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륜스님 [글]] 즉문즉설 '딸이 기대에 못 미쳐요.(애틀란타에서)'2014.10.21 PM 12:52
오늘은 테니스를 치는 딸아이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해
화가 난다는 엄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키울 때 어떤 마음이여야 하는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14살 된 딸이 있는데 테니스를 합니다.
테니스 선수로 대학을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훈련을 시작한지 3년 다 되어갑니다.
잘 움직이지도 않고 느리고 뚱뚱한 딸 아이에게 테니스를 시킨다며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고 남편조차 저를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딸을 끌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딸에게 강한 승부욕이 전혀 없고,
부모가 시키니까 그냥 하는 식으로 시합에 나가는 것 같아서 제가 너무 속상합니다.
딸 아이가 자신보다 체격도 작은 아이들에게 지는 걸 보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부모가 아무리 당기고 해봐야 정작 본인이 팔짱끼고 있으면 도리가 없잖아요.
너무 절망적이어서 때려 치우자고 하면 딸은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그럽니다.
저도 딸에게 때려치우자는 협박을 하긴 했지만 마음은 딸과 함께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저는 딸아이에게 격려도 해주고 싶지만 잘 안돼요.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엄마로서 제가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을 주는 길인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처음에는 테니스를 못했을 것 아니에요?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 보다는 지금이 더 나아요? 안 나아요?”
“지금은 엄청 잘하죠.”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지금이 더 잘하잖아요. 그러면 격려를 해주어야지요.
아이가 ‘난 못한다’ 이렇게 열등감을 느끼더라도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마라. 1년 전을 생각해봐라. 그때보다 지금 훨씬 잘하지 않느냐”
이렇게 격려를 해줘야 하지요. 거짓말로 격려를 해주라는 말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잖아요.
1년 전보다 낫고 2년 전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격려는 진짜 많이 해주죠. 너 만큼 잘하는 아이가 없다고요.”
“너만큼 잘한다는 아이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잖아요. 더 잘하는 아이들 많이 있잖아요.
그렇게 거짓말을 하니까 아이가 엄마 말이 믿어지지가 않지요.(청중들 웃음)
그렇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너가 1년 전보다는 훨씬 잘하지 않느냐’ 이건 사실이잖아요.
아이가 좌절을 하더라도 엄마는 “그래 너가 세운 목표에는 못 미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작년보다 올해가 더 나아진 것이 사실이야.
그러니 올해보다는 내년에 또 나아질거야. 지금 잘하고 있어” 이렇게 격려를 해줄 수 있지요.
격려를 해준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너보다 엄마는 재주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도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냐.
그러니 너도 걱정하지 마라. 너도 잘 살거야.” 이렇게 사실에 기반한 격려를 해야 합니다.
관점을 어떻게 잡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어느날 올림픽 경기를 TV로 보다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누가 9.8초로 우승하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나도 한번 해봐야지’ 이렇게 마음을 내어서 3년을 죽기 살기로 노력한다고 해서
과연 목표 달성이 가능할까요? 못하겠죠. 그럼 저는 문제아예요?
우리는 대부분 목표를 이렇게 너무 높게 설정하기 때문에
평생 노력해도 한번도 만족을 못하는 겁니다. 늘 ‘나는 안돼’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10년을 노력해도 달성할 수 없어요.
그런데 내가 지금 뛰어보니까 100미터에 25초 정도 나온다.
그러니 노력을 조금 더 하면 23초까지는 나올 수 있겠다
이렇게 해서 3개월 동안 매일 2시간씩 달리기 연습을 하면 23초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까요?없을까요?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죠.
이렇게 목표를 세우면 3개월 지난 뒤에 목표를 달성하게 되니까 기분이 좋을 것 아닙니까.
‘나도 되는구나’ 이렇게 자신감이 생길 수도 있고,
잘하면 22초가 나와서 목표를 초과달성할 수도 있잖아요.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1초만 더 기록을 당겨보자 해서 다시 3개월 동안
연습을 하면 또 달성할 가능성이 있죠. 이렇게 되면 달리기 연습하는 것이
나에게 고역이 안 되고 늘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목표를 처음부터 9.8초로 정해놓으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 하기도 싫어지고, 그렇다고 그만두자니 노력한 지난 3년이 아까워 억울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지금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딸의 능력과는 아무 관계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자식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자식도 힘들고 부모도 걱정이 되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모든 테니스 선수가 다 우승하고 싶지 우승하기 싫은 사람이 누가 있어요?
아이도 얼마나 우승하고 싶겠어요? 딸이 우승 못했다고 좌절하더라도
“그래도 작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격려해 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입니다.
테니스를 하고 있다는 것은 최소한 건강하다는 거잖아요.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의 건강입니다. 공부 1등하고 운동 1등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건강한 것을 부모는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운동을 안했더라면 체중이 더 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운동을 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것도 부모로서는 굉장히 좋아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목표를 낮게 설정하면 엄마 입에서 늘 격려의 말이 나오게 됩니다.
질문자가 자꾸 속이 터지는 이유는 아이 때문이 아니고 질문자의 욕심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니, 속이 터져서 죽어도 아무한테도 원망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속이 터진 거니까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인물도 잘 나고 건강하고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길 원하죠?
