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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글]] 즉문즉설 '예의 없는 손님들 때문에 화나요'2017.11.21 PM 11:38
작은 식당을 운영한지 7년 정도 됐는데,
계산해 보니까 여기서 만난 사람만 10만 명이 넘은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게 참 많습니다.
특히 경우가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점점 화가 치밀어서 그걸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장사를 계속 해야 되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별 표현은 못 해도 속으로는 상당히 화가 나거든요.
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될까요?“경우가 없는 사람은 식당에 안 오면 좋겠다는 거예요?” (모두 웃음)
“예,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볼 때 경우가 없는 사람이 10명 중에 몇 명 꼴이에요?”
“2~3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식당의 매출이 20~30% 줄어도 괜찮아요?” (모두 웃음)
“그건 아니죠.”
“그러니까 질문자가 지금 계산을 잘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경우 있는 손님만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건데, 그건 욕심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매출과 상관없이 식당에 와서 경우 없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어쨌든 손님 10명 중에 2~3명, 즉 20~30%는 경우가 없고, 60~70%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잖아요.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안 좋다’고 하는 건 ‘그런 사람은 안 왔으면 좋겠다’는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안 오면 매출이 평균 20~30%는 줄어든다고 계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매출이 20~30%가 줄어도 좋으니 경우 없는 인간들은 안 왔으면 좋겠다는 건지,
경우 없는 인간들이라도 와서 식당 매출이 올라야 내가 생활할 수가 있다는 건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경우 있는 사람만 골라서 우리 식당으로 오라고 고지할 능력이 안 되잖아요?”
“그렇죠.”
“식당에는 경우가 있는 인간이나 없는 인간들이 섞여서 들어오니까요.
그러니 질문자가 영업을 계속 하려면 ‘그런 인간도 우리 집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화가 덜 납니다.”
“예, 스님 말씀은 맞는데요...”
“그래도 기분은 나쁘다, 이거지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그런 손님을 기분 나빠하면 앞으로 질문자의 사업은 확장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사업이 늘지도 않고, 손님도 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손님에게도 질문자가 ‘우리 식당 밥을 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이 들어야 자꾸 손님이 늘고 사업이 번창할 수 있는 거예요.
안 그러면 늘 수가 없어요.”
‘사업이 안 늘어도 좋으니 저런 인간은 오지 마라’ 하면서 인생을 살 건지,
아니면 경우가 있든 없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그저 우리 식당 밥을 먹고 가기만 해도 좋다’ 라고 여기며 살 건지, 선택을 하세요.
손님이 많다 보면 어떤 인간은 밥값보다 더 주고 가고,
어떤 인간은 밥값을 깎고 가고, 어떤 인간은 떼먹고 갈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제가 미국에서 사업하는 분들을 상담하다 보면 이런 분들이 있어요.
흑인 동네에서 신발 가게를 하는데, 애들이 와서 자꾸 신발을 훔쳐가니 성질이 나서 장사를 못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그럼 백인 동네로 가서 장사하면 될 거 아니냐?’ 그랬더니 ‘거기는 장사가 안 된다’ 라고 하는 거예요.(모두 웃음)
흑인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 이유는 매상이 좋기 때문이고, 백인 동네는 매상이 안 오른다는 거예요.
왜 백인 동네에서는 매상이 안 오를까요?
백인 동네 사람들은 가게에 와서 신발을 7~8번은 신어본 뒤에나 겨우 하나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흑인 동네 사람들은 한 번 신어보고는 돈을 주고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흑인 동네에서 신발이 훨씬 더 잘 팔린다는 겁니다.
다만 흑인 동네에서는 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신발을 훔쳐가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비용까지 계산을 해야 되는 거예요.
‘신발을 평균 몇 켤레나 잃어버리는가?’ 점검해 봐서 한 10% 잃어버린다,
즉 10켤레 중에 1켤레는 잃어버린다면 ‘백인 동네와 흑인 동네의 매상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그리고 한 켤레 당 얼마나 더 받을 수 있는가?’
