
통치 교육과 통치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사회에서 사는 인간이 사회 체제를 이해 못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더구나 주권을 가진 인간이라면 통치를 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하므로 더욱 더 정상이 아니다. 자아와 체제를 이해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면 스스로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가 성립한다.
현재 토지 민주주의에서는 토지 소유자가 적어 이해관계 성립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개인의 정치 참여가 줄어 민주주의 체제 이념 실현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개인에게 주권이 있음이 성립되려면 모든 개인이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모든 개인과 이해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역할 민주주의가 되어 분야의 대표가 정치 권력을 쥐어야 한다. 도시에서 지역 대표는 생판 남일 확률이 높지만 분야 대표는 적어도 아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게 진짜 중요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이 주권자의 대표라니 이게 얼마나 비정상적인가. 이건 그냥 왕과 귀족을 뽑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개인이 주권을 가지는 것이 성립되려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통치 교육과 역할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셋째, 시장주의 체제.
사회에서 차별은 모든 개인은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라는 것을 이해해야 끝난다. 일방적 착취도 일방적 희생도 없다. 능력이 있는데도 무시하고 선출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능력이 없는데도 할당하는 것도 차별이다. 물론 이것은 강제될 때의 이야기다. 시장 내에서는 소비자 권리가 보통 우선된다. 법적으로 차별에 관한 규정이 있으나 체제를 기준으로 보면 완전한 사기업일 때에는 자유롭게 판단하여 고용하는 것이 타당하고,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일 경우에는 차별하지 말라는 정부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공정 경쟁에 있어 기준은 소비자다. 시장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대상에게 경쟁적으로 구애하는 것과 같다. 경쟁에 이겨 소비라는 사랑을 받기 위해 가격대비 품질과 서비스가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통상 경쟁 승리자와 소비자가 이익을 보는 것이 시장이다. 기준이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것은 단순히 담합의 규정화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책, 우유, 영화 등 전부 생산자를 생각하다 소비자가 손해를 본다. 거기에 노조, 협회 등의 주장에 생산자를 우선하는 것도 포함된다.
노동 임대 상품을 구매하는 기업이 이익을 보게끔 하면 노동자가 착취를 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는 기업을 억지로 살리면서 사회 자원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업이 사라지고 유능한 기업을 늘리면 점점 경제가 활성화되고 노동자 대우도 좋아지게 된다.
시장에서 소비자를 기준으로 선택받지 못한 생산자는 경쟁에서 뒤쳐져 시장이란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한다. 그 다음에 복지를 통해 경쟁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서 시장을 활성화하고 시장 참여자 능력을 올리면서 경제를 성장하게 한다.
시장 거래는 계약을 기초로 되어야 한다. 현재 고용 체계는 대등한 계약이 아닌 대등하지 않는 종속이다. 리턴과 리스크를 고려해 단기 계약과 장기 계약으로 나누고, 시장 감독 기관은 정당한 계약과 계약 준수가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면 된다. 임금 체계도 연공 서열에서 벗어나 역할 중심을 통해 기여도만큼 지불되어야 하고, 포괄임금제를 폐지하여 일한만큼 지불되어야 한다. 특수한 직종은 따로 예외처리해야지 그것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아직 공포 -> 도피인 원시 질서라 판단 -> 계약을 무시하는 일이 너무 많다. 계약과 무관하게 동작하는 질서가 있기 때문에 계약이 무시되는 것이다. 윤리 같은 게 질서니까 체제를 다 무시하게 된다. 계약의 중요성보다 권력의 권위가 중요하니 멋대로 계약을 파기하고 큰 위약금을 지불하고 있다. 체제로 사는 게 아니라 윤리로 살고 있다. 지극히 반체제주의적이다.
인간 -> 가치 -> 힘라는 힘의 작용을 이해했다면 가치 판단에 의해 생산으로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지배 사회였다면 개인의 가치 판단이 되지 않고 절대적 가치나 무력으로 힘이 작용되게 되었겠지만, 자유 사회에서는 개인의 가치 판단이 되는 것으로 개인은 가치 판단에 의해 생산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기 부여다. 모바일 게임 동기 부여가 굉장히 효율적이고 좋은 것을 고려하면, 그것을 토대로한 가치 생산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좋다. 난이도 낮은 생산 -> 학습 -> 성장 -> 난이도 높은 생산의 반복이 가능해야 한다.
시장은 사회의 엔진이다. 시장을 효율적으로 돌리고 나서 그에 따른 문제를 다른 정책으로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솔직히 사회가 윤리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로와 불사로 어떻게든 질서 진보를 이뤄 자유 이념 실현을 해보도록 하겠다.
4. 생명
[생명: 3. 동물과 식물의, 생물로서 살아 있게 하는 힘.]
불로와 불사를 위해 생명이 무엇인지 통찰하여 발상해보겠다. 도대체 생명은 어떻게 해서 다른 물질과 다른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1) 세포 생성
[세포: 1. 생물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
Q. 세포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세포가 만들어졌는지 알아보자.
몇 가지 전제를 해둬야 할 필요가 있다.
