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日本語] 점프 전설의 편집장의 '토리야마 아키라를 둘러싼 사내 정치'2018.02.28 AM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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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보게시판에서 본 글인데 번역하다가 말았던 것이 좀 아쉬워 오전에 시간이 좀 남길래 끝까지 해봤습니다.

 

정보게시판에 올라온 글 자체가 번역도 엉망이고 자기는 이해했다고 하던데 전혀 그렇게 안보여서.. 엉터리 작성자가 아니라, 읽고 혼란스러울 루리분들을 위해 끄적거려봤습니다. 

 

오타 및 매끄럽지 못한 번역부분도 조금 가다듬었으니 어제보단 보기 편하실겁니다.

 

기사제목은 저렇게 뽑혀있는데 내용은 정작 제목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안나오는 이상(?)한 기사인데, 아마 인터뷰가 이걸로 끝이 아니고 시리즈로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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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점프 전설의 원 편집장이 말하는 '토리야마 아키라를 둘러싼 사내 정치'’

 

 2018년에 창간 20주년을 맞는, 1월부터 기념 드라마 '오 마이 점프!'도 방송되는 등 화제의 '주간소년점프'. 한 때 국민적인 만화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의 재능을 빠르게 알아보고 발굴해내었고, 국민적 RPG '드래곤퀘스트'의 호리이 유지를 라이터에서 게임제작의 세계로 보내는 등, 만화계에서 '전설'이 된 편집자가 있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본지편집장을 역임, 현재는 백선사 대표이사역으로 활약중인 토리시마 카즈히코(65)다.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발행부수 500만부를 넘은 '황금기'를 넘긴 추억을 이야기해본다.

 

--- 점프편집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거의 만화를 읽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만화는 초등학교 때 조금 본 적이 있습니다. 선데이나 매거진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점프는 당시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죠. 활자책만 읽었었습니다. 초등학교 쯤엔 철학서를 읽고 있었고, 중학생 후반부터는 해외 번역소설을 읽었었습니다. 그 후 대학을 나와 집영사(슈에이샤)에 들어가 '주간소년점프'편집부에 배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월간 플레이보이'의 편집이 하고 싶었네요.


---당시의 점프 편집부의 상황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일단은 숨막혔었죠. 마치 남고의 분위기였습니다. No라고 말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어린 친구들의 반론을 용납하지 않았다든가, 후배를 무리하게 술자리에 권유한다든가하는 체대와도 같은 엄격한 상하관계가 있었습니다. '우정, 노력, 승리'라는 점프의 3대 원칙이 있습니다만, 이것이 편집부 내부의 사상통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죠(^^;). '남자가 말이야~'라는 사고방식은 그 당시에도 저는 싫어했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가 맞지 않았었네요.


--- 편집자끼리의 경쟁도 심했을 것 같네요

 점프 편집자의 최우선 업무는 매주 받는 독자 앙케이트로 얼마나 인기를 모으는가입니다. 여기서 인기가 없으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코너나 만화가의 업무가 없어져버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파이의 다툼이기 때문에 타인과 타인, 자신과 자신이라는 느낌으로 편집자끼리 평소에도 날이 곤두서있는 듯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절차탁마...라고 한다면 어떤 측면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서도요. 


--- 편집자끼리 관계에는 어떠한 것이 있었나요?

 주간소년점프에서는 3,4명의 편집자를 반으로 편성해 4주 정도에 걸쳐 만화연재 이외의 지면을 만들어가는 체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반이라고 하는 관계가 무척 중요하게 취급되서, 반의 멤버끼리 매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간다든지 술을 마시러 간다든지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다른 반의 뒷담을 들려주는 것이 저는 너무나 싫었습니다. 같은 편집부인데 반을 넘은 동료로써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자기 반의 멤버가 저를 흘겨보는 느낌이었습니다. 


--- 조직의 상하관계가 철저했군요

 사내의 인간관계가 편집부안에서는 커녕 반 안에서 대부분이 완결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점프 편집부는 중도채용은 있지만 사내 타 부서로부터의 전입은 거의 없습니다. 즉, 신입으로 배속되면 쭉 멤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회사 내부의 다른 잡지의 편집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확실히 그건 폐쇄적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편집부 안의 사람과는 그다지 엮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담당을 맡았던 토리야마 아키라씨의 '닥터 슬럼프'가 히트하기 시작했을 즘, 같은 집영사의 주간 플레이보이로부터 저에게 '닥터 슬럼프'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의 라이터가 사쿠마 아키라상이었습니다. 나중에 '모모타로전철'을 세상에 내보내는 분이죠. 저는 사쿠마씨와 친해져서 그 관계에서 드래곤퀘스트의 호리이 유지씨와도 알게되지만 그 얘긴 어쨌든, 저는 이러한 부서 밖의 라이터를 적극적으로 지면에 기용했습니다. 이렇게해서 탄생한 것이 '점프 방송국'이라는 독자투고코너와 게임소개기사 '패미컴신권'입니다. 당초 부서 밖의 사람을 사용한 것 때문에 동료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받았습니다. '앙케이트가 외부로 새나가니까 안된다'라고 말이죠. 결국 작업은 회의실에서만 하고, 편집부 안에는 들어올 수 없는 조건으로 기획은 통과되었습니다. 앙케이트로 고평가를 받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어졌습니다만, 그래도 '만화만 잘하면 됐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다. 멍청한 짓을 하고 앉았어'라는 험담도 들었습니다.


