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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역사] 누르하치 일대기 64편 - 야이 자식아 네 여동생이 아프다니까? (0) 2019/11/12 PM 10:14

홍타이지.PNG

 


 

한편, 같은 해 1603년에 누르하치의 부인중 한 명이자 암바 푸진(대부인)이었던 몽고 저저가 병으로 앓기 시작했다.

 

몽고 저저는 누르하치의 첫 번째 부인이자 정실이었던 퉁갸 하하나자칭에 뒤이은 대부인 이었다.

 

본래 몽고 저저는 예허의 공주였다. 예허와 건주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시절, 예허의 당시 버일러 양기누가 누르하치에게 시집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양기누가 죽고 그녀의 오라비인 나림불루가 예허의 군주가 된 뒤 건주와 예허의 관계는 대단히 나빠졌다.

 

그런 와중에도 누르하치는 적국이 된 나라 출신인 그녀를 딱히 나쁘게 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최고 정실로서 후하게 대우하였다.

 

(정말로 사랑했을 수도 있지만, 그녀의 가문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랬던 그녀가 1603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몽고 저저는 자신이 오래 못살것을 직감했는지 마지막으로 모친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누르하치는 영 마땅치 않았으나, 아내의 마지막 부탁이기에 거절하진 않았다.

 

그리하여 그 당시에도 역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예허에 연락을 보내어

 

 "몽고 저저가 아프며, 또한 그녀가 어머니를 보고 싶어하니 장모님을 건주쪽에서 한 번 모시게 해달라."는 서신을 보낸다.

 

나림불루는 그것을 거부하고 대신 친족인 난타이만 보내어 문병하게 하였다. 모친이 인질로 잡힐 상황을 우려한 듯 싶다.

 

누르하치는 몽고 저저가 아픈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치를 취한 나림불루에게 격분했고, 자신을 찾아온 난타이를 질책했다.

 

이후 몽고 저저가 죽자 누르하치는 이전의 문병건을 명분 삼아서 예허를 공격했다. 1604년 1월의 공격이었는데, 몽고 저저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동예허의 쟝과 아키란성이 이 공격에 함락되었다.

 

 

 

한편, 이 당시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을 삼키던 남자가 있었다.

 

누르하치와 몽고저저 사이에서 난 아들이자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후일의 압카이 수러 한(Abkai Sure Han) 홍타이지 였다.

 

이때의 홍타이지는 그저 모친의 죽음을 슬퍼할 뿐이었으나,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모친의 죽음의 원인을 누르하치가 총애하는 부인 울아나라 아바하이로 꼽고 복수심을 키웠다.

 

홍타이지가 장성한 뒤에 누르하치가 워낙에 아바하이를 총애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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