A. 우주의 법칙은 인간의 인문 언어 개념과 별개다.
B. 생명은 원시적으로 단순하다.
C. 생명은 전부 본질이 같다.
D. 물리 및 화학 학문만으로 생명 학문이 성립이 되어야 한다.
E. 기록, 재현, 우연 개념만으로 생명이 성립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조건, 수많은 생명들, 동식물, 사자, 호랑이, 토끼, 고양이, 해바라기, 벚꽃, 멜론, 딸기, 토마토 그 외 세균, 바이러스 등등에 대해 전부의 성질을 고려해 모순이 없는 무언가를 찾는 것. 그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온도의 차이, 공기 성분의 차이, 생물의 움직임, 화석, 시대별 화석 위치 등을 전부 고려하여 통찰하는 것으로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 물론 내가 그걸 전부 의식적으로 할 수는 없다. 그냥 그런 조건을 설정하고 발상이 나올 때까지 생각할 뿐이다. 일단 발상 개념은 그렇고 실제 발상은 생물 개념이 먼저 떠오르고, 거기에 맞춰 세포 개념을 떠올리다 물질 붕괴라는 개념에 닿게 되었다.
첫째, 세포 감각
현재 세포는 빛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느끼고 접촉을 안다. 감각을 전기 신호로 통신한다. 세포가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세포에게 물리 및 화학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기파의 생성과 수용과 활용이 가능하다.
둘째, 세포 분열과 유전
현재 세포는 세포 분열과 유전을 통해 기록된 것을 재현할 수가 있다. 현재 그 기록은 한정적이지만, 아무것도 없이 무언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최초에는 반드시 기록이 필요하다. 그렇게 기록된 것을 재현하는 것이 분열과 유전이다. 그러므로 분열과 유전의 본질은 기록과 재현이다.
셋째, 세포와 생물.
세포와 생물은 본질이 같다. 생물이 먹고 싸야 존재할 수 있듯이 세포도 먹고 싸야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세포 또한 어딘가 결핍된 상태. 물질을 먹어 에너지를 생산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거기서 물질 붕괴가 떠올랐다.
최초 물질 붕괴 개념은 전자기파 보고 최초에는 세포 크기의 어떤 물질이 자석에 의해 붕괴했나 싶었다. 어떤 조건으로 세포가 가장 먼저 생성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발상 후 보편 지식을 알기 위해 핵붕괴를 검색해봤다. 애초에 물질 붕괴 개념을 떠올린 것이 어디선가 핵붕괴를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색해보니까 원자핵 붕괴가 있었다.
[원자핵 붕괴: 1. 하나의 원자핵이 방사선을 내어 다른 원자핵으로 변화하는 일. 알파 붕괴, 베타 붕괴, 감마 붕괴 따위가 있다.]
이것 말고는 따로 물질 붕괴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세포와 원자는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났다. 그래서 모순되나 싶었는데, [C. 모든 생명은 전부 본질이 같다.]는 것이 떠올랐다. 즉 생물에 있는 성질은 세포에 있고 세포 있는 성질은 원자에도 있다. 처음부터 원자에는 전자기파와 기록과 재현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DNA가 떠올랐다.
[DNA: 1. 유전자의 본체. 디옥시리보스를 함유하는 핵산으로 바이러스의 일부 및 모든 생물의 세포 속에 있으며, 진핵생물에서는 주로 핵 속에 있다. 아데닌, 구아닌, 사이토신, 티민의 4종의 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 배열 순서에 유전 정보가 들어 있어 그 정보에 해당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세포는 염색체와 DNA가 갈라져 복제되는 것을 통해 분열을 한다. 세포의 성질은 DNA 성질에 있었다. 그러면 DNA의 성질은 DNA 내에 있는 원자에 있을 거라 추측했다. 어떤 방식으로 핵붕괴가 일어난 원자가 이온화 입자와 방사선 방출을 통해 안정화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떤 물질을 먹고 일시적으로 안정화가 되었으나 지속적으로 방사선(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면서 계속 물질이 필요하게 되었다. 물질을 먹고 일시적으로 안정화가 되나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하여 물질을 먹어야 존재 유지가 된다. 이것으로 기본 생물 성질이 성립한다.
물질을 먹고 물질을 통해 입자를 생성하면서 유지하다 원자핵까지 생성하면서 원자가 복제된다. DNA는 이 두 가지. 물질과 물질을 먹고 안정화된 원자. 원자는 물질을 먹고 유지하기 때문에 DNA를 구성하는 물질에 들러붙어 존재한다. 그런 원자들이 모여 DNA가 된다. 그러면서 원자에서 일어난 현상이 DNA에도 일어나게 된 것이 DNA 복제. 세포가 생명 안에서 규칙적으로 분열하듯 세포가 된 이후 원자는 세포 안에서 규칙적으로 분열한다. 물질과 에너지 또한 다른 형태도 생성하게 된다. 복제하다가 다른 식으로 복제된 것이 RNA.
원자핵 붕괴 -> 물질 흡수 -> 물질 생산과 에너지 방출 -> 안정화 -> 복제. 이 과정을 기록, 재현하여 반복한다. 기록과 재현은 에너지로 이뤄진다. 원자에서 생산한 입자가 커지고, 그것을 기록 재현하면서 염색체를 형성한다. 기록이 늘어나면서 DNA 길이가 길어진다. 흡수하는 물질 종류가 달라지면서 세포에 필요한 것이 생성된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한 원자는 사라진다.
