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륜스님 [글]] 즉문즉설 '20년만에 고백'2015.03.20 PM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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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가장 천한 계급은 직업을 가질수 없습니다.

그 계급의 무리는 구걸로 생명을 이어 나갔는데요.

사는 곳은 둥게스와리라는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20년전 학교를 지어 아이들이 자라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들에게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윤리와 도덕적은 측면에서만 항상 이야기를 해오셨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붓다 담마에 대해 이해를 해야 JTS의 활동 원칙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붓다 담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의 모임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인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에 이곳 둥게스와리는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이곳이 수행하기 적당하다 생각하시고 이곳에서 6년간 정진을 하셨습니다.

밥도 안 먹고 하루에 대추 한알씩 드시기도 했어요.

이 동네에 대추 많이 있죠? 여러분들도 많이 주워서 먹었죠?"








"네"








"그러니 여러분들도 부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처럼 조금 먹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아직 부처가 못 되고 있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이런 고생상의 모습이 되도록 수행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를 못하니까 왜 깨닫지를 못하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어요.

출가하기 전에는 욕구를 쫓아 갔습니다.

여러분들도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 기분이 좋지요?

그것으로 행복을 삼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요? 욕망이 더 커져요? 그래서 욕망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돈이 1락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1락이 생기면 그것으로 만족이 될까요? 이렇게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그렇게 치면 한국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은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괴롭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것이 길이 아니다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물질적 풍요를 누려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길이 아닌 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출가를 하고 나서는 욕구를 무조건 억압을 한 것입니다.

먹는 것도 포기하고, 자는 것도 포기하고 목욕도 안 했어요.

이렇게 고행을 하시다가 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정반대이지만

사실은 이것도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발견하십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모두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이해하세요? (네)

세상에는 이 두가지 길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이 두 길은 결국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아요.

이 두 길이 아닌 제 3의 길은 무엇일까요? (모르겠어요)









이 제3의 길을 바로 이곳에서 발견하신 겁니다.

그것은 붓다가 이 세상에서 처음 발견한 길입니다.

이 길은 욕구에 반응하지 않는 길이예요.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즉, 지금 다리가 아프다면 첫 번째 길은 다리를 펴는 거예요.

두 번째 길은 참는 거예요.

이 둘을 떠난 제3의 길은 그냥 ‘다리가 아프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긴장하는 것이 아니고 ‘통증이 있구나’ 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6년간 수행하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은 정말 중요한 곳입니다. 보드가야에서는 100일 계셨고, 이곳은 6년 계셨어요.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한번 봅시다.

당시는 노예제 사회였어요.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심부름하는 노예가 있다는 것이죠.

말을 모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옷 입혀주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고,

음식 만드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죠.

만약 왕이라면 종이 10명이든 30명이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한 뒤에,

또 부처님이 되신 뒤에 종을 데리고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당시에 집을 지어서 살았다면 누군가 밥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 없이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해요?

밥은 남의 집에 가서 얻어 먹고, 옷은 시체 싸던 것을 주워서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요.

그러면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게 부처님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가 없는 삶을 사셨어요.

부처님 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자가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절은 어떻습니까? 절에 밥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운전해주는 사람도 있어야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그러면 그 사람들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님들이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사장입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해야 합니까?

여러분과 저의 관계에서 저는 여러분의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붓다 담마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들의 스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장을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 스승이 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








“스승이 되기 위해서요.”








“그런데 저는 지금 여기서 사장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고민이예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스승이 되고 싶지 사장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모두 저한테 돈을 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사장이 되어야 하잖아요.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잖아요.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 되고 싶고,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고,

이 사이에 간격이 자꾸 생겨요. 이해하시겠어요?”








“이해하는데 이해 안하고 싶어요.” (웃음)









“그런데 저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장이 아니고 스승이예요.

왜냐하면 서로 돈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예요. 모두 다 수행자예요.

수행자로써 역할이 분담되어 있을 뿐이예요.

부처님이 나이가 많을 때 아난존자가 옆에서 도왔죠?

그런데 종으로써 도왔어요? 월급 받고 도왔어요? 아닙니다.

그것은 수행자로써 역할을 분담한 것이예요.

우리는 지금 수행자로써

어떤 사람은 운전하고 어떤 사람은 밥을 하고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것이예요.

이것을 현대식으로 말하면 모두가 다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도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모순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모순은 계속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수행자로서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저의 고민이예요.

둥게스와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도 아니고 저의 친척들도 아니고

저의 자식들도 아니고 불교신자도 아니예요.

그러나 저는 둥게스와리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집을 보면 어떻게 집을 개선해야 할까, 물은 어떻게 더 확보할까,

골목은 어떻게 정비해야 할까, 먹고 살 수 있는 수입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서로 협력하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마을에 살면서도 이런 생각을 안해요.

학교 안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공부 못하는 아이를 보면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학용품이든 교복이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러분들에게는 이 아이들이 다 여러분의 마을 아이들이잖아요.

다 인도 사람이고. 같은 둥게스와리 마을에 살고 있고, 우리 친척의 아들인데...

어떻게 하면 서로 힘을 합해서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좀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조금만 더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하면 좋은 방법이 많이 있는데

전부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제가 붓다 담마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붓다 담마에 기초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노동자를 고용하면 안돼요.

그것은 부처님 당시에 노예를 데리고 상가를 구성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급을 주고 받는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닌 우리가 같이

이 마을을 좋도록 만드는 같은 활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현실은 이해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것만 하다가 죽어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우리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님은 악덕 기업주가 아니라 좋은 스승이 될 수 있고,

좋은 스폰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 좋은 사장은 될 수 있지만,

좋은 스승은 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은 사장이 필요하지 스승은 필요 없죠?” (웃음)








“저희들은 둘 다 필요해요.”








“오늘 스님이 갖고 있었던 20년 동안의 고민을 처음 이야기 했어요.

왜 오늘에서야 이야기하느냐?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너무 어렸어요.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었어요.

이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노동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을을 변화시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학교를 운영하든, 유치원을 운영하든, 병원을 운영하든, 마을개발을 하든,

스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을을 가꾼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정말 내 일이다’ 생각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일을 해도 지치지가 않아요.

그래서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듭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너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물으면 “둥게스와리에서 왔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둥게스와리’라는 말 뜻이 원래는 ‘부정한 곳’이잖아요.

그러나 부처님이 이곳에서 6년간 수행함으로 해서 성스러운 곳이 되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천민들이 가난하게 살다보니 다시 나쁜 마을이 되었단 말이예요.

바깥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이곳에 가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JTS가 들어오고 나서 위험한 것도 많이 없어졌잖아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설성봉님 같은 분의 희생이 있었어요.

설성봉님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치안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누군가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들 동네 버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둥게스와리를 자랑스럽게 한번 만들어 봅시다.”









스님의 호소에 인도인 교사들은 모두 “Yes!” 라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인도인 교사들의 눈빛은 더욱더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려 4시간 30분 동안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그리고 통역을 해준 쁘리앙카님에게 모두들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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