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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밀덕] 네이팜.(1)2012.07.28 PM 06:17
오래전 인류는 불을 발견하면서 또 그 불을 쓰는 방법을 넓혀가면서 불이 유용한 무기
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재빨리 간파하죠.
덕분에 이미 기원전에 각종 화공 작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런 판이니 기원전 424년에 스파르타가 델리움(Delium)의 그리스 요새를 공격할 때 각
종 수지와 황, 아마같은 섬유등을 혼합한 가연물(incendiary)이 든 단지를 던져 성벽과
그 내부를 태운건 놀라운 일도 아닐 겁니다.
비슷한 소이제는 기원전 360년의 트로이 전쟁에서도 사용됐으리라 봅니다.
이런 식이다보니 로마군이 투석기에다가 저런 가연물이 담긴 단지따위를 담고 발사하는
건 전례를 발전시킨 예라고 봐야겠죠.
한편 이런 와중에 아직도 그 성분에 대해 모호한 그리스의 불(Greek Fire)도 등장하게
되죠.
아마도 황, 역청과 나프타, 수지와 생석회(quicklime), 어쩌면 초석따위가 들어갔을 수
도 있는 이 화합물은 7세기경에도 비잔틴 제국에서 사용될 정도였고 해전에서도 쓸만했
던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화염방사기의 조상에서 유지계 소이탄, 심지어 초기의 화약이
아니었을까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단지속에 들어간 것만 아니라 오늘날 화염방사기처럼 사이펀으로 분사되기도 했으
니.
그리스불의 사용법중 하나 - 통에 담고 투석기로 쏘기.
그리스불을 사이펀으로 쏘기 - 해전중
그리스불을 사이펀으로 쏘기 - 공성전중
19세기를 지나 20세기 들어서며 이전 시대의 그리스불 분사장치가 현대화되어 등장합니
다.
이미 20세기 초엽 각국 군대에 이런저런 화염방사기의 아이디어가 제안되나 화염방사기
가 가진 한계 - 시원찮은 사거리 - 로 인해 눈부시게 발전한 총포에 밀려 별 관심을
못끌었죠.
그러다 1차대전이 터지면서 참호전이 시작되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방의 참호로 육박, 단시간내에 참호를 쓸어버리는데 있어서 그 당시의 총기류로는
재미없는 일이었고 수류탄으로는 뭔가 모자란 감이 있었으니.
이에 독일군, 화염방사기를 실전에 투입해 봅니다.
이미 1901년, 리하르트 피들러(Richard Fiedler)가 발명한 가스압식 화염방사기를 1908
년에 실험해본데다 이를 더욱 개량한 것을 1911년 휴대가 가능한 소형화염방사기(Klei-
nflammenwerfer)와 수레에 얹어 끌고다닐 정도의 크기를 가진 대형 화염방사기(Grossf-
lammenwerfer)로 채택하고 있던 판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었겠죠. (당시
화염방사기는 공병중대에 배속되어져 있었습니다.)
소형이나 대형이나 압축된 이산화탄소나 공기, 질소로 연료(휘발유)를 분사하며 마그네
슘등이 혼합된 점화봉으로 점화한다는 것이었죠. (점화봉은 사용후 교채)
네델란드 잡지에 난 독일군의 화염방사기
1914년 10월, 아르곤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참호에 처음 사용되며 1915년 2월의 베르덩
전투에서는 본격적으로 사용되죠.
꽤 성공적이라 연합군을 공포에 빠트렸고 별도의 화염방사기 팀도 등장하지만 문제는
이 장비 자체가 사용하는 입장에서도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는거죠.
소형은 작다해도 어깨에 짊어지는 순간 완전군장만큼 부담스러웠고 사거리도 고작 18m
정도인데다 방사가능한 시간도 겨우 몇초 정도였으니.
대형은 그래도 사거리 32m정도에 40초정도 불을 뿜을 수 있었으나 이건 사람이 휴대한
다는건 애초에 머나먼 이야기였죠.
이런터라 화염방사기 조에는 호위역활을 할 소총수들이 붙여집니다만 그런다고 화염방
사기 조의 평균수명이 대폭 향상된건 아니란게 현시창이었죠.
뭐 어쩌건 독일군의 성공에 따라 곧 프랑스와 영국군도 화염방사기를 개발해 전선에 배
치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중 프랑스군이 개발한 것이 좋은 성능을 보여줬고 여기에는 번거로운 점화봉 대신 수
소가스 토치가 점화용으로 부착됩니다.
발사기 노즐 부분에 달린 작은 수소 토치(대형 가스 라이터로 보시길)를 먼저 점화하고
있다 방아쇠 당기면 바로 불붙은 휘발유가 뿜어져 나간다는 것이었죠.
한편 각국이 화염방사기를 써대면서 그냥 휘발유나 벤젠같은걸 화염방사기에 넣고 쏘는
게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다는걸 알게 됩니다.
휘발유는 쉽게 불이 붙고 잘타지만 곧잘 목표 표면에서 물처럼 흘러내려 지속적인 연소
효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었고 흙이나 콘크리트등에서는 곧잘 홉수되어버리기도 하는데
다 물을 부으면 씼겨져 내려가버리기도 했죠.
부차적으로 분사시 사방으로 퍼지려는 덕분에 비거리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말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휘발유의 점성을 높여 끈적대게 하는 것
이었고 그래서 일치감치 휘발유에 타르를 혼합하거나 점성이 높은 기름, 생고무(latex)
를 혼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게 모두 다 만족스러웠던건 아니었죠.
타르나 다른 종류의 기름은 곧잘 가연성을 떨어트리기 일쑤였으니.
아쉬운대로 1차대전중 타르따위가 그럭저럭 사용되지만 전쟁 끝나고 새로운 그리고 더
욱 거대한 전쟁으로 다가가며 더 나은 해결책이 연구됩니다.
그 중 생고무(latex)가 꽤 괜찮게 평이 됩니다.
그러나 생고무는 2차대전 터지면서 자원 수급 문제로 벽에 부딫히게 됩니다.