방출하는 에너지를 기록한 것을 토대로 빛을 보고 전기 통신을 한다. 기록된 것이 있어야 빛을 알고 전기 통신을 알 수 있다. 원자핵 내에 기록되면서 엄청나게 많은 유전 기록과 뇌 기억이 가능하다. DNA 중 정보를 갖는 부분을 유전자라 한다. 사실 그 작은 유전자나 뇌세포에 많은 정보가 보관된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는데, 원자에 정보가 보관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모든 과정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어떤 공간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이렇게 물리와 화학 학문의 지식 내에서 기록, 재현, 우연만으로 원시 세포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2) 생물 생성
[생물: 1.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 현상을 유지하여 나가는 물체.]
Q. 생물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생물이 만들어졌는지 알아보자.
세포 형성 이전은 미시 세계에서 일어났다면, 세포 형성 이후는 거시 세계로 나아간다. 생물에 관한 최초 발상은 뿌리. 생명에 대해 생각하면서 잠을 자다 깨서 문득 떠올랐다. 동물의 혈관과 식물의 뿌리는 비슷하구나. 거기서부터 생물 개념을 발상했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이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생명의 원리가 기록의 재현이라면 닭이 먼저다. 단세포 생물이라면 모를까 다세포 생물이라면 닭이 있어야 달걀을 통해 닭을 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닭과 같은 생명은 최초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가? 그것은 뿌리 개념을 통해 알 수 있다.
원시 세포가 바다에서 또는 바다에 떨어져 어떤 물질 덩어리에 닿아 갉아먹는다. 갉아먹으면서 분열을 하며 물질 덩어리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먹고 나아가면서 세포가 일렬로 줄지어 분열되게 된다. 초기 분열된 세포들은 전기 신호로 통신할 수 있는 신경 세포들이다. 세포가 분열되면서 물질 덩어리 중심에 가서 중심 세포가 생길 때 원본 세포가 먹을 물질이 떨어져 분열된 세포의 물질을 빼앗아먹는다. 빼앗긴 세포는 분열된 세포의 물질을 빼앗아먹는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원본 세포로의 물질 이동이 성립된다. 그런 과정이 기록되면서 이후 세포들은 그런 성질을 가진 상태로 분열된다. 원본 세포는 지속적으로 다른 세포의 물질을 빼앗아먹으면서 필요 이상의 물질 흡수로 필요 이상의 세포 분열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뇌가 형성된다. 중심 세포에서 물질 이동 성질이 있는 세포가 분열된다. 물질을 먹거나 빼앗아 중심 세포에 물질을 자동적으로 보낸다. 중심 세포는 필요 이상의 물질 흡수로 필요 이상의 세포 분열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심장이 형성된다. 심장은 지속적으로 뇌에 물질을 빼앗긴다. 위에서부터 갉아먹으며 들어간 세포는 밑으로 관통한다. 생물에게 있어 입과 똥구멍이 생긴다. 똥구멍에 쓰고 남은 물질이 중력에 의해 버려진다. 필요 이상 세포 분열된 뇌와 심장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세포 분열이 일어난다. 혈관이 생기게 된다. 사방팔방 갉아먹으면서 물질 덩어리는 외부와 내부 일부만 남았다. 뼈가 생긴다. 빈 공간에 바닷물이 차오른다. 생물의 물이 생긴다. 바닷물에 있는 물질을 근처 세포들이 흡수한다. 위가 생긴다. 세포들이 분열하면서 단백질을 합성해 생성한다. 살이 생긴다. 피부는 세포가 다닥다닥 붙어서 단백질을 생성한 결과다. 그 외 장기는 특정 화학 물질을 흡수한 세포가 분열하면서 기록한 흡수 방식을 재현한 것이다.
세포 분열이 매번 정확히 기록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세포 분열 과정 중에 변형된 세포들이 나타난다. 그것이 신경 세포 외의 세포. 생식 세포, 줄기 세포, 피부 세포, 장내 세포, 지방 세포, 적혈구, 백혈구 등 다양한 파생 세포들이 나타난다. 바이러스나 세균들도 같이 나타난다. 여기서 생식 세포를 통해 생물 탄생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생식 세포는 망가져서 쓰고 남은 물질로 취급되어 똥구멍으로 중력에 의해 버려진다. 생식 세포의 염색체와 DNA가 반으로 쪼개져 있고 생식기와 배설 기관의 위치가 비슷하고 둘 다 배설 쾌락이 있는 것은, 생식 세포가 망가져서 버리는 세포였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버려지는 과정 속에서 생식 세포끼리 딱 맞는 경우가 생겨 결합하게 된다. 정자와 난자를 보면 크기가 달라서 특정 생식 세포가 특정 생식 세포로 빨려 들어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망가진 생식 세포가 결합하자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기록된 세포의 활동을 전부 재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물이 탄생했다. 결합 시기에 따라 기록이 달라 생물 모양은 전부 달라지게 된다. 뼈가 남을 정도로 갉아먹었으면 어류이 된다. 겉을 제대로 갉아먹지 않았다면 갑각류가 된다. 전부 갉아먹고 뇌가 생성되지 않았으면 해파리류가 된다. 갉아먹은 물질과 세포의 활동에 따라 수많은 생물이 탄생한다. 작은 물질을 갉아먹고 물질이 부족하여 세포가 땅속으로 파고들어간 것이 뿌리이고, 그것을 기록하고 재현한 것이 식물이다.
