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덕밀덕] 톰슨 기관단총에 대하여.-1부-2011.12.10 PM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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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기 전 주의하셔서 탈날건 없는 짜잘한 것들.

1. 언제나 그렇지만 제원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 생략했으니 나머지는 셀프.

2. 항상 그렇지만 오탈자 많으므로 걸러서 보소서.

3. 내용 및 표현, 그림등등 전체가 고급과는 안드로메다만큼 떨어졌으므로 걸러서 보
   소서.

4.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심심풀이로 쓴거니 귀찮기 짝이 없는 권리따위는 전혀 없
   습니다.
   유흥가 찌라시에 저작권 걸던거 보셨나요?
   퍼가시거나 참고하시거나 2차 창작을 하시건 그건 편하신 대로.
   당연하지만 출처 표기, 이런건 알아서 하소서.
   출처 표기 안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누군가 귀찮게 굴 경우는 하셔도 됩니다.


'전투는 화력'
--- 모 만화 여캐릭터의 말이 아니라 화기 시대에 항상 이야기된 화두.

권총탄은 소총탄에 비하면 자동화기를 만드는데 부담이 덜합니다.
어느정도 선의 위력이면 단순 블로우 백으로 만들기도 좋고 또 다른 작동 방식을 채택
해도 어지간하면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죠.
게다가 19세기말에 이르러 자동권총들이 슬슬 등장하고 맥심 기관총같은 것도 등장하면
서 이 권총탄을 자동으로 발사해보자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런 배경에서 전시용 겸 흥미거리로 맥심 기관총같은걸 작게 만들고 거기다 권총탄을
장전해서 쏘는 일이 있었다는건 놀라운 일이 아닐 겁니다.
전시회에 찾아온 미래의 고객(?)들에게 브로셔와 함께 모형(!)총의 시사는 여흥거리로
충분했을테니.

그런데 이게 군관계자들의 흥미를 완전히 끌어내지는 못합니다.
이 때는 탄창 장전식 연발총(바로 볼트 액션 소총들)이 모든 일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때였거든요.
이상적인 상황에서 몰려오는 적 대열을 미칠듯이 빠른 발사속도와 복좌 기구까지 갖춘
강철제 후장식 강선포를 보유해서 뭔가 쏘고 싶어 안달난 포병이 유산탄(shrapnel)으로
낫질해놓으면 기관총과 소총이 자근자근 씹어 말끔하게 설겆이 해버릴 것이라고 봤으니
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볼트 액션 소총은 그 전시대의 총기보다 우월한 위력과 명중정도에 아무

리 무능한 병사도 분당 10발 이상은 충분히 쏘고도 남을 정도의 속사 성능을 보유했으
니 말입니다.

여튼 이런 뭔가 좀 암담하던 1차대전 직전인 1914년 4월, 이탈리아 육군 대령 레벨리(
Bethel Abiel Revelli)는 권총탄을 사용하는 경량 기관총에 관한 특허를 내게 됩니다.
그의 특허에 나온 물건은 2개의 총열을 가진데다 단순 블로우 백으로 작동되는 물건이
었고 무게가 6kg정도였죠.

당시 맥심 기관총이 3배이상의 무게를 보여준데 비하면 정말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발사속도는 총열 하나당 분당 1천2백발 이상이었고 총 전체를 보면 분당 3천발
까지도 나오던 괴물이었죠.


이거 보고 어! 하면서 어느 영화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죠.
예, 인디아나 죤스 3, 최후의 성전에 나왔죠.
거기서 숀 코네리가 비행기 꼬리 날개 날리시고 난 아냐 라고 하시는게 압권이죠.
영화의 총은 빌라르 페로싸는 아니고 스위스가 특허를 가져가 만든 물건입니다.

사용탄은 9x19mm Glisenti 탄으로 글리센티 권총에 사용되던 것이었습니다.
탄을 25발이나 50발들이 탄창에 담겨졌고 탄창은 총위에 꼽혀지게 됐죠.


9mm 글리센티 탄은 외부 형상과 치수가 독일의 9x19mm Parabellum과 거의 같아 서로 호
환될 지경이나 중요하건 9mm Glisenti는 9mm Para보다 훨씬 약한 탄이었죠.
더 나쁜건 이 탄을 주로 사용하던 글리센티 권총 자체가 작동면에서 영 아니었던터라
탄약과 함께 권총 모두가 이탈리아군에서도 불평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도_남부14년식_보다는_나은데요.jpg
이게 글리센티 권총.

