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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역사] 누르하치 일대기 49편 - 괜히 이 타이밍에 깝치지 말자 (0) 2019/10/29 PM 09:48

정명수.PNG

 

 

 

 

1597년 누르하치의 건주는 예허, 하다, 울아, 호이파 4국과 함께, 하늘에 제물을 바치고 동맹을 맺는 의식을 거행했다.

 

누르하치는 이 5국 동맹을 통하여 일종의 여진 연맹을 구성하려 한 듯 싶다. 그러나 이 동맹은 얼마 못가 깨지게 된다.

 

일단 그 깨지는 경위는 차치하고서, 누르하치의 근 5년사이 행보를 살펴보자면 그는 9 부족 연합군의 침공 격퇴 이후 줄곧 내치와 외교 중심의 통치를 행했다.

 

9 부족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사실상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주셔리와 너연 정벌을 빼고보면,

 

호이파의 도비성을 함락한 것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대외 침공 행보도 거의 없었으며, 명, 조선, 해서 4국, 몽골 부족 세력(코르친, 칼카등)에

 

계속해서 외교적 조치를 취하며 상황을 관찰하고 또 그 상황에 따라 움직이려 했다. 맨 앞에 설명한 해서 4국과의 동맹도 그 일환이었다.

 

누르하치가 그런 행보를 보인 것에는 임진왜란의 탓이 컸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동북아 전체의 균형을 깨뜨릴 대전쟁이었고, 그 소용돌이에는 직접적인 참전을 하지 않은 누르하치 세력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누르하치는 이런 불안전한 상황에서 크게 움직이는 대신에 정보를 수집하고 두루 잘 지내며(물론 당시 약세세력에 불과했던 호이파와 하다는 제외다.)

 

자신이 그 동안 넓힌 땅에서 본격적으로 내치를 다듬었다.

 

특히 누르하치는 농사를 크게 장려하여 건주에는 농경이 융성했다. 

 

정복과 이주를 통해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정책에 건주의 식량사정은 크게 발전했고, 덩달아 인구도 점점 더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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