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건 그나마 약과긴 합니다.
2차대전중 키니네 수입을 못하던 독일, 영국, 미국등은 말라리아 치료제가 필요했고 그
와중에 퀴닌(quinine)계 약품, 그러니 합성 키니네들이 개발되죠.
독일이 먼저 성공해 아프리카에 파견된 병력들에게 지급했고 동맹국 이탈리아군에게도
지급합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독일은 당시 2가지 약품을 가졌었고
그중 하나는 성능이 별로라고 판단, 그걸 모두 이탈리아 군에게 줘버렸죠. 웃기게도
독일이 약효가 별로라 판단한 약이 오히려 약효가 더좋았죠! 마음은 곱게 쓰는게 좋은
겁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노획된 이 약품은 분석되어졌고 미국은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를
합성하는데 힌트를 얻게되고 이렇게 등장한 말라리아약 아태브린(Atabrine)은
화학합성과 약학에선 2차대전까지의 비교적 성공적인 약품 합성의 예로 남게됩니다.
그러나 병사들 입장에서는 그 당시로선 효과만빵의 노란색 아태브린 정제에 대해
먹으면 꼬추가 안서는 약으로 인식됩니다.
덕분에 말라리아의 공포를 무릅쓰고 약을 안먹으려는 병사들이 나왔고 군의관들은 애를
먹었다 하죠.
p.s:
만약 고기가 신선할 경우 날고기를 그냥 먹은 경우도 있었다죠.
이러다 아주 호되게 당한 경우.
1619년, 영국의 유니콘호는 북서항로를 찾는다고 헤메다 1620년 캐나다의 허드슨만에서
괴롭게 죽어가죠.
덩시 북서항로 찾다가 천국에 주민등록 이전한 경우가 많다는걸 보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들은 꽤나 묘하게 죽어갑니다.
선장의 비망록에서 곰고기를 날로 먹고 죽어갔다는게 나온데다 1897년 기구로 북극에
가보려던 스웨덴인들도 곰고기를 날로 먹고 죽었다는걸 찾아내며 이야기가 달라지죠.
결국 원인은 고기속에 포함된 선모충 때문인걸로 결론이 납니다.
교훈 1: 뭐든 익혀 먹어라.
교훈 2: 아무거나 주어와서 취식하지 말것.
두 교훈은 군과 같은 단체 급식 환경에서 잘 지켜지려고 하죠.
특히 군대의 경우는 이런 일을 하도 당해본지라 이 부분에 신경을 꽤나 쓸 수 밖에
없죠.
밥때문에 전투력이 왕창 깍이는걸 한두번 겪어봤어야지.
'그 좋은 쇠고기를 그냥 물에 넣고 회색이 될 때까지 익혀버리더라구요.'
--- 지옥의 묵시록중 한 구절.
p.s:
적어도 감자는 나폴레옹 시대까지만해도 천대받던 식품이었죠.
오늘날 천톤 단위로 소모되는 작물에게 미안할 정도로 말입니다.
파르망띠에(Antoine Augustin Parmentier)는 루이 16세와 나폴레옹 시대의 사람으로
7년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포로생활하면서 감자로도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그 후,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밀을 대신할 수 있는 작물로 또 국가가 권장해서 제배를
해야할 작물로 감자를 알리게 됩니다.
어쩌면 파르망띠에에게 최고의 조상일듯.
파리 지하철역의 한 곳이라나.
그의 노력은 비록 그가 죽고 난 다음에 결실을 맺습니다만 그로 인해 더이상파리 지하철역의 한 곳이라나.
유럽인들은 감자에 대해 독이 있다라는 편견을 가지지 않게 됐고 감자를 가장 늦게까지
거부하던 영국에서조차 19세기 중반이후로는 대중들의 식단을 개선한 작물로 인정하게
됩니다. (피쉬 앤 칩스와 같이 패스트푸드이자 값싼 먹을 거리이자 노동자들을
먹여살릴 음식으로.)
아, 감자가 환영받은 곳도 있습니다.
