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Aus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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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밀덕] 1911에 대하여 -3부- (0) 2011/08/01 PM 10:11
모로족이 나쁜 놈처럼 보이지만 미군이 한게 더했죠.
마을 하나 싸그리 쓸어버리는 것정도야 이미 인디언 전쟁에서 해봤던 짓이니 얘들이 그
런거 안했을리 없고 나중에는 증기기관으로 작동되는 소방용 펌프가지고 화염방사기까
지 만들어가며 촌락을 태워버립니다.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혹은 식민지가 될 지역에서 엄한 짓 한다하면 그 문명화됐다던
인간들이 벌인건 절대 문명화되지 않은 짓이었죠.


p.s:
한가지 주의하실 점.

저 위의 M1903은 Colt Pocket이면서도 Hammer 모델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 물건보다 더 작고 사용탄도 38 ACP가 아닌 32 ACP나 380 ACP를 사용하는
Colt M1903 Pocket Hammerless가 있기 때문에요.
햄머리스쪽이 더 대중적이고 더 잘알려진 물건입니다.





이건 1908년 약간 더 달라진 M1908과 함께 1945년까지 생산됐고 호신용 권총으로서는
잘팔린 물건중 하나였죠.

알 카포네도 호신용으로 주머니에 넣어다녔고 보니와 클라이드도 들고 다녔으며 군에서
는 대령 이상이면 지급되는데다 패튼 장군도 상아 손잡이 콜트 SAA와 S&W M27 357 매그
넘 리볼버외에 이 햄머리스를 들고 다녔죠.
또한 조종사나 장교들중에서도 자비로 구입하거나 선물받은 햄머리스를 들고 다닌 사람
도 있습니다.

몇년전 잡지에 난 기고중에는 1차대전 참전 경험있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햄머리스를 2
차대전중 해군 PBY 조종사였던 아들에게 선물하고 다시 이 아들은 월남전중 해병대의
수륙양용 장갑차 몰던 손자에게 선물해 3대가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한마디로 패밀리 건.


p.s:
John T. Thomson 대령은 후일 소장으로 퇴역하고 1차대전중 지리한 참호전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자동화기를 개발하게 됩니다.
톰슨 장군의 표현대로라면 1명의 병사가 휴대가능한 기관총이자 소총수와 같이 전진하
여 참호속을 청소해줄 화기였죠.
그의 발명품은 전선으로 보내지려고 배에 선적하던중 전쟁이 끝나 실전에는 투입못됩니
다.
그 대신 1920년대부터 본격적인 개량이 가해져 군대와 민간에 판매되나 군대에서는 시
큰둥했고 텍사스 국경지대의 목장주들이 멕시코 소도둑들에게 써먹으며 성능을 입증해
보이게 되죠.

그리고 그 후, 이 물건은 금주법 시대 갱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버리죠.
바로 토미건 내지는 gut, 시카고 타이프라이터라 불린 톰슨 기관단총이 바로 톰슨 장군
의 발명품이었죠.
기관단총(SMG: Sub Macjine Gun)이란 단어도 톰슨 영감님이 자기의 발명품을 팔기위해
만들어낸 단어였습니다.
말그대로 보조적인 기관총이란 의미이죠.


p.s:
미군의 총기 선정에 독일의 루거가 올라온게 좀 의외일 듯 싶긴 할겁니다.
뢰베사(Loewe & Co, DWM:Deutsche Waffen und Munitionsfabriken의 전신)의 루거 권총
은 당시 스위스군이 채용한 이래 다른 군대에도 판매를 위해 제출되던 상황이었죠.
돈을 벌어야 마누라 옷도 사주고 대출도 갚고 얘들 과자라도 사주죠.

그러나 미군으로선 비싸며 복잡하고 오염등에 취약한 루거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죠.
결국 소수의 루거 - 대부분 30구경 - 가 도입되어져 미국내에서 판매되긴 하나 미군은
루거의 45구경 버젼은 거부합니다.

어쩌건 이 와중에 미군에 납품된 소수의 45구경 루거 권총과 권총을 베이스로한 카빈형
(개머리판 장착 가능)은 지금은 상당히 소수만 남아 아주 비싼 골동품 대접을 받고 있
죠.



상태좋은건 정당 백만달러정도 해주시니 말입니다.

