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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글]] 즉문즉설 '잘 나가는 동료들과 자꾸 비교가 돼요'2018.11.15 AM 12:07
이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열등하지 않아요.
장미꽃이 국화꽃보다 우월하지 않듯이
다만 다를 뿐입니다.
저녁 7시부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을 주제로 방송, 영화, 연극 등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이 열렸습니다.
강연을 주최한 <길벗>은 종교와 상관없이 방송, 영화, 공연 예술가들이 모여
마음공부와 봉사를 함께 하는 정토회 내 모임입니다.
2003년, 6명이 모여 시작한 모임에 이제는 백여 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길벗에서는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법륜스님 초청 강연을 열고 있는데요. 어느덧 22번째 강연입니다.
강연이 열린 여의도화재보험협회에는 일찍부터 강연을 준비하는 봉사자들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평소엔 방구석에서 작업만 하던 작가와 무대 뒤의 감독이 오늘은 접수대에서 손님도 맞고 안내도 합니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배우 한지민 씨가 참가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230여 명의 예술인들이 모인 가운데, 7시가 되자 길벗의 대표인 노희경 작가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것 중에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마음공부’라고 생각해요.
오늘 행복이 무엇인지,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공부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노 작가님의 인사말에 이어서 법륜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옛날에 큰 대궐 같은 집이나 왕궁은 들어가려면 문이 많았습니다. ‘열두 대문 집이다’ 이런 말 들어봤어요?
열두 대문이라는 건 정문으로부터 안채까지 들어가려면 중간 문을 열두 개를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 열두 대문을 통과한 뒤에 안채가 있기 때문에 안채에 있는 마나님이나 딸들이 사고 날 일이 없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꼭 사고가 납니다. 사고가 나려면 양반집 신사하고 사고 날까요? 아니에요.
머슴이나 이방인 같은 사람하고 사고가 나요.
그렇게 열두 대문을 지나서 맨 뒤에 안채가 있긴 한데, 뒤 담장 너머가 바로 산이예요.
경복궁이나 자금성을 한 번 가보세요.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맨 뒤에 안채가 있고 그 담장 뒤가 바로 산이나 들판이에요.
그래서 이방인이나 이민족은 뒷문으로 쳐들어 옵니다.
머슴이나 노비는 개구멍으로 들어오고요.
그런데 양반은 의식이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라고 해서
앞으로 들어가는 것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거기까지 들어가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에요.
한 생각 바꾸면 안채가 들어가기 제일 쉬운 곳이에요. (모두 웃음)
행복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안채까지 들어가려면
열두 대문을 통과해야 들어가니까 행복을 얻기가 굉장히 어렵지만,
뒷문으로 들어가려면 바로 들어가요.
그것처럼 한 생각 딱 바꾸면 바로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 노력해서 행복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한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지금 건강을 한번 잃어 보면, 건강한 게 얼마나 행복한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손 한번 다쳐 봐요.
내 손 갖고 밥 떠먹는 것만 해도 엄청난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눈 한번 안 보여 봐요.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됩니다.
다리 다쳐서 휠체어 타고 다녀 봐요.
두 다리가 산에 올라가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옆에 있는 행복을 두고 다들 환상을 쫓으면서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합니다.”
무대에 오른 스님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30여 분간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자, 이렇게 말하니 질문이 다 해결돼서 질문이 없는 것 아니에요?”
라고 하자 청중석에서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오늘은 총 5명이 질문을 할 수 있었는데요.
그중 질문을 하려다 스님의 여는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방송국 PD로 일한 지 올해로 9년째가 됩니다.
옆에서 잘해나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재미없나,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스님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직업이 있다는 것에
그냥 감사하고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고 스스로 결론을 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질문자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스님은 잘했다고 격려하며 조금 더 설명을 붙였습니다.
열등감은 어떻게 비교하느냐의 문제예요.
“잘하는 사람하고 비교하면 끝이 없어요.
질문자가 방송국 PD가 됐다는 것은 PD가 못 된 사람에 비해서는 재능이 있으니까 된 겁니다.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에 속할 만큼 질문자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질문자가 지금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면 백 명 중에 한 명 꼴로
재능이 있을만한 사람하고 자기를 비교하니까 재능이 없어 보이는 거예요.
자꾸 열등의식이 들고 위축이 되는 건 심리적인 문제이지 재능의 문제는 아니에요.
백 명 중에 한 명 있다는 사람, 내가 볼 때 부러워하는
그 사람도 천 명 중에 한 명 있는 사람하고 비교하면
그 사람대로 또 ‘내가 재능이 없나봐’ 이렇게 위축이 됩니다.
질문자는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비교 상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생긴 문제니까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재능이 있어요.
그런데 재능이 얼마만큼 있느냐는 비교 해서 생기는 문제예요.
