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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경제와 물리2024.03.31 AM 01:34
경제와 물리
[경제 : 1.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 분배 · 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물리 : 3. 물질의 물리적 성질과 그것이 나타내는 모든 현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경제의 본질적인 이해와 성장은 인간의 생활이 성립되기 위한 물리적 성질과 그것이 나타내는 모든 현상의 파악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주와 사회의 구성을 파악하고, 사회 에너지를 제어하고, 그 에너지로 동작하는 경제 생태계를 설계한다. 에너지의 제어와 생태계의 설계가 가능하면 시장에서 경제가 정부의 과한 간섭 없이 알아서 성장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체계의 구축에는 반드시 가치 개념의 이해가 필요하다. 알면 할 수 있지만 모르면 할 수가 없다. 가치 개념 중에서 정가 가치와 당위 가치와 범주 가치가 중요하다. 이 세 개만 이해해도 많은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체계는 교육부터 시작해 시장과 시장 외까지 통합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지극히 효율적이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필요한 개념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1. 개념 정리
1) 세계 확장
육체가 다른 것으로 판단이 다르게 된다. 육체 -> 인식 -> 가치 -> 기준 -> 판단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모든 인간은 육체가 다른 것으로 모두 다르게 된다. 다른 육체, 다른 인식, 다른 가치, 다른 기준, 다른 판단이다. 같은 대상을 A는 진실로 받아들이고 B는 거짓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시각이 다르면 A에게는 보이기에 진실이 되고, B에게는 보이지 않기에 거짓이 된다. 그럴 때 본인의 인식만 절대적으로 여기면 다른 판단을 한 인간을 적대하기도 한다. 적대하면서 A는 진실의 세계에 갇히고 B는 거짓의 세계에 갇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세계가 그만큼 축소되게 된다. 분명 좁은 세계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세계를 확장해서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전제를 바꿔야 한다. 모든 인간의 자아에 인식되는 모든 존재는 실존한다. 이걸 전제하고 나서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논리만으로 본질을 파악하여 대상을 본인의 세계 구성의 일부로 자리잡게 하여 관측하는 세계를 확장한다. 그것이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만으로 사고의 폭이 크게 확장한다. 그 존재를 수용하는데 거부감이 많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흔히 부정되는 개념인 거짓, 가짜, 가면, 허구, 허상, 환각, 착각, 망상, 터부 등 전부 실존한다. 없는게 아니다. 인간이 만든 기준으로 구분한 결과일 뿐이다.
오아시스의 신기루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존하기에 인식할 수 있다. 단지 오아시스의 본질이 아닐 뿐이다. 오아시스를 기준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했을 뿐이지 처음부터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대상으로 삼았다면 진짜가 된다. 신, 영혼, 유령 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존하기에 인식할 수 있다. 단지 그것이 자연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뇌세포로 존재하는지에 따라 본질이 다를 뿐이다. 뇌세포도 물질이기 때문에 자연에 존재하든 뇌세포로 존재하든 존재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특정한 기준으로 현상을 배격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것이 아니라 인식되는 모든 존재를 세계 구성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가 인식하는 외적 존재 뿐만 아니라 내적 존재 또한 부정하며 배제할 필요가 없다. 곧잘 특정 가치로 본인의 부정적인 요소를 배제하려는 태도가 많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세계가 축소되게 된다. 자아가 인식하는 모든 존재는 실존한다 여기고 전부 수용하면 된다. 자존심 상하는 모습, 부끄러운 모습, 가여운 모습이나 환상에 빠진 모습, 신비에 빠진 모습, 착각에 빠진 모습 등 전부 수용하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된다. 예를 들어 데자뷰를 겪고 시간이 되풀이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 모습이나, 가위눌리기를 겪고 귀신이 압박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 모습 등도 전부 실존한다고 인정하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2) 본질 파악
자아가 인식하는 모든 존재는 실존하지만 본질이 다르다.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 1.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대상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이 본질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가진 관측 수단으로는 본질을 알 방법이 없다. 인간의 육체로는 에너지와 물질 일부만 관측이 가능하고, 도구를 써도 모든 것을 관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A 물질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본질을 알았다고 해보자. 그런데 외계에서 날아온 B 물질과 상호작용한 결과 모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해보자. 그러면 A 물질의 본질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가? 관측 수단의 한계뿐만 아니라 우주의 거대함에 의해 인간은 우주의 본질을 알 방법이 없다. 현존하는 모든 존재는 인간이 모르는 본질이 있을 수 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알아야 우주의 본질을 알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질을 알 방법이 있다. 본질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본질과 언어의 본질이다. 우주가 본디 어떻게 생기고 어떤 성질이 있는지를 알 방법이 없지만, 언어가 규정한 대상의 생김새나 성질은 알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태양의 본질이 무엇인가? 우주의 본질로는 모른다. 태양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를 모른다. 본래 그게 어떤 모습과 성질을 가진 줄을 모른다. 그러나 언어의 본질로는 안다. 태양계 중심에 있는 항성. 그게 인간이 관측하여 규정한 언어의 본질이다. 만약 안드로메다에 있는 항성을 태양이라 부른다면 본질이 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에 대해 전부 알지 못해도 언어가 규정한 본질을 알 수 있으면 되기 때문에 우주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본질이 무엇인지 말할 수가 있다. 이렇게 우주의 본질은 과감히 알 수 없다고 규정하고 언어의 본질에 집중한다. 언어가 규정한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된다. 언어의 본질은 우주의 본질과 달리 처음부터 인간이 규정했기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보다 자유롭게 사고하며 본질을 추론할 수 있다. 자아가 인식하는 모든 존재의 본질을 파악한다.
언어의 본질에 집중하니 하늘 색을 색깔로 보는 것과 원리로 아는 것 둘 다 본질에 해당될 수 있음을 알았다. 하늘 색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주의 본질은 알 수 없다. 자연 계열에서 과학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전부를 알 수는 없다. 언어의 본질은 알 수 있다. 하늘을 올려다 볼 때 보이는 색. 원리는 따로 하늘 색의 원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이냐고 해야 한다. 이러한 원리는 자연 계열에서 탐구하여 파악하나, 그 탐구한 본질 또한 어디까지나 언어의 본질에 해당한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3) 지식 순도
존재의 본질을 알수록 지식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지식의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사물을 깊게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분명 우주의 본질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언어의 본질을 많이 알수록 지식의 해상도가 높아져 지식의 모니터로 좀 더 자세히 우주를 관찰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많이 알고 있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본질의 모순은 노이즈다. 지식의 해상도가 아무리 높아도 노이즈가 생기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특히 기초적인 본질에 모순이 생길수록 노이즈가 강하게 생기게 된다. 그러다보면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오아시스로 보거나 인간 조각상을 인간으로 보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아예 관찰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된다. 그렇기에 모순이란 불순물을 제거해 지식의 순도를 높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자연 계열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모순을 줄이는 것으로 지식의 순도를 높였다. 관찰, 이론, 실험, 증명, 재현 등을 통해 보편성과 재현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지식의 순도를 높여나갔다. A가 과학적 방법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 것을 B나 C가 실험을 통해 증명하면서 모순이 없음을 확인해나간다. 그렇게 해서 자연 계열은 끊임없이 발전했다. 자연 계열의 학자들이 실험할수록 자연 계열의 지식의 순도가 높아져갔다. 그들이 아니라면 현재 인류의 풍요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 인문 계열은 지식의 모순을 방치해버렸다. 세계화가 되면서 세계의 수많은 인문 계열의 가치들이 충돌했다. 문명과 문화가 충돌하면서 상호 모순되는 가치들이 생기게 되었다. 유일신과 다신이 모순된다. 윤리와 체제가 모순된다. 이념과 이해가 모순된다. 자유와 지배가 모순된다. 권력과 인권이 모순된다.
유일신과 다신의 모순 = 신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아니면 존재하기는 하는가?
윤리와 체제의 모순 = 지배 질서를 성립시킨 절대적 가치를 자유 체제에서 쓰는 것.
이념과 이해의 모순 = 이상적인 생각이 실제 이익으로 연결이 안된다.
자유와 지배의 모순 = 자유를 외치며 규제와 검열을 주장하고 수용하면서 체제의 모순이 발생한다.
권력과 인권의 모순 = 대상의 인권을 주장하며 권력을 얻을수록 되려 대상의 인권이 낮아진다.
그럼에도 인문 계열은 그런 모순을 제거하지 않았다. 문화 상대주의라며 너도나도 옳다는 식으로 넘겨버렸다. 그러는 바람에 인문 계열은 지식의 순도를 높이지 못했다. 사회 과학이라면서 자연 계열의 과학적 방법을 흉내냈으나, 문화 상대주의라며 모순을 방치하면서 그 흉내는 그야말로 겉만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고대 종교는 수천 년이 지나도 결과가 나오질 않고 있고, 근대 이념은 수백 년이 지나도 본질적으로 진보하질 못하고 있고, 현대 인문 수십 년이 지나고 저출산과 같은 기본적인 탄생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토록 성과가 나오지 않음에도 계속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인류는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다.
인문 계열이 생과 사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지식의 순도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문화 상대주의라면서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모순이 없는 것은 너도 맞고 나도 맞고 모순이 있는 것은 나도 틀리고 너도 틀린다는 식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그걸로 누군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든 사랑을 받든 미움을 받든 상관없이 순수하게 논리만 보면서 지식의 순도를 높였어야 했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지식의 순도를 기준으로 자연 계열에 비해 인문 계열은 레벨이 낮다. 인문 계열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지식의 순도가 낮은 이상 제대로 보질 못해서 알지도 못하고, 알질 못해서 해결도 못하고 있다. 사회 문제를 문제의 원인으로 해결하려고 한다거나 하는 듯이 말이다. 그토록 우수한 엘리트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순도가 낮아 문제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4) 성립 조건
모순은 한 개념의 앞뒤가 맞지 않거나 여러 개념이 서로 맞지 않을 때를 의미한다. 한 개념의 앞뒤가 맞지 않아 모순되면 따로 비교할 필요 없이 본질을 바꾸면 된다. 여러 개념이 서로 맞지 않을 때에는 비교를 통해 특정 개념의 모순을 제거하여 본질을 바꾼다. A와 B가 모순되면 A와 B를 C나 D와 비교하면서 모순이 있는지 확인하고나서 모순이 있는 쪽의 개념의 본질을 바꾼다.
통상 과학적 방법을 거쳐 순도 높은 자연 계열의 개념이 비교 대상으로 타당하다. 자연 계열의 개념과 비교를 통해 많은 미신들이 사라졌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미신은 자연 계열의 개념과 비교하여 모순되면서 죽음의 선풍기라는 언어의 본질이 바뀌면서 사라졌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전해내려온 소문 정도지만, 죽지 않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온갖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 매우 많아 논리적으로 상대가 되질 않는다.
다음은 성립 조건이다. [성립 조건: 1. 어떤 일이나 사물이 이루어지는데 필요로 하는 조건.] A를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가? 자연 계열에서는 실험을 통해 성립 조건을 파악한다. 폭발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이걸 직접 실험하면서 실제 성립 조건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성립 조건을 파악하고나서 폭발의 본질, 폭발에 속하는 요소들의 본질들의 모순이 대폭 줄어든다. 그러면서 관련 지식의 순도가 매우 높아진다.
이러한 성립 조건을 논리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순도 높은 지식들을 활용해 논리적으로 성립 조건에 해당하는지 확인하면서 모순을 찾아내는 것이다. A를 성립시키는데 필요한 조건이 B라면, B는 A와 연관된 본질을 가질 것이다. A를 성립시키는데 필요한 조건이 C가 아니라면, C는 A와 연관되지 않은 본질을 가질 것이다. 설령 개념의 앞뒤가 맞더라도 성립 조건에서 모순이 생기면 본질이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성립 조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새로운 개념의 성립 조건을 파악하는데도 수월해진다. 그러면서 자아가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조차 추론할 수 있게 된다. 어떤 현상의 성립 조건에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면서 새로운 개념을 떠올린다. 통상 이 방법이 모르는 것을 발상하는데 많이 쓰인다.
A, B, C, D 등 모든 개념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서로의 모순을 파악하여 본질을 바꾸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바꿀 수가 있다. 단단하게 고정된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러면 시간, 지배, 자유의 성립 조건에 대해 알아보면서 성립 조건에 대해 좀 더 이해를 해보자.
첫째, 시간의 성립 조건
[시간: 6. 지구의 자전 주기를 재서 얻은 단위. 이론적으로 고전 물리학에서는 공간에서 독립한 변수 곧 절대 시간으로 다루어졌으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는 양자가 물리적 사건을 매개로 하여 사차원의 시공 세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다루고 있다.]
시간의 성립 조건을 통해 특정 개념이 성립 조건에 필요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알아보자.
시간의 성립 조건은 우주의 변화와 관측 순서다. 우주가 변화하는 것을 관측한 순서대로 과거, 현재, 미래로 규정한 것이 시간이다. 관측 순서니까 공통 인식을 위해 지구의 자전 주기를 재서 얻은 단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은 원자 시계로 대체했다고 한다.
상대성 원리는 물리 법칙은 절대적이고 시간과 공간의 좌표계는 상대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우주의 변화를 관측한 순서가 아닌 좌표계에 존재한다고 전제했다. 시간은 원시 시대부터 있던 개념으로 지극히 당연하게 좌표계에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전 물리학과 현대 물리학은 시간이란 개념을 좌표계에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현상을 탐구했다. 차이는 절대적이냐 상대적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시간의 성립 조건에 좌표계에 존재한다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시간이 상대적인 이유는 지극히 당연했다. 왜냐하면 애초에 시간이 관측 순서기 때문에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성 원리에는 관측자에 대해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는 시간이 느려진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물체가 빠른 속도로 운동할수록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이 관측자에게 도달하는 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양한 주장을 살펴봤으니 시간의 성립 조건인 우주의 변화와 관측 순서를 제외하고 필요한 조건은 없었다. 거기에 추가로 더하는 것은 억지다. 그런 식이라면 세상에 마나가 존재한다 주장할 수도 있다. 현상의 성립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 개념은 없다 보는 것이 맞다. 인간이 만든 수수께끼라면 굳이 성립 조건에 속하지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넣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은 그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시간을 전제한 다양한 이론을 말하면서 시간이 좌표계에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 이론들은 시간이 좌표계에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 따로 탐구한 적이 없다. 아무래도 시간은 원시 시대부터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당연히 좌표계에 있을 거라 전제했던 것 같다. 이동이 멈춘 현상과 시간이 멈춘 현상에 논리적인 차이가 없음을 알았을 때 시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다시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한 것은 시간이 그 누구도 그에 대한 가치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였기 때문이다.
차원은 처음부터 공상의 개념이다. 시간이 관측 순서가 아닌 우주 법칙이라 전제한 다음에 만들어진 개념. 단 한번도 다차원의 증명이 있던 적이 없지만 시간이 있다고 믿었기에 차원도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관측 순서라면 그 전제 자체가 붕괴한다. 없다. 차원은 관점이다.
애초에 있다 가정해서 그것이 없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있다 주장한 측이 그걸 증명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 요구하는 건 영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 요구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본래 있다고 주장한 측에서 그걸 증명해야하는 것이다.
둘째, 지배의 성립 조건
[지배: 1. 어떤 사람이나 집단, 조직, 사물 등을 자기의 의사대로 복종하게 하여 다스림.]
지배의 성립 조건을 통해 특정 개념이 성립 조건에 필요한 경우에 대해 알아보자.
지배의 성립 조건은 우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다. 지배는 단순히 지배자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자가 복종을 해야 성립한다. 신의 지배와 왕의 지배가 대표적이다. 통상 지배는 권력으로 강제력을 행사한다. 행사 방식은 무력으로 짓밟거나 매력으로 매혹하거나 재력으로 장악하는 등과 같이 다양하다. 그런데 힘을 가한다고 반드시 복종한다는 법은 없다. 복종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하여 복종하게 한다고 해도, 복종하고 나서 다음에 다른 마음을 먹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지배는 힘만으로 성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복종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 당위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렇다면 신정이나 왕정에서는 그 당위가 무엇이었는가?
일반적으로 이 당위를 알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인류 문명은 지배를 겪었었기 때문이다. 그 지배의 잔재가 남아있어 복종을 지속하게 한 당위를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비슷한 개념의 성립 조건을 통해 추론해야 한다. 바로 이른바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신흥 종교다. 신흥 종교는 종교의 교주가 교인을 지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서 교인이 지속적으로 복종해야 할 당위가 무엇이겠는가? 무엇이 교인을 복종하게 하였는가? 종교의 교리다. 교리를 의심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인 교리에 의해 교인은 교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신흥 종교에서 당위는 절대적 가치인 교리였다. 그렇다면 신정과 왕정에서는 어떤 것이 절대적 가치였는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판단조차 하지 않았던 개념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윤리다. [윤리: 1.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할 도리.] 아마 대부분은 윤리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고 윤리에 반하는 행동은 절대적으로 그르다 여기기 때문에 쉽게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만 접근하자. 윤리는 절대적 가치가 맞는가? 맞다. 절대적 가치는 절대적이기에 판단을 하지 못하는가? 맞다. 지배의 성립 조건에 절대적 가치는 포함되는가? 맞다. 신정이든 왕정이든 절대적 가치인 도덕과 윤리를 통해 지배 질서를 받아들이게끔 교육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노예 디자인 교육을 한 것이다. 거기서 윤리는 개인의 정신에 찍는 노예의 낙인이다. 그것으로 인류는 노예로 디자인된 노예 디자인 휴먼이 되었다. 나도 노예의 낙인이 찍혀있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성립 조건을 통해 왕정 시대부터 전해온 도덕과 윤리는 지배를 성립시킨 개념임을 추론했다.
