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덕밀덕] 톰슨기관단총에 대하여. -2부-2011.12.10 PM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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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O.V.Payne의 이름으로 오토 오더넌스가 낸 특허중.


이건 드럼 탄창의 특허.
작동원리는 아래에서...


상자형 탄창의 특허.
더블 컬럼(double column), 더블 피딩(double feeding) 방식입니다.
이런 형태의 탄창은 총의 폭을 넓게 만들고 노리쇠와 피딩 램프의 설계를 좀 더 크게 해워야
한다는 결점은 있지만 급탄과 송탄시 문제가 덜합니다.
반면 MP40이니 스텐이니 그리스건등이 사용한 더블 컬럼, 싱글 피딩은 다좋은데 탄창에 이
물등이 끼면 곧잘 탈을 내기 십상이란게 결점이었죠.


이게 라이만 사이트.

어쩌건 15,000정 가량이 만들어진 Model 1921, 미육군과 해군, 각국의 군대에 시연되나

그렇게 인기를 끌지는 못하죠.
당시 톰슨의 가격은 225달러였고 루이스 기관총이 680달러였던 점을 본다면 가격문제가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렇게 뭔가 시원찮은 반응이 나오자 오토 오더넌스, 1922년부터 진행했던 새로운
45 Remington-Thompson탄을 사용하여 사거리를 늘린 Model 1923을 Submachine Rifle이
란 명칭으로 미육군에 제안하게 되죠.


이게 1922년에 나온 Submachine Rifle입니다.
10정 안되는 양이 만들어져 실험되고 끝나죠.
현재는 현물로 남은게 없다죠. 아마.


이 물건에는 착검 돌기나 멜빵같은 군용에 어울리는 부품들도 갖췄지죠.
그러나 이미 BAR이란 강력한 경쟁 상대가 있던터라 미육군은 안삽니다.

소대당 3정 이상.
--- 1940년대 미군 보병 기준으로 BAR의 지급량.

저조한 판매와 군의 관심에 방향을 이젠 미국의 주경찰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쪽도 역시나 그렇게 대량이 판매되지는 않았고 1925년 겨우 3천정이 판매되고
끝납니다.


우악스런 물건이 방법용으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군용과 경찰용으로 실패한 톰슨은 오히려 민간판매가 이뤄지며 유명해 집니다.
톰슨을 구입한 목장주가 멕시코 소도둑들에게 총알의 비를 쏟아냈다는 소식과 광고가
실리며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나요.


도둑놈에게_이게_특효약.gif


이 때만해도 총기 규제는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팔만한건 다 올라갔다는 백화점
통신판매 카탈로그에 톰슨이 올라갈 수 있었죠.
그러다 1934년, 범죄방지를 위해 기관총, 기관단총과 짧은 총신의 산탄총이나 라이플,
소음총등의 민간판매가 불허되죠.
본격적인 미국 총기규제의 시작된거죠.

단, 민간 판매도 그닥 잘된건 아닙니다.
역시 가격 문제였죠.
총 하나 가격이 당시 400달러 정도였던 포드 T 모델에 대해 절반 정도였으니...

1920년 1월 16일, 볼스테드법(Volstead Act)이 통과됩니다.
미국정부는 주류의 제조, 판매, 수입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그에 따라 술을 원하는 사람
들이 넘쳐나게 됐으며 이 시류에 편승한 밀주자들과 갱들이 등장하게 되죠.
덕분에 톰슨 기관단총은 갱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버립니다.

간단하며 숨기기 쉬웠고 - 개머리판은 분리 가능합니다 - 치명적인 화력을 가졌으며 사
격실력이 거기서 거기던 갱들로선 가까운 거리에서 순식간에 여러명의 목표를 쓸어버릴
수 있었고 부차적으로 목표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 쓸어버리는 유감없는 성능을 발휘하
는 이 좋은 물건을 사랑안할래야 안할 수 없었죠.

