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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담] 한참늦은 조커감상-아서의 캐릭터를 고찰하며 (1) 2019/10/10 PM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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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찐따의 삶을 살지는 않았나보다'
 영화 '조커'를 보고 처음 느낀 감상은 위와같은 것이였습니다. 극중 아서가 처한 현실에 일부분 동질감을 느끼고, 그가 품는 망상에 저 자신의 망상인냥 민망함을 느끼며, 그의 분노에 백번 공감할 지언정, 아서의 폭발에는 알수없는 불편함과 부당함을 느낀 것이죠.
 영화의 완성도나 그 폭발적인 흡입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평가를 내린바, 저는 이 글에서 영화의 주인공 '아서'의 캐릭터를 고찰하는데에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이 고찰을 통해 위에서 말한 '불편함과 부당함'의 정체를 파악해 보겠습니다.
 1. 아서는 정말 착한 사람이였는가?
 극중 아서의 인생이 불행의 연속으로 점철된 처참한 비극이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입니다. 어린시절 애정이나 관심이 아닌 다른 엉뚱한 목적으로 입양되어 끔찍한 학대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로인한 뇌손상으로 정신적인 문제까지 발생했으며, 덕분에 평생동안 다른사람들의 오해와 멸시를 견뎌내어야 했습니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와중에 어머니까지 모셔야하는 팍팍한 일상에 나날이 꿈은 멀어져 가고 , 희망은 산산이 부숴진 나머지 덧없는 망상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끌고 나가는 인생인 것이죠. 마치 힘겨운 어깨를 늘어뜨리고 천근만근의 다리를 끌며 계단을 오르는 것 처럼.
 그러나, 이것은 아서의 비극이고 인생의 무게일지언정 아서가 착한 사람이라는 증거는 될수 없는 것입니다. 아서라는 인물에 대한 연민의 근거일 지언정 그를 믿을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는 것이죠. 아서가 속해있던 광대 파견업체 사람들중 그 누구라도 아서보다 확연히 나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물론 아서와 같은 정신적 문제로 인한 오해와 멸시는 없었을지라도 모두 하루하루 힘겹게 연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아닌가요? 하루하루가 힘겨운 나머지 자기 주변에 철조망을 두르고 조금만 틈이 보이면 서로를 찔러대며, 시기하고, 상처입히고, 모략하며, 웃음거리를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단 한사람이라도 아서에 비해 확연히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이제 광대 파견업체 사람들중 왜소증 장애인 게리를 한번 살펴 볼겠습니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요? 물론 아서같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였겠지만, 그가 평생 겪었을 멸시와 천대가 아서보다는 나은것이였을까요? 평생동안 남의 놀림거리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 별볼일없는 파견업체의 광대가 되어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연명하는것이 게리의 인생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서가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사무실에 돌아왔을때 진심으로 그를 위로한 사람은 게리 하나뿐이였죠. 그런 게리에게 누군가 '너한테는 미니골프가 진짜 골프겠지' 따위의 농담을 던졌을때 아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이 웃으니까 나도 웃어야해' '이것봐. 나도 큰소리로 웃고있어' 라는듯한 광소였습니다.