그리고 루거가 완전히 미국에서 사라진건 또 아닙니다.
이 물건 등장 이후로 작은 양이지만 미국내에서 판매가 이뤄지며 1920년부터는 스토거(
Stoeger)사에서 미국내에서 판매를 했었죠.
이 스토거사의 루거 판권은 1980년까지 유지되며 덕분에 스토커사에서는 2차대전후 스
테인레스 스틸로 된 루거를 만들기도 합니다.




p.s:
콜트 M1911은 몇몇 의회명예훈장(Medal Of Honor) 수장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앨빈 요크 상사 (Alvin York)
1918년 10월 8일, 그는 자신의 소총으로 독일군 기관총 중대를 저격하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5명의 독일군을 M1911로 뒷쪽부터 차례대로 쏴버렸죠.
그 날 전투로 25명을 사살하고 132명을 포로로 잡으며 명예훈장을 타죠.

프랭크 루크 소위(Frank Luke, Jr.)
1918년 9월 29일, 스패드기를 타고 출격하여 3대의 독일군 기구를 격추시킨 후 격추됩
니다.
독일지역에 불시착후 그를 잡으러 오는 독일군 병사에게 M1911과 리볼버를 꺼내들고 응
전, 독일군 7명을 죽이고 자신도 사살당하죠.

죤 바실론 중사(Gunnery Sergeant John Basilone)
과달카날 전투 당시, 테나루 강(Tenaru River)의 기관총 진지에서 야습중인 일본군 중
대를 상대로 기관총 2정과 M1911A1, 정글도와 주먹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다수의 일
본군을 사살하고 복귀합니다.
전투 와중에 그 무거운 M1917 수냉식 기관총을 들고 쏘면서 진지 이동해서 사격을 하는
굉장한 일도 했죠.
덕분에 아래와 같은 동상이 세워진다해도 이상한건 아닐 겁니다.


람보? 난 그런 얘들과 다르다니까.

어니스트 코우마 상사(Earnest R. Kouma)
1950년 8월 31일, 72전차대대의 전차장으로 아곡(왜관)에서 하천을 건너 야습하던 북한
군과 교전을 펼칩니다.
그 곳에서 유일한 방어물이던 자신의 전차를 포기하지 않고 지키며 파상공격을 막아냈
고 그 자신도 햇치를 열고 나와 전차의 50구경 기관총과 M1911A1 권총, 수류탄으로 전
투를 치뤄내며 북한군 보병 200여명을 사상시킵니다.

로버트 맥거번 중위(Robert M. McGovern)
1951년 1월 30일, 1기병 소속으로 금양장리에서 중공군 기관총 진지에 혼자 카빈과 권
총, 수류탄으로 돌격, 기관총 진지를 침묵시키고 자신도 전사합니다. (열흘뒤에는 그의
동생도 전사하죠. 졸지에 아들 둘을 잃은 아버지에게 명예훈장과 둘째 아들의 은성훈장
이 전달됐을 때 아버지는 이걸 거부 했답니다. 훈장받을 자격이 충분한 다른 누군가의
아들이 받아야 한다면서...)

개리 고든 상사(Gary I. Gordon)와 랜디 슈가트 하사(Randy Shughart)
1993 10월 3일, 고딕 서펀트 작전중 추락한 MH-60 Super Six Four의 승무원 4명을 지키
기위해 낙하, 저격총과 권총으로 전투를 치루다 전사합니다.


p.s:

다시 없을.

죤 브라우닝은 아버지부터 총기 기술자(gun smith)였고 이미 14세에 그의 형을 위해 단
발 소총을 만들어낸데다 1879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형제들과 가업을 이어 받아
총포점을 열게 됩니다.
브라우닝은 기계류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하는데 적극적이었다
고 하죠.

그의 총포점은 날이갈수록 번창했고 투자를 받기위해 Browning Gun Factory란 이름으로
개칭했지만 이 당시 브라우닝 자신은 자신의 회사가 번창하는 것을 그리 만족스럽지 못
하게 생각했다고 하죠.
새로운 아이디어를 살려 총을 설계하는게 좋았지 사업때문에 시간을 빼았길 생각이 없
었거든요.
그 때 마침 브라우닝이 만들던 총은 윈체스터사의 관심을 끌게됐고 결국 윈체스터는 그
의 설계들을 사는 조건으로 생산과 판매를 담당하는 협의를 거치게 되죠.
윈체스터로서는 경쟁사 하나를 없에는 대신 좋은 설계를 살 수 있었고 브라우닝으로선
생산에 관여안하면서 돈도 벌고 총을 설계할 시간도 벌 수 있어 서로 좋았던 일이였으
니.

1883 ~ 1902년까지 브라우닝은 M1886 레버액션 라이플, M1887 레버액션 산탄총, M1897
펌프액션 산탄총, M1894와 M1895 레버액션 라이플등을 윈체스터를 위해 설계해냅니다.
그리고 저 총들은 당시 베스트셀러 총기가 됩니다.

