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저것]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불쌍하기만 합니다 (교습소 썰)2024.03.16 AM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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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마의굴 유게 베스트 보면 요즘 애들이 힘든게 뭐가 있냐고 비하하는 골빈애들이 종종 보이길래 생각해뒀던걸 그냥 대충 풀어봅니다.

머릿속 글자를 밖으로 꺼내야 오늘 잠을 잘 수 있을것 같아서 

-_-;;


*요즘같은 불경기에 음악학원을 보낼정도면, 그래도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일것이라는점은 감안하시길


저는 2019년 10월부터 서울에서 작은 기타교습소 운영중이고 참 많은 아이들을 봐왔습니다. (1:1 레슨이라 타 과목에 비해서는 훨씬 적겠죠)

5년간 이백명단위는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기타가 잠시나마 휴식처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 레슨만 하고 끝이 아니라 학원은 몇개다니는지, 이제 어디가는지, 학교에선 뭐하는지 물어보곤 하는데 아이들은 관심가지고 물어보면 다 말해줍니다. 5년간 자체적인 통계로 볼때, 10명중 9명은 학원을 5~6개는 기본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압박감이 장난아니죠.


초6 남자아이는 학교 끝나고 여기저기 학원 왔다 갔다 하며 기타학원 들렀다가 집에 가서 밥 먹고 다시 밤 10시까지 학원을 간다고 합니다. 다니는 학원이 9곳이었습니다. 그나마 기타는 재미있다고 레슨받고 삼사십분은 있다가 가곤 했는데, 올 때마다 항상 30대 직장인에게서 보일법한 초췌함과 무기력이 가득합니다. 기타를 안고 있는 상태로 자고 갈 때도 많았습니다. 불쌍해서 안 깨웠습니다.


매번 기타 레슨받다가 등과 허리를 두드리는 중2 남학생이 있습니다. 근육통이 심한데, 병원을 갈 시간이 없답니다. 병원을 가려면 학원을 빼고 가야하는데, 그럼 빠진만큼 보충을 또 받아야 한다고 하네요. 그럼 기타교습소 빼고 가면 되는거 아니냐하니, 기타 배우는게 낙이라 그건 절대 못한답니다. 기타 배우고 연습하는 1시간 빼곤 9시까지 학원돌아야 하니까.. 


매일 학원 돌고 저녁밥을 11시 30분에 먹는 중2 남학생이 있습니다.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건 익숙해지면 안돼.. 


등록후 2회째 레슨 받으러 온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는 학원을 8군데 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랑 많이 봤던 사이도 아니고, 딱 두번째 레슨때 이야기를 들어보고 '많이 힘들지?..' 한마디에 '아' 하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주1회로 배우고 시간없어서 레슨 끝나자마자 다음 학원으로 가면서도 재미있다고 반년 이상을 열심히 다녔던 것 같습니다. 


강북구에서 대치동까지 학원 릴레이를 다니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기타 교습소가 정류장이 돼버린 최악의 경우였는데 그 아이 왈 '저도 나중에 선생님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랍니다. 불쌍한 녀석 같으니라고..


학기중은 물론 학원 뺑뺑이, 방학만 되면 기숙학원으로 보내져서 토요일에 집에 오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기타 교습소 들러서 20분 레슨받고 한 10분정도 연습하다가 가곤 했었습니다.


저는 결국 학생 주 1회 레슨을 폐지하고 주 2회 레슨만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류장으로 써 먹히는 경우가 많이 줄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평일에 올 시간이 없어서 주2회를 금,토요일 밤 이틀 연속으로 받는 아이도 있습니다.


가끔 학원을 한개만 다니거나, 아예 안 다니는 애들도 있긴 하더군요. 이젠 저도 그게 신기해질 지경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을 학기보다 더 싫어합니다. 방학만 되면 학원들 특강이니 뭐니 해서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바쁘고 힘들다고 하네요. 학교 다닐땐 친구들하고 놀 수라도 있는데 학원은 상대적으로 그게 안되니까요. 5년동안 방학에 놀고 온 아이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선생들이 진도를 학원에서 배우고 온다는것을 전제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미디어에서 나오는 소식들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다고 합니다. 학원을 미리 다니지 않으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모르고 온다는걸 가정하에 수업하는 선생님들도 계시는것 같은데 그 수업은 애들이 '다 알고 있는 것만 가르치는' 이상한 선생님인것 같이 말을 하더군요. 그 수업은 그냥 잔다고 합니다.

아이야... 그 선생님이 정상인거고 너희들이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란거야.



제가 어렸을때는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학원은 많아봐야 한 두개, 그것도 안 다니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던걸 기억하면 지금은 정말 아이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광주 구석에 있던 동네라 더 그랬을 수도 있음) 저는 길가면서 고개 푹 숙이고 스마트폰 게임하며 가는 아이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학원으로 이동하는 그 시간 말곤 뭘 할 시간이 없었던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을 쥐어 패던 그 시절의 학교가 학교로서의 역할을 더 제대로 해냈던 것 같습니다. (*학생 패는걸 당연하게 생각하자는건 아님,당시에도 노답 학교들은 있었지만 예외) 학원 안 다녀도 수능보고 대학가는데 문제가 없었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는, 야간자율학습이 의무이긴 했지만 학교 수업과 EBS 교재만으로도 수능 충분히 보고도 남았습니다. 저 또한 학교 수업만 가지고 지방 국립대 합격해서 다녔구요. (고려대도 합격했었는데, 집에 돈이 없어서 집과 가까운 국립대 갔습니다.)