타이어등의 전쟁수요를 대기도 벅찼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일이 꼬이자 미군, 고무 대신 휘발유를 끈적대게 할 물질을 찾게되고 듀퐁과 스
탠더드 오일의 지원하에 1942 ~ 43년 동안 하버드 대학의 루이스 피서(Louis Fieser)의
팀이 연구를 하게 되죠.
그리고 1943년 여름, 마침내 휘발유를 끈적대게 하면서 고무보다 구하기 쉬운 물질이
등장합니다.
바로 스테아르산이나 팔미틱산 혹은 나프텐산의 마그네슘이나 알루미늄 비누였고 이것
들은 휘발유를 끈적대게 하는 물질(thickener, 우리 교범에서는 티크너)로 꽤 만족스러
웠습니다.
가루 상태로 운반, 보괸되다 야전에서 휘발유에 쏟아붓고 저어주면 금새 끈적대는 겔이
만들어지는데다 독성도 없었죠.
또한 나프텐산은 원유 정제의 부산물로 얻을 수 있었고 스테아르산이나 팔미틱산같은건
동식물성 유지에서 쉽게 얻어낼 수 있었으니 가격도 착했죠.
덕분에 요 비누들에는 NAphthenic acid와 PALMitic acid의 앞자를 딴 네이팜(NAPALM)
이란 이름이 붙여집니다.
전설과 악몽이 시작된거죠.
잠시 옆길로 빠져...
네이팜이 물같은 휘발유를 끈적이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알면 이해되
실 겁니다. (더 자세한건... 유기화학을!)
1. 비누
알루미늄 비누라고 하면 뭔가 좀 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방산의 금속염을 비누
라고 한다는걸 보면 그닥 희안한건 아닐 겁니다.
쇠기름, 돼지기름, 야자유부터 폐식용유등등의 유지류에 수산화나트륨(가성소다)같
은걸 넣고 열을 가하면 분해되면서 글리세린같은 다가알코올이 빠지고 지방산의 금
속염, 바로 비누가 생성되죠.
이건 전형적인 소다 비누.
물을 싫어하고 기름 좋아하는 지방산 꼬리와 물좋아하는 금속 머리 부분이 있죠.
이렇게 만들어진 비누의 분자는 기름을 좋아하는 지방산 꼬리와 물을 좋아하는 나트
륨과 같은 금속 머리로 이뤄지며 머리 때문에 물에 녹게되죠.
그리고 물에 녹은 상태로 있다 기름때를 만나면 기름을 좋아하는 비누 분자의 꼬리
부분이 기름때를 에워싸게되고 이 상태에서 물을 좋아하는 머리가 물쪽으로 가려는
덕분에 세탁물에서 기름때가 떨어져나와 물에 씼겨나가게 되죠.
기름 방울을 꼬리가 감싸서 때내버리는게 비누의 세척 원리죠.
그런데 만약 물속에 마그네슘같은 2개의 이상의 지방산을 물 수 있는 염류(이온)가
있다면 비누의 나트륨 머리 대신 마그네슘이 머리로 가고 양옆에 커다란 지방산 꼬
리 2개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면 나트륨대신 머리를 차지한 마그네슘이 물과 만나려면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
죠.
양옆에 덩치 큰 지방산이 2개씩이나 달라붙어있으니 물과 바람피울 수가 없으니.
이런 현상으로 인해 마그네슘 따위의 염류가 없는 단물에 비해 마그네슘 따위가 들
어간 센물(경수, hard water)에서 비누가 안녹더라는 일이 벌어지게 되죠.
반면 양옆에 덩치 큰 지방산 2개를 가진 덕분에 물에 안녹는 비누는 기름과 같은 지
방산이 좋아할만한 물질에는 녹게되죠.
알루미늄의 경우는 마그네슘이 지방산 2개를 무는데 비해 3개를 물 수 있습니다.
더 덩치가 커지고 물에는 더 안녹겠죠.
2. 덩치빨
무극성 탄화수소는 분자의 편극에 의해 분자 서로간이 약한 정전기적 인력으로 붙어
다니게되며 분자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힘은 더 커집니다. (덩치가 클수록 편극이
일어날 여지가 커지므로)
덕분에 분자량이 증가할수록 분자간의 인력에 의해 좌우되는 끓는점이 올라가고 덩
달아 점성도 커지려 하죠.
관련해서는 상온에서 기체인 프로판이나 부탄과 그걸로 고기구워먹고 불판 닦아내려
면 환장하게 만드는 상온에서 반고체인 쇠기름이나 돼지기름의 분자량을 보시면 될
겁니다.
프로판이나 부탄은 탄소가 겨우 3개나 4개지만 쇠기름이나 돼지기름쯤 되면 좀 짧은
놈이 탄소 22개를 가진 정도니.
위에서덩치 큰 지방산 3개를 문 알루미늄 비누의 경우를 보시길.
유유상종이라고 분자량 낮은 탄화수소로 구성된 휘발유속에 들어가면 탄화수소 분자를
끌어모아 마치 벽돌과 벽돌사이의 모르타르처럼 될거란거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느정도 분자들이 모여들어 어느정도 형태를 잡아가면 점성이 낮은 액
체가 아닌 점성이 높은 끈적대는 혹은 겔상의 유체로 변하게 되죠.
이러면 이야기 끝난 겁니다.
이렇게 등장한 네이팜, 2차대전중 크게 3종류가 등장하여 사용됩니다.
M1 thickener
무게비로 25%의 나프텐산 알루미늄(aluminium naphthenate), 25%의 올레산 알루미늄(al
uminium oleate), 50%의 로레산 알루미늄(aluminium laurate)이나 스테아르산 알루미늄
을 혼합한 것으로 홉승성이 있어 그리 사용되지는 못했답니다.
M2 thickener
M1과 유사하지만 습기 먹지 말라고 이산화규소가 포함되어져 있었죠.
M4 thickener
이것 역시 알루미늄 비누(지방산 알루미늄염)가 사용되나 추가적으로 hydroxylalumini
um bis (2-ethylhexanoate)가 추가됩니다.
