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륜스님 [글]] 즉문즉설 ''돈'에서 '도'로 옮겨간 욕심 (호주에서)'2014.12.01 AM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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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중에서 악착같이 경쟁하며 살다가 스님 법문을 듣고

나누는 삶을 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 저는 스님을 7월부터 유튜브를 통해서 뵀습니다.








7월부터요? 얼마 안 됐네요?








얼마 안 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스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저는 여러 사람들한테 스님을 제 스승이라고 말하면서,

스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곧 원수 되겠네요. (청중들 웃음)








그렇죠. 될 지 안 될지는 두고 봐야 되겠죠.








될 가능성이 높다고요. 왜냐하면, 좋아하는 마음이 강하면 원수 될 확률이 높다는 말입니다.

꼭 원수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조금 진정해야 돼요.

너무 열렬하면 안 됩니다.” (청중들 웃음)








그건 저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스님을 너무 신격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고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호주에서 12년을 살면서, 그리고 그 전에도 외국인과 살면서 산전수전,

그리고 오늘에서야 공중전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보기에 항상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항상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열등감도 많았고,

질투도 많았고, 분노도 많았고, 남을 미워해서 저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을 뵈면서 ‘아, 인생 정말 잘못 살았구나’ 했습니다.

저는 부자는 아니지만 이제는 밥은 먹을 수 있거든요.

이제부터는 잘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태껏 너무나 호주생활에서 외국인들과 경쟁을 하며 공부를 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이 죽지 않으면 제가 그 자리를 뺏을 수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죄를 많이 지었고, 받으면 받을수록 더 받고 싶은 욕심에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조금 주면서 살고 싶은데,

스님 말씀이 제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아직도 움켜쥐고 싶고

‘내가 이걸 어떻게 벌었는데, 넌 놀 때 난 잠 안자고 일해서 번 건데’ 하면서 주기가 참 아깝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좀 더 가지고 계세요. (청중들 웃음) 벌 때도 너무 욕심을 내서 벌려고 하고,

줄 때도 또 너무 빨리 욕심내서 주려고 하는 거예요.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 다르지 욕심내는 것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 ‘출세해야겠다’ 욕심을 내는 사람은 그게 뜻대로 안 되면

인생에 허무함을 느끼고 ‘부처님 법 만나서 진짜 도를 깨쳐야지’ 하고 절에 들어와서

도를 빨리 얻어야 된다는 욕심을 부리거든요,

크게 깨치고 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심리는 똑같고

대상만 돈에서 도로 ‘ㄴ’ 글자가 떨어졌을 뿐이에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심리는 같다는 것입니다.

돈을 악착같이 벌다가 이게 반성이 됐다고 해서 이걸 또 빨리 놓으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벌려고 악착같이 했던 것만 조금 내려놓고 편안하게 살면서,

있는 것을 빨리 주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조금씩 주세요.

줘버리면 또 허전해지면서 벌려는 욕심이 다시 생길 수 있으니까 그냥 두고 만족하면서 살다가,

주는 것은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줘도 괜찮아요.

한꺼번에 많이 주려고 하지 마시고요. 버는 속도만 조금 줄이고,

주는 것은 아직 놔두고 조금 씩 주면서 주는 연습을 자꾸 하면 돼요.

연습하는 방법은, 길거리에 거지한테라도 전에는 안 줬다면 한꺼번에 100달러씩 줘버리지 말고,

50센트를 주거나 30센트를 주는 연습을 하고,

전에는 절에 다녀도 돈이 아까워서 10달러 정도 냈다면

이제는 20달러 정도 내고 한꺼번에 많이 내려고 하지 마세요.

돈을 내는 것도 조금 천천히 내면서 항상 자기가 행복한 것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진정을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해요.

스님 법문을 듣고 스님이 너무 좋다고 전 재산을 다 갖다 줘버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전 재산을 다 갖다 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에 기대가 크니까 실망이 커지면서 ‘그 때 내가 미쳤다’고 하면서 갖다 준 것을 후회하게 돼요.

그러니까 마음을 진정시켜서 주는 것도 천천히 해야 합니다.

법문을 듣는 것도 크게 깨쳤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진정하고, 보시도 진정을 해서 하세요.

7월부터면 아직 몇 달 안 됐잖아요.

지금 다 주겠다고 결정해 버리면 나중에 또 후회하게 돼요.

그러니까 큰 돈을 주고 싶더라도 3년 후에 줘요. (청중들 웃음)









항상 어떤 행위에 대해 후회를 안 해야 되거든요.