더욱이 두꺼운 문뒤나 자동차속이라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던 이 총은 금
새 인기가 급상승, 무려 정당 800달러이상이라는 거금을 줘야만 살 수 있게 되죠. (당시
사무원의 봉급이 30 ~ 40달러 정도.)


알 카포네(Al Capone), 공공의 적 죤 딜린저(John Dillinger), 보니와 클라이드 일당같
은 거물급 범죄자들이 톰슨 기관단총을 사용했고 Chicago Typewriter, Tommy Gun, Cho-
pper, Gat같은 애칭이 붙여지게 되며 등뒤나 침대위에서 난사당해 지터벅(4/4박자)을
추며 죽는다는 전설들을 만들게 되죠.


영화와 현실은... 다릅니다.
공공의 적 No.1 죤 딜린져.


뉴욕시 경찰 박물관의 전시물이라나요.
금주법 시대 스타일의 토미 건.
개머리판은 휴대를 쉽게 하기 위해 제거되기도 됩니다.


바이올린 케이스에 넣어진 치명적인 4/4박자 악기.


그리고 이렇게 대중문화에도 흔적을 강하게 남기죠.
저 노란 코트에 굉장한 시계를 찬 형사도 말입니다.


이때 톰슨 장군은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죠.

그의 이름을 따고 군용으로 사용되기를 원했던 기관단총이 갱들과 살인자들의 무기가
되버렸으니.

한편 톰슨의 첫 생산분중 일부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아일랜드로 보내집니다.
나중에 IRA가 무기 확보를 하는 방법에 대한 전례가 생긴거죠.
약 650정 가량이 주문되나 500정 가량은 뉴욕항에서 적발되고 그후 다시 일부가 이런저
런 경로를 통해 아일랜드로 보내져 1919 ~ 1921년의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1922 ~ 1923
년의 내전 상황에서 사용되게 되죠.

그러나 아일랜드에서 톰슨은 그닥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합니다.

1926년, 컷츠 보정기(Cutts Compensator)가 M1921의 옵션 파트로 판매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판매는 영...


컷츠 소염기는 라이만사에서 판매하던 물건이었죠.
위는 산탄총의 쵸크 겸 컴펜세이터 역활을 하게 만든 물건입니다.



일이 계속 안되자 오토 오더넌스도 먹고 살아야하니 해외 판매도 계속 추진되고 1920년
대 중반쯤에 영국의 BSA(Birmingham Small Arms Co.)가 톰슨의 라이센스를 사갑니다.
이렇게 해서나온게 BSA 모델인데 이건 우리가 흔히 아는 그 톰슨과는 모양이 상당히 다
릅니다.
사용탄도 9mm Para나 7.63mm Mauser같은 유럽 군대에서 흔한 탄약을 사용했고 프랑스등
등에 제안되나 물먹고 소수만 만들고 끝나버리죠.




영국의 기관단총들.
위에서 아래로.
Lanchester Mk.1
MP28II
BSA M1926

1927년, 민간 판매를 크게 의식한 Model 1927이 등장합니다.

이건 Model 1921에서 반자동만 가능하게 해놓은 것으로 덕분에 SMG라는 이름 대신 Tho-
mpson Semi Automatic Carbine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주로 경찰이 사갑니다.
단, 반자동만 가능하지만 방아틀 뭉치를 바꾸면 완전자동이 살아나는터라 이런 개조가
이뤄졌고 반대로 완전자동이 되는 물건을 이런 식으로 바꾼 경우도 있답니다.


1936년 Model 1927의 광고

군용보다 민간에서 어느정도 이름값 하게 되면서 정부에서도 결국 톰슨을 구매하게 됩
니다.
최초로 구매한 곳은 해안경비대(Coast Guard)로 이들은 톰슨이 정선명령을 어긴 밀주업
자나 밀매자(rum-runners)들의 작고 빠른 배에 즉효약임을 알게된 것이죠.


정선 불응하시면 안죽을만큼 추격해드리다 한방에 보내드립니다.
해안경비대 상조.


이건 2차대전중의 해안경비대.
BAR에 톰슨, 잘보시면 라이징 기관단총까지 보일 겁니다.

