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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풀기] 하나님이 부으시는 마음과 자유의지에 대하여 (21)
2014/12/28 AM 01:28 |
하나님이 부으시는 마음과 자유의지에 대하여
우리가 보통 교회를 다니다 보면, 혹은 신자들과 말씨름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며 초월하지 않으신다."
분명 말 자체는 굉장히 좋게 들린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읽다 이런 구절들을 맞닥뜨릴 때 생긴다.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사를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11:10>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파라오 마음을 삐딱하게 만들어서, 파라오가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주지 않았다> 뭐 이런 이야기다.
이런 구절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뭐야-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며 뭐이래 모순이네.'
나도 이런 생각을 해봤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그냥 마음속에 묻어놓고 지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속에 묻어놓고, 그 문제의 존재마저 잊어버릴 때쯤, 주님께서 내게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셨는데, 오늘은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려 이 글을 쓴다.
일단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마음만을 주실뿐, 무언가의 사안을 결정하는 자유의지 그 자체는 건드리시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받은 해답이었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갖는 감정, 마음의 상태까지도 자유 의지라는 개념에 포함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그 결과 앞서 말했던 그 구절을 접할 때,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감정, 즉 우리가 갖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이 과연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울고 있으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슬픔을 느끼게 되고, 내가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란 것은, 어떠한 일에 대한 정서적 반응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즉, 한마디로 우리가 갖는 마음이란 것은 자유 의지 그 자체랑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 의지라는 것은 정확히 어떠한 개념일까?
사전을 찾아봤다.
<모든 인간들이 자기 자신의 의지의 명령에 따라 행위할 수 있다는 명제>
[네이버 지식백과] 자유의지 [free will] (사회학사전, 2000.10.30, 사회문화연구소)
사실 이렇게 보면 그 뜻이 마음에 확 와 닿지 가 않는 게 사실이다.
한마디로, 자유 의지를 부여했다, 그것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요컨대, 어떠한 사안에 대해 내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어떠한 행위를 할지 결정할 수 있는 최종 권한을 부여했다는 얘기와 같으며, 그 권한 자체를 존중하신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그 구절을 살펴보자.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사를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11:10>
기록된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게 하셨다고 쓰여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은 그 뒷부분이다.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누가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했다고 하는가?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 그가
곧 파라오(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있다.
만약 하나님이 자유의지 그 자체를 건드리셨더라면.
"하나님이 파라오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게 하셨다." 라고 기록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고, 그가 보내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굳이 풀어쓰자면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 상태를 강퍅하게 만드셨고, 파라오는 그 백성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정도겠다.
어쩌면 지금 당신의 머리속엔 말장난도 정도껏 치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짧게 정리해보건대...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그 손에 직접적으로 쥐고 인형처럼 다루시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어떠한 마음(감정)을 부어주시는 수는 있어도, 결국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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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풀기] 몸속 가득히 감추어놨다가 때가 되면 쏟아놓는 것 (1)
2014/12/28 AM 01:25 |
우리가 피하고 싶어도 절대 피할 수 없어서 항상 몸속 가득히 감추어놨다가, 때가 되면 쏟아놓는 우리 몸속 노폐물과 배설물들은 마치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는 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죄의 비유 같다.
우리는 항상 세상 가운데서 깨끗한 것들을 취해 우리 몸의 일부로 삼지만, 결국 우리 몸 안에서 나오는 것은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뿐.
항상 우리의 더러운 몸을 씻기 위해 희생되는 것들은 깨끗하고 순전한 것들, 더러움으로 더러움을 씻을 수 없기에 그 더러움을 씻기 위해 깨끗하고 순전한 그 어느 하나가 희생해야만 하는 현실.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나라는 존재.
그럼에도 이 더럽고 희망 없는 몸뚱이에 미약하나마 희망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몸 밖으로 내어 놓는 것 모두가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우리가 살아가며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도저히 피하려야 피할 수 없지만.