곧 이 경량 기관총에 대한 특허는 빌라르 페로싸(Villar-Perosa)라는 회사에 팔렸고 그
에 따라 빌라르 페로싸 기관총으로 불리며 이탈리아군에 지상 및 항공기용으로 납품됩
니다.

1914년 8월, 1차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는 신중하게 중립을 표방합니다.
당시 중립국중 가장 군사력이 강했고 지리적 위치가 위치다보니 연합국과 동맹국 모두
에게 참전을 요구받던 상황이었죠.
1889년에 이디오피아에서 두들겨 맞고 - 19세기이후 유색인종에게 백인종이 제대로 참
패당한 최초의 경우입니다 - 리비아에서 투르크에게 대군을 동원해 간신히 이겼더라는
전적을 무시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다 연합국측이 들여댄게 제대로 맞았는지 런던 조약을 덜컥 체결하더니 다음달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죠.
그 후로는 속전속결이었습니다.
알프스로 이뤄진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군이 그 형편없는 준비상태로 전투를 벌이게 됐
죠.

이 때 빌라르 페로싸는 산악전 상황에서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고지고 올라가는 상황에서 가벼운 기관총이란 컨셉은 나름 먹혔으니.


뒷쪽 배경을 보시고 그리고 산에 이고 지고 그것도 까라면 까야지 하고 올라가보신
악몽을 가진 분이시라면 무거운 기관총보다 가벼운 기관총(?)이 가지는 잇점을 절대
무시하진 못할 겁니다.



단, 항공기 버젼의 경우는 탄약이 비행기 잡기에는 너무 약했던터라 성공하지 못한게
당연한 겁니다.
아무리 나무 골조에 천을 감아놨다해도 체면치래는 할 정도의 위력은 나와야 하나 권총
탄이 달리 권총탄일지.


그러고보면 저 동네에서는 지금도 간혹 저 때 실종된 병사들이 빙하속에서 고스란히 발
견되기도 한다죠.
몇십년전 행불된 변하지 않은 남편을 찾은 할머니 전설이 있는 동네니 요 얼마전 오스
트리아군 병사 시체 3구가 발견됐다는건 놀라운 일도 아닐 겁니다.
물론 역사적인 '장궁' 사수였던 이 분도 발견되셨죠.


빌라르 페로싸의 제원
길이: 533mm
빈총 무게: 6.52kg
6조 우선 강선을 가진 318mm의 총열.

그러나 이 빌라르 페로싸는 지나치게 기관총을 의식한 나머지 새로운 화기로 거듭날 기
회는 잃어버립니다.
물론 후일 다른 화기로 거듭나긴 하지만 이게 좀 굴욕적이었죠.

한편 유럽 대륙 중간에서는 보병의 명예가 구겨지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오랫동안 명예로 받아들여진 총포화를 꿋꿋이 견디다 일제 사격후 착검 돌격한다는 것

은 이제 지나간 오래전의 케케묵은 이야기가 됐고 왕성한 공격 정신에서 우러나온 돌격
은 몇정의 기관총에 연대 한개가 1시간도 안되어 몰살당하는 결과로 끝나버리게 되죠.

'우리 중대에서 독일군의 철조망까지 간 건 나와 중위, 중사 단 3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무인지대에서 죽은 것같다.'
--- 1916년 7월, 솜에서 한 영국군 병사.

좋건 싫건 보병들은 쥐 신세가 되어 땅을 파야 하는 상황에 부딫혔고 곧 모래주머니,

나무 다발, 콘크리트로 보강된 흉측한 진흙투성이 참호망은 프랑스의 삼림지대에서 시
작해 벨기에의 저지대를 거쳐 어느새 바다로까지 뻗어나가 '바다로 가는 행진'마저 정
지시켜버리게 되죠.

이렇게 가련한 참호속의 쥐, 보병들에게 더 나쁜 소식이 들려오니...
그건 바로 그들의 지휘관들은 도통 그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언제든 적 참호
에 공격을 하라는 요구를 했다는 점이죠.
그리고 달라진 전투 환경에서 보병들은 자신들이 가진 장비들중 꽤많은 것들이 그닥 유
용하지 않다는걸 알게 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죠.