1927년에는 미해병대가 250정의 톰슨을 발주, 우편트럭을 습격하는 범죄자들에게 맛을
보여주죠.
당시 우편트럭을 다양한 화물과 돈까지 운반했고 해병대 병사들이 호위했다고 하니.

또한 미해병대는 1928년, 바나나 전쟁(Banana War)중 니카라과의 정글에서 톰슨을 사용
하게 되죠.
톰슨은 4인 1조의 화력지원팀에 배치되어져 운용되며 1개조가 소총 분대보다 화력이 더
우수하다는 평을 받게 되죠.
그러나 무겁다는 점과 권총 사거리 정도(50야드 정도)에서나 위력적이다라는 점으로 시
큰둥한 반응을 얻기도 합니다.

여튼 비교적 만족한듯 200정을 더 추가주문하게되며 1930년에는 정식채용, 그들 스스로

Tommy gunner란 애칭을 달게되죠.


산디노와 그의 참모들.
바나나 전쟁을 언급하려면 반드시 나오는 분이죠.

한편 미해군에서는 1928년, 해병대의 니카라과에 대한 군사활동에서 톰슨의 성능을 보
고 중국이나 식민지등에 나가있던 해군의 하천포함(gunboat)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구입
하죠.
무장이 가벼운 하천포함에 접근하는 작은 보트들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말이죠.


포함외교란게 있죠.
미해군의 Panay 호. 1928년 8월 30일.
나중에 이 배는 모종의 사건으로 격침(? 사고라고 주장하는 쪽도 있지만)당하죠.

해군은 전방 손잡이를 좀 더 개수하고 발사속도를 낮춰주기를 원했으며 오토 오더넌스
사는 해군의 요청대로 손잡이 부분을 개량하고 노리쇠 부품의 무게를 증가시켜 분당 60
0발정도의 발사속도로 내는 톰슨을 만들어 납품했고 이는 U.S. Navy Model of 1928이란
명칭으로 채용됩니다.


상하이 시내를 순찰중인 미해병대.

이렇게 뒤바뀐 순서대로 군에 채용된 톰슨은 1931년, 결국 미육군에서도 채용됩니다.
그러나 미육군에서는 그렇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죠.
뭐랄까... 마지 못해 써본다 정도였고 사간 양도 형편없었죠.

덕분에 1930년대 후반까지 오토 오더넌스는 M1921부터 그 때까지 나온 것들 해서 거의
4천정 이상의 재고와 경영 악화로 고민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다 슬슬 유럽에 전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단 1938년, 톰슨은 채용에 대해 소극적이던 미군에 의해 정식 채택되며 대량 생산으
로 방향이 잡히며 M1928A1 이 등장합니다.

이 물건은 미국이 전쟁에 본격 참전하기 전 대량생산된 형태이며 M1928을 베이스로 구
조가 더 단순화되며 세부가 달라지죠.
562,511정이 생산되며 이 때부터 무겁고 고장나기 쉬운 드럼 탄창이 슬슬 빠지게 됩니
다.
전쟁이 시작되며 나온 것중에서는 가늠자를 고정식으로 바꾸고 총열도 방열핀이 없는
것이 사용되기도 하죠.

한편 이 M1928A1은 미군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발주를 받게 됩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등이 당장 바로 현금을 주고 필요한 양을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부담을
덜받으며 살 수 있는 기관단총은 톰슨이 사실상 유일한 판이었으니.

일이 이렇게 되자 이젠 경영 상황이 나빴던 오토 오더넌스에개 때아닌 호황이 독으로
작용합니다.
기아선상에 서있던 사람에게 기름진 식사를 줬더니 픽픽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것처
럼.
주문량에 맞춰 생산하려니 이미 가진 설비로는 택도 없더라는 거죠.

그렇다고 공장 큰거 잘 돌리던 콜트에다 맞기려니... 아뿔사.
콜트 역시도 미군의 주문 채운다고 난리치고 있었고 무엇보다 BAR 생산한다고 톰슨을
만들어줄 상황이 아니더란 것이었죠.

