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토끼 MY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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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로판]실수로 악당을 길들여 버렸다 - 2화 (0) 2019/07/09 PM 11:13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용인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별로 상관없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내가 오빠에게 안겨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공주님 안기로 말이다!


"저기 봐, 도련님이 누굴 안고 계신 거지?"


"어, 어라?! 작은 아가씨 아니야?"


"어머! 소가주님이 아가씨를 안고 계셔!"


스쳐지나치는 사용인들 중 몇 명은 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했으며 또 몇몇은 얼굴을 붉히며 좋아했다. 얼굴이 화끈 거렸다. 이대로 간다면 나는 수치사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빠에 안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얼굴이 보이지 않게 손으로 가리거나 오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것 밖에 없었다. 


그게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오빠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나 부끄러운 건데! 얄미워 죽겠다. 그렇지만 어쩌랴 내가 혼자 걸을 수 없는 걸 그러니 부끄러워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열렬한 사용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식당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짧은 길이 그렇게나 길게 느껴지다니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오빠에게 여동생의 심경을 헤아릴 수 있는 섬세함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내가 한숨을 푹 내쉬자 오빠가 안고 걸은건 난데 왜 네가 피곤한 표정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문 앞에 다가서자 안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째 오빠랑 셋째 오빠 소리일 거다. 


우리는 문을 열고는 슬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앉아있는 아빠와 오빠들이 보였다. 언니는 식당에 없었는데 원래 아침잠이 많아 아침을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우리가 온걸 눈치챈 듯 손을 멈췄지만 다른 오빠들은 모르는 거 같았다. 아빠에게 우리는 짧게 묵례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카인이 아벨에게 일방적으로 떠들고 있었다. 카인은 나의 둘째 오빠로 활달하고 사교적이지만 눈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벨은 나의 셋째 오빠인데 둘째 오빠와 다르게 말이 적었다. 언제나 책을 읽어서 그런지 유식했다. 아벨 오빠가 언젠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는대 카인 오빠를 반면교사로 열심히 지식을 배웠다고 했었다. 나는 그런 둘을 바라보았다.


곱슬거리는 핑크빛 머리와 싱그러운 초록색 눈동자가 보였다. 새삼 내 오빠들의 미모에 감탄하게 되었다. 나를 안고 있는 제이드 오빠를 올려보자 오빠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신기하게도 전까지만 해도 차갑게 보이던 눈동자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웨이브진 오빠의 은발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그러자 움찔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손을 내리곤 모른척했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 한참 재잘거리던 카인이 드디어 우리를 눈치챘는지 들고 있던 포크를 놓쳤다. 챙그랑- 포크가 바닥에 닿으며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반쯤은 정신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있던 아벨도 우리를 알아챘다. 


"헙!"


카인과 아벨이 나와 오빠를 보고는 놀랐는지 동시에 숨을 삼켰다. 둘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연신 두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크흠- 아빠의 헛기침 소리가 식당에 울려 퍼졌다. 굳어있던 오빠들은 정신을 차렸는지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녀 한 명이 다가와 카인 오빠의 떨어진 포크를 바꿔주었다.


"거기서 계속 서있지 말고 안거라."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카인이 내심 내가 옆에 앉기를 바라는거 같았지만 제이드 오빠가 당연하다는 듯 나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순간 제이드 오빠가 승자의 미소를 짓는듯했지만 하녀들이 트레이 가득 음식을 날라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뚜껑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와 절로 식욕이 났다.


식사를 하는 동안은 매우 조용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재잘거리며 떠들던 카인도 내가 신경 쓰여서인지 조용했다. 사실 카인만 빼면 다른 세 남자 모두 과묵한 사람이었다. 식당에 나이프와 포크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식사량이 원래 적기는 했지만 맛있어서 평소보다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자 나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아빠는 잘생겼다. 