홉습성이 덜하고 적은 양으로도 M1보다 나은 결과를 보여줘 자주 사용되게 되죠.
1944년 7월 17일, 402전투비행대 소속의 P-38 14대가 생 로 (St. Lo) 부근의 연료
보급소를 공격하기위해 네이팜탄을 투하합니다.
비슷한 시기, 태평양에서 마리아나 제도에 대한 사전 폭격에서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티니안에서 네이팜탄을 투하해본 미해병대처럼 처음에는 혼합비, 투하 방법등이
좋지 못해 큰 효과는 발휘되지 못했다 하죠.
그러다 이런 문제점들이 고쳐지면서 네이팜탄은 대지 공격용으로 좋게 평이 됩니다.
네이팜과 항공용 혹은 자동차용 휘발유만 있으면 만들 수 있던터라 그 당시 항공기용
소이탄의 대표격이던 황린 소이탄이나 테르밋같은 금속 소이탄보다 훨씬 저렴했죠.
더하여 액체 내지는 겔상인지라 적당히 퍼져나갔고 틈새로 흘러들어가 내부에도 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더욱더 좋은건 야전에서 쉽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겁니다.
야전의 비행장에서 2명이 1시간만 작업해도 55갤런들이 드럼통 8개분의 휘발유를 겔상
으로 만들 수 있었고 P-38이나 P-39등등의 보조연료탱크에 소형 폭탄이나 황린 소이탄
과 조합한 간단한 물건으로도 거점, 가옥, 나무등으로 만든 구조물을 손쉽게 없에버릴
수 있었으니.
더불어 네이팜은 투하폭탄만 아니라 화염방사기에서도 사용됩니다.
화염방사기에 사용될 경우 점성이 낮게 6%정도, 투하용 소이탄으로는 12 ~ 15%정도가
혼합되죠.
유럽에서는 독일군의 벙커같은 방어거점을 말그대로 구워버리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죠.
또한 1945년 2월 14일에서 15일까지 이어진 드레스덴 폭격에서 투하한 소이탄중 절반
정도가 네이팜이었다 하죠.
드레스덴 폭격 당시,
미 8공군의 폭격기 527대.
주간 폭격 - 1차 폭격은 조차장.
투하 폭탄 1247.6톤중 소이탄은 294.3톤.
폭격기 사령부의 폭격기 722대.
야간 폭격 - 목표는 도시 자체.
투하폭탄 2659.3톤중 소이탄은 1181.6톤.
드레스덴에서 얼마나 죽은지는 여전히 추측중입니다.
개중에는 한줌 재로 변한 사람도 있었고 1948년이 넘어서 무너진 방공호에서 꺼내진 시
체도 있는 판이었으니.
한편 태평양 전선에서 네이팜탄은 새로운 폭격기에서 던져지면서 더많은 도시들을 붙태
우게 되죠.
1945년 3월 10일에서 6월 15일까지 B-29에 의한 일본 6대 도시에 대한 폭격.
토쿄
3월 10일, 334대 참가, 14대 손실, 15.8평방마일 전소.
4월 13일, 327대 참가, 11.4평방마일 전소.
4월 15일, 109대 참가, 6.0평방마일 전소.
5월 23일, 562대 참가, 17대 손실, 5.3평방마일 전소.
5월 25일, 502대 참가, 26대 손실, 16.8평방마일 전소.
나고야
3월 12일, 313대 참가, 1대 손실, 2.1평방마일 전소.
3월 20일, 313대 참가, 3.0평방마일 전소.
5월 14일, 529대 참가, 11대 손실, 3.2평방마일 전소.
5월 16일, 468대 참가, 3.8평방마일 전소.
코베
3월 14일, 307대 참가, 3대 손실, 2.9평방마일 전소.
6월 5일, 531대 참가, 11대 손실, 4.4평방마일 전소.
오사카
4월 14일, 301대 참가, 2대 손실, 8.1평방마일 전소.
6월 1일, 521대 참가, 3.2평방마일 전소.
6월 7일, 458대 참가, 2.2평방마일 전소.
6월 15일, 516대 참가, 2.5평방마일 전소.
요코하마
4월 15일, 129대 참가, 1.5평방마일 전소.
5월 29일, 517대 참가, 5대 손실, 6.9평방마일 전소.
카와사키
4월 15일, 194대 참가, 3.6평방마일 전소.
총계 90대 손실, 109.2평방마일 전소.
손실의 대부분은 고장.
구석기 매니아, 커티스 ''Iron Ass' 르메이.
'개가 아파할까봐 꼬리를 조금씩 자르는 사람이 인도적인가?'
폭격후, 토쿄
더이상 타오를 도시가 없을 정도로 난타당한 일본이 항복하며 전쟁은 끝났고 네이팜탄
은 공군력을 상징하는 코드중 하나로 자리잡게 됩니다.
한국전에서 네이팜탄은 2차대전때보다 더욱 인상적으로 사용됩니다.
인마와 전차에 대해 좋은 효과를 얻고 높게 평이 됐으니.
전차의 경우 50피트내에서 터질 경우 전차를 기동불능으로 만들거나 승무원을 소사시켜
버릴 정도였다 하죠.
1950년, 왜관 전투중 네이팜탄에 당한 T-34
참호속의 인원과 같은 경우, 불타는 네이팜이 사방으로 튀고 무개호와 같이 뭔가 흘러
들어가기 좋은 경우는 그 속까지 완전히 타버렸죠.
게다가 직접적으로 네이팜을 맞지 않았다해도 그 열기와 연기는 보병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답니다.
또한 산등성이에 파여진 참호망과 같이 일반 폭탄으로는 피해가 크게 가지 않는 귀찮기
짝이 없는 목표에 대해서도 불붙은 네이팜이 퍼지고 흘러들어간다는 덕분에 효과적이었
죠.
덕분에 지상 지원을 요청한 지상군 병력들마저도 좋아하게 됩니다.
대지 공격에 집중한 공군의 P-80을 기준으로 통상 2발의 네이팜탄에 2발의 휘발유만 채
운 보조연료탱크가 장착되며 휘발유를 먼저 투하해 지면을 적시고 그 위에 네이팜을 투
하해서 구워버리는 방법이 곧잘 사용됩니다.