우선 소총은 지나치게 길었죠.
참호밖에서는 긴게 좋을지 몰라도 참호속에서는 그게 자신들의 참호건 적 참호건 거추
장스러운 막대일 뿐이었고 덕분에 불법적인 개조 - 총열 자르기 - 가 이뤄지기도 합니
다.
더불어 없으면 빌려오고 그래도 안되면 위치이동한다는 오랜 전통에 따라 샌님 기병들
이 쓰던 짧은 소총을 요령껏 구해와서 쓰는 일도 벌어집니다.
이런 일은 점차 보병 소총 자체가 짧아지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죠.

수류탄은 아예 무시되거나 있어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으며 그나마 이쪽은 꽤나 긍정적
인 발전이 이뤄집니다.
얼마 안가 방수처리됐고 안전핀을 뽑고 그대로 던지거나 혹은 격발 레버를 눌러서 말그
대로 격발 점화한후 투척하는 비교적 믿을만한 것들이 등장하고 밀즈 밤이나 F1, 막대
수류탄등으로 유명해질 것들이 개발되어져 애용되게 되죠.
심지어 적참호로 접근해 수류탄만을 던지고 튀는 별난 임무까지 등장할 정도로 말입니
다.

총검은 여전히 착검되지만 그 긴 길이로 인해 이전처럼 활용되거나 하지는 못합니다.
대신 일부에서는 뭔가 시대착오적인 철퇴나 곤봉따위가 사용된다든지 야전삽이나 격투
에 더 용이한 단검류를 쓰는게 차라리 속편하다는 소리까지 나오게 되죠.

시대 착오적인...
야전삽 자루를 개조한 참호전용 곤봉(철퇴)

기관총은 그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배치량이 증가, 중대나 소대급으로도 내려오게 되
지만 그 크기와 무게로 적시적소의 화력 지원에서는 불평의 대상이 되죠.

이에 더 가벼운 경기관총이 등장하며 이들은 좀 더 소총에 가까운 모습을 합니다만 그
래도 여전히 둔중했다는게 탈이었답니다.

반면 권총은 작고 가볍고 한손으로도 쓸 수 있다는 점, 특히 막 채용되고 지급되던 자
동권총류는 빠른 속사성능을 겸비해 나름 호평을 받습니다만 원래 방어적인 성격이 강
한 화기였던터라 공격적으로 쓰기에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게 탈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가자 권총처럼 자동사격되며 소총 정도 수준의 무게와 크기를 가진 자동
총기류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됩니다.
그러나 19세기말에 이미 등장했지만 그 부실함덕에 외면받던 자동소총은 사정이 나아지
지 않았고 여전히 외면받기 일쑤였죠.

소총수와 함께 움직이에는 닶이 없던 기관총, 가벼워졌지만 소총수준은 절대 아닌 둔중
한 경기관총, 어설픈데다 겨우 가치를 인정받아가던 자동소총, 다좋지만 근본이 시원찮
은 권총을 두고 고민하던 누군가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아놔, 강력한 탄약 써서 완전자동 따위를 구현하려니 문제가 되는거잖아?
 그럼 그보다 약한 탄약을 사용해서 부담을 줄여보는거 어떨까?
 권총과 소총 사이, 기관총과 권총 사이, 소총과 기관총 사이에 낀 뭔가를 만들어 보자
 고.'

어쩌면 돌격소총이란 쟝르가 이 때 나올 수도 있었지만 새로 탄약 만들고 그에 맞춰 총
기를 만든다는 것이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었다는게 탈입니다.
현실은 시궁창인 법이죠.

어쩌건 당장 급했고 현실과의 타협을 찾기 위한 시도가 이뤄집니다.
바로 이미 있는 권총탄가지고 기관총과 소총, 자동권총의 교집합을 만들어보자라는 짓
을 하게 된거죠.

잠시 대안처럼 나온게 자동권총을 카빈처럼 써보자였는데 물론 소총보다는 확실히 화력
(위력 아닙니다)에서 강하지만 기관총같은건 아니었죠. (이른바 포병 루거라 불리는
P08의 긴 총신을 가진 모델을 생각해보시길.)

1915년, 독일은 이런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화기 개발에 착수합니다.
처음 생각은 자동권총을 베이스로 완전자동 기능을 넣어보자였습니다.
말그대로 기관권총(machine pistol, 독어로 Maschinenpistole)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었죠.
자신들이 가진 자동권총 2종 - 마우저와 P08 - 을 완전자동되게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게 테스트 됩니다.