---그 후, 토리시마씨는 93년에 게임잡지 'V점프'를 창간하는 식으로 한번 점프 편집부를 나왔던 적이 있었죠

이렇게 외부인과의 사귐이 없었다면 V점프는 창간이 불가능했겠죠. 하지만 창간편집장으로 있었던 것도 고작 3년입니다. 부수가 줄어드는 점프를 되살리기 위해 96년에 주간소년점프 편집장으로 불려가게 됩니다. 그 이유는 토리야마 아키라씨의 '드래곤볼'을 이을 신연재작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경영진에 의하면 토리야마씨의 신연재가 시작되면 점프의 매출도 회복될거라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어려울 거라고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드래곤볼'을 저정도로 무리하게 질질 끈 시점에서 이미 다음 작품은 그릴 수 없을 거라고 말이죠.


---점프편집장으로써 우선 어떤 것을 시도해보셨나요?

653만부라는 판매부수로는 이미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같은 하나의 화면으로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전부 볼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V점프를 하면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판매부수를 늘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희미한 의문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부수증가에 의한 수익만이 아니라 단행본의 수익, 애니메이션화되어 얻는 수익의 합계로 승부하면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유희왕'의 대히트 건도 있어서 이러한 토탈 수익으로는 역대 최고였습니다.


--- 점프 편집부 안의 그런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나갔습니까?

물론, 편집부 내부의 분위기를 좀 더 자유롭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우선 남고같은 점프의 구조를 농경민족사회와 수렵민족사회를 더해 2로 나눈듯한 느낌으로 오픈된 분위기로 했습니다.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가능하게 하고 편집부안에서는 후배를 무리하게 술자리 권유하지 못하도록 바꿔나갔습니다. 일은 일, 사생활은 사생활이라는 의식도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남고에서 남녀공학 정도로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성 편집자는 없었지만요(^^).


--- 확실히 '봉신연의'나 '테니스의 왕자'등과 같이 90년대 후반부터 여성팬이 붙을 만한 작품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이른바 남녀공학화가 점프 전체의 작풍에도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우정, 노력, 승리'라는 전통은 옅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앙케이트지상주의'는 남았습니다. 90년대 당시, 약 3만통의 앙케이트엽서가 매주 보내져왔습니다. 빠른 경우 화요일 저녁에 300통 정도가 온 적도 있습니다. 이것은 '속보'라고 해서 매우 귀중한 정보원이었습니다. 화요일 저녁이면 그 주의 발간호로 진행하고 있는 원고에 아슬아슬하게 반영시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등장하였고 게다가 트위터와 같은 SNS로 간단하게 독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나 당시에는 이러한 라이브감을 가진 지면만들기가 가능했던 것은 점프뿐이었죠.


---즉, 앙케이트가 황금기 점프를 지탱한 원천이었다는 거군요?

독자와 쌍방향의 지면만들기, 이것이 점프창간 이래로 점프의 최고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이들이 참가할 수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잡지가 아니었을까요? 그 정보라는 것도 앙케이트에만 기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외에도 자주 참고로 했던 것이, 당시 편집부의 견학이 매우 자유로웠는데, 수학여행 코스로도 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인솔로 몇 십명이나 되는 학생이 견학하러 옵니다. 거기서 젋은 스탭이 편집부의 안을 안내하고 설명하거나 하면서 원고를 보여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최근 뭐가 재밌니?'라든가 물어보거나, 추가로 '굿즈가 있는데, 마음에 드는 걸 가져가도 돼'라고 말해서 그 반응을 보고 참고하곤 했습니다.


--- 팬 교류 이벤트 '점프페스타'도 토리시마씨가 편집장일 때 시작했었죠?

'점프 페스타'는 매년 12월에 2일간, 독자를 무료로 초대하는 행사로 매년 10만명 이상이 방문해줍니다. '1년간 고마웠어!'와 같은 감사의 기분을 팬에게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만, 이것도 회장에서 독자의 얼굴을 직접보고 반응을 보고 그리고 그것을 지면에 페이드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벤트 자체는 현장에서의 즉감과도 같은 발안이었으나, 지금은 20년 가깝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점프가 이어나갈 새로운 강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댓글 : 3 개
잘봤습니다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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