살기 팍팍하던 아이레와 유럽과는 관련없는 식생활 환경을 만들어가던 미국에서는
감자는 환영받던 식품이었죠.
p.s:
19세기까지 미군이 1일 1인당 지급(정상적인 상태라면)된 식사량입니다.
사용된 단위환산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온스(oz, ounce) = 1/16 파운드로 28.35g.
1 쿼트(qt, quart) = 1/4 갤런 = 2 파인트 = 0.95 리터.
1 질(gill) = 1/4 파인트 = 0.14 리터.
1775년, 대륙회의(the Continental Congress)에서 결정된 미군의 1일 지급량.
l6 온스의 고기 (쇠고기이나 없다면 돼지나 소금에 절인 생선, 햄같은 육가공품으로
대채)
6.8 온스의 콩에 1.4온즈 정도의 다른 곡물.
18 온스의 밀가루.
16 온스의 우유.
1 쿼트의 맥주 (혹은 사과주cider)
0.1830 온스의 비누와 0.0686 온스의 양초.
당시에는 술이 지급됐다는 점이고 맥주같은 것은 당당히 음료수이자 식량취급을 받죠.
우유나 술같은 것은 지급되지 않을 경우 그에 해당하는 돈으로 지급되기도 합니다.
'더 이상 맥주가 없어서...'
--- 메이플라워호의 항해일지중 한 구절.
1812년에서는 몇가지 변동이 생기죠.
20 온스의 육류.
18 온스의 밀가루.
1 질의 럼.
1 질의 식초.
0.64 온스의 소금.
0.64 온스의 비누와 0.24 온스의 양초.
보관성이 좋은 럼주가 맥주를 대채했고 양이 좀 더 많아집니다.
식초의 양이 많은데 이는 식초가 사실상 먹기 괴로운 급식을 그래도 먹을만하게 만드는
존재이자 당시의 속설인 괴혈병을 막아줄 것이라 예상도 있었답니다. (실제론 그렇지
않지만)
1836년 알라모를 잊지 말자에서 시작해 미국은 1838년 멕시코와 한판뜹니다.
'예수가 와서 사정해도 내가 산타 아나의 병사를 쏘는걸 막지는 못할 겁니다.'
--- 1836년 4월 20일, 물속으로 뛰어든 멕시코군 병사들을 거의 학살해버리던 병사들을
말리자 그에 대해 어느 병사의 대답
이 전쟁에서 미군은 술을 군대에서 빼고 대신 커피를 주게 되죠.
좋은 시절 다간거죠.
20 온스의 육류.
18 온스의 밀가루.
2.4 온스의 건조곡물이나 콩.
0.16 질의 식초.
0.96 온스의 커피(green coffee라고 볶지않은 원두)
1.92 온스의 설탕.
0.64 온스의 소금.
0.183 온스의 비누와 0.0686 온스의 양초.
남북전쟁이 터졌고 미국의 통조림 산업이 발달하는 시초가 되기도 합니다.
당시 그 어떤 전쟁보다 통조림 식품과 건조식품이 대량으로 지급된 시기이기도 하죠.
당시 레이션은 크게 주둔지 식사(camp ration)와 행군 식사(marching ration)로 이제
확실히 구분됩니다.
뭐 계급이 되면 이런 것도 가능하긴한데 저기 기자양반 되게 신경쓰이네.
남북전쟁중의 주둔지 식사를 기준으로 보자면 대충 아래와 같이 지급받습니다.
일일 기준.
12온스의 염장 돼지고기(salt horse라 불린) 혹은 베이컨,
아니면 1파운드 4온스의 쇠고기(염장 혹은 신선한 것)
1파운드 6온스의 빵이나 그에 해당하는 밀가루,
아니면 1파운드의 건빵 혹은 1파운드 4온스의 옥수수가루.
100인분을 기준으로 다음 물품을 지급.
1펙(peck, 8quart에 해당하며 약 8.8리터)의 콩종류.
10파운드의 쌀이나 간 옥수수.
10파운드의 커피원두(green coffee)
8파운드의 볶고 간 커피(roasted and ground coffee) 혹은 1파운드 8온스의 차.