해병대의 지상지원 전술기들은 네이팜에 고폭탄, 20mm 기관포 소사를 조합하여 고폭탄
으로 폭격후 강하하며 기관포 사격하고 네이팜탄을 투하한 다음 고도를 높여 회피하는
식으로 쓴맛을 보여주기도 했다하니.
1952년, P-80 한대가 네이팜탄을 투하중
1951년 4월, 원산 부근 철도 조차장을 목표로 이뤄진 5공군 452 비행단 B-26의 네이팜탄
폭격.
이런터라 많이 투하될 때는 일일 250,000파운드의 네이팜탄이 소모되기도 했답니다.
이 때 사용된 네이팜탄은 일본에서 제작되며 플라스틱제 용기에 100갤런이 들어가는 식
이었다죠. (1951년 이후로는 90갤런들이)
그런데 네이팜탄도 문제가 없던건 아니었습니다.
1. 어떤 상황과 목표인가에 따라 위력 변화.
유럽과 특히 일본에서는 도시 폭격에서 효과적이었지만 한국전에서는 도시 폭격에서
는 효과가 낮게 나옵니다.
목표 지역의 밀집도와 화재 가능성에 따라 크게 좌우된거죠.
2. 명중정도
덩치에 비해 가벼운 네이팜탄의 특성상 바람이 심하면 빗나갈 여지가 커집니다.
또한 지면에 충돌직후 튕겨나갔다 폭발한다는 점도 문제가 됐죠.
대채적으로 낮은 고도에서 강하자세로 투하된 경우가 명중률이 좋았다고 평이됩니
다.
3. 야전에서 혼합시 적절한 혼합비를 얻기 힘듬.
티크너와 휘발유의 혼합비는 무게비로 결정되며 티크너를 얼마나 넣냐에 따라 점도
가 달라지고 성능이 달라집니다.
문제는 온도에 따라 부피가 달라지는 유류의 특성상 기온차가 심한 환경에서 또 기
온과 다른 휘발유 온도 덕분에 적절한 점도가 얻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문제는 한국전에서 야간에 혼합한 네이팜의 점도가 적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불거
졌고 휘발유의 온도와 그에 따른 혼합비가 정리되어 배포되죠.
4. 네이팜탄 자체 불발.
지상 지원에 사용된 많은 네이팜탄들은 대공방어가 시원찮은 적을 향해 저고도에서
투하됐고 심하면 100피트도 안되는 초저고도에서 투하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면 명중률은 올라가지만 대신 불발이 날 수도 있다는걸 감안해야 했죠.
지나치게 낮은 고도 덕분에 신관이 활성화 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생겼으니.
네이팜탄은 그리스 내전, 인도차이나(프랑스군 사용)등에서도 사용되며 1960년대에는
중남미에서도 게릴라 상대로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월남전에서는 정글과 가옥을 불태우는 네이팜의 화염이 전쟁의 상징중 하나로 보일 정도였죠.
그 유명한 소녀의 사진도 네이팜에 의해 벌어진 일의 한 단면을 보여주죠.
단, 이 때 사용된 네이팜은 이전처럼 비누가 아니라 폴리스티렌(polystyrene)과 벤젠을
사용한 것으로 폴리스틸렌이 휘발유를 끈적대게 하고 벤젠은 둘의 혼합을 용이하게 하
는 용제 역활을 해주죠.
이걸 NAPALM-B 혹은 super napalm이라 부릅니다.
기존의 네이팜보다 몇배 더 오래타며 더 잘달라붙는데다 불이 잘 안붙어 안전했다하죠.
네이팜 취급중 담배피다 사고가 나던 일이 네이팜 B가 사용된 이후로는 줄어들었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더하여 이건 타면 독특한 냄새를 남깁니다.
smell of napalm이란 말이 그냥 나온건 아니겠죠.
월남전중 400000톤 가량의 네이팜이 사용됐고 고정익기만 아니라 종종 헬기에서도 투하
됩니다.
개중에는 CH-47 헬기로 2톤 가량의 네이팜을 투하하여 착륙지점을 청소하는 경우도 있
었다죠.
반면 지상의 눈에 안보이는 대공화기 - 12.7mm 중기관총에서 23mm같은 - 때문에 저고도
투하 자체가 위험한 경우도 있었죠.
한편 이 시기, 반전운동은 네이팜의 사용에 제동을 겁니다.
1965년에서 1969년까지 네이팜을 제조하던 다우 케미컬이 받은 압력이나 그 후 전장에
서의 네이팜 사용에 대한 터부가 형성될 정도로 말이죠.
The Terror of War (Nick Ut /AP, 1973년 퓰리처상)
1972년 6월 8일, 사이공 근교 트랑 방(Trang Bang)에 대한 남베트남 A-1의 네이팜 폭격
의 결과.
사진의 판 티 킴 푹(Phan Ti Kim Phuc)은 당시 9살이었고 그 다음해까지 병원에서 17차
례에 걸친 수술과 고통스런 투병 생활을 해야했죠.
그리고 그 녀의 6살과 3살 동생은 그 날 죽었습니다.
어디서 봤던 모습의 월남전 버젼.
그러나 이런다고 아예 사용이 안된건 또 아닙니다.
소련등에서도 네이팜이나 그와 유사한 유지계 소이탄을 장비하고 사용했으며 이스라엘
도 중동에서 네이팜을 사용했죠.
이 외에 앙골라에서는 포르투갈군에 의해 반군 거점, 지뢰지대와 오염된 물구덩이를 없
에는데 네이팜이 투하되며 포클랜드에서 아흐헨티나군의 푸카라가 영국군에게 네이팜을
투하한 경우가 있고 중동전 당시 이집트나 이스라엘 모두가 써본데다 유고 내전에서도
사용되고 엄밀히 말해 네이팜은 아니지만 걸프전 당시 500발 가량의 Mk.77이 투하된 경
우도 있습니다.
터키가 쿠르드족 공격할 때도 네이팜탄은 확산탄(cluster bomb)과 사용되기도 하죠.