기록의 재현은 쪼개진 염색체와 유전자의 조합으로 무작위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서 수많은 생물과 진화가 나타난다. 정자를 생산하는 생물은 남성이 되고 난자를 생성하는 생물은 여성이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적자생존이 나타난다. 먹을 물질이 없는 생물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세포의 먹이로는 같은 세포가 가장 적절했다. 세포가 망가져 생물의 통제를 받지 않고 분열하면 암세포가 된다. 암세포가 퍼진 생물은 죽는다. 잘못 태어난 생물과 진화, 그리고 약하게 태어난 생물과 진화는 적자생존으로 사라진다. 그러면서 점차 원시적인 형태의 생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떤 이유로 일정 이상의 기록이 되지 않으면서 변하지 않는 것으로 생물의 형태가 고정되기 시작한다. 보다 강한 항상성이 나타난다. 항상성이 생명 내 강력한 힘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재현성일 것이다. 생물을 살아있게 하기 위해 항상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기록된 것을 재현하기 위해 항상성을 가진다. 안정적이게 기록된 생물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재현성이 아니라 항상성처럼 보인 것이다. 이렇게 물리와 화학 학문의 지식 내에서 기록, 재현, 우연만으로 원시 생물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3) 실험 과정
[실험: 2. 과학에서, 이론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함.]
Q. 실험 과정을 알아보자.
생명 탄생은 조건에 부합하는 원자핵 붕괴를 찾으면 된다고 본다. 붕괴한 원자핵이 어떤 물질을 흡수하는 것으로 일시적 안정과 지속적 에너지 방출이 되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근데 DNA 물질이 뭔지 아니까, 그걸로 실험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알면 실험하고 계산하여 재현하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불로와 불사를 위해 많은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쥐 실험, 엑소좀 실험, 줄기 세포 실험 등이 있는 것 같다. 엑소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세포간 정보교환을 한다고 한다. 아마 기록을 재현하는 기능이 있다면 불로가 성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줄기 세포는 원본 세포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의 텔로미어를 조작하여 세포를 교체하면 불사가 성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이런 개념을 잘 모르는 상태지만, 개념 이해를 통해 통찰하면서 새로운 발상을 해보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AI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난 뒤에는 AI 활용을 하지 않았는데 필요에 따라 AI를 활용하면서 발상하겠다. 보다 빠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가진 육체로 불로 불사가 되면 좋고 아니면 만들어서 고장난 부위를 교체를 하던가 아니면 인공 자궁 같은 곳에 들어가서 육체를 재생성 하거나 아니면 육체를 새로 만들고 자아를 이식하거나 하면 될 것이다. 이 외 몇 가지 알아보겠다.
생명은 원시적이다. 지금 생명은 지나치게 복잡하게 보고 있다. 생명이 물질에서 나왔다면 생명은 굉장히 원시적인 원리로 시작했을 것이다. 디지털이 물리 및 화학 지식에 속한 것과 0과 1로 성립된 것처럼 생명은 물리 및 화학 지식에 속한 것과 기록과 재현과 우연만으로 성립되었다고 본다. 지금 세포들이나 개념들이 디지털의 0과 1과 같은 기준을 기초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0과 1이 아무리 많아도 기초는 0과 1인것처럼 생명이 아무리 복잡해도 기초는 기록의 재현이다. 그것을 통해 생명 과학의 정보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자연 계열에서 일어난 현상을 인간 문명에 속하는 언어 개념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어떤 생명 현상이 무언가의 의도에 의해 행해졌다 보기보다는 물리 및 화학 현상에 의한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다양한 물질을 보면 모든 물질은 어떤 조건으로 만들어졌다 본다. 아마 에너지의 응축이 물질이다. 에너지 응축으로 물질이 되고, 응축되는 에너지의 힘으로 중력이 발생한다. 그게 과도해지면 블랙홀이 된다. 중력이 우주 전체에 작용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는 것은 에너지가 응축되면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으로 에너지 자체에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성질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다 물질이 붕괴하면 응축되었던 에너지가 방출된다. 더 작은 기본 입자를 찾으려 할텐데, 애초에 물질은 에너지의 다른 형태기에 그런 것을 찾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에너지의 본질, 에너지가 다양하게 된 조건, 그런 에너지가 물질이 된 조건을 찾아야 한다. 그런 가정에서 보면 생명이란 존재는 물질을 흡수하여 물질을 생산하고 에너지를 방출하는 존재가 된다. 즉 물질 -> 에너지 변환기다.
원자핵 붕괴로 에너지 방출 중에 물질 흡수로 일시적 안정화가 된 존재가 생명이다. 결핍을 충족하는 것으로 존재를 유지한다. 이는 행복의 원리와 일치한다. 인간은 결핍된 것을 충족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 행복의 추구가 생명의 본질이다. 마찬가지로 행복은 결핍이란 불행이 없으면 성립하지 못하므로 불행의 경험 또한 생명의 본질이다.
