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보며 나를본다] 누굴 먼저 살려야 할까? 2021.05.09 PM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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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와 여자, 아이가 물에 빠졌다. 셋 다 자력으로는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주변 해역에 상어가 있어서 빨리 구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상황이라면 누굴 먼저 살려야 할까. 일반적으로는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구한다. 성인의 경우 남자는 뒤로, 구하는 건 여자부터. 남자인 나는 응당 그래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교육을 받아왔다. 뭐.. 그런 걸 대 놓고 학교에서 책으로 가르치거나 한 건 아니지만, 여러 매체에서 접한 것도 있고, 레이디 퍼스트니 뭐니 하며... 사회 분위기 자체가 그러니까. 나는 그런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것에 대해서 불평한 적 없다. 나와 와이프, 아들의 세 가족에서 생명의 우선순위가 가장 낮은 건 나라고 생각한다. 그걸 굳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응당 그렇다는 것이 의식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런 건 생각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것. 그런 상황이 오면 몸이 먼저 움직일 거다. 저런 케이스에서 성인 남자의 목숨의 우선순위는 가장 아래다. 아이들과 여자보다 먼저 새치기해서 살아남은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난받는다. 물론 내 가족과 다른 가족…의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내 가족에 한정해서는 그렇다. 지금 결혼생활이 얼마나 비참하든 간에, 저 순위는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업무상이든 뭐든 누구든 간에 여자랑 있다면 역시 마찬가지일 거고. 


 그러나 나와 내 가족, 혹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누구부터 살려야 할까? 책에서는 굳이 살린다는 제목을 사용했지만, 사실은 살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 라기보다는 죽음에 관한이야 이기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 언젠가는 죽는다. 운이 좋은 경우 천수를 다 누리고 죽을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사고사를 당하거나, 병사할 수도 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여주인공처럼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타살을 당할 수도 있는 거고. 이 책은 누군가의 부모, 자식이 죽는 이야기를 그 개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 이야기가 아니라 숫자의 개념에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나 필요한 비용은 항상 그것보다 많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 1이 여전히 핫하던 시절(물론 지금도 핫하다), 어떤 만화가 있었는데 마린 1기가 훈련받고, 배치되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다가 결국 전장에서 사망하게 됐는데, 그 마린의 이야기인 듯하다가 결국 게임상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주마등을 겪는 그 마린의 존재가 갑자기 작아지며 사실은 스타크래프트 속의 미네랄 50, 인구수 1인 작은 부분뿐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짧은 만화는 끝이 났었다. 그 마린은 임요환이 부리던 수많은 마린 중에 하나일 뿐이었으며, 그 게임은 임요환이 어떤 대회에서 플레이한, 중계되던 게임일 뿐이라는 것. 그 마린은 그 에임에서 임요환의 수많은 마린 중 하나일 뿐이었으며, 각각의 게임(판)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전체에서는 동시에도 수많은 마린이 실시간으로 몇백몇천씩 죽어가는 이야기일 뿐. 크게 보면 볼수록 개인의 이야기는 작아진다. 


꽤 오래 헤매다 찾았다. 