12 ~ 15파운드의 설탕.
1쿼트의 소금.
1쿼트(qt, 1quart = 1/4 갤런 = 2 파인트 = 0.95 리터)의 당밀.
4쿼트 가량의 식초.
40온스의 후추.
4.5 온스의 효모(yeast).
1파운드 4온스의 양초.
4파운드의 비누.
부가적인 다음 물품을 지급.
건조 야채(주로 감자와 당근)와 건조 과일. 보통 1인당 7온스가량.
가능하다면 다른 야채의 피클이나 양배추 피클 및 다른 종류의 야채(감자나 양파같은).
보통 이런 재료로 빵을 굽고 커피를 끓이며 스튜나 스프를 끓여 지급합니다.
행군시 식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파운드의 건빵.
3/4파운드의 염장 돼지고기 혹은 1과 1/4파운드의 고기.
커피, 소금, 설탕, 기타 건조야채등.
위는 북군, 그러니 연방군 기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정비됐고 비옥한 토지를 가졌으면서도 남부는 식량의 생산과
통제에서 실패했죠.
북부는 전쟁중에 누구도 살 수 있는 가격에 밀가루를 팔았으며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땅을 거의 공짜에 가깝게 줘서 농사를 지었던 반면 남부의 면화농장은 밀을 키울
생각을 그렇게 안했으니.
이 점은 전쟁초에 분명히 경고됐으나 깨끗이 묵살당했고 덕분에 남부연맹의 병사들은
1862년을 기점으로 굶거나 제대로 안된 식사를 했어야 합니다.
심지어 고기조차도 연방에 속하기로한 주들이 남부 연맹에 대해 고기를 줄리가
없던터라 노예들이 먹던 찌꺼기 고기조차도 먹기 힘들 지경이 되버리죠.
'어제는 설익은 사과를 구워먹었다오.'
--- 한 남부연맹군 병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중.
한편 북군의 경우는 단조로운 식사에 질려버릴 지경이었죠.
'아침은 빵, 커피, 베이컨이었고 점심은 커피, 빵, 베이컨이었으며 저녁은 베이컨,
커피, 빵이었다.'
--- 한 북부연방군 장교가 1910년대에 남긴 글중에서.
이런 환경인지라 종군 상인이 팔거나 집에서 보내오는 담배, 초컬릿, 과일, 각종
통조림등이 들어간 식료품 소포는 귀중했죠.
단조로운 식단을 없에버릴 물건이었으니 말입니다.
'전쟁중 발전한 것중 하나는 바로 소포 포장기술이다.'
--- 어느 병사의 회고중
이건 당시에 지급되던 기호품들, 앞의 건빵 빼고.
노끈처럼 꼬아놓은 타래가 바로 담배. 씹거나 파이프로 피웠고
자루는 커피콩 자루,
그리고 커피를 끓일 주전자 겸 냄비
노끈처럼 꼬아놓은 타래가 바로 담배. 씹거나 파이프로 피웠고
자루는 커피콩 자루,
그리고 커피를 끓일 주전자 겸 냄비
p.s:
통조림과 같이 공장에서 식품이 대량생산되자 이런 도시 전설들이 생겨나게 되죠.
특히 초창기의 지저분한 식품 가공업 - 시대를 막론한 문제지만 - 상황에서 소문은
더욱 커질 수 밖에요.
'어떤 통조림 혹은 소세지에 사람이 들어갔다더라.'
제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없어졌는데 나중에 비누 공장의 가마속에서 뼈만 발견됐다든지
간장 공장에서 사람이 빠져 죽었는데 그 간장이 맛있다고 팔렸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긴 합니다.
'여러분들이 봐선 안될 2가지 광경이 있다.
하나는 공장에서 소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회에서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비스마르크.
p.s:
우리도 월남전시 K ration이라 불린 김치, 깍두기, 된장, 꽁치등이 들어간 통조림들이
있었죠.
p.s:
셀로판은 1900년에 스위스의 Jacques Edwin Brandenberger라는 화학자가 만들죠.