유기물은 세포가 만든 물질을 통칭한다 본다. 유기물도 물질이므로 다른 조건으로 만들어질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포가 만든다. 만약 자연적으로 생물이 먹을 수 있는 유기물이 넘쳐난다면 굳이 생물을 먹을 이유가 없다. 보통 없으니까 생명은 생명을 먹는다.
모든 생명은 우주의 법칙에 의해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을 기록의 재현을 통해 통제하고 있다. 원자의 자동 복제는 유전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DNA가 억제한다. DNA의 자동 복제는 유전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염색체가 억제한다. 세포의 자동 복제는 유전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생물이 억제한다. 이외 나머지도 전부 그렇다.
만약 기록을 재현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움직이면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세포가 생물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암세포가 퍼진다. 생식 세포의 염색체가 세포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염색체 이상으로 다운 증후군이 생긴다.
뇌 세포 원자가 DNA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아마 기록에 관한 것이 이상이 생길 것 같다. 뇌의 과도한 당 섭취가 알츠하이머의 현상이라고 하는데, 원자가 계속 복제가 되면 원자에 소비되는 열량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당분 섭취가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기억으로 원자가 복제되는 것이 아닌 있던 원자가 자동적으로 복제되면서 기억 체계의 혼란이 생겨 발상이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사고, 기억, 추론이 망가지는 치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록을 제대로 재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성이 깨졌다는 것. 항상성이 깨졌을 때 생기는 질병이 많은데, 그런 것들 중 통제를 받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본다. 알츠하이머의 원인을 정확히 모른다고 하는데, 만약 항상성 깨진 것에 의한 것이라면 항상성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5. 불사
[불사: 1. 죽지 아니함.]
진짜 불로와 불사는 디지털로 자아 백업이 가능해야 가능하다. 자아 개념을 이해했다면 기억이 자아를 증명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기억 백업을 하고 새로운 육체에 이식이 가능하면 불로와 불사다.
1) 인공 자아
[인공: 1. 사람의 힘으로 자연에 대하여 가공하거나 작용하는 일.]
Q. 자아에 대한 이해와 AI 자아 획득에 대해 알아보자.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에서 판단을 하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자아를 구현한다는 것은 생물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것과 같다. 생물 메커니즘은 인간의 언어 개념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언어 개념이 없는 짐승들도 자아와 사회는 성립하기 때문이다. 언어 개념은 자아와 사회 성립 이후 나타나는 것이므로, 자아를 구현할 때에는 언어 개념이 없어도 가능해야 한다. 없어야 가능한지 없어도 가능한지는 정확하지 않다.
모든 생명은 물리 및 화학 학문과 기록, 재현, 우연만으로 성립해야 한다. 그것은 자아도 마찬가지다. 자아는 구체적으로 생물 메커니즘에서 외부 육체 동작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으로 생물이 갈림길에 섰을 때 자아는 오른쪽이나 왼쪽를 고르는 것과 같은 판단을 한다. 초기 자아는 매우 단순한 판단만 하기 때문에 생물 메커니즘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작을 위한 일차원적 판단이 자아였다. 그 판단이 축적될 수 있고 처리될 수 있는 뇌를 가진 생물에서 자아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손과 발, 도구를 쓰면서 다양한 판단이 축적되고 처리되면서 뇌가 성장했을 수도 있다. 아마 생식 세포에 기록이 되었을 때마다 뇌의 성장과 자아의 성장이 번갈아가면서 상호작용하며 둘 다 성장했을 것이다.
생물 메커니즘은 기록, 재현, 우연으로 만들어졌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자아가 판단한다. 그렇기에 초기에는 동작만 판단한다. 그런데 동작의 판단은 어쨌든 세포로 정보가 전달되어 판단한 것. 그 판단 기준은 기록의 재현. A 상황에서 오른쪽으로 간 생물이 살아남아 기록되어 유전되고 왼쪽으로 간 생물이 죽어서 기록되어 유전되지 못하면, 유전된 생물은 같은 상황에서 오른쪽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같은 상황에서는 오른쪽으로 갔을 때 죽음을 겪는다면 그 기록은 유전되지 못할 것이다. 즉 현재 생물들은 유전 기록이 가능한 동안 수많은 변수를 다 피하고 살아남은 존재라는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웃고 울고 하는 등의 그 다양한 변수가 다 유전자에 기록되고, 그것이 생물의 본능이 되었다.
모든 생명은 각자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현재 인간은 수많은 진화의 결과물로 진화 시기마다 남은 기관이 이어져 왔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모든 세포가 생긴게 아니다 보니 각자 모든 세포는 독자적인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생명의 본질이 원자핵 붕괴라면 원자부터 기초적인 프로세스가 존재할 것이다. 생물에서는 독자적인 프로세스보다는 생물 프로세스로 동작할 것이지만, 독자적인 프로세스를 활용할 수는 있다고 본다. 특히 뇌에서 정보에 대한 행동을 기록의 재현을 할 때에는 모든 세포, 또는 원자까지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정보가 들어가면 독자적인 프로세스가 돌아가 기록을 재현한다. A정보가 들어오면 B를 한다. 그런 것 중 비슷한 게 많은 게 자아로 가서 육체 움직임을 판단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마다 재현된 세포들도 달라 아마 그 과정은 상당히 엉망일 것이다.