 누군가 내 벗겨진 머리를 보고 '애 데리고 스케이트장 갈 필요 뭐 있어? 그냥 니 머리위에서 태워.' 라고 했을때, 누군가 내 불뚝 솟은 뱃살을 보고 '이야 이것이 그 유명한 솟을 대배' 라고 했을때, 누군가 내 커다란 머리를 보고 '어우 그 인형탈좀 벗어' 라고 했을때, 단 한번이라도 이런 농담이 진심으로 재미있다고 느끼신분 계십니까? 우리가 이런 농담을 듣고 웃어 넘기는 것은 그 농담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 아닌가요? 평생을 놀림거리가 되어온 왜소증 장애인에게 위와같은 미니골프 농담이 재미있었겠습니까? 결국 자기자신의 불행과 분노만 억울할뿐 다른사람의 기분이나 불행에 별 관심이 없는것은 아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번에는 아서가 랜들에게서 총을 얻었을때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총을 가지면 안돼'라는 말로 한번 거절의 뜻을 밝히기는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총에대한 아서의 반응은 도취와 집착이였습니다. 총을 집에 가져와서 한껏 찐따미를 뽐내며 폼을 잡다가 실수로 한발 발사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아서가 이 알량한 힘에 얼마나 도취되었는지 읽을수 있는 것이고, 어린이 병원에 공연을 하면서도 총을 가지고 있다가 떨어뜨리는 장면에서 우리는 아서가 이 알량한 힘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읽을수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아서가 처음 말한 것처럼 아서는 총을 가지면 안돼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그 알량한 힘조차도 담을 인격적인 그릇이 마련되지 못한 사람인 것이죠. 자신의 그릇으로는 다 담을수 없는 힘을 휘두르기 시작한 순간, 인간으로써의 아서는 파멸하기 시작합니다. 첫 살인이 저질러진(스스로 저지른것이 아닌) 것이죠. 우발적인 첫 살인이 저질러진 순간부터 아서를 붙들고 있던 '인간'의 끈은 끊어지고, 두번째 세번째 살인부터는 아서 스스로 도망가는 사람을 쫒아가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리곤 어딘가의 화장실로 숨어들어가 첫 살인의 쾌감에 도취된채 나른한듯 황홀하게 춤을 춥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서에게 처음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숨어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처음 우발적인 살인이 벌어졌을때 당혹감이나 죄책감을 느껴 상응하는 반응을 보인것이 아니라 주저없이 두번째, 세번째 희생자를 쫒아갔으며, 세번의 살인을 마치고 나서 다시 '인간' 아서로 돌아온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향해 휘두른 폭력적인 힘에 도취되어버린 것이죠.
 2. 망상과 현실의 경계
 영화는 아서의 망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여 진행됩니다. 때문에 어디가 망상이고 어디가 현실인지는 관객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일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랜들이 먼저 총을 건내준것이 망상이고 실은 아서가 먼저 총을 구입하려 했다고 해석할수도 있고, 어머니와 정답게 대화하던 그 모든 장면이 망상이라고 해석할수도 있으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극 전체가 사실은 '아서'가 아닌 '조커'가 아캄정신병원에서 상담중에 혼자서 행한 망상이였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조커'라면 바로 위 해석이 더 어울리긴 합니다. 이미 킬링조크에서 '여러버전의 과거'를 들먹인바 있고, 다크나이트에서 매번 다른 과거를 말한바 있으며, 근원을 알수 없는 혼돈이자 광기로써의 조커라면 극 전체가 망상인 쪽이 훨씬 그 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캐릭터의 완성과는 별개로 이 모든것이 망상이라면 극 전체의 주제가 붕괴하는바, 이번 '조커'라는 작품에 한정해 극 전체를 읽으려 한다면 망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지만 어쨌거나 실제로 일어났던 일로 파악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망상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가? 이 부분에서 저는 좀 엄격하게 '감독이 연출적으로 이 부분은 망상이라고 알려준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현실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즉, 처음 머레이 쇼에 관객으로 앉아있다가 출연하는 망상,같은층에 사는 소피와 사귀는 망상, 관련해서 코메디 클럽에서 공연후 갈채를 받았다는 망상(공연은 현실, 갈채는 망상)까지만을 망상이였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망상은 병리적인 망상과 자발적인 망상으로 구분할수 있습니다. 조현병등의 예후로써 스스로 통제할수 없거나 현실과 구분할수 없는 망상이 있고, 보통 우리가 하는 자기 위안적인 망상이 있습니다. 이중 우리가 하는 망상이란건 어떤 것일까요? 어느날은 날 괘롭히는 그새끼와 패거리를 17대1 상황에서 박살을 내주고, 어느날은 날 거들떠도 안보는 그녀가 내게 절절한 고백을 하고, 어느날은 멸망을 앞둔 세계의 구원자가 되어 마왕을 쓰러뜨리고...... 이런 밑도 끝도 근거도 가능성도 없는 망상, 우리는 왜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망상을 하면서 그것이 사실은 이루어질수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망상을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잘 나갈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찐따에 별볼일없고, 놀림거리일 뿐이며,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습니다. 날 좋아하는 여자따위 있을리 만무하고, 내가 뭔가 두각을 나타내는것은 기껏해야 페이스북 좋아요 갯수나 내가 단 악플에 화를내는 사람들의 숫자 뿐이며, 이제까지도 앞으로도 내가 꿈꾸는 인생은 살아본적도 없고 살아가게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러니 근본없는 망상속에서라도 위안을 찾는 것이죠.
