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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잡담] 스포) 오펜하이머 영화와 실제 인물 비교2023.08.16 PM 09:55
킬리언 머피 –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원자폭탄의 아버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를 원작으로 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기 스릴러 영화는 맨해튼 계획과 핵무기 개발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오펜하이머의 유산을 탐구한다.
오펜하이머가 개발에 도움을 준 두 개의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BBC에 따르면 최소 2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 노트에 따르면 머피는 역할을 준비하기 위해 오펜하이머의 강의, 인터뷰 등 기록 영상들을 여러 시간 시청했고, 또한 물리학자 킵 손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에밀리 블런트 – 캐서린(키티)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의 아내
식물학자였던 캐서린 푸닝은 오펜하이머와 만나 결혼하고 맨해튼 계획을 위해 그와 함께 로스앨러모스로 이주하기 전에 3차례 결혼했었다.
블런트는 토탈필름과의 인터뷰에서 오펜하이머와의 관계에 대해 “그녀는 오펜하이머의 인생에서 절친한 친구이자, 진정한 과학자로서 꽤 중요한 존재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그녀는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죠. 당시의 가정주부 이상형에 꼭 부합하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오펜하이머 부부 사이에는 피터와 토니라는 두 자녀가 있었다.
딜런 아놀드 – 오펜하이머의 동생 프랭크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입자물리학자인 동생 프랭크를 맨해튼 계획의 연구원으로 영입했다.
1945년 7월, 그는 최초의 핵폭발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프랭크는 1969년 샌프란시스코에 인터랙티브 과학 박물관인 익스플로라토리움을 열었다.
제작 노트에 따르면 딜런 아놀드는 프랭크 오펜하이머의 아들 마이클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역할을 준비했다고 한다.
톰 콘티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맨해튼 계획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계획이 시작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1939년 독일이 원자력을 연구할 수 있으니 미국도 빨리 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 공동 서명함으로써, 맨해튼 계획이 시작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인슈타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결코 그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튜 모딘 – 맨해튼 계획의 시작을 도운 버니바 부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학연구국의 수장이었던 부시는 다른 국가들이 원자폭탄을 개발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원자폭탄 개발을 승인받았다.
부시는 맨해튼 계획의 과학자 모집과 개발을 도우며,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마티아스 슈바이크회퍼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원자력 무기 개발에 징집된 학자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원자폭탄의 탄생에 기여한 양자역학의 개척자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와 그의 팀은 어느 쪽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지, 독일의 하이젠베르크와 경쟁하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하이젠베르크 팀의 연구 성과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원자폭탄 프로그램을 감독했지만, 작동하는 폭탄의 개발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독일 과학자들이 프로젝트를 몰래 방해했다고 믿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팀만이 독일과 원자폭탄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줄 믿었을 뿐이다.
맷 데이먼 – 레슬리 그로브스 주니어 장군,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
그로브스는 1942년 9월 맨해튼 계획을 이끄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있는 연구소 소장으로 오펜하이머를 선택했다.
그는 원자폭탄의 개발이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맨해튼 계획의 엔지니어였던 케네스 D. 니콜스 대령은 그로브스를 "대단히 영리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아는 사람 중 "가장 독선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베니 샤프디 – 에드워드 텔러 박사, 훗날 수소폭탄을 만드는 인물
이론물리학자 텔러는 오펜하이머 밑에서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지만, 막강한 파괴력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반대했던 수소폭탄의 개발을 지지했다.
텔러는 훗날 1954년 보안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 불리한 증언을 했다. 그는 95세까지 살다가 2003년에 사망했다.
조시 하트넷 – 어니스트 로렌스, 오펜하이머의 친구이자 물리학자
제작 노트에 따르면 하트넷은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로렌스에 관한 책을 읽었고, 물리학자인 자신의 종조부한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로렌스는 맨해튼 계획에 사용된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공로로 193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원자를 쪼개는 핵분열을 발견한 그의 발견은 원자폭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는 소련보다 먼저 수소폭탄을 만들기 위한 수소폭탄 개발의 지지자였다. 이로 인해 그는 오펜하이머와 대립하게 되었다.
케네스 브래너 –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
덴마크의 물리학자인 보어는 런던에서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니콜라스 베이커라는 가명으로 로스앨러모스 팀의 컨설턴트로 합류했다.
제작 노트에 따르면 브래너는 놀란 감독이 보어에 대해 “오펜하이머의 오비완 케노비 같은 캐릭터”라고 여기고 있다면서, <스타워즈>의 제다이 멘토를 언급했다고 말했다.
구스타프 스카스가드 –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핵물리학자 한스 베테 박사
한스 베테는 오펜하이머에 의해 발탁되어 맨해튼 계획의 이론 부문을 이끌었다. 베테는 1945년 7월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 그리고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의 설계에 참여했다.
그는 나중에 수소폭탄 개발에는 반대했지만, 그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베테는 196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데이비드 크럼홀츠 –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 맨해튼 계획 참여를 거부한 물리학자
라비는 친구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러모스의 부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거절하지만, 대신에 컨설턴트로서 친구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트리니티 핵실험 현장에도 참석했다.
194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그는 수소폭탄에 반대하는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조쉬 펙 – 물리학자 케네스 베인브리지
어니스트 로런스는 1940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맨해튼 계획의 초기 작업을 위해 베인브리지를 영입했다.
