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륜스님 [글]] 즉문즉설 '옆에 있는 독재성 (리버사이드에서)'2014.11.23 AM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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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퍼왔습니다.






이어서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도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질문과 스님의 답변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륜스님. 저는 법륜스님이 용하시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청중들 웃음)

저희 남편이 지난 번에 오렌지카운티에서 강연을 듣고 와서 아주 용하시다고,

답변이 너무 시원해서 감명 받았다고 하면서 저를 데리고 왔어요.

같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오면서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지금 19년째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을

오늘 법륜스님께 물어보고 싶은데, 돌아가는 길에 무사히 돌아가도록 하자고

약속을 먼저 받고 왔습니다. (청중들 웃음)

저희 남편은 매우 가부장적입니다. 그리고 아주 행복하게 있는 어느 순간에 화를 냅니다.

화를 내서 분위기를 망치고, 한번 화가 나면 기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 곱씹습니다.

큰 소리도 나오게 되고요. 또 과거에 있었던 일부터 해서 생기지도 않은 미래를 부풀려서

얘기를 할 때에는 저도 아이들도 상처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저희 남편은 스님들이 쓰신 책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특히 법정스님의 책을 좋아하는데요, 혼자 즐기고 좋은 말씀을 해주면 좋은데,

가끔 가다가 오버를 해요. 저희들은 교회를 다니는데 어느 날 운전을 하면서 가는 길에

아이가 “아빠와 같이 교회에 가고 싶어요”하고 얘기를 했는데 느닷없이

무소유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나는 너희들 다 커서 시집, 장가 보내고 나면

법정스님의 말씀에 따라서 산에 올라가서 혼자 살란다” 하니까 아이들이 엉엉 울더라고요.

지금은 커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기억이 상처가 되어서 남아있더라고요.

그 뜻은 굉장히 좋지요. 하지만 우리처럼 일상생활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조금 거리가 있는 얘기거든요. 혼자 사는 분들이나 산에 계신 분들은 도를 닦으면서

아름다운 모습들을 배울 수는 있지만,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걸 소화하기가 힘들고,

저희는 어릴 적 한국에서 자라서 조금 낫지만 아이들은 미국에서 자라서 받아들이기가 더 힘듭니다.

남편이 이렇게 할 때, 엄마로서, 아내로서 저는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저희 남편이 여기 와 있는데 좋은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 시간이 굉장히 유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문제를 돈도 안 내고 그냥 공짜로 들으려고요? (청중들 웃음)

질문을 하실 때, 이 많은 청중 앞에서 배우자 험담을 한 것은 별로 안 좋았는데 맨 끝은 좋았어요.

배우자를 어떻게 고쳐야겠느냐가 아니라 그런 배우자를 내가 어떻게 대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하신 거요. 거기까지만 하면 참 좋았는데,

그 뒤에 또 ‘저 인간도 어떻게 고치면 좋겠냐’ 를 붙여서 조금 감점이네요. (청중들 웃음)









첫 번째가 권위적이라는 것, 두 번째가 화를 벌컥 벌컥 잘 내는 것,

세 번째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네 번째가 책을 보고 얘기하는 거였죠?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책 내용을 갖고 행동을 직접 했어요? 아니지요.

말만 ”간다“고 하는 거죠.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제가 강연을 다니면 남자 분들 중에 ”제가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고 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을 못 해서 그러는데, 제가 한 3년만 바짝 일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놓고

저도 전 세계를 스님 따라다니면서 운전도 해 드리고 봉사하겠습니다“ 하는 분이

하루에 한 두명씩 계세요. 그런데 지난 40년동안 돌아 봤을 때,

이렇게 와서 얘기 몇 번 한 사람 치고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청중들 웃음)

그래서 그건 걱정 안 해도 돼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포인트는 저는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을 알지만,

아이들은 은연 중에 ‘우리 아빠는 언젠가 혼자 딱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좋은 얘기입니다, 아이들이 빨리 빨리 자립을 해야 하지요.

아이들이 너무 ‘아빠는 영원히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면 아이들의 자립이 늦어집니다.

그렇게 하면 빨리 내일이라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자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문제가 될까요? 만약 배우자가 “야, 난 언제든지 너희들을 두고 떠날거야.”하고

얘기할 때 아이가 울면, 엄마는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걱정하지 말아라,

아빠는 그렇게 안 할 거다. 엄마와 살아온 지난 십몇 년을 돌아보면

아빠는 늘 표현을 거꾸로 하는 경향이 있다. 말을 반대로 하는 성향이 있으니까,

아빠가 그런 말을 할 때에는 ‘너희들을 너무 너무 아낀다,

너희들이 자랄 때까지 내가 최선을 다하겠다’ 하는 뜻이야.

