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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역사] 누르하치 일대기 47편 - 조선과의 마찰 (2) (0) 2019/10/27 PM 02:50

누르하치18.PNG

 

 

(웹툰 칼부림 中, 김경서와 대화하는 누르하치)

 

 

 

1595년 9월 명 파견관 여희원과 조선 통역 하세국은 누르하치의 거성 퍼 알아(허투 알아라는 의견도 있으나 퍼 알아 라는 의견이 많다)에 가서 

 

건주측의 조선과의 우호관계 제안과 조선의 건주 여진인 피살건에 관해 의논을 하려 했다.

 

결국 9월 중으로 그들은 누르하치와 1차로 만날 수 있었다. 

 

1차 회의 이후 여진인 피살 사건의 책임자 위원군수 김대축은 파면되었다. 실록에 의하면 이유가 1차 회의와 직접적인 연결은 없으나, 

 

1차 회의 직후 파면된 것으로 보아 건주와의 외교관계를 위해 최소한의 성의를 보인 듯 하다.

 

이후 2차 회의도 이어졌는데 그것은 10월 중에 이루어졌으며, 구성은 명의 양대조와 조선 통역 하세국이었다.

 

2차 회의는 1차 회의보다 본격적이었는데, 여기서 누르하치는 다시 한 번 조선과 잘 지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 보였다.

 

그는 하세국에게 "조선과 우리는 원수진 일이 없다. 이번에 조선의 국경을 넘어가 죽은 이들의 가족들 또한 내가 벌을 주고 있는데, 앞으로는 조선측에서 임의로 사살하지 말고 우리 쪽에 송환만 해달라. 내가 벌을 주겠다."고 말하며

 

이번에 자신이 여진인 피살건에 대해 화내는 것이, 자신들이 잘못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송환치 않았기 때문임을 어필했다.

 

그러면서도 누르하치는 군대를 조련함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하세국이 누르하치 휘하 장수 동대길(누르하치 휘하에 있으나 조선측 한음변화로 인해 누구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은 별 일 없을거니 마음 풀라고 대답했다.

 

 

어쨌든 10월의 2차 회의에서 누르하치는 조선측에 여전히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하세국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도 했는데 건주 여진의 정확한 군세도 파악한 것이었다. 당시 누르하치의 최대 가용병력이 1만 5천명에서 2만 가량이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이후에도 회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12월에 조선의 관리 신충일이 주축이 되어 한 번, 1596년 2월에 또 한 번 회의가 이어졌다.

 

누르하치는 변덕을 부려 명과 조선측에 고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으나(무려 4000명의 기병대를 도열시켜 그들의 방문을 환영-을 빙자한 협박-하기도 했다.)

 

 지금 애써 불화를 만들 필요는 없었기에 곧 다시 본래의 태도로 돌아와 명과 조선측을 적당히 예우했다. 

 

또한 누르하치는 자신은 명에 십수년간 충성해왔고, 명에 관직 또한 있으니 어느 하나의 딴 마음도 없다고 말하며 명과 조선측을 안심시켰다.

 

 

 

어쨌든, 임진왜란도중 일어난 조선과 건주의 마찰은 이렇게 봉합되었다. 

 

그러나 20여년 뒤를 생각해보자면, 이는 정말로 단순한 봉합에 지나지 않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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