그런데 정작 루거나 마우저 C96따위를 개조해놓고보니 이게 뭔가 마음에 안들어란거죠.
발사속도와 발생하는 반동을 이기기엔 권총 형태는 그렇게 좋은게 아니었으니.
그래서 기계설계자이자 자동차와 총에서 이미 이름이 나있던 베르그만(Theodor Bergma-
nn)과 그의 밑에서 일하던 슈마이서(Hugo Schmeisser)가 이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 결과는 1916년 짤막한 카빈처럼 생긴 기관단총의 등장이었죠.


베르그만의 자동차에 대한 시도는 다임러 벤츠에 판매됩니다.


처음 슈마이서는 새로운 기관단총에 20발짜리 상자형 탄창을 쓰려고 했으나 이미 사용
중이고 그럭저럭 익숙해져있던 P08 권총의 32발들이 드럼 탄창을 쓰게 됩니다. (간혹
snail magazine이라고도 불리는)
평가와 대량 생산에 대한 준비가 시작되며 1918년초부터 본격적인 생산과 지급이 이뤄
집니다.
바로 MP18/I 혹은 그저 베르그만(Bergmann)이라 불리는 물건의 등장이었죠.



MP18은 이탈리아의 빌라르 페로싸에 대해 정말 기관단총이 가져야할 것을 가졌던 물건
입니다.
빌라르 페로싸를 권총탄 사용 경기관총이라 부르고 MP18을 최초의 기관단총이라 불러도
전혀 문제될게 없다는 것이죠.

여튼 세상에 빛을 본 MP18, 1918년초부터 전쟁끝날 때까지 3만정 이상이 만들어진 것으
로 봅니다. (자료마다 다릅니다만 1만에서 3만 5천까지 봅니다.)
810mm의 길이에 빈총 무게가 4.2kg정도.
총열은 6조 우선 강선을 가진 196mm 길이고 발사속도는 분당 400발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실전에서도 괜찮은 결과를 보여주죠.
무엇보다 짧고 휴대하기 좋으며 단시간내에 다량의 화력이 필요하던 돌격대에게 지급되
며 각광받게 됩니다.
병사보다는 야전의 초급 장교 및 짬이 되는 부사관 위주로 지급되며 곧잘 예비 탄창과
탄약, 필요하다면 작은 수레까지 끌고 다닌 지원팀이 붙여집니다. (지원팀은 2천발 가
량의 탄약을 운반해야 했답니다.)

MP18은 괜찮은 물건이었지만 완벽할 순 없다고 리시버등이 꽤 두껍게 만들어져 무거웠
죠.
32발들이 탄창 장전하면 5kg정도됐으니.

또한 과열을 막기위해 채택된 오픈 볼트 방식은 약실속으로 이물이 들어갈 우려가 크다
는 문제점을 가집니다. (이건 다른 오픈 볼트식 기관총들도 별 수 없는 문제죠.)
이물 유입을 우려한 병사들중에는 탄피 배출구를 지나치게 가리다 되려 탄피 배출 불량
으로 총을 오작동시키기도 했죠.

간혹 첫발을 발사할 때 노리쇠가 전진하다 탄을 제대로 장전못하고 불발난다는 점도 불
평으로 나옵니다.

여기에 오발을 낼 위험이 있었다는 점도 있었죠.
별 수 없는 문제였긴 하지만 만약 장전되고 노리쇠를 당겨둔 상태에서 - 발사 직전 상
태 - 충격을 준다거나 하면 오발이 벌어질 수 있었죠. (후일 이 문제는 여러 곳에서 다
양한 방법을 통해 개선을 합니다만 오픈 볼트 기관단총은 떨어트리지 말라는 경고가 없
어지진 못합니다. 뭐 다른 총도 떨어트려서 좋을건 없지만.)

한편 권총탄을 써서 빠른 발사속도와 가벼움을 추구했던 빌라르 페로싸.
솔직히 가지고 다닌다는 점에서는 아니었던지 한쌍으로 구성된 총 하나씩을 때내어 독
일의 MP18처럼 카빈 형태의 총상에다가 물리는 방법이 등장합니다.
바로 모세토 오토마티코(Moschetto Automatico, 자동머스킷) OVP와 베레타(Beretta)
1918입니다.

