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tc] 추억의 '마른하늘에 날벼락'2015.08.17 PM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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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불현듯 생각이 나서...

당시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쪽으로 난 창이 있는 방이 제 방이었는데 이 덕분에 경험한 날벼락 이야기.

어느 여름이었습니다.
모든 복도쪽 창에는 방범용 철창이 있었기에 유리 바깥쪽을 닦기 어려워
전체 아파트 차원에서 소방호스급 파워의 물로 공짜 청소를 하려고 하니 원하는 집은
신청하라는 광고물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집은 통과. 안 한다고 마음 먹었으니 청소를 언제 하는지도 모름.

컴터의 위치는 복도쪽 유리창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창 아래 벽에 모니터와 본체가 딱 붙어 있는 구조.

열심히 뭔가를 하다 살짝 의자에 앉아 살짝 졸았습니다.
꿈인지 생신지 잘 모르겠는데 엄청난 물살이 얼굴을 직격.
눈을 뜨고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막 소리지르면서 창문을 닫았는데
그 몇 초 사이 ...방안은 완전 물바다가 됐습니다.

바닥은 물로 흥건하고, 모니터는 켜져 있던 상태에서 물을 맞았으니 그대로 사망.
본체는 살짝 옆에 있었는데 당시 무슨 부품 테스트하느라 케이스를 열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살이 워낙 세니 신기하게도 본체는 물 한 방울 안 맞았더군요.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그제서야 청소하던 아줌마 셋이
'뭐야? 창문 안 닫혔어?' 뭐 이런 얘기를 나누시고 있던데
상황 파악을 하신 아줌마들 들어와서 물 빼고 닦고 청소하고 (...)일단 나가심.
여기저기 물 튄 것까지 꼼꼼하게 정리하는 데에는 대략 하루 소요.

무척 맑은 일요일 대낮에 단잠을 깨우고 모니터 죽여버린 물폭탄.
진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상황을 이리저리 알아보니 날벼락의 원인은:
1. 당시 경비원 아저씨랑 무척 친했는데 그 아저씨가 신청을 잊은 것 같다고 판단해
   우리집을 넣어줬다는군요.
2. 무척 간단한 '창문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세 명이나 되는 아줌마 중 한 명도 안 함
(대충 봐도 열려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사람의 실수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니
관리실 차원에서 모니터 만이라도 보상을 받았으면 해서 연락 했더니 못해준다고 함.
그래서 무슨 신문고 어쩌고 하는 곳에 민원을 넣었더니
관리실이 경비원 아저씨 쪽으로 책임을 미루더군요.(아줌마들 쪽이 더 문제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냥 됐다고 함.
(잘 쓰던 뷰소닉 모니터에서 다음 모델을 찾기까지 2주 간 모니터를 4회나 교환 & 환불하는 고생은 덤)


몇 년 뒤 아파트 주변을 지나 집으로 걸어가는데
사복을 입은 경비원 아저씨가 인사를 하시더군요.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나이가 차서 그만두게 됐다고 함.
다른 건 몰라도 모니터는 정말 미안하다고 하시네요.
괜찮다고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었는데도...
오래된 일이니 그냥 잊으시라고 했습니다.

인상도 좋고 항상 웃으시고 많이 친절하셨던 분. 지금도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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