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스포주의를 적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혹시 보신 분들 계시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을 접한 것은 배트맨 비긴즈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배경지식도 없이 배트맨이라는 이유로 보았고, 별 감흥없이 지나갔었습니다.
뭐 별 액션도 부족하고 부실해 보이는 CG와 세트장면들에 잘 모르던 빌런들이었으니요.
그리고 본 영화는 프레스티지였습니다.
마술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지만 왠지 뻔한 반전에, 판타지적으로 가버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실 심지어 놀란 감독의 작품인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리고 본 것이 다크나이트였습니다.
앞서 두 작품에 비하면 아주 높은 완성도였죠.
부족했던 액션연출이 더 강화 되었고 조커와 배트맨의 싸움이라는 배경에서 일어나는 고담의 이야기가 잘 펼쳐졌습니다.
아직도 놀란감독의 최고작품이라면 다크나이트를 고를 겁니다.
그리고 제 첫 아이맥스 영화기도 했죠.
그 후로 찾아본 영화가 메멘토였습니다. 꿀잼. 긴 말 안합니다.
그 다음 영화는 인셉션이었습니다. 기존의 있을 법한 이야기에서 이번에는 꿈을 소재로 한 그럴싸한 이야기를 펼쳤죠.
이 영화까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절묘한 연출력에 설정이 잘 녹아드는 영상미까지 어우러졌으니까요.
그런데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나왔습니다. 초반 30분이 제일 재밌었습니다. 점점 이야기가 밝혀지더니 결말부에 가서는 완전히 무너져버렸죠. 이상한 개연성과 무성의한 격투 연출, 웃음이 나오는 편집의 결정체였습니다.
그것이 놀란 감독의 한계였든, 외부의 한계였든 전 그 이후로 완전히 실망을 해버렸죠.
그리고 이번에 인터스텔라가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한계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상미는 엄청납니다. 작년의 그래비티가 리얼한 우주를 보여주었다면 그래비티는 우리가 보지 못한 리얼함을 보여줍니다.
웜홀의 모습, 가까이서 보는 블랙홀, 신비한 외계 행성등 다양한 볼것이 압도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의 이야기에 많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우주로 나간 사람은 총 4명입니다. 그리고 컴퓨터 2대죠.
그 중에서 단 셋만이 부각이 되고 나머지는 쩌리로 전락을 해버립니다.
이름을 외우기도 전에 파도에 휩쓸려버린 분과 늙어버린 흑형, 그리고 대사도 얼마 없는 컴퓨터 한대.
놀란감독을 좋아했던 것은 그런 엑스트라에 신경을 쓰는 시나리오 때문이었습니다.
놀란의 시나리오는 서브플롯을 중시했습니다. 다크나이트의 마피아나 두 배 이야기, 인셉션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등등 버리는 캐릭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과감히 다 버려버립니다.
캐릭터들이 별 의미없이 소모가 되어버립니다. 스토리는 온전하게 머피와 그 가족에 중심을 맞추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주변 캐릭터들은 쩌리가 되어버리고 심지어 여주인공인 앤 해서웨이까지 쩌리급으로 강등됩니다.
그러면서 강조를 한 머피의 이야기도 아리송합니다.
가족을 위해 우주로 나갔고 가족애로 지구를 구한 주인공이죠.
그러나 전 그 작위성에 눈살이 찌푸려지더군요. 극중 후반에서 머피는 여주인공을 위해 블랙홀로 들어가는 희생을 합니다.
(ps. 중력에 의해 가속되고 난 뒤에 우주선의 일부가 떨어진다고 속도가 빨라지던가요? 오히려 같이 등속운동을 하지 않던가요.)
그리고 블랙홀에 들어간 머피는 먼 미래의 인류가 준 기회로 딸에게 메세지를 전달할 기회가 생깁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잖아요. 먼 미래의 인류가 과거의 인류를 도와준다? 게다가 그건 타임 패러독스 아닌가요? 그렇다면 먼 미래의 인류의 과거에서는 누가 구해줬나. 먼 미래의 과거의 인류의 미래의 인류가 구해준다... 반복으로 가면 결국 패러독스가 남죠.
이건 시간의 방향성이 있다고 보면 패러독스지만 영화에서는 시간의 방향성에서 벗어난 존재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가 되는 걸까요.
하지만 먼 미래의 인류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머피가 뽑힌 이유도 가관입니다. 가족의 사랑....
결론적으로 보면 다 잘되었으니 메데타시라 할 수 있지만 먼 미래의 인류는 뭔 생각으로 그를 보낸 걸까요. 아니, 먼 미래의 인류는 이미 알고 있으니 이 역시 타임패러독스일까요.
어쨌든 아무리 봐도 미래의 인류 드립은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반부 질질 짜려고 눈가가 촉촉해졌는데 금방 식어버렸네요.
뭐 결국 미래의 인류가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머피는 먼 미래의 토성궤도에 떨어지죠.
먼 미래의 인류도 참 무심하네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말이 안나오더군요.
분명 교수가 딸 세대가 지구의 마지막 세대가 될 거라 하지 않았나요?
아들딸 잘 낳고 그 다음 세대도 멀쩡하더군요.
또 토성권에 잘도 콜로니 건설을 했고 옥수수도 잘만 재배하더군요.
이거 아무리 봐도 억지잖아요.
머피가 전해준 것은 중력에 관한 방정식을 해결할 양자정보 뿐이었습니다. 콜로니 짓고 병충해 해결하는 것은 다른 기술에서 나오는 일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그것으로 해결이 되었다?
이건 순전히 인류 바보취급하는 거 아닌가요?
작중 초반을 보면 엔지니어링을 바보취급하고 농사일을 제일로 치는 것이 나오죠.
실제로라면 그걸 이길 연구를 하는 것이 인류 아니었나요? 그리고 이겼잖아요?
극후반부에서는 멍해지더군요.
기껏 감동했던 것이 다 사라지는 루즈한 엔딩은 덤이었습니다.
정말 비쥬얼 적인 측면에서는 감동을 했고 후반부의 책장 신은 정말 복선 회수에 대한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측면에서 보면 이게 놀란 감독의 작품인지, 그냥 평범한 SF영화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말아먹은 개연성에, 기승전 데우스마키나에 아쉬움 한가득입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면서 이건 놀란의 대 실패작이고 이건 어쩌다 잘못한 거겠지 했는데...
이번 인터스텔라를 보니 이게 한계인가 하는 기분이 드네요.
필름덕후에 비쥬얼을 강조하는 것은 알고 또 그럴싸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데 이야기도 그만큼 발전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이라는 광고 문구가 있는데, 언제 인류가 사랑으로 때려맞추고 사랑하니까 다 될 거야. 하고 막나갔고 그대로 되었던가요?
하드한 SF를 기대하고 정말 SF적인 우주진출을 다룰 줄 알았는데 근본부터 실망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을 보니 이야기 구조를 맞추고 그에 끼워맞춰서 세세한 디테일이 들어간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아... 다크나이트가 최고였어요. |
결과적인 평은 볼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