OVP는 빌라르 페로싸사에서 자신들의 기관총을 하나 때내서 총상에다 올린 식으로 만든
물건입니다.
OVP는 탄창의 배열이나 작동 구조등은 빌라르 페로싸와 같으며 재미있게도 방아쇠가 2
개 달려있어 앞쪽걸 당기면 완전자동, 뒷쪽걸 당기면 반자동이 된다는 것과 총몸을 감
싼 원통형의 덮개가 장전 손잡이 겸 덮개 역활을 했죠.
길이는 9mm고 빈총 무게가 3.7kg정도, 총열은 약간 짧아져 280mm이며 발사속도는 분당
900발 정도였답니다.



베레타 M1918은 빌라르 페로싸를 둘로 쪼게 하나씩 총상위에다 올렸다는 점에서는 OVP
와 같습니다.
다만 총구 앞에 접철식 총검이 달려있었고 OVP에 비해서 좀 더 전통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죠.
이 물건도 OVP처럼 쌍방아쇠가 시도되며 반자동만 가능한 카빈도 개발됩니다만 결국 남
은건 완전자동만 가능한 것이었죠.
길이는 850mm이고 빈총 무게가 3.3kg정도.
300mm길이의 총열이 사용되며 발사속도는 분당 90발 정도입니다.




한편 저기 바다건너, 발명으로 먹고 산다 내지는 사기꾼이란 평판이 돌던 동네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이뤄집니다.
이들중 3개가 미육군에 의해 채택되며 그중 1개는 꽤나 별났고 실패했죠.
바로 M1918 BAR, 톰슨 기관단총, 피더슨 장치입니다.

M1918 BAR은 총기계의 거성 죤 브라우닝의 설계였으며 고작 몇달안에 설계 완료했다는
점에서 브라우닝의 능력이 엿보이는 총이죠.


그와 그의 작품.
내가 만든게 좀 우월하지.

당시의 경기관총보다 가벼우면서 소총에 가깝다는 점으로 인해 1차대전말 미군은 이걸

진짜 자동 소총에 가깝게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죠.
물론 그런 시도는 소총보다는 경기관총에 가깝다는 점에 의해 물먹습니다.
샴푸와 린스를 한방에가 항상 성공 못한다는 사례랄까요.
그러나 소총 소대나 분대의 화력 지원수단으로서 그후 40년을 더 사용되게 되죠.

피더슨 장치는 이전에 쓴거 있으니 참고하시고.

톰슨 기관단총은 미육군의 John T. Thompson 장군에 의해 개발됩니다.
그는 1860년 12월, 켄터키 뉴포트 출생하죠.
그의 아버지는 포병장교로 남북전쟁에 참전했고 종전후 대학에서 군사학 교수를 지낸
사람입니다.

덕분에 톰슨도 일찌기 군대에 발을 들여놓기로 결정했고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고 포병
장교가 됐다 1890년부터 미육군 병기국(Army's Ordnance Department)에서 근무합니다.
그후 그는 별탈없는 진급길을 걸어 준장으로 조병창의 감독관이 됐고 당시 새롭게 구입
된 개틀링 건에 관심을 가지며 자동화기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1903년에 스프링필드 라이플(M1903) 소총의 개발에 참여합니다.

1904년, 톰슨은 Louis LaGarde 중령과 함께 새로운 군용 권총탄약을 개발하게 됩니다.
필리핀에서 모로족에게 당한 다음에 나온 결과였죠. (자세한건 콜트 M1911 참고)
그들은 당시 세계적인 축산물과 농산물 처리 및 교역장이 있던 시카고에서 직접 살아있
는 소와 의과대학의 해부용 시체(cadaver)에 실험을 해본 결과 느리고 큰 구경탄이 작
고 빠른 속도의 탄보다 훨씬 큰 상처를 만든다 는 결론을 얻게 되죠.
그리고 이건 45ACP 탄약의 개발로 이어지게 되죠.

1914년, 군에서 전역한 톰슨은 레밍턴사의 기술 고문이 됐고 리 엔필드나 모신 나강같
은 외국제 소총의 생산 업무를 담당하면서 자택에서 자동화기 연구를 하게 되며 1915년
에는 경량 기관총의 개발 계획을 미육군에 제안하나 그렇게 관심을 끌지 못했죠.

