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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밀정 리뷰 (약스포) (3) 2016/09/27 PM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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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보여준 것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일제강점기와 항일운동을 다룬 영화는 돈이 된다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적으로 한국 관객들은 이리저리 꼬인 감정선들과 이야기들이 마지막에 가서 전부 풀어지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영화를 하나의 퍼즐로 접근하고 그 퍼즐이 딱 맞추어졌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인데, 이는 아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한국에서 고평가를 받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점이라면 놀란 감독은 각본의 중심을 어느정도 잡아놓으면서 이야기를 퍼져나가게 하는 반면, 한국 영화의 대부분은 캐릭터 중심으로 감정선과 신파에 중점을 두고 흔들리는 이야기를 쏟아지지 않게 담으려 안간힘을 쓰려는 영화들이 많아보인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개연성과 끝맺음(그리고 그 끝맺음이 가져오는 "감동")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느낌이다.


<밀정>은 그런 트렌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결국 되돌아온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영화다. <밀정>의 대부분은 사실 굉장히 진중하고 잘만들어진, 말하자면 "때깔좋은" 영화다. 거기다 영화의 대부분의 일본 순사역들은 조선인들이고, 이는 전통적인 항일 서사에 탈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더해준다. 항일 운동의 계기나 그 묘사 또한 (<놈놈놈>의 독립군같이) 민족주의의 농도는 흐리고, 개개인의 감정과 남에 대한 의심, 자신에 대한 의심, 그런 것들이 소용돌이 치면서 영화의 클라이맥스(여야 했던) 기차 시퀀스에서 강하게 악센트를 내준다.


김지운 감독의 이전 액션 영화들은 대부분 "그 한 순간" 혹은 "그 한 씬"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달콤한 인생>은 (개인적으로) 다리에서 양아치들을 패버리고 차키를 한강에 멀리 던지는 장면이고, <놈놈놈>은 마지막 벌판 추격전이다. <밀정>에서 그 악센트는 기차 시퀀스다. 한국 영화에 요즘 기차에 대한 붐이라고 할까, 기차라는 공간이 가지는 특별함에 조명을 비춘 영화들이 많다 (<설국열차>부터 <부산행>까지). 영화의 시작은 기차와 함께했고 (루미에르 형제의 <라 시오타 역에서의 열차의 도착>), 진화를 할 때마다 감독들은 기차를 뒤돌아보았다 (포드의 <대열차 강도>, 키튼의 <더 제너럴>). 기차만큼 영화를 잘 표현하는 운송수단도 없다. 기차는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한 방향으로만 가며, 탑승객들은 기차가 자신들을 이끌어주면서 보여주는 바깥 배경의 황홀함에 넋을 읽고 바라본다. 이는 상업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스펙터클과 그리 다를게 없다. 괜히 첫 상업 영화들이 기차 위에 카메라를 달고, 관객들은 기차칸처럼 데코되어 있는 극장에서 마치 기차를 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현재 한국영화계에선 기차라는 공간을 메타포포적으로 사용하려는 영화들이 몇몇 개봉되었고, <밀정> 또한 비슷하지만, 사회보단 인간 내면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는 것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기차 시퀀스에서의 촬영은 <놈놈놈>의 오프닝 씬과 많이 비슷하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비록 <놈놈놈>에서 김지운 감독과 함께 하지 않았지만 (<달콤한 인생>과 <라스트 스탠드>에서 같이 일했다) <놈놈놈>의 첫 롱테이크같은 구도의 샷이 많이 나온다. <밀정>의 긴 기차 시퀀스에서 특이한 점은 횡 구도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샷들은 종적으로 이뤄진다. 이는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일단, 횡적으로 보여지는 샷들은 관객들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인다. 즉, 숨기고 찾아내야하는 것이 주가 되는 이 기차 씬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에 비해 <설국 열차>는 열차 공간을 하나의 단층으로 표현하기에 횡 구도의 샷들이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바로 김지용 촬영감독이 많은 샷들을 섈로 포커스로 찍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왜 톨랜드처럼 딥포커스로 찍으면서 멋진 소품과 인물들의 역학관계를 표현하지 않았나 의아해 했지만, 보면 볼 수록 그런 구도에 감탄했다. 열차 안은 송강호의 심리적 내면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있다. 섈로 포커스는 그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만연한 심리적 상태를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이는 종 구도로 보여주는 사람의 뒷모습에 배경이 가려지는 샷들이 꽤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이 어떤 의미론 해소되는 장면에서 영화는 비로소 횡 구도로 바뀌고, 송강호, 공유, 엄태구의 쓰리 샷을 보여준다. 기차 시퀀스는 서스펜스를 탁월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보여주는 편집도 있지만(여러 몽타주 편집들과 편집 트릭으로 고조시키는 긴장감), 이런 촬영 구도로 인해 캐릭터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탐사하는 우아함도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감탄이 나온다. 이 시퀀스는 장르적 완성도와 캐릭터 스터디의 완성도를 둘다 완벽하게 잡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릭터 스터디는 결국 송강호에게만 집중된다는 것이 흠이다. 한지민의 캐릭터가 문제는 아니지만 재미가 없었다. 김지운 감독의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 (<장화, 홍련>은 다를...려나?). 다행히도 계순과 우진의 러브라인이 참으로 단아하게, 깨끗하게 묘사된 점이 좋았으나 (즉, 거의 묘사되지 않았다), 결국은 홍일점이 있어야 하니 홍일점인 캐릭터 이상은 아니다. 이는 헝가리인 아나키스트 캐릭터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애초에 공유와 이병헌의 캐릭터 빼고 의열단에서 좋았던 캐릭터는 전무하다. 경무국 쪽도 비슷하다. 츠구미 신고는 안정된 연기력으로 인간성과 잔혹성이 둘다 존재하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표현해내지만 결국 큰 비중은 없고, 하시모토는 엄태구의 미칠듯한 연기를 제외하면 그다지 재밌는 캐릭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영어 제목인 "그림자의 시대"에 억눌린 듯한 분위기라고 할까. 하지만 사실 그다지 문제는 되지 않는다. <밀정>은 전적으로 옛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오마쥬다. 그런 영화에서 애초에 주인공 이외의 캐릭터들은 서사적으로도, 주인공에게 있어서도, 이용해야할 장치일 뿐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밀정>에서 그 주인공은 송강호다.


