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덕밀덕] 전쟁 중이어도 술은 마셔야한다.2011.05.22 PM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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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나의 용감한 병사에게 주기로한 럼은 어디있는가?
 병사들은 갈증을 견뎌가며 자네가 가져다줄 럼을 기다리고 있다네.'
--- 워털루 전투중 한 보급 장교를 몰아세운 어느 장군의 전갈.

술은 군대와 오랜 연을 맺어봤습니다.
이미 기원전 그리스인들도 아침에 다른 동네 아저씨들과 싸움하기전 포도주를
배급받았고 곧 창을 꼬나쥐고 '엘렐렐레우(eleleleu)'라는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죠.

뭐 그리스 촌놈들이야 그렇다쳐도 이미 중기 시절에 확립된 10인 단위의 분대에서

시작한 체계를 만든 이집트인들도 전투전에 맥주 한잔을 할 권리는 있었죠. (물론 당시
이집트에서 맥주는 단순히 술이 아닌 음료이자 마시는 빵 역활을 했죠.)

술은 긴강을 풀어주면서 갈증도 (일시적으로)없에주고 공포도 어느정도 줄여줬는데다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데 일차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아무리 깐깐한 지휘관들이라도 별 수 없이 준비해야할 필수 보급품처럼
인식하게 됩니다.
그 로마군대조차도 포도주나 맥주중 하나정도는 반드시 챙겨야했고 때에 따라서 술이
연관된 크고 작은 사고들을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기도 했으니.

여튼 꽤 오랫동안 군대밥 1끼에는 1파인트정도의 포도주나 맥주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놈의 술이란게 맥주건 포도주건 상하기 십상이었다는 겁니다.
한달만 잘놔둬도 식초가 되버리고 이걸 좋아할리가 없죠.
게다가 부피도 나가니 운송도 뭐하죠.
그렇다고 가까스로 술하고 얼마 안되는 월급가지고 얘들 모아놨더니 이게 안된다면 뭐
별 수 없는 겁니다.
사기는 뚝 떨어지고 말안듣고 결국 다른 뭔가를 찾아내거나 해야하는 불상사가
벌어지죠.

게다가 지상은 그나마 나았지만 배는 더 심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마 연근해 항해나 하라고 판정될 톤수의 배가지고 온 동네를 쑤시고
다니던 그 시절, 담수화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니 술이 아주 요긴해집니다.
적어도 술은 물대신 마실만도 한데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형편없는 물맛을 숨기는데도
도움이 됐거든요.
생각해보시길.
시퍼렇게 물때와 이끼가 낀 물통의 썩은 물마시려면 술한잔 걸쳐주고 먹는게 차라리
해볼만한 일이었던 겁니다. (그러다 그 썩은 물조차 떨어지면? 뭐 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바닷물 마시고 죽어야죠.)

이런터라 뱃사람하면 술이었고 술은 뱃사람의 영혼을 붙여주는 아교였던 셈이죠.
그런데 술이 쉰다는 것은 배라고 다를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브랜디같은 비싼 화주를 주기도 뭐했죠.

이 때 해성같이 나타난 구세주가 바로 럼주였습니다.

'갈대에서 채취되는 하얀 꿀' 바로 설탕에 대한 탐닉은 17세기경 캐러비언해 인근에
 대규모의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었고 풍차를 사용한 설탕 제조 시설도 만들어집니다.
 물론 노동력은 전부 노예로 충당됐죠.

여튼 이 시기의 설탕 제조 작업이란건 사탕수수를 풍차에 의해 돌아가는 압착기로 짜서
즙을 내고 이걸 끓여 졸여서 결정화될 때까지 간다였습니다.
이 와중에 남은 사탕수수 찌꺼기등에는 꽤많은 양의 당분이 남게되고 - 20%가량 -
생산중 생긴 폐당밀속에도 역시 당분이 남겨지게 되죠. (사탕수수 찌꺼기는 다시
연료로 태워져 사탕수수즙을 농축하는데 사용됩니다.)

당분, 적당한 물, 온도와 적당한 발효군이 있으면 여기서 알코올 발효가 벌어지리란건

뻔한 일이고 힘든 노동에 시달리던 노예들에게는 이 음료가 원기를 북돋우는 존재가
되죠.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 이걸 다시 한번 더 증류해서 화주로 만드는 법을 생각합니다.
설탕 공장 자체가 끓여서 졸인다는 짓하고 가까운 공정을 거치니 당연했겠죠.