그런데 그런 아이는 엄마만 좋아하겠어요? 이런 아이들은 이웃집 아줌마들도 다 좋아해요.
그러니 이런 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고 이웃집 아줌마예요.
그럼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
아이가 신체장애이고 공부도 못하고 말도 안 듣고 그래서 세상이 다 내쳐도
그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있는데 그게 누구다? 바로 엄마입니다.
엄마가 되어야지요. 질문자는 엄마이지 코치가 아니에요.
정신 좀 차리세요. 엄마로 돌아가세요.(청중들 웃음)
지금처럼 아이를 자기 욕심의 수단으로 대하면 아이가 고통스러워집니다.
요즘은 엄마가 없어요. 그러니 이제는 엄마로 돌아가줘야 합니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뒷바라지는 해주되 억지로 하게는 하지 마세요.
하다가 그만두어도 격려해줘야 합니다. “너 그렇게 하려면 때려치워라”
이 말이 얼마나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이것만 해왔는데 이걸 그만두면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하나
얼마나 걱정이 되겠어요? 그럴 때도 ‘테니스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란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해 줘야 합니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면 지원해주고 그만두고 싶으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코치 역할 그만하고 아이의 엄마로 돌아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돈이 좀 들더라도 코치는 다른 사람한테 좀 맡기세요.(청중들 웃음)
생각이 이렇게 탁 바뀌어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격려를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자의 마음 속에는 욕심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입에 발린 거짓말 격려를 한다든지,
겉으로는 잘한다 말하면서 속으로는 불만을 갖게 됩니다.
부모 자식 간에 그런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아이는 아주 훌륭합니다.
중간만 하다가 그만둬도 훌륭하고, 끝까지 해도 훌륭하고, 대학가도 훌륭하지만 대학 안 가도 훌륭하고,
엄마는 항상 이렇게 아이를 좋게 봐야 합니다. 놀아도 좋다 이렇게 팽겨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만하기만 해도 얼마나 잘하고 있는 겁니까?
잘하고 있으니까 경기에 이기고 지는데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아이가 테니스를 하고 싶다고 하면 하는데까지 지원해주고,
못하겠다고 하면 아이는 좌절하더라도 엄마는 격려해줘야 합니다. 더 잘하라고 강요하면 안 됩니다.
힘들어하면 힘든 것을 받아주면서 ‘쉬었다 해라’ 고 말해주고, 다른 것을 하겠다고 하면
그럴 수 있게 길을 열어주세요. 어린 아이가 어떻게 다 알고 인생을 살겠어요?
그러니 때로는 실패도 하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하는 겁니다.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았잖아요?
자기 혼자만 착실하게 살아온 것처럼 그러지 마세요. 우리는 타인의 아픔,
특히 가까이 사는 가족들에 대한 이해가 서로 필요합니다.
그런 이해의 기반 위에 대화를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함께 의논해서 나가야지 자식이라고 제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스님의 답변에 크게 공감한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질문자의 옆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어쩌다가 이런 집에 태어나서 너도 참 고생이다” 하셨는데
청중들도 크게 웃고, 질문자도 부끄러워하면서 크게 웃었습니다.
질문자에게는 낯부끄러울 수 있는 일갈이었지만 스님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질문자에게
이런 일갈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답하시고 스님께서는 깨달음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음을 일러주시면서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 움켜쥐고 있는 생각을 놓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잘해줘서 내가 편안해진 것은 수행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얼토당토 않는 짓을 했을 때 ”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이 완전히 미친 소리를 하네’ 할 때
그 때 한 생각 탁 바꾸어서 ”예“ 할 수 있으면 천지가 개벽하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그 때는 ”예“가 안 됩니다.
예수님은 창으로 찌르는 자에게 ”저들을 용서 하소서” 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지만 신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못하죠.
그러나 ‘이건 진짜 못 하겠다’ 하는 그 순간 “예” 하면서 상대가 하자는 대로 해 보세요.
백번 중에 한번만 이렇게 할 수 있어도 절에 30년 다니는 것보다 낫습니다.
부처님한테 절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부처님한테는 누구도 다 절할 수 있어요.
그런데 바람피운 남편한테는 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고, 여보. 내가 얼마나 당신을 편안하게 못했으면 다른 여자를 찾아갔겠어요.
미안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절을 한번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운명이 바뀌어 버립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내려놓을 수 있으면 그 때 부처되는 길이 열립니다.
부처가 될 수 있는 기회는 하루에도 열 번도 더 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기회가 억만번이 찾아와도 다 놓칩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길거리에서 수도 없이 예수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은 휘황찬란한 광채를 뿜으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 남편이나 내 아내가 독기를 품을 때 그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때 부처인줄 알고 엎드려 절할 수 있으면 해탈합니다.
기회는 수도 없이 찾아오지만 내가 해탈하기 싫어해요.
이렇게 내가 눈을 뜨기 전에는 이세상에 부처님이 아무리 출현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이건 아니다’ 할 때 한번 숙여보세요. 그 때서야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깨달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박 깨달아 항상 행복하게 사십시요. 내가 행복해야 타인도 행복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무리 말씀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 40분이 흘렀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스님의 열정적인 강연에 큰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퍼왔습니다.
댓글 : 2 개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