엄마도 처음에는 그 문제를 가지고 굉장히 오해를 해서

‘정말 나를 두고 떠나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빠는‘당신을 사랑해,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할거야’ 하는 말을 자기가 부끄러워서 못 하는 성격이야.”

하고 말해줘야 합니다.









배우자가 그런 말을 할 때는 ‘아, 저 사람이 좋다는 표현을 저렇게 반대로 하는구나’ 하고 들어보세요.

표현을 그렇게 한다는 것을 자기가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 말에 걸리기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다.

아이에게 “아버지가 말만 그렇게 하시지 너희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너희를 잘 돌봐주실 거야”하고 얘기해주는 것과 동시에,

“그러니 너희들도 스무 살이 되면 자립을 해야 하니 미리 미리 연습을 해라” 얘기해주면 됩니다.

배우자가 술을 먹고 들어와서 주정을 하든, 고장난 녹음테이프가 돌아가듯이

계속 옛날 얘기를 해도, 그래도 귀담아 들어주고 조용히 오순도순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애들한테는 아무 나쁜 영향이 없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또 술 먹고 들어 와서 했던 얘기 또 한다.

그 얘기 세 번만 더 하면 100번째다” 하면서 싸우면, 아이들이 속된 말로

“지 애비 닮았다” 할만큼 아버지의 추태를 그대로 닮습니다.

그러면 그 책임을 어머니들이 대부분 “봐라,당신이 그러니까 애들이 다 닮지 않느냐” 고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전이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항상 어머니의 거울에 비쳐서 전이가 돼요.

엄마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해버리면 아이들은 전혀 아빠를 안 닮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그걸 받아치면 그것이 반사되어서 아이들이 그대로 아빠를 닮아요.

대부분 아버지가 술주정을 하면 아이들은 의식은 “난 절대 아버지처럼은 안 될거야”하지만,

군대에 갔다 오면 아버지와 똑같은 술버릇이 생깁니다.

이건 판에 박은 듯이 일어납니다. 의식과 정 반대로요.

그것은 어릴 적 엄마로부터 투사된 아버지의 그림자가 마음에 비춰져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무의식 세계의 카르마로 자리해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질문자가 그렇게 받아친 것으로 봤을 때,

자기의 아이들은 크면 질문자가 본 배우자의 부정적인 모습을 닮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그런 추태가 나타나면, “저거 봐라, 당신 닮아서 저렇게 된거다”라고 하면

더 악화됩니다. ‘아, 내가 아이의 엄마로서 그것을 충분히 수용해주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줬구나. 미안하다’하고, 배우자에게도 ‘여보, 제가 그 때는 나이도 어리고

어리석어서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참회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내야 아이들을 바르게 키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남편과 갈등이 있고, 지금은 아이들이 자기 편이기 때문에 아이들과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아이들이 크면 아이들과 질문자 사이에 심한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럴 때, 이것을 남편 탓으로 돌리면 절대로 해소가 안 돼요.

만약 남편이 죽고 혼자 아이를 키워도 굉장히 남편을 좋게 생각하고

‘당신이 그래도 나에게 남겨 준 두 아이가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키우면,

아이들은 ‘애비 없는 아이‘ 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굉장히 훌륭하게 잘 큽니다.

반면, ’당신이 혼자 죽고 나 혼자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하고 슬퍼하면서 죽기 살기로

노력을 해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키워도 아이는 어긋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 남편을 왜 만났어요?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죠. 첫째로 자기가 눈이 삐었잖아요. (청중들 웃음)

자기가 현대자동차 주가가 오를 거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지금 주가가 떨어졌다고

현대자동차에 가서 항의를 할 거예요? 아니잖아요. 내가 판단을 잘못했고,

그러면 인연과보의 도리로 볼 때 과보를 기꺼이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회사의 주식이 오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기가

그 회사를 나쁘다고만 하지 말고, 자기가 그 회사가 잘 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해야 돼요.

자기 남편이 몇 살이예요?








마흔 여섯입니다. 남편의 부모님은 사업을 하십니다. 시아버지도 권위적이세요.








거기서 자랐는데 당연히 그렇지 되지요. 자기는 지금 자기 남편이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평소에 자꾸 한국말을 한다고 뭐라고 하는 것과 똑같아요.