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재빨리 간파하죠.
덕분에 이미 기원전에 각종 화공 작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런 판이니 기원전 424년에 스파르타가 델리움(Delium)의 그리스 요새를 공격할 때 각
종 수지와 황, 아마같은 섬유등을 혼합한 가연물(incendiary)이 든 단지를 던져 성벽과
그 내부를 태운건 놀라운 일도 아닐 겁니다.
비슷한 소이제는 기원전 360년의 트로이 전쟁에서도 사용됐으리라 봅니다.
이런 식이다보니 로마군이 투석기에다가 저런 가연물이 담긴 단지따위를 담고 발사하는
건 전례를 발전시킨 예라고 봐야겠죠.
한편 이런 와중에 아직도 그 성분에 대해 모호한 그리스의 불(Greek Fire)도 등장하게
되죠.
아마도 황, 역청과 나프타, 수지와 생석회(quicklime), 어쩌면 초석따위가 들어갔을 수
도 있는 이 화합물은 7세기경에도 비잔틴 제국에서 사용될 정도였고 해전에서도 쓸만했
던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화염방사기의 조상에서 유지계 소이탄, 심지어 초기의 화약이
아니었을까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단지속에 들어간 것만 아니라 오늘날 화염방사기처럼 사이펀으로 분사되기도 했으
니.
그리스불의 사용법중 하나 - 통에 담고 투석기로 쏘기.
그리스불을 사이펀으로 쏘기 - 해전중
그리스불을 사이펀으로 쏘기 - 공성전중
19세기를 지나 20세기 들어서며 이전 시대의 그리스불 분사장치가 현대화되어 등장합니
다.
이미 20세기 초엽 각국 군대에 이런저런 화염방사기의 아이디어가 제안되나 화염방사기
가 가진 한계 - 시원찮은 사거리 - 로 인해 눈부시게 발전한 총포에 밀려 별 관심을
못끌었죠.
그러다 1차대전이 터지면서 참호전이 시작되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방의 참호로 육박, 단시간내에 참호를 쓸어버리는데 있어서 그 당시의 총기류로는
재미없는 일이었고 수류탄으로는 뭔가 모자란 감이 있었으니.
이에 독일군, 화염방사기를 실전에 투입해 봅니다.
이미 1901년, 리하르트 피들러(Richard Fiedler)가 발명한 가스압식 화염방사기를 1908
년에 실험해본데다 이를 더욱 개량한 것을 1911년 휴대가 가능한 소형화염방사기(Klei-
nflammenwerfer)와 수레에 얹어 끌고다닐 정도의 크기를 가진 대형 화염방사기(Grossf-
lammenwerfer)로 채택하고 있던 판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었겠죠. (당시
화염방사기는 공병중대에 배속되어져 있었습니다.)
소형이나 대형이나 압축된 이산화탄소나 공기, 질소로 연료(휘발유)를 분사하며 마그네
슘등이 혼합된 점화봉으로 점화한다는 것이었죠. (점화봉은 사용후 교채)
네델란드 잡지에 난 독일군의 화염방사기
1914년 10월, 아르곤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참호에 처음 사용되며 1915년 2월의 베르덩
전투에서는 본격적으로 사용되죠.
꽤 성공적이라 연합군을 공포에 빠트렸고 별도의 화염방사기 팀도 등장하지만 문제는
이 장비 자체가 사용하는 입장에서도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는거죠.
소형은 작다해도 어깨에 짊어지는 순간 완전군장만큼 부담스러웠고 사거리도 고작 18m
정도인데다 방사가능한 시간도 겨우 몇초 정도였으니.
대형은 그래도 사거리 32m정도에 40초정도 불을 뿜을 수 있었으나 이건 사람이 휴대한
다는건 애초에 머나먼 이야기였죠.
이런터라 화염방사기 조에는 호위역활을 할 소총수들이 붙여집니다만 그런다고 화염방
사기 조의 평균수명이 대폭 향상된건 아니란게 현시창이었죠.
뭐 어쩌건 독일군의 성공에 따라 곧 프랑스와 영국군도 화염방사기를 개발해 전선에 배
치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중 프랑스군이 개발한 것이 좋은 성능을 보여줬고 여기에는 번거로운 점화봉 대신 수
소가스 토치가 점화용으로 부착됩니다.
발사기 노즐 부분에 달린 작은 수소 토치(대형 가스 라이터로 보시길)를 먼저 점화하고
있다 방아쇠 당기면 바로 불붙은 휘발유가 뿜어져 나간다는 것이었죠.
한편 각국이 화염방사기를 써대면서 그냥 휘발유나 벤젠같은걸 화염방사기에 넣고 쏘는
게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다는걸 알게 됩니다.
휘발유는 쉽게 불이 붙고 잘타지만 곧잘 목표 표면에서 물처럼 흘러내려 지속적인 연소
효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었고 흙이나 콘크리트등에서는 곧잘 홉수되어버리기도 하는데
다 물을 부으면 씼겨져 내려가버리기도 했죠.
부차적으로 분사시 사방으로 퍼지려는 덕분에 비거리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말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휘발유의 점성을 높여 끈적대게 하는 것
이었고 그래서 일치감치 휘발유에 타르를 혼합하거나 점성이 높은 기름, 생고무(latex)
를 혼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게 모두 다 만족스러웠던건 아니었죠.
타르나 다른 종류의 기름은 곧잘 가연성을 떨어트리기 일쑤였으니.
아쉬운대로 1차대전중 타르따위가 그럭저럭 사용되지만 전쟁 끝나고 새로운 그리고 더
욱 거대한 전쟁으로 다가가며 더 나은 해결책이 연구됩니다.
그 중 생고무(latex)가 꽤 괜찮게 평이 됩니다.
그러나 생고무는 2차대전 터지면서 자원 수급 문제로 벽에 부딫히게 됩니다.
타이어등의 전쟁수요를 대기도 벅찼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일이 꼬이자 미군, 고무 대신 휘발유를 끈적대게 할 물질을 찾게되고 듀퐁과 스
탠더드 오일의 지원하에 1942 ~ 43년 동안 하버드 대학의 루이스 피서(Louis Fieser)의
팀이 연구를 하게 되죠.
