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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글]] 즉문즉설 '고백을 못하겠습니다.'2015.09.19 PM 11:09
건축공학과 석사 과정에 다니고 있는 한 남학생은 밤늦게 걷다 보면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의문이 드는데
스님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지 물었고,
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남학생은 1학년 때는 무엇을 하든 항상 행복했지만
군대 다녀와서 걱정이 많아지면서 친구가 같이 밥 먹자고 해도 귀찮아져서 고민이라고 물었고,
경제학부에 다니는 남학생은 대통령님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로 통일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려주고 경제적 이익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속마음을 표현하자니 문제가 생길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속병을 앓을 것 같아 고민인 친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개인적인 고민을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평소에 고민이나 문제가 있으면 말로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는 스타일입니다.
계속 가만히 속에 품고만 있자니 속병이 날 것 같고,
이야기를 하자니 상대방이 어떻게 들을지 알 수 없어 걱정됩니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내 이야기를 상대가 받아들여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이야기를 잘 못하는 거잖아요.
받아들여 줄지 안 받아들여줄지 모르겠다는 거죠?
네.
그런데 왜 내 이야기를 상대방이 받아줘야 해요?(청중들 웃음)
제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니까...
질문자 말은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받아들여줘야 된다는 것 아니에요? (청중 웃음)
아니죠. 제가 말을 안 하고 참는다면 안 생길 문제를 굳이 꺼내서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을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알겠어요.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좋아한다’는 말을 안 하면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안 생겨요.
그런데 내가 좋아한다고 표현했는데 상대가 ‘어, 나는 너 싫어’라고 하면
오히려 친구도 못 되는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괜히 말 꺼내서 친구도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는 걱정 아니에요?
쉽게 예를 들어 이야기하자면 그렇죠?
네.
내가 ‘널 좋아한다’고 할 때 상대에게는 ‘나도 널 좋아한다’고 해줄 의무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질문자는 그걸 강제해요? (질문자 웃음)
‘나, 너 좋아한다’ 하면 상대도 ‘날 좋아한다’는 말을 할지 말지 몰라서 말을 못하고 고민하는 거잖아요.
내가 원하는 걸 상대가 들어주면 좋은 것이고, 안 들어주면 나쁜 것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확신을 못해서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생각을 버리라는 겁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달라요.
나는 상대를 좋아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고,
저 사람이 날 좋다 하지만 나는 싫을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데 마침 상대도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나도 상대도 서로 싫어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네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그냥 속으로만 좋아하고 표현을 안 하는 방법도 있죠.
이건 부작용이 없는 대신에, 이럴 때는 ‘나 혼자 좋아해도 좋은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설악산에 가면 좋지요? 꽃을 보면 좋지요? 내가 좋아서 ‘설악산이 좋다’, ‘꽃이 좋다’ 하면
산이며 꽃이 ‘나도 좋아’ 이래요? (청중들 웃음)
아니요.
그래요. 나 혼자 좋아하면 내가 좋은 거예요.
그 사람을 내가 좋아하면 내가 좋은 것이니 굳이 표현할 이유가 없어요.
산이나 꽃을 좋아해도 되는 것과 같죠.
그런데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는 어때요?
상대는 나를 좋아하든 않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니까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에요.
내가 ‘좋아한다’ 했는데 상대가 ‘나는 너 싫어’ 이러면 ‘알았다’ 하고 끝이죠 뭐. (청중들 웃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다면 상황이 달라져요.
처음에는 그냥 혼자 좋아만 해도 되었지만 이제 의사를 표명해서 답을 들었어요.
상대가 싫다 하는데도 나는 좋다면 어때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생겼잖아요.
그러면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노력을 좀 해야 할까요?
노력을 해야겠죠.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노력하기 싫다는 이야기예요. 공짜로 먹으려는 거예요. (청중들 웃음)
말을 해서 답을 들었으면 상대의 마음이 확인됐으니까 오히려 훨씬 일이 쉬워진 셈이에요.
‘아, 이건 노력을 해야 하는 문제구나’ 하고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면 선물을 사가든지 밥을 사주든지 해야하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불편해하면 약간 떨어져주고,
너무 멀어진다 싶으면 조금 가까이 가주고,
이렇게 실험을 자꾸 해서 상대가 나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과제에 힘써야지요.
그 과제는 노력한다고 반드시 되는 건 아닙니다.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노력하면 안 하는 것보다는 될 확률이 높아져요.
행여 안 됐다 하더라도 연습을 좀 해봤으니까 다음에 다른 여자가 또 좋아졌을 때는
연습 안 해본 사람보다 훨씬 요령이 많이 있어서 유리하잖아요.
자기 의사를 표현 안 해도 됩니다. 표현 안 한다고 괴로워할 이유는 없어요.
