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륜스님 [글]] 즉문즉설 '법륜스님의하루'2017.06.06 AM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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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용성조사 탄신 153주년 기념법회가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열렸습니다. 

죽림정사는 근대에 한국 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용성조사 탄생성지에 세워진 절입니다.

  

   

스님은 은사이시자 죽림정사의 조실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을 대신하여 탄신일 기념 법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현재 죽림정사의 주지이기도 합니다.

   

 
   

대웅전에 잠시 들려 법당에 모셔진 불상에 삼배를 드린 후, 다례제가 진행될 교육관으로 향했습니다. 

교육관에서는 용성조사에 앞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부촉 받아 법맥을 이어온 

역대 조사님들께 제를 올리는 다례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용성조사께서 이 땅에 불법을 새롭게 일으키기에 앞서 많은 스승님들과 선지식들의 공로가 있었음을 기념하여 

죽림정사에서는 매 행사마다 함께 다례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교육관 내부의 세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역대의 스승님들께 제를 올린 후, 
 
용성조사 탄신 기념법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애국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후에 
 
죽림정사 사무국장 정광님이 용성조사님의 일생을 정리한 행장을 낭독했습니다. 

이후 내빈소개와 온 겨레의 노래를 제창한 후, 법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용성조사님의 탄생 당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 시대적 상황 속의 한 개인으로서 용성조사의 삶의 의미를 풀어주었습니다.

 

 

  

“용성조사는 세수로 77세를 사셨는데 그 살았던 세월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소위 근대라고 불리우는 시기였습니다. 

그 분의 삶의 전반기는 조선 왕조가 몰락하면서 나라가 점점 기울어져가고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지는 어려운 시기였고, 

삶의 후반기는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고 일제의 억압에 백성들이 고통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제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한 몸 겨우 건사한다 하더라도 제 가족을 건사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기도 하고, 병들어 죽기도 하고, 

살기 위해서 고국을 떠나 만주나 연해주나 

심지어는 일본 아니면 하와이, 멕시코, 쿠바까지 가는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먼저 자신의 삶을 괴로움 없는 삶으로 스스로 건사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입니다. 

또 조선조 500년 동안 승유억불로 불교가 탄압을 받아서 불교가 이름만 남아있을 뿐이지 

거의 궤멸 당하다시피 한 시기에 불교를 새로이 일으켜 세운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분께서는 한 가지도 아니고 그 두 가지를 다 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과가 얼마나 낫느냐 보다 

그 분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노력을 했느냐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용성조사는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1910년 나라가 일제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서울인 한성 내의 민간 주택을 구입하여 법당을 여셨습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도성 내에 승려의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절은 서울시내 1호 법당인 셈입니다. 

이후 용성조사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처음으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또 그동안 재가자는 수행하는 길이 끊겼던 것을 복원하여 

일생 동안 3만 여 명의 재가자들에게 삼귀의 오계를 수계하여 불법의 인연을 맺어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풍금을 직접 연주하시면서 찬불가를 만들고 

어린이 법회를 운영하시는 등 불교를 대중들에게 쉽게 전파하는데 힘쓰셨습니다.


 

  

 또한 용성조사는 출가 승려들이 신도들의 보시에만 의존하던 전통을 넘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수행하는 ‘선농일치’를 제창하여 근대 불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끊겼던 불교의 율맥을 정립하고 5대 수행을 주창하시는 등 불교의 지성화를 추구하셨습니다.

용성조사는 불교의 중흥을 넘어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도 힘쓰셨습니다. 

용성조사에 대한 일제의 감시가 심했던 터라 주로 후원금을 모아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셨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윤봉길 의사 같은 분을 양성해 수계를 하시고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3.1운동을 주도하실 때, 잃어버린 나라를 단순히 되찾는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닌, 국민들이 주인인 나라인 

‘대한민국’을 새로 건립해야 한다고 선도하신 분이 바로 용성조사이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불자로서 우리가 불법을 만나게 된 근본 뿌리가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용성조사로부터 온 것이고, 

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갖게 된 것도 용성조사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3.1운동 때 많은 사람들이 ‘대한제국 부흥 운동이라고 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라를 되찾으려 할 때, 

임금이나 임금의 후손은 아무도 참가를 안 하고 일반 백성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라를 되찾으면 대한 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해임시정부도 대한제국 부흥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했습니다.

이 정신을 계승한다면, 독립은 현재 미완성입니다. 

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뜻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용성조사의 뜻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이어나갈 뿐만 아니라 평화 통일 운동도 하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정토회는 왜 자꾸 사회 운동을 하냐?’ 라고 말하는데,

이런 분들은 정토회의 창립 취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중 웃음)

  

  
 
여기는 새로운 불교 운동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독립을 위하는 정신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정토회 창립 선언문에는 불교 중흥과 민족 중흥이 함께 적혀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은 정토회의 뿌리인 곳입니다. 
 