송강호의 캐릭터는 (적어도 중후반까지는)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캐릭터에 너무나도 잘 연기한 캐릭터다. 한국 영화에 이중 간첩이란 오묘함을 이렇게까지 표현해낸 경우는 그다지 없다고 본다. 송강호는 그 특유의 능글거리는 페르소나로 감당할 수 없는 직책과 임무를 떠맡게된 소시민의 상을 잘 표현한다. 그 자연스러운 갈등 묘사는 김지운 감독이 인터뷰에서 영화를 위해 봤다는 르카레 소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무표정의 고뇌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연상시킨다. 허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송강호는 역시 송강호다. 특히 그가 다른 쪽으로 넘어갈 때, 래피드 컷과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인 술자리를 이용한 씬은 <달콤한 인생>의 총기상인 씬이 연상되는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밀정>이 보여주는 "그림자의 시대"에 전혀 이질적이지 않는데, 이는 김지운 감독의 연출도 그렇지만, 송강호라는 배우가 (물론 이 장면은 이병헌의 공도 크다)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탁월히 해내기 때문이라 본다.


르카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실제로 <밀정>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진중함을 중후반까지 그대로 빼다박은 듯이 연출해낸다. 해외용 포스터부터 딱 르카레 느낌이다. 따뜻하면서도 그림자가 드리워진 20년대 개성과 상해의 분위기는 르카레 소설이나 그를 배경으로한 영화의 차가운 분위기보다 조금 더 고전적이지만 (혹은 <색계>같은 느낌), 그 역시 3-40년대의 에스피오나지 명작들의 혼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를 김지운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연출과 결합시켜 정말 "멋진"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어둠의 잔잔함 사이에서 톡톡튀는 액션 씬들 또한 당연히 김지운 감독답게 강렬하다. 이 영화에 문제가 있다면 그 것은 김지운 "각본"의 문제일 수는 있어도, 김지운 "감독"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각본의 문제를 무시하고 지나갈 정도로 연출이 모든 것을 커버하는 것은 아니다. <밀정>은 끝내야할 때를 감을 못잡은 영화다. 기차 시퀀스가 클라이맥스고, 루이 암스트롱의 "When You're Smiling"이 재생되는 몽타주 장면이 바로 엔딩이여야 됬었지만, 영화는 15-20분을 지지부진하게 끌어버린다. 위에서 말했듯이 영화는 너무나도 개연성에 집착한다. 모든 캐릭터에게 "끝"이 있고, 그 끝이 "보여져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다. 하지만 왜 관객들에게 상상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지 않은걸까라는 아쉬움이 끊임없이 머리에 맴돈다. <밀정>을 하나의 열차 여행으로 비유를 하자면, 영화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세관신고에 2-3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진짜 클라이맥스가 닥쳤을 때, 영화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기를 이미 허비한 상황이고, 그 클라이맥스가 전해주는 카타르시스는 결국 기계적이고 수동적이다. 이는 송강호의 캐릭터가 편을 정해버린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어디에 충성하느냐라는 미묘함으로 만들어낸 캐릭터가, 그 미묘함이 그저 내러티브의 장치로써 활용되고 버려질 때, 영화는 무척이나 평면적으로 변해버린다.

 

최동훈의 <암살>이 이런 "끝"이 없는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반면, <밀정>은 하나의 유토피아적인 역사관을 보여준다. 문제는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상상할 거리를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관객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키워나갈 여백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는 영화가 보여주는 감정이 일방통행이 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여주인공이였던 신민아를 중반 이후 과감히 쳐내었던 <달콤한 인생>의 아름다움이 그리워진다 (물론 신민아는 서사적으로든, 연기력으로든 영화에서 최대한 빨리 사라져야했다).


<밀정>은 정말 괜찮은 영화다. 아니, 장르적으론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에스피오나지 장르가 뭘 필요로하고, 어떤 분위기와 캐릭터로 서사를 이끌어야하는지 이해도가 굉장히 높은 것이 보인다. 하지만 제목과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림자"라는 여백을 남겨둘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그림자의 시대"라는 영문 제목에 무색하게, <밀정>의 끝은 정말 그림자가 한점도 남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간힘이 영화를 더디게 만들었다. 그 외의 대부분은 감독 커리어에서 가장 강렬하고 흡입력강한 이미지들의 향연이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더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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