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글]] 즉문즉설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사는 방법'2018.07.24 AM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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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 저는 작년 10월 경전반 특강수련 때 스님께 질문을 드렸는데요, 

내 삶의 주인이 돼서 살라는 말씀과 기도문에 있듯이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이 되라는 말씀이 상충되는 것 같다’는 내용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좋은 약을 한꺼번에 많이 먹어도 부작용이 난다’고 하시면서 (모두 웃음) 

‘안타깝지만 탐구를 더 하고 졸업식 때 다시 질문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졸업식 때 다시 질문 드립니다. (모두 웃음)

지금 한 7개월이 지났는데요, 

제가 뭘 모르는지는 알겠는데 해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저는 ‘주인으로 살아가자’ 하는 순간 아상에 사로잡혀서 내 고집을 피우는 것 같고, ‘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의 마음을 내어보자’ 하는 순간 

남의 말에 휘둘리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제자들처럼 스님께서 ‘탁’ 하시면 저도 ‘탁’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모두 웃음) 

제가 어리석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다시 한 번 여쭙고 싶습니다.”

 

 

 

 

“예, 더 탐구하면 더 좋겠는데요. (모두 웃음) 

왜냐하면 탐구를 해야 자기 것이 되지, 들은 건 자기 것이 잘 안 됩니다. 

그러나 첫 번째도 아니고 두 번째 하는 질문이니까 함께 풀어가 보죠.

내가 돈에 집착을 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돈! 돈! 돈!’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돈이 주인이에요, 내가 주인이에요?”

 

 

 

 

“돈이 주인입니다.”

 

 

 

 

“예, 돈이 주인이지요. 그래서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몸이나 영혼까지 팔고 그런단 말이에요.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죽을 각오를 하고 전쟁에도 나가잖아요. 

그렇게 되면 돈이 주인이지, 내가 주인이 아니잖아요. 

이 정도로 내가 돈에 집착을 하면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 내가 떳떳할까요, 아니면 약간 비굴해질까요?”

 

 

 

 

“비굴해집니다.”

 

 

 

 

“예. 그런데 돈이 없는 사람 또는 돈이 나보다 적은 사람을 만나면 어떨까요? 

내가 비굴해질까요? 아니면 약간 교만해질까요?”

 

 

 

 

“교만해집니다.”

 

 

 

 

“예. 그러니까 돈에 집착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나를 기준으로 해서 나보다 돈 많은 사람한테는 비굴해지고, 

나보다 돈이 적은 사람한테는 교만해지는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대중들) 예.”

 

 

 

 

“내가 만약 지위에 좀 욕심이 있어서 ‘장(長) 자 붙은 자리에 좀 올라봤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은 시장이나 도지사 등 자기보다 지위가 좀 높은 사람을 만나면 

그 앞에서 마음이 괜히 비굴해지겠지요. 

그런데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만나면 어떨까요? 자기도 모르게 조금 교만해지겠지요?”



 


“(대중들) 예.”

 

 

 

 

“실제로 심리가 그렇게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비굴과 교만이 정반대 같은데, 이게 같은 거예요. 

비굴과 교만, 이해가 되세요?”

 

 

 

 

“(대중들) 예.”

 

 

 

 

“비굴과 교만은 정반대인데 동일한 거예요. 동전의 양면이에요. 

그러니까 대상에 따라 이렇게 되면 비굴해지고, 저렇게 되면 교만해지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돈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어떨까요?

‘내가 노력해서 밥벌이만 하면 되고, 필요하면 내가 일해서 벌면 되는 거지, 

돈이 많다고 내가 다 쓰는 것도 아니잖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실제 돈이 많아봤자 은행에 넣어놓잖아요. 은행쓰레기통에 담아놓는다고요. (모두 웃음) 

그런데 굳이 은행쓰레기통에 담아놓을 게 뭐 있어요? 

필요하면 일당 받는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 사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먹으면 되지, 

굳이 많아야 할 이유가 없는 거죠. 

또 집은 커서 뭐하겠어요? 청소하기만 힘들지요. 

집이 넓다고 내가 다 차지하고 자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그 중에 작은 방 하나 차지하고 잘 건데, 큰 집이 굳이 필요 없지요. 

큰 방 차지하고 싶으면 문경수련원 대강당에 가서 자면 되잖아요. (모두 웃음) 

거기 방이 얼마나 넓습니까. 180평짜리 방이니까요. (모두 웃음) 

그러니까 자는 거는 몸만 누이면 되고, 시장이 반찬이니까 있는 거 먹으면 되고, 

옷은 더위 피하고, 추위 피하고, 몸만 가리면 되지요. 

