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티아고 순례길 (2014)] [9 Day] 2014년 3월 10일 나혜라(라 리오하) - 그라뇽 28km2017.01.03 PM 12:58
숙취(...)와 함께 어김없이 길을 나선다.
어제 잘못 올라갈뻔 했던 소나무숲을 조금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가벼운 등산 완료.
이제는 나무로 길 표시가 되어있다.
사진에 찍힌 내 그림자를 보니 오늘 하루도 햇빛 쨍쨍한 날이 될 것 같다.
언덕 넘어서 조금 걸어가니까 바로 나오는 아조프라.
순례자들 말고는 인적이 거의 없다.
스페인 북부 대부분의 마을은 순례자들을 제외하면 딱히 뭐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우리나라 농촌과 같이 농업을 한다.
마을 근처에 왔다는걸 알려주는 반가운 소똥냄새는 덤.
나혜라-아조프라-시루에냐.
오늘 걸을 거리의 반이 끝나자 절묘하게 찾아오는 점심시간.
이 동네는 부촌인것 같다.
마을 입구에 떡 하니 있는 골프장, 잘 사는 동네, 가난한 동네, 그냥 그런 동네.
길 위에서는 하루에도 여러가지 사람들과 표정, 수 많은 마을을 만난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다시 걷는다.
햇빛이 따가운 것 말고 불편한건 없다. 눈에 보이는건 걸어 가야 할 길, 하늘, 지평선 뿐이다.
배낭은 무겁고 땀은 계속 흘러도 마음은 상쾌하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카미노 위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 중 하나인 수탉의 전설이 있는 동네가 저 멀리 보인다.
이 정도 거리에서 보이면 대략 5km 남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눈에 보인다고 가까운게 아니다.
전설 덕분에 꽤 크게 발전한것 같다.
스페인은 원래 카톨릭 국가가 아니다.
카를로스 대제의 원정,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도 나오는 무어인들의 국가.
이슬람 국가와 크리스트교 국가간 주도권이 수 없이 바뀌던 나라가 결국 카톨릭 국가들에게 점령 당하면서 국교가 카톨릭으로 정착된 나라가 스페인이다.
이렇게 두 종교가 전쟁을 하다가 하나가 정착을 하려면 신화시대에 나올 법한 전설이나 기적이 있어야 하는데 성인의 무덤을 찾아가는 순례길 위에는 많은 기적과 전설이 전승된다. 우연일까?
-오래 전 순례길을 걷던 부부와 아들이 이 곳의 여관에 묵었다.
여관주인의 딸이 잘 생긴 청년에게 눈길을 주었지만 독실한 청년은 그녀를 거부했다.
그의 거절에 화가 난 여관집 딸은 금으로 된 술잔을 청년의 가방에 숨기고 그가 술잔을 훔쳤다고 신고했다.
청년은 억울하게 교수형에 처해졌고 부모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계속 순례길을 걸었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여전히 교수대 위에 매달려 살아있음을 목격한 부부는 재판관의 집으로 가 이 이야기를 전했다.
재판관은 이 부부의 아들이 지금 먹으려는 닭고기처럼 살아있지 않다고 대꾸했다.
그 순간 접시 위의 닭들이 살아나 큰 소리로 울었다.
기적을 목격한 재판관은 당장 교수대로 달려가 청년을 내려주고 완전히 사면했다.
산토 도밍고의 대성당에 얽힌 전설에 따라 아직도 성당에 딸려있는 알베르게 정원 닭장에는 닭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는지 얘네들도 시에스타인건지 닭장을 가려놨다.
오늘은 여기서 그냥 접을까? 고민 하다가 그냥 더 걷기로 결정한다.
산토 도밍고에서 일정을 마쳐도 크게 무리는 아니었으나 피니스테레까지 가려면 시간이 얼마 없어서 그라뇽까지 가기로 한다.
성당이 있는 구 시가지를 20분 정도 걸어가면 신 시가지가 나온다.
