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도영 MY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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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3/3 (0) 2019/05/13 PM 12:07

 

 

 

제목: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3/3

글쟁이: 게도영

 

 

 

 

  6개월이 지났고 동생은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워낙 똑소리 나는 아이여서 내가 힘들지 않도록 스스로 집안일도 하고, 슬픔에 젖어 공부를 놓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 동생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지인들에게 말수가 많이 줄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 말고는 별일 없었다. 어려움 없이 전처럼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일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데 시간은 너무 잘 흘러갔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오늘은 주말이었지만 나는 특근이었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고 나가려는데 신발 끈이 풀려있어서 고쳐 묶고 있으려니 어느새 동생이 다가와서 봉지를 내밀었다. 안에는 빵과 우유가 들어있었다. 동생이 굶고 다니지 말라더니 이어서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전보다 많이 일하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지만, 나는 괜히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헝클어뜨렸다. 그러고서 괜찮다고 왜 네가 미안해하냐고 말했다. 동생이 계속 풀죽은 표정을 하고 있기에 손가락을 튕겨서 이마를 딱 하고 때렸다. 녀석이 놀라서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찡그렸다. 도서관에서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지 말고 오늘은 일찍 들어오라고, 퇴근하는 길에 치킨 한 마리 사 오겠다고 말했다. 건네받은 봉지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동생이 문밖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었다.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 여유가 있었다. 가방을 메고 천천히 걸었다. 버스를 타면 10분 거리에 공장이 있었지만, 걸어가면 30~40분 정도 걸렸다. 돈을 아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되었기에 차라리 걷는 동안은 잡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공원을 지나다가 고양이를 보았다. 검은 고양이었는데 꼬리 끝이 하얬다. 녀석이 어떻게 올라갔는지 나무 위에서 조심히 새의 둥지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새끼들이 둥지에서 어미를 찾아 뺙뺙거렸지만, 어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서도 저걸 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느라 걸음을 멈춘 채 보고 있었다. 이제 사냥꾼이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점심으로 새끼 새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갑자기 뒤에서 충격이 느껴졌고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일어나서 뒤를 보니 곱슬머리 사내가 다가와 미안하다고 말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조깅하다가 심취해서 앞을 못 봤다고 했다. 내가 다친 곳이 없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곱슬머리 사내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연락처를 알려주려고 했다. 내가 두 번 더 사양하고 나서야 그는 인사하고 다시 음악을 들으며 달려갔다.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보았는데 고양이는 사라진 후였다. 밑에서 나는 부산한 소리에 놀라서 도망간 모양이었다. 둥지에는 새끼 새들이 여전히 뺙뺙거렸고 다행히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안도감과 함께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한 걸음 옮기려는데 발밑에서 뭔가 반짝였다. 500원짜리 동전이었다. 내 것이 아니었으니 아마 좀 전의 곱슬머리가 떨어트리고 간 것 같았다. 나는 동전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공원을 벗어날 때쯤 길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았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그네를 탄 채로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옛 추억이 떠올라 씁쓸함에 인상이 조금 구겨졌다. 옆에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빨간 풍선을 손에 쥔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밀며 풍선을 쥔 아이가 짜증 내는 것을 달랬다.

 

  눈이 마주쳐서 인사했다. 아이 엄마가 인사하며 풍선을 쥔 아이에게도 인사하라고 시켰다. 아이는 낯을 가리는지 엄마 뒤로 쏙 숨었다. 나는 괜히 꼬마에게 뭔가 주고 싶어졌다. 주머니를 뒤져서 500짜리 동전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순식간에 풍선이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풍선을 놓쳐버린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덩달아 유모차의 아기도 울어댔다. 아이 엄마는 자식들을 달래느라 정신없이 자리를 떠났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빨간 풍선이 날아간 하늘을 보았다.

 

  새파란 하늘을 가만히 보았다.

 

  구름이 일부러 그려놓은 듯이 근사하게 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오늘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발길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 집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동생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장롱을 열어 하나뿐인 정장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기왕에 죽을 거면 좋은 옷을 입고 죽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회사로 가는 길의 다리 위에서 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아 유서를 쓰는 중이다. 막상 죽으려니 억울하고 겁이 났다. 그래도 죽기는 할 건데 잠시 시간이 필요해서 유서를 썼다. 쓰다 보니까 배고파져서 동생이 챙겨준 빵과 우유를 먹었다. 이제 더 쓸 말도 없는데 아직 겁이 가시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쓴 유서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마지막 글이 될 테니 가능하면 잘 쓰고 싶다. 다시 읽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 써야지.