이렇게 만들어진 럼(rum)주는 70도(proof, 우리가 말하는 %도수로 하자면 35도
이상)정도였고 더 농축하면 150 프루프까지도 올라갔습니다. (버커디 151 아시죠? 이
물건처럼요. 이 술의 박쥐 문양은 그래도 스페인 왕가에게 받은 겁니다. 스페인 왕자가
감기 걸렸을 때 한잔 마시고 나았다고 받았다나요.)
이렇게 등장한 럼은 높게 평가가 된건 아니었습니다.

"이 섬에서 술주정뱅이들을 만드는 rumbullion 일명 kill devil은 사탕수수에서
 증류되어져 만들어지며 독하고 지옥같고 끔찍한 술이다.'
--- 1651년 Barbados 주의 문서에서.

이렇게 자메이카 등지에서 나온 설탕공업의 부산물이자 아주 값싼 럼주는 곧 식민지
미국으로도 건너가게 됩니다.
스테이슨 섬이나 보스턴, 메서츄세츠등에서 증류가 시작되며 큰 규모로 발전까지
하게되며 품질 향상까지 하게 됩니다. (더욱 정제해서 풍미를 높이게 된거죠.)
이런 덕분에 식민지 미국에서 1년에 1인당 13리터 이상이 소모될 정도의 대중적인 술이
되죠.

'오늘 오는 모두에게 충분한 럼과 사이다(cidar, 사과주)를 대접하게.'
--- 대통령 선거전 워싱턴이 그의 비서관에게 한 당부.
선거때는 일단 술부터 넉넉하게 돌려야 혀.
유권자 낚는 떡밥은 있어야 할거 아녀?
그렇다고 내가 경제를 살린다는 엄청난 떡밥을 던진 것도 아니고 말여.

1655년, 영국 해군이 자메이카를 접수하시면서 럼 공장도 같이 접수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영국 해군은 그 당시 수병에게 지급하던 맥주나 프랑스제 브랜디보다
값싸고 독해서 상할리도 없는 최적의 보급주를 찾게 됩니다. (참고로 당시 영국 수병
1인당 10일에 1갤런의 맥주가 지급됩니다.)
오히려 이거 마다하면 그게 이상한 걸겁니다.
아마 당시 보급관들에게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노래가 절로 나올 판이었겠죠.

곧 영국 해군은 1655년부터 하루 1/2 파인트나 2질(gill, 1질은 0.14리터)의 럼을 주게
됩니다.
한 250ml정도 주는거니까 이거 양이 좀 되죠.
소줏잔이 45ml정도 들어가니 오오 5잔은 주는 겁니다.
것도 시시한 19도가 아니라 40도 넘는걸요.
술은 깨끗하게 19.5도

풉, 40도는 되야지.(저건 몰트 위스키임)

그러다 1731년, 마침내 영국 해군은 1파인트의 럼을 하루 2번 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정도 양의 술을 한방에 마시게 하는 것고 참 머리아픈 일입니다.
게다가 술꾼중에서는 몇일동안 꾸준히 참고참아 양이 많이 모이면 한번에 털어넣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찔끔찔끔 이런거 없이 한방에 가보자는거죠.

게다가 주정뱅이 병사들이 배위에서 돌아다니는 꼴을 보기 싫은 사관들도 있기

마련이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고양이 꼬리로 때린다거나 비스킷과 물만 준다거나 하여튼 이런 군기
강화책을 써먹다간 밤에 갑판위로 대포알이 굴러다니는 소리를 듣거나 다음 항해할 때
수병들이 어디간지 안보인다 뭐 이런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었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누군가 술에 물타서 주자는 생각을 합니다.
보통 흔히 알려지기로는 그로그 영감(Old Grog)이라 불린 버논 제독(Admiral Vernon)이
이걸 규정화했다 합니다. (일부 이설이 있기도 하긴 합니다.)
처음에는 반 파인트의 럼을 컵에 담고 여기에 1/4 쿼터의 물을 타서 점심과 저녁 일과
시간 이후에 2번 주는 방법을 씁니다.