이에 오토 오더넌스, 새비지와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이 새비지와의 협력은 나중에 새로운 형태의 톰슨을 만드는데 일조하게 되죠.

여튼 미군에 채용된 M1928A1, 곧 오토바이, 정찰 임무, 부사관층의 무장으로 지급이 이
뤄지게 되며 새로운 병과, 낙하산 병들도 눈여겨 보게되며 기갑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죠.




저런 물건들이 있으면...
물론 둘다 타고 다니고 쏘기에는 좀 그렇긴 합니다.
오래 사는게 좋은거죠.


새로운 기병대.

한편 미군보다 더 큰 수요가 영국과 프랑스군에게서 나오게 되죠.
프랑스군의 경우 전쟁직전 만 단위로 M1928A1을 사기로 작정했고 물건이 선적되어져 보
내지나 프랑스가 패배하는 바람에 영국으로 가버리게 되죠.
누가 그만큼 빠르게 질거라 예상이나 했냐만은.

1940년에 M1928A1을 가져간 스웨덴군은 Kulsprutepistol m/40 이라 부르며 1950년대까
지 사용합니다.

그외 식민지 네델란드군이 구입해서 썼다거나 하는 소사도 존재하죠.

식민지 파견 네델란드군의 톰슨

그러나 중요한건 M1928A1의 주고객은 영연방이었고 영국만해도 1941 ~ 1942년까지 대략
300,000정 가량을 사갑니다. (이들중 아마도 절반 가량은 현재 대서양 해저에 있다고
추정중입니다. U 보트는 톰슨과 차 둘을 해저로 보내버린 거고 변태 신사들을 열받게 만든거죠.)



어쩌건 영국과 캐나다의 코만도 부대에서 톰슨은 잘 사용되며 그 발사속도와 신뢰성,
근접거리에서의 위력으로 좋은 평을 듣게 되죠.




광고의 역효과 사례 중 1.
원래 코만도 부대 시찰나가서 이렇게 찍은 사진을

요렇게 바꿔서 깡패 두목 처칠, 현상수배해여 라고 뿌렸더니...
영국인들이 좋아하다라능.

교훈: 안하니 못한 광고도 있더라.

참고로 처가 일곱명 되는 저 분, 총들고 있거나 쏘는 사진이 좀 됩니다만 이 사진만큼 임
팩트가 큰 것도 없죠.

태평양에서 앤잭들 역시도 처음에는 톰슨을 사용하며 정글에서 발사속도와 위력에 좋은
평을 받지만 항상 수요보다 공급이 달렸는데다 예비부품과 탄약 구하기가 쉽지 않아 점
차 다른 기관단총으로 교채되죠.

M1928A1중 일부는 소련에 보내집니다.
총이 단독으로 렌드 리스된게 아니라 렌드 리스된 전차따위에 끼워져서 보내진 식이었
다죠.


와, 소시 달력을 시켰더니 통닭이 따라나왔어요.


동무, 우리는 기관단총 시켰더니 탱크가 따라오더라고.


중(medium)전차 M3의 무장 및 탄약.
1문의 75mm 포 M2 / M3 가 M1 포가에 올려져 고정

1문의 37mm 포 M5 / M6 와
1정의 30 구경 브라우닝 M1919A4 이 M24 포가에 올려져 포탑에 장착.

1정의 M1919A4 기관총이 규폴라에 대공용으로.

1정의 M1919A4 기관총이 차체 전면부에.

1정의 45 구경 기관단총 (M1928A1 / M1 / M3중) 1정.

탄약.
75mm 46발.
37mm 178발.
30구경 기관총탄 9200발
45구경탄 1200발
수류탄 12발. (파편 4발 + 연막 4발 + 공격형 M3 2발 + 소이 2발 = 계 12발)

참고로 기관단총 1정은 셔먼이나 M24 채피같은 각종 미군의 전차에서도 고대로 탑재 됩
니다.
단, 탄약 휴대량은 저 M3 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많은 편이고 보통은 600발 전후
가 탑재되죠.
그외 승무원에게 권총 2정에 소총 2정 정도가 지급되며 알아서 구해서 탑재하는 경우도
있었다죠.