예를 들어 ‘나는 키가 작다’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원래는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이 따로 없어요.
다 고만고만한데 ‘나는 키가 작다’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비교를 나보다 큰 사람하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크다’ 하면 나보다 작은 사람하고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상대적인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비교하는 게 나한테 유리할까요? 열등의식이 있다는 건
나보다 큰 쪽 하고 비교해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려면 작은 쪽 하고 비교를 해야 해요.
그러면 노력할 것도 없이 금방 열등의식이 사라져요.
반대로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
다시 말해 자기만족에 겨워서 잘난 척하고 좀 건방진 사람은
이 병을 치료하려면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하고 비교해야 해요.
그래야 내가 부족한 줄 압니다.
부족한 줄 알아야 노력하게 됩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것과 내가 열등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전혀 성격이 달라요.
내가 열등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욕심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큰 것하고 비교해서 그걸 공짜로 얻으려다가 안 되니까 열등의식을 갖는 거예요.
반면에 내가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족하니까 그걸 채워야 하잖아요. 여기엔 열등의식이 전혀 없어요.
‘아, 내가 부족하구나. 그러니까 내가 연습을 좀 더 해야 하겠다’ 이렇게 가는 거예요.
반면에 열등의식이 되면 자꾸 죽고 싶다든지, 그만두고 싶다든지, 이렇게 부정적으로 가게 됩니다.
실패했다고 좌절과 절망이 오는 게 아니에요. 좌절과 절망이 오는 건 욕심 때문에 오는 겁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이것을 실패하면 ‘어, 이러니 안 되네. 저래 봐야지’ 하고,
저것을 실패하면 ‘어, 이것도 안 되네. 그러면 또 다르게 해 볼까?’
이렇게 자꾸 연구해서 가기 때문에 괴롭지는 않아요.
욕심이 아니라 원이 있으면 다릅니다.
‘나는 이걸 꼭 하고 싶다’는 원(願)이 있다면 실패할 경우에
계속 방법을 달리 해서 도전을 하기 때문에 능력이 나중에 커집니다.
그래서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나는 재능이 없나 봐’라는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면 그건 욕심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그 치유법은 PD를 지망하지만 취직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질문자는 열에 한 명 꼴로 재능이 있는 사람에 속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가 만약에 여기 안주해 있다면 자기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해요.
부족한 줄 알려면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을 쳐다봐야 해요.
그 사람을 보면서 ‘아, 내가 부족하구나.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하면서 노력하면 됩니다.
목표 지점을 향해 가다가 중간에 ‘언제 목표지점에 가지?
아무리 가도 가도 끝이 없네. 포기할까 봐. 나는 못 가나 봐’
이렇게 좌절하고 절망하는 건 목표 지점에 손쉽게 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이 병을 치유하려면 뒤를 돌아봐야 해요.
뒤를 돌아보면 벌써 멀리 왔어요. 내가 이미 멀리 온 거예요. 나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만하면 됐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즉 안주하는 사람은 앞을 봐야 합니다.
목표점을 봐야 해요. ‘내가 많이 오기는 왔지만 그래도 아직 멀었어.
아직 도달 못한 거야. 더 올라가야 해’ 이렇게 생각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안주할 때는 앞을 보고, 좌절할 때는 뒤를 봐야 해요.
좌절할 때는 취직 못한 사람들을 봐야 하고, 안주할 때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봐야 합니다.
현실은 좋고 나쁜 게 아니에요.
지금 내가 무슨 병이 들었느냐에 따라서 치유법이 다릅니다.
좌절하거나 열등의식이 들었다면 뒤를 돌아보고 ‘나도 괜찮다’ 하는 걸 알아야 하고,
교만해졌다면 목표를 보고 아직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부족한 줄 아는 것과 열등한 것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팔을 하나 못 쓴다면 이게 열등한 걸까요?
열등하다고 인식하면 세상 사람들 보기에 창피해서 죽고 싶어 집니다.
안 그러면 저항심이 생겨서 잘난 인간들을 죽여 버리고 싶어 져요.
열등하다고 여기면 이렇게 자기를 죽이든지 남을 죽이는 쪽으로 가게 돼요.
팔을 하나 못 쓰는 건 단지 불편할 뿐입니다.
팔이 하나 없어서 열등한 게 아니라 팔이 하나 없으니까 불편한 거죠.
불편은 극복의 대상일 뿐이에요.
팔이 없으면 의수를 해 넣거나, 발가락 갖고 밥 먹는 연습을 하는 식으로 대안을 찾으면 돼요.
앞으로 조금 더 있으면 더 좋은 기술이 개발되겠죠.
정상적인 팔처럼 기능할 수 있는 의수를 만들면 됩니다.
육신의 팔은 10킬로그램밖에 못 드는데 비해서 50킬로그램이나 100킬로그램을
거뜬히 들 수 있는 기계의 팔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팔이 곧 나옵니다.