그리고 1943년 여름, 마침내 휘발유를 끈적대게 하면서 고무보다 구하기 쉬운 물질이
등장합니다.
바로 스테아르산이나 팔미틱산 혹은 나프텐산의 마그네슘이나 알루미늄 비누였고 이것
들은 휘발유를 끈적대게 하는 물질(thickener, 우리 교범에서는 티크너)로 꽤 만족스러
웠습니다.
가루 상태로 운반, 보괸되다 야전에서 휘발유에 쏟아붓고 저어주면 금새 끈적대는 겔이
만들어지는데다 독성도 없었죠.
또한 나프텐산은 원유 정제의 부산물로 얻을 수 있었고 스테아르산이나 팔미틱산같은건
동식물성 유지에서 쉽게 얻어낼 수 있었으니 가격도 착했죠.
덕분에 요 비누들에는 NAphthenic acid와 PALMitic acid의 앞자를 딴 네이팜(NAPALM)
이란 이름이 붙여집니다.
전설과 악몽이 시작된거죠.
잠시 옆길로 빠져...
네이팜이 물같은 휘발유를 끈적이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알면 이해되
실 겁니다. (더 자세한건... 유기화학을!)
1. 비누
알루미늄 비누라고 하면 뭔가 좀 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방산의 금속염을 비누
라고 한다는걸 보면 그닥 희안한건 아닐 겁니다.
쇠기름, 돼지기름, 야자유부터 폐식용유등등의 유지류에 수산화나트륨(가성소다)같
은걸 넣고 열을 가하면 분해되면서 글리세린같은 다가알코올이 빠지고 지방산의 금
속염, 바로 비누가 생성되죠.
이건 전형적인 소다 비누.
물을 싫어하고 기름 좋아하는 지방산 꼬리와 물좋아하는 금속 머리 부분이 있죠.
이렇게 만들어진 비누의 분자는 기름을 좋아하는 지방산 꼬리와 물을 좋아하는 나트
륨과 같은 금속 머리로 이뤄지며 머리 때문에 물에 녹게되죠.
그리고 물에 녹은 상태로 있다 기름때를 만나면 기름을 좋아하는 비누 분자의 꼬리
부분이 기름때를 에워싸게되고 이 상태에서 물을 좋아하는 머리가 물쪽으로 가려는
덕분에 세탁물에서 기름때가 떨어져나와 물에 씼겨나가게 되죠.
기름 방울을 꼬리가 감싸서 때내버리는게 비누의 세척 원리죠.
그런데 만약 물속에 마그네슘같은 2개의 이상의 지방산을 물 수 있는 염류(이온)가
있다면 비누의 나트륨 머리 대신 마그네슘이 머리로 가고 양옆에 커다란 지방산 꼬
리 2개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면 나트륨대신 머리를 차지한 마그네슘이 물과 만나려면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
죠.
양옆에 덩치 큰 지방산이 2개씩이나 달라붙어있으니 물과 바람피울 수가 없으니.
이런 현상으로 인해 마그네슘 따위의 염류가 없는 단물에 비해 마그네슘 따위가 들
어간 센물(경수, hard water)에서 비누가 안녹더라는 일이 벌어지게 되죠.
반면 양옆에 덩치 큰 지방산 2개를 가진 덕분에 물에 안녹는 비누는 기름과 같은 지
방산이 좋아할만한 물질에는 녹게되죠.
알루미늄의 경우는 마그네슘이 지방산 2개를 무는데 비해 3개를 물 수 있습니다.
더 덩치가 커지고 물에는 더 안녹겠죠.
2. 덩치빨
무극성 탄화수소는 분자의 편극에 의해 분자 서로간이 약한 정전기적 인력으로 붙어
다니게되며 분자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힘은 더 커집니다. (덩치가 클수록 편극이
일어날 여지가 커지므로)
덕분에 분자량이 증가할수록 분자간의 인력에 의해 좌우되는 끓는점이 올라가고 덩
달아 점성도 커지려 하죠.
관련해서는 상온에서 기체인 프로판이나 부탄과 그걸로 고기구워먹고 불판 닦아내려
면 환장하게 만드는 상온에서 반고체인 쇠기름이나 돼지기름의 분자량을 보시면 될
겁니다.
프로판이나 부탄은 탄소가 겨우 3개나 4개지만 쇠기름이나 돼지기름쯤 되면 좀 짧은
놈이 탄소 22개를 가진 정도니.
위에서덩치 큰 지방산 3개를 문 알루미늄 비누의 경우를 보시길.
유유상종이라고 분자량 낮은 탄화수소로 구성된 휘발유속에 들어가면 탄화수소 분자를
끌어모아 마치 벽돌과 벽돌사이의 모르타르처럼 될거란거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느정도 분자들이 모여들어 어느정도 형태를 잡아가면 점성이 낮은 액
체가 아닌 점성이 높은 끈적대는 혹은 겔상의 유체로 변하게 되죠.
이러면 이야기 끝난 겁니다.
이렇게 등장한 네이팜, 2차대전중 크게 3종류가 등장하여 사용됩니다.
M1 thickener
무게비로 25%의 나프텐산 알루미늄(aluminium naphthenate), 25%의 올레산 알루미늄(al
uminium oleate), 50%의 로레산 알루미늄(aluminium laurate)이나 스테아르산 알루미늄
을 혼합한 것으로 홉승성이 있어 그리 사용되지는 못했답니다.
M2 thickener
M1과 유사하지만 습기 먹지 말라고 이산화규소가 포함되어져 있었죠.
M4 thickener
이것 역시 알루미늄 비누(지방산 알루미늄염)가 사용되나 추가적으로 hydroxylalumini
um bis (2-ethylhexanoate)가 추가됩니다.
홉습성이 덜하고 적은 양으로도 M1보다 나은 결과를 보여줘 자주 사용되게 되죠.
1944년 7월 17일, 402전투비행대 소속의 P-38 14대가 생 로 (St. Lo) 부근의 연료
보급소를 공격하기위해 네이팜탄을 투하합니다.