1차대전이 터지자 그는 에디스톤(Eddystone)에서 영국과 러시아를 지원할 총기 생산을
감독하게 됩니다.
이 때도 자동 화기 연구를 계속 했다 하죠.

톰슨은 당시 자동화기에 사용되던 2가지 작동방식이 복잡하다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맥심 기관총등에 사용된 반동이용식은 작동부위가 너무 많았고 총신마저 움직여야했으
며 가스 작용식은 총신등에 별도의 공작이 더 필요했죠.
그래서 간단하고 확실한 블로우 백을 사용하기로 마음먹게 됐지만 이 방식은 간단한 반
면 골치아픈 문제가 있었죠.

강력한 탄약을 사용할 경우 노리쇠를 크고 무겁게 만들어야 했다는 것.

1900년대, 미해군의 블리쉬란 해군 장교는 비교적 새로운 무기 체계였던 후장포를 가지
고 훈련을 하던중 실수로 포미를 완전히 닫지 않고 발사를 해버립니다.
모두가 다치거나 했어야할 상황에서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의외로 폐쇄기가 확 열리지
않았다는걸 발견하죠. (물론 그 당시 사용된 장약 자체도 양이 적었다고 하죠.)

원인을 찾던중 그는 서로 다른 금속(혹은 재료) 사이에는 마찰력이 크게 작용할 수있다
는걸 알아내고 - 오늘날 정지 마찰력(static friction force)이라 부르는 - 실험을 통
해 입증, 총포류의 폐쇄기구를 개발하여 특허를 내게 되죠.
그리고 이건 막 새로운 자동화기를 개발하던 퇴역 장군 톰슨의 눈에 띄고 블리쉬 역시
톰슨의 경량 기관총 개발에 관심을 가져 그의 연구결과를 사용해도 좋다고 하게 되죠.

그 결과, 블리쉬 록이 적용된 톰슨 설계가 등장하게 됩니다.


톰슨 기관단총에 사용된 블리쉬 록은 아래 사진을 참고해주시길.

사진에서 노리쇠에 비스듬하게 홈이 파여지고 그 주변에 H자 모양의 고정쇠 굴러 다닐
겁니다.
저 H자형의 고정쇠는 황동으로 만들어지며 노리쇠의 비스듬하게 난 홈에 물리죠.

총을 쏘기 전, 고정쇠는 노리쇠에 난 홈의 가장 바닥 부분에 내려와 있게되고 이 상태
에서 고정쇠 옆에 튀어나온 홈이 총몸속에 걸리게 됩니다.
아래 사진 보시면 이해되시죠.

그러다 총이 발사되고 노리쇠 자체에 힘이 걸리면 저 고정쇠가 홈을 타고 움직여야 합
니다만 노리쇠 홈과 고정쇠 사이에 걸린 정지 마찰력을 극복해야만 움직이겠죠.
어쩌건 힘은 계속 걸리고 결국 고정쇠는 못이기고 홈을 타고 위로 올라갑니다.

요 사진은 노리쇠 부분을 분해한 모습인데 노리쇠에 달린 장전 손잡이 부분과 그 위로
올라온 황동제 고정쇠의 모습이 잘 보이죠.

저렇게 고정쇠가 위로 올라가면 총몸속에 걸렸던 것도 풀릴거고 그 결과는 노리쇠가 후
퇴가능하다라는 거죠.

톰슨은 1916년, 담배와 운송왕 토머스 라이언의 제정지원을 받아 Auto Ordnance Co.를
창립하게 되며 병기창에서 알게됐던 Theodore H. Eickhoff과 George E. Goll을 영입,
수석기사로 삼게됩니다.
또한 Oscar Payne이 채용됐고 이들은 후일 톰슨 기관단총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
게 되죠.


당시 미국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재벌들이 있었죠.
담배왕, 곡물왕, 밀가루왕, 쇠고기왕, 철강왕, 석유왕등등...
록펠러니 카네기니 하는 사람들도 여기 속하고 트러스트이자 오늘날로보면 완전 독점금
지법에 바로 걸릴 사람들이었죠.
라이언(Thomas Fortune Ryan, 1851 ~ 1928, tobacco and transport magnate) 역시도 마
찬가지였고 이 사람이 다른 경쟁자와 손잡고 만든 회사중 하나는 지금도 장사중입니다.
던힐, 켄트, 바이스로이, 쿨, 보그, 럭키 스트라이크등을 만드는 BTA가 바로 그 회사이
고 죽을 때 남겨진 지분중에는 카멜, 슬렘, 팔 말등을 만드는 R.J. 레이놀즈의 것도 있었다
죠.
한마디로 초대형 양담배 회사 만드는데 한몫하신 분.