그렇다고 그걸 굳이 참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으면 이야기해버리세요.
이야기해서 나타나는 현상은 상대의 뜻을 확인하는 것뿐이니
실제로 나에게는 아무 손실이 없어요.
그런데도 손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가 들어줘야 한다는 독재근성 때문이에요.
그건 노력 않고 공짜로 먹으려는 거예요.
젊은 사람이 벌써 심보가 그러면 어떡해요? (청중들 웃음)
독재근성도 나쁘고, 노력 않고 먹으려는 심보도 나빠요.
좋으면 좋다고 표현을 빨리 하는 편이 좋아요.
확인 작업을 해놓아야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기가 수월하잖아요.
다시 말해 더 노력할 건지 노력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만둘 건지 정해서 움직이는 겁니다.
공짜면 몰라도 노력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면 되고,
그래도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다면 노력을 해야죠.
그러면 반드시 되는 것만은 아니라도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연구를 많이 하며 노력하면 당장은 실패하더라도
다음번에는 경험이 많이 쌓여 더 유리해진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자세를 안 가지면 실패하고 난 다음에 다시 다른 여자가 좋아져도 말을 못 해요.
지난번에 한번 고백했다가 차였기 때문에요.
그러면 끙끙 앓다가 이것이 트라우마, 즉 상처가 됩니다.
과거의 경험을 상처로 간직해야 할까요? 유용한 경험으로 간직해야 할까요?
뭐든지 경험으로 간직하면 자산이 되고, 상처로 간직하면 빚이 됩니다.
실패를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뭐든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잘 해도 되고 못 해도 됩니다.
인생에는 성패가 없어요.
그걸 경험으로 간직하면 무조건 자산이 되고,
상처로 간직하면 계속 부정적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환하게 웃자 청중들도 큰 박수로 공감하며 격려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너도 날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재성이
속마음을 가볍게 표현하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들으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면서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밑에서 부턴 법륜스님, 김제동이 청춘콘서트에서 한 말들입니다.
이어서 김제동씨가 무대로 걸어나오자 청년들은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기뻐했습니다.
김제동씨는 60분 동안 최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아주 재미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면서 쉴 새 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에는 청년들이 통일 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해 주어 청년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세대적 자부심 같은 것이 있다면
개개인의 고민들도 그 안에서 녹여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이 땅의 50대, 60대, 70대인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은
이 땅의 산업화를 이루어냈다는 자부심이 있고, 이 땅의 40대, 50대인
우리 선배들에게는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10대, 20대에게는 그런 세대적 자부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10대, 20대의 문제가 아니라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10대, 20대는 통일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통일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10대, 20대 청년들의 미래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일본으로 밀항하는 영화만 만들 필요가 없어요.
이제 통일이 되면 대륙으로 도망가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청중들 웃음)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맨날 동네 선술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평양에 가서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다 보면
부부싸움도 자연히 멈출 수 있습니다. (청중들 웃음)
그리고 여러분의 자식 세대는 수학여행을 더 이상 경주나 제주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KTX를 타고 평양, 신의주, 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럽으로
열차 수학여행을 가는 시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청중들 박수)
‘통일해봤자 우리는 뭐가 좋냐’고 하지만 결국은 여러분들에게 가장 좋은 시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세대가 되는 순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사회자가 “오늘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청년들은 또다시 답답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며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했습니다.
김제동씨 이야기 중에서 세대적 자부심이라는 말을 했는데,
우리 개인에게는 뭔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할 때 성공 자부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개인의 성공 자부심은 때로는 위험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일제 시대에 시골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소학교에서 공부를 1등 했어요.
그래서 좋은 중학교를 갔는데 중학교에서도 1등을 하고,
명문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갔어요.
그래서 대학 졸업 전에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검사가 되었단 말이에요.
스물 서넛에 검사가 되고 30세에 지방 검사장이 되어 출세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광복이 되었어요. 그러자 갑자기 친일파가 되었어요.
그래서 잡혀가고 재산도 몰수당했어요. 한마디로 매국노가 된 것이죠.
그런데 이 사람이 뭘 잘못했어요? 남을 때려죽였어요? 남의 돈을 빼앗았어요?
성추행 했어요? 욕설하고 거짓말했어요? 술 마시고 주정을 했어요?
아무런 개인적 잘못이 없는데 왜 매국노라는 큰 죄인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혼자만 사는 게 아닙니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위배되지 않아야 내 행복이 공동체의 이익이 됩니다.
결혼해서 살다가 부인을 두고 예쁜 여자를 만난다면 어때요?
나 하나만 보면 좋지만 가족공동체의 구성원인 집안 전체의 이익과는 반대로 간 거예요.