지금 성공만을 위해 경쟁속에서 치여 살고 있는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면 대체 어떻게 될지..

댓글 : 19 개
유게 글이나 댓글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애들 가르치는 입장이라 가끔 거슬리는건 어쩔 수 없어요ㅜㅜ
세상에;;
저는 기껏해야 수학, 영어정도였고 초등학교때까지는 학원도 안다니고 피아노, 태권도를 다녔었는데
요새는 차원이 다르네요
걍 눈뜬 시간은 학원+과제로 다 쓴다고 보면 됩니다. 중학생인데 숙제하느라 새벽1시에 잔다는 애들 굉장히 많습니다.
  • SISAO
  • 2024/03/16 AM 01:09
요즘 애들은 진짜 불쌍하긴 합니다. 정말로
보면 안타까운 마음만 생기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게 있어야 말이죠. 기타라도 재미있게 배우다 가렴..
글을 읽어보니 여러 감정과 생각이 오가네요.
그래요..요즘 애들, 특히 수도권 애들 참 불쌍하죠..
제가 어렸을때(2010년대) 아빠랑 서울 여행을 갔다가 처음 지하철을 타보고
충격먹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저랑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지하철에 앉아서 학원 숙제를 하더라구요.
상당히 늦은 시간대라 집에 가는줄 알았더니 걔네들에게 지하철은 학원에서 또다른 학원으로 오가기위한 중간과정이였던거죠.
그 잠깐의 시간에서도 숨돌릴틈 없이 숙제를 하던 걔네들 모습은 당시 철없던 제가 봐도
숨이 막히더군요. 저 어렸을때만 해도(지방 기준) 애들끼리 아파트 놀이터에 모여서 티격태격 놀고,
태권도 가서 서로 신나게 뒹굴고 닌텐도ds로 삼삼오오 게임도 하는 애들문화가 있었는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죠? 애들도 줄어서 동네 놀이터에 인적이 끊길 지경이니..
이렇게 조금의 여유도 없이 삭막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세상이 얼마나
더 우울해질까요? 안타깝습니다, 정말.
그래도 태권도는 방과후에 인성교육 포함한 케어를 해주는 역할이라 여전히 호황인걸로 압니다. 그저 국영수 돌리는것보단 차라리 나은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시간즘에 출근하는데, 놀이터에서 놀고있는 애들은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퇴근하고 10시즘 놀이터 지나쳐갈때 학원끝난 중학생들이 모여서 이야기꽃 피우는건 항상 보네요.
어릴때부터 친구들과 제대로 잘 놀아야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사춘기도 건강하게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도 괜찮은 어른이 되는건데.
부모들이 교육이란 명목으로 애들을 여기저기 학원으로 돌리기만하니........
인성교육이 괜히 인성'교육'이 아닌데............
중학교때부터 음악체육시간이 없거나 특정 학년에만 하는곳도 많은걸로 애들한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저 놀게 둘 수만은 없는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좀..
  • ink7
  • 2024/03/16 AM 01:24
다른 나라는 대학교 들어가서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우리나라만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사교육비가 높았다가 줄어드는 통계를 슈카월드에서 보여주더군요
어릴적부터 공부로 번아웃 되는 학생들... 입시란 이름으로 공부 트라우마를 새긴다란 생각이 드네요

그러고 보니 오래전 신사동 회사 다닐때 압구정 학원가마다
다음학원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던 지칠대로 지친 학생들 모습이 떠오르네요


대학교가면 1학년때부터 취업준비 들어가는 세상인데 끝도 없이 고통받네요.
목동에 은사님 한분을 알아서 그분 자녀 크는거를 유치원때부터 지금 대학갈때까지 매번 들었는데
진짜 그 동네 교육열? 은 미친거 같더군요

뭐 애들 학원 보낼 경제적 능력은 된다 치는데.........그렇게 수천만원 이상 들여서 결국 SKY 못가는 애들도 한트럭이고, 도저히 인간같지 않은 생활을 함.

초중딩때에는 너도 나도 다 의대 갈수 있다는 환상을 품지만 대충 고1 들어가서 애들 모의고사 점수 보기 시작하면 그게 안된다는걸 얼핏 알면서도 학원/학교에서 애들을 무섭게 몰아치죠.......

마치 그 길로 안 가면 인생이 망하기라도 하듯이.
저는 일반대학갔다가 27살에 음악 전공한 특이케이스라, 더더욱 음악보다 공부가 더 편하고 쉬운길인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선을 넘어버렸다고 생각하네요. 저렇게 커가면 분명 시한폭탄처럼 터져버릴 시기가 올텐데요.
요즘이 아니라 옛날에도 학윈 뺑뺑이 돌리는건 뉴스에 많이 나왔어요. 20년도 더 전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그때도 있었죠. 당시엔 소수였지만 지금은 안그런 애들 찾는게 더 힘들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학원 뺑뺑이가 어쩔수 없는 부분도 있어요. 맞벌이 가정의 경우 학원을 안보내면 퇴근때까지 애가 집에 혼자 있어야하니까요. 저희집 큰애는 방학이 싫다고 하는데 그이유가 오전에 학원이 없어서 혼자 있어야하는데 재미없다고 차라리 학원가는게 재미있고 좋다고 하더군요.
심심해서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나네요. 적어도 제가 가르치는 학생중엔 없었습니다.
저희 애가 그렇습니다. 외동이라 친구들도 다 학원가고 하면 심심하다고 기타 학원 보내달래서 다니고 있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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