또한, 우리는 사랑으로 생명을 잉태시키고, 우리가 물려받은 숨을, 몸을, 마음을, 다시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주니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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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풀기] 생각과 행위는 하나다 (0)
2014/12/28 AM 01:24 |
우리는 항상 너무나 단순히
마음과 몸을 이원론 적으로 나누기 좋아합니다.
이처럼 또한, 생각과 행위를 이원론 적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간혹 이런 표현을 쓰곤 합니다.
"마음이 움직였다." "마음이 움직인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죠, 보통 움직임이라고 하면 우리는 항상 눈에 보이는 것만 그 움직임의 주어로 쓰기 마련인데, 보이지 않는 마음이 움직인다니.
하지만 우리가 이 말을 쓰는 것에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다는 것은, 이 말을 쓰는 우리가, 우리가 가진 마음이라는 것이 어떠한 움직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전을 찾아보니까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짓>이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행위에 포함될까요?
성경에서 예수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27절로 28절 말씀.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음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면 이미 간음한 것이다.
왜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볼 수 있듯.
오히려 그분은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내 마음의 미세한 떨림 같은 움직임조차 다 감찰하실 수 있는 까닭에
우리의 생각, 내면의 활동 또한 그분은 Action, 즉 행위로 보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단순히 행위는 그냥 몸을 통해 나타나는 마음의 현상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분이 보시기에는 마음이 움직이나 몸이 움직이나 일반이라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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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풀기] 그 사랑 (9)
2014/04/27 PM 04:29 |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려면
일단 나 자신이 얼마나 끔찍하고 징그럽고 더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아낌없이 포기하셨는지 알면, 그분이 나를 어떤 가치로 여기시는지….
내가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그나마 좀 알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범 우주적 범 인류적 사랑이 아니라….
세상 그 어느 부모의 사랑보다 지극한
세상 그 어느 연인의 사랑보다 지극한
세상 그 어느 친구의 사랑보다 지극한
그 모두를 합쳐놓은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사랑임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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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풀기] 십계명과 오해에 대해서... (20)
2014/04/26 AM 11:44 |
십계명의 존재 의의는 10가지 율법을 지키면 구원 받을 수 있다가 아니였다.
쉽게 말하자면
십계명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 죄인, 그러니 죽어 or 회개해.
애초에 인간의 클라스로는 저 10가지 율법도 지키지 못하는데
인간들은 겉으로 들어나는 행위에만 집착한 나머지 "나는 십계명을 다 지켰으니 구원 받을 수 있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
그런 인간들을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데
마태복음 5:17, 21-22, 27-28 KRV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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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못을 박아버리셨다.
요즘 말로 한줄 요약 하자면
행위 뿐만 아니라 생각도 온전해야함.
헐..
즉 율법의 기능은 그저 거울로써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는 용도일뿐
구원의 기능은 애초부터 존재하질 않았다.
?
?
이에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3:24 KRV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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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요약하자면
율법은 지켜서 구원 받으라고 선포된게 아니라 "너 죄인임 그러니 회개하라"고 선포된거
A : 어 나 죄인인데 어쩌지
B : 좌절 하지마 예수 그리스도 믿어
A : 할렐루야!
기도하다 생각나서 적어봄..
머리속에선 엄청 간결했는데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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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맵이라는 책에 있는 지도를 보면 그만큼 많은 인원이 이동하기에는 먼 거리긴 하지만, 그렇게 수십 년이나 빙빙 돌 거리는 아닌데 말이죠.
하긴, 구약에 나온 이스라엘 민족들 찌질하게 구는 꼬라지 보면, 하느님 아니라 부처님이라도 그 정도 꼬장은 부리고도 남았을 겁니다.
허구헌날 의심하고 이집트 살던 때가 차라리 낫다는 소리나 하고 우상숭배를 비롯해서 하지 말라는 짓들은 골라서 다 하고...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