그러다 1740년 8월 21일, 그로그 영감은 아래와 같은 명령을 내리죠.

'1/2 파인트의 럼과 2파인트의 물을 혼합할 해서 줄 것. (1:4 혼합)
 배급시 당직사관이 갑판에서 직접 감독할 것.'

1756년, 이 방법은 완전히 규정화가 되고 이렇게 물탄 럼은 그로그(grog)란 별명으로
불리며 그 후 200년동안 점심과 저녁시간에 'THE KING(or QUEEN) GOD BLESS HIM' 이라
세겨진 럼주 희석통(rum tub)에 담겨져 갑판에서 배급됩니다.
또 좀 더 지나면 이 그로그에 라임이나 레몬 쥬스가 들어가며 더 마시기 쉽게
당밀따위가 첨가되기도 하죠.

분명한건 그로그 자체는 술이란 면에서 질색할만 했지만 라임 쥬스가 들어갔다는 점은

높이살만 합니다.
괴혈병 잡는데는 나름 역활을 했고 영국 해군에게 라이미(limey)라는 별명을
붙게해주죠.
여튼 근 200년 정도의 기간동안 영국 해군은 95.5 프로프(47도 정도)의 럼을 함정에
탑재했고 간혹 축일이나 이벤트가 있으면 여분의 럼을 더 준다든지 합니다.

'11시, 장범장(갑판장)의 조수(boatswain's mate)가 'Up Spirits' 라는 소리를 지르면
 - 또는 호각을 부르면 - 후갑판(쿼터덱)에 모두가 모였다.
 당직하사가 집합보고를 하고 당직사관으로부터 술창고(spirit room)의 열쇠를 받은
 다음 통쟁이(cooper, 술통 건드린다고)와 2명의 해병과 술을 가지러 간다.
 술창고에서 모두가 확인하는 가운데 나무통(keg, 보통 5갤런들이)에 술을 담게 된다.
 만약 술을 흘릴 경우 1/8 파인트 이내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 이상 술이 축나면
 고양이 꼬리가 기다리겠죠.)
 2명의 해병은 나무통을 갑판으로 가져오며 희석용 통(tub)에서 물과 함께 혼합된다.
 각자의 잔에 배급이 이뤄지며 배급을 받았다면 그에 대해 호명을 해서 받았음을
 확인해야 한다.
 만약 배급후 남은 술이 통(tub)에 남게 되면 이는 갑판장이 직접 바다로 쏟아버려야
 한다.'
--- 당시의 럼 배급 풍경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그러그 한잔빨면...
이건 1949년의 어느 영국해군 함정의 럼 배급 풍경. (태평양쪽인가)

한편 이 전통은 대륙해군(Continental Navy, 이름에 걸맞지 않던 그 시절의 미해군)

에서도 시행됩니다.
안쓴다고 mothball 돌린 것중 아주 일부만 이 지경인이며 오대양을 유린중인 캐사기 미해군도
닥닥 긁어모아 요런 때도 있었다우.

그런데 해군 장관이던 로버트 스미스(Robert Smith)는 어쩌건 수입품이던 럼주 말고

자신들의 땅에서 나던 호밀 - 값이 쌉니다 - 가지고 위스키를 만들고 이걸 지급해
봅니다.
신토불이

그런데 이 호밀 위스키가 되려 인기가 더 좋았답니다.

그래서 미해군에서는 그로그 대신 밥 스미스(Bob Smith)가 지급되게 되죠.

한편 해군에 의해 채택된 럼은 곧 육군에서도 채택됩니다.
역시 싸고 오래가니 거부할리가 없었죠.

그런데 육군에서는 럼에 물을 탄다든지 하는 짓은 안합니다.
아니, 하려고 시도도 해보는데 그렇게 인기있는 짓도 아니었고 그럴 바에 포도주나
맥주 마시련다는 소리가 나왔으니 말입니다.
솔직히 군대가 어디 종군하면 그 뒤에 술통을 쌓아들고 한몫보려는 상인들이 있는한
물탄거 줘봐야 답이 없는거죠.
게다가 병영에 머무르면 그 주변 선술집은 그냥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한편 이런 와중에 일치감치 술을 병영에서 몰아내려는 시도가 이뤄집니다.
바로 미군이었죠.