당황스러울 것이다. 흥분하면서 욕을 할 수도 있다. 도덕과 윤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와왔는지에 대해 외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 배워왔던 것이 아니라고 듣는다면 그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것으로 누군가 돕고 희생한들 그게 지배의 성립 조건 중 하나임을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 통상 도덕과 윤리는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바로 그게 종교의 지배를 받아들이게끔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절대적 가치다. 그걸 신정이나 왕정이 이용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는 판단하지 못하면서 그 가치가 어떤 현상을 부를지 아예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어떤 현상을 부를지 조금도 생각조차 못한다.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올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 문제의 원인조차 모른다. 그러니까 타인에게 금욕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윤리가 원인임을 모르는 것이다. 타인을 돕거나 희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 가치여야 한다. 윤리가 아닌 판단할 수 있는 체제나 개인의 가치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C. 절대적 가치의 판단 불가] 이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절대적 가치는 고유한 절대적 가치와 보편적 절대적 가치가 있는데, 고유한 절대적 가치는 사회에서 다른 인간이 그것을 판단할 수 있으면서 그것에 의한 문제를 알 수 있는데, 보편적 절대적 가치는 사회 전체가 그것을 판단할 수 없으면서 그것에 의한 문제를 누구도 모른다. 이것을 세계화되면서 다른 사회가 판단할 수 있어야 했는데, 문화 상대주의라며 얼렁뚱땅 넘기는 바람에 누구도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심신 피로, 유아 퇴행, 과한 음주, 강한 마약 등 아무리 우수한 인간이더라도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바보가 된다. 이 논리는 간단하게 이해할 것이다. 그러면 절대적 가치를 보자. 절대적 가치도 판단할 수 없는 가치다. 앞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면 바보가 된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논리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그 아무리 우수한 인간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상대적 가치에서는 우수하지만 판단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에서는 멍청하다. 이 논리를 이해해야 본인이 멍청해질 수 있는 상태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멍청하게 될 수 있는 음주 상태에서의 운전을 하지 않게 될 명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보편적 절대적 가치에 한에서는 그야말로 원시 레벨까지 낮다. 그 가치 자체가 거의 발전하질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인문 계열 학문은 레벨이 들쭉날쭉하다. 상대적 가치는 현대 문명에 걸맞게 레벨이 높은데 절대적 가치는 굉장히 레벨이 낮다. 가장 기본적인 논리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이 레벨의 편차가 학문의 발전에 정말 크나큰 방해를 하고 있다. 특정한 절대적 가치는 그 가치만 레벨이 낮은 게 아니라, 그 가치와 연관된 개념들은 전부 영향을 주게 된다. 판단을 못한다는 점에서 술주정이랑 차이가 없는 수준인데 당연하다.
다시 말하는데 상대적 가치는 매우 우수하기에 현대 문명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체제의 경우에는 우수하다. 체제의 가치는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윤리는 판단을 못한다. 예를 들어 이렇다. 연하가 연상에게 복종하며 존댓말을 하는 것은 절대적 가치로 연하가 연상에게 반말을 할 경우 사회의 비난을 받는다. 반면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상대적 가치로 투표를 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비난을 받지 않는다. 개인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왕정의 예의는 절대적으로 지키면서 모든 개인에게 권력이 있는 민주정의 제도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알겠는가? 그럼에도 절대적 가치는 판단할 수 없으면서 그게 무슨 문제인지조차 모른다. 그나마 반말 존댓말은 다른 문명권에 없는 경우도 있어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문명권도 비슷한 절대적 가치가 있을 경우에는 정말 인식조차 못한다. 시간, 금욕, 이타, 성 등 대부분 그러하다. 시간은 자연스러운 절대적 가치라면 윤리는 인위적인 절대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이 절대적 가치의 뿌리는 원시 질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능이 낮은 짐승은 힘으로 복종하게 하면 대체로 질서가 잡혀 사회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지능이 높은 인간은 힘으로 복종하게 해도 곧잘 반란을 할 수가 있다. 개인의 힘이 어디로 튈지를 몰라 질서가 잡히지 않아 사회로 이루기 어렵다. 거기서 원시적인 질서가 나온다. 인간은 보통 공포에 질려 도망칠 때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도망칠 곳을 알려주면 웬만하면 그곳으로 다 도망친다. 힘의 작용이 일정하게 되면서 질서가 잡히게 된다. 공포 -> 도피를 사용한 원시적인 질서다. 자연에 대한 공포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연에 신앙한 애니미즘 같은 것이 그런 질서 중 하나다. 그리고 그 파생이 도덕과 윤리다. 도덕은 학문으로 체계가 잡히기 전의 절대적 가치고, 윤리는 학문으로 체계가 잡힌 후의 절대적 가치다. 권선징악.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것으로 징계에서 선의 행함으로 도피하게끔 만든다. 천국과 지옥.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선을 행함으로 천국으로 도피하게 만든다. 여기서 선과 악은 주장한 집단, 주로 종교에 이로운 가치와 해로운 가치다. 도덕과 윤리는 전부 공포 -> 도피 논리를 활용한다. 그렇게 하여 공포에 질려 판단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행하게 하는 절대적 가치가 된 것이다.
신의 지배와 왕의 지배에는 차이가 생기게 된다. 통상 기독교는 신의 지배고 유교는 왕의 지배일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지배를 위해 신앙이 절대적 가치고 유교에서는 왕의 지배를 위해 권력이 절대적 가치다. 기독교권에서는 신앙이 절대적 가치기에 신에 대해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면 유교권에서는 권력이 절대적 가치기에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에 대해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독교권에서 사상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나타날 수 있었다. 신앙은 절대적 가치지만 인간의 권력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교권에서는 결코 그런 사상이 나타날 수가 없었다.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지금도 연령 등의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절대적으로 지키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제왕적 대통령제, 귀족적 의회제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가 얼마나 고상하고 위대하든 판단하지 못하면 위험 요소가 된다. 우수한 엘리트가 신흥 종교에 빠지면 평소에 우수한 면모를 보이다가도 종교에 관련되어서는 멍청해지게 될 수 있다. 절대적 가치라는 낙인에 찍히게 되면 그 가치에 한에서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자는 평소에는 매우 우수해도 민족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기에 판단하지 못하면서 민족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바보가 된다. 그러니까 한국 민족주의자가 북한 독재자에 이용당한 것이다. 대체로 지능은 정상인데 쉽게 이용당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경우 대부분이 절대적 가치에 의한다. 그래서 사기를 칠 때에도 보편적인 절대적 가치를 이용한다. 보이스피싱이 가족을 이용하는 이유는 그래야 상대가 판단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속을 수 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멍청해질 수 있는 상태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선진국의 고질적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것도 절대적 가치 때문이다. 기독교권이나 유교권이나 비슷한 공통된 문제를 공유하나, 신의 지배보다 왕의 지배가 더욱 더 강하게 노예의 낙인을 찍은 모양인지 유교권에서 그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윤리를 매우 강조하면서 미성년에게 강한 노예의 낙인을 찍었다. 그러면서 학교 폭력의 대명사가 된 이지메, 은둔형 외톨이의 대명사가 된 히키코모리를 비롯해 오랫동안 지속된 저출산에 의한 고령화, 장기적 경제 침체 등을 겪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자. 금욕을 강제하면 강제할수록 어떻게 되겠는가? 욕망이 줄어들면서 인간은 행동해야할 동기를 잃는다. 단계별로 욕망이 줄어들면서 에너지가 방출되지 않으면서 인간은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이타를 강제하면 강제할수록 어떻게 되겠는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면서 타인이 불행하지 않도록 불행할 수 있는 사건 자체를 만들려하지 않게 된다. 단계별로 점차 인간 관계가 멀어지면서 인간은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당연히 욕망이 필요하고 타인에게 폐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못하게 하니까, 노예의 낙인에 크게 영향을 받을수록 이지메를 당하고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욕망이 없고 타인의 행복을 위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일본의 개인주의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윤리적인 거리감이다.
저출산이나 경제 침체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에너지가 적은 상태에서 일과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범주 가치가 매우 낮다보니 시장이 망가지게 된다. 일은 미성년 때부터 직접 해보면서 친숙하게 해야 하는데, 어디 미성년이 일을 하냐며 무작정 막고 공부만 시키면서 일에 관한 범주 가치가 폭락하면서 노동 시장도 망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성 산업이 유명하나 미성년에게 가해지는 보편적인 성 억압은 강한 편이기에 AV 배우에 대한 시선이 한국보다도 곱지 못하다. 미성년 때 성을 억압하면 성에 대한 부정적 가치관이 심어져 연애를 안하게 된다. 일본 20대 연애 비율이나 성경험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연애 범주 가치가 망가진 상태인지 나타내고 있다. 일이든 성이든 미성년 때부터 친숙해야 해당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그 가치에 관련된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데도 윤리적으로 그걸 못하게 막으면서 시장도 같이 죽었다.애초에 지배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존중될 수가 없었기에, 그 시대의 질서는 개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질서기에 시장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성에 관해서는 여성주의가 여성성을 여성 권력의 도구화 하면서 연애 시장 진입 난이도와 비용이 더욱 높아지면서 더 심각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체제가 다른 중국도 시장을 도입하면서 일정 부분 자유롭게 되면서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체제가 다른 비슷한 유교권 국가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면 근본적인 공통점이 원인이라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절대적 가치는 판단할 수 없어서 원인조차 모른다. 그래서 윤리로 발생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윤리를 더욱 강조하는 황당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사회 에너지를 줄이면 겉으로 드러나는 범죄는 줄 수 있어도 안의 사회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진다. 간단한 논리도 모른다. 자유 체제에서 금욕주의나 이타주의 타령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배 체제라면 지배로 강제해서 어떻게든 하게 할 수 있지만 자유 체제에서는 그래서는 안된단 말이다. 자유 체제에서는 개인의 의사로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장 원리를 따라가는데, 가치를 망가트리면 어떻게 그 가치의 시장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겠는가?
가치는 상대적이니까 각자 가치관을 가지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판단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은 학문에 있어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그 가치에 한에서는 지나치게 레벨이 낮기 때문이다.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인간은 자연 계열은 실험을 통해 어떻게든 판단할 가능성이 있는데 인문 계열, 특히 순수 인문 계열은 그런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적성에 맞지 않는다 생각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길 권하겠다. 절대적 가치에 의해 판단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떠드는 것 자체가 학문에 해롭다. 반대로 절대적 가치에서 벗어나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지식의 순도를 높이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적 가치는 판단할 수 없으면서 현재 고질적 사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문제의 본질조차 모르는 것이다. 수천 년, 수백 년, 수십 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는가? 언제까지 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인가? 이미 선례가 있는데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다. 현대 인문에서 상대적 가치는 레벨이 높은데 절대적 가치는 레벨이 낮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판단하지 못하면서 절대적 가치를 실천하며 정의롭게 국가적인 자살을 하는 일을 멈출 수 있다.
셋째, 자유의 성립 조건
[자유: 1.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얾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자유의 성립 조건을 통해 어떤 개념이 성립 조건에 필요한지 알아보자.
자유의 성립 조건은 우선 자아, 생존, 환경, 능력이 있다.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에서 판단만 하는 기관으로 자아의 자유는 판단의 자유라 할 수 있다. 생물 메커니즘에서 자아는 판단만 해야 모순이 없다. 발상과 실행을 세부적으로 할 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판단만 한 것을 생물 메커니즘에서 실행하기에 그렇다. 자아가 계속 판단할 수 있는 생존이 필요하고, 자아가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고, 자아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자유의 성립 조건에는 저 네 가지가 들어간다.
이런 자유를 성립시키기 위한 체제가 바로 자유주의다. 이 자유주의 체제의 성립 조건에는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와 시장주의가 포함되게 된다. 모든(민주주의) 개인(개인주의)의 자유(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시장(시장주의) 제도가 필요하다.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는 것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욕망과 이기가 필요하게 된다.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주장을 해야만 내면에 있는 목소리까지 온전히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개인의 의사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해야만 사회에 이롭게 될 수 있도록 공정한 정책과 제도를 만든다.
이것이 기본적인 자유주의 체제의 성립 조건이다. 각각의 개념은 이런 식으로 성립 조건을 고려하면서 논리를 구축해나가면 된다. 헌법이든 법률이든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자유주의 체제 성립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데, 절대적 가치에 의해 그게 잘 안되던 상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는 권력의 평등한 질서다. 권력으로 차례가 정해지지 않는 질서다. 통상 시장과 같이 개인의 의사로 차례가 정해진다. 그러나 유교는 권력으로 차례가 정해지는 질서다. 권력이 높은 순서대로 차례가 정해진다. 이 둘은 아예 정반대임에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교 질서가 남아있는 상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교 질서가 남아있을 정도로 체제 이해가 부족하여 본질과 거리가 먼 평등을 추구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체제는 권력의 평등이지 모든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 권력이 평등해도 무력, 지력, 매력, 재력 등이 평등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말하며 모든 것을 평등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되려 체제를 파괴한다. 현재 평등은 크게 상하는 없되 선후는 있는 기회의 평등과 상하는 있되 선후는 없는 결과의 평등으로 나뉘는데, 결과의 평등의 경우 선후를 없애기 위해 위에서 아래에게 강제해야 하기 때문에 지배하게 되면서 민주주의 체제가 파괴되게 된다. 괜히 공산주의가 지배 체제가 된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른 힘은 차이가 있어도 권력은 평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약자에 대한 복지 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닌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선후의 차이는 선후를 강제로 맞출 것이 아니라, 후발 주자가 앞서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에 있다. 상하는 없어 모두가 대등하고 선후는 있어 누구라도 자유롭게 힘을 키워나갈 수 있는 체제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다.
분명 자유는 상대적 가치로 모든 인간이 그것을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게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판단 -> 계약으로 체제에 속하는 동안만 준수해야할 가치로 남아야 한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주의 체제에 속하게 할 수 있는 이익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인류의 문명 발전이라 주장하겠다. 인간은 자유로울수록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 생산이야 인간을 지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고부가 가치는 인간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생산될 확률이 높다. 그것으로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모든 개인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로불사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에 모든 개인은 자유주의 체제에 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겠다.
2. 세계 구성
[세계: 3. 대상이나 현상의 모든 범위.]
경제를 물리로 해석하려면 세계 구성을 파악해야 한다. 세계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물리적으로 경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세계 구성은 앞서 모순을 제거해 다룬 순도 높은 지식을 만드는 방법을 통해 추론하였다. 우주의 성립 조건은? 생명의 성립 조건은? 사회의 성립 조건은? 이런 식으로 추론하였는데 아직 순도가 높지는 않다. 각각의 언어 개념을 논리적으로 풀어 정리하는 것. 그냥 하던대로 대략적인 구성을 한번 써보겠다.
1) 우주 구성
우주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기본 상호 작용: 1. 우주상에 존재하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힘. 강한 상호 작용, 약한 상호 작용, 전자기 상호 작용, 중력을 말한다.] 간단히 힘으로는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 있다고 한다.
우주의 구성은 초기에 통일장 이론이나 초끈 이론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였었다. [통일장 이론: 1. 일반 상대성 이론을 확장하여 중력장, 전자기장, 핵력 마당 따위를 물리적 공간의 일정한 성질에 귀착시켜서 일반적인 마당을 통일적으로 논하려는 이론.] 그런데 시간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시간이 좌표계가 아니라 판단하고, 생명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법칙은 초기에 단순할 수 있다 판단하고 나서, 우주의 법칙 또한 초기에 단순하지 않을까 싶었다.
[C. 에너지 본질] 우선 우주의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주에는 크게 에너지와 물질이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와 물질 중 무엇이 우주에 먼저 존재했는가? 다른 개념들을 통해 하나씩 생각해보았다. 에너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중력, 물질에는 무언가를 당기는 힘이 존재한다. 초신성, 별의 폭발로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다. 중성자별, 초신성 폭발 후 만들어진 항성. 블랙홀, 중성자별의 붕괴. 핵 붕괴, 원자핵이 에너지를 잃는 과정. 빅뱅, 우주의 탄생을 가져온 거대한 폭발. E=mc2, 질량과 에너지 등가. 이런 개념들을 통해 빅뱅 이론과 같이 우주에 초기에는 에너지만 있었다고 판단했다. 물질은 에너지가 응축하면서 만들어진 존재다. 물질이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질이 붕괴하면 에너지가 방출하는 것이라 추론했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선 물질이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떠올렸다. 그렇다는 것은 물질에 있는 힘인 중력은 실제로 에너지가 응축하면서 생기는 힘이라 추론했다.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물질 자체가 응축되는 일을 하는 에너지라는 것이다. 즉 현존하는 모든 존재는 에너지의 다른 형태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에너지를 통해 나타나는 현상의 공통점은 응축하고 확산한다. 당기고 밀어낸다.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나 자석의 자기장 또는 행성의 공전 등도 전부 당기고 밀어내는 것을 기초로 한다고 보았다. 약력의 경우 당기고 밀어내는 것이 적다고 하는데, 베타 붕괴 또한 당기고 밀어내는 성질 중 하나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싶다. 당기고 밀어내는 성질은 응축과 확산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 보았다.
에너지의 기본적인 성질은 응축이나 확산. 둘 중 하나가 기본 성질일 것이라 보았다. 그런데 만약 에너지의 기본 성질이 확산이라면 물질이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무한히 퍼져나가면 끝난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기본 성질은 응축이었다. 모든 법칙의 기초는 에너지의 응축에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단순히 응축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일정 이상 응축되면 초신성과 같은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 보았다. 그게 아마 빅뱅과 같은 폭발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한번의 폭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번의 폭발로 끝없이 확산된다면 현재 우주처럼 다양한 물질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단계별로 폭발했을 거라 추론했다. 최초 에너지의 성질대로 응축된다. 아마 그러면서 특정 물질도 같이 만들어진다. 아마 초기에는 순수한 기본 입자일 것이다. 일정 이상 응축되다가 폭발한다. 그러면서 에너지와 물질이 확산된다. 폭발 이후에는 초기 블랙홀이 나타난다. 에너지와 물질은 일정 이상 확산되면서 물질을 중심으로 에너지가 응축된다. 확산되는 힘과 응축되는 힘이 비등해질 시기에 확산이 멈추면서 블랙홀의 중력의 영향을 받아 당겨지기 시작한다. 에너지의 응축이 일정 이상되자 다시 폭발한다. 응축과 폭발 중에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진다. 동시에 새로운 블랙홀도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응축되는 에너지는 블랙홀과 물질이 당기는 힘에 의해 늘어지게 되었다. A와 B가 강한 힘으로 당기면 그 사이에 있는 C는 쭉 늘어지게 될 것이다. 에너지는 응축하므로 입자가 기본일 것 같다. 입자에서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당겨지면서 파동이 된다.