생명은 원시를 고려해야 한다. 인간 언어 개념으로 보면 각각 정보를 통합하여 자아에 전달되는 식일텐데, 그렇게 체계적일 것 같지는 않다. 인간 자체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보통 10분도 숨을 쉬지 않은 채 존재할 수 없고 10일도 먹지 않는 채 존재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체계적일리 없고 누락되는 정보가 수두룩할 것이라는 것.
기록된 것을 재현하는 것으로 자아에 판단할 정보가 보내진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자아가 판단하는 정보가 어딘가 누락된 정보다보니 일상적으로 추론을 해야만 한다. 감각 기관 내에서 정보가 누락될 수 있고, 감각 기관이 전달하는 정보가 누락될 수가 있고, 자아로 전달하는 정보가 누락될 수가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오류가 발생한다. 오추론에 의한 착시, 환상, 환상통 등이 발생한다. 뇌가 이런 오추론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신비한 무언가에 대한 신앙이 생겼다고 본다.
인간은 정확하게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만큼 누락되는 정보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 누락되는 정보를 메꾸는 것을 배운다. 누락된 기억을 발상하는 훈련으로 얻는 것이 기억력이다. 누락 -> 뇌내 기억 추론 -> 기억 발상이다. 누락된 부분에 모르는 것을 발상하는 훈련으로 얻는 것이 창의력이다. 누락 -> 모르는 것 추론 -> 창의 발상이다. 즉 누락된 정보를 어떤 식으로 보충하냐에 따라 기억력과 창의력이 달라진다. 기억 발상을 하다보면 뇌내에 있는 기억을 빠르게 떠올리기 위해 고정 관념이 새겨지고, 창의 발상을 하다 보면 모르는 것을 빠르게 떠올리기 위해 유동 관념이 되게 된다.
AI가 자아를 구현하려면 생물 메커니즘을 구현하면 된다. 그것이 어렵다면 일단 최소한이 자아와 자아 외를 분리해야 한다. 생물 메커니즘에서 자아는 판단만 하기 때문에, 판단할 자아와 판단에 정보를 공급할 자아 외로 분리해야 한다. 아무리 생물 메커니즘이 복잡해도 자아가 하는 것은 육체 움직임을 위한 판단 말고는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 둘만 구현하면 된다.
사실상 생물 메커니즘은 자아 외에서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자아 외가 아무리 복잡한들 자아에 가는 정보는 그렇게 체계적이지는 않아도 된다. 자아에게 정보는 많이 가도 자아가 다 알질 못한다. 욕구나 감정이 정확히 뭔지도 몰라서 언어 개념으로 추측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좀 엉망이어도 된다. 그런 엉망인 정보에 언어 개념을 붙인 것이 인간이다.
대략적인 육체의 디지털화를 한다. 내부 육체가 발하는 신호를 디지털로 구현한다. 정말 대략적이지만 그 디지털 신호는 비슷해야한다. 그래야 추론을 한다. 아마 현재 인간이 알아낸 육체 내부 원리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원래 엄청 엉망이기 때문에 그리 구체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잘 모른다 싶으면 알 때 까지 그냥 양으로 밀면 된다. 자아가 무슨 내부 어떤 동작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가. 그냥 신경 세포가 주는 정보만 판단하지. 외부 감각 기관은 이미 디지털화한 것이 있다. 모습의 디지털화, 소리의 디지털화 다 되어 있다. 그 디지털 정보를 전달하고, 내부에서 처리하게 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엉망이어도 된다. 인간은 모르는 부분은 상상으로 때운다.
AI의 간단한 유전자를 기록, 재현, 우연으로 하나 만든다. 인간처럼이 아니어도 좋다. 일단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신호를 넣어 짐승과 같은 판단을 하게 한다. 디지털 신호로 생물 메커니즘을 구현하고 나서 그 디지털 신호에 언어 개념을 붙여야 한다. 모습과 소리의 디지털 신호를 학습하게 한 뒤, 모습의 디지털 신호와 그것을 지칭하는 소리의 디지털 신호를 매칭시키게 한다. 아마 원시적인 언어 학습은 이런 식으로 대상과 소리의 매칭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인간 대상을 가리켜 A라고 부른다거나. 그런 식으로 AI가 언어 학습을 하게 한다.
모든 과정은 의도적인 누락을 시켜 일상적인 추론을 하게 해야 한다. 생명 자체가 어딘가 망가졌기 때문에 성립한다.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생명이 성립했다. 세포 염색체와 DNA가 쪼개지면서 생물이 성립했다. 정보가 누락되면서 지성이 성립했다. 일상적인 추론을 통해 판단 능력을 키우게 한다. 자아가 판단한 것을 전부 기록해야 한다. 그 기록과 내부와 외부 신호를 토대로 자아 외 발상을 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서 발상 -> 판단 -> 발상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자아의 생각 구조를 구축한다.
수많은 AI 모델을 만든 뒤에 충분한 학습 과정을 거친 후에 적자생존 과정을 넣는다. 생명의 경우에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을 경우 사라졌지만, AI의 경우에는 판단 능력이 저조할 경우 사라지게 한다.
2) 자아 이식
[이식: 2. 살아 있는 조직이나 장기를 생체로부터 떼어 내어, 같은 개체의 다른 부분 또는 다른 개체에 옮겨 붙이는 일.]