 

  내가 쓴 글인데 다시 읽어보니 무슨 엉터리 소설같이 느껴진다. 삼류 작가가 이야기를 썼는지 나의 인생은 두서없이 엉망진창이었다. 글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가라앉아 버렸다. 틀리거나 말거나 아무려면 어때. 그런데 만약 정말로 삼류 작가가 쓴 거라면 결말을 어떻게 내려고 이따위로 쓴 건지 모르겠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진짜로 가야겠다. 사실 벤치에 앉을 때부터 죽을지 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동전 던지기로 정하기로 했다. 공원에서 주운 500짜리 동전으로 시도 중이었다. 다섯 번 던져서 3번 앞면이 나오면 뛰어내리고 반대로 뒷면이 3번 나오면 죽지 않기로 했는데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 연속으로 앞면이 두 번 나왔다. 마지막에라도 운이 좋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이제야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무리한 편지를 잘 접어서 가방 밑에 깔아 두고 난간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옆에 가지런히 놓은 후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들고 가만히 바라본다. 두루미 한 마리가 자유롭게 날아갈 것처럼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제 보니 이거 새것이었네.”

 

   남자가 주먹으로 동전을 꽉 쥐고 한숨을 쉰다. 눈을 감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다시 눈을 떠 난간 너머 깊고 검게 흐르는 강을 본다. 난간에서 몇 걸음 물러나서 주먹을 풀고 동전을 높이 던진다.

 

  동전이 튀어 올라 정점에서 햇빛을 받아 잠시 반짝이더니 시간이 느려진 것 같다. 공중에서 회전하던 동전이 이제야 떨어지려 한다.

 

  남자의 시선은 동전을 향하고 그것을 받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까치 한 마리가 동전을 물고 날아간다. 남자의 시선이 까치를 쫓고 그의 눈동자에 발가락이 하나 모자란 까치의 뒷모습이 비친다.

 

  남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잠시 얼어 있다가 일그러진 얼굴로 변하고 곧이어 허탈한 얼굴로 변한다. 다리 위에서 허무하고 맥없는 웃음소리를 한참 토해낸다. 벗어 두었던 구두를 신고 가방 밑에 깔아둔 편지를 잘 접어서 가방 안에 넣는다. 그리고 가만히 하늘을 보다가 피식 웃는다.

 

  남자가 다시 걸어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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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2/3 (0) 2019/05/08 PM 08:18

 

 

제목: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2/3

글쟁이: 게도영

 

 

 

 

  카페에서 마주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여자친구는 잘 지냈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못 지냈지만, 잘 지냈다고 거짓말했다. J가 커피잔을 들자 왼손의 반지가 눈에 띄었다. 무슨 반지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반지를 어루만지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도 더는 묻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아 함께 말없이 책 읽던 추억이 떠올랐다. 

 

 여기서부터는 내 기억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다시 그녀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헤어지고 싶은 거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커피를 다 마시자 그녀가 일어났다. 그러고는 또각또각 걸어서 카페를 나갔다. J는 중간에 멈칫하거나 돌아보지 않았다.

  

 빈자리에 남은 커피잔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유가 뭐였을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J는 말없이 떠나버렸고 나만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러니 나 혼자서라도 이유를 찾아서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고민 끝에 답을 정했다. 내 키가 그녀와 사랑하기에 모자랐기 때문이었다고. 그녀보다 다만 몇 센티라도 컸다면. 최소한 그녀와 같은 키로,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뒤 두어 번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동안 취하면 J 같은 좋은 여자는 다시는 못 만날 거라며 아무나 붙잡고 울며 하소연하는 게, 나의 술버릇이 됐다.

 

  사실 그녀와 이별하고 나서 오랫동안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3주 정도 울면서 J와의 이별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갖은 노력 끝에 아버지가 개인택시를 장만했다. 아버지는 첫 손님으로 어머니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 그리고 두 분이 사고를 당했다. 트럭 운전사가 졸음운전 중에 아버지의 차를 뭉개 버렸다.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가 핸들을 잘 틀었던 덕분에 어머니는 왼팔하고 대퇴골이 골절되었지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입원하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때 동생은 어머니를 간호하는 등 울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했다. 반면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보험사, 경찰, 장의사 아저씨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차가운 받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장의사분들이 아버지의 남은 파편을 맞추어서 생전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가 그냥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오늘도 돈 벌러 가야겠다고 이야기할 것 같았다. 늙기 전에 열심히 벌어서 자식들 집 한 채씩 해주겠다고 큰소리치실 것 같았다.