 다시말해 망상은 '나도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절규이고, 이루어지지 못한채 시들어버린 희망의 파편이며, 우리가 희망이라는걸 품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얼척없고 우습지만, 어쩌면 망상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마지막 증거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아서의 망상으로 되돌아와서, 아서의 망상은 어떤 종류의 것이였을까요? 통제할수도, 구분할수도 없는 병리적인 것이였을까요? 우리와 다를바 없는 찐따의 백일몽이였을까요?
 아서의 망상이 현실로 인해 붕괴하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바로 머레이 쇼에서 아서의 비디오가 방영되던 시점입니다. 이때 아서의 첫 반응은 '내가 머레이쇼에 진짜로 나온다'라는 기쁨이였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단지 웃음거리라는것을 알고 분노하게 되죠. '어? 나 그때 분명히 갈채를 받았는데?'라는 의문이나 '이건... 뭔가 잘못 됐어.'라는 당혹감이 아니라, 확연한  분노를 먼저 느낍니다. 다시말해, 아서는 그날 실제로는 갈채를 받은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후 너무나도 실망한채 -짝사랑을 하다하다 선을 넘는 찐따들이 모두 그렇듯이- 소피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갔을때는 어땠나요? 소피와 자신이 진짜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했다면 왜 몰래 숨어들어가야 했나요? 게다가 소피가 자신을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대할때 아서의 반응은? '왜이래? 너 지금까지 나랑 붙어다녔잖아? 내 공연에 와서 웃어줬잖아? 키스도 했잖아?' 던가요? 소피와 있었던 일들이 실은 망상이였음을 알려주는 컷들이 하나하나 지나가고 그냥 힘겹게 고개를 떨구며 '오늘 정말 엿같애'라고 할 뿐이였죠. 이것이 과연 자신이 구분할수 없던 현실을 마주한 사람의 반응 같나요?
 3. 어쩌면 너,나,우리의 이야기
 아서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었고, 다른사람의 불행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우리가 그렇듯이 망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이였죠. 그리하여 아서는 현실의 우리들과 동등한 사실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그리 착할것도 그리 올바를것도 없는 그저그런 찐따들이잖아요? 아서가 개리만큼 착한 인물이였다면 오히려 '이런 착한 사람조차도 타락할 만큼 사회는 썩었다'라는 선동 영화가 되었을 것이고 아서가 최후에 갱생했다면 '그래도 이 사회에 희망은 있어'라는 프로파간다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허나, 감독은 아서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지도 갱생시키지도 않고, 그저 비극에 떠밀려 흘러가다가 인간으로써 파멸한 괴물-그는 더이상 희망도 애정도 자기위안적인 망상조차도 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로 만드는 것으로 냉정한 사실성을 완성해냈습니다.
 바로 여기가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의 정체일수 있을것입니다. 이 영화의 아서는 다름아닌 우리 보통 찐따의 초상이며, 아서의 화려한 파멸은 어쩌면 우리의 자기 파괴적 망상의 현현이라는 점. 어쩌면 '어이 어이 너도 조커냐?' 가 농담이 아니라 '나도 조커였으면' 이라는 위험한 망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치 거울속에 형편없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듯한 민망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며 한가지 위안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찐따의 삶을 살지는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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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마키    친구신청

보면서 느낀게 딱 조현병환자 (정신분열증)을 기가막히게 만든 케릭이라고 느꼈네요
딱보면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망상인지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실상 전부다 망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영화 처음 시작할때 애들에게 간판등 빼앗긴것도 망상일수도 있다는점을 보여줌으로써 실상 중반부 3명을 총을 쏴죽인것도 실은 그냥 서 있는 사람인데 아서의 망상속엔 나쁜짓을 한 사람들로 인식되어 쏴죽일수도 있는것이구요 . 어찌되었든 망상과 현실의 괴리를 교묘히 끝까지 펼친것 같습니다
구급차로 박아서 죠커를 구하고 우상화 시키는 마지막 차에서의 장면도 망상일수도 있다는 처리를 비롯하여
보니까 시간에 11시 10분이라는게 자주 나오는데 이시간이 정신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테스트를 할때 11시 10분을 그려보시오라는 테스트를 환자들에게 한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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