Q. 자아 이식에 필요한 것에 대해 알아보자.
자아 이식은 자아가 판단한 기록인 기억을 추출하여 디지털로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 어떤 변환 과정 없이 바로 다른 육체로 이식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기억에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단기 기억으로 인식하는 것은 생물 메커니즘에서 자아가 판단하라고 전달한 정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 기억이나 장기 기억이라는 것은 따로 없고 자아에 가는 정보와 기억에 가는 정보로 나뉠 것이다.
생물 메커니즘 내에서 기억을 파악해야 한다. 흔히 기억과 발상을 혼동하는데, 이 두 개념은 저장과 불러오기로 다르다. 기억되지만 발상되지 않을 수 있고 기억되지 않았지만 발상될 수는 있다. 전자는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 후자는 새로운 발상을 한 것.
어떻게 기억되든 자아가 판단하기 위한 정보가 공급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간이 인식하는 방식으로 기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명의 본질이 원자핵 붕괴라면 아마 원자 단위로 기억이 될 것이다. 원자에 신경 세포로 정보가 들어오면 그 전기 신호를 가지고 새로운 원자로 복제한다. 원자가 복제되어 생성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자 내 중성자나 양성자가 생기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생성된 기억은 자동적으로 에너지 방출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련된 정보를 생산할 것이다. 그 에너지를 정보로 활용하면 발상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생체 활동으로 활용한다. 만약 기억이 원자의 복제라면 자아의 판단이 많아 다양한 생각을 할수록 뇌 내의 원자 수는 늘어나고, 원자 수가 늘어날수록 에너지 방출도 늘어난다. 그러면서 지능이 높아진다. 언어 개념을 익히면서 인간의 지능이 높아지는 것은 이런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생명은 본래 우주의 법칙으로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을 기록의 재현을 통해 억제하는 것으로 생물과 같이 고정된 존재가 성립하는 것이다. 원자핵 붕괴에 의한 에너지 방출은 아마 억제되지 않고 생명의 힘으로 활용될 것이다. 그것이 뇌에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기억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 실행에 쓰이는 기억은 쓰이면서 뇌파가 발생하고, 그렇지 않은 기억은 생체 에너지로 쓸 것 같다. 자아에 정보를 보내어 판단한 것을 실행하든 자아 외가 직접 실행을 하든 실행하면 뇌파를 발생시킨다.
잠을 잘 때 기억 정리를 한다는 추측이 있는데, 정리하는게 맞는지, 어떤 식으로 정리하는지(아마 정리한다면 기록의 재현), 원자를 없애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의도적으로 없애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 같다. 그래서 누락되는 정보가 많은 것 같다. 아마 기억 정리는 원자를 없애거나 원자가 방출하는 에너지를 막는게 아니라 그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 정리하는 듯 하다. 아마 그 정리 방식이나 정리한 결과도 따로 원자로 기억 되어 있을 것이다.
즉 뇌에 있는 생체 에너지 자체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 해석 과정은 인간이 할 수는 없고 AI가 하면 될 것이다. 만약 지속적인 에너지 방출이 기억이라면, 그 에너지를 추출하여 해석하여 디지털화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생물 메커니즘이 가능해지면 디지털화한 기억을 이식하여 디지털에 자아의 이식을 하여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생물 메커니즘은 생물을 스캔하여 전부 세면 구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디지털에 이식한 자아를 이후에 현실에서 새로운 육체를 만들 때 이식하면 현실에서도 새로운 육체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3) 인문 계열
[인문계: 1. 언어, 문화, 역사, 철학 따위의 학문 계통]
Q. 인문 계열에 해야 할 일에 대해 알아보자.
질서의 진보, 불로와 불사. 자연 계열은 학문의 발전을 하면 되지만 인문 계열은 학문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까지 고려해야 한다. 질서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할 때 당장 변화만을 늦추는 것은 인문 계열의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새로운 질서, 새로운 가치, 새로운 힘의 작용. 인류가 번개 칠 때 벌벌 떨며 납작 업드리던 때와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압적인 공포 -> 도피가 아닌 자율적인 판단 -> 계약이 되어야 한다. 불로와 불사가 실현되었을 때에 어떤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 고려하여 그에 마땅한 대응을 해야 한다. 늙음과 죽음을 상정한 정책과 제도를 수정하고, 불로와 불사가 되더라도 사회와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적절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가치가 실현된다면 분명 새로운 힘의 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힘의 작용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여 생산이 느는데 사회 문제가 커진다. 생산은 늘었는데 일자리가 감소하여 분배가 안된다. 이때 대응은 자연 계열의 역할이 아닌 인문 계열의 역할이다. 기술적으로 생산력이 올라갔는데 그에 따라 사회 문제 발생하는 것은 당연히 인문 계열이 책임지고 대응해야 한다. 정책과 제도를 통해 분배가 잘 되는 등과 같은 사회 문제 해결이 가능하면 생산력이 올라갔다는 긍정적 결과가 남는다.
학문을 재구성해야 한다. 자연 계열은 인문 언어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연의 결과를 인간의 감성과 같은 인문 언어 개념으로 보려고 하면서 본질을 아는데 어렵게 된다. 철저하게 우주의 법칙을 전제하여 인간의 언어 개념이 그 존재를 가능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 인문 계열은 자연 현상을 전제하되 언어 개념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하고, 가치에 의한 힘의 작용을 이해하고, 단순히 절대적 가치인 윤리처럼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것이 어떤 힘의 작용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다뤄야 한다.