부모의 돈을 훔쳐가서 막 쓴다면 나는 이익이지만 가족공동체의 입장에서 보면
손해를 끼쳤으니 나쁜 사람이에요.
나의 행복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행복,
나의 이익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행복이 지속되지만,
반대 방향일 때는 지속될 수가 없어요. 그것은 다시 재앙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뭘 잘못했느냐?
민족공동체 전체 구성원이 나아갈 방향과 개인의 성공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서로 안 맞은 거예요.
민족공동체인 2천만, 3천만 구성원들에게 해가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 민족 모두에게 가장 크게 손해를 끼치는 건 일제의 식민 지배였잖아요.
이 공동의 장애인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쪽으로
노력해야 우리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거예요.
이 사람은 자기 개인이 검사로서 출세하는 것이
민족 전체 구성원이 지향하는 방향인 독립으로 가는 길과 반대 방향에 서 있었던 거예요.
전체 구성원이 갖는 과제를 시대적 과제라고 그래요.
이 사람은 개인적 성공은 거두었지만 시대적 과제를 몰랐던 거예요.
농사를 짓든 장사를 하든 공부를 하든 선생을 하든,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 민족 전체 구성원의 시대적 과제는 독립이에요.
그런데 내 개인의 성공 과제가 이 시대적 과제에 역행했기 때문에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겁니다.
개인이 뭘 성공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지속가능한 행복이 되려면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적 과제를 모르면 개인의 성공은 일시적 성공으로 끝날 뿐더러 재앙으로 닥쳐올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뭘까요? 앞으로 30년 지나서 우리 사회를 되돌아봤을 때,
‘우리가 이 시점에서 풀어야만 지속적으로 발전이 되었겠다’ 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통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 살면서 보면 통일은 오히려 시대적 과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본 사람은 1퍼센트도 안 되었어요.
알아도 행동하기가 어려웠어요.
산업화 시대에 일부 사람들이 조국 근대화를 부르짖을 때도 다들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잖아요.
민주화 운동을 두고 당시에는 ‘무모하다, 어디 감히 덤비느냐’고 했지만
지금 보면 역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분단 상태로는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는 분단 상태로도 성장이 가능했기에 굳이 통일 안 하고도 살 수 있었지만,
이제 분단 상태에서는 더 이상 성장은 없습니다.
여기서 안주하고 정체하다 몰락으로 갈 건지,
아니면 여기까지 왔으니 더 나아갈 건지는 우리의 선택이에요.
아까 제동씨가 이야기했지요? 고구려, 발해 멸망 이후 우리 영토는 통일신라로 찌그러들고,
고려 지나서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반도를 회복했어요.
그리고 늘 강대국에게 밀리는 약소국으로 전락했잖아요.
그러나 고구려, 발해 이전에는 동북아의 중심국가였어요.
통일은 천 년의 한이 풀리는 것이고, 천 년의 꿈을 실현하는 가능성을 여는 거예요.
선배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가능성이 지금 우리에게 열려 있습니다.
이 기회를 잡을지, 포기할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이 우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할 건지 선택해야 해요.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자부심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엄마 아빠 세대는 무엇을 했냐고 물을 때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고 물어보면요?
‘증조할아버지 세대는 나라의 독립을 이루었고 할아버지 세대는 조국 근대화를 이루었고
아버지 세대는 민주화를 이루었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 공동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시대의 과제를 우리가 함께 해결할 때
자부심이라고 하는 새로운 행복이 발생합니다.
그런 면에서, 청년들이 너무 개인 문제만 생각하니까 앞이 깜깜하다고 느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삶을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만,
공동체적으로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나라는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말뚝만 박아주면 찍어주고 깃발만 꽂으면 찍어주고 따라가지 말아야 해요.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권을 가져야 합니다.
나라의 통일과 평화,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찍어주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정치적’이라고 한다면 정치는 좋은 거예요.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잖아요.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거예요. 이런 변화를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개인도 노력해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야 하지만,
우리가 힘을 모아 역사의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야
나이 들어 후손들에게 이야기해 줄 때 엄청난 자부심이 생깁니다.
이런 자부심이 없으면 힘들 때 자꾸 좌절하고, 절망하고, 급기야 자살하게 돼요.
꿈을 딱 갖게 되면 꼭 꿈이 실현되어야만 행복이 아니라
그 꿈을 향해서 가는 지금부터가 행복이에요.
그런 행복을 우리 함께 만들어갑시다.
댓글 : 1 개
- 뉴타입추종자
- 2015/09/19 PM 11:58
평범한 찐따는 따라가질 못할 이야기....
연애고, 통일이고 너무 쉽게쉽게 말하시넹
연애고, 통일이고 너무 쉽게쉽게 말하시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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