당시 톰슨은 '소총의 옆에서 참호속을 쓸어버릴 수 있으며 한사람이 들고다닐 수 있는
작은 기관총'을 목표로 기관단총을 개발합니다.
당시 유럽의 참호전이 그의 총기개발에 영향을 준 것이죠.

'One-man helded little machinegun, Trench Broom.'
(한사람이 들 수 있는 작은 기관총, 참호 청소기.)

1918년 여름, 톰슨은 Persuader라는 이름이 붙여진 첫 경량 기관총을 내놓습니다.
기관총답게 탄띠로 급탄되는 물건이었지만 신뢰성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 곧잘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였다죠.



그 해 11월, 신뢰성 향상을 위해 개량이 가해진데다 급탄 기구를 20 또는 30발들이 상
자형 탄창으로 변경한 Annihilator가 등장합니다.
이 물건은 미육군의 관심을 받게 됐고 - MP18을 든 독일군 덕분에 - 평가를 겸해 실전
에서 써먹어보려 결정하죠.
그러나 이게 뉴욕항에서 선적되어져 유럽으로 보내질 찰라, 전쟁은 끝납니다.



종전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베르그만
MP18은 전쟁후에도 계속 사용되며 여러 곳에 흔적을 남기게 되죠.
단, 독일군에 의해서는 많이 사용되지 못합니다.
아니, 거의 금지무기처럼 찍혀서 보유등에 대해 눈치를 봐야할 상황이었죠.

그러나 독일군과 관련없는 독일 경찰에게 지급되어져 꽤나 만족해하는 총이 됩니다.
짧은 사거리가 문제되지 않는 시가지에서 단시간에 다수를 제압할 수 있는 화기를 마다
할 무장 경관은 없을테니.
게다가 프라이코프(Freikorp)들도 이 물건가지고 시가전에서 기관단총이 유용하다는걸
보여줍니다. (그러고보면 전후 독일도 꽤나 막장스러웠죠.)

바이마르 공화국이 시작되던 그 때, 원래 슈마이서가 생각했던 20발짜리 탄창이 살아나
며 1920이라 각인이 찍힌 MP18이 헤넬사(Haenel Waffenfabrik)에서 몇백정 정도가 생산
됩니다.
그리고 이 20발들이 탄창에 맞춰져 약간 더 개량이 되며 살아남은 MP18들도 이에 맞춰
개조되죠.

한편 베르그만사는 스위스의 SIG에다 라이센스를 팔며 덕분에 SIG Bergmann 1920이라
불리는 물건들이 만들어집니다.
스위스의 베르그만은 해외 수출을 위해 9mm Para탄외에 스위스가 쓰던 30 Luger탄이나
7.63mm Mauser탄을 쓰는 버젼도 나오죠.

중국도 이걸 만듭니다.
1925년 이후부터 에르마사(Erma Werke)의 지원하에 칭타오에서 만드니까요. (이 때 감
독 겸해서 파견된게 하인리히 폴머 Heinrich Vollmer입니다. 후일 MP38/40을 설계하는
바로 그 사람이죠.)

일본 역시도 스위스에서 베르그만을 사갑니다.
그리고 이걸 토대로 나중에 남부 중장이 100식 단기관총을 만들게 되죠.

한편 이런 활발한 해외 판매는 MP18에서 출발한 수출품들에 이런저런 변형을 만들게 됩
니다.
개중에는 삼각대나 양각대에 올려진 경우도 있었고 착검 장치를 가진다거나 탄창 멈치
가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옮겨지거나 하는 식이었죠.
이들 수출품들은 싸게 만드는걸 어느정도 생각했던 전쟁중의 MP18에 비해 더좋은 재료
로 더 좋은 가공 기술을 집어넣어 만들기도 합니다.

그 후, MP18은 헤넬에서 MP28이 되더니 이건 다시 덴마크나 벨기에등에서도 만들게 되
며 이젠 남미 지역으로도 수출하게 되죠.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도 MP28을 베이스로 MP34를 만들게 되며 거의 총 좀 만진다던 동
네에서는 깍아서 만들다보니 이리저리 판매된 베르그만들은 핀란드와 소련으로도 흘러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동네에 맞는 발전을 하게 되죠.