빛나는 듯한 은발과 얼음같이 푸른 눈이 예뻤다. 다시 보니 아빠와 제이드는 정말 똑 닮아서 누가 봐도 둘이 부자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 둘 다 닮지 않은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내 검은색 머리카락과 회색빛 눈은 콤플렉스였다. 제국에서 검은색 머리와 회색 눈을 한 아이는 저주받은 아이라며 금기시되었으니 말이다. 아마 아빠가 공작이 아니었다면 나는 버려져서 죽었을 거다. 새삼 아빠가 공작이라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만히 아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빠는 시구르드 제국의 3대 공작가 중 하나인 오필드가의 가주였다. 흠, 생각나는 게 이 정도 밖에 없다. 사실 나와 아빠는 별로 접점이 없었다. 전생에서 내가 9살 때 마차 사고로 돌아가셔서 그런 점도 있지만 아빠는 기본적으로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라 어린 내가 다가가기 어려웠던 거 같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나 보구나."


아빠가 거의 줄지 않은 나의 접시를 보더니 말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맛있었다. 단지 7살 때부터 몸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식사량이 줄어들어 내가 많이 먹지 못하는 거였다. 그래도 평소보다 많이 먹은 건 대 아빠가 보기엔 아니었나 보다.


"아니에요. 음식은 엄청 맛있어요. 지금도 엄청 많이 먹은 거인 걸요!"


"주방장을 부르마 입에 맞지 않는 게 있으면 말하면 된다."


내가 맛있었다고 말했지만 아빠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괜한 불똥이 주방장에게 튈 거 같았다. 이대로 아빠에게 한소리 듣는다면 열심히 요리한 주방장이 불쌍했다. 


"정말이에요. 요즘 몸이 안 좋아져서 많이 못 먹는 거뿐이에요."


나는 요즘 몸이 안 좋아 많이 못 먹는 거라 솔직하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아빠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것 처럼 느껴졌다.


"주방장에게 앞으로는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준비하라 일러두마."


음, 지금 건 나를 걱정해 주신 걸까? 아빠와 말을 자주 안 나눠봐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저렇게 말해주셨는데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내가 감사하다고 하자 아빠가 슥 내 얼굴을 피하며 말했다. 미세하지만 귀 끝이 빨개진 거 같았다. 뭐야?! 지금 쑥스러워 하신 건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아마도 맞는 거 같다. 아빠의 의외인 면을 볼 수 있었다.


"저기, 이브리아."


"응?"


아빠와 내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카인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카인이 무슨 말을 할지 내심 불안했지만 일단은 들어봐야겠다.


"아플 때는 많이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어. 특히 고기를 많이 먹어야 돼!"


"형님, 이브리아는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겁니다."


"그렇지만 애가 저렇게 말랐는걸 적게 먹어서 더 아프면 어떡해."


"알겠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카인 오빠. 다음에는 최대한 먹어볼게."


카인은 나름대로 나를 걱정해서 말한 걸 태지만 아벨의 말대로 나는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였다. 그래도 나를 걱정해서 말한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다음부터는 최대한 먹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약속 약속했다.


"음식을 남기는 건 좋지 않아 더 못 먹을 거라면 나한테 줘. 난 더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나 먹고도 더 먹겠다니! 카인이 먹은 건 이미 내가 본 건만 최소 네 그릇이었다. 카인이 탈이 나지 않을까 불안했다. 


"괜찮기는 한데. 오빠 그렇게 많이 먹어도 괜찮은 거야? 벌써 네 그릇이나 먹었잖아. 배 아프면 어떡해."


"아벨처럼 종일 틀어박혀 책만 읽으면 못 먹겠지만 나는 검술 훈련을 하니까 많이 먹어도 괜찮아."


걱정돼서 내가 묻자 카인의 대답이 실로 충격적이었다. 검술 훈련을 하니까 괜찮다니..! 제이드 오빠도 검술 훈련을 하지만 많아야 세 그릇 정도였다. 내 머릿속에서 카인=바보 돼지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카인 오빠는 내 접시를 가져가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카인의 옆에서 아벨이 혀를 차는 게 보였다.


잠시 후 후식으로 딸기 케이크가 한 조각 씩 나왔다. 나는 포크를 들고는 콕- 하고 딸기를 먼저 집었다. 딸기를 베어 물자 새콤달콤한 과즙이 흘러나와 맛있었다. 다행히도 아침과 다르게 후식은 많이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빠는 내가 맛있게 딸기를 먹는 걸 보시더니 자신의 딸기를 내게 덜어 주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빠들도 앞다투며 내게 딸기를 덜어줬다. 


