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빌딩 암흑기…80억짜리가 1년 만에 50억
서울 거래액 3년 새 반토막
경기 불황에 임대 수익 급락
입력 2025.01.20 18:09
수정 2025.01.21 00:54
지난해 1월 80억원에 거래된 서울 서대문구의 4층짜리 꼬마빌딩이 지난달 50억여원에 손바뀜했다. 모든 층이 비어 있는 이 건물은 1년 새 33% 할인된 가격에 새 주인을 찾았다. 한때 수익형 부동산으로 큰 인기를 끈 꼬마빌딩이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경기 불황과임대 수익률 하락 등이 맞물리며 대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건물주가 늘어서다. 꼬마빌딩이 연체 증가 등으로 부동산시장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한국경제신문이 상업용 부동산 전문업체 부동산플래닛에 의뢰해 서울 지역 꼬마빌딩(연면적 3300㎡ 미만 일반건축물)의 실거래가를 전수 분석한 결과 지난해 거래 규모는 12조4000억원으로 3년 전(2021년 22조원)의 반토막 수준이었다.
이면도로에 있는 7층 이하 꼬마빌딩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내수 경기 침체와 e커머스 시장 확대로 투자자에게 외면받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작년 3분기 기준 8.66%에 이른다. 윤수민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경기 침체에 따른 공실 증가와 임대료 하락으로 꼬마빌딩의 투자 가치가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파 덮친 꼬마빌딩…'MZ 핫플' 연남·서촌도 급매 속출
경기 침체·고금리 '이중고'에 폐업…신촌 공실률 두자릿 수로 뛰어
지난 17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 대로변에는 임대 현수막이 붙은 건물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한 건물 내부는 현수막이 반쯤 떼어져 있었고 정수기 물통과 집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창천동 인근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중심가 꼬마빌딩에 입점한 로드숍은 대다수 폐업하고, 골목 내 일부 음식점만 운영되고 있다”며 “대출 규제와 수익률 하락 등으로 몇 달째 매수 문의가 잠잠하다”고 말했다.
내수 경기 침체로 공실이 급증하는 등 꼬마빌딩(연면적 3300㎡ 미만 일반건축물 기준)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 고금리 지속, 자영업 경기 부진 등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하자 서울 곳곳에서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씩 떨어진 급매 물건이 속출하고 있다.
그동안 꼬마빌딩은 강남 서초 종로 성동 등 서울 주요 상권과 업무 밀집 지역에서 유망 투자처로 꼽혔다. 하지만 고금리와 경기 침체에 따른 자영업 부진이 겹쳐 몸값이 쪼그라들고 있다.
꼬마빌딩의 인기가 높던 성동구에서도 성수동 연무장길 일대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하락 거래가 적지 않다. 성동구 하왕십리동의 4층짜리 꼬마빌딩(연면적 310㎡)은 2021년 31억6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지난해 23억원에 매매계약서를 썼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동구 천호동의 한 역세권 꼬마빌딩(연면적 1010㎡)도 최근 2년 전 거래가(72억여원)보다 17억원 낮은 55억원에 거래됐다. 2021년 41억여원에 손바뀜한 뒤 꼬마빌딩 투자 붐에 힘입어 2022년 72억원까지 몸값이 치솟은 물건이다.
내수 경기 침체로 임대 시장이 움츠러들면서 꼬마빌딩의 수익률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중대형 상가 투자수익률은 1.37%에 불과하다. 이 중 건물 가격의 증감률을 의미하는 자본수익률은 0.92%다. 임대료와 관련한 소득수익률은 0.45%에 그친다. 예컨대 1억원을 투자해 1분기(3개월) 동안 고작 45만원의 임대료를 얻는다는 얘기다. 지역별로는 도심(1.47%→1.29%), 영등포·신촌(1.33%→1.22%) 등의 지역에서 투자수익률 하락이 두드러졌다.
중심 상권 지역의 공실 문제도 여전하다. 신촌·이대 중대형 상가의 3분기 공실률은 11.50%다. 인근 신흥 상권인 망원역(4.73%), 동교·연남(2.61%)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상권 자체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며 “2020년과 비교해 월 임대료가 30% 가까이 떨어졌는데도 문의가 없다시피 하다”고 말했다.
내수경기 침체…‘극과 극’
입지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이면도로 꼬마빌딩은 통째로 비어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대부분 건물 자체를 매각하려는 곳이다. 종로구 종각 인근 C공인 관계자는 “1년 넘게 매물로 나와 있는 건물도 있다”며 “금리가 여전히 높다 보니 시세보다 아주 낮게 팔지 않는 한 매수하려는 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 빌딩 매매업 관계자는 “2021년께 여러 투자자가 모여 건물 가격의 70~80%를 대출해 꼬마빌딩을 매입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주요 고객이던 스타트업 등이 사무실 통임대를 한꺼번에 빼면서 막대한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건물주가 늘고 있다”고 했다.
몸값 거품이 빠진 일부 지역에서는 꼬마빌딩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전문업체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강남구의 꼬마빌딩 거래액은 지난해 4조7586억원으로, 2년 전(3조7517억원)보다 25.8% 늘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꼬마빌딩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본다. 이유정 원빌딩부동산중개 팀장은 “고금리 여파로 꼬마빌딩은 투자 상품이 아닌 실수요로 접근해야 한다”며 “사옥이 필요하거나 직접 점포를 운영하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