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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연재] 기록 02: 야근 (0) 2026/03/26 AM 10:54

[기록 02: 야근]

(치익—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 이번엔 기자의 숨소리가 조금 더 거칠고, 무언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두 번째 기록입니다. 이건 1년 전, 어느 중견 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던 제보자가 보내온 내용입니다.

그날은 태풍이 상륙한 밤이었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 홀로 남은 자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과연 태풍 소리뿐이었을까요? 기사로 나가지 못한, 하지만 그 회사 복도에 여전히 떠도는 그날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본문]

창밖엔 미친 듯한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가 흡사 누군가 손톱으로 건물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사무실엔 나뿐이었다. 내일까지 마감해야 할 기획안 때문에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는지도 잊은 채 모니터 속 글자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콰광-!

고막을 찢는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모든 불이 꺼졌다. 정전이었다. 다행히 내 노트북은 꺼지지 않았지만, 광활한 사무실에서 남은 불빛이라곤 내 얼굴을 푸르스름하게 비추는 모니터 화면 하나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히자 빗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때였다.

쿠우우우-아.

정적을 깨고 복도 끝 화장실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았겠지만, 아무도 없는 이 야심한 시각, 그것도 정전된 사무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유독 기괴했다. "누구 있어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 손전등을 켰다. 좁은 빛줄기에 의지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은 차가운 냉기만 감돌았다. 세면대 앞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맨 끝 쪽, 굳게 닫혀 있는 화장실 칸에서 다시 한번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누구 있어요?"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침을 삼키며 잠긴 문을 힘껏 밀었다. 끼이익- 문은 힘없이 열렸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변기 커버조차 닫힌 채 적막만 흐를 뿐이었다. "수압 때문에 그런가 보네." 스스로를 달래며 서둘러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책상 앞에 멈춰 선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꺼지지 않은 노트북 화면에는 작업하던 엑셀 창이 아닌, 사내 메신저 창이 떠 있었다.

[로그인: 김 대리]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김 대리님은 1년 전, 바로 저 화장실 칸에서 과로로 쓰러진 채 발견됐던 분이었다. 마우스를 대지도 않았는데, 메신저 창에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 아직 안 나갔어. 나 아직 안 나갔어. 나 아직 안 나갔어. 나 아직 안 나갔어...]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다시 한번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기자의 덧붙임]

(카세트테이프의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심해진다.)

“...제보자는 그날 이후 사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가끔 밤마다 거실 화장실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겁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오늘, 녹음기 버튼을 누르는 게 유독 힘겹군요. 타이핑을 하던 검지 끝이 감각이 없더니... 딱딱하게 굳어버린 손톱이 책상 위로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고통은 없는데, 그저... 아주 낡은 종이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군요. 다음 기록을 마칠 때까지 내 손이 버텨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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