옷 잘 입어서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요? 옷을 잘 입으면 나 좋은 일 시켜요, 남 좋은 일 시켜요?”



 


“(대중들) 남 좋은 일이요.”

 

 

 

 

“남 좋은 일만 시켜요. 이해가 되세요? (모두 웃음) 남이 나를 봐주고, 

내 옷을 봐주고 ‘야, 예쁘다’ 하니까 돈은 내가 내고, 남 좋은 일 시키는 거잖아요. (모두 웃음)

그러니까 ‘먹는 건 배 안 굶을 정도면 되고, 입는 건 추위를 피할 정도면 되고, 

자는 데는 잠만 잘 수 있으면 된다.’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 정도 돈은 요즘 얼마든지 벌 수 있어요. 

그럼 필요한데 가서 일하고 벌면 되지, 남한테 부탁할 게 뭐 있어요? 

이런 관점을 갖고 있으면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을 만나도 비굴해질까요?”


 

 

 

“(대중들) 아니요.”

 

 

 

 

“예. ‘돈 많은 건 네 사정인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비굴해질 이유가 없지요. 

나보다 돈이 좀 적다고 해서 그 사람한테 내가 교만할 이유도 없지요.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상관이 없지요. 

그건 노란 옷 입었든 빨간 옷 입었든, 여자든 남자든, 시장이든 일반인이든, 애든 어른이든 따지지 않는 거랑 같아요.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없잖아요. 

똑같이 대하면 되지요. 

이 사람이 가난하니까 불쌍히 여겨서 특별히 대해 주고, 높은 사람이니까 미워하고,

이러라는 게 아니라 똑같이 대하는 거예요. 

평등하게. 

그 사람이 한국 사람이든 중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상관없고,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상관없고, 

검은 옷을 입었든 흰옷을 입었든 상관없이 똑같이 대하면 되는데,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돈 많은 사람한테는 비굴하고, 적은 사람한테는 교만하니까, 

똑같이 대하는 나한테 세상 사람은 뭐라 그럽니까? ‘당당하다’ 그러지요. 

그렇게 표현하지요? 

‘저 사람은 대통령을 만나도 당당하더라.’ 이런 말을 하지요.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나 어린애를 만나도 똑같이 대하면 뭐라 그럴까요? 

‘저 사람은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만났는데 겸손하더라’는 말을 하지요. 

그러니까 ‘내가 겸손해야 된다’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한다고요? ‘당당하다, 겸손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당당하려고’ 하잖아요. 당당하려고 하니까 교만에 빠지는 거예요. 

또 ‘겸손하려고’ 하니까 비굴에 빠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질문자는 돈에 집착해서 ‘돈! 돈! 돈!’ 하면서도 당당하려고 하니까

돈 많은 사람한테는 저절로 비굴해지고, 돈 없는 사람한테는 저절로 교만해지는 모순이 생기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자기가 그 집착을 놓아버리면 사람들을 똑같이 대하게 되니까 저절로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저 사람은 참 당당하더라. 저 사람은 참 겸손하더라.’ 이렇게 말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겸손하려고, 당당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자기가 저절로 주인이 되는 거예요. 

돈에 노예가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가 돈에 집착해서 ‘돈! 돈!’ 하면 돈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돈은 필요하지요. 그런데 ‘돈이 필요 없다. 돈은 마귀다’ 해도 돈의 노예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돈을 보면 도망가야 되고, 돈을 누가 많이 주면 갖다버려야 되니까요. 

그런데 돈이 필요하면 벌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어온다면 보시하기 좋잖아요. 

그걸 굳이 불에다 태울 필요가 있어요? 돈이 무슨 죄가 있다고요?(모두 웃음) 

나는 뭐 높은 지위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직장을 다니다 보면 ‘당신이 부장 맡아라’ 이럴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걸 굳이 안 할 필요가 있어요? 그냥 맡아서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직장에서는 그렇게 맡아서 부장하다가도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가면 동료들과 똑같이 밥 먹고 노는 거예요. 

왜냐하면 ‘부장’은 직장에서 맡은 역할일 뿐이지 ‘나’, 내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같이 친구처럼 놀다가 회사에 오면 맡은 역할은 해야 되니까 부장 노릇을 하는 거죠. 

그런데 회사에서 역할이 부장인데 친구처럼 해 버리면 되나요, 안 되나요? 

그건 부장 역할을 못하는 거예요. 

반대로, 회사에서 부장 역할이라고 밥 먹으러 가서 ‘부장질’ 하면 돼요, 안돼요? (모두 웃음) 안 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교만하거나 비굴해지는 문제가 자꾸 생기는 거예요.