만화의 링크 https://www.fmkorea.com/1358510887


 누군가를, 뭔가를 숫자로 다룬다는 것은 그렇다. 어떤 이야기이든 간에 그 이야기가 숫자로 표현되면 그냥 1일뿐이다. 어떤 시점에서 개개인의 이야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진다. 전 국민의 질타를 받던 사형수가 어떤 이유로든 사망을 해도 1, 갓난아이가 있는 소방수가 구조 과정에서 사망을 하더라도 전체 사망자 수는 똑같이 '1'로 표현된다. 나는 사회에 나와서 지금까지 반평생을 영업직에 몸담고 있는데, 내 일 또한 많은 부분 숫자로 평가된다. 내가 이룬 성과 한건 한 건의 어려움이나 그 숫자 하나하나를 쌓아가는데 일어났던 경쟁은 나에게만 의미가 있다. 내가 열과 성을 다해 만들어낸 그 숫자는 오로지 누군가가 나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만 보여지게 된다. 그리고 그 숫자는 보통 다른 누군가, 혹은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데에 사용된다. 그 숫자들은 영업 직원들 개인의 영업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의사들의 수술 생존율, 누적 수술 건수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를 치료하는 게 들어가는 비용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 80대 노인 1명에게 10억 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동일한 10억 원으로, 1세 미만의 아이들이 앓는 치사량이 높은 어떤 병을 열 건 치료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공적 자금은 당장은 고갈되지 않더라도, 몇 년 안에 고갈될 위기에 있다고도 가정해보자. 많이들 봤을 트롤리 트레인에서의 문제 같은 상황(트롤리 딜레마). 다만 이 경우엔 한쪽 선로엔 인생을 다 산 노인이 있는 것이고, 한쪽엔 1살 미만의 영아들이 열이다. 조금은 선택하기 편한 트롤리 딜레마가 되었지만 그 노인을 실제로 치고 지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이러저러한 이유로 공적자금이 지원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노인은 개인적으로 지불할 능력이 없으므로,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윤리적인 문제들이 산적해있는 책이다. '누굴 먼저 살려야 할까'라는 긍정적으로 보이는 한국어 제목과는 달리 영어 원문의 제목은 'Who says You're dead?'이다. 번역본 제목의 삶 대신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서일까,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 자체가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책의 각 챕터에서마다 다양한 윤리적인 이슈를 제기하고, 그것에 대한 법률이나 실제 사례 등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이 아니라, 미국의 작가가 쓴 책이라 법리적인 문제는 우리나라의 정서와 어느 정도 다른 부분도 많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의료보험이 있지만, 미국에는 그나마도 시행된 지 오래되지 않은 오바마케어(ACA)만이 있을 뿐. 우리나라에서라면 의료보험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가 미국에서는 꽤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의료보험 찬양해… 


꼭 그렇게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만의 문제뿐만 아니라, 각 개인들의 생각의 차이에 의해 첨예하게 생각이 갈릴 문제들이 한가득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이야기할 거리가 없거나 상대가 정말로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 침묵으로 주변 공기를 채우는 것보다는 이런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문답들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적어도 트롤리 딜레마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의미 있는 고민들이다. 몇 가지 재밌었던 의문 몇 개를 옮겨 적어본다. 이런 똥글을 끝까지 읽는 수고를 감수할 만큼 심심하고 할 게 없는 분이라면, 한번 고민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Q. 뼈가 균에 감염되어 생기는 골수염을 치료하려면 4주에서 6주 동안 정맥 주사로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대학의 연구진이 항생제 투여 기간을 더 짧게 2주로 줄여도 환자 대다수에게서 약효가 있을지 시험하려 한다. 하지만 4~6주 투약 치료가 효험이 크다고 알려진 바이므로, 2주 동안 항생제를 투약한 환자와 4주 동안 항생제를 투약한 환자를 비교하려는 연구 계획이 미국에서 승인될 리 없다. 

연구진은 미국 대신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자신들이 공중보건당국과 우호 관계를 맺은 어느 개발도상국에서 이 연구를 수행하려 한다. 그 나라에서는 골수염에 걸린 환자 대다수가 치료를 받지 못해 숱하게 목숨을 잃는다. 연구진은 이런 연구가 아니라면 아예 치료를 받지 못할 환자들에게 2주 동안 항생제를 투약해 교과가 있는지 확인하려 한다. 환자들에게 다른 기초 의료도 제공하겠지만, 이미 효과가 검증된 4~6주 투약 치료는 누구에게도 제공할 생각이 없다. 


 

 나는 읽는 동안 머리를 띵- 하게 만드는 책을 좋아하는데, 꽤 오랫동안 그런 책을 만나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느꼈다. 나 혼자 각자의 쪽에서 꽤 오래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문제 자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비윤리적이다. 그러나 대화하는 두 명이 찬성 쪽과 반대쪽을 맡아 토론하기에 꽤 흥미로운 주제다. 필요악이라고 해야 할까? 지푸라기라도 잡을 기회가 주어져야 할까? 아예 하지 말아야 할까? 이런 일은 예전에 발생했던 일이고, 지금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멀지 않은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책에서는 굉장히 슬기롭고 흥미로운 방법으로 이런 비윤리적인 실험이 다시 실행되는 것을 막는 데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 방법은 책을 읽으며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댓글 : 1 개
흠..부모를 살리고 새장가를 가는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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