한가득 새콤한 딸기를 먹은 나는 생크림이 가득 올려진 케이크를 포크로 한 스푼 떠올렸다. 폭신한 케이크의 식감과 설탕을 아낌없이 사용한 달콤한 크림이 기분 좋았다. 너무 맛있어서 케이크 한 조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크림이 묻었다."


내가 케이크를 다 먹자 제이드 오빠가 다가와 입가를 정리해줬다. 카인 오빠가 제이드 오빠를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주방장에게 보너스를 줘야겠군."


내가 맛있게 케이크를 다먹자 아빠가 한 말이었다. 옆에서 오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에게 동의하고 있었다. 후식까지 다 먹고 나서야 우리들의 아침식사가 끝났다.


"이브리아, 방으로는 어떻게 돌아갈 참이냐?"


내가 슬슬 방으로 돌아갈까 생각할 때 아빠가 어떻게 방으로 갈 거냐고 물어왔다. 그냥 걸어가면 되는데요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혼자 걸을 수가 없다는 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돌아갈 때를 생각 못하고 있었다. 


올 때는 제이드 오빠에게 안겨 왔지만 돌아갈 때도 안아 달라고 하기엔 미안했다. 내가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사이 카인과 아벨이 우리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의 일에 대해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브리아를 큰형님이 안고 왔었죠. 정말 놀랐습니다."


"맞아 나도 형이 안고 와서 깜짝 놀랐다니까."


"아까는 큰형님이 데려오셨으니 돌아갈 때는 제가 대려다 주는 게 좋겠네요."


"아니야. 넌 책만 봐서 약하잖아. 내가 데려다줄게"


"형님이 안으면 이브리아가 무서워할 겁니다."


둘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 둘의 논쟁을 계속 두면은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거 같았다.


"아빠가 데려다주시면 안 돼요?"


나는 최대한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잠깐이지만 아빠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는 거 같았다. 내가 아빠를 선택할 거란 생각은 못 하고 있었는지 오빠들이 얼음조각처럼 굳었다. 


"흠 흠, 그래. 방까지 내가 데려다 주마."


아빠가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내게 다가왔다. 


어렸을 때 집사에게 엄마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집사는 엄마와 아빠가 아주 뜨거운 사랑을 했으며 주변에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났었다며 말해줬다. 그때 나는 어려서인지 무뚝뚝한 아빠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낳다가 엄마가 돌아가셨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아빠가 나를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아빠는 단지 표현하지 못했을 뿐 나를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전생에서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한 번도 못해드린 말이 있어 그게 매번 마음에 걸렸었다.


"아빠! 사랑해요."


나는 아빠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기뻐하실 거라 생각했는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기대와는 다른 반응에 시무룩해졌다. 그런대 이상하게도 아빠가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아빠?"


"이브리아, 다시 한번 말해 주겠니?"


아빠가 계속 움직이지 않자 나는 아빠를 불렀다. 그제서야 아빠가 정신을 차리곤 방금했던 말을 다시 해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빠가 원하는 답이 뭔지 깨닫고는 활짝 웃으며 다시 한번 말해드렸다.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요. 사랑해요."


나는 그날 아빠가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이렇게나 좋아하시는 걸 전생에는 왜 안 해드렸나 후회됬다. 지금부터라도 자주 사랑한다고 해드려야겠다.


"아버지. 이브리아는 제가 데리고 왔었으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렇게 좋게 끝나나 했는데 갑작스러운 오빠의 말에 훈훈하던 분위기가 깨졌다. 다 좋았는데 갑자기 이 오빠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빠와 제이드 오빠의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오빠, 난 아빠가 좋아."


내 말 한마디에 제이드는 무력하게 격침 당했다. 그 장면을 뒤에서 남몰래 바라보던 카인과 아벨 두 사람은 제이드보다 먼저 나서지 않아 다행이었다며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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