1942년, 포트 녹스에서의 훈련중.

재미있는건 이렇게 소련에 보내진 것중 일부가 1990년대초쯤에 다시 미국으로 귀환했다
는 점일겁니다.
단, 완성품 형태로 온게 아니라 부품 단위로 오며 이건 말그대로 스페어 파트로서 판매
됐다나요.

이렇게 렌드리스로 소련에 보내진 톰슨, 탄약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또 미칠듯
이 기관단총을 찍어내던 소련군에게 스투드베이커나 스팸같은 흔적을 남기지는 못합니
다.
모스크바 근방의 인구 1천 안되는 작은 마을들에다가 공장 만들더니 노인과 여자, 어린
얘들 대리고 한달에 3천정 넘게 만들던 동네에서 고작 몇백 몇천 정도 보내지던 기관단
총이 무슨 큰 영향을 미칠지 본다면 빤해지죠.


한편 전차는 아니지만 잠수함이나 해군의 함정에서도 톰슨이 비치된 경우가 있었고 -
하천포함에 이미 비치됐으니 어련하겠냐만은서도 - 태평양 전선의 발라오급 잠수함 기
준으로 4정 이상의 톰슨이 비치됩니다.

그리고 실험하다 끝나긴 하지만 스테인레스로 톰슨 기관단총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뤄지
기도 하죠.
이유는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염분과 습기가 듬뿍 담긴 바닷바람과 그 바닷바람을 맞을
해군들 때문이었죠.

이런터라 일부 잠수함에서는 이 톰슨을 가지고 소형 선박 습격을 하기도 했죠.
뭐 개중에는 일본인 표류자를 사살하거나 바브(USS Barb, SS-220)처럼 함장과 승무원
모두가 한성격하는 쪽이었으면 함내 무장을 들고 상륙해서 폭탄으로 사보타지를 한다거나
하기도 했다죠.



바브의 전력기.
가장 아래 기차는 럭키 플러키 함장과 그 부하들이 상륙, 기차 상대로 폭약 가지고 불꽃놀
이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위의 작은 별은 패트롤 횟수. 그리고 그에 따른 표창.
욱일승천기는 일본 해군 함정 격침.
히노마루 벤또는 상선 격침.
스와스티카는 독일군함 격침.
작은 십자는 조종사 구출 횟수,
대포는 지상 포격을 한 의미 랍니다.


미해병과 육군도 톰슨을 사용하나 과달카날과 뉴기니의 정글에서 45 구경탄이 가는 나
무를 관통하지도 못할 때가 있다는 이유에서 효과적인 무장으로 보지는 않게 됩니다. (
야간에 발사음이 일본군의 총소리와 비슷해서 사용을 잘 안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덕분에 BAR이 더 인기를 끌게 되죠.

그래도 소대당 2정 정도를 가지고 첨병과 후미에 위치, 매복등의 상황에서 즉각 조치하

는데 꽤 써먹기도 합니다.


핸더슨 비행장의 전투중, 일루(lull) 부근에서 휴식중인 해병대 기관총 사수

태평양외에 유럽으로도 미국이 참전으로 가면서 미군의 톰슨 수요는 더욱 늘어나게 됩
니다.
소대당 1정 이상의 기관단총이 필요한데 확보된건 형편없었으니.
그렇다고 급히 생산하기에는 다른 총기까지 급하니 톰슨만 만들 수도 없고 영국은 총
더 달라고 난리지 잠수함은 대서양을 휘젖고 다니지.
이렇게 되자 머리 아파진 미국, 더욱 간단하게 톰슨 혹은 기관단총을 만들 방법을 찾게
되죠.

이에 1942년 4월, 늘어나는 기관단총 수요에 맞춰 간략화시킨 모델이 등장하니 이게 M1
입니다.
1943년부터 지급이 시작된 이 물건은 새비지에서 과감하게 생산시 손이 더가는 블리쉬
록 대신 단순 블로우 백으로 바꿀 정도로 생산성 위주로 가게 됩니다.