  장례식을 넋 놓고 치렀다. 아버지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를 납골당에 안치하면서 문을 닫는데 달칵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한참 동안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가셔야 하나. 아버지의 죽음이 억울하고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시간은 전과 다름없이 무척 잘 흘러갔다. 나는 가장의 역할을 맡아 전에는 신경 쓴 적 없었던 여러 일을 처리했다. 남겨진 빚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으로 대부분 갚을 수 있었다. 남은 것은 내가 버는 돈으로 조금씩 갚아도 한 1년이면 전부 변제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만 남았다. 통장을 정리하면서 아버지랑 어머니가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사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상속 포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사하고 싶지 않다고 밝히자 동생은 내 의견에 찬성했고 어머니는 병실 침상에 앉아서 대답이 없었다.

 

  날씨 좋은 날 어머니가 퇴원했다. 담당의가 수술 경과가 좋아서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병실에서부터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부축했다. 병원 주차장으로 미리 택시를 불러두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옆으로 하얀 벚나무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부드러운 바람결에 벚꽃 잎이 춤추듯 길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풍경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우리 앞으로 열심히 살자고. 어머니는 말없이 내 얼굴을 한 번 보시고 미소 지었다.

 

 그러고 2주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자살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연락을 받고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한참을 펑펑 울었다. 시신은 평소 부모님이 함께 오르던 동네 뒷산에서 발견되었다. 그 산은 우리 남매가 어리고 부모님이 젊었을 때. 가족이 김밥을 싸서 돗자리 들고 올라가 소풍을 즐겼던 곳이다. 우리가 돗자리를 폈던 언덕 근처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나무에 목을 매어 삶을 끊어버렸다. 어머니가 마지막에 지녔던 것은 아버지의 낡은 넥타이와 편지 한 장이었다. 편지에는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적혀있었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납골당에 안치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두 분 이렇게 가실 거면 왜 나를 낳으셨나요?’


  울다가 지쳐서 두 눈이 퉁퉁 부은 동생이 옆에 있어서 그 말을 뱉지 못하고 도로 삼켰다.

 

-


  남자가 글 쓰던 손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튕긴다. 앞면이 나온다. 도로 주머니에 넣고 종이와 연필을 가방으로 눌러 날아가지 않게 한다. 뚜벅뚜벅 난간으로 걸어가서 고개를 내민다. 파란 하늘 아래로 깊은 강이 시간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든다. 까치 두 마리가 다리 아래로 잇따라 먹이를 물어 나른다. 아마 그곳에 둥지를 튼 모양이다. 거리가 멀어서 좀 전에 빵을 물고 간 그 까치들인지 알 수 없다.


  남자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벤치로 돌아와 연필을 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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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1/3 (0) 2019/05/06 PM 08:53

 

 

제목: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1/3

글쟁이: 게도영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벤치에 앉는다. 가방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낸다. 그리고 가방을 받침대 삼아 글을 쓴다.

 

-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꿈을 만나면 어떡할까? 내 경우에는 걱정했다. 꿈이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지 않을지. 그래서 반짝이는 꿈을 만났을 때, 엄마에게 달려가서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만 웃자란 쓸데없이 셈이 빠른 아이였다. 바보였다. 꿈을 꾸든 말든 미래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어렸을 때는 누가 대놓고 지적하지 않아도 가난 때문에 항상 주눅이 들었다. 가난에 눌려서 그랬는지 내 키는 또래보다 작았다.


 중학교 1학년 때, 피부가 하얗고 키 큰 소녀가 짝꿍이었다. 얌전하게 생겼으면서 남자애들과 시비가 붙으면 주먹으로 끝장을 보는 왈가닥이었다. 나는 키가 작았는데 키 큰 여학생과 짝이 되어서 반에서 놀림감이 됐다. 키로 자리를 정하는 것은 차별이니 합리적으로 제비뽑기로 정하라고 말씀하신 선생님이 미웠다.