이걸 계산했을 때, 10%를 그냥 영업 손실로 계산해도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는 게 낫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 10%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든지,
애들이 몰려올 때는 특별히 더 유의를 한다든지 하면 되지,
그런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영업할 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장사하지 말고 벌어놓은 돈을 쓰면서 살아야지, 장사할 수준은 안 되는 거예요.
장사를 하려면 그런 계산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분은 ‘스페니쉬 직원을 몇 명 데리고 있는데, 몇 년째 가르쳐줘도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거예요.
하나를 가르치면 딱 하나만 할 줄 알고, 2개도 할 줄 모르고, 어디 나갔다오면 또 일을 엉뚱하게 해 놓고.
그래서 성질을 내고 욕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원들이 한 번 딱 가르쳐주면 바로 착 알아서 하면 좋겠느냐?’라고 물으니까 ‘그러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럼 한국인들은 한 번 가르쳐 주면 바로 알아서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 한국인들을 데리고 일을 하지 왜 스페니쉬들을 데리고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한국인들은 와서 일을 한 1년쯤 하다가 다 나가버린다’는 거예요.
왜 1년 후에는 다 나가는 걸까요? 1년 정도 있다 보면 일을 다 배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일을 다 배웠는데 왜 남 밑에서 있겠어요? 자기 가게 차려서 돈을 벌지요.
그러니까 스페니쉬들은 10번 가르쳐 줘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없는 수준이니까
우리 가게에서 5년, 10년을 일하는 것 아니에요? (모두 웃음)
한 두 번 가르쳐 주니까 한 번에 착 알아서 하는 수준이라면 자기 가게 차려서 일하지,
뭣 때문에 남의 가게에서 10년 일하겠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 미국까지 가서도 남 밑에서 일하지 않고 사장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미국 사람이 모두 한 번 가르쳐 주면 착 알아서 한다면 한국인이 어떻게 그 먼 데까지 가서 사장을 할 수 있겠어요?
작은 가게에서 종업원을 해야지요.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사실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발전이 없는 직원들은 내버려 두라는 게 아니라 어린 아이들 가르치듯이 차근차근 하나하나 가르쳐주라는 거예요.
‘전에 얘기했잖아!’라고 신경질내지 말고요.
전에 얘기한 건 전에 얘기한 것이고 이 사람은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오늘은 오늘대로 또 설명하고,
내일은 내일대로 또 설명하고, 모레는 모레대로 또 설명해 주라는 거예요.
그렇게 설명하고 그렇게 지켜만 보면 되는데, 그렇게 하기 싫다고 ‘나가라! 내가 할 게!’라고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한국사람들의 그런 생각이 ‘욕심’입니다.
욕심만 가득하다는 겁니다. 결국 한 번 가르쳐주면 다 알아서 하고,
평생 내 밑에서 월급 조금 받고 일만 하라는 거 아니에요?
여기에서 세탁소를 하든 뭘 하든 혼자 하는 건 힘들고,
그렇다고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다 놓으면 늘 사고만 일으키니까,
한국에 있는 동생한테 연락해서 아메리카로 오라고 해서 같이 일하면 거의 싸움으로 끝이 나잖아요?
아무리 동생이라도 제 것 갖고 하고 싶지, 형 밑에서 일하겠어요? 한 1년 일 배울 동안만 그 밑에서 일하는 거지요.
그런데 일 배우다 보면 ‘왜 똑같이 일했는데 형은 많이 가져가고, 나는 조금 주는 것이냐? 내가 일을 다 했는데...
나도 내 가게 차려서 따로 하면 돈 많이 벌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겁니다.
형제가 같이 세탁소를 하다가 그 중 하나가 나가서 또 다른 데에 세탁소 차려서는
단골도 빼앗아 가고 그러다가 원수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한국에서 동생이나 친구를 데리고 올 때는
‘내 밑에서 1년만 일하고 배워서 나중에는 너 혼자 따로 나가서 차려라’ 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오히려 1년 후에 따로 나가서 가게를 차릴 때 장소도 구해 주고 하면 원수가 될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 이게 다 욕심 때문이라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 질문자가 그런 수준의 생각을 갖고 있는데도 장사가 안 망하고 유지되는 걸 보면 복이다 싶어요.
