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구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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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일상] 유언장 쓰기?? (0) 2019/05/22 PM 01:57

내가 마지막으로 도쿄에서 헤이세이의 밤을 보내던 그날이었을까. 

그때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2017년의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여전히 폭망한 경기력을 보이면서 한신에게 깨갱당하고, 

나는 타키군이 걸었을지도 모를 육교위를 향해가며 시나노마치 근처에서 맥주에 진창 취해있었다.  


신주쿠를 밝히는 도코모 빌딩은 그렇게도 아름다워보일 수가 없었다. 전날 구질구질한 날씨 때문에 어렵싸리 끊어놓은 100년전통?이 가까워오는 진구구장 티켓이 종잇조각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되려 기우였고 황홀경만을 내 추억에 선사해줬다.


그렇게 달게 넘어가는 방사능 맛의 맥주를 연거푸 혼자 얼마나 노상에서 소리없이 마셔댔을까. 시차가 있을리가 없는데도 피곤함은 절정에 다다랐고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당장 야간 교대근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알람만 믿고 잠들어 버렸다가 쫓기듯 집앞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뭐 다시 일상으로의 초대였다. 검수를 하고, 날짜를 보고, 청소를 하고.... 다시 반복되는 일과들....


피곤한지 눈을 좀 붙인다. 구석진 곳에 팔을 기대고 앉아,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맞춰 짐시 휴식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든다. 잠이 든다. 잠이 든다......


낮선 천장. 나는 가방을 찾았다. 어깨가 돌아가지 않는다. 말을 할 수 없다. 혀가 씹혀 입에서 피가 고인다.... 나중에 경찰아저씨 말로는 새벽에 매장 안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고 한다. 맙소사,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것도 안 들린다. 다시 기억이 흐려져 버렸다. 나중에 듣기로는 MRI실에 들어갔을 때 또 다시 발작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뒤로 강제로 일을 그만두고 육체적인 일은 다신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어느새 요양 기간도 그렇게 더 길어져 버렸다. 


쉬는 동안 가을이 찾아왔고, 나는 한동안 냉담해왔던 신앙에 다시 귀의하기 시작했다. 고3때였던가, 건담 프라모델에 낚여 받은 가톨릭 세례였는데 막상 본당과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아니하다. 내가 젊었을 때 좀 삐딱하게 양아치같이 자라서인지... 아니면 나에겐 웬지 어렸을때부터 하나의 거대한 담장이자 또다른 계급처럼 느껴져서 그랬을수도 있다. 그냥 멀리 교회 다니던 집안으로서는 성당에 다녀서 위안을 받고 싶어도 그런게 어린 마음에 철벽이 됐을 수도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 성당 입구에 들어가려고 하면, 한발자국 망설이곤 한다. (절에서는 그렇게 안 느껴졌는데 :-p)


지금도 언제 쓰러질 지 모르고, 심지어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나의 운명이고 앞날이기도 하다. 지금도 전능한 주님에게는 단지 나눌수 있게 해달라고만 기도할 뿐이다. 특별하게 어떤 지고의 존재를 믿어와서가 아니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나는 죽음 앞에 항상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모두가 소중한 것이다. 몇년 만나지 못했던 친구, 선생님, 대부님, 동창들 차례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고 그 뒤로는 소리없이 카페 한 구석에서 조용히 그림 조금 그리다가 잠들면서 가고 싶을 뿐이다. 유해는 묻지 말고 의료실습용으로 기증해 주시기를. 


쓰다보니 길어졌다. 결국엔 유언장이 되어버렸다. 지금 쓰는 의미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특별한건 없다. 

다만 나는 더이상 절망하지도 않을 것이고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모두 사랑하고 아껴줄 것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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