비슷한 시기, 태평양에서 마리아나 제도에 대한 사전 폭격에서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티니안에서 네이팜탄을 투하해본 미해병대처럼 처음에는 혼합비, 투하 방법등이
좋지 못해 큰 효과는 발휘되지 못했다 하죠.
그러다 이런 문제점들이 고쳐지면서 네이팜탄은 대지 공격용으로 좋게 평이 됩니다.
네이팜과 항공용 혹은 자동차용 휘발유만 있으면 만들 수 있던터라 그 당시 항공기용
소이탄의 대표격이던 황린 소이탄이나 테르밋같은 금속 소이탄보다 훨씬 저렴했죠.
더하여 액체 내지는 겔상인지라 적당히 퍼져나갔고 틈새로 흘러들어가 내부에도 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더욱더 좋은건 야전에서 쉽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겁니다.
야전의 비행장에서 2명이 1시간만 작업해도 55갤런들이 드럼통 8개분의 휘발유를 겔상
으로 만들 수 있었고 P-38이나 P-39등등의 보조연료탱크에 소형 폭탄이나 황린 소이탄
과 조합한 간단한 물건으로도 거점, 가옥, 나무등으로 만든 구조물을 손쉽게 없에버릴
수 있었으니.
더불어 네이팜은 투하폭탄만 아니라 화염방사기에서도 사용됩니다.
화염방사기에 사용될 경우 점성이 낮게 6%정도, 투하용 소이탄으로는 12 ~ 15%정도가
혼합되죠.
유럽에서는 독일군의 벙커같은 방어거점을 말그대로 구워버리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죠.
또한 1945년 2월 14일에서 15일까지 이어진 드레스덴 폭격에서 투하한 소이탄중 절반
정도가 네이팜이었다 하죠.
드레스덴 폭격 당시,
미 8공군의 폭격기 527대.
주간 폭격 - 1차 폭격은 조차장.
투하 폭탄 1247.6톤중 소이탄은 294.3톤.
폭격기 사령부의 폭격기 722대.
야간 폭격 - 목표는 도시 자체.
투하폭탄 2659.3톤중 소이탄은 1181.6톤.
드레스덴에서 얼마나 죽은지는 여전히 추측중입니다.
개중에는 한줌 재로 변한 사람도 있었고 1948년이 넘어서 무너진 방공호에서 꺼내진 시
체도 있는 판이었으니.
한편 태평양 전선에서 네이팜탄은 새로운 폭격기에서 던져지면서 더많은 도시들을 붙태
우게 되죠.
1945년 3월 10일에서 6월 15일까지 B-29에 의한 일본 6대 도시에 대한 폭격.
토쿄
3월 10일, 334대 참가, 14대 손실, 15.8평방마일 전소.
4월 13일, 327대 참가, 11.4평방마일 전소.
4월 15일, 109대 참가, 6.0평방마일 전소.
5월 23일, 562대 참가, 17대 손실, 5.3평방마일 전소.
5월 25일, 502대 참가, 26대 손실, 16.8평방마일 전소.
나고야
3월 12일, 313대 참가, 1대 손실, 2.1평방마일 전소.
3월 20일, 313대 참가, 3.0평방마일 전소.
5월 14일, 529대 참가, 11대 손실, 3.2평방마일 전소.
5월 16일, 468대 참가, 3.8평방마일 전소.
코베
3월 14일, 307대 참가, 3대 손실, 2.9평방마일 전소.
6월 5일, 531대 참가, 11대 손실, 4.4평방마일 전소.
오사카
4월 14일, 301대 참가, 2대 손실, 8.1평방마일 전소.
6월 1일, 521대 참가, 3.2평방마일 전소.
6월 7일, 458대 참가, 2.2평방마일 전소.
6월 15일, 516대 참가, 2.5평방마일 전소.
요코하마
4월 15일, 129대 참가, 1.5평방마일 전소.
5월 29일, 517대 참가, 5대 손실, 6.9평방마일 전소.
카와사키
4월 15일, 194대 참가, 3.6평방마일 전소.
총계 90대 손실, 109.2평방마일 전소.
손실의 대부분은 고장.
구석기 매니아, 커티스 ''Iron Ass' 르메이.
'개가 아파할까봐 꼬리를 조금씩 자르는 사람이 인도적인가?'
폭격후, 토쿄
더이상 타오를 도시가 없을 정도로 난타당한 일본이 항복하며 전쟁은 끝났고 네이팜탄
은 공군력을 상징하는 코드중 하나로 자리잡게 됩니다.
한국전에서 네이팜탄은 2차대전때보다 더욱 인상적으로 사용됩니다.
인마와 전차에 대해 좋은 효과를 얻고 높게 평이 됐으니.
전차의 경우 50피트내에서 터질 경우 전차를 기동불능으로 만들거나 승무원을 소사시켜
버릴 정도였다 하죠.
1950년, 왜관 전투중 네이팜탄에 당한 T-34
참호속의 인원과 같은 경우, 불타는 네이팜이 사방으로 튀고 무개호와 같이 뭔가 흘러
들어가기 좋은 경우는 그 속까지 완전히 타버렸죠.
게다가 직접적으로 네이팜을 맞지 않았다해도 그 열기와 연기는 보병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답니다.
또한 산등성이에 파여진 참호망과 같이 일반 폭탄으로는 피해가 크게 가지 않는 귀찮기
짝이 없는 목표에 대해서도 불붙은 네이팜이 퍼지고 흘러들어간다는 덕분에 효과적이었
죠.
덕분에 지상 지원을 요청한 지상군 병력들마저도 좋아하게 됩니다.
대지 공격에 집중한 공군의 P-80을 기준으로 통상 2발의 네이팜탄에 2발의 휘발유만 채
운 보조연료탱크가 장착되며 휘발유를 먼저 투하해 지면을 적시고 그 위에 네이팜을 투
하해서 구워버리는 방법이 곧잘 사용됩니다.
