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21일 중국이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공식화했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두 달간 미국 마이크론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 온 중국이 처음으로 '안보 위험'을 거론하며 구매 중단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마이크론에 이어 다른 미국 기업이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이날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인터넷 안보 심사 결과 상대적으로 심각한 사이버 보안 위험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CAC는 "마이크론 제품이 인터넷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마이크론 제품에는) 비교적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존재해 중국의 핵심 정보 인프라 공급망에 중대한 안보 위험을 초래해 국가안보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는 마이크론으로부터 구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중요 정보 인프라에 대한 중국 당국의 정의에 따르면 운송에서 금융에 이르는 분야가 포함된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기업과 사업에 적용될 것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중국은 지난 3월부터 마이크론에 대한 안보 조사를 진행해왔다.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약 2달 만으로 미국·대만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인 중국의 구매 중단에 따른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이 중국 시장에서 올리고 있는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액의 약 11%에 달한다.
중국이 외국 반도체 회사에 대해 사이버 안보 심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당국은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인터넷 안보 심사를 진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가의 중요한 기초정보시설의 안전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국은 높은 수준의 대외개방을 확고히 추진하고 법률과 법규를 준수하기만 하면 각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한 중국의 이번 제재는 미국의 대중 제재에 대한 맞대응 조치로 평가된다.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의 거대시장을 무기 삼아 미국에 반격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같은 해 12월 중국의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YMTC 등 36개 중국 기업을 수출통제 명단에 올렸다.
마이크론에 이어 다른 반도체 기업을 향한 후속 제재들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렌치코트 어드바이저의 설립자이자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베이징 주재 정보원인 홀든 트리플렛은 "CAC의 이번 결정을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한 보복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 당국의) 이 같은 정치적 행동으로 모든 기업이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다음 타깃이 될 기업으로 퀄컴, 브로드컴, 인텔 등을 거론했다. 이 통신은 "중국 당국의 이번 움직임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다른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가져다준다"며 "퀄컴, 브로드컴, 인텔과 같은 기업들은 중국에 수십억개의 반도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전다.
한편, 일본 히로시마에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겨냥한 강도 높은 공동성명이 나왔다는 점도 이날 발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날 중국을 겨냥한 강도 높은 공동성명이 나오자, 중국은 보란 듯이 G7 폐막 날에 맞춰 제재 사실을 공식화했다.
G7 정상들은 지난 20일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 대만·경제강압·남중국해·인권 등에 걸쳐 전방위로 중국을 압박했다. G7은 성명에서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다"며 "중국과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밝혔지만, 안보·경제 등 세부 영역에서는 중국에 대한 G7의 우려와 견제 메시지를 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