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한시간 생활권의 거리에 매우 익숙해져있었다.
특히 거주지인 수원시외로 갈경우 그것이 더욱 심했는데, 직장이 있는 시화쪽으로 갈때도 한시간~ 에서 한시간반.
일이 있어서 서울로 올라갈때도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 올라가곤 했으니 한시간 정도는 느긋하게 있는 양반 같은 성격이 몸에 자연스럽게 베고 말았다.
예를 들어 출근을 할때면 '으흠... 전철이 아주 적절한 속도로 달리는구나... 족히 한시간은 걸릴테니 책이나 보아야 겠군' 이라던가 서울에서 버스로 귀가를 할때면 '버스가 어두우니 폰으로 영화나 보아야 겠구나.. 족히 한시간이면 되겠지' 하는 그런 상태가 익숙한 상황이었는데..........
이 느긋한 생활에 안녕을 고하는 일이 오늘밤에 벌어지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친구의 결혼 발표 겸 대학 동기들이 모처럼 모여 얼굴을 보는 자리였다.
다들 오랜만에 서울 사당에서 모여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결혼을 앞둔 친구와 내가 마지막으로 남아 수원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는 사당역에서 전철로 혼자 느긋하게 소설 아이디어나 끄적일 생각이었지만, 예비신랑 친구가 자취방이 수원이라길래, 그리고 시간이 12시 20분이 넘어 전철은 끊긴 관계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가려 했으나, 사당역에서 앉아가기가 쉽지 않고, 또 버스 번호에 맞추어 기다려야 했기에 친구는 편하게 택시를 타고가자고 권했고 나 역시 그 친구가 혼자서 1,2,3차 술자리를 다쏜걸 알고 있기에 택시비 정도는 미안한 마음에 내주기 위해 흔쾌히 택시를 타고 가자는 제안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앞으로 닥쳐올 공포의 환상특급에 대하여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가 현금을 뽑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사준 컨디션을 마시며 택시를 잡는 장소로 걸어가고 있는데, 호객행위 하듯 기사들이 다가온다.
'안양? 수원?' 이러면서 다가오는 기사들에게 나는 '수원!' 하고 외쳤고 아저씨는 매우 기뻐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차안에는 이미 다른 승객 하나가 타고 있었는데, 우리 두사람이 타는걸 본 기사는 곧바로 운전석에 앉더니....
내가 미처 문을 닫기도 전에 '부쾅!' 하는 묵직한 엔진소리와 함께 급출발을 시작했다.
뭐 처음엔 성질이 급한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앞서 헤어진 친구들과 남은 40분동안 (예상시간을 한시간을 잡았으니..) 카톡질을 하기 위해 전화기를 꺼내던 나는 무서운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기사는 택시를 80으로 밟으면서 핸들에서 양 손을 놓고 물통을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록 3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고, 물을 마시고 바로 다시 정상운전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나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옆의 예비 신랑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예비 신랑 친구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미 좌석 위의 손잡이를 꼬옥 움켜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야밤의 공포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속도계는 거의 130~170 사이를 유지하며, 마치 오락실의 이니셜D 고수유저 플레이를 실제로 보는 듯한 주행이 내내 펼쳐졌고, 나와 친구는 본능적으로 뒷좌석에 앉았음에도 안전벨트를 찾아 메기 시작했다.
터널에서 차선 변경은 기본이요.(아빠가 터널에서 차선변경하지 말랬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역시 찰나였다.)
노브레이크 코너링에 온갖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며 아저씨는 사당역에서 의왕 IC를 5분만에 주파했다.
덜컹거리는 감도는 가히 에버랜드 환상특급에 비견할 수 있었고, 속도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견줄 것이 없었다.
만화에서나 보는 제로의 영역을 느끼며 고개만 속절없이 이리저리 좌우로 흔든지 몇분...........
차는 어느새 화서역을 지나 수원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이피에 글을 쓴 시간과 비교해보니 대략 11분만에 수원역에 도달한 것이었다.
예비 신랑 친구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아저씨의 기예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아저씨도 기분이 좋았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가히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허허허허. 뭐 이런걸로 놀라긴. 시원 시원하게 가는게 시원하게 좋지 암. 고럼. 더욱 놀라는건 내려서 시계를 볼때 지요 하하하하하. 시원하게 하하하하"
이미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간을 재던 내가 답했다.
"11분 걸렸네요..."
그러자 아저씨는 못마땅한듯 혀를 쯧 하고 차더니
"11분? 차상태가 안좋아서 11분이 걸렸네요. 최고신기록은 7분인데 허허허. 시원하게 달리는거지 시원하게."
친구는 여전히 놀랐는지 밝은 목소리로 아저씨의 기예를 계속 칭찬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운전하시는 분 처음봤습니다. 프로 같아요."
"허허허. 시원하게 가는거지. 내차를 타면 약속장소에 결코 늦지 않아요.이전엔 사당에서 대전까지 40분에 주파한적이 있었지. 군부대 사단장이었는데 말이오. 놀러 사당으로 왔다가 글쎄 긴급 복귀 명령이 떨어진거요. 그래서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운좋게 내차를 탄거지! 그래서 시원하게 달려줬소. 시원하게 암 고럼 하하하하."
"이렇게 운전하시면 돈 많이 버시겠어요."
"뭐 난 본업이 아니라. 알바요."
"알바요?!"
"낮에는 다른일을 하지요. 난 12시에서 2시까지만 일해요. 그치만 사당에서 다른 기사들보다 내가 제일 빠르지! 빠르고 시원하게 달리지. 암. 시원하게"
"그럼 본업이 레이싱 같은걸 하시나요?"
"아니지 허허허허 다른일을 하지. 그리고 왠지 내차로는 이렇게 못달리겠더라구요 허허허허 시원하게 허허허."
그렇게 말을 하고 아저씨는 수원역에 도착해 호쾌하게 웃었다.
"시원하게 도착했습니다! 3만원입니다!"
나는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아저씨에게 건내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겨우 택시에서 내렸을 뿐인데 어지러움을 느낀건 처음이었다. 어떤 놀이기구를 타도 배를 타도 비행기를 타도 멀미 한번을 안하던 내가 다리가 휘청거린 것이었다.
예비 신랑 친구도 내려 잠시 비틀거리곤 시계를 보며 '진짜 11분이네 ' 하고 중얼거렸다.
아............... 진짜 11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수원역에서 우리집까지 걸어가는게 15분이다.
그런데 사당역에서 수원역까지 11분만에 오셨다.
문득, 이성 친구와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무엇이 제일 무서운 가에 대한 대화였는데, 이제 서로 둘다 나이가 먹다보니 귀신이나 공포영화 따위는 콧방귀도 끼지 않아 결론이 '신용카드 내역이 제일 무섭다' 로 난 기억이 있었다.
이제 하나 덧붙여야겠다.
사당행 택시도 무섭다.
엄마............... |
그와중에 잘자더라...... 정말.......... 안전벨트도 안메고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