 그 무렵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컴퓨터도 오락기도 학원비도 없었기 때문에 책 이 내겐 돈은 적게 들면서 시간은 잘 가는 취미였다. 하루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 짝꿍인 J가 다가왔다. J가 뭐하냐고 물었고 나는 책 본다고 답했다. 다시 책 좋아하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J는 옆에 앉아서 말없이 들고 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닭 보는 소처럼 눈을 깜빡이고는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사실 여학생 옆에서 책을 읽는다는 게 창피했지만, 그것 때문에 자리를 옮기는 건 더 창피해서 못 움직였다.

 

 그 뒤 우리는 종종 도서관에서 마주쳤고 나란히 앉아 말없이 책을 읽었다. 시간이 지나며 읽은 책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됐다. 서로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얼렁뚱땅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내가 J에게 물었다. 키 작은 사람도 괜찮으냐고 묻자, 남자애들은 금방 자라니까 걱정 말라며 그녀가 싱긋 미소 지었다.

 

 J의 말처럼 내 키는 불쑥 자랐다. 목소리가 변했고 수염이 났다.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 J를 많이 따라잡았다. 그녀와 내 키 차이가 딱 1cm로 줄었다. 거기서 멈춰서 더 자라지는 못했다. 아쉬워도 도리가 없었다.

 

 졸업 후 그녀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친구 삼촌이 운영하는 공장에 들어갔다. 열심히 갚았어도 남아 있는 빚을 갚느라 애쓰는 부모님을 돕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달리 꿈이 있는 동생을 지원하고 싶었다. 공장에서 일해서 저축만 잘하면 동생 학비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장에서 하는 일은 기계를 조립하는 일이었다. 완성품은 발권기였다. 한 자리에 서서 같은 속도 같은 동작으로 기판에 정해진 부품을 꽂는 일만 하면 되었다. 하루 9시간씩 일했고 주 1회 쉴 수 있었는데 고단했지만 버틸 만했다. 주말에는 서울에서 본가로 내려오는 그녀와 데이트를 했다. 성인이 되니까 학생 때보다 좋은 점이 있었다. 일해서 번 돈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었다. 우리는 돈이 있으면 극장에 가거나 멋진 레스토랑에 갔다. 돈이 없을 때는 도서관에서 책 읽다가 김밥왕국에 갔다.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좋았는데...


-

 

 남자가 연필과 종이를 내려놓고 가방을 연다. 안에서 주섬주섬 봉지를 꺼낸다. 봉지 안에서 빵과 우유가 나온다. 빵을 먹으려고 포장을 뜯는데 어디서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남자의 발치에 내려앉는다. 보고 있자니 까치가 깡총 거리며 다가왔다가 멀어지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빵을 뜯어 부스러트린 후에 던진다. 그러자 어디선가 까지 한 마리가 또 날아온다. 먼저 온 녀석과 친구인지 다투지 않고 나누어 먹는다. 나중에 온 녀석은 왼쪽 발가락이 하나 없다. 두 마리의 모습을 조용히 보다가 빵을 뜯어서 또 한 덩이 던진다. 먼저 온 까치가 커다란 덩어리를 물고 날아오른다. 뒤에 온 까치가 따라간다. 두 마리가 난간 너머 같은 하늘로 날아간다.

 

 새들이 가고 나서 남자는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낸다. 엄지손가락으로 튕겼다가 잡고 한숨을 쉰다. 확인해보니 앞면이 나온다. 또 동전을 던졌다가 받는다. 이번에는 확인하지 않고 도로 주머니에 넣는다.

 

 

-

 

  ...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좋았는데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J가 내게 정장을 한 벌 선물했다. 서울에서 과외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샀다고 했다. 그렇게 비싼 옷은 처음이라 치수는 맞았지만 어색하고 불편했다. 나는 답례로 당시에 유행했던 백을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어 백화점에 갔다. 가격을 모르고 사러 간 것이 낭패였다. 두 달 치 월급을 합쳐야 살 수 있는 가격이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직원에게 내 한 달 월급의 절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백이 있는지 물었다. 여직원은 탐탁잖은 표정으로 물건을 가져와서 포장은 정성스럽게 해 줬다. 그리고 다음 주말에 선물을 건넸다. 그녀는 포장을 뜯고 내가 선물한 백을 보더니 정말로 기쁜 표정을 지었다. J는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사귄 지 9년째 되는 날. J가 밤늦게 전화를 했다. 한참 말이 없다가 미안하다고 하기에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그냥 미안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뒤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았다. 본가에 찾아가 봤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공장 반장님께 사정을 말하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후에 휴가를 썼다. 평일에 서울로 올라가서 그녀가 다니는 대학교로 향했다.