내가 좋더라도 거기에 대해 후회를 안 해야 되는데,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너무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진정을 하면서 정진을 해 나가고, 막 악착같이 하던 것을 이제 속도를 좀 줄이세요.

주는 것까지는 아직 서두르지 마시고요. 마음이 지금 좀 흥분되어 있잖아요.

흥분된 것이 편안하게 진정이 될 때 보시를 하더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스님, 한 가지만 더요. 저 기도문 하나만 주십시오.








절을 하면서 ‘그동안에 너무 욕심내고 살았습니다. 욕심이 나를 해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내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흥분된 상태를 편안하게 해주는 스님의 답변에

‘아하, 그렇구나’ 하며 마음이 밝아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3시간 10분 동안의 열정적인 강연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틀에 묶여 있었던 사고를 풀어서 새로운 시대에 조응해가자고 말씀해 주시면서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이 지금은 다 가능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보는 인식틀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10년 전, 30년 전, 100년 전에 갖고 있었던

인식의 틀로 지금의 세상을 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세상이 이해가 안 되니까 세상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해가는 것일 뿐, 더 혼란스럽거나 한 것이 아니에요.

내 인식의 틀이 과거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코닥이나 후지가 최근 10년 만에 회사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하셨어요?

이렇게 세계가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도 그렇고요.









옛날 같으면 다 외워서 시험치러 가야 되잖아요, 앞으로는 지식을 시험보는 것은 다 없어집니다,

어떤 문제를 딱 내놓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니?’ 해서

필요한 지식은 아이패드를 앞에 놓고 눌러서 뽑아 쓰면 돼요.

저 어릴 때에는 암산 대회, 주산 대회를 하고 그랬는데, 요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냥 전자계산기를 갖다 놓고 꾹꾹 눌러서 얼른 계산하잖아요.

옛날에는 수학을 잘 하려면 셈본을 잘 해야 되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셈본이 뭐가 필요해요? 단추만 누르면 되는데요.

그동안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것은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였지만 이제 지식은 필요 없어요.

아이패드에 검색만 하면 됩니다.

내가 그동안 소중히 여겼던 지식도 아주 쓸모가 없어지고,

내가 전에 쓸모없다고 했던 것이 쓸모있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와 창조입니다.

즉, 어떤 것을 해결 할 능력입니다.

그런 쪽으로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으니까 한국 사람들이

이 새로운 시대에 창조력을 발휘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무조건 변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은 현실에 딛고 있되, 사고는 멀리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린 공간에서 살아야 해요. 무엇 때문에 남이 만들어 놓은 카테고리 안에서 갖혀서 삽니까?

여기 이 물건을 보고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죠?

예술가는 ‘이것은 누가 만들었지?’ 하고, 또 과학자는 ‘저것은 뭘로 만들었지?’하며

소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걸 뭘로 써먹지? 물컵으로 할까 커피잔으로 할까?’ 하는 실용주의자가 있고,

‘저건 어떻게 움직이지?’ 하고 원리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걸 다 봐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걸 누가 만들었지?’ 하나만 옳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주 묻는 게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누가 창조했습니까?”

오직 이 한 생각밖에 생각할 줄 몰라요. 그것은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누가 만들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떻게 움직이지?’ 라고 생각 할 수도 있고,

‘뭘로 만들어졌지?’, ‘뭘로 써먹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중 하나만 생각해요.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딱 틀에 묶여있는데 이것을 풀어야 해요.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들으면 내 만큼 밖에 성장을 못해요.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들어야 부처님도 될 수 있고 예수님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부모 말을 다 들었어요? 안 들었지요.

아이가 내 말을 안 들으면 ‘저게 부처가 되려고 그러나’ 하고 좋게 생각하세요. (청중들 웃음)









너무 갇힌 공간에서 자기의 좁은 소견과 경험을 가지고 세상을 재단하려고 하니까

세상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조금 넓은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 안 돼요. 지금 여러분들은 행복한 겁니다.

행복하려고 노력하다가 내일 죽어버리면 얼마나 불행해요?

오늘까지 행복을 만끽하고, 내일 죽으면 ‘아, 잘 살았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디 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행복하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생활이 행복하고,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고,

이렇게 지금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알았죠? 감사합니다.
댓글 : 4 개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언제나 잘 보고갑니다
캬............진짜 한구절 한구절이....감탄사밖에 안나오는듯.
크아 마음에 힐링을 얻고 갑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참 와닿는게 많네요. 결국 중요한건 자신의 마음...ㅠㅠ 인데 잘 안되지..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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