1862년 9월 1일, 미해군은 병사들에게 술을 주는걸 금지합니다.
그리고 대륙군 창설당시만해도 1질의 럼(또는 위스키나 브랜디)을 spirit ration으로
주던 미육군조차도 1790년에는 그 절반만 주더니 1795년 7월에 의회와 대통령령으로
주지 말자는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확실히 실행되는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고 마침내 1832년이 되면 급식에서
술은 완전히 제외되버립니다.

대신 커피와 설탕이 술대신 지급됐고 얼마 안가 담배가 들어가게 되죠. (참고로 당시
담배는 씹는 담배와 파이프 담배가 주종이었습니다. 요즘과 같은 엽궐련이나 종이로 싼
궐련은 더 뒤에 인기를 끕니다.)

영국군도 비슷한 시도를 하려고 차와 설탕을 준다든지 하는 일을 해보는데 희안하게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좀 나아진건 1850년이후로는 럼의 양이 1/2 파인트던 것이 1/4 파인트로 줄었고
1881년에는 사관에 대한 그로그 지급이 중지된데다 1918년에는 부사관들에 대한 지급도
중지되죠.

영국 해군이 이러는 사이, 영국 육군도 부대에서 술을 쫓아내는데 비교적 성공합니다.
단, 악천후등에 대비해서 럼은 줄 수 있다라는 조항이 살아남아 있었고 그 당시 다른
국가들처럼 술이 적당히 돌아다녔죠.
어쩌건 이러다 1차대전이 터지면서 다시 술배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영국육군의 경우 4.5리터 정도가 들어가는 질그릇병에 담긴 럼주가 지급됐고 이
질그릇은 rum ration jar란 말대신 Grey Hen 이란 별칭으로 불리게 되죠.
또 이 질그릇 병의 표면에는 S.R.D.란 약어가 적혀있었는데 이건 Supply Reserve
Depot의 약어였습니다. (일설에는 Service Rum Diluted라고도 합니다.)
병사들이야 이 SRD를 Soon Runs Dry (곧 비어버릴) 내지는 Seldom Reaches
Destination(간혹 목적대로 되는)이라 불렀죠. (이 럼주의 원래 목적이 악천후에
대비해 원기를 북돋우고 어쩌고였으니 Seldom Reaches Destination 라는 농담도 나올만
했죠.)

여튼 이 럼은 하루에 1/3 파인트 정도씩 분배가 됐고 공격전에는 좀 더 지급이 됐지만
사실 많은 병사들이 이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돌격전에 마신 럼은 무디게 만들기 보다는 더욱 날카롭게 만들고 더욱 초초하게
만드는 각성제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죠.

독일이나 프랑스군 역시도 같은 식으로 술을 지급합니다.
그놀(gnole, o위에 삿갓있어요. 브랜디의 속어) 한잔 하시지 말입니다.

브랜디나 리쿼같은 40도를 넘는 화주가 지급되거나 300ml정도의 포도주가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이 쪽 역시도 지휘관의 우려만큼 전투중 술 때문에 탈을 내지는 않았다 합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나고 휴식 지역에 들어와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에스타미네같은 주변의 술집에서 병사들은 지휘관들이 질색할 정도로 술을 퍼마시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의 긴장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며 또 무료한 일상을 떠들썩한 술자리로 메꾸려
한거죠.
이 때문에 전투중보다 전투후 후방에서 술이 끼어들어간 군기 사고가 벌어지며
어떻게하면 술을 못마시게 할까 고민하지만 그게 맘대로 될리가 만무하죠.

물론 미군들은 그냥 여전히 커피 마셨습니다.
참호속에 물들어온다고 콘비프 깡통을 박스채로 깔고 있던 이들은 술에 대해서는
인색한 대접을 받은거죠.

그 후로 술은 2차대전때까지도 어떤 식으로건 전투식량(ration)으로 지급이 됩니다.
(미군이나 영국군 빼고)
소련군만해도 대전중 하루에 정량으로 불린 100g의 보드카를 기대했고 독일군도 술을
줬죠.
짜르 시대나 스탈린 시대나 군인에겐 보드카가 최고 - ㅅ진은 프랑스 기자가 찍은 짜르의 병사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전쟁중 장비를 다룰 일이 더욱 많아진데다 술마셔가며 싸우는
것과는 분위기가 멀어지자 술은 지급품의 자리에서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 술하면 유명한 해군에서도 말입니다.