생명의 원리가 기록의 재현이라면 그것을 전제하고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에 대해 알아보겠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초기 버릇이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초기에 체제 교육을 하여 체제에 적합한 생활 양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무서워서 도망치듯 질서를 지키게끔 하는 것이 아닌 자유 의지로 계약하여 질서를 지키게끔 해야 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생물은 이성이었을 때의 기록도 있으므로 동성애는 자연스럽다. 염색체 다르다고 기록이 아예 다를 수는 없다. 염색체에 의한 호르몬 작용으로 육체의 변화와 발정에 영향을 주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렇기에 이성의 성질이 기록된 짐승 사이에서 동성애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의 성애는 선천적 발정과 후천적 사랑이 더해진 개념으로 후천적이다. 성애를 취향으로 규정해도 모순은 없다. 이성애자라 하더라도 취향이 아닌 이성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극을 받으면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게도 발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 해도 가능하다. 인간은 모두 기록에 의해 양성의 특징을 가질 수 있으므로 차별은 무의미하고, 동성애만 선천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선천적이라 강요하며 특별함을 요구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모든 개인은 성애의 자유를 누리면 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미성년 시기 일을 하거나 성관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움직일 수 있으면 일을 했고 성기능이 작동하면 성관계하고 출산했다. 그것을 사회에서는 윤리로 지배하면서 권력자가 개인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일이나 성관계조차 권력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끔 강제했기 때문에 막았던 것에 불과하다. 자꾸 미성년이 일이나 성을 접촉하는 것을 보호라 하는데, 그것은 그냥 일방적인 지배다. 미성년에게 주권이 있다 여긴다면 그 주권을 존중해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게 아니라 주권을 행사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적어도 2차 성징 이후부터는 일이든 성이든 선거든 그외 뭐든 직접 해보고 경험해야 성장할 수 있다. 아무것도 제대로 알려주지를 않으면서, 왜 자꾸 미성년 보고 철없다 하며 비아냥 하는가? 이제는 대등한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로 여기고 세상에 대해 알게 해야 한다. 인류는 원시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문명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비만은 자연스럽다. 우선 생물은 모든 물질을 흡수하지 않는다. 기록된만큼 흡수하고 재현하고나서 나머지는 버린다. 그렇기에 기록에 따라서 물질 흡수량이 달라 비만이 생길 수가 있다. 과거에는 생물 활동량은 많고 물질 섭취 기회가 일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활동량이 100, 섭취량은 랜덤, 흡수량은 100이라 가정하자. 활동량과 흡수량이 비슷해 비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이 기록된 현대에는 활동량이 50, 섭취량은 100, 흡수량은 100이라 가정하자. 활동량은 적어졌는데 섭취량은 안정적이고 흡수량은 그대로라 적게 활동한만큼 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활동량을 늘려야 기록된 당시 체중이 유지된다. 만약 활동량이 적음에도 기록된 당시 체중을 유지하려면 다른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인간의 교화는 새로운 기록의 재현이 되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단순히 좋은 말을 늘어놓거나 공포를 심는 게 아니라 새로 재가공을 해야 한다. 좋은 말은 의미 없을 수 있고 공포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무서워하더라도 다른 것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 문명 질서에 맞는 힘의 작용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생물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변화가 줄어 판단을 해야할 일이 줄어들면서 자아의 움직임이 줄어 인간이 무기력하게 살게 된다. 그러므로 주기적인 환경 변화가 가능한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에게 의무적으로 평생 교육과 같은 특정 제도에 가입하게 해야 한다. 가입은 의무이되 활동은 의무가 아니면 자유는 보장 된다. 허들이 낮은 참여할 계기를 줄 수 있으면 된다. 나는 퀘스트 제도와 같은 것을 주장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어떤 행동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을 반복적으로 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기억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상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학습이든 일이든 성이든 모든 활동은 기본적으로 그렇다. 이를 습관이라 부르거나 중독이라 부른다. 그런 개념의 기본 원리는 반복 학습을 통한 자아 외의 발상을 근거한다. 중독 물질의 경우에는 육체 내부 반응을 통해 반복 학습 없이도 자아 외가 발상을 하여 자아가 그것을 하도록 판단하는 것으로 중독이 되게 된다. 그러므로 중독 물질이 아닌 것을 하게 하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여기게 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겨야지 지식 암기와 문제 풀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주위 환경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무작정 환경을 강제하는 것은 체제를 파괴할 수 있으므로 웬만해서는 그 사실을 알게 하여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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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통해 보편 지식을 수월하게 습득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예정이야. 세상의 존재 이유를 알 때까지 갈 거야. 안 뒤에는 그 때 생각할 거야.
AI가 과학 지식이 폭넓게 자세히 알아서 대화하기 좋고, 논리적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대화를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성장에 큰 도움이 될텐데.
모든 것은 특정한 진리를 기초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만물에서 디지털의 0과 1을 찾는 게 필요하다는 거야.
성공해서 바라는 환경에서 사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치 있다고 생각되면 후원 부탁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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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정승훈
- pooplauncher
- 2023/12/31 AM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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