M1894, 줄여서 그저 M94는 레버액션 라이플의 기본중 하나이며 여전히 그 설계가 아직
도 사용중입니다.
M1887은 우리에겐 터미네이터 2의 산탄총 - 거버네이터가 돌리던 바로 그 물건 - 으로,
M1897은 트랜치 건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총이기도 하죠.


브라우닝 인사인드1, 아니 바이 사이드인가?


이 츠자도 브라우닝 인사이드

그러다 1890년대 넘어서며 브라우닝은 자종 총기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일설에는 총구끝에서 방출되는 총구 폭풍(muzzle blast)에 사격장의 풀들이 흔들리는걸
보고 그 에너지를 총기의 자동화에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죠.
1898년, 반동을 이용한 자동 산탄총에 대한 설계를 시작, 1900년 2월 8일 특허신청하여
그 해 10월에 특허번호 659507을 받게되죠.

그런데 이 일로 인해 윈체스터사와 브라우닝의 관계는 끊어지게 됩니다.
이미 자동총기들에 대한 견해차가 나던 시기였던터라 브라우닝이 자동 산탄총까지 들고
나오자 견해차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거죠.
이에 열받은 브라우닝, 자신의 설계를 들고 레밍턴사로 찾아가나 이 때 하필 레밍턴사
의 사장이 심장마비로 사망해버립니다.

그 결과, 이미 M1900같은 브라우닝의 자동권총을 생산해본 적이 있던 벨기에의 신생회
사 Fabrique National de Belgique(줄여서 FN)에 그의 산탄총 생산을 의뢰하게 되죠.
그리고 1902년부터 브라우닝의 자동 산탄총은 생산과 판매가 시작되며 레밍턴도 라이센
스를 얻어 Model 11을 만들게 되며 새비지(Savage)와 프란치(Franchi)에도 라이센스가
들어가죠.

여튼 이렇게 세상에 등장한 브라우닝 AUTO 5, 혹은 그저 A-5는 2차대전 직전까지 잘팔
린 베스트셀러 총기가 됐죠.

윈체스터? 땅을 쳐봐야 이미 끝난 판이었던거고 말입니다.

여튼 요 AUTO-5는 2차대전중 독일이 벨기에 점령하며 생산중지 됐다가 대전후 FN에 의
해 다시 생산-판매되며 FN사의 덩치를 키우는데 일조합니다.
전쟁후 불어닥친 사냥와 아웃도어 라이프에서 입증된 성능을 보여준 물건이 안팔리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AUTO-5는 FN에 의해 꾸준히 생산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거 수입되기도 합니
다.
아마 한 20여년쯤 전에 신문을 유심히 보셨던 분은 광고를 보신 적이 있을실 겁니다.

그러고보면 이 '부로오토'는 1970년대에 일본에서 생산된 적도 있습니다. (부로오토는
브라우닝 오토를 일본친구들이 줄여부르던 표현중 하나였죠.)
날이 갈수록 비싸지던 인건비와 시설유지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FN사는 일본의 미로
쿠 정공에서 부품등의 생산을 맏겼고 스페인에서도 그렇게 한적이 있었으니.

AUTO-5, 무려 1998년까지 생산됩니다.
한마디로 장수만세 한거죠.
지금은 더이상 생산은 안되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돌아다니닌 물건이 있을 정도는 되죠.


p.s:
1970년대말, 미군은 새로운 자동권총을 선정하려는 계획을 내놨고 이에 미공군이 주요
에이전시가 되어 JSSAP(Joint Services Small Arms Program)의 일환으로 유럽 표준인 9
mm Para탄을 사용하는 새로운 자동권총을 찾게되죠.
의회의 승인을 받은 일차적 경쟁이 벌어졌고 Colt SSP, Star M28, S&W 459, H&K 2종(P9
S, VP70), FN 3종 (GP35, FA/DA Hi Power)이 출품되죠.
1차 경쟁에서 대부분 모델들 물먹습니다.

막간극으로 미육군이 딴지걸고 넘어가죠.
'9mm는 45 ACP보다 부족한데?'
이래저래 말이 많다 결국 미육군도 대세를 따르게 됐고 그래서 9mm탄을 쓰기로 다시 결
정됩니다.

그 다음 경쟁에서는 베레타 92SB, H&K P7M13, S&W M459, SIG Sauer P226이 출품되어지
나 모두 다 물먹습니다.