결국 영국해군은 1970년 1월에 그로그 배급을 중단한다라고 발표하며 그 해 7월 31일
마지막 'Up Spirits' 호각이 울립니다.
수병들은 마지막 그로그를 마시고 그 동안 사용한 grog tub를 정중하게 수장시켜줬죠.
단, 맥주캔은 아직 배의 PX에 존재한답니다.


p.s:
이건 참고로 알아두시몀 편한건데 지금도 비슷하게 가는 급식량입니다.
전투중인 병사들이 먹고 괜찮다라고 느끼는 양입니다. (전투중에
하루에 3천에서 4천
칼로리를 먹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투도 중노동으로 봤거든요.
단, 전투없이 놀고 먹
으면... 당연히 그 양은 줄어들겠죠? 특히 고기류가 줄어듭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 이보다 훨씬 적은 양이 지급된게 더 흔했죠.

각종 곡물류: 1 ~ 1.5 파운드
이건 빵이나 밥, 죽(포리지)등의 형태로 나오겠죠. (물은 최대한 없는 걸로 본겁니다)

고기류: 1파운드나 그 이하
야채나 콩, 감자와 같은 것들: 1파운드정도나 그 이하
만약 빵을 먹는다면 버터니 치즈같은 것으로 1 온스가량에 식초나 소금등이 들어가죠.


p.s:

그러고보면 고기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랄까 이런게 꽤나 큽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전투부대와 비전투 부대의 식단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건 고기
종류가 됩니다.
가령 2차대전중 독일군이 받아먹던 급식은 크게 4등급으로 구분됩니다.

내용물이야 빵, 고기, 야채, 버터나 치즈 혹은 마말레이드같은 빵에 발라먹을 것들.
소금과 후추, 식초등에 생선이나 유제품등이 들어간 그렇고 그런 것들입니다.

이중 전투없고 평온한 지역의 군부대에 배치될 경우 빵이 600g정도가 되버립니다.
전투부대에서는 700그램, 지휘관 재량에 따라 900g까지도 증가되는데 말이죠.
고기의 경우는 더 심한게 전투부대라면 140g정도를 받습니다만 놀고 먹으면 50g선으로
급감합니다.
뭐 그래도 포도주는 똑같이 300ml정도는 나왔습니다.
다만 담배가 전투부대는 7가치지만 비전투 부대는 2가치란 것이 뭐 했다지만 말입니다.

'우리 병사들에게는 총알만큼 담배가 더 필요하오.'
--- RJ 레이놀즈사와 국회에 보낸 퍼싱 장군의 청원
이 새퀴들아, 술을 안주면 담배라도 좀 제대로 보내달라꼬.


p.s:
프랑스군과 이태리군이 최후까지 그들의 급식에 술을 유지합니다.
이건 프랑스군이 사용한 1리터들이 포도주 제리캔인데 1990년대까지 이런 물건으로
포도주를 한잔씩 돌렸다죠. (스테인레스 스틸제)
지금은 안준 답니다.
단, 병영에서 일과후 먹을 수는 있다곤 하고 이게 다른 EU군대들보다는 관대한
편이라죠. (독일군의 경우는 아예 이것도 금지당하는 경우가 많다나요. 뭐 그런다고
못마실 병사들도 아니지만.)

한편 우리의 이태리군, 이 친구들은 전투식량 - 주둔지에서 주는 짬밥 말고요 - 은
아침, 점심, 저녁 3끼로 구성된 메뉴가 7개인데 이중 2개에서 저녁 메뉴로 Cordiale
bevanda alcolica(강장제: 알코올 음료)라고 부르는 화주가 들어갑니다.
100ml정도되는 작은 플라스틱 병에 들어가는데 도수가 한 40도쯤 된다죠.
여기에 주둔지에서는 포도주도 준다거나 했는데...
술을 가급적 안주기 위해 내놓은 방법중 하나가 술대신 제대로된 커피나 젤라또같은
것을 줘보자였답니다.
코소보 평화유지한다고 작전뛰고 기지에 돌아오자 그날 저녁 밥이 눅눅한 피쉬 앤
칩스더라는 영국군 병사들의 회고하고 같은 동네인데도 젤라또에 포도주 한잔 받으면
아마 인생에 괴리감이 생기겠죠.
뭐 그런 겁니다.