우주에는 수많은 물질이 있으므로 단순히 A와 B가 당기는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무언가가 당기면서 에너지의 응축 외의 성질이 생기게 되었다.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은 이렇게 응축과 폭발로 나타난 당기는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본다. 당기는 힘을 반대에서 보면 밀어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이 밀어내는 힘이지 않을까 싶다. 자석의 다른 극 밀어내기는, 아마 자석 내부에서 서로 당기는 것에 의해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즉 우주의 성립 조건은 에너지고, 에너지의 본질은 응축과 폭발이다. 응축, 폭발, 확산, 다시 응축하면서 당기는 힘의 작용. 그것의 수많은 반복의 결과가 현재 우주의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법칙이라 판단했다.
초기 원시적인 성질에서 반복한 결과가 현재의 법칙이라는 것. 각각의 개념을 논리적으로 풀어본 결과 그런 결론이 나왔다. 통일장 이론이나 초끈 이론은 현재 우주의 법칙을 묶어서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디지털 현상을 법칙화한 다음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보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과 멜론을 하나로 묶어서 보려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해야 할까, 뭔가 인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디지털의 뿌리가 0과 1이듯이, 생명의 뿌리가 같듯이. 우주의 법칙도 뿌리에서 시작해 다양하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했다.
[C. 공간 에너지] 모든 존재는 에너지로 이뤄져 있다. 물질은 에너지의 응축된 결과다. 시간은 관측 순서로 좌표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간은? 모든 존재가 에너지로 이뤄져 있다면 공간 또한 에너지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 논리적이다. 인간은 행성이란 단단한 존재에 붙어 있기에 공간이 어떤 절대적인 개념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을 수 있는데, 우주로 보면 공간이 절대적인 개념일 필요가 없다. 공간 또한 에너지로 구성된 존재. 최초 에너지가 응축되다 폭발하면서 공간 또한 생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공간이 생겼을 때 공간을 이루는 에너지가 있어야 공간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공간의 성립 조건으로 나온 개념이 바로 공간 에너지다.
공간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전제해보자. 그리고 중력 개념을 생각해보자. 중력은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그리고 중력은 힘이 매우 미약하여 지구가 당기는 힘을 제외하면 체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주 전체를 당기는 힘이 있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태양이 은하계 중심으로 돈다. 중력의 본질이 무엇인가? 당기는 힘이다. 만약 공간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면 이것이 이해될 수 있다. 중력은 물질만 당기는 힘이 아니라 공간을 이루는 에너지도 당기는 힘이라 전제하면 된다. 공간을 이루는 에너지도 당기기 때문에 우주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중력은 공간을 당기기에 공간에 속한 개개의 에너지와 물질에 미치는 영향은 적게 된다. 블랙홀은 공간 에너지조차 빨아들이기 때문에 은하 중심에서 은하에 속한 모든 존재를 끌어당기며 공전시킨다. 공간 에너지를 전제하면 우주 팽창은 우주 전체의 팽창이 아닌 공간 에너지의 확산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공간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전제해보자. 그리고 양자 개념을 생각해보자. 양자 현상은 미시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중 슬릿에서 광자를 쏘았을 때 관측하면 입자,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이 나타난다는 실험을 통해 미시 세계에서는 거시 세계와 다른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현상은 공간 에너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관측한다는 행위는 관측할 때 생기는 에너지가 입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측하면 입자의 에너지가 높아지고 관측하지 않으면 입자의 에너지가 그대로인 상태임을 의미한다. 만약 공간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면 이것이 이해될 수 있다. 공간 에너지도 에너지인 만큼 힘이 작용할 것이다. 그 힘이 몹시 작아 거시 세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에너지가 적은 미시 세계에서는 영향을 미친다고 해보자. 그러면 관측하지 않을 때 입자는 공간 에너지보다 에너지가 적어 공간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사방에 있는 공간 에너지에 당겨져 파동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추론할 수 있다. 공간 에너지는 다른 중력에 당겨지면서 일정하지 않은 상태가 되면서 입자를 일정하지 않게 당기면서 마치 확률과 같은 무작위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거시 세계에서도 에너지를 공간 에너지 영향을 받을 때까지 줄이면 양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아마도 그 현상 중 하나가 초전도체가 아닐까 싶다. 온도가 내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가 적다는 것. 한계까지 에너지를 줄이면 지구 자기장보다 공간 에너지 영향을 받아 자기장이 없어지는 상태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아마도.
공간 에너지 개념을 통해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을 간단하게 나눌 수 있다. 공간 에너지를 당기면 고전 역학, 공간 에너지에 당겨지면 양자 역학이다. 공간 에너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중력과 양자 현상의 논리적 모순은 사라진다. 이 개념을 통해 우주의 성립 조건이 에너지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우주의 구성 또한 에너지를 기초로 한다는 것을 알 수있다. 알지 못한다고 거기에 확률을 붙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주는 전부 논리적인 인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2) 생명 구성
생명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생명의 성질을 생각해보자. 물질을 먹어야 한다. 에너지를 방출한다. 방출한 에너지로 동작한다. 세포 분열과 같이 물질을 복제한다. 전기 신호를 쓸 수 있다. 가시광선을 볼 수 있다. 기록된 유전을 재현한다. 세포의 성질은 생물의 성질과 본질적으로 같다. 작은 개념은 큰 개념을 따른다. 이하 다양한 성질을 통해 생명의 성립 조건은 원자핵 붕괴라는 판단을 했다. [원자핵 붕괴: 1. 하나의 원자핵이 방사선을 내어 다른 원자핵으로 변화하는 일. 알파 붕괴, 베타 붕괴, 감마 붕괴 따위가 있다.]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생명의 에너지 방출) 전자 포획을 통해 전자를 받아들이고 중성미자를 방출할 수 있다. (생명의 물질 흡수와 물질 생성, 가시광선 관측과 전자의 기록) 자발 핵분열을 통해 원자핵이 두 개 이상의 작은 원자핵과 다른 입자로 분열한다. (생명의 분열, 유전) 내부 전환으로 전자를 방출할 수 있다. (생명의 전기 신호)
모든 조건을 고려하다보니 물질 붕괴 개념에 닿았고, 물질 붕괴 개념을 찾아보니 원자핵 붕괴가 있었다. 최초에는 원자가 너무 작아서 생명의 본질이 맞나 의심을 했는데, 세포와 생물의 성질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떠올리고 원자핵 붕괴의 성질과 세포의 성질과 생물의 성질이 같다는 판단을 했다.
원자핵 붕괴한 특정 물질이 전자 포획이나 전자 포획과 비슷한 방식으로 어떤 물질을 흡수하면서 안정화가 된다. 전자 포획을 하면서 특정한 전자 형태를 가지게 된다. 그 전자 형태를 가진채 자발적 핵분열을 통해 원자가 복제된다. 대량으로 복제되면서 분자가 된다. 원자의 전자 형태가 기초적인 DNA가 된다. 원자핵 붕괴로 흡수하는 물질에서 필요한 것을 제외하면 버린다. 버려진 물질들이 원자핵 붕괴로 만들어진 분자를 감싸면서 세포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세포가 된 이후 원자핵 붕괴 시기와 같이 움직인다. 물질을 흡수하고 안정화된다. 에너지를 방출해 움직인다. 불필요한 물질은 내뱉으면서 물질이 생성된다. 전자 포획을 통해 전기 신호를 DNA에 기록한다. 염색체가 두 개의 세포핵으로 분열하면서 세포 분열을 한다. 거대한 물질을 흡수하면서 계속 세포 분열을 한다. 그러면서 계속 새로운 전기 신호를 기록하면서 DNA가 길어진다.
물질의 흡수는 세포가 갉아먹는 형태가 된다. 이는 동물의 혈관과 식물의 뿌리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식물의 뿌리가 땅으로 뻗어나가듯이, 동물의 혈관도 세포가 뻗어나간 흔적이 아닐까 싶었다. 바다에서 물질을 갉아먹으며 세포 분열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분열을 하는 일이 생긴다. 기본적인 세포는 신경 세포로 분열하면서 전기 신호를 주고 받으며 연결되게 된다. 세포 분열이 완전하지 않아 다양한 형태로 분열되게 된다. 적혈구나 백혈구 등 또는 단세포나 바이러스와 같은 형태 등이 있다. 그 중에 염색체 수가 반으로 줄어든 망가진 세포가 나오는데 그게 생식 세포다. 망가진 세포는 필요가 없어 버려지는데, 염색체가 반으로 줄어든 망가진 세포가 수도 없이 버려지는 과정에서 비슷한 세포끼리 결합하면서 완전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 세포가 생기게 된다. 그게 생식 세포의 결합이다.
생식 세포가 결합하면서 내부 기록인 DNA가 망가진 모양인지 생식 세포는 세포 분열을 이상하게 하기 시작했다. 기록의 처음부터 다시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생물이 탄생한다. 세포가 갉아먹은 형태를 기록한 시기대로 생물의 생김새가 달라지게 된다. 세포가 외부 표면을 다 갉아먹고 내부를 생선 뼈다귀의 형태로 갉아먹으면 어류가 된다. 세포가 외부와 내부를 대부분 갉아먹고 외부에 단단한 물질을 생성하면 갑각류가 된다. 세포가 외부와 내부를 전부 갉아먹으면 연체류가 된다. 초기에는 대게 물고기와 같은 뭉툭한 형태의 생물로 시작한다. 최초 갉아먹은 물질이 뭉툭하기 때문에 물고기와 같이 뭉툭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세포는 갉아먹은 순서대로 기관이 된다. 최초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갉아먹으면서 더 이상 갉아먹을 것이 없어지자, 심장 부위에 있는 분열한 세포로부터 물질을 공급받아 유지한다. 끊임없이 공급 받으며 머리에 해당하는 부위에 많은 세포 분열이 나타난다. 거기서 뇌가 형성된다. 물질을 공급하는 세포는 물질을 공급하게끔 기록된 세포를 분열하면서 다른 세포로부터 물질을 계속 공급받으며 심장에 해당하는 부위에 많은 세포 분열이 나타난다. 거기서 심장이 형성된다. 큰 두 개의 기관에서 사방팔방으로 세포 분열이 일어나면서 혈관이 나타난다. 머리에서 갉아먹기 시작해 물질을 관통하면서 똥구멍이 생기게 된다. 내부에 충분히 갉아먹은 공간에는 바닷물이 가득차게 된다. 그 바닷물에 적혈구와 백혈구 등이 들어가면서 그것이 피가 된다.
생물이 탄생한 이후에 생식 세포의 유전은 기록의 재현과 유전의 조합을 둘 다 하면서 온갖 다양한 생물을 탄생시킨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정확히 모름)에 유전이 기록을 멈추면서 새로운 생물은 오로지 유전의 조합으로 탄생되게 된다. 그러면서 특정 종의 고정된 형태가 시작된다. 오늘날 생물이 보통 그러하다. 종이 유전을 해도 본질적인 형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재 진화는 돌연변이로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다. 인간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생명의 성립 조건은 원자핵 붕괴와 그 붕괴가 생명이 될 수 있는 환경이다.
생명의 경우에는 그 본질을 몰라 자꾸 인문 계열의 개념으로 접근해 마치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다는 식으로 접근하는데, 생명은 어디까지나 기록된 정보를 재현할 뿐이다. 그런 것 중에서 생존에 적합한 것이 살아남으면서 마치 생명이 생존하길 바라는 것처럼 된 것뿐이다. 만약 생명의 생존이 절대적이라면 자살하는 개체는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충실하게 기록을 재현하기 때문에 기록만 조작하면 불로불사나 인간의 머리에 짐승의 귀를 생기게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생물이 기록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과 식물이 감각할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있는 것이 다르고, 항상성과 같은 개념이 강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3) 사회 구성
사회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회: 3.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인간이 모여 생활을 하면 사회다. 원시인이 모여 생활을 하면 원시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회 구성은 원시적인 사회부터 접근해야 한다. 원시적인 사회부터 풀면서 현대적인 사회까지 파악을 해야 사회 구성을 알 수 있다. 현대와 같이 세계화가 되기 이전에 인간 사회는 각각 고립되어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차이에 대해서도 파악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모여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생각해보자. 우선 인간이다. 인간은 생물 중 지능이 높은 종이다. 인간의 특성에는 이족 보행, 섬세한 수족, 높은 지구력, 도구 활용 등이 있지만 다른 종과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지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특성에 의해 지능이 높아졌다는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겠다. 모든 인간은 같은 종이므로 종이 고립된 사회의 차이를 만드는데 크지 않다.
다음은 환경이다. 인간이 생존하기 적합한 환경이 있어야 인간이 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달리 풀면 인간 사회가 있던 곳은 전부 인간이 생존하기 적합하다 할 수 있다. 정글, 사막, 극지 등 다양한 환경에서도 인간이 살았다면 거기는 논리적으로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장소다. 즉 인간 사회는 각각 환경의 차이가 있으나, 그 환경들의 특징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적자 생존의 논리로 접근하여 인간이 생존한 사회는 달리 말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기 때문에 환경이 고립된 사회에서의 차이를 만드는데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다.
다음은 질서다. [질서: 1.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질서가 있어야 사회가 성립한다. 인간의 생활이 사회로 가능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질서다. 인간을 물리적으로 접근하면 불규칙하게 에너지를 방출하는 물질이다. 그 물질은 오랜 세월 기록의 재현을 조합하면서 내부의 구조가 복잡하여 어떤 식으로 에너지가 방출될지 알기가 어렵다. 그런 물질을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에너지 방출이 되는 특정한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질서다.
불규칙하게 에너지를 방출하는 물질인 인간은 공포에 질리는 상황에 빠지면 대부분 도망친다는 개념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쳐야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에, 적자 생존의 결과 일반적인 인간은 특정한 공포를 겪으면 판단하지 않고 무작정 도망치게 되었다. 이는 대부분 생물의 본능에 해당할 것이다. 생물은 공포라는 개념을 통해 규칙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했다. 그런데 도망이라는 에너지의 방출이 규칙적이게 되었지만 방향은 아직 불규칙했다. 거기서 도피 개념이 나온다. 공포에 빠질 때 도피처가 있으면 도피처로 도피하게 된다.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올 때 도피처가 없으면 공포에 질려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불규칙한 움직임이 나타나지만, 동굴이란 도피처가 있으면 그곳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규칙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불규칙한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방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원시적인 질서, 공포 -> 도피 질서다.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한다. 공포 -> 도피 질서는 인간의 공포를 활용한 질서기에 공포를 심은 인간이 공포를 겪는 인간을 지배하는 질서가 된다. 그렇기에 인류 문명은 기본적으로 지배 질서였던 것이다. 공포 -> 도피의 지배 질서는 인간의 특성상 어떤 고립 사회든 비슷하다. 그러나 어떤 공포와 도피를 활용했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고립된 사회의 차이는 대부분 이 질서에서 왔다 봐야 한다. 환경이 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나, 인간의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전제하고 비슷한 환경에서도 다른 질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영향이 그리 크지는 않다.
공포 -> 도피의 지배 질서는 크게 무력, 원시 신앙, 권력, 종교 신앙 정도가 있다. 무력으로 공포를 겪게 하여 생존으로 도피하게 하는 정복, 자연 재해의 공포를 이용하여 신앙으로 도피하게 하는 원시 신앙, 권력으로 공포를 겪게 하여 복종으로 도피하게 하는 지배 정당화, 천국과 지옥과 같이 가치로 공포를 만들어서 교리 준수로 도피하게 하는 종교 신앙. 대체로 이런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지배 질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무력, 재해, 권력과 같은 공포로 만들어진 질서는 지극히 단순하여 사회 질서 주류가 될 수는 없다. 천국과 지옥과 같은 만들어진 가치 개념을 통해 공포 질서를 구축하여 종교의 교리로 도피하게 만든 체계화된 공포 -> 도피 질서인 종교의 가치가 사회 질서의 주류가 된다.
종교의 성립 조건은 절대적 가치, 절대적 가치의 주장자, 절대적 가치의 신도다. 종교는 이 가치를 믿으면 네가 가진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절대적 가치를 전파했다. 공포에는 빈곤, 질병, 죽음 등 다양하다. 선행을 하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여기서 선행이란 종교 가치의 실천이다. 착하다는 것은 선행을 한다는 것. 달리 말해 종교 가치를 충실히 지키는 인간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한 행위가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 여길 수 있는데, 판단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타인을 돕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판단의 결과, 자유 의지의 결과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맹신과 맹신이 아닌 종교가 있을 수 있는데 별 차이는 없다. 애초에 종교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면 성립이 안되기 때문에 맹신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맹신을 요구하고 유교나 불교는 맹신을 요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유교와 불교의 교리가 절대적이지 않으면 그 종교가 유지가 될 수가 없다.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절대적 가치가 아니게 되면 그 질서를 누가 얼마나 지키고 그 가치를 주장한 종교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산에서 하는 수행과 열반과 지옥 등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게 되면 그 가치를 따르기 위한 행위를 누가 얼마나 지키고 그 가치를 주장한 종교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게 절대적 가치가 아니면 인간의 주관적인 가치관이 우선된다. 개인적인 욕망이 우선되게 된단 말이다. 어떤 종교든 종교의 가르침은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종교로서 존속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를 믿는 인간은 판단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 가치에 한에서는 바보가 된다. 즉 우민화다. 이런 종류의 지배는 전형적인 우민화를 통한 지배다. 판단을 못하는 가치가 있으니까 수천 년을 하고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원시 레벨에서 레벨이 오르지 않으니까. 이 절대적 가치는 흥미롭게도 지배 계층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것은 절대적 가치를 주장한 종교라 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인류의 정신에 가치의 노예의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논리적으로 풀면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문화 상대주의를 부른 원인이기도 하다. 문화 상대주의가 모순을 부를 지라도, 각 문화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로 고립된 사회는 종교의 교리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고립된 사회의 특징은 사회 종교의 교리를 보면 대체로 알 수 있다. 그것을 기본적인 질서로 삼아 다양한 생활 양식이 탄생했다. 그것이 문화다. 그것을 학문화한 것이 문명이다. 사상, 철학, 예술, 논리, 수리, 농업, 어업, 상업, 기업, 금융 등 이전에 탄생부터 죽음까지 전부 그러하다. 금욕이나 이타 같은 고립된 사회에서 공통된 절대적 가치도 있는데, 그것은 지배 체제와 지배 질서가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욕망이 적고 집단을 위한 희생을 옳다 여겨야 지배하기 수월하다. 그런 질서에서 인류의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했으나 절대적 가치에 한에서는 원시적인 상태 그대로 남아 인류 문명의 발전을 방해했다. 의심할 수 없는 가치. 판단할 수 없는 가치.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가치.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왜 그것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다. 판단할 수 없으니까 당연하다. 생명이 뭔지도 모르고 윤리가 뭔지도 모르는데 생명 윤리를 절대적으로 지키고 있다. 심지어 과학자조차.