열등한 것과 부족한 것이 다르듯이 열등한 것과 불편한 것도 달라요.
신체장애는 열등한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에요.
장애가 무슨 죄의 과보라거나 전생에 하느님을 안 믿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아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이 말에는 하느님한테 벌 받아서 이렇게 됐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자식을 낳았나’
이것도 장애가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에서 빚어진 거예요.
장애가 차별을 받기 때문에 장애가 마치 죄의 과보인 것처럼 인식이 된 겁니다.
노비라고 차별을 받으니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내가 노비로 태어났나’
이렇게 말하게 되는 거예요.
그 차별이 철폐돼 버리면 이건 아무런 죄의 과보가 아니에요.
모든 존재는 다 소중합니다.
다만 불편할 수 있고 부족할 수는 있지만, 열등한 존재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열등하지 않아요.
이런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것이 딱 알아차려지고 바뀌어야 해요.
일부러 위로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게 진실이라는 거예요.
이게 딱 바뀌어야 여러분들이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어요.
세상에는 우월한 존재도 없고 열등한 존재도 없어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환상이고,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환상입니다.
장미꽃이 국화꽃보다 우월하지 않아요.
다만 다를 뿐이죠. 토끼가 다람쥐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어요. 다를 뿐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누구도 우월한 존재도 없고, 누구도 열등한 존재도 없고,
다만 조금씩 조금씩 다를 뿐이에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자신을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질문자는 이미 알아들었으니까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질문자 들으라고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들으라고 제가 얘기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착 알아들어버렸다니까 됐어요. 웃으면서 일해요.”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는 26살 새내기입니다. 제가 성공할 수 있을지 조바심이 나고 능력 발휘가 잘 안 돼요. 어떻게 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 영화를 전공했는데 연극을 하고 싶습니다. 연극학과를 다시 가야 할까요?
-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스텝들과 잘 소통할 수 있을까요?
- 나이 서른부터 작가 공부를 시작했으나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13년 동안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스님은 과정도 소중히 하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참는 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현재의 즐거움에 빠져서 미래에 손실을 가져오는 것도 어리석은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마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느냐?’라는 질문이 생길 거예요.
그건 스스로 연구를 해보세요. ‘정말 이게 미래의 이익이다’ 하면
참지 말고 현재를 기꺼이 받아들여 보세요. ‘
이게 즐겁지만 미래에 손실이 되겠다’ 하면 아무리 좋아도 손을 탁 놓는 게 필요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연기자도 계시고, 작가님도 계시고, PD님, 제작자님도 많이 계시는데요.
자기 일을 자꾸 힘들게 바라보면서 ‘성공을 위해서 지금 죽을 고비를 견딘다’ 이러지 마세요.
씨 뿌리는 이 과정이 다 자기에게 필요한 과정이에요.
추수에만 목표를 두지 마세요.
‘봄에 꽃구경 다니는 것보다 밭 갈고 씨 뿌리는 게 더 재밌다’,
‘여름에 수영하는 것만 재밌냐? 땀 흘리고 김매는 것도 좋다.
일 끝내고 목욕하면 얼마나 시원하냐’ 이런 자세로 사세요.
가을 추수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지금의 이 과정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설령 태풍이 불고 홍수가 다 논이 다 떠내려가도 후회를 안 하죠.
너무 추수에만 집착하면 논과 밭이 다 떠내려갔을 때
‘이럴 줄 알았으면 올해 농사 안 지을 걸’ 이렇게 후회가 되거든요.
그러니 과정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강연이 끝난 후 오늘 참가하신 분들에게 소감을 들어 보았습니다.
이미 유명한 배우들이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도 있었습니다.
“너무 만족할 줄 모르고 살았어요.
스님 말씀처럼 사지가 있는 게 감사하고, 눈이 있는 게 감사하고,
그냥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그런 건 늘 쉽게 망각해요.
저도 SNS를 통해서 잘난 사람들의 생활을 접하다 보면 진짜 쉽게 열등감에 빠져버리거든요.
열등감이 생길 땐 딱 자각하고 내 소중한 다리를, 눈을 봐야지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순간에도 또 자각을 해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누군가를 보며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열등의식이 생길 때는 뒤를 돌아보며
‘내가 이만큼 왔구나’ 하고, 자만감이 들거나 안주할 때는 앞을 보며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이런 삶의 지침을 얻어서 참 좋았습니다.”
강연이 마친 후 길벗 봉사자 50여 명이 다 함께 스님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내가 사진을 잘 찍는 법을 안다.”며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이 ‘콩나물’하고 말하자 모두들 ‘대가리’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오늘은 고대로 퍼와봤습니다
- AssassiN
- 2018/11/15 AM 05:42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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