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오늘은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과 홍대에서 만나서 점심식사를 하고 고양이 카페나 가볼까 하는 일정을 잡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다소 심각한 내용의 카톡이 와있었다.
내용인 즉슨,
[어제 토요일 저녁을 잘못먹었는지 내내 토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의사 말로는 식중독이라고 하며, 다음날은 푹 안정을 취해야한다고 한다. 내일 약속 죄송해서 어쩌지요..]
하는 것 이었다.
뭐 어쩔 수 있나 건강이 우선이다. 게다가 카톡이 온 시간도 새벽3시. 정말 곤란한 상황이었겠다 라고 생각하고 안부 및 답장을 보낸다음에 점심을 하기로한 가게에 전화로 예약을 취소하고 그럼 오늘 뭘하지 하고 고민을 했다.
아직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분명히 집에서 요양할테니 병문안을 가는건 불편하고 부담이 될 것이고 나중에 전화한번 해주고 안부를 다시 확인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일단 일정을 비우기로 했다.
그럼 집에서 뭐하나 하고 생각을 하다보니 쌓여있는 CD 케이스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첫번째 줄에 있는 CD를 꺼냈다.
그건 바로 한창 중학생때(일 것이다 아마도..) 날 처음으로 애니에 입문하게 만든 계기가된 작품인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이었다.
그 이전까진 남들 다본다는 흔한 만화 하나 보지 못하고(물론 즐겨보긴 했었다. 전설의 용사 다간이나 마이트 가인 같은 경우엔 가끔 나오면 좋아서 보긴 했다. 다만...... 학원을 가거나 해서 보는 것 자체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상황이었을 뿐) 친구들을 통해 나디아라는게 있다더라 ㅁㅁ가 있다더라 하는걸 듣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그날은 아마 토요일나 목요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활 시간이 토요일에 있었었나 아니면 목요일 7교시 HR시간에 부활동을 했나 모르겠는데, 발명반에 있었던 나는 그날 과학선생님이 일이 있어서 쉬는 바람에 부활동 없이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엔 부활동 하는 시간이니 다른 특별활동이 뭐하는지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집에 가기보단 다른 부들은 뭐하나 구경을 하기로 결정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창문너머로 하나 둘 씩 보면서 '아 저긴 뭐하는구나, 아 저긴 재미 없겠네' 하고 보면서 지나가던중 발걸음을 멈춘 교실이 있었다.
그 부서는 아마 일본문화 연구반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딱 봐도 재미없는 이름의 특활부서라서 그냥 지나가려 했는데 큰 TV로 뭔가를 틀어주고있었고, 나는 무심결에 창밖에서 그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난 특활시간이 끝날때까지 집에가지 못했다.
TV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만화영화였는데, 당시의 내가 설레일만한 영광의 레이서나, 다간 같은 그런 종류도 아니었고 학원물 장르 비슷한 것이었다.
어렸을때 누나들의 영향으로 만화로는 캔디캔디, TV로는 작은숙녀 링 등 순정만화도 과거 섭렵한적이 있어서 가리는 장르는 없었지만 그래도 취향밖이었기에 무시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 작품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재미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이라는 애니였고
그것 때문에 처음으로 용산에 가게 되었으며,
그것 때문에 처음으로 용산에서 CD 사기를 당해봤고,
그것 때문에 애니를 보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질을 다 사서 모아놨지만.... 중간에 5편은 믿고 빌려준 노는녀석이 그대로 전학을 가버려서 소실된 상태고
(게다가 그편이 유키노와 아리마가 미성년자인데 어흠어흠 하는걸 하는 대목이 있는 편이었다. 나쁜 변태새끼)
해서 다깨지고 기스나고 먼지만 듬뿍쌓인 시디 케이스를 꺼내어 손으로 매만지다가 이젠 십몇년도 더된 중학교 학창시절이 떠올라 그때의 추억도 생각할 겸, 그리고 요즘 애니와 다른 과거의 작품을 살펴볼겸 다시 틀어서 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리저리 길지만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정주행중.
(그러나 5번 CD가 없잖아! 양아치 변태새끼 개새끼!)
소개팅 여성분과도 잘되세요 ㅅㅂ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