누군가는 국가보다 종교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그야 당연하다. 실제 인류의 지배자는 종교니까 그렇다. 그토록 맹신하며 따르는데 판단할 수 없으면서 그것을 지배라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체제와 윤리가 충돌하여 사회 문제가 심각함에도 원인조차 모르는 것이다. 현재 선진국의 보편적인 체제인 자유 체제는 어디까지나 종교에서 나온게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서 나왔음을 잊으면 안 된다. 물론 종교적 허용이 있어 가능했다. 기독교는 신이 위에 있기에 인간 사이가 평등할 수 있다 믿었고 유교는 인간이 위에 있기에 인간 사이가 불평등해야 한다 믿었다. 기독교가 신의 지배기에 왕의 지배가 절대적 가치가 아니여서 가능했다.
사회의 성립 조건인 질서는 반드시 절대적 가치인 윤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질서는 에너지가 규칙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면 성립된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판단으로 계약을 하여 규칙적인 에너지 방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공포 -> 도피 지배 질서가 아닌 판단 -> 계약 자유 질서다.
4) 체제 구성
체제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체제: 2.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이나 양식,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 체제는 크게 지배 체제와 자유 체제로 나뉜다. 각각 체제는 성립 조건이나 과정, 권력이나 가치가 다르기에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체제의 변화 과정을 통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최초 인간 사회는 공포를 이용하여 도피하게 만드는 것으로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활 양식이 나타났다. 즉 질서 -> 체제라는 것. 공포 -> 도피 질서에서 공포와 도피가 만드는 절대적 가치는 달라질 수 있어도, 공포 -> 도피 질서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절대적 가치는 달라져도 가치의 절대성은 그대로라는 것. 예를 들어 고려의 불교에서 조선의 유교로 정치적인 절대적 가치가 달라졌으나 가치의 절대성 자체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자유 혁명을 통해 지배 체제를 부수고 자유 체제로 전환을 하고나서 그 체제에 맞는 법을 제정하면서 다양한 생활 양식이 나타났다. 즉 체제 -> 질서라는 것. 지배 체제는 사라졌으나 지배 질서는 윤리로 남아 자유 체제와 자유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사회와 체제를 망가트렸다. 그게 현재 저출산 등의 고질적 사회 문제다. 절대적으로 옳다 여긴 것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된다.
인류 사회의 변화 과정은 간단히 다음과 같다. 지배 질서 -> 지배 체제 -> 자유 체제 -> 자유 질서 순으로 진보했다. 인간의 공포로 질서가 만들어지고, 그에 맞는 체제가 구축. 인간의 이념으로 체제가 만들어지고 그에 맞는 질서가 구축. 근본적으로 지배 체제와 자유 체제는 공포와 이념으로 다르다. 그렇게 다름에도 아직까지 인류는 공포로 구축한 질서의 간섭 없이 제대로 질서를 구축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공포에 의한 질서에 의존하고 있다.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한다. 이것이 아직까지도 질서 구축에 쓰이고 있다.
과거 지배 질서가 절대적 가치로서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왕정 체제 위에 있었던 것과 같이, 현재도 절대적 가치인 윤리에 의한 법의 제정과 판결과 집행이 일어나면서 법이 체제 위에 있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윤리로 체제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 체제는 지배 체제를 부수고 만들어졌기에 지배 질서에 의존할 게 아니라 자유 체제에 맞는 법의 제정과 판결과 집행이 필요하다. 지금 법이 체제 위에 있으려 하는 것은 축구 규칙이 축구 위에 있으려 하는 것과 같다. 그건 축구 규칙이 절대적일 때에나 벌어지는 현상이다. 축구 규칙이 상대적이면 축구에 맞는 규칙을 만들려 하게 될 것이다.
사회의 성립 조건을 알고, 인간에게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그 가치를 이념으로 삼아 체제를 구축하고, 그 체제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탐구하여 실행해야 하는 것이 체제를 다루는 인간에게 필요한 태도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종교 가치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게 아니다.
체제의 가치를 바꿀 때에는 체제에 속한 개인의 의사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나를 비롯해 대부분 정신에 노예의 낙인이 찍혀있는 상태기 때문에 함부로 그러다가는 민주적인 정교일치로 종교 가치가 체제 가치가 될 확률도 있다. 아랍 국가의 민주화로 신정 국가가 된 사례를 생각해보자. 그런 상태에서는 개인의 의사가 반영될수록 국가가 지배 체제로 회귀하게 되면서 체제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논리적으로 노예의 낙인을 이해하고나서 체제의 이념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특정 가치가 판단이 안되면 그 가치에 한해서는 그 누구도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 체제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다. 이 둘의 사상적 차이는 권력과 그 외의 힘이다. 자유주의는 권력은 같되 그 외 힘이 다르다. 상하는 없지만 선후는 있다. 기회의 평등이다. 권력은 평등하나 그 외의 힘은 평등하지 않아 자유롭게 힘을 키우면서 앞서나가는 인간과 뒤쳐지는 인간이 생기게 된다. 권력이 대등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힘을 억압하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서 힘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성립시키면 자연스럽게 이런 결과가 나온다.
사회주의는 권력이 다르되 그 외의 힘이 같다. 상하는 있지만 선후는 없다. 결과의 평등이다. 결과적으로 힘의 차이와 그 차이에 의한 결과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강제로 선후를 맞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위에서 강제하는 인간과 아래에서 강제되는 인간이 생기게 된다. 선후를 맞추기 위해 권력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와 붙어 불리기도 하는데, 애초에 구조상 지배가 성립 조건에 들어가기 때문에 민주적이라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는 체제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왕정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은 모든 개인에게 분산한 체제다. 권력의 평등이지 모든 힘의 평등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대표, 대리인이지 지배자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여야만 한다. 흔히 문화나 정서를 말하며 연령 차별 등과 같은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는데, 이제는 본인이 어떤 체제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유교 사회는 권력에 따른 위계질서가 절대적인 사회라면, 민주 사회는 모든 개인이 평등하며 개인의 의사로 동작하는 선거와 시장과 같은 제도로 질서를 구축하자고 계약한 사회다.
자유주의 체제는 상하는 없되 선후는 있다. 힘이 강해 앞서가는 인간이 있으면 그것을 억압할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사회에 이롭게 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배 질서를 성립시키던 절대적 가치인 윤리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면서 마냥 힘을 지배에 이용하거나 힘을 지배하려 들면서 사회와 체제가 망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자유 체제에서 개인이 자유 연애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저출산이 발생한 문제는 어떻게 해서 성립되었는가? 지배 체제에서 성을 지배하며 강제로 결혼하고 출산하게 했던 절대적 가치인 윤리를 자유 체제에서 절대적으로 여기며 미성년에게 강제한 결과, 미성년이 성에 관련된 가치가 폭락하면서 성년이 되고서도 그것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여 자발적으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강제로 연애와 결혼도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추론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 문제도 어떻게 그 문제가 성립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성립 조건이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자유 연애 결혼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의 의사로 결정되는 현상이다. 개인의 의사로 연애와 결혼에 가치를 높게 여겨야만 자발적으로 행한다는 것이다. 자유 연애 결혼의 성립 조건은 동기인 가치관과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거기에 들어가는 중요한 가치관이 성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성기능이 작동하는 미성년 시기부터 그것을 친숙하고 긍정적으로 여기게 해야 성에 관련된 가치를 높게 느끼고 자발적으로 그걸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가치를 못느끼니까 연애 시장이 망가져서 고점만 소비되는 것이다. 애초에 전쟁 중보다 출산율이 낮다는 것을 알면 경제적 원인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판단이 가능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윤리가 절대적 가치니까 그것이 부정적 현상, 나쁜 결과를 만들거란 생각 자체를 못한다. 절대적 가치는 판단을 못하니까 그렇다. 담합도 파업도 비리도 차별도 그 외 다양한 현상들도 윤리가 원인이면 원인조차 모른다. 판단을 아예 못한다. 그렇게 판단을 못하면서 연애 시장 망가지듯 다른 시장들도 윤리로 망가졌다.
3. 경제 체계
경제 체계의 성립 조건은 경제를 동작하게 할 연료인 사회 에너지와 동작하는 환경인 경제 생태계다. 인간이란 생물을 이해하고 그 생물의 에너지 방출과 방출된 에너지를 사회에 이롭도록 제어한다. 그렇게 생성된 사회에 이로운 충분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보다 높은 가치가 안정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구축한다. 이것이 경제 물리학에 필요한 개념이다.
생명은 태생부터 물질 붕괴와 같은 결핍된 상태이기 때문에 결핍을 충족하는 것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다. 그러한 만족감을 행복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기에 행복의 원리는 결핍의 충족이다.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생명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사회에서 행복한 인간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행복의 원리인 결핍의 충족을 효율적으로 하여 가능한 모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을 경제 체계를 통해 성립시켜야 한다.
1) 사회 에너지
사회 에너지는 에너지 방출 성립 조건과 에너지 제어 성립 조건을 파악하고 에너지의 방출과 제어를 하면 된다. 우선 에너지에 대해 알아보자.
[에너지: 2. 기본적인 물리량의 하나. 물체나 물체계가 가지고 있는 일을 하는 능력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역학적 일을 기준으로 하여 이와 동등하다고 생각되는 것, 또는 이것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을 이른다. 에너지의 형태에 따라 운동, 위치, 열, 전기 따위의 에너지로 구분한다.]
물체나 물체계가 가지고 있는 일을 하는 능력을 통틀어 이른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물체나 물체계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일의 능력일 것이다. 물체나 물체계가 있어야만 에너지가 성립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정확히는 물체나 물체계가 있어야만 인식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없어도 에너지는 존재할 것이다. 그래야 최초 에너지 폭발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최초 에너지가 폭발하고나서 퍼진 에너지에 의해 공간이 형성된다. 에너지가 응축할 때 생긴 물질, 아마 입자들은 다른 에너지보다 무거워서 느리게 가면서 더 강한 중력으로 다른 에너지를 당기고 응축하면서 다시 에너지 폭발이 이뤄지는 것으로 우주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최초 에너지 폭발 이전을 아는 것이 사상가로서의 목표 중 하나다.
물질 자체가 에너지가 응축한 결과기에 물질 스스로도 중력이란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체와 물체계가 있어야만 에너지를 관측할 수 있었기에 단순히 물리량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에너지 자체가 모든 것의 근원인 것이 좀 더 논리적이라 본다. 에너지가 응축하면 입자, 입자가 모이면 원자, 원자가 모이면 분자, 분자가 모이면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물체.
중력은 에너지가 응축된 물질의 능력. 사방팔방에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방팔방에서 중력으로 모든 것을 당기면서 온갖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 전자기력은 거시 세계에서 중력으로 당기는 것으로 성립. 강력은 미시 세계에서 중력으로 당기는 것으로 성립. 모든 에너지는 일을 하면 소모되어 변환되는데, 약력은 입자 또한 중력을 행사하면서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것으로 성립. 아마 공간 에너지 또한 공간을 유지하는 일을 하면서 소모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에너지를 수급해 공간을 유지할 것이라 추론한다. 공간 에너지의 양은 아마 양자 현상이 일어나는 입자의 에너지 양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모든 존재는 일을 하면 에너지를 소모한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일을 하면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일을 하면서 얻는 이익이 에너지 소모보다 클 때, 일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이익이란 판단은 가치 판단의 결과다. 통상 감각 기관으로 수집한 대상에 대한 육체의 반응(맛있다, 멋있다 등)으로 가치 판단을 하게 되면서 가치가 상대적이게 된다. 상대적 가치는 음식이 맛있는만큼 이익이 높다 가치 판단하는 것으로 그만큼의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한다. 절대적 가치는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가치로, 그 가치의 영향은 인간마다 다를 수 있는데, 강한 영향을 받는 인간은 판단하지 않고 가치를 추구하면서 이익과 별개로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다.
상대적 가치에서 육체의 반응은 기본적으로 유전자와 같은 정보를 기준으로 나타나고, 기억에 있는 관념에 영향을 받아 기준이 달라진다. 유전자 정보와 기억의 관념을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기억의 관념은 사회의 가치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정 음식이 맛있다고 유행하여 가치가 높아지면, 기본적인 유전자 정보를 거스르지 않는 이상, 실제 맛있다 느낄 수가 있다.
에너지 성질을 통해 파악한 에너지 방출과 제어의 성립 조건은 에너지 방출이 가능할 수 있는 충분한 영양 공급과 에너지 방출과 제어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다. 유전자 정보는 개인 고유 정보기에 유전자 조작을 하기 전에는 사회에서 제어하기 어렵다. 즉 환경과 교육을 통해 에너지 방출과 제어를 성립시킬 수 있다.
에너지 방출과 제어를 위한 환경과 교육은 가치가 상대적이기에 특정한 절대적 가치를 실천하려 하기보다는 사회와 체제의 성립 조건을 고려하여 설계해야 한다. 사회가 성립하려면 사회 체계를 동작하게 할 사회 구성원의 에너지 방출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하게 된다. 흔히 약자에 대한 다양한 복지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타적으로 희생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는데,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연료 공급으로 사회를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지배 체제에서는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않더라도 사회 체계가 동작할 수 있다. 강제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약체화가 될 수 있어도 사회가 성립하긴 한다. 그러나 자유 체제에서는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사회 체계가 동작하지 않는다.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제할 수 없으니까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동작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제하면 그 순간 자유 체제가 붕괴하면서 지배 체제가 되기 때문에 이 논리에 모순은 없다 할 수 있다.
현재 에너지 방출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상당히 억제되고 있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주요 억제 명분이다. 이것들에 의해 범죄율도 가치를 제어해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억압하면서 줄이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범죄율은 다소 감소하더라도 동시에 사회 참여율도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저출산, 고자살, 은둔형 외톨이, 경제 활동 포기 등 다양하다. 충분한 에너지가 방출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생존을 제외하면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출산을 보자. 성 터부시로 성욕을 억압하면서 그에 대한 가치가 폭락하여 그런 활동을 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할 이익이 되지 못하니까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 판단에는 절대적 가치가 포함되면서 실제 이유조차 모른다. 그냥 외모, 재산, 아니면 이성이 문제라면서 탓만 할 뿐이다. 친구는 대부분 사귈 수 있는데 연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여성주의자 또한 가부장제 여성성을 여성 인권이라 말하며 여성을 억압하면 여성 정조관념으로 만들어진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성적 대상화나 성 상품화가 문제라면서 반대하는 것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에게 지배받던 여성이 남성에게 지배받던 여성성을 여성 인권이라 떠드는 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무슨 탈코르셋 말하면서 꾸밀 자유를 억압하거나 불필요하게 용어나 바꾸고, 정작 중요한 가치관은 가부장제에 머물러 있지 않는가.
과거 출산율이 높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야 당연하다. 과거에는 강제하지 않았는가? 달리 말해 강제하지 위해서 성을 터부시한 것이다. 그래야 에너지를 소모할만큼의 이익이 아니라 판단하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이 본능이라 놔두면 알아서 다 잘할 거라 생각하는데, 그러면 보편적 중매 결혼이 어떻게 성립하겠는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조선 시대 중매 결혼이 보편적이었던 것은 그만큼 성을 지배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걸 위해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여성 정조관념을 절대적 가치로 만들어 판단하지 못하고 실행하게끔 한 것이다.
현재 젊은 세대가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을 윤리적인 인간은 그걸 보고 좋아할 수도 있다. 그건 그만큼 인간과의 성관계 가치가 폭락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저출산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인간과의 성관계 가치가 폭락하면서 연애 비율, 성관계 비율 감소와 함께 성매매 비율도 감소하는 것이다. 감소한 만큼 유사 연애 산업이나 짐승 사육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 국가 죽음의 지표를 보고 기뻐하는 윤리적인 인간은 도대체 윤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차라리 성매매 비율이라도 높은게 출산율 회생의 가능성이라도 있다.
예를 들어 은둔형 외톨이를 보자. 에너지를 방출하는 물질에게 욕망을 억압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게 만들어 에너지 방출을 억제하면 물리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겠는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인간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욕망을 실현할 수도 없고 타인에게 피해를 줘 불행하게 할 수도 없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윤리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메이와쿠와 같은 윤리적 풍습에 의한 영향이 크다. 일본에서 창작물 원작자와 드라마 각본가가 싸웠는데, 보편적으로 드라마 각본가의 잘못되는 사건임에도 창작물 원작자가 피해를 줄 생각이 없었다면서 자살했다고 한다. 메이와쿠. 폐를 끼치지 말아라. 그야말로 지극히 윤리적인 사건이다.