또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인도하신 분이 용성진종조사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뿌리가 여기에 있으므로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다 이 곳을 한 번씩 방문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탄신 기념제만 하는 게 아니라 탄생을 기념해서 바른 불교를 해야 합니다, 
 
부처님 법에 따라 수행 정진해서 해탈 열반을 증득하는 불교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불교를 해야 하고, 
 
생활과 유리 되지 않은 생활 불교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역대 조사님들을 계승하고, 미래에도 계승해나갈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또 나라를 잃어버렸을 때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 힘쓰신 분들을 생각하며 시민으로서 각성을 해야 합니다. 
 
시민으로서 각성이 안 된 사람은 용성의 문하에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모두 웃음)
 
그러니 여러분들은 
 
첫째,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 나아가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의식을 늘 가져야 합니다. 
 
둘째, ‘우리나라가 좀 더 공정해지고 민주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의식을 늘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건국 목표가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주발전 이 두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서 용성조사 탄생 153주년을 이곳에서 기념하는 것입니다.” 
 
 
 
 
 
용성조사님의 일대기에 대한 스님의 법문에 이어서 대중들이 자신의 고민을 묻는 즉문즉설이 잠시 진행됐습니다.

전북 장수를 떠난 차량은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경주 남산에는 ‘천룡사지’라는 옛 사찰 터가 있는데, 

죽림정사 조실이신 불심도문 큰스님이 오늘 이곳에서 행사를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경주 남산 어느 자락에 도착하자 그곳에 지프 차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천룡사지로 올라가는 산길은 경사가 있는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기 때문에 차를 바꿔 타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올라갔습니다.

   

 
  
10분 정도 거친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탁 트인 곳이 나타나면서 목조 건물 몇 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건물 안에 기다리고 계신 불심도문 큰스님을 뵙고 삼배로 인사드렸습니다.

  

 
 
 불심도문 큰스님은 “바쁜 가운데 와주어서 고맙다” 는 말씀을 하신 뒤 
 
천룡사지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옛날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의 침공을 받게 되자, 

신라의 고승들은 문두루 비법을 행해 바다를 건너오는 당나라 수군들을 침몰시켰다고 합니다. 

이후 중국 사람이 이 땅에 와서 천룡사지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바로 이 절이 있기 때문에 문두루 비법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합니다. 

이후 신라의 국운이 쇠하면서 천룡사 또한 쇠하였고, 

이어서 고려가 세워지면서 천룡사도 다시 중창되었습니다.

이처럼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천룡사는 나라와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불심도문 큰스님은 “일제로부터 민족이 해방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운 

이 시대에 나라의 국운을 위해 다시 천룡사를 중창하는 것이 필요하다” 며 

법륜스님이 이 일에 힘써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스님은 은사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잘 알겠습니다” 며 인사를 드린 뒤 

저녁 강연이 기다리고 있는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강연은 부산진 고등학교에서 열렸습니다.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위해 정기적으로 외부인 초청 강연을 열고 있는 부산진 고등학교는 

이번에 철학 분야의 명사로 법륜 스님을 초청하였습니다.

  

 
  

스님은 강연 전 교장실에서 잠시 교사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인사 말씀을 나눈 후 강연이 열리는 대강당으로 올라갔습니다.

170명 정도의 학생들과 70여 명의 교사, 학부모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간단한 인사말을 한 후 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하였습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오늘은 그 중 스님과 학생들 사이에 가장 활발히 문답이 진행됐던 질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 질문은 친구에 관한 것입니다. 

올해 2학년 올라와서 알게 된 친구인데, 공부도 잘 하고 착해서 학기 초에는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약간 잘난 척도 하고 나대기도 하고 무례한 행동을 계속 해서 정이 떨어지더라고요.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가 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여전히 장난도 치고 친근하게 대하는데 저는 좀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그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여기 마이크와 물병과 컵이 있죠? 물병을 기준으로 물어볼게요. 

이 물병은 마이크보다 커요, 작아요?” 

 

 

“작습니다.” 

 

 
 
“컵보다는 커요, 작아요?”

 

 

“큽니다.” 

 

 

“그러면 이 물병은 커요, 작아요?” 

 

 

“적당합니다.” (청중 웃음)

  

 

“다시 물어볼게요. 질문을 잘 들어보세요. 이 물병은 큽니까, 작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에게 물어볼게요. 이야기할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손을 들고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1) “그 물병은 비교하는 대상에 따라 크기가 달라집니다.(학생들 감탄) 크면서도 작고, 
작으면서도 크고... 둘 다 맞는 것 같습니다.”

(학생2) “마이크보다 작고, 컵보다 큽니다.”

(학생3) “그 물병은 비교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순 있겠지만, 그 물병 자기 자신만을 나타낼 때는 

그 물병이 자기 세계를 전부 다 차지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4) “물병의 크기는 보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웃음)

(학생5) “그 물병은 작습니다. 저보다 작기 때문입니다.”

(학생6) “알 수 없습니다. 마이크랑 물병을 비교하면 높이 면에서는 확실히 물병이 클 수 있는데, 

부피 면에서는 알 수가 없고, 마찬가지로 컵과 비교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학생7) “작습니다. 제가 보기에 작습니다.” (청중 웃음)

(학생8) “큰 것 같습니다. 물이 많이 들어 있으니까요.”