 

 J가 사준, 아까워서 모셔뒀던 정장을 입고 정문에서 한참 기다렸다. 수업이 끝났는지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파 속에서 나는 하얀 학들 사이에 끼인 닭이 된 기분이었다. 그녀를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고개를 쭉 빼고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J였다. 그녀는 못 본 사이 머리를 짧게 잘랐고 전보다 맵시 있는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녀가 차 마시자며 말하고 고개를 돌려 앞서갔다. 먼저 가는 여자친구의 오른쪽 귀에 못 보던 귀고리가 반짝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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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말하는 의자 (0) 2019/03/16 PM 05:11

 

 

제목: 말하는 의자

 

 

 

 나는 인간이 싫다여러 이유가 있지만 몇 가지만 꼽아 보자면 이렇다시끄럽고 산만하고 무엇보다 자꾸 내 위에서 방귀를 뀌어대는 점이 싫다한쪽 엉덩이를 들어서 뿌웅 혹은 푸쉬식 거리며 방귀를 뀌어대는 인간이 싫다내가 움직일 수 있다면 인간 머리 위에 설사를 뿌려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그래도 방귀쟁이는 양반이다상당히 빈번하게 똥이나 오줌을 지리고 도망가는 녀석들이 있다아직 미숙한 어린이가 저지르면 세상에 먼저 존재한 존재의 선배로서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다 큰 성인들이 똥오줌을 지리고 청소하지 않고 도망가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아무래도 인간이 예의를 책상머리에서 배워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예의는 주먹 앞에서 배워야 한다예의 없는 짓을 할 때마다 펀치로 피드백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모르긴 몰라도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 대부분이 해결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인간이 싫지만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만약 내가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인간은 진작 멸종 위기종이 되었을 거다내 한결같은 증오심에 하늘이 감동한 것인지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아주 조금매우 천천히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나는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

 

 많은 인간이 사무실에 앉아서 허리가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그들은 자신의 자세가 나빠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만사실은 내가 한 것이다어떤 인간이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어도 내가 조금씩 천천히 등을 뒤로 젖히면 게임 끝이다.

 

 겨우 이게 다가 아니다나는 큰 그림을 그렸다우선 인간의 자세가 나빠지게 만들어서 척추 질환을 유발할 것이다그러면 인간은 허리의 통증 때문에 번식 행위를 꺼리게 된다그 말은 즉 새끼를 낳지 않게 된다는 말이고 새끼를 낳지 않는 종의 결말은 멸종뿐이다.

 

 오늘날 바보 같은 인간은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놈들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나는 인간의 척추를 공격해서 그들을 천천히 그리고 반드시 멸종시킬 것이다.


 지구를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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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헬조선 이라는 말이 생겨서 다행이다. (2) 2019/03/13 PM 02:12

 

 

제목: 헬조선 이라는 말이 생겨서 다행이다.


 

 

 

 헬조선 이라는 말이 생겨서 다행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것을 인지해야 하는데 이제 사람들이 그 단계는 지난 것이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나는 공감한다. 때문에 지구상의 어떤 나라를 가더라도 천국 같은 곳은 없는 것이다. 헬조선에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덜 고통스러운 나라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사람들이 구세주를 찾지 말고 우상을 숭배하거나 추종하지 말아야 한다. 개개인의 능력을 함양해 자신이 속한 집단 전체의 능력이 향상되었을 때 대업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작게 시작해 보자.


 독서를 해야겠다. 개인의 능력을 함양하기에 독서보다 가성비 좋은 방법은 찾기 어렵다.


 악플을 달지 말자. 하루에 한 문장 선플을 달자.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자.


 역자사지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자. 세상 만물에는 신의 뜻이 담겨 있으니, 내 눈에 미치광이로 보이는 사람도 신의 뜻 아래 운명의 길을 걷는 것이다.


 수행자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자. 과거의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내 공부하기에도 바쁠 정도로 시간은 쏜살같다. 괜한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자.


 이와 같은 방법들이 머리로는 쉽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어려울 것이다. 살아온 습관이 변화를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반드시 한 걸음씩 나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삶은 공하기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시매 넘어설 수 있는 시련만을 주시기 때문이다.



- 나사탄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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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킵고잉★    친구신청

글을 깔끔하게 잘쓰시네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

게도영    친구신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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