p.s:
설탕 이야기 나온 김에.
14 ~ 15세기경 설탕조림류는 상당히 높게 취급받은 후식이었죠.
각종 견과류부터 심지어 장미 꽃잎까지도 조림의 재료가 될 판이었으니.
여튼 이 시대, 설탕조림을 매우 좋아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발루아 왕조의 9대째
프랑수아 1세였답니다.

특히 마르멜로(marmelo)의 조림을 좋아했는데 한날 마침 괜찮은 마르멜로 조림이
구해져 이걸 들고 연인인 에땅프 공작부인을 찾아갔다네요.
그런데 이 때 공작부인께서는 열심히 붕가붕가 떡치고 계셨더랬답니다.
자, 우리의 프랑수와 1세께서 환희에 찬 얼굴로 마르멜로 절임이 담긴 접시를 손수
들고 연인의 방문을 열었더니 다벗은 인간 하나가 서둘러 침대 - 이 때는 에어컨이
없었죠 - 밑으로 들어가는게 목격됐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범인이라면 아마 빡쳐서 당장 그럴 겁니다.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흉기를 찾거나 아니면 그래도 높으신 지존이시니 병사를 불러
끌고나와 주리를 틀어버렸겠죠.

그러나 우리의 프랑수와 1세,
그냥 방을 나오며 조용히 절임 접시를 침대밑에 밀어넣어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받으시오. 브리삭, 모두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소?'


p.s:
당시 화주는 기력회복용 약처럼 사용되기도 하며 때에 따라 마취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당시 군의관 내지는 센스있는 부사관이나 장교등이라면 수통 2개를 준비하고 그 중
하나에 화주를 채워넣는 것정도는 해서 나쁠건 없는 일이았죠.
위의 그림은 나폴레옹 시대의 절단 수술에 대한 방법중 하나입니다.
다리 아랫부분을 잘라내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술따위가 마취제로 사용됩니다.
당연히 수통에 든 술이 필수품이었겠죠.

여튼 술을 먹인 다음 입안에 고통스러우면 꽉 물라고 총알(머스킷 볼)을 넣어주고
사지를 잡은 채로 수술을 합니다.
그림에는 생략됐지만 지혈대로 묶고 그림처럼 칼로 피부와 근육을 절개할 때 안으로
넣어서 비스듬하게 해주는게 요령입니다.
그리고 뼈가 드러나면 톱 - 지금 쓰는 쇠톱하고 비슷합니다 - 으로 썰고 잘라낸 다음
혈관을 말총이나 비단따위로 묶거나 소작해서 지혈하고 비스듬하게 잘라내서 속이
횡하게 빈 꼴이된 피부와 근육으로 잘린 뼈부분을 감싸고 작은 관(drain)을 박고
묶어버리는거죠.
그래도 팔이나 다리, 손가락이나 발가락 절단은 살 확률이 그런대로 높은 편이었죠.
한 절반은 잘하면 살아남았으니. (단, 감염등으로 죽고죽고 또 죽어 20%선으로도
떨어지기도 합니다)
배에 맞아 내장이 터졌거나 폐에 구멍이 나거나 머리에 제대로 맞거나 이러면 그건
수술할 수가 없었거든요.


p.s:
술을 못마시게 하자 나오는 부작용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엉뚱한 물건이 술로 전용된다라는 것이었죠.

소련군은 2차대전내내 부동액이 얽혀들어간 실명과 사망 사고를 경험합니다.
요즘이야 에틸렌글리콜이지만 저 때는 곧잘 메탄올과 에탄올등이 혼합된 부동액이
사용됐고 이걸 적당히 걸러내고 알아서 먹었으니 말입니다.
뭐 에탄올이면 괜찮은데 메탄올 따위가 들어있다면야 이제 이야기는 머리가 아파지죠.