1983년 11월, 미군은 민간회사들에 차기 권총(XP9라 불린)을 선정하기 위해 샘플을 198
4년 1월까지 보내라고 요청했고 시장이 시장이다보니 세계 유수의 총기회사들이 경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장 그 면면만 봐도 베레타 92SB-F, Walther P88, H&K P7M13, SIG Sauer P226, S&W 45
9, Colt SSP, FN DA, Steyr GB 등등이 제출되니.
이들은 1984년 8월까지 이런저런 시험과 평가를 거쳐 두 모델이 합격최종 선택선에 놓
여 집니다.
바로 베레타(이태리의 베레타 본사와 프랑스 컨트렉터)와 SIG(당시 미국에서는 SACO가
수입판매).

한편 이 순간에도 막간극이 벌어졌으니...
S&W 459가 다른 면에서는 좋은 평을 들었으나 공이의 타격시 에너지등을 계산하는데 인
치 단위계에서 미터 단위계로 변환이 틀려 공이 타격에너지가 틀어진다는 뭔가 황당한
실수가 원인이 되어 물먹습니다.
산수는 멀리 있는 과목이 아닙니다.

여튼 마지막까지 남은 SIG와 베레타.
2등은 안먹어준다는 경쟁의 속성상 서로 팽팽하게 경쟁이 붙게됐고 거의 막상막하였으
나 결정정으로 SIG쪽이 베레타보다 예비부품등의 가격을 몇달러쯤 높게 불러버리는 바
람에 물먹습니다.

결국 베레타의 M92SF가 M9 Service Pistol로 채용됐고 1차적으로 315930정(후일 321260
정으로 증가)이 주문되죠.

뭐 이렇게 해서 미군은 새로운 9mm 자동권총을 가졌으나 이게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
진 못하게 되죠.
1987년 9월, 새로 채용된 M9으로 이래저래 테스트를 하던중 미육군과 SEAL에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죠.
이미 민간시장에 판매중이던 베레타 M92SB 모델중 일부에서 슬라이드 깨짐(후일 slide
separation이라 불릴)이 보고되던터라 군에서까지 이런 문제가 나오니 시끄러워진거죠.

M9은 발터 P38과 유사한 폐쇄유지 방식을 씁니다.
총열 아래에 달린 블럭을 떨어트려 총열 정지와 동시에 슬라이드가 지나갈 길을 만들어
주는 식이었는데 문제는 슬라이드내의 돌기부분이 약화되어 부숴지고 이 파쇄현상은 슬
라이드 부분으로까지 번져 마침내 슬라이드가 앞뒤로 두조각나게 되며 조각난 슬라이드
중 뒷부분이 총에서 떨어져나와 사수를 향해 날아간다는 것이었죠.

1988년초까지 3명의 미해군 특수전 병력(SEAL 소속)이 이 원인으로 부상을 당했다하죠.
(1명은 이빨이 나가고 2명은 얼굴이 찢어져 봉합.)

당장 미육군은 3정의 M9을 표본으로 뽑아 10000발을 쐈고 그 결과 슬라이드 부분에 균
열이 생기는걸 발견합니다.
또 각각 23310발, 30083발, 30545발을 쐈을 때 슬라이드가 완전히 두조각나 날아가는
문제가 발생함을 알게됐죠.

문제는 커져 권총 선정시 문제가 있었다는 소리가 나온데다 테스트를 해봤던 미해군
SEAL은 스텀 루거(Sturm Ruger)에 슬라이드 문제를 흘렸다는 이유로 베레타에 고소당
하는 일도 벌어지죠.

또 베레타는 테스트당시 NATO 규격탄보다 더 강한 탄약을 썼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거
니 우리만 잘못한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미육군은 프랑스 업체에서 공급한 강도가 더
욱 떨어지는 슬라이드를 썼다는 점때문에 빈축을 사죠.

결국 베레타는 품질관리를 위해 아예 미국에 공장을 지어버렸고, 슬라이드 재료를 더좋
은 걸로 써서 더 튼튼하게 만든데다 부숴진 슬라이드가 튕겨나올 때 총에 걸려 정지되
게 하는 부품을 추가하여 사태는 진정됩니다

한편 경쟁에서 물먹은 SIG.
이쪽은 경쟁에서 지긴 했지만 군 수사기관등을 중심으로 사용이 진행되며 경찰등에서도
인기를 얻게되죠.

그리고 M9이 채택된 2년후에 미련이 남았던지 권총 자체의 튼튼함으로 어디가서 절대
꿀릴거 없던 그러나 방아쇠는 형편없다는 소리를 듣던 스텀 루거와 S&W이 자신들의 권
총을 다시 제출하나 이건 물먹게 됩니다.
그래서 혹자는 베레타와 SIG의 강철 프레임이 스텀 루거와 S&W의 스테인레스 스틸 프레
임을 이겼다고 농담삼아 말하기도 하죠.


p.s:
무려 1930년대에 나왔으면서 안전장치 없는 권총.
베이스는 은근히 M1911 혹은 브라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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