(학생9) “그 물병은 크지도 작지도 않습니다. 비교 대상이 없어서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중 감탄)

 

  

다시 스님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와, 스님이 말하기도 전에 앞으로 막 가버렸어요. 다시 질문자에게 물어볼게요. 

질문자는 스님의 질문과 친구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뭘 느꼈어요?”

 

 

“친구들마다 생각이 다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질문에 제일 합당해 보이는 답이 어떤 답일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큽니다’, 어떤 사람은 ‘작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습니다’ 라고 했어요.”

 

  

“저는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중 웃음)

 

  

“이 물병을 두고 ‘이것은 크다’ 혹은 ‘이것은 작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이 물병 자체는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인식을 할 때 크거나 작다고 인식하는 겁니다. 

즉, 크다, 작다는 것은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식에 있는 거예요. 

마이크와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작다고 인식이 되고, 컵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크다고 인식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크다는 것이나 작다는 것은 존재 자체에 있는 거예요, 나의 인식에 있는 거예요?

 

  

“나의 인식에 있는 겁니다.” (청중 대답)

 

  

“모든 존재는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고, 

새 것이라 할 수도 없고 헌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좋다 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할 수도 없어요. 

모든 존재는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그런데 인식하는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크게도 인식되고 작게도 인식되고, 

새 것으로도 인식되고 헌 것으로도 인식되고, 좋게도 인식되고 나쁘게도 인식되는 거예요. 

그러면 질문자가 말한 친구는 좋은 친구예요, 나쁜 친구예요?

  

 

“...나쁜 친구 같습니다.” (청중 웃음)

 

 
 
“그 친구가 나쁜 놈이에요, 내가 생각하기에 나쁘다고 인식하는 거예요?”

 

 

“나쁘다고 인식하는 거요.”

 

 

“그러면 그 친구 자체는 좋은 학생이에요, 나쁜 학생이에요?”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좋은 학생도 아니고 나쁜 학생도 아닌 거예요?”

 

  

“좋은 학생도 아니고 나쁜 학생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그냥 자기 나름대로 말하고, 자기 나름대로 행동하고, 

자기 나름대로 공부하는데, 내가 보기에 ‘저 자식, 잘난 척하네’ 이렇게 인식이 되는 걸까요, 

그 친구가 진짜로 잘난 척하는 걸까요?”

 

 

“제가 인식을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친구는 잘난 척을 한 거예요, 그냥 자기 나름대로 산 거예요?”

 

  

“자기 나름대로 산 거예요.”

 

  

“내가 보기에 잘난 척해 보인 거죠?”

 

  

“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됐어요, 안 됐어요?”

  

 

“완벽하게 해결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여기 있는 우리는 누구도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고,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 나하고 관계 맺어서 내 인식 상에서는 크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작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좋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나쁘게 보이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지 존재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 앞으로는 좋거나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보는 게 제일 좋아요.

‘말이 많은 건 나쁘다’ 이렇게 말할 수 없어요. 

그냥 ‘저 사람은 말이 많구나’, ‘쟤는 공부를 잘 하는구나’ 이렇게 보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내가 잘났다’ 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고, ‘내가 못났다’ 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모든 존재는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이게 진실이에요.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되면 우월의식도 내려놓아야 하고 열등의식도 내려놔야 해요. 

이 세상 어떤 존재도 우월한 것도 없고 열등한 것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영어니 수학이니 

이런 몇 가지를 기준으로 삼아서 성적을 매기면 거기에 따라 등수가 나오겠죠.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한문을 많이 알고 시를 잘 쓰고 글씨를 잘 쓰면 과거에 급제했어요.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조선 시대 기준에 따라 등수를 매기느냐,

지금 영어 수학 갖고 등수를 매기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리 나올 거예요. 

지금의 등수라는 것은 비교할 수 있는 수천가지 중에서 몇 가지를 기준으로 선택한 거예요. 

그렇게 등수를 매기다 보니까 ‘쟤는 공부 잘하고, 얘는 못하고’ 

이렇게 되지만 등수 매기는 주제를 바꿔버리면 결과도 바뀌겠죠.

  

 
  

그 상황, 그 시대, 그 시간, 그 조건에서는 서로 비교해서 그 사람이 어떠어떠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그 사람이 우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사람이 열등한 것도 아니에요.”

친구 관계가 틀어져 고민이라는 

고등학생의 평범한 질문을 매개로 스님은 무척 깊이 있는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다양한 학생들과 문답이 오가며 활기찬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좋고 나쁜 친구가 없듯이, 1등과 꼴찌도 따로 없다는 

스님의 말씀이 입시 경쟁 공부에 지쳤을 학생들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후에도 8명의 학생들과 즉문즉설을 가진 스님은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잠시 진행한 후, 

긴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경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경주 통일신라의 여러 유적지에서 정토회 통일의병 제 5차 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내일 소식 또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많은 일들을 하시네요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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