이랬던 물건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외부적으로 장전 손잡이가 위가 아닌 총의 오른쪽으로 이동되며 가늠자도 더 단순화 됩
니다.
총열에서는 컷츠 보정기와 방열 핀이 제거되며 개머리판도 분리 불가능하게 변하죠.
탄창도 무겁고 만드는데 시간걸리는  드럼 탄창은 아예 탄창 삽입부를 변경해 사용하지
못하게 해버렸죠.

그리고 이걸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공이가 3개 부품으로 구성되어진 M1을 더욱 쉽게
만들자고 아예 노리쇠 고정식으로 변경했고 생산 간소화를 위해 더 손댄 모델을 만드니
이게 M1A1입니다.

이렇게 생산에 신경을 쓴 덕분에 1939년, M1928A1 의 가격이 200달러 정도였던데 비해
M1은 70달러, 1944년의 M1A1 가격은 45달러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비싸다고 M3 그리스 건이 치고 올라오죠.

이런 와중에 실험적인 것도 시도됩니다.
대표적인게 30 Carbine탄을 사용하는 모델이었죠.
외형상 일반적인 톰슨과 거의 같으나 총열이 변경됐고 총구가 튀는걸 막기위해 총구 부
근에 무게를 더하는 식으로 처리됩니다.
생산이 되지는 않습니다.


1944년 8월 11일경(?),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저항군들.
왼쪽에 톰슨이 보이죠.

전쟁이 씉날 때까지 M3 그리스 건의 생산이 제 궤도로 올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산
된 톰슨 기관단총은 5년후 벌어진 한국전에서는 그닥 널리 사용되지는 못합니다.

이는 톰슨이 못채운 부족분을 그리스 건이 채운다는 2차대전때부터 나오던 생각과 예비
분의 확보가 그리스 건쪽이 쉬웠다는 것이 주요인이었죠. (단, 미육군과는 입장이 다른
미해병대는 톰슨을 소수지만 사용합니다.)

반면 중국군이 내전중 노획한 톰슨을 다량보유하여 사용했고 이들 일부는 다시 원주인
인 미군에게 노획되어져 사용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죠.

참고로 중국 역시도 오랜 톰슨의 고객중 하나였죠.
이미 1930년대 들어서자 저기 염석산 같은 군벌들이 톰슨을 사간 적이 있었고 45구경탄
을 사용하는 마우저 권총도 만들던 판이니 아예 야메로 카피 생산까지 한 경우도 있답
니다.

그러다 중일 전쟁 터지고 어쩌고하면 본격적인 지원도 받게 되죠. (뭐 이러고도 말아먹
은 국민당은 등신 맞죠?)
이런 와중에 해적판 내지는 동네에서 알아서 카피판 만들기 신공을 톰슨 역시도 겪게
되죠.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만서도.


1965년경, 노획된 베트콩의 무장.
왼쪽에서 부터 마드센, 스텐, 카빈이며 가장 오른쪽의 톰슨은 상태가 좀 안좋죠.
바로 저게 마데제 입니다.

베트남전에서도 톰슨은 사용됩니다.
남베트남의 일부 부대나 지역 자경단등에 톰슨이 지원되고 일부 미군이나 고문단에서도
톰슨을 사용합니다.
베트콩 역시도 톰슨을 꽤 애용했고 개중에는 중국제 카피판이 지원된다거나 베트콩 자
체내에서 카피판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도 벌어지죠.



1960 ~ 1970년대, 아일랜드에서도 톰슨이 다시 사용됩니다.
IRA에서 AK와 아말라이트가 뜨기전 톰슨은 주무장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하죠.

군에서는 자리를 내준지 좀 됐지만 FBI를 위시한 사법기관쪽에서는 꽤 오랫동안 톰슨을
사용합니다.
FBI만해도 1976년까지 보유했다가 소수의 전시 혹은 교육용만 남기도 모조리 폐기했으
니.