거기서 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어릴 때 습관이 든다고 했잖아요,

처음부터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나서 여기에 왔기 때문에,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오고 남녀가 평등하고 어떻고 배워서 머리는 알아도,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 형성된 그대로 감정이나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생각에서 행위가 나온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마음에서 행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지금 배우자가, ‘한국사회 전체도 그렇고 특히 그 집안 환경이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남편의 행동을 문제 삼지 말고 먼저 이해를 해야 돼요.









두 번째는, 그러나 개선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누구도 쉽게 못 고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흑인들에게 인종차별 문제가 법률적으로 없어졌지만,

백인들 중 잘 살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은 무의식중에 인종차별적인 말이 나와서 구설수에 오르잖아요.

그것은 어릴 때 형성된 자기의 우월의식이, 감정이 부딪히거나 하면 툭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명백하게 법률적으로 잘못된 것은 개선을 해야 하지만

관습적인 것은 짧은 시간에 개선이 안 됩니다.

첫 번째,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해를 하면 내가 화가 안 나고,

이해가 안 되면 배우자를 미워하게 돼요.

자기와 한 집에 사는 사람을 미워하면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좋은 사람과 사는 게 좋아요, 나쁜 사람과 사는 게 좋아요?

미워하는 것은 자기학대와 똑같은 것입니다.

‘아, 저 사람에게 저런 문제가 있구나’하고 이해를 하세요.

그렇다고 그걸 내버려두라는 게 아니에요.

두 번째, 개선하려면 조금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개선하려고 한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만약 남편이 부엌 일을 안한다고 한다면, 첫 번째로 ‘그래, 바깥 일만 잘 하면 되지,

부엌일은 내가 하면 되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아파서 누워서 부엌 일을 못하는 것처럼 해서 "아이고,

여보 나 아파 죽겠어. 커피 한 잔만 끓여줄래“ 하고 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청중들 웃음)

멀쩡하게 앉아서 ”왜 여자만 커피를 끓여? 너도 끓여와“ 하면 싸움이 되는데,

누워서 끙끙 앓으면서 ”아이고, 여보 배고파,밥 좀 해줘“ 하면서

환경을 자꾸 만들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걸 지혜라고 하죠.

권위주의적인 것은 첫 번째 이해를 할 것,

그리고 개선이 필요하면 그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거기에는 조금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화를 벌컥 벌컥 내는 거였죠? 이것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고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성질을 확 낼 때 맞대응을 하면 확 터지기 때문에,

상대가 성질을 팍 낼 때에는 일단 피해주세요. “그래, 내가 잘못 했다, 네가 잘했다”하고 피해주고,

성질이 가라앉으면 “이게 어따 대고 성질머리를 부리냐”고 팍 공격을 해야 돼요. (청중들 웃음)









요령이 두 가지예요. 성질을 부릴 때에는 받아주고 다독거려주고,

정신이 들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세게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성질이 욱하는 사람은 성질이 났을 때 성질을 건드리면 불이 붙어버리니까요.

같이 안 사는 방법도 있지만,같이 살 거라면 거기에 맞대응하는 것은 바보예요.

‘성질이 저렇구나‘하고 딱 알면, 화가 났을 때 소나기 피하듯이 잠깐 피하고,

끝나고 나서 ’저건 손 좀 봐야겠다‘ 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청중들 웃음)









그 다음에, 술을 마시고 자꾸 과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어릴 때 어떤 심리적인 억압을 받은 케이스입니다.

자기가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하거나 발표를 하려고 하거나 어떤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네가 뭘 안다고 까부나”하고 눌려서 말문이 닫혀 버리면

머리 속에서는 엄청난 생각이 나는데 입에서는 말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술을 마셔서 약간 취하면 의식이 약간 마비가 되면서

무의식에 있던 것이 튀어 나옵니다.

그래서 술주정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심리적인 억압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듣는 사람은 굉장히 힘들죠. 늘 했던 얘기, 같은 프로그램이 돌아가니까요.

이것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있고, 치유를 하려면 이것을 들어줘야 합니다.

“아이고, 여보 그랬어? 그 때 그 친구가 왜 그랬지? 엄마가 왜 그랬지?” 하면서

약간 어린 아이 다루듯이 술 취한 사람 등을 두드려주고, 들어주고 하면서 약간 연민을 표시해야 돼요.

