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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메이지유신때 패도령을 실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6) 2013/12/30 PM 08:12

어릴적 중국 무협영화에 푹 빠져들어 봤었고

이후 검에 대한 매력에 퐁당 매료되어 사무라이에 대해 굉장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플스2로 나왔던 검호시리즈와 귀무자 시리즈를 매우 재밌게 즐겼네요

이외에도 무쌍시리즈나 전국바사라 같은 게임들도 재밌게 했는데 역시 저는 창보단 검을 좋아합니다

십계명중 여섯번째 계명인 살해하지말라 때문에 게임을 즐기고 나선 비록 가상의케릭터를 조종해서 죽인갓이지만

죄스러운 마음에 기도를 하곤했습니다

어쨌뜬 저는 메이지이신때 발효했던 패도령에 대해 깊히있게 생각해본적이있습니다

확실히 역사 쪽이다 보니 디시인사이드역사겔러리에서 자문을 구해보았으나 리플이 달리지 않아

실망을 했었지요....

당시에 천황을 중심으로한 정부와 쇼군과 사무라이를 중심으로한 막부의 대립에서

천황이 이겨 막부를 문닫게하고 쿄토에서 에도로 천도하고 그 명칭을 동쪽의서울이다 해서

토쿄로 바꾼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메이지천황의 주된 지지세력은 막부시절 찬밥신세였던 하급무사들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막부에대한 원망심이 크니 망하게 만들고 싶었겠지요 @.@

그중 이토 히로부미라는한국에선 천황보다도 유명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역시 출신이 하급무사이죠

초대총리였던만큼 정치영향력역시 대단히 컸을꺼라 생각되는데

패도령이 정말 국가 치안을 위해서만 실시되었던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유신지사들 대다수가 하급무사출신이였던것을 비추어볼때

그들은 어쩌면 사무라이였지만 사무라이들을 증오하는 마음을 갖고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일종의 컴플랙스같은거지요 그래서 당시 경찰들이 차고다니던 칼또한

일본도가 아닌 서양식 샤베르 였습니다 일본도는 사무라이를 대표할수있는 무기이니

아예 서양식무기로 채택한것일지도....(아니면 서양에대한 사대주의일지도)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죠

패도령에대해 좀 빠삭히 알고있는사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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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sidaz    친구신청

'폐"도령.

아이반    친구신청

要するに、「??武士が?刀を?びていたのは倒敵護身を目的としたが、今や?民皆兵の令が敷かれ、巡査の制が設けられ、個人が刀を佩びる必要は認められないので、速やかに?刀の令を出して武士の??と殺伐の余風を除かれたい」というものであった。

Lusipell    친구신청

당시 메이지 유신 정부 자체가
평등을 모토로 이루어진 정부입니다.
하지만 당시 무사, 사족이라 물리우는 계급층이 있었는데
이들은 칼을 주로 차고 다니고 있었죠.
특히나 이 계급층이 주로 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으니....
그래서 평등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폐도령을 시행했다고 합니다.

주님과함께천국으로    친구신청

음 명목상은 그렇죠 근데 신기득권층인 유신지사들의
개인적인 컴플랙스에도 폐도령을 실시하게된 큰 원인이지 않을까싶네요^^

Lusipell    친구신청

뭐, 그럴수도 있죠.
그 당시 메이지 유신을 열었던 고위직들이
대부분 하급 무사....였다고 하니요....

솔로부대꺼졍    친구신청

살생금지?

Lusipell    친구신청

자세한건 역습의 빨갱이님에게 쪽지로 물어보심 될겁니다~~

주님과함께천국으로    친구신청

고마워용~^^

보통 남자    친구신청

패도령ㅋㅋㅋㅋ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처음에 페도로 봐서 깜놀했네요ㅋㅋㅋㅋ

아리아컴퍼니    친구신청

또한가지 이유로는 치안목적도 있는게 맞긴합니다. 일단은 '정부'가 치안유지권을 가져야한다는 이유에서 그 상징적인 의미로 '정부'에서 인정한 자들만- 여기에서는 경찰정도 되겠죠-가지고 다닐 수 있게 한겁니다. 그리고 일단 법으로서 공포를 해놓으면 가지고 다니는 자들은 '정부'에 따르지 않는 반체제자들로 공권력을 휘두를 명분이 생기니까 이러저러한 정치적인 목적이 많이 들어갔다고 봅니다.

바람의 소마    친구신청

증오고 뭐고 상관없었죠. 그시대는 이미 칼로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징집되어 총 한자루식 쥔 보병들이 주전력이 된 시기였으니까요

바람의 소마    친구신청

사무라이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데다가 치안만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들이었으니 =ㅅ=

Demian    친구신청

간단하게 말해서 근대식 정부와 군대의 독점적 지위 확보를 위한거죠
경찰 군인같이 정부에 허가받은 사람 말고 딴사람이 칼차고 다니면 정부 권위가 제대로 유지될리가 없을테니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정표라 할만한 칙령이죠

ㅡ_-]す~    친구신청

헌법을 만든 법치국가에서 흉기를 가지고 거리를 다닌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또한 각 지방정권을 군사력을 해체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구요.

주님과함께천국으로    친구신청

사무라이들이 갖고 있던 잔력을 확실하게 없애려는 의도도 있었던것이군요

새로운것을 알게되었네요 답변해준님들 고맙습니다!

쿠키아이스크림    친구신청

12세기부터 시작된 바쿠후 자체가 무사정권이었고, 때문에 인근의 동북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귀족에서 사대부층으로 권력이 이동된데 반해, 일본에서는 무사층이 권력을 쥐고 있었죠. 이후 19세기까지 바쿠후의 주체만 바뀔 뿐 사무라이 정권이 이어지다 미국으로 인한 충격으로 일본 전국이 동요하게 되고, 이를 반 바쿠후 세력이 잘 이용하여 권력교체를 이루고 전 권력층이었던 무사층이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않았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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