인간은 왜 자극을 바라는가? 그러지 않은 인간은 전부 죽었으니까 그렇다. 자극이란 평소와 다른 행동, 다른 움직임, 다른 영양분을 바라는 것. 자아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자아가 죽는다.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에서 판단만 하는 기관. 같은 행동은 판단할 필요가 없게 되면서 자아가 죽는다.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되면서 자아가 지속될 수 있다. 그런 자극을 바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지적 호기심이나 자극을 얻는 취미다. 그렇기에 공부를 하게 하겠다고 취미를 못하게 하면, 그런 자극을 바라는 것이 망가질 수가 있게 된다. 취미를 막다가 지적 호기심까지 막아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게 아니라면 자극을 바라는 태도를 막아서는 안된다.
사회의 범죄를 보고 더욱 더 윤리적인 것을 강요하기도 하는데, 그건 멀쩡한 인간을 더 병신으로 만들어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먹잇감으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욕망이 적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노예 디자인 휴먼을 만들어버리니까, 학교 폭력, 신흥 종교, 사기 등의 먹잇감이 되어 불행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지금까지 조선에게 윤리로 개인을 노예 디자인 휴먼으로 만들었으니까 북한의 대를 이은 독재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정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길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접근해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충분한 영양 공급과 윤리로 에너지 방출을 막지 않으면 많은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제 그것을 제어하면 된다. 영양 공급에 있어 지금까지 공포 -> 도피 질서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인간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고정 관념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가치를 제어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넘쳐나는 에너지로 가지게 된 욕망을 실현하려면 생산 활동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구조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듯이 미성년 시기 한번 학습한 가치는 평생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성년에 해야 할 것을 미성년 시기에 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13세 이하의 미성년이 대구 혀 자르기와 같은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생산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이 자리잡아 생산 활동이 이익이라 판단되어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이 부모 허락 맡고 안전한 동네 배달 아르바이트 하는 것도 분노하며 지적할 정도로 아예 가치에 대한 이해가 없다. 아동이 일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쁘다라는 윤리적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에 판단을 아예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많은 미성년이 자발적으로 일을 고르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대학이나 군대 또는 직장에서까지 부모의 간섭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에 대한 인식이 나쁘니까, 땀을 흘리며 일하는 일에 대한 멸시가 사라지질 않는 것이다. 경제 활동이 줄어드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강제할 수 없는데 자발적으로 할 정도로 가치가 높지도 않으니까 경제 활동을 안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성년 시기부터 일을 긍정적으로 여기게끔 만들어야 한다. 쉬운 일을 직접 해보면서 경험을 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성적 기능이 작동하는 사춘기 시기부터 이성의 육체를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성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성의 성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이 자리잡아 이성과의 성관계가 이익이라 판단되어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성교육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학교에 민원 사례가 빗발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교육을 받고 성장한 자녀가 연애와 결혼을 안하면 왜 안하냐고 타박한다고 한다. 아예 가치에 대한 이해가 없다. 미성년이 성에 대해 아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쁘다라는 윤리적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에 판단을 아예 못한다. 그러니까 20대 초반 연애율이 20%대이고, 출산율이 0.6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강제할 수 없는데 자발적으로 할 정도로 가치가 높지 않으니까 연애 활동을 안하게 되면서 줄어드는 것이다. 그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성년 시기 성기능이 작동하면 성을 긍정적으로 여기게끔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성기능이 작동하는 10~14세 사이에 다 성경험을 해봐야지 성을 부정적으로 여기는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여기면서 누구나 연애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단 말이다.
일이든 성이든 개인을 지배하던 질서를 성립시킨 가치를 절대적이라며 강제할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리 때문에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다른 시장으로 이해하면 좋다. 특정 시장에서 취급하는 가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는데 상거래가 가능하겠는가? 시장 참여도 줄어서 시장이 죽게 된다. 실제로 그렇지 않는가. 시장 가치가 낮으니까 시장에 참여하려면 고점이라는 조건이 필요하게 되고, 그것이 아니면 참여를 하지 않게 된다. 괜히 대기업, 미형의 이성만 찾는게 아니란 말이다. 그만큼 가치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미성년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지배다. 결정권을 뺏는게 인간의 권리라고 여기는 것은 지극히 윤리적이다. 아예 그게 어떤 결정인지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호라 자칭할거면 연상에게 존댓말을 강제하는 권력에 따른 위계질서부터 벗어나길 바란다. 그렇게 미성년 생각하면 말부터 놓게 해보란 말이다. 질서 자체가 지배하는 질서인데 무슨 보호 타령을 하는가. 그렇게 지배 질서를 성립시킨 윤리 교육을 하는 것은 지배 질서에 맞는 노예 디자인 휴먼으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자유 체제에서는 인간을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 교육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가 사라져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없어진다면 분명 합리적인 교육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 방출을 억제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범죄율이 증가할 수 있다. 일에 대한 가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학습을 포기하고 일만 하면서 고부가 가치 생산이 줄어들 수 있다. 성에 대한 가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상대의 허락을 받지 않는 성관계, 즉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에너지 방출을 억제하면 지금 한국 사회처럼 사회가 죽어버린다. 그러므로 관련 메커니즘을 전부 가르쳐야 한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쾌락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체제에 맞게끔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범죄는 빈곤하거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애초에 성 억압을 안하면 일부를 제외하면 성범죄가 일어날 이유가 없다. 물리적으로 만족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배부른 인간이 더한 식탐을 바라는 것은 통상 망가졌을 때 말고는 없듯이, 욕구가 충족되면 망가지지 않는 이상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 충분한 영양 공급과 욕구 충족을 물리적으로 이해하고 나서 체제에 맞게끔 합리적인 절차로 할 수 있도록 하면 웬만하면 범죄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렇게 되도록 인간이란 생물의 메커니즘을 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범죄는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인간을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해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고,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교화는 지극히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간이란 생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메커니즘에 따라 범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 대체로 인간, 정확히 자아는 뇌의 발상에 지배를 받는다. 범죄를 되풀이하는 것은 범죄에 관한 발상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즉 그 발상이 되지 않도록 만들면 재범을 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경험을 하면 그 경험이 발상에 떠올라 그 경험을 겪기 위한 행동을 한다. 불행한 경험이 떠오르면 그 경험이 발상에 떠올라 그 경험을 겪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한다. 발상의 지배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행복한 발상과 불행한 발상에 의한 행동은 메커니즘이 동일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고문이다. 고통을 줘서 범죄를 저지르려 할 때 고통이 발상되도록 한다. 그러면 그 고통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 판단하지도 못해서는 안된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다른 방식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경험을 줘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쓸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이미 가치관이 자리잡은 상태에서는 지극히 어려운 방식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과거를 지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이름을 지우고 아는 인간을 배제한다. 그러면서 어린 시기에 자리잡은 가치관 교육부터 다시 한다.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하면 행복한 발상이 나오도록 경험을 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그런 식의 발상이 나오게 되면 교화할 수 있다. 교화라는 것을 물질의 성질 변화와 같이 접근해야지, 윤리적으로 접근하면 아예 판단을 못하면서 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현재 윤리에 의해 촉법 소년이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법원 행정처와 국회 입법 조사처에서 촉법 소년 관련 법률을 바꿀 생각이 없는 것은 지극히 윤리적이라 할 수 있다. 지배 질서에서 어리석은 미성년은 일방적 교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 확산과 가치 개념을 이해하면 그런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이미 정보가 확산되어 촉법 소년 시기 범죄는 크게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촉법 소년이 알고 있다. 그 상태에서 촉법 소년이란 이유로 죄가 경감되거나 면죄되면 그것을 면죄부로 이해하게 된다. 면죄부가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성장한 인간은 면죄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절대적 가치에 의해 판단하지 못하면서 촉법 소년 법을 개정하지 않은 결과, 면죄부 교육을 해버리게 되었다. 인식을 바꾸는데 겉만 바꿔도 된다. 형사 처벌을 하되 그 처벌 장소를 종전과 같거나 비슷하게만 해도 면죄부가 존재하다는 인식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것을 고려하지도 않은 것은 윤리가 절대적 가치여서 가치 판단 자체를 못하기 때문이다.
2) 경제 생태계
[생태계: 1. 어느 환경 안에서 사는 생물군과 그 생물들을 제어하는 제반 요인을 포함한 복합 체계.]
충분한 에너지가 사회에 이롭도록 방출이 되면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경제 체계가 작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한다. 경제 생태계가 유지만 되면 알아서 생활하고 진화하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산업의 성장이나 노동자 권리 등이 아닌 산업이 성장하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있다. 불필요한 시장 간섭은 되려 시장을 파괴할 수 있다. 현재 윤리로 시장에 간섭한 결과 파괴된 시장이 지나치게 많은 상태다.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의 위험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 생태계 구축이 잘 되면 고부가 가치도 많이 쏟아질 수 있다. 환경이 엉망이면 인재가 만 명 있어도 한 명 성공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환경이 뛰어나면 인재가 백 명 있어도 절반 이상은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인구수 차이가 나도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다. 인구수가 십 억이 넘어가는 중국과 인도. 선진국을 유지하면서 그런 국가와 경쟁하려면 경제 체계를 잘 갖춰야만 한다. 단순히 윤리만 강제한다고 모든게 잘 되는게 아니다. 그건 절대적 가치에 대한 복종에 불과하다.
경제 생태계의 성립 조건은 경제 생태계 참여자인 인간, 경제 생태계에서 생산을 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할 교육, 경제 생태계에서 거래가 될 수 있는 환경인 시장, 시장 경쟁에서 탈락한 인간의 재활인 복지다. 생태계에 있는 생물인 인간이 거래하는 능력을 학습하여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먹고 먹히는 과정을 통해 적자생존을 구축하고 경쟁에서 탈락한 인간을 재활하여 새로운 생태계 참여자와 같이 다시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경제 생태계 중 인간은 충분한 에너지 방출이 가능하게 하고, 생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게 하여 자발적으로 생산을 하게 해야 한다. 유교의 영향으로 학교의 지식을 암기하고 시험보는 것이 절대적 가치가 되어 판단하지 못하면서 무작정 공부만 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러면 생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게하질 못하여 자발적인 생산을 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미성년 때 공부만 시켜놓고 성년 때 왜 일을 안하냐며 타박하는게 맞는 것 같은가? 그건 그냥 윤리로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 생태계 중 교육은 가치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치 개념을 이해하고 스스로 생산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공부하게 하겠다면서 교육 외의 가치에 대한 욕망을 억압하는데, 그러면 그에 관한 호기심도 억압되어 하고 싶은 것이 사라질 수 있다. 단순히 공부만 하게 하면 다 잘될거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윤리적이다. 판단을 안한다는 얘기다. 학생의 취미까지 억압하는 것은 그저 정의롭게 학생을 망가트리는 것에 불과하다.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가치의 시장성까지 고려하여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자발적인 가치 생산이 이뤄질 수 있다. 그렇다고 아예 방치하라는 것은 아니다. 가치 개념을 이해하게 해야 한다. 이걸 교육의 비전문가인 학부모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공교육 단계에서 가치 교육을 행해야 한다.
경제 생태계 중 시장은 개인의 의사로 가치를 거래하는 제도로 시장의 존재 자체가 자유주의 이념의 실현이다. 그런데 이 시장이 윤리에 의해 상당히 많이 망가졌다. 시장의 성립 조건은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자유 거래, 공정 경쟁, 생산 유연, 생산 효율, 가치 제어.
하나, 자유 거래. 모두가 대등한 시장 참여자로서 자유로운 질서에서 거래가 가능 해야 한다. 그러나 윤리에 의해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 지배 질서가 있기 때문에 보통 그것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기업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데, 그것은 윤리가 지배 질서기 때문에 윤리를 버려야 가능할 것이다.
둘, 공정 경쟁.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을 하여 소비자에게 선택되기 위해 효율적인 체계로 상품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출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을 하는 이타적인 담합과 독과점 등으로 그것이 성립되지 못할 때가 있다. 경쟁이 되면 시장 자유 또는 민영화, 경쟁이 안되면 시장 간섭 또는 국영화가 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셋, 생산 유연. 창업과 취업 또한 시장의 활동 중 하나로 보고 시장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유연한 거래가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자를 위해서라며 해고를 어렵게 하자 노동 유연성이 사라져 노동 시장이 죽어버리고 노동자를 위해서라며 좀비 기업을 살리자 세금이 낭비되고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지 못하면서 경제가 정체되면서 그것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윤리를 실천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게 아니다.
넷, 생산 효율. 생산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자원을 최대한 줄여야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그러나 영주와 농노의 관계에서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노사 관계와 윤리적인 이유로 해고를 어렵게 하고 생산 관련 처벌을 강화하자 법적 리스크를 회피하고 이익을 최대하게 하기 위한 불필요한 중간 과정인 하청과 파견 등이 지나치게 많으면서 그것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되팔이도 생산하지도 않고 유통 과정에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중간 과정에서 이익을 빼먹는 불필요한 중간 과정에 해당한다.
다섯, 가치 제어.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새로운 가치가 대두될 수 있도록 가치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작정 시장을 보호하겠다고 외부 가치의 진입을 방해하거나, 새로운 가치가 나와도 그것을 부당하게 빼앗는 등의 행위가 일어나 그것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윤리로 가치 제어에 실패하여 망가진 시장이 지나치게 많다. 한국은 부동산 투기가 많기 때문에 주택 가치가 높다는 고정 관념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장소와 차익이지 주택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택 마감이 그렇게 엉망이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되팔아서 차익을 챙기는게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경제 생태계 중 복지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사회의 성립 조건 중 하나일뿐이듯 경쟁 탈락자에 대한 재활 또한 체제의 성립 조건 중 하나일 뿐으로 거기에 윤리가 들어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물리적인 관점에서 단순히 필요하여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윤리적으로 접근해 강제로 선후를 맞추는 것과 같은 할당제와 가산점을 넣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지배에 불과하다. 민주적이지 못하다. 자유롭다면 권력 외의 힘을 강제로 억압할 근거가 없다.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것을 강제로 패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선후의 차이는 선후를 강제로 맞출 것이 아니라, 앞서 나갈 수 있는 힘을 갖추게 해야 한다. 스스로 앞서 나가게 해야지 강제로 선후를 맞춰서는 안 된다. 체제 성립 조건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연령, 성별, 혈연, 학연, 지역 등 다 배제하고 역할에 맞는 능력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방적 이익은 성립시켜서는 안 된다. 기업은 저렴하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하실 바라고 노동자는 비싸게 고용되고 어렵게 해고되길 바라는데, 이러한 것을 누군가 이익을 위해 정할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통상 기업이 유리한 위치에 있는데, 기업이나 노동자는 경제 생태계를 유지해야 경제 전체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애초에 영주가 농노 쓰던 시대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없어 정규직 비정규직 같이 구분되는 바람에 정규직은 안정과 고수익, 비정규직은 불안정과 저수익이라는 리턴 리스크가 맞지 않는 형태가 자리잡으면서 마치 신분과도 같은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괜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차이가 큰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불합리는 경제 전체 생산량을 악화시킨다.
정상적인 경제 생태계에서는 파업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한번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시장 원리와 무관한 방식으로 이익을 얻는 파업을 하게 되면 파업이 연쇄작용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파업을 할 수 없는 이들은 더욱 큰 손해를 본다. 파업을 할 수 있는 이들은 파업하면서 사회 자원을 더 많이 가져가지만 파업할 수 없는 이들은 적은 사회 자원이 더 적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약자를 위해서라며 무작정 파업을 허용하면 파업할 수도 없는 약자는 더 짓밟힌다. 사회의 한정된 자원에서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더 큰 자원을 받아가면 당연히 약자는 더 큰 손해를 보게끔 된다. 그 결과가 귀족 노조와 비정규직 관계. 그러면서 경제 생태계가 파괴되고, 그러면서 경제 체계가 무너진다. 물론 정상적인 경제 생태계에 한정한다. 현재는 아직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개인은 시장 관리와 시장 참여를 둘 다 한다. 권력이 평등한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 그렇기에 위아래는 없다. 그러나 권력만 평등한 체제기에 선후는 있다. 자유주의. 시장 참여자와 관리자. 관리자가 위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는데, 올림픽 경기장 관리자와 올림픽 선수 사이에 상하관계는 없듯이 그런 것 없어도 가능하다. 모든 개인은 주권자이자 권한이 다른 통치자이므로 참여자가 관리도 해야 하고 관리자가 참여도 해야 한다. 역할주의. 역할과 역할에 따른 권한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권력은 같아야 한다.
경제는 가치의 거래.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보다 우수한 가치를 생산할수록 큰 이익을 얻는다. 그것을 위한 것이 경쟁. 통상 공정할수록 우수한 가치를 생산하는 경쟁이 된다. 보다 우수한 가치가 생산될수록 경제가 성장한다 할 수 있다. 당장 수치적인 상황은 단기간 수요 공급에 따라 달라지지만, 우수한 가치가 생산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성장한다. 그렇기에 경제는 가치를 알아야 한다.
무엇이 우수한가? 시장에서는 수요. 그렇지만 시간대별 수요가 다를 수는 있다. 가치의 우수함을 시장으로 규정한 것은 시장 밖에서는 무력을 통해 우수하지 않은 가치를 강제할 수 있기 때문. 자유로운 시장에서는 수요가 가치의 우수성을 상징한다. 수요는 단기 장기 환경 등의 차이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수요가 낮다 해서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또한 거래되지 않는 성질의 가치는 시장에서 수요가 없다 해도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또한 화폐로 거래되지 않는 성질의 가치는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다 해서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일반 -> 일반적인 가치.
시기 -> 노동, 보험, 주식 등
환경 -> 재해, 전쟁, 사이클 등
비화폐 -> 연애 등 인간 관계 등
비거래 -> 인신, 사상, 언어, 천연 기념물 등
이런 조건을 통틀어 우수한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중요. 통상 경제라 하면 일반, 시기, 환경까지는 파악하는데 비화폐와 비거래 가치는 제대로 알질 못하고 있다. 시장 원리란 수요와 공급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을 의미. 개인의 의사인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 즉, 자유로운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대부분 시장 원리로 해석이 가능.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가치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이상 그것을 알아야 보다 우수한 가치 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4. 가치 개념
[가치: 3.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대상: 1. 어떤 일의 상대 또는 목표나 목적이 되는 것.]
