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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역사] 누르하치 일대기 46편 - 조선과의 마찰 (1) (0) 2019/10/25 PM 08:46

칼부림 김경서.PNG

 

 


 

 

1595년, 조선에서의 전쟁(왜란)이 그나마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고 누르하치 역시 전쟁보다는 외교에 더 힘을 쏟고 있을 시점에 

 

건주세력과 조선간에 외교적인 사건이 있었다. 월경을 해왔다 붙잡힌 조선인들을 누르하치가 조선에 송환하며 서로 우호관계를 맺길 원한 것이었다.

 

당시 건주 여진과 조선은 외교적인 접점이 끊긴지 오래였는데, 이 당시 조선은 안그래도 전쟁중인데 뒷통수에서 웬 노추(奴酋) 같은 놈이-후일 조선에선 실제로 누르하치를 노추로 일컫기도 했다.-

 

사이좋게 지내자고 접근해오면 뭔가 영 좋지 않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 외교통성명 문제는 조선측의 적당한 거부로 흐지부지 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누르하치 휘하에서 살던 여진인들이 조선 땅을 넘어 인삼을 채취하려 하다가 조선군에 피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누르하치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조선측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아직 우의에 대한 의논이 마땅히 오가지 않았는데 자신의 백성들이 죽은 것 때문이었다.

 

조선측으로서는 안그래도 전쟁중인데 국경을 넘어온 이들에 대해 사살을 한 것이니 정당한 행위라고 볼 수 있었으나(거기다가 당시 책임자 김대축이 보고를 과장하기도 했다.)

 

누르하치 역시 조선과 말좀 해보려 한 상황에서 자기 사람들이 죽은 것이라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선조는 이 문제에 대해, 남쪽 전선도 위태로운데 여기서 누르하치에게 뒤를 잡히면 나라가 망하니, 

 

일단 북방에 항왜 출신 병사 60명 정도를 배치시키고 경계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요동쪽의 명 요동도사에도 중재를 요청했다.

 

또한 이후 추가적인 조치가 시행되었는데, 명나라 유격 호대수에게 청하여 누르하치와의 대화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말이 대화지 사실 명나라 입장에서 누르하치에게 경고해달라는 것이었다.)

 

비변사에서는 회의적이었으나, 선조는 그래도 호대수에게도 요청을 시행하라고 했던지 9월에 호대수에 의해 파견관 여희원이 누르하치에게 파견되게 되었다.

 

이 때 조선은 여희원이 조선의 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보상차원으로 비단을 주었으며, 몇 명의 일원을 붙여주었다.

 

이 때 통역관 하세국이 여희원과 함께 누르하치에게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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