베인브리지는 1943년 로스앨러모스 핵무기 실험실에 합류하여 "프로젝트 Y"라고 불린 연구에 참여했다. 그는 1945년 트리니티 핵실험을 감독했다. 핵실험이 성공한 후 “이제 우리 모두 □□이 되었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잭 퀘이드 – 리처드 파인만 교수,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젊은 물리학자 중 한 사람
이론물리학자 파인만은 대학원 학위를 따기도 전인 24살에 한스 베테의 팀과 함께 맨해튼 계획에 영입되었다.
원자력 역사 재단에 따르면, 그는 나중에 로스앨러모스에 도착했을 때, “장난삼아 보안에 도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 무렵 그는 학위를 취득했다.
파인만은 1945년 트리니티 핵실험에 참여했고 196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나중에 그는 챌린저호 참사 조사팀의 일원이 되었다.
케이시 애플렉 – 보리스 파시, 맨해튼 계획에서 공산당 관련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신문한 정보 장교
미국은 소련의 간첩이 맨해튼 계획에서 원자력 연구를 훔쳤다고 의심했고, 이에 당시 방첩 책임자였던 파시가 보안 위반을 조사했다. 오펜하이머도 파시가 심문한 인물 중 하나였다.
‘Manhattan: The Army and the Atomic Bomb’에 따르면 파시는 “오펜하이머가 여전히 공산당과 연루돼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파시는 오펜하이머를 로스앨러모스의 소장 자리에서 교체시키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대신에 오펜하이머에게, 간첩법에 대한 브리핑을 받으라고 하고, 정부가 그와 공산당의 관계를 알고 있으며 정보 유출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경고한 뒤 계속 일할 것을 권고했다.
그로브스는 맨해튼 계획에 오펜하이머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두 명의 방첩 경호원들을 오펜하이머에게 붙여서 그를 감시하도록 했다.
게리 올드먼 –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올드먼은 영국의 라디오 방송사 TalkSport와의 인터뷰에서 <오펜하이머>에서 한 장면 나오는데, 자신의 대사 분량이 “한 페이지 반”이라고 말했다.
실제 트루먼 대통령은 오펜하이머를 만나보고 그를 “징징거리는 애”라고 말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영화에서 그 일화가 그려진다.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 오펜하이머의 적대자가 된 윌리엄 L. 보든
보든은 미 의회 원자력공동위원회 사무국장이었는데, 당시 FBI 국장이었던 J. 에드거 후버에게 편지를 보내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 내연녀를 둔 '소련의 요원'이라고 비난했다.
오펜하이머가 소련 간첩으로 의심되는 21가지 이유가 담긴 이 서한은 1954년 오펜하이머 보안 청문회로 이어졌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루이스 스트로스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미국의 원자력 정책 수립을 도왔고, 오펜하이머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원자력 역사 재단에 따르면,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와 연관이 있다고 믿었고 그를 “미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이러한 스트로스의 신념은 1954년 오펜하이머에 대한 4주 동안의 보안 청문회로 이어졌고, 그 결과 오펜하이머는 미국 에너지부에서 부여하는 고위급 보안 허가인 Q 보안 자격을 잃게 되었다.
많은 이들은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 대해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심'을 품고 있었다고 믿는다. 스트로스와 오펜하이머는 이전에 수소폭탄 개발 건으로 충돌한 적이 있었다, 스트로스는 수소폭탄 개발을 원했고 트루먼 대통령도 승인했지만, 오펜하이머가 반대하면서 공개적으로 스트로스에게 창피를 준 일이 있었다.
데인 드한 – 그로브스의 부관 케네스 니콜스, 오펜하이머의 적대자로 활동.
1942년 부 관구공병으로서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니콜스는, 그 공적으로 공로훈장을 받았다.
<오펜하이머>에서 데인 드한이 연기한 니콜스는 그로브스(맷 데이먼)의 오른팔이자 오펜하이머의 적대자로 묘사된다.
실제로 니콜스는 오펜하이머가 “당원증을 없을 뿐이지 모든 면에서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면서 오펜하이머의 보안 허가를 되돌리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의 권고는 오펜하이머의 보안 허가를 취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토니 골드윈 – 고든 그레이
그레이는 오펜하이머의 보안 허가를 박탈할 것을 권고하는 위원회인 그레이 위원회를 이끌었다.
위원회 중 세 명의 위원이 오펜하이머가 “충성스러운 시민”이라고 말했지만, 그레이와 위원회 대다수는 그의 보안 허가를 취소할 것을 권고했다.
제이슨 클라크 – 변호사 로저 롭
롭은 오펜하이머의 보안 허가 청문회에서 특별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원자력 역사 재단에 따르면 롭은 오펜하이머에 대해 “씁쓸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라미 말렉 – 맨해튼 계획에 기여한 물리학자 데이비드 힐. 영화에서는 부분적으로 가공의 인물로 묘사.
힐은 맨해튼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시카고 대학교의 야금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영화에서는 힐이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사이의 불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로 힐은 그러한 역할을 한 적이 없다.
오펜하이머는 2022년이 되어서야 그레이 위원회의 “결함 있는” 조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플로렌스 퓨 – 진 태틀록, 심리학자이자 공산당원. 오펜하이머의 과거 연인.
태틀록과 오펜하이머는 1936년 하우스 파티에서 만난 후 사귀게 되었다. 심리학자인 태틀록은 오펜하이머의 청혼을 두 차례나 거절했고, 오펜하이머는 결국 캐서린 푸닝과 결혼했다.
오펜하이머는 1943년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던 중 태틀록과 다시 만나 그녀의 아파트에 머문다.
태틀록은 1944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에서는 타살 의혹도 제기했다. 10년 뒤 로저 롭이 보안 허가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가 공산당원 태틀록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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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6 PM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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