[목표: 1.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가치는 대상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말한다. 가치의 뜻에는 대상 또는 목표라 했는데 사실상 이 둘이 서로를 지칭하므로 하나의 단어만 써도 무방하다. 아직 사전의 순도가 낮아 순도 높게끔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치 판단은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에 대한 기준은 개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하나의 대상에 따른 가치 판단 또한 다양하게 된다. 사과의 맛의 가치는 어떠한가? 달콤하고 맛있다. 사과의 멋의 가치는 어떠한가? 색이 밝고 모양이 깨끗하여 아름답다. 이렇듯 가치 앞에 기준이 되는 개념이 있게 된다.
가치 판단은 다양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네 개로 나눌 수 있다. 이익, 손해, 중립, 보류다. 가치 판단으로 이익이 되면 가치가 있다거나 높다고 판단한다. 가치 판단으로 손해가 되면 가치가 없다거나 낮다고 판단한다. 가치 판단으로 이익도 손해도 아니라면 특별한 가치는 없다고 판단한다. 가치를 판단하지 않으면 가치를 모른다고 판단한다.
앞에 기준을 붙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치가 있다, 높다, 없다, 낮다 등을 붙이는데, 이것은 시장으로 결정된 가격을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거나, 다양한 가치 기준을 종합하여 추상적으로 판단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사과의 가치가 높다고 말한다면 시장의 가격이 높다거나 맛+냄새+생김새 등을 종합해 추상적으로 이익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윤리에 의해 특정한 가치는 판단을 하지 못하면서 가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여 시장도 망가지고 경제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는 상태다. 가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정상적인 경제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양한 가치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정가 가치, 당위 가치, 범주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1) 정가 가치
[C. 정가 가치]
[정가: 1. 상품에 일정한 값을 매김. 또는 그 값]
정가 가치는 값이 매겨져 가치 판단이 끝난 가치를 말한다. 맛의 가치는 아직 가치 판단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면, 정가 가치는 n 화폐라고 가치 판단이 끝난 상태다. 시장에서 변동성이 생기기 전까지는 가치 판단 결과인 정가가 변하지 않게 된다. 정부에서 값을 매기거나 시장에서 값이 매겨진다. 값이 매겨진 상품은 보통 화폐로 거래되기 때문에 물물 거래라는 인식이 적다. 화폐는 국가에서 지정한 고정된 가치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 경제에서 화폐는 상품이다. 화폐가 상품이란 인식이 있어야 주식 시장이나 외환 시장 거래에 거부감이 적어 금융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거래는 물물 거래라 인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가 가치는 통상 상대적 가치에 해당한다. 상품에 일정한 값을 매기려면 가치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시장 참여자가 같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절대적 가치가 거래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래된 성물이 있다고 하자. A에게는 감히 가치를 판단하여 가격을 결정할 수 없지만, B에게는 단순한 고고학적 유물이어서 가치를 판단하고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럴 때에 B가 가격을 매겨 시장에 내놓은 것을 A가 구매할 수는 있다. 그런 것에 시세가 결정되어 A도 그것을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절대적 가치 또한 판단하지 않았어도 타인이 정한 가치 판단에 의해 판단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정가 가치의 가치 판단은 이미 가치 판단이 된 것에 대해서 가치 판단을 하게 된다. 라면이란 상품이 1000원에 팔린다고 해보자. 그러면 구매자의 라면에 대한 종합 가치와 시장의 정가 가치가 더해져 싸거나 비싸다는 가치 판단을 하게 된다. 종합 가치는 해당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면 라면의 범주 가치와 개별 가치와 세평이 더해지고, 해당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면 라면의 범주 가치와 세평이 더해져 나타난다.
정가 가치의 인식은 한번 정해지면 가치에 대한 판단을 바꾸기가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스턴트 라면이 일반적으로 천원 이내로 팔릴 때, 그걸 이천원이나 삼천원으로 가격을 올려 팔 경우 맛의 가치와 무관하게 비싸다는 가치 판단이 나와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 가격을 결정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달리 말해 정가가 붙어본 적이 없는 대상일 경우에는 그런 정가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다. 라면과 유사한 제품인데, 거기에 다른 것을 섞어서 팔면 정가 가치가 붙어본 적이 없어 라면보다 비싸더라도 팔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에서 만들어진 면요리, 같은 면요리인데 그 국가 언어로 이름을 달아서 팔면 비싸게 팔아도 팔릴 수가 있다.
정가 가치는 가치 판단이 끝나 있어 투자나 투기로 차익을 얻는데 쓰인다. 숫자로 가치 판단을 해놓은 상태기 때문에 거래가 수월하고 그에 따른 차익 실현 판단도 수월하여 접근성이 뛰어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가 가치가 가치 판단이 끝났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변동성이 작용하여 같은 숫자라 하더라도 같은 가치가 아닐 수 있다. 물가가 그대로일때의 1000원과 물가가 10% 인상되었을 때의 1000원은 가치가 다르다. 그럼에도 그것을 같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것을 이용한 차익을 실현하는 일도 많다.
정가 가치는 가치 판단이 끝나 있어 그것을 기준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시장 차이로 얻는 차익이 그렇다. A 국가의 시장에서 C 상품의 가치 판단은 100인데, B 국가의 시장에서 C 상품의 가치 판단은 150일 경우, A 국가의 시장에서 C 상품을 사서 B 국가의 시장에 팔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각 시장에서 이미 가치 판단이 끝나있기 때문에 무역 거래가 수월한 것이다. 시장 공급, 창고 정리, 구매 유도 등을 위한 세일도 그렇다. 100만원에 팔던 것을 50만원에 팔면 이익을 얻는 소비가 될 수 있다.
정가 가치는 가치 판단이 끝나 있어 혼란을 통한 차익도 가능하다. 세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원가 100만원을 200만으로 올린 뒤 50% 할인해서 100만에 판다는 식으로 할 수 있다. 또는 경품을 줄 때 100만원으로 홍보하고 100만원 어치의 상품을 제공한다고 하거나, 중고 거래를 할 때 100만원에 사겠다고 해놓고 100만원 어치의 상품을 준다고 하는 일이 있다. 100만원의 화폐와 100만원 어치의 상품의 가치는 다를 수 있음에도 정가가 붙어있다는 것으로 같은 것처럼 취급하는 일이 있다.
정가 가치는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상품 공급보다 수요가 낮으면 가격이 낮아질 수 있는데, 그 때 공급자는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땅에 묻는 것과 같이 상품을 일부러 파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상당한 자원 낭비에 해당한다.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시장 가격을 유지한다와 자원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조건을 성립시키려면, 해외의 다른 시장에 팔거나 성질을 바꿔 재생산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가치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판단에 의한 탐구가 가능해지면서 해당 가치에 대해서는 지식의 체계를 갖춰 학문의 레벨이 높을 수가 있다. 현대 시장 경제가 우수한 이유 중 하나는 시장의 가격 자체가 판단이 가능해야 성립되기 때문이다. 판단이 되면 레벨이 높고 판단이 안되면 레벨이 낮다. 당연한 논리다. 정가 가치는 상당히 레벨이 높기 때문에 윤리로 특정 상품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윤리로 정부가 가격에 간섭하거나, 윤리로 정가를 없애거나 하는 등과 같이 윤리의 간섭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큰 문제가 없다.
2) 당위 가치
[C. 당위 가치]
[당위: 1. 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것.]
[규범: 1.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할 가치 판단의 기준.]
마땅히 해야만 하는 가치에 대한 용어를 규범 가치가 아닌 당위 가치라 규정한 것은 판단을 하지 않는 절대적 가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당위에 규범이 포함될 수는 있다. 마땅히 해야만 하는 가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에 비해 우선되게 된다.
당위 가치는 크게 세 개로 분류할 수 있다. 정신에 작용하는 당위 가치 (윤리, 계약, 관계, 취미, 계획, 루틴, 미신, 기념일, 불문율, 징크스, 강박증 등), 육체에 작용하는 당위 가치 (음식, 수면, 배설, 중독, 결핍 등), 한정으로 작용하는 당위 가치 (세일, 구독, 한정판, 접속 보상 등). 이는 판단이 되면 상대적 가치, 판단이 되지 못하면 절대적 가치로 분류할 수도 있다.
당위 가치는 마땅히 해야만 하기 때문에 강제력이 발생할 수 있으면서 권력과 관련되는 가치가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대부분 당위 가치로 인간을 지배해왔다. 너는 이것을 해야만 한다. 거기서 절대적 가치가 더해지면 윤리다. 너는 이것을 절대적으로 해야만 한다. 그것의 명분은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지배해서 차례가 생겨 질서가 잡히면 끝나기 때문에 그 외 복잡한 지배의 정당화 말고는 없다. A에게 혈통 정통성이 있으므로 지배의 정당성이 있다. A는 경전 암기 능력이 뛰어나므로 지배의 정당성이 있다. 유교권은 인간의 지배, 기독교권은 신의 지배로 차이가 있다. 오늘날 인권이나 환경 운동도 권력과 관련이 있게 된다. 특정한 것은 인권이나 환경에 해당하므로 해야만 한다고 강제한다.
국가에 속하는 이상 해야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법이다. 법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정한 강제력이 있는 사회 규범으로 세부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법에 상대적 가치만 있다면 전부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판단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절대적 가치는 가치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옳고 그르다는 기준은 알지만 어디까지 옳고 그른 것인지는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절대적 가치는 가치를 상대적으로 보고 판단한 인간이 정한 기준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군가가 살인, 강간, 절도 등을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해 형량을 정해둔 것을 본받아 비슷한 형량을 책정하면서 쓰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특정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인간이 개입하면 이러한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살인보다 강간이 더 큰 형량을 받는다거나 같이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규범 가치는 윤리의 영향으로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대중의 일부는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강한 형량을 외치기도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있어 당위 가치는 매우 영향이 크다. 단순히 규범만이 아니라 생활 전체가 당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일 활동하기 위해 잠을 자둬야만 한다. 오늘 활동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약속한 활동 장소에 도착해야만 한다. 살아남기 위해 밥을 먹고 똥을 싸야만 한다. 사실상 인간 생활의 기준이 되는 가치라 할 수 있다. 당위 가치가 적을수록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할 수도 있다. 해야만 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가치는 판단이 가능하므로 반드시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상의 종합 가치가 높아야 당위 가치가 성립된다. 계약, 관계에서 정해진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계획, 스스로 정한 일의 절차, 방법 등을 해야만 한다. 루틴, 스포츠 선수가 해야만 하는 동작과 절차를 통해 경기를 뛰기 위한 준비를 한다. 기념일, 2월 14일은 초콜릿을 선물해야만 하고, 3월 3일은 삼겹살을 먹어야만 하고, 11월 11일은 빼빼로를 교환해야만 한다. 한정, 기간 내에 한정적으로 판매되는 상품을 구매해야만 한다. 세일, 기간 내에 한정적으로 저렴하게 판매되는 상품을 구매해야만 한다.
절대적 가치는 판단이 불가능하므로 절대적 가치의 농도, 추구하려는 태도에 따라 반드시 하려고 하게 된다. 판단하지 못하는데 절대적으로 해야만 한다. 이 개념의 조합은 굉장히 위험하게 된다. 이교도는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참살해야만 한다. 마녀는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화형을 해야만 한다. 히잡을 쓰지 않는 미성년 여성은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명예 살해를 해야만 한다. 반말을 쓰는 연하는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살해를 해야만 한다. 성적인 것은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항의를 해야만 한다. 창작물에 흑인, 여성, 게이가 나오지 않는 것은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평가를 낮춰야만 한다. 가난한 인간은 착하므로 판단하지 않고 옹호하고 부유한 인간은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비난해야만 한다.
이런 절대적 가치는 윤리뿐만 아니라 신흥 종교 세뇌, 가스라이팅 등이 있다. 신흥 종교의 세뇌나 가스라이팅을 그토록 비판해도 이미 정신에 노예의 낙인이 찍혀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윤리와 본질이 거의 같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질 못한다. 신흥 종교에 빠진 인간은 그 가치에 판단하지 못하면서 전재산을 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면서 가정 파탄이 일어난다. 애초에 노예의 낙인이 찍혀 있어 판단하지 못하는 가치가 있었기에 이런 이용이 성립되는 것이다. 신흥 종교에 의해 가정 파탄난 인간이 자국의 총리를 암살했는데, 실제 가정의 파탄을 성립시킨 것은 윤리다.
유교권은 권력이 윤리기 때문에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돈에 관해서 판단하지 않고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판단하지 않고 무작정 투자하다 돈을 날려먹는 일이 수두룩하다. 입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전적인 권력 획득 방법인 입시는 판단하지 않고 돈을 쓰면서 입시 시장 과열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연령과 같이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에 대해 조금도 이상하다 판단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취급하는 상품에 당위 가치를 느끼는 인간이 많으면 상업적인 성공은 대체로 보장된다 하 할 수 있다. 많은 인간이 해야만 한다 생각하며 구매하는데 실패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게 절대적이게 되면 마약과 다를바 없으므로 상대적임을 가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마약은 자기 파괴와 전염성 외에도 판단하지 않고 먹으려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기본적인 종합 가치를 높인 다음 정신, 육체, 한정을 잘 조합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야기와 같은 부가 가치가 기본적인 품질과 별개로 해야만 하게끔 느끼게 할 수 있다. 낙서로도 느껴지는 현대 미술이나 실체가 없는 디지털 상품이 그런 이야기 활용을 통한 세일즈를 잘 하고 있다.
현재 당위 가치는 절대적 가치가 인류를 지배하고 있어 특정 가치의 경우 상업적인 활용이 체제에 적합하지 않게 될 수가 있게 된다. 지배를 이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지배에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며 제 목에 목줄을 다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자유주의자 입장에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단 그 현상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
대체로 당위 가치가 어려운게 절대적 가치 때문이다. 누구나 본인이 우수하다 생각할 수 있는데, 특히나 엘리트들은 본인들이 우수하다 여길 것이다. 그런데 상대적 가치는 매우 우수한 반면 절대적 가치는 우수하지 못한데, 그것을 모른다. 우수한 내가 실패할 리가 없어. 하면서 계속 실패한다. 원인도 모른다. 단순히 강박적으로 행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상대적 가치는 우수하니까 다른 이들도 그 실패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는 무능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도 지식의 체계를 갖춰 학문이라고는 하는데, 중간중간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에 의해 모순되는 것이 많아 사실상 레벨이 낮다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 현상은 신의 만든 것. 이렇게 판단하지 않고 결정해버렸다 치자. 그러면 그 부분은 아예 발전이 안되는 것이다. 더 이상 탐구도 안하니까. 그러면서 그 부분만 레벨이 오르지 않고 그것과 연동된 지식도 레벨이 오를 수가 없다.
3) 범주 가치
[C. 범주 가치.]
[범주: 1.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
[시장: 2. 상품으로서의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영역.]
범주 가치는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말한다. 보통 특정 범주 시장의 가치나 특정 브랜드 가치에 해당한다. 다양한 가치 중에서 시장의 기준인 정가와 인류를 지배하는 당위 다음에 범주를 꼽은 것은 이 개념에 대한 오해로 시장이 망가진 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고정 관념으로 보면 많이 팔리면 가치가 높다고 여길 것이다. A 상품이 많이 팔렸으니 A 상품과 A 상품 시장의 가치가 높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개별 가치과 범주 가치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개별 가치는 그 가치가 많이 팔리기만 해도 가치가 높지만, 범주 가치는 고점만 팔리면 가치가 낮다.
예를 들어 축구를 보자. 한국에서 축구는 인기가 많은 스포츠로 보인다. 국가 대표의 경기를 하는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시청한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축구 범주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에서 축구는 어디까지나 국가 대표 경기 가치가 높은 것이지 축구 경기 자체의 가치가 높은 게 아니다. 만약 축구 범주 가치가 높았다면 저점에 속하는 국내 축구가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축구 국가 대표 경기의 가치가 높은 것이지 축구 자체의 가치가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스포츠인 야구를 통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잠깐 검색해본 결과 수년 전 축구 K리그 시청률은 0.11%, 야구 KBO 리그 시청률은 0.88%로 야구의 KBO 리그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국가 대표 경기 시청률은 축구가 더 많이 보거나 비등한 상태다. 축구와 야구의 국가 대표 경기의 가치는 축구가 높거나 비슷하고, 스포츠로서 범주 가치는 야구가 명백하게 높은 상태다. 그럼에도 축구 국가 대표 경기 관심이 높다는 이유로 축구 범주 가치가 높다고 착각되게 될 수 있다. 진짜 축구 범주 가치가 높은 것은 영국이다. 영국은 5부 리그 축구 경기도 즐겁게 시청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야구 범주 가치가 높은 곳은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고등학교 야구 경기조차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축구 국가 대표 경기가 관심이 높은 것은 다른 측면으로 봐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스포츠기 때문에 국가 대표 경기가 인기가 높은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브랜드 가치를 보자. 현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중국제가 세계에서 매우 잘팔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 중국제의 범주 가치가 높다고 여길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중국제가 잘팔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점에 해당한다. 고점이라고 해서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고점, 고가치는 품질에 정가가 더해지기 때문에 가격 대비 품질이 높은 것을 말한다. 중국제가 잘팔린다고 해서 중국 브랜드 가치가 높다 여기는 인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택갈이를 하는 것이다. 같은 중국산 제품이라도 국적을 바꾸기만 해도 더 잘팔린다. 중국 브랜드, 중국제 범주 가치가 낮은 상태임에도 고점에 해당하는 제품들은 잘팔리기 때문에 오해를 하게 된다. 아, 상품이 잘팔리니까 중국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나. 그러면서 브랜드 관리를 보다 안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이렇게 단순히 많이 팔리면 가치가 높다는 고정 관념에 의해 가치가 낮거나 망가진 것을 방치한 시장이 많다. 학문, 노동, 연애, 문학, 주택, 우유, 영화 등 저점이 안팔리는 시장은 가치가 낮거나 망가진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이 중에서 충분히 잘팔리는데 망가졌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시장이 있을 것이다. 학문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학문은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고 입시에 투자되는 비용이 높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고점만 소비되는 시장은 망가진 시장이라는 것을 떠올려보자. 현재 학문은 의료라는 고점에 엄청나게 몰리고 있다. 그 외의 학문도 고점 위주로 몰리고 있다. 의료가 과한 이익을 얻기도 하지만, 학문의 범주 가치가 지나치게 낮으니까 고점에만 몰리는 것이다. 학문 범주 가치를 올릴려면 충분히 지적 호기심을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학문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어야 했는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과열 현상만 보고 학문 가치가 높다 판단해버리면서 학문 가치 관리를 방치해버렸다. 학문 범주 가치가 낮아진 것은 권력이 윤리린 유교의 영향이다. 권력을 얻을 수 있는 학문 외에는 전부 배제해버려서 다른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권력 범주 가치는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지만, 원래 권력 자체가 타인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어 높은 가치다. 권력의 범주 가치가 어느 나라나 다 높지만, 유교권은 윤리에 속하여 판단하지 못하면서 제한이 없는 집착까지 되게 된다. 그야말로 최저점인 작은 권력까지도 소비되어 이용된다. 수개월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위계질서가 성립되고, 그 위계질서를 이용하고, 그 위계질서를 부정하지 못한다.
