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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역사] 누르하치 일대기 59편 - 하다 복속, 그 후 (0) 2019/11/05 PM 09:23

칼부림 양구리.PNG

 

 

 

 

 

 

1599년 9월 7일, 약 1주일간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하다가 누르하치에게 복속되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전까지 불안하게 유지되던 여진 세력들간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록 하다는 1599년 시점에 이르러서 국력이 많이 약화된 약소국 상태에 있었으나, 정통성도 있고 명나라에 인정도 받고 있는 여진 국가였다.

 

그런데 하다가 사실상 멸망하고, 그 하다를 멸망시킨 누르하치는 하다의 멍거불루가 가지고 있던 360여개의 대명칙서를 본인이 소유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누르하치의 세력은 명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었고, 다른 주변 여진 세력들과 몽골 세력들은 긴장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하다의 지도자이자 자신을 배신한 멍거불루의 항복을 받아주고 살려준 누르하치는 그에게 자신의 딸인 망구지를 시집보내고

 

하다에 일종의 괴뢰정권을 만들려 했다. 아마도 명나라의 눈길을 의식한 방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필 멍거불루는 누르하치에게 또 다시 반기를 들 계략을 획책하고 있었다. 

 

이 배신음모에는 무려 누르하치 휘하의 용장이자 법률 담당자, 지난 수 차례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가가이 까지 연루되어 있었다.

 

누르하치는 이것을 파악하고 크게 격분, 관련자들을 모두 처형했다.

 

 

한편 멍거불루의 처분에 대해 현대사가들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누르하치가 애초에 멍거불루를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는 추론이다.

 

현대 학자들은 멍거불루가 자신의 앞길을 막을 것이라 예상한 누르하치가 그에게 누명을 씌워 죽인 것이 아니냐는 가설을 내세운다.

 

합당한 의심이지만, 이 반란음모에 여럿이 연루되었다는 것에서 필자는 실제로 멍거불루가 반역을 획책한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추측의 영역이지만, 가가이가 슈르하치 파벌이기에 누르하치가 가가이와 멍거불루 두 명을 함께 제거하기 위해 둘 모두에게 누명을 씌웠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슈르하치는 누르하치의 동생으로서 당시 건주 세력의 2인자였으나, 점점 누르하치와 사이가 벌어지던 차였다.

 

가가이가 슈르하치 파벌이라면, 누르하치가 가가이를 역모에 엮어 처형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슈르하치는, 후에 사실상 기록말살형을 당하여 공적이 제거되고 실책만이 기록에 남게 되어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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