그건 허상입니다. ‘부장’이라는 직책이 역할로 주어졌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역할은 해야 하고, 

그 역할이 끝나면 보통의 사람으로 돌아와야 돼요. 

밥 먹을 때는 부장과 직원이 밥 먹는 게 아니고, 그냥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서 밥을 먹는 거예요. 

관점을 이렇게 딱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을 사는데 항상 당당하고, 겸손한 거예요. 

그래서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거예요. 

‘중생의 요구에 수순한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얘기거든요. 

그리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는 말은 뭐예요? 당당하라는 거지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비굴하게 굴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게 주인이고, 

이 세상 어떤 사람 앞에서도 교만을 떨지 않고 겸손하게 사는 게 뭐예요? 

그게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거예요.”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더 어려워졌어요. (모두 웃음) 

제 질문의 시초가 된 일이 뭐였느냐 하면, 제가 법당을 다닌 뒤에 남편도 법당에 다니고 있는데요.”

 

 

 

 

“남편이 법당에 다니지 말라고 해요?”

 

 

 

 

“그건 아니고요, ‘적절하게 다녀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 하면 되지요.”

 

 

 

 

“그래서 ‘예, 알겠습니다’ 하고 법당에 안 가봤거든요.”

 

 

 

 

“그럼 남편의 노예지요.”

 

 

 

 

“예, 그래서 제가 다시 ‘저는 가야겠습니다’ 하니까 남편이 화를 냈어요.”

 

 

 

 

“그건 질문자가 남편한테 대항을 하는 거지요. 남편을 거역하는 거지요. (모두 웃음) 

남편이 ‘가지 마라’ 하면 ‘예’ 하고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고, 

그래도 질문자가 갈 일이 있으면 가면 되지요. 

갔다 왔을 때 ‘왜 갔냐’고 하면 요구에 수순해서 ‘죄송합니다’ 하면 되고, 

이튿날 가고 싶으면 또 가면 되지요. 질문자는 자기 삶의 주인이니까요. 

남편의 노예가 아닌데 왜 못 가요.”



 


“… (모두 웃음) 오늘 들은 말씀을 탐구해서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모두 박장대소)

 

 

 


“이걸 원리적으로 말씀드려보면, 남편이 가지 마라는 건 남편의 마음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돼요, 안 돼요?”

 

 

 

 

“(대중들) 돼요.”

 

 

 

 

“이해가 되니까 ‘예’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가고 싶으면, 내 인생이니까 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왜 나한테 가지 마라 그래!’ 하는 건 남편의 요구에 수순하지 않는 거예요. 

남편은 질문자가 안 갔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는데, 

질문자는 ‘그 말도, 그렇게 말하지도 말라’고 남의 입을 막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남편한테 대항을 하는 게 되지요. 수순하는 게 아니고요. 

남편이 가지 말라고 하면 그 입장을 이해해서 ‘예’ 하면 되는 거고,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의 노예가 아니니까 가고 싶으면 가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남편이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갔다 왔으니까, 남편 입장에서는 화가 나니까 고함을 지를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입장을 이해하면 ‘죄송합니다’ 하면 되잖아요. (모두 웃음) 

또 ‘내일은 안 갈 거지!’ 하면 이는 ‘안 갔으면 좋겠다’는 거니까 ‘예’ 하면 되지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별로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면 되고,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요.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요?”

 

 



“제가 느끼기에는 ‘예’ 하면 마음으로는 가고 싶은데 입으로만 ‘예’ 하는 거니까 비굴한 것처럼 느껴지고, 

제가 안 간다고 해 놓고 갔다 오니까 남편 입장에서는 제가 교만한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질문자는 거꾸로 하는 거지요.”

 

 

 

 

“스님께서 거꾸로 말씀하셔서요.”(모두 박장대소)



 


“그러니까 질문자는 거꾸로 하니까 노예 역할을 하는 거예요. 

바르게 하면 주인 역할도 하고, 남편한테 수순도 하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저도 20살 초중반에 신라호텔에서 알바하면서 느낀건데 

이상하게 지배인 앞에 가면 잘보이고싶고 약간 비굴해지더군요

아마 직급에 대한 집착 같은게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왜 그럴까 고민 많이 했는데 

저는 요즘 정말 많이 편해졌습니다, 우울증도 그렇고

약을 먹을때도 이건 근본문제를 해결할 답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길만이 해결할 수 있을 꺼라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듭니다

다른분들에게도 강추합니다

댓글 : 1 개
좋은 말씀이네요..교만과 비굴이 결국 같은 것이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나 자신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되었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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