현재 대부분의 시장이 윤리에 의해 망가졌다고 보면 된다. 시장을 성립시키는데 필요한 A가 윤리로 부정되고 윤리에 의해 시장을 훼손하는 가치 B가 우선되면 당연히 시장이 망가지게 된다. 학문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지적 호기심이 권력에 필요한 학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윤리적인 판단으로 배제되고 입시에 필요한 지식만 우선되면서 학문 시장이 망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입시 과열 현상을 보고 학문 가치가 높다 오해해 버리면서 망가진 시장을 방치하게 되었다. 물론, 인식했어도 윤리가 절대적 가치라 원인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입시 과열 현상까지는 알 수 있어도 왜 입시 과열이 되었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외 노동, 연애, 문학, 주택, 영화 등 전부 비슷하게 시장이 망가졌다. 윤리가 당장 시장을 망가트리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줘서 망가트리는 경우가 많다. 그야 본래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시장이야 굳이 간섭하지 않아도 망가질 수 있는데, 노동이나 연애 등은 가치가 높아야 하는 시장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망가진 것은 어떤 요인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절대적이기에 판단하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인 윤리다. 범주 가치에 관한 논리는 지극히 쉽기 때문에 이 논리로 보면 현재 시장이 얼마나 많이 망가진 상태인지 알 것이다. 대기업에 몰리는 노동, 미형인 외형과 부유해야 소비되는 연애, 상 탄 작품만 보는 문학, 차익 수단에 불과한 주택, 유명한 작품만 보는 영화 등. 그냥 고점만 팔리고 있다.
부동산은 한국에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 가치기 때문에 주택 가치가 낮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주택 가치가 높았으면 저점에 속하는 수도권 외의 지역 주택이 많이 팔렸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주택보다 위치가 더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주택 가치가 높았다면 현재 주택 마감 처리가 그렇게 엉망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다시 팔 때 해가 될까봐 쉬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다들 대충 살아도 된다, 비싸게 되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다. 주택보다 투기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이다. 주택 자체는 범주 가치가 매우 낮다. 그토록 많이 거래되어도 주택 범주 가치가 낮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진짜 주택 가치가 높으면 직접 디자인한 집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이 거래되니까 가치가 높은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주택 가치를 관리하는 것을 방치해버렸다.
현재 한국은 기록적인 저출산인 0.6으로 향해가는 국가적인 자살을 하고 있다. 이것이 윤리에 의함에도 윤리가 판단하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원인조차 모르고 있다. 원인조차 모르면서 문제의 원인인 윤리를 더욱 강조하면서 저출산을 악화시키고 있다. 직접 원인을 알기 어렵다면 시장을 통해 원인을 추론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것을 이해하면 다른 범주 가치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이 본능이기 때문에 놔둬도 알아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할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므로 우선 그것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 시대에 중매 결혼이 보편적이었던 까닭은 권력이 윤리인 유교 사회에서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성립시키기 위해 개인의 성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결혼이나 출산은 사회 구성원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의 큰 변화에 속하게 된다. 그 변화를 통제하지 못하면 지배가 깨질 수 있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의 열쇠인 성을 지배해야만 지배 질서가 성립되게 된다. 그렇기에 지배 체제와 지배 질서는 필연적으로 성을 지배하게끔 되어 있다. 대부분 사회에서 성을 터부시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배에 필수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성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여성 정조관념 등이 있다. 단순히 성이 본능이기 때문에 억압해도 알아서 했다면 중매 결혼이 보편적일 수가 없다. 그렇게 성을 지배하던 수단인 윤리를 강제하면서 똑같이 성을 지배해버리는 바람에 중매 결혼이 아니면 결혼할 수 없는 이들이 많게 되었다.
여성주의의 여성성에 관련된 사상은 가부장제 시대의 사상 또는 철학들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사상들은 절대적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여 그 모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여성을 위해서라면서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게 얼마나 모순되는 것인지를 모른다. 여성 성적 대상화 및 여성 성적 상품화 반대는 가부장제에서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여성에게 주입한 여성 정조관념으로 만들어진 가치관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지를 못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가부장제에서 만들어진 여성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수성임을 알지를 못한다. 그런 주장이 기독교 문화권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여성성 억압은 가부장제의 성립 조건으로 다른 가부장제 사회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지를 못한다.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이 가부장제 가치관과 다를바가 없고 꾸밈을 막는 것이 히잡을 씌우는 것과 다름이 없음에도 윤리는 절대적 가치로 판단할 수 없기에 그걸 알지를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성 관련 주장을 통해 여성성을 권력을 얻는 도구로 삼아 권력을 얻고 있음에도 그 행동이 윤리에 의한 것임을 알지를 못한다. 지배 질서를 성립시킨 개념인 윤리, 노예 디자인 교육을 받고 생긴 가치관으로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말하니 여성을 억압하던 가부장제 여성성을 여성 인권이라 말하게 되는 것이다.
성을 지배하던 윤리의 교육과 여성성을 권력 도구화하여 여성성에 대한 난이도와 비용을 높이는 것으로 연애 시장에 관한 범주 가치가 아예 폭락해버려서 고점만 소비되게 되었다. 정조 관념, 정숙, 성적 욕망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을 마치 반드시 옳다는 듯이 말하는데, 연애 범주 가치를 고려하면 자유 체제에 해롭다. 참여자가 감소하면서 저점이 소비가 안된다.
연애 시장은 현재 여성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여성이 더 가치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여성 정조관념 등으로 성적 억압을 강하게 받아서 여성이 남성보다 성관계에 대한 범주 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성관계 범주 가치가 낮으면서 연애 시장에 대한 수요도 낮아지게 된다. 연애 시장은 보통 일대일 직결 시장으로 수요가 낮으면 공급도 낮아지게 된다. 여성의 수요와 공급은 낮은데 남성의 수요와 공급은 높으면서 희소성에 의해 여성의 가치가 높게 느껴질 뿐이다. 범주 가치가 낮을수록 소비되는 고점이 높아진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연애 시장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범주 가치가 낮아질수록 소비되는 고점이 높아지면서 매우 잘생긴 남성은 시장에게 매우 가치가 높게 된다. 그 외 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성관계 범주 가치가 높으면서 연애 시장 수요가 높아 공급도 높아지면서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범주 가치를 이해하면 현재 연애 시장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다가 여성주의자가 남성에게도 정조관념을 심는 짓을 저지르면서 남성 또한 보편적인 성관계에 관한 범주 가치가 낮아지게 되었다. 성적 쾌락의 가치는 높지만 성관계 범주 가치는 낮으면서 자위는 해도 이성은 만나지 않는다. 허구언날 섹스를 외쳐도 성매매조차 안한다. 그러면서 남녀 모두 성관계 범주 가치를 낮게 느끼는 것으로 여성이 왕자님을 찾듯이 남성도 공주님을 찾게 되었다. 이성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위험 부담이 적으면서 고점 소비가 수월한 유사 연애 시장에서 소비하거나, 짐승 사육 시장에서 소비하게 되었다. 워낙에 관련 가치가 폭락하면서 개는 키워도 아기는 안 키우는 사회가 되었다. 친구는 사귈수 있는데 연인은 사귈 수 없는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성적인 농담조차 성희롱이라면서 죽을죄마냥 취급하는데 정상적인 성관계가 얼마나 있을 수 있겠는가? 애초에 현재 성에 관련된 모든 것이 죄로 취급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살인이 정당방위에서 정당화되듯 일부 관계,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만 정당화될 뿐이다. 그렇기에 자유 의지로 성매매를 하거나 난교를 하는 것을 보고 강한 비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창작물에서 나오는 성조차도 죄로 취급되며 공격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것은 판단하지 못하면서 제한이 없는 억압을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반발하는 인간이 있으니까 제한이 생기는 것이지, 그걸 주장하는 인간이 독재를 했다면 성은 언급하는 것 자체로 죄로 취급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정조관념이 선천적인 여성성과 같다며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짐승이 성적 수치심으로 자결을 하나. 다 가부장제에서 심은 여성성 억압이다. 후천적인 여성성, 가부장제 여성성이다. 그걸 성인지 감수성 떠들면서 심고 다니니 가부장제 정조관념이 여성 인권이 되어 퍼져버렸다.
시장으로 접근해서 봐야 한다. 개인이 본인의 의사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려면, 성에 대한 지배를 할 것이 아니라 성을 자유롭게 풀고, 미성년 때부터 성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성기능이 작동하는 10~14세부터 성경험을 다 해봐야한다. 그렇게 하여 발정날 때 상대가 이성이기만 해도 성적인 관계를 해도 될 정도로 성관계에 대한 범주 가치가 높아야 저점도 소비되면서 연애 시장이 활성화된다. 저점이 소비되고 나서 고점으로 끌어올리면서 시장 전체 가치를 더욱 높인다. 여성 정조관념에 의해 첫경험이 중시되어 성경험에 저항이 생기는데, 다른 가치를 고려하면 그것은 그냥 성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성 관련된 창작물이나 사회적 태도들도 검열이나 규제나 억압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시장 원리로만 보길 바란다. 연애와 결혼 시장은 거의 모든 개인이 참여해야 하는 시장으로 의식주 시장과 같이 긍정적으로 봐야만 한다. 배고프면 음식이기만 해도 된다는 것처럼, 발정나면 이성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미성년 때부터 죄로 인식하게 만들면, 얼마나 참여가 되겠는가? 상대적 가치로는 엄청 뛰어난 이들도 절대적 가치는 판단을 아예 못하다보니 아무리 뛰어나도 기초적인 논리적 판단부터 알아야 한다.
꾸미면 연애할 수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연애 시장에 가치를 못느껴서 꾸미지 않는 것이다. 가치가 높다 판단되어야 에너지가 방출되어 행동으로 이어진다. 연애, 결혼, 육아에 관한 부정적 방송 프로그램이 원인이라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다. 관련 가치를 낮게 보니까 그런 프로가 수요가 높은 것. 물론 보다 악화는 되고 있다. 윤리가 절대적 가치니까 원인을 판단하지 못하고 결과만 보게 되는 것이다.
꼭 이러면 문화, 정서, 도덕, 윤리를 말하는데 그 개념들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부디 판단해봤으면 좋겠다. 지배 체제와 지배 질서의 문화며 정서고 도덕이며 윤리다. 그런 것을 언급하면서 체제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반체제란 말이다. 그렇게 반체제적인 태도를 취하니 시장 다 망가지고 국가가 죽어가는 것이다. 현재 한국이 저출산으로 손해보는 것이 막대하다. 그냥 기본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현상을 일으킨 개념을 옹호하겠는가? 그것은 그냥 복종에 불과하다. 지금 손익만 따지면 사회에 속한 모든 개개인이 불필요하게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단 말이다. 윤리적으로 보고 생물을 잡아먹는 추악한 생물은 죽어 마땅하다 하나? 윤리적으로 보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추잡한 생물은 죽어 마땅하다 하나? 그것은 그냥 윤리의 노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해서 일도 착취되고 성도 착취되는 것이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일이나 성이나 자유로워도 문제될 것 없다.
오랫동안 저출산 고령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본은 현재 초식에서 절식이 되어 20대 성경험이 50%라고 한다. 수십년 동안 관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도, 윤리가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원인조차 몰라서 문제 원인인 윤리를 더욱 더 강조한 결과가 현재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다. 일본은 성 산업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도 보편적으로 미성년에게 가해지는 성억압은 다른 유교권과 다를바가 없다. 그런 것을 보고도 한국은 윤리를 강조하고 여성성의 권력 도구화까지 더해지자 최저출산율이 되었고, 중국에서도 체제가 다름에도 윤리를 강조하면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수십 년 실패했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하는데, 윤리가 절대적 가치라서 판단 자체를 못하기 때문에 원인조차 모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복지 지원을 한다. 그런데 그런다고 시장이 되살아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장은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시장의 범주 가치를 높게 여겨야만 활성화되면서 살아날 수 있다. 다른 시장의 경우 따로 관계가 없어도 상품 소비가 되기 때문에 고점이 잘팔리면 범주 가치가 높아져 저점 소비로 이어지는 것으로 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는데, 연애 시장은 직결 시장이기 때문에 고점 저점 가리지 않고 소비하기 위해 참여부터 해야지 시장이 활성화된다. 미성년 때 상대가 고점이든 저점이든 소비를 하게 해야지 시장이 활성화된단 말이다. 그러니까 더욱 범주 가치가 중요한데, 윤리로 너무 망가트렸다. 뭘 해도 가치관이 정상이 되지 않는한 저출산은 해결될 수 없다 단언하겠다. 성적인 얘기와 관계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자유 체제에서 성에 관련된 정상적인 가치관이다. 성을 지배하는 것은 반체제에 불과하다. 복지 비용을 쏟으면 해결되는것 아니냐 할 수 있는데 그러다 국가 전체가 망가진다. 돈을 부어도 가치관이 그대로면 그걸로 다른 가치를 소비한다. 특히 윤리적일수록 판단을 못하는 것인지, 재정을 고려하질 않는 것 같다.
4) 기타 가치
가치는 대상의 판단 기준으로 하나의 대상만해도 수많은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수많은 가치는 세계화가 되면서 일부 초고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분산되어 소비된다. 단순히 같은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예를 들면 치킨과 피자, 한식과 일식 등으로 분산되어 소비될 수 있다. 취미는 더욱 다양하다. 게임과 스포츠, 소설과 낚시 등으로 분산되어 소비될 수 있다. 자아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번에 할 수 있는 것이 적어서 그렇다. 그러면서 모든 가치가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때로는 축구와 야구처럼 경쟁하고 때로는 영화와 팝콘처럼 연계한다. 그런 세상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는 보다 깊어져야 한다. 가치는 상당히 많으므로 짧게 다루겠다.
[C. 일반 가치]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다.
[C. 종합 가치]
종합적으로 본 가치다.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시장 가치거나 종합 가치다.
종합 가치는 대상에 다양한 가치가 있을수록 판단 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 사과에 붙은 가치의 종류는 적어 판단 차이가 적지만, 스마트폰에 붙은 가치의 종류는 많아 판단 차이가 크다. 스마트폰과 같이 가치의 종류가 많은 경우에는 보편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고투자한 가치는 낮은 평가를 받고 저투자한 가치는 높게 평가 받아 시장에서 종합 가치가 낮게 평가될 수 있다. 100을 투자하고 20의 평가를 받고 20을 투자하고 20의 평가를 받으면 후자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종합 가치로는 낮게 된다.
[C. 개별 가치]
개별로 바라본 가치다.
수요가 높을수록 가치가 높다.
[C. 범주 가치]
범주로 바라본 가치다.
저점이 팔리지 않을수록 가치가 낮다.
[C. 정가 가치]
값이 매겨져 가치 판단이 끝난 가치다.
가치가 상대적인 상황에서 특정한 기준으로 가치 판단하여 공통된 가치를 인식하게 만든다.
[C. 당위 가치]
해야만 하는 가치다.
절대적으로 해야만 하는 가치가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C. 사랑 가치]
이로운 종합 가치를 추상화한 가치다.
특정 가치를 종합적으로 이롭다 판단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보다 우선하게 된다. 그러면서 차별이 발생한다. 짐승을 사랑하면 인간이 차별받을 수 있다. 짐승을 키우면서 인간은 키우지 않는 것은, 짐승을 사랑하면서 인간을 차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기가 짐승 알레르기로 고통 받아도 짐승을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는 것은 아기보다 짐승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짐승의 권리를 무작정 높이면 높일수록 인간의 권리가 낮아진다. 이웃집의 모르는 8살 아이보다 키우는 짐승을 우선시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어디서 그런 설문을 본 것도 같다. 짐승은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사회와 체제를 고려하며 접근해야 한다.
[C. 증오 가치]
해로운 종합 가치를 추상화한 가치다.
종합 가치기 때문에 특정 가치는 이롭고 특정 가치는 해로우면서 애증이 성립될 수 있다.
[C. 존재 가치]
존재할 가치다.
존재 이유를 생각할 정도의 지성을 갖춰야 성립되는 가치로 그걸 생각한 지성체는 스스로에게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야 살아갈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존재 가치가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타인의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더라도 보통은 크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본인의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면 그게 바로 영향을 준다. 넌 존재할 가치가 없어, 라고 해도 별 영향이 가지 않을 수 있지만 난 존재할 가치가 없어, 이러면 바로 영향이 간다는 것.
집단에 대한 존재 가치로 소속 여부가 결정된다.
[C. 신용 가치]
신용할 가치다.
사기 죄의 경우 누가 속나 속지 않나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것에 의해 발생한 사회 신용 가치 훼손이 더 큰 문제다. 신용 가치가 훼손되면 신용하면서 생략한 절차를 추가하는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C. 명예 가치]
사회 인정 가치다.
사회에서 공적이나 사적으로 가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인정 받을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대상에 명예 가치가 붙으면 구매가 늘어날 수 있다. 망가진 문학 시장에서도 노벨상을 탄 작품은 읽힐 확률이 높게 되는 것과 같다.