곧 이 필름은 식품 포장등에 널리 사용되게 됩니다.
p.s:
전선에서 따뜻한 식사를 만들어 먹는건 어찌보면 호사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렇다고 적이 보는 앞에서 불을 피운다는건 20세기 들어서는 자살행위로 확실히
찍혀버리는 상황이 되죠.
상대가 신사적이면 괜찮은데 그게 아니면 거기다 포탄 한발 정도는 떨어트려줄 여유가
있었으니.
뭐 심한 경우는 태평양에서 미군처럼 항공 정찰하다가 밥하는 연기 보이면 거기다
기총소사나 폭탄 투하 또는 포격 요청을 해주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건 고역이니 몇가지 고안이 등장합니다.
1. 조용하고 강력한 버너 사용
돈모아서 적당히 싸바싸바하면 안될 것도 없죠.
2. 고체 알코올이니 헥사민(hexamine)등을 사용한 간이 풍로 사용.
이런건 곧잘 tommy cooker로 불립니다.
크게 깡통에 들어간 것과 바람막이형태로 접힌 철판에다 올리고 사용하는 식으로
구분됩니다.
이건 깡통 모양의 토미 쿠커
한 60년 훨씬 넘은 디자인의 타미 쿠커.
하얀색 입방체가 바로 헥사민
하얀색 입방체가 바로 헥사민
3. 숯을 사용
깡통으로 적당한 풍로를 만들면 되죠.
4. 기타 기상천외한 재료 사용해보기.
1차대전중 영국군은 한때 고래기름을 참호족 예방용으로 지급합니다.
이 고래기름을 작은 통에 담고 헝겁 심지를 꼽으면 작은 버너가 되죠.
고래기름만 아니라 등유도 사용되며 - 경유, 그러니 디젤유같은 경우는 태우면 눈이
맵습니다 - 지금도 간혹 이런걸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하죠.
손재주가 좋으면 포탄 탄피로 그럴듯한걸 만든 경우도 있답니다.
한편 이건 좀 더 지나서 이야기지만 우러남전등에서 깡통에 칼로 구멍내고 거기다
메추리알보다 좀 더 작은 크기로 만든 폭약(C-4같은)을 넣고 태우거나 프로필올등이
함유된 바르는 모기약을 부어서 불을 붙이기도 한 경우가 있답니다.
p.s:
beef-eater 라는 별명은 프랑스인들이 붙인듯한 별명입니다.
원래는 고기를 먹을 정도로 괜찮은 수준의 입주 하인등을 의미하는 단어였으나 어느새
영국인을 지칭하는 별명중 하나가 되죠.
그외에 rosbif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구운 쇠고기(roasted beef)에서 나온거죠.
물론 이에 대해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에게 개구리 먹는 인간들이란 의미에서 frog란
별명을 붙입니다.
얘들 날씨가 더럽다보니 요리는 물론이고 성격도 더럽고 입도 더럽죠.
욕잘하기로 소문났고 bloody정도는 이젠 애교에 fuck이란 말도 1950년대에 이미 줄창
쓰던 말이었으니 어련하겠냐만은.
아, 그러고보니 독일인들은 양배추 대가리였죠.
크라우츠(krauts)란 별명 자체가 양배추와 관련됐다는 소리가 있으니.
또 아이레인들에 대해서는 potato eater입니다.
p.s:
차와 설탕에 대한 러시아의 오래된 이야기.
짜르는 성탕덩어리로 잔을 만들고 거기 차를 부어먹는다.
귀족은 차에 설탕을 넣어먹는다.
평민은 설탕을 보고 차를 마신다.
p.s:
2대전중 평균적으로 잘먹은 군대는 미군과 영국군입니다.
영국군도 앤잭들이 비교적 잘먹은 편이고 캐나다군도 나름 잘먹은 편이라죠.
우리 이 짓거리 언제까지 히야할까?
표범이 껍질 바꾸고 나 홀스타인종 젖소요 할 때까지요.
표범이 껍질 바꾸고 나 홀스타인종 젖소요 할 때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