한편 좀 별난 이유로 1990년대에 톰슨이 다시 세상에 나오는 일도 벌어집니다.
이야기는 2차대전 종전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죠.

2차대전이 끝나자 유고슬라이바는 대전중 노획한 독일군 장비와 전쟁 직후 얻어낸 이탈
리아군 장비로 무장합니다.
동시에 전쟁 배상금조로 뜯어낸 독일과 체코의 설비를 사용해 총기 생산에 착수하죠.
이 때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와 함께 유고슬라이바에 무기를 지원합니다.

특히 1948년, 티토가 스탈린에게 우리 독자노선 걸을건데 건드리지 마슈라고 침뱉고 일
어선 그 후로 미국의 군사 지원은 더욱 커지게 되죠.
1961년까지 600백만 달러정도에 해당하는 지원이 이뤄지고 유고슬라비아군 장교가 미국
에서 교육받고 가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유고슬라비아군은 2차대전급 무기나 그보다 개선된 50년대 무기 - 예컨
데 M4 셔먼이나 M47 패튼, 하프 트랙, 포병 장비에서 전폭기까지 얻게 되고 이들 무기
중에는 미국제 권총(M1911A1)이나 톰슨 기관단총도 들어 있었죠.

그 후, 바르샤바 조약도 나토에도 안들고 튕기던 유고, 물주 소련에게서 이거 저거 좀
얻어내며 지내다 연방이 깨지며 인종 갈등으로 반목하게 되자 그 동안 만일을 위해 동
네마다 짱박아놨던 무기고를 털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되죠.
당연히 톰슨도 이 와중에 꺼내져 사용됐다 하죠.


인간이 우주에 나가서도 토미건은 사용될리가 없잖아.
M41A Pulse Rifle


마무리로 2차대전중 해안경비대 사진 한장.


p.s:


위는 톰슨의 드럼 탄창 입니다.
주목해서 보실 부분은 A, B, C 부분이죠.

A는 탄을 위로 올려보내는 피딩 램프 역활을 합니다.
사진에는 안나오지만 저건 돼지 족발처럼 중간이 푹 파여져 있죠.

B는 탄밀대인 셈입니다.
태엽에 의해 돌아가며 A(램프)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진에서 탄밀대중 하나가 램프를 통과 중이죠.

C는 탄의 이송 경로를 보여주죠.

원리는 엄청 간단합니다.
감아놓은 태엽에 의해 탄밀대 B가 돌아가며 탄을 A에 때려박아버리죠.
그러면 탄은 램프 A를 타고 위로 올라갑니다.

이 구조는 후일 다른 드럼 탄창 - 예컨데 수오미나 파파샤같은 - 에서도 비슷하게 활용
되죠.

더하여 저 드럼탄창의 장전은 다음 순서로 이뤄집니다.

1. 증간에 끼어있는 고정 나사 겸 태엽감개를 풀어냅니다.

2. 이송 경로 C가 표시된 탄창 뚜껑을 때냅니다.

3. 탄밀대와 탄밀대 사이에 탄을 세워서 꼽아서 세워 넣습니다.

4. 다 채웠으면 뚜겅을 다시 덮고 태엽감개를 원위치 합니다.

5. 태엽 감개를 잡고 돌려서 태엽을 감습니다.

6. 총에 꼽고 쏘면 끝.

라스트 맨 스탠딩이던가?
브루스 윌리스 나오는...
거기서 저 탄창 채우는 장면이 나오던가 그럴 겁니다.

댓글 : 5 개
  • Durak
  • 2011/12/10 PM 10:49
참 재미있네요. 지금도 이런형식의 탄창이 사용되나요? 최신식의 무장에선 별로 구경해본 바가 없는지라.. 허구한날 작동불능나는 K-3 기관총 보다는 신뢰성이 높고 가벼워 보이는데
중동에서 ak 가내수공업 수작업으로

만드는거 보고 식겁했는데 ㅋㅋ
와...게시물이 아니라 추천을 못날리네요.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
총기자체가 단순하게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욤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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