여기도 20분 정도 걸어가야 도시를 빠져 나갈 수 있다.
이 다리는 '성인의 다리' 라고 부른다.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을 위해 봉사했던 '길 위의 산토 도미니코' 라는 성인을 기리는 다리라고 한다.
마을 이름도 그래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성인의 다리를 건너 흙길과 도로가 반복되는 그라뇽까지 8km 구간 동안 쉴 곳도 마을도 없다.
흙길과 도로를 번갈아 얼마나 걸었을까?
자갈 오르막길 위에 십자가가 보인다.
때 마침 8km 중 5km 쯤 와서 체력이 바닥났다.
순례길을 다 걷고 시간이 꽤 지나간 지금 다시 생각하는건데 다음에 다시 순례길을 걷게 된다면 하루에 몇 km 정해놓지 않고 발걸음 가는데로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물론 무한정한 시간과 넉넉한 돈이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시간(귀국 비행기 티켓)에 쫓겨 할당량처럼 km 정해놓고 레이드 뛰듯이 걷는건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좀 아까웠다.
'용감한 자의 십자가'
-오래 전 산토 도밍고 사람과 그라뇽 사람이 근처 땅 소유권을 놓고 분쟁이 벌어졌다.
이 때의 분쟁과 판결은 오늘날의 소송과 달리 판관이 일방적으로 결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데
그라뇽 사람이 이겼다. 그걸 기념하는 십자가.
결국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교훈을 오늘날에 전해주고 있다.
발에서 열이 나는것 같은 그런 느낌.
더 걸으면 발이 불 탈 것 같은 그런 뜨거운 날이었다.
오늘의 목적지로 정한 그라뇽 입구에서 긴장이 풀린건지 힘이 쫙 빠진다.
마을 입구에서 직진 후 좌회전하면 이런 수도원 건물이 나온다.
원래는 병원으로도 쓰이던 수도원 건물을 이렇게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다.
디아블로 1에서 카타콤 던젼 내려가던 계단과 똑같이 생긴 계단을 올라가면....
이렇게 방명록이 있고 기부함이 있다.
그라뇽 알베르게는 기부로 운영된다.
일반 집 처럼 되어있고 벽난로가 난 특히 좋았다.
앙헬, 율리아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데 앙헬은 흰머리가 무성한 노인인데 율리아는 32세...나이차가...
순례길에서 만났는데 앙헬이 반해서 따라다니다가 결혼했다고 한다.
여기선 저녁과 다음 날 아침을 준다.
스페인 가정식으로 만들어서 준다.
미드나 영화보면 친한 친구들 불러 모아서 하우스 파티 하듯이 그렇게 먹는 분위기.
식사 준비는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한다.
식사 준비 전에 미사를 드렸다.
여기 신부님도 모든 순례자들을 위해 따로 강복을 주신다.
론세르바예스 이 후 정신적으로 편안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만큼 기억 나는 곳은 몇 군데 없는것 같다.
좀 무리해서 여기까지 오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 목적지로 생각했던 토스산토스 알베르게가 부활절 이전에는 운영을 안한다는 고급 정보를 들었다.
그래서 내일도 30km 넘게 걸어야 한다. 앙헬이 고맙게도 전화 걸어서 확인까지 해줬다.
잠들기 전에 성당 2층, 우리 성당으로 치면 성가대 자리에 모여서 각자 카미노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나눔의 시간을 가지고 이 날 하루도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각자의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꺼낼 수 있는게 참 좋았다.
알베르게 5유로(기부)
식료품 6.45 유로.
음료수 1.60 유로.
13.05 유로 사용.
- 검빵맨
- 2017/01/03 PM 01:26
스크랩 해놓고 전 편부터 쭈욱~ 봐야겠네요. 재밋는 후기 감사합니다
- 강동김씨
- 2017/01/03 PM 02:12
재미없을수도 있는 주관적 여행기인데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