그런데 그 때 “또 그 소리 한다!”하고 발로 차 버리면 의식과 무의식에 혼돈이 오기 때문에,

옛날에는 엄마나 아빠한테는 대응을 못 했는데 아이나 아내일 때에는

옛날의 분노가 폭발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살림을 부수거나 하는 일도 생길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받아들여 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얘기를 술 취해서 할 때에는 이 사람을 내 배우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아이 중 한 명이 하소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들어줘야 돼요.

마흔이 넘고 덩치는 컸지만 그렇게 할 때의 심리상태는 일곱 살, 열 살 때의 심리상태이거든요.

내 얘기를 듣고는 “아니 부인이 그걸 어떻게 다 해요?” 한다면 그런 인간하고 안 사는 수밖에 없죠.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 게 뭐 있어요?” 하면 같이 안 살면 되는데,

또 다른 것을 보면 좋은 점이 있죠, 좋은 건 가지고 나쁜 건 버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같이 받아들여서 수용하고 다듬어나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올 때에는 솔직히 조금 나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희 남편에게 조금 더 센 조언을 해주시길 바랐는데,

지금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더 지혜롭게 해서 생활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청중들 박수)









질문자가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을 돌이키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니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냅니다.

질문자는 처음에는 남편을 바꿔보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스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지혜로워져야겠다고 돌이키게 되었는데,

그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사랑은 이해라고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강연을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제가 여러분들 질타를 조금 해도 되겠습니까?

왜 수준도 안 되면서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고 애를 낳아서 자기도 힘들고

세상도 힘들게 해요? (청중들 웃음)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너 좋다“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욕망이고 편집증이에요.

사랑은 이해예요.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입니다.

여러분들이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서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첫 번째로 내가 분노가 일어나지 않고, 두 번째로 연민이 일어나고,

세 번째로 도와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놈인데 봐준다‘ 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참는 거예요.

참는 것은 세 번 이상 못 참잖아요. 진정한 용서라는 것은 참을 것이 없는 것을 말해요.

그가 죄 없음을 내가 알아야 그를 진정으로 용서하게 돼요.

나쁜 놈인데 어떻게 용서가 되겠어요? 참는 것이지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막 좋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고,

못 잊어서 힘들어하는 것은 편집증에 속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해입니다. 자식에 대해서도 자기 식대로 안 되면 미워하잖아요.

내 말을 따르든, 따르지 않든지, 나에게 이익을 주든지,

해를 주든지 그들은 그들의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관계에 사로잡히면,

그들에 대한 이해보다는 나에 대한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좋아하거나 미워하거나 하게 되는 등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게 되죠.

그런데 우리가 그들에 대한 이해,

즉 사랑이 있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핵심은 이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좋으면 그게 사랑이라고 해요.

독재자의 경우를 보세요,자기 뜻에 맞으면 입 안에 먹던 것도 내주듯이 얼마나 잘해줍니까?

그런데 자기 생각에 딱 어긋나면 그 날로 목을 잘라버립니다.

정치적 독재자처럼 사랑의 독재자들이 많습니다.

죽고 못 살던 연인들이 자기 눈 밖에 나가면 그대로 원수가 되어버립니다.

여기에 이해는 전혀 없습니다. 자기 편집증만 있지요.

그래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되고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 되는 거예요.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믿음을 갖는 것에 ‘아, 저 사람은 저런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저 사람은 어릴 때 저런 환경에서 자라서 저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구나’ 하는

이해가 있으면 분노가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아까 성인의 말씀이 비현실적이라고 하셨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인의 말씀이 가장 현실적인 거예요. 감정적으로 하는 것이 현실적입니까?

그렇게 하면 손실 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 어떻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나잖아요.

적군이라고 하더라도 부상을 당했으면 치료해주자,

적국의 사람이라도 포로로 잡혀 있으면 보살펴주자,

적국의 사람이라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은 다치게 하지 말자 하는 것이

다 성인의 말씀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인도주의, 인권 얘기를 하면서도 서로 좋아서 한 이불 밑에 사는 제 아내,

제 남편, 자기가 낳아 키우는 제 자식한테는

자기 생각 밖을 조금만 벗어나도 용납을 안 하려고 하잖아요.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같은 조건 안에서 훨씬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행복한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억압됬던 심리를 많이 풀어 냈었습니다.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어린아이라서 참 희안한 경험이더 군요

묵혀 뒀더라면 아마 늙어서 노망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노망난 어른들도 이해가 좀 됬구요.

정신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댓글 : 1 개
이번편은 마치 부부 카운셀링같은 느낌도 나네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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