해병대의 지상지원 전술기들은 네이팜에 고폭탄, 20mm 기관포 소사를 조합하여 고폭탄
으로 폭격후 강하하며 기관포 사격하고 네이팜탄을 투하한 다음 고도를 높여 회피하는
식으로 쓴맛을 보여주기도 했다하니.
1952년, P-80 한대가 네이팜탄을 투하중
1951년 4월, 원산 부근 철도 조차장을 목표로 이뤄진 5공군 452 비행단 B-26의 네이팜탄
폭격.
이런터라 많이 투하될 때는 일일 250,000파운드의 네이팜탄이 소모되기도 했답니다.
이 때 사용된 네이팜탄은 일본에서 제작되며 플라스틱제 용기에 100갤런이 들어가는 식
이었다죠. (1951년 이후로는 90갤런들이)
그런데 네이팜탄도 문제가 없던건 아니었습니다.
1. 어떤 상황과 목표인가에 따라 위력 변화.
유럽과 특히 일본에서는 도시 폭격에서 효과적이었지만 한국전에서는 도시 폭격에서
는 효과가 낮게 나옵니다.
목표 지역의 밀집도와 화재 가능성에 따라 크게 좌우된거죠.
2. 명중정도
덩치에 비해 가벼운 네이팜탄의 특성상 바람이 심하면 빗나갈 여지가 커집니다.
또한 지면에 충돌직후 튕겨나갔다 폭발한다는 점도 문제가 됐죠.
대채적으로 낮은 고도에서 강하자세로 투하된 경우가 명중률이 좋았다고 평이됩니
다.
3. 야전에서 혼합시 적절한 혼합비를 얻기 힘듬.
티크너와 휘발유의 혼합비는 무게비로 결정되며 티크너를 얼마나 넣냐에 따라 점도
가 달라지고 성능이 달라집니다.
문제는 온도에 따라 부피가 달라지는 유류의 특성상 기온차가 심한 환경에서 또 기
온과 다른 휘발유 온도 덕분에 적절한 점도가 얻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문제는 한국전에서 야간에 혼합한 네이팜의 점도가 적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불거
졌고 휘발유의 온도와 그에 따른 혼합비가 정리되어 배포되죠.
4. 네이팜탄 자체 불발.
지상 지원에 사용된 많은 네이팜탄들은 대공방어가 시원찮은 적을 향해 저고도에서
투하됐고 심하면 100피트도 안되는 초저고도에서 투하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면 명중률은 올라가지만 대신 불발이 날 수도 있다는걸 감안해야 했죠.
지나치게 낮은 고도 덕분에 신관이 활성화 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생겼으니.
네이팜탄은 그리스 내전, 인도차이나(프랑스군 사용)등에서도 사용되며 1960년대에는
중남미에서도 게릴라 상대로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월남전에서는 정글과 가옥을 불태우는 네이팜의 화염이 전쟁의 상징중 하나로 보일 정도였죠.
그 유명한 소녀의 사진도 네이팜에 의해 벌어진 일의 한 단면을 보여주죠.
단, 이 때 사용된 네이팜은 이전처럼 비누가 아니라 폴리스티렌(polystyrene)과 벤젠을
사용한 것으로 폴리스틸렌이 휘발유를 끈적대게 하고 벤젠은 둘의 혼합을 용이하게 하
는 용제 역활을 해주죠.
이걸 NAPALM-B 혹은 super napalm이라 부릅니다.
기존의 네이팜보다 몇배 더 오래타며 더 잘달라붙는데다 불이 잘 안붙어 안전했다하죠.
네이팜 취급중 담배피다 사고가 나던 일이 네이팜 B가 사용된 이후로는 줄어들었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더하여 이건 타면 독특한 냄새를 남깁니다.
smell of napalm이란 말이 그냥 나온건 아니겠죠.
월남전중 400000톤 가량의 네이팜이 사용됐고 고정익기만 아니라 종종 헬기에서도 투하
됩니다.
개중에는 CH-47 헬기로 2톤 가량의 네이팜을 투하하여 착륙지점을 청소하는 경우도 있
었다죠.
반면 지상의 눈에 안보이는 대공화기 - 12.7mm 중기관총에서 23mm같은 - 때문에 저고도
투하 자체가 위험한 경우도 있었죠.
한편 이 시기, 반전운동은 네이팜의 사용에 제동을 겁니다.
1965년에서 1969년까지 네이팜을 제조하던 다우 케미컬이 받은 압력이나 그 후 전장에
서의 네이팜 사용에 대한 터부가 형성될 정도로 말이죠.
The Terror of War (Nick Ut /AP, 1973년 퓰리처상)
1972년 6월 8일, 사이공 근교 트랑 방(Trang Bang)에 대한 남베트남 A-1의 네이팜 폭격
의 결과.
사진의 판 티 킴 푹(Phan Ti Kim Phuc)은 당시 9살이었고 그 다음해까지 병원에서 17차
례에 걸친 수술과 고통스런 투병 생활을 해야했죠.
그리고 그 녀의 6살과 3살 동생은 그 날 죽었습니다.
어디서 봤던 모습의 월남전 버젼.
그러나 이런다고 아예 사용이 안된건 또 아닙니다.
소련등에서도 네이팜이나 그와 유사한 유지계 소이탄을 장비하고 사용했으며 이스라엘
도 중동에서 네이팜을 사용했죠.
이 외에 앙골라에서는 포르투갈군에 의해 반군 거점, 지뢰지대와 오염된 물구덩이를 없
에는데 네이팜이 투하되며 포클랜드에서 아흐헨티나군의 푸카라가 영국군에게 네이팜을
투하한 경우가 있고 중동전 당시 이집트나 이스라엘 모두가 써본데다 유고 내전에서도
사용되고 엄밀히 말해 네이팜은 아니지만 걸프전 당시 500발 가량의 Mk.77이 투하된 경
우도 있습니다.
터키가 쿠르드족 공격할 때도 네이팜탄은 확산탄(cluster bomb)과 사용되기도 하죠.
댓글 : 1 개
- 아리도루
- 2012/07/28 PM 06:36
잘봤습니다. 공부 많이하고 갑니다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