어떻게 장사하는 사람이 스님인 저보다도 계산이 부족할 수가 있어요? (모두 웃음)
장사는 중국인처럼 해야 되는 거예요.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이 영업장에 와서 뭘 어떻게 하든 돈이 되는 일 외에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손님이 식당에 와서 행패를 피우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싶으면 고소하면 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윤리 선생님도 아니고, 그 손님이 학생도 아닌데,
뭘 그렇게 남이 경우에 어긋나는 것까지 고쳐주려고 해요? (모두 웃음)
그 손님은 밥만 먹고 돈만 내고 가면 그만인데요.
그런 것까지 질문자가 신경 쓸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음식점을 하는 사람은 약간 서비스를 해야 장사가 잘 됩니다.
손님이 김치 좀 한 접시 더 달라고 할 때 사장 입장에서 돈이 좀 더 들더라도 기꺼이 내줄 수 있을 때 손님이 오지,
깐깐하게 굴면 손님이 잘 안 옵니다.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건 문제이지만요.
이런 문제는 교육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인과 중국인은 음식 버리는 것이 잘 교정이 안 되죠.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빈그릇운동(음식 버리지 않기 운동)’도 하고 있어요.
장사를 하려면 마음을 약간 여유롭게 가지고, 손님의 취향에도 간섭하면 안 됩니다.
손님들이야 음식을 시켜서 먹고 가든, 안 먹고 가든, 돈만 내고 가면 ‘오케이!’ 해야지,
‘저 인간이 음식을 시켜놓고 먹지도 않고 간다’, ‘밥을 남겨놓고 갔다’,
‘다른 반찬 다 두고 떨어진 반찬 더 달라고 한다’ 하고 시비할 거면 질문자는 장사를 접으세요.”
“예, 제가 자질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예. 자기반성을 좀 해야 돼요.
질문자는 항상 아침마다 ‘손님은 왕이로소이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됩니다.
‘이 손님이 오기 때문에 내가 이 먼 데까지 와서 먹고 산다’ 라고 생각하시고,
조금 무례하게 굴더라도 손님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게 잘 안 되면 질문자는 기도를 해야 돼요.
‘이분들이 있어서 제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야 손님들이 조금 신경질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질문자는 웃으면서 대할 수가 있는 거예요.
한국에서 펜 좀 굴려서 먹고 살만 했는데 괜히 여기 와서 식당을 하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내가 이 나이에 지금 이런 꼬라지를 보고 살아야 되나?’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그런 거예요.
항상 손님이 귀한 줄 알아야 돼요.
그저 우리 가게에 온 분들은 다 귀하다고 생각하고 대접하는 마음을 내면 스트레스를 좀 덜 받을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번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는 어느 분보다도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되어 청중들도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재미있었고, 유익했어요? 진리의 길은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코미디는 재미있고 웃기지만 나갈 때 조금 허전해요.
유익하다는 것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한다는 거예요.
장기적으로 관계가 유지될려면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나는 좋은데 상대가 안좋으면 지속가능하지 않고, 상대는 좋은데 내가 좋지 않는 것도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성인들이 가는 길, 성인들이 가르친 길은 인생에 행복으로 가는 길로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다는 거에요.
편안한 게 행복한 것은 아니예요.
힘들어도 극복하면 행복입니다.
신혼부부가 힘든 것을 극복하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가고 보면 참 행복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민와서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에 초점을 두면 허전할 수 있습니다.
이민생활의 다른 곳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캐나다에서 살아보고, 캐나다 사람하고 결혼해서 살아도 보고,
영어도 해보고, 불어도 해본다, 나는 이런 것도 해본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을 긍적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말도 할 줄 알고, 캐나다 말인 영어도 불어도 할 줄 알고,
한국사람이기도 하고 캐나다사람이기도 하고, 캐나다인이기도 하면서 한국인이기도 하다.
이렇게 제 3의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소중한 존재를 함부로 하는 것은 부모에게도 불효하는 것이예요.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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