한편 여러 곳에서 소독용 에탄올의 분실이 자주 벌어졌고 소독용 알코올에 뭔가 다른걸
타면 그럴듯한 술이 된다는 것도 유행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군이 곧잘 썼던 소독용 에탄올에 적당량의 물과 분말 쥬스(오렌지
혹은 포도)를 타는 것이었죠.

또 기계 세척용 알코올이나 연료용 변성 알코올(denaturing ethanol)을 마신 사례도
생깁니다.
대표적인게 바로 미해군 잠수함등에서 나온 어뢰 쥬스(torpedo juice)였죠.

미해군의 Mk.14 어뢰는 압축공기(혹은 압축산소)와 알코올로 작동되는 소형 증기
터빈으로 움직였죠.
심도보다 더깊게 내려가고
맞으면 안터지고
존나 기분나쁘면 쏜 배로 다시 돌아온다는 미해군 어뢰의 악몽, MK.14 어뢰.
이론은 좋았으나 결과품이 나쁜 사례.

물론 알코올은 에탄올에 메탄올이나 아세톤따위를 혼합한 변성 알코올이었고 마시지
말라고 빨간색으로 염색까지 해뒀죠.
그래서 수병들은 이걸 pink lady라 불렀는데 압축시킨 빵덩어리로 이 핑크 레이디를
걸러서 마시는 수법을 만들게 됩니다. (용해도 차를 사용한거죠. 오오, 어느
화학도였을까?)
보통 이렇게 걸러낸 알코올은 2:3 비율로 파인애플 쥬스와 혼합해 먹었답니다.
(파인애플 쥬스는 당시 미해군에서 자주 나오던 음료. 한마디로 미군판 맛스타.)

그후 어뢰가 전기 구동이나 다른 연료를 쓰게 되면서 이 어뢰 쥬스는 사라집니다.
단, 알코올은 어떤 식으로건 저장됐고 - 소독용이거나 세척용으로 - 그걸 마시는게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였다 하죠.

참고삼아 변셩 알코올은 국세청이 미워 주세를 내지 않겠다고 작정하거나 알뜰한
쇼핑과 음주를 즐기다 변을 당하지 않게 하려 여러가지 약품을 혼합한 겁니다.
당연히 마셔서 몸에 좋을 것없고 그냥 쓰라는 목적 - 보통 연료 - 으로 쓰면 됩니다.

변성 알코올중 오래된 형태는 에탄올에 10%정도의 메탄올을 혼합하는 겁니다.
(그러고보니 저 처음 생화학 시험에서 했던게 바로 에탄올과 메탄올의 작용
기작이었죠. 그리고 해독법도. 해독법: 에탄올을 더 퍼넣는다.)
그외 프로필올이나 아세톤과 같은 케톤류, 고약하고 쓴 맛이 나는 denatonium
benzoate따위를 넣기도 하죠.

한편 이런 어뢰 쥬스조차 못구하는 환경이라면 아주 오래된 생화학의 한 쟝르를
시도하게 됩니다.
바로 정글 쥬스(jungle juice)를 만드는거죠.
군대밥으로 과일을 후식으로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넉넉할 정도의 설탕따위가 나오기도 하죠.
이들중 일부를 쓱싹해서 혼합합니다.

큰 병에다 과일 잘라서 넣고 설탕 넣고 과일넣고 설탕 넣고 만약 손재주와 인간관계가
좋고 배에 제빵 설비가 있으면 요리사와 친하게 담배한대 피면서 이스트를 부탁해서
넣어도 됩니다.
모든 일이 다 끝났으면 이 병을 조용히 따뜻하고 음습하고 빛이 잘 안드는 공간에
둡니다.
배라면 기관심이 적당하겠군요. 너무 뜨거운 곳 말고.
지상에서는 트럭 운전석의 한켠도 좋은 선택입니다.
발효가 시작되면 가스가 차고 때에 따라 병이 터진다거나 하면 곤란하니 적당한 통기
구멍은 내주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다익으면 한잔 마시는거죠.

이 정글 쥬스는 걸프전때도 담궈진 전설을 가집니다.
그 지역의 이스트가 동이날 정도였다고 하죠.


댓글 : 4 개
헐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ㅎ
재미있네요 ㅎㅎ
재밌네요. 잘 보고 갑니다~
신토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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