빌라르 페로싸
빌라르 페로싸의 사진을 보신 분은 아마도 인디애너 존스 3에서 비행기 후방에 달려있
던 기관총이 생각날 겁니다.

이건 이탈리아제가 아닌 스위스제 입니다.

기관단총이 아닌 기관총으로서 빌라르 페로싸도 나름 괜찮게 보였는지 비슷한걸 오스트
리아가 카피한 적이 있었고 스위스에서도 만든 적이 있었거든요.
또한 여러 곳에서 만들다보니 이름도 빌라르 페로싸외에 설계자의 이름을 따 레벨리 기
관총이라 불리거나 공장 이름을 따서 피아트(FIAT)라 불리기도 하죠.


톰슨
1919년, 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실전에 참전할 겨를이 없던 톰슨 영감님의 작품은 그냥
사장 시킬 수는 없던터라 제대로 팔아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그에 걸맞는 이름을
붙이게 되죠.

Autogun이나 Machine Pistol 대신 작고 가벼운데다 한명이 휴대가능한 기관총같은 완전
자동화기라는 것에서 Submachine gun이란 이름을 붙여주죠.
서브머신건(SMG)이란 단어는 이렇게 등장하게 된거죠.

1920년 8월, 오하이오의 캠프 페리에서 있었던 National Match에서 Annihilator와 그걸
개량한 물건(Model 1919)이 일반 공개 됩니다.

Model 1919는 약 40정 정도만 만들어지며 일종의 실험적 내지는 과도기적 모델입니다.
이런터라 개중에는 개머리판이 없거나 가늠쇠가 없는 것도 있었고 발사속도도 분당 1,5
00발 정도가 나오는 것도 있는데다 좀 더 뒤에 나온 것중에서는 외형상 거의 M1921과
비슷한 것도 존재합니다.


이건 M1919 중 하나로 10정 정도가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측되는 물건입니다.
첫 생산형에 속하며 주문시 제작, 판매하겠다고 하던 때의 물건이었다죠.


100발들이 드럼 탄창이 장착된 Model 1919는 관람자들에게 넝마를 찢어내는 거친 소리(
the loud ripping of a rag)라 묘사된 발사음과 화력을 보게됩니다. (드럼은 50발들이
도 개발되며 상자형 탄창도 같이 준비됩니다.)

당시 참관했던 콜트사의 관계자들 역시 이 총에 관심을 가졌고 특허권과 제조권을 사들
이려하나 이는 거부당합니다.
대신 콜트사와 레밍턴사등은 톰슨의 부품등을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하게 되죠.

이 시기, Model 1919는 뉴욕 시경이 약간 구매하며 이건 사용탄이 45 ACP가 아니라 45
Colt입니다.
그 외 다른 곳에 판매하기 위해 22LR, 32 ACP나 38 ACP 혹은 9mm Para까지 사용하는 것
들이 있었다 하죠.

1920년말, 더 변경된 설계가 적용된 최초의 양산형인 Model 1921이 등장합니다.
M1921은 작동부분과 총신은 콜트에서 생산됐고 레밍턴의 호두나무제 총상과 조정 가능
한 라이만사(Lyman Gun Site Co.)의 조준장치가 장착된 것으로 거의 외형은 지금보이는
톰슨의 모양을 갖추게 되며 부가적으로 블루잉 처리된 외관, 부품 공작까지도 섬세하게
되어져 있었죠.


이건 콜트가 만든 M1921중 하나입니다.
사진에서 100발들이 드럼탄창을 꼽고 있고 이 100발들이 탄창은 그저 Type C 라고 불렸
죠.
이 100발들이 Type C외에 50발들이 Type L 드럼 탄창과 20발짜리 Type XX 상자형 탄창
도 있었고 18발들도 있었다죠.

아, 이미 눈치 채신 분도 있겠지만 Type C나 L, XX는 바로 로마자 숫자를 알파벳으로
표기한거죠.
댓글 : 2 개
이총이 유명해진 큰 이유는 원형통 탄창도 이유지만

가장 큰건 마피아의 대부 알카포네 (맞나??)가 써서 더 유명해졌죠
응? 문제중년 아저씨 블로그에 있는 글이네요.
여기서 다시 보니 반갑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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