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히틀러의 성공시대2012.03.19 AM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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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히틀러인가? 지금 2012년에도 여기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히틀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히틀러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는가 궁금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히틀러 같은 자가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나 권력을 잡는 일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잘 모르겠다.

 처음 이 만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히틀러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건 당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회적 힘들인데, 그 안 좋은 모습들은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군부가 다스릴 때가 좋았어’라는 보수적 정서, ‘북부 지방 프로이센 놈들은 빨갱이’라는 지역감정, ‘여러 민족이 뒤섞이며 우리 사회에 위기가 온다’는 외국인 혐오, 초강경 보수 세력의 언론 독과점, 우익의 폭력에만 유독 관대한 사법부의 편향 따위. 이런 풍경은 어쩐지 우리에게도 크게 낯설지 않다. 바로 이 사실이, 작업 시작하면서 놀랍고 두려웠다.

  그럼 지금은? 적어도 나로서는, 히틀러가 환생한대도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하겠다. 어째서 조심스러워졌나? 히틀러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힘들이 있다고 해도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톱니바퀴들을 모아 흔든다고 번번이 시계가 조립되어 나오는 건 아니니까.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다. 1차 대전 이후 히틀러처럼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서구사회에 적지 않았다. 파시즘 ‘운동’은 의외로 널리 퍼져 있었다. 영국에도 프랑스에도 미국에도 파시스트 단체들이 있었다. 그러나 집권에 성공한 것은 이탈리아와 독일과 스페인 정도. 히틀러만큼 국가기구를 어마어마한 규모의 살인기관으로 이용한 경우는 전무후무. 요컨대 히틀러 같은 사상을 가진다고 해서 히틀러 같은 정부를 세우는 것은 아니고, 설령 우여곡절 끝에 그런 정부를 세운다 해도 히틀러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물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과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도 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히틀러만큼은 아니다.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히틀러 범죄의 유일성 여부는 독일에서 한때 중요한 논쟁 주제였다. 히틀러의 죄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우파에서 제기되었다. 우파 쪽에서는 이를테면 스탈린이 저지른 짓들을 히틀러의 범죄와 비교했는데, 많은 지식인들이 이를 ‘물타기’로 여겨 호되게 비판했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그럴수록 히틀러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재현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라면, 왜 히틀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가? 우선 히틀러의 여정이 이 땅에 재현될 가능성이 제로(0)는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톱니바퀴들이 흔들리다가 저절로 시계가 조립될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시계는 톱니바퀴로 구성되는 게 사실이니까. (사실 시계 이야기는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유명한 비유. 유기물이 있다고 생명이 반드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생명이 탄생했다고 인간 같은 복잡한 생물이 바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생명도 존재하고 인간과 여러 다양한 종이 존재하는 것이다.)

  히틀러에 대해 잘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요즘 우리 사회의 어떤 경향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력, 자신과 의견이 다른 세력에게는, 으레 히틀러 같다거나 파시스트 같다는 수사를 사용한다. 히틀러와 파시즘 자체가 그럴 여지는 충분하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파시즘의 외연을 딱 부러지게 규정할 수는 없되 여러 파시즘들끼리는 다만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바의 ‘가족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사회주의(나치)라는 특이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히틀러는 극우파면서도 사회주의 역시 표방했는데, 이런 수사적인 표현 때문에 이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혼동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도 서로를 기분 상하게 하기 위해 히틀러나 파시즘이란 말을 쓴다. 인터넷 우익은 진보적인 대중 집회에 대해 이 말을 쓰고, 진보 세력은 보수적인 인사들의 거친 언행에 대해 이 말을 쓴다. 요즘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서로 파시즘이라며 덮어씌우는 것이 유행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행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소한 반대를 위해 상대편을 파쇼니 히틀러니 부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인터넷 우익의 무지야 이야기할 것도 없을 터. 진보 성향의 시민들도 이명박 정권이나 한나라당이 미워서 ‘히틀러 같은 자’라고 비꼬기야 자주 하지만, 그들이 정말 히틀러만큼 독하고 맹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가 재현 가능하다고 너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말하자면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양치기 소년이랄까. 대중이 조금만 지식인과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도 ‘저건 파시즘의 징후’이니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그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 데에나 히틀러를 갖다 붙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히틀러에 대한 작업은 필요할 듯.

  그러나 히틀러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한다면, 역시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히틀러를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히틀러와 비슷한 야망을 가진 히틀러 워너비가 나타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어느 사회나 이상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설령 그런 자가 나타나더라도 그가 다시 성공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앞서 히틀러가 다시 나타나도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을 것 같다고 했지만, 우리 모두 방심한 채 손을 놓고 있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에겐 히틀러를 막을 힘이 있다. 사실 히틀러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민들 역시 그랬지만, 그들은 막지 못했다. 이것은 절망일까, 희망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적으로건 실천적으로건 긴장을 놔버리면 그때는 진짜로 절망 하나만 남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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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연재 만화 '히틀러의 성공시대'
십자군 이야기, 르네상스 이야기를 그린 김태권 작가의 신작.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그 역사의 오류를 반복한다'


댓글 : 3 개
이만화재밌슴.
히명박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친위대에 들어가는 것이 쉽고 돈을 많이 번다.
히명박을 만들어서 친위대에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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