SNS가 발달하면서 SNS 친구 수가 많은 인간이 명예가 높을 수 있는데, 그것은 숫자로 지표가 너무 명확해서 그에 따른 이익이 높지가 않으며, SNS 안에서 한정될 확률이 높다.
[C. 연계 가치]
연계되는 가치다.
영화와 팝콘, 2월 14일과 초콜릿, 삼겹살과 술 등
[C. 숫자 가치]
숫자로 보는 가치다.
수는 공통 인식에 편리해 객관화에 유리하다.
[C. 패션 가치]
유행하는 외형으로 본 가치다. 대상에 유행하는 미적 감각이 더해지면 패션 가치가 붙는다.
주로 SNS나 유튜브 정도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사실상 100만원 폰과 20만원 폰의 가치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상할 수 있다. 어째서 그들은 100만원 폰을 구매하는가? 그것은 성능도 패션 중 하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패션은 두른 인간에게 부가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로 전자제품에서는 성능도 패션이 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실사용 성능과 패션용 성능을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실사용 성능은 자주 쓰이므로 그대로 전달하고, 패션용 성능은 자주 쓰이지 않으므로 포장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
[C. 모방 가치]
모방한 가치다.
모방에서 창의가 되려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겉만 모방해봐야 속을 새롭게 바꿀 수가 없다.
[C. 미적 가치]
미적으로 바라본 가치다.
모든 사물은 미적 가치가 붙을 수 있으므로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미에 대한 철학, 예술을 이해하는 편이 좋다. 현재 현대 미술은 본연의 아름다움보다 부가적인 이야기에 치중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예술에 대한 탐구가 다소 부족하므로 직접 무엇이 아름다운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C. 쾌락 가치]
쾌락으로 바라본 가치다.
현재 노동 범주 가치가 낮은 것은 쾌락 가치 설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C. 경험 가치]
경험에 관련된 가치다.
이른바 추억팔이에 속할 수 있다.
[C. 미지 가치]
알지 못하는 가치다.
인간에게 새롭거나 세상에서 새로울 수 있다. 신선함의 유통 기한은 가치 판단이 될 때까지. 가치 판단이 된 이후에는 그 판단이 잘되어야 계속 팔릴 수 있다.
[C. 지속 가치]
지속으로 본 가치다.
상품의 가치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감가상각이 달라진다. 보통 중고가를 결정한다.
[C. 안정 가치]
안정적인 가치다.
일상에 속하는 가치로 식사 등이 있다. 크게 벌 수는 없지만 자리잡으면 계속 팔 수 있다.
[C. 매몰 가치]
매몰된 정도로 보는 가치다.
보통 뭐든 쓴 만큼 가치가 올라간다. 돈이든 자원이든 시간이든 에너지든. 보통 시간은 소비한다는 인식이 없어서 시간을 쓰는데 주저함이 적을 수 있는데, 그것을 이용해 무료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어 가치를 높인다.
[C. 시간 가치]
시간에 관련된 가치다.
보통 시간을 절약하는데 쓰이는 가치로 서비스 전반이 그렇다.
[C. 지식 가치]
지식에 관련된 가치다.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여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
[C. 희소 가치]
동일한 상품 또는 성질이 희소한 가치다.
희소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이미 가치가 붙은 것에 희소성이 더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종합 가치가 낮으면 희소해도 팔리지 않는다.
[C. 도박 가치]
낮은 확률로 높은 이익을 얻는 가치다.
높은 리크스 높은 리턴을 의미하며 생각보다 많이 보이는 가치다.
[C. 고유 가치]
고유한 가치다.
통상 저작권 등이 그렇다. 교묘한 모방으로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으나 품질이 높으면 소비된다. 그러나 명예가 낮게 된다. 낮은 명예는 범주 가치에 해가 되어 저점이 되면 팔리지 않게 된다.
[C. 공유 가치]
공유되는 가치다.
사회에서는 공원 등이 있다. 공유는 다중 소유로 독자적 소유가 아님에도 허술하게 다루거나 마치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무관심한 일이 많다.
[C. 참여 가치]
참여로 본 가치다.
누구든 참여만 하면 가치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상품은 무료 이용자가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그만큼의 부가 가치가 붙는다. 그럼에도 무료 이용자가 단순한 악성 이용자로 보고 쳐내면 참여 가치가 하락하여 상품이 팔리지 않게 될 수 있다. 이런 것은 소비자 또한 생산한다고 봐야 한다. 소비자의 생산성이다.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보다 임금이 더 나갈 경우 손해가 될 수 있듯이, 소비자가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면 손해가 될 수 있으므로 무작정 해서는 안된다.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가 가능한 공간이 생기는 것으로 참여 가치가 포함되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참여형 플랫폼이 그렇다. 이른바 메타버스라 부르지만 실상 개념이 제대로 정립된 상태는 아니다.
[C. 특별 가치]
특별함이 붙은 가치다.
대체로 기념일 등이 그렇다.
[C. 인식 가치]
인식하면서 발생하는 가치다.
모든 가치는 기본적으로 인식함에 따라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에 따로 인식 가치를 다룰 필요가 없을 수 있으나, 인식 유무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룰 필요가 있다. 공기를 당연하다 여기며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가치가 낮지만, 숨을 쉬지 못하면서 공기를 당연하지 않다 여기며 인식할 때에는 가치가 높게 된다. 중요함에도 가치가 낮을 때에는 가치를 인식하게 해야 한다.
[C. 수량 가치]
수량으로 본 가치다.
대량으로 팔아서 저렴하게 된 규모의 경제가 보통 그런 가치에 속한다.
[C. 부가 가치]
부가적으로 붙는 가치다.
부가 가치를 분리해서 볼 때에는 종합 가치에 부가 가치가 붙는다. 보통 세금으로 분리하거나, 고레벨의 기술이 들어간 고부가 가치일 경우에 따로 분리하기 위해서 쓰인다.
[C. 선호 가치]
선호되는 가치다.
범주 가치가 낮을수록 고점이 선호된다.
[C. 기피 가치]
기피되는 가치다.
가치가 낮다고 기피되지는 않는다. 가치가 낮아도 선호될 수 있고 가치가 높아도 기피될 수 있다. 단순 노동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가치. 가능한 빨리 로봇과 AI로 생산해야할 가치다.
단순 노동의 경우 로봇보다 인간의 노동력이 저렴하다는 측면으로 교체되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사회적 비용 (행복 출산 자살 등)을 고려하면 기피되는 가치를 인간이 하는 것은 복지 비용이 더나간다. 지금 당장은 하는 사람이 있어도.. 기피 가치이므로 점점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텐데, 그것을 로봇과 AI로 대체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가장 저렴하다. 복지로 쓸 돈 기피 가치의 로봇화에 집어넣고, 기피 가치 대신에 선호 가치는 인간이 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시장을 고려하면 복지 지원금을 적정하게 넣으면 공급 유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C. 사실 가치]
사실 여부로 본 가치다.
이른바 언론에서 팩트 체크하는 것도 사실 가치에 속한다. AI의 발전으로 진위 여부를 알기 어려워지고 있는데, 디지털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국제 기관의 신설이 필요하다.
[C. 화폐 가치]
국가 보증 가치다.
화폐도 상품이란 인식이 있어야 금융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C. 보안 가치]
안전에 관련된 가치다.
디지털 시대가 된 이후에는 개인 정보 보안이 추가되었다.
[C. 기준 가치]
기준이 되는 가치다.
업계 표준 등이 있다. 합리적인 기준일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C. 계기 가치]
계기로 본 가치다.
행동의 계기가 되는 가치로 만남이나 상 등 다양하다.
[C. 신비 가치]
이해를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가치다.
종교, 미신, 점, 타로, 행운의 부적 등이 있으며 창작물에서도 자주 이용된다. 이해를 초월하기에 우수하더라도 믿을 수 있다.
[C. 유사 가치]
유사한 가치다.
유사 연애 산업 등이 그렇다.
[C. 무지 가치]
무지일 때 달라지는 가치다.
미지는 몰라도 지식이 있는 상태가 있을 수 있는 반면, 무지는 전반적으로 모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젊음으로 마케팅을 할 때에는 무지 가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마케팅을 하는 인간은 많은 것을 아는 상태기 때문에 무지 상태에서 상품을 접할 때 느끼는 감성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아는게 적기 때문에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도전한다. 그런 것이 젊은 패기 등으로 해석된다. 아는 것이 많은 인간이 만든 세계는 리스크를 고려하였기 때문에, 리스크를 고려한 마케팅은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다.
아는 것이 많은 인간은 아는 것이 적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이용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가 비슷하기에 경험은 달라도 감각은 비슷할 수 있어 이용할 수 있다.
[C. 보관 가치]
보관하면서 생기는 가치다.
보통 창고 등에 속한다.
[C. 이동 가치]
이동하면서 생기는 가치다.
교통이나 물류 등이 그렇다.
[C. 우열 가치]
우열으로 본 가치다.
광대를 보고 웃을 때 쓰인다.
[C. 건강 가치]
건강으로 본 가치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 등이 있다.
[C. 거품 가치]
실제 가치보다 부풀린 가치다.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부풀렸다는 것은 특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회계를 부풀리는 분식회계 등이 있다.
[C. 통제 가치]
통제할 때 쓰이는 가치다.
스포츠 규칙과 같이 약속한 공통된 통제나 지배를 하면서 복종하게 할 때 쓰이는 통제가 있다. 지배자가 억압을 가했다가 지배자가 풀어도 피지배자는 풀렸을 때 느끼는 행복감에 의해 지배자에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자유 체제에서는 스포츠 방식의 통제가 적절하다.
[C. 언어 가치]
언어로 만들어진 가치다.
인간이 만든 모든 개념에 언어 가치가 포함된다. 따로 언어 가치로 구분한 것은 모든 개념이 어디까지나 인간이 언어로 규정한 개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1+1=2를 말하지만 실제로 우주는 그렇게 딱 나뉘는 경우가 드물다. 같은 원소라 하더라도 베타 붕괴가 다르게 일어날 수 있다. 수치상 동일한 무게라 하더라도 동일한 에너지가 아닐 수 있다. 물론 매우 미시적인 관점이므로 일상에서는 그리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학문에서는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5. 통합 체계
물리로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은 없다. 경제 물리학의 목표는 경제를 물리로 해석해서 통합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세계 구성과 인간이란 생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에너지 방출과 제어의 성립 조건과 경제 생태계에서의 소비, 생산, 분배의 성립 조건을 파악하여 통합 체계를 갖춘다. 통합 체계를 통해 행복한 사회와 자유로운 체제를 성립시킨다.
정부(입법, 사법, 행정)가 바뀐다고 사회가 행복하고 체제가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정부가 하는 정책과 제도는 학문으로 행하기 때문에 학문의 발전이 없으면 고질적 사회 문제는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해결할 수가 없다. 학문의 발전이 없었기 때문에 고대 종교는 수천 년간 결과가 없고 근대 이념은 수백 년간 진보가 없고 현대 인문은 수십 년간 고질적 문제 해결을 못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바뀌는 것은 단순한 권력 쟁탈일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학문이 발전해야 한다. 정부가 발전한 학문을 참고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논리적이면 어떤 정부라도 웬만하면 참고하고 실행해본다. 실제 자연 계열의 과학은 어떤 정부가 와도 웬만하면 참고하고 실행한다.
자유 체제에서 사회와 체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체제에 필요한 개념들이 지배 체제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질서만 해도 자유 체제와 지배 체제는 아예 다르다. 자유 질서에서는 전부 자유롭고 몇 가지를 계약에 따라 금지한다면, 지배 질서에서는 전부 금지하고 몇 가지 필요한 것을 정당화한다. 지배 체제에서는 지배 질서와 같이 전부 금지하고 몇 가지 허용하는 것으로 사회와 체제가 성립될 수 있었지만, 자유 체제에서는 전부 금지하다가는 자유 의지로 에너지 방출과 제어, 경제 생태계의 소비, 생산, 분배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사회와 체제가 성립될 수 없다. 어디까지가 자유 체제에서는 자유 질서, 전부 허용하고 몇 가지 계약에 따라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자유로운 체제에서 A 가치가 공급되면 B 에너지가 방출되어 C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것을 전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탄생, 소비, 학습, 생산, 분배 등을 체제에 맞게 실현시킨다. 그 과정은 전부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자유 이념 실현을 위해 늙음과 죽음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세부적인 방법은 절대적 가치 또한 상대적으로 만들어 모든 가치를 상대적으로 가정한 다음 논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자유 체제에서 탄생의 성립 조건은 연인 또는 여성의 자발적인 출산이다. 연인 관계에서 서로 합의하에 출산을 결정하거나 여성 홀로 정자를 받아 출산을 결정하는 것으로 탄생이 성립한다. 연인 관계에서 합의하에 출산이 결정되려면 자발적인 결혼이 필요하다. 자발적인 결혼은 연애와 중매 등이 있는데, 성관계 범주 가치가 폭락하면 연애는 고점만 거래되고 중매는 조건 결혼이 되게 된다. 보편적인 자발적인 결혼은 성관계 범주 가치가 올라 이성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 되어야 저점도 거래되면서 성립한다.
자유 체제에서 학습은 평생 학습을 해야 한다. 지배 체제에서는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으로 학습 유무가 중요하지 않지만, 자유 체제에서는 자발적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학습 유무가 중요하게 된다. 특히 AI의 발전으로 일자리의 변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누구든 계속 학습할 필요가 있다. 미성년이든 성년이든 순도 높은 지식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순도 높은 지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재 지식의 순도가 낮음을 이해하고 누구든 모순을 제거하면서 지식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
지식의 순도를 높일 때에는 객관식 문제 풀이가 위험할 수 있다. 이것은 지식을 익힐 때 위험하다. 활용할 때에는 위험도가 줄어든다. 지식을 익힐 때에는 그 지식으로 사고의 논리 체계를 구축하게 되는데, 모순이 있는 오답이 새겨지면 오답이 발상되면서 논리 체계에 불순물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판단하면 상관 없을 수 있는데, 대체로 객관식 문제 풀이는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반면 지식 활용할 때에는 불순물이 있어도 웬만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미 구축된 논리 회로로 불순물을 접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존재를 논리 체계에 넣는 것과 논리 회로로 접하는 것은 별개다. 전자는 위험 후자는 괜찮다.
자유 체제에서 에너지 방출과 제어와 경제 생태계 구축은 전문성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적 가치의 경우 경제 전문가들이 잘 할 수 있다. 절대적 가치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 모여 모순을 제거하며 지식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 초기에는 절대적 가치에 대해 판단하려 하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게 낙인이다. 현재 문화에 머물러 있는 영역까지 전부 학문으로 체계화하여 문명으로 만든다. 각 산업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에너지 방출과 제어, 경제 생태계와 통합하여 연계할 수가 있어야 한다.
진보의 가장 큰 걸림돌은 대체로 이해 관계다. 변화로 손해를 보는 인간은 변화를 반대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익을 초월한 논리와 새로운 이익이 필요하다. 국가의 몰락과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 새로운 변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는 불로와 불사라는 이익. 절대적 가치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 지배를 성립시킨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국영화나 민영화나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접근할게 아니라 합리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현재 전기는 극심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나 민영화에 대한 공포로 적자 해소의 길이 보이질 않고 있다. 기업을 살린다는 이유로 기업 전기세가 낮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전기 산업을 가정과 산업을 분리하고, 국영은 가정용과 국가 비상 전력용으로 쓰고 민영은 산업용으로 쓰면 국영으로 안전망을 갖추고 민영으로 적자를 해소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가정에서도 적게 쓰면 국영, 많이 쓰면 민영이 저렴하도록 가격 편차를 두는 것도 합리적일 것이다. 현재는 전기 체계가 연결된 상태기에 분리가 수월할지는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 상황에 따라 대기업에서 따로 기업용 전기를 운영하는 것도 효율적일 것이다.
지배 질서가 익숙하다보니 물리적으로 감시하여 파악하는 것으로 대응하려는 태도가 많이 보이게 된다. 그럴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간을 이해하고 어떤 조건에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미리 다 알고 있으면 된다. 바둑을 두듯이 최소한의 정부 정책만으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끔 유도해야 한다.
유명한 사상가나 철학자, 그들의 주장을 맹신하며 절대적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주장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질적 사회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수천 년 동안 성과가 나오지 않았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 유명하고 오래되면 다 되는가? 인간을 권력으로 복종하게 만들어서 다툼을 없애기만 하면 되는가? 인간의 욕망을 제거하여 좀비처럼 만들어 죄를 짓게 하지 않으면 되는가? 인간들이 지옥이 무서워 덜덜 떨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구원만을 기다리게 하면 되는가? 그걸로 되는가? 그게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가?
누군가 더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어떤 사상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단순히 모순이 있나 없나로 접근해야 한다. 지식의 순도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경쟁 상대로서 우열은 없다. 더 순도를 높이는 쪽이 더 타당할 뿐이다.
당장 개념 발상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모되어 구체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했다. 사상가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주장한다거나 누군가를 구원을 한다거나 반드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장하지 못하겠다. 단지… 본질을 보고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 그 길로 가기 위한 안내. 현상을 알게 하고 판단하게 할 수 있는 것.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자료. 사상가든 뭐든 결국 수많은 역할 중 하나. 새로운 생각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혀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최소한 문제 해결을 하겠다고 문제 원인이 되는 것을 하게 하지는 않도록 하는 것. 내 주장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논리에 모순이 없으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많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나는 그런 인류의 지성을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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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부디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판단하지 못하는 지성에 무슨 의미가, 무슨 가치가 있어?
올해 안에 불로 불사 루트를 파악할 수 있기를. 이게 아니면 보편적인 진보가 어려울 거 같아.
올해는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사상가로서 성공한다거나 환경이 좋아진다거나 연인이 생긴다거나 하는 등의 개인적인 욕망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네.
아마 다음은 외교에 대해 쓸 거 같아. 